환영사

세계선교의 지형도가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 읽어내기 어려워졌습니다. 선교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속도를 읽어내지 못하면 길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세계선교협의회는 한국교회의 선교는 물론 세계선교의 미래를 위해 다양한 전략적 모임들을 가지며 노력해오고 있습니다. KWMA는 8차 ECOWE가 성황리에 끝이 난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후속 전략적인 모임들을 가지며 변화된 선교 현장에 한국교회가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모색을 하고 있습니다.
반가운 것은 이번에 8차NCOWE는 물론 후속 모임들에 대한 종합적인 자료집이 출간되게 되었습니다. 이 자료집안에는 현대 한국 선교의 전반적인 사역들이 소개되고 있고 그동안 한국 선교에 대한 전반적 고찰과 반성은 물론 선교의 미래를 전망하는 일들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선교에 관심을 가진 사역자들과 교회들에게 귀한 통찰과 비전을 일으키는데 쓰여지기 바랍니다.
귀한 자료집 발간을 환영하며 상당히 방대한 작업임에도 수고해 주신 강대흥 사무총장님과 그외 편집을 동참해 주신 모든 스텝들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KWMA 법인이사장, 수영로교회
이규현 목사

인사말
많은 선교대회나 모임들이 진행이 되고 있지만, 아쉽게도 행사로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좀 더 깊이 있게 내용들을 살펴보고, 정리된 자료가 이어지지 않고, 구체적인 후속모임 없이 마쳐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특별히 제8차 NCOWE는 코로나로 인해 선교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겪은 후, ‘새로운 시대새로운 선교’를 꿈꾸며,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하고, 세계교회와 동반자적 선교를 위한 구체적인 발걸음을 만들어가기 위한 매우 중요한 선교전략회의였기에, 이 자리에서 논의된 내용을 자료화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번 제8차 NCOWE 자료집은 프로그램위원회의 구성부터, 사전 준비부터, 대회 기간 주제 설교 및 강의들과 10개 트랙의 주요 발제들을 상세하게 수록해 놓았고, 대회 이후 후속모임과 구체적인 Action Plan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자세하게 담았습니다. 특별히 이번 NCOWE가 발제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리더십들이 라운드 테이블에서 다양한 목소리로 다양한 제안들을 첨언하고,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많은 시간을 한국선교의 미래를 위한 발전적 제안들에 많은 집중을 했기에 이번 자료집은 매우 중요한 근거자료로 사용이 될 것입니다.
KWMA는 이를 위하여 본 자료집 뿐만 아니라 영상자료를 아카이브로 보관하여 현장선교사들과 일선의 목회자들이 언제든 볼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였고, 해외교회 지도자들과 NCOWE에서 논의된 내용들을 소통하기 위한 다큐제작도 함께 병행하였습니다.
건강한 선교를 꿈꾸는 분들에게 구체적인 도움이 되어지는 책자와 자료들이 잘 만들어지고, 무엇보다도 이를 잘 활용하여 읽고, 적용하는 귀한 선교의 지침서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바라기는 이 책자가 한국교회의 건강한 선교를 위한 소중한 지침서가 되어지기를 바라고, 이 책자 제작을 위해 수고한 분과 독자분들에게 주님의 위로와 지혜가 풍성하시기를 기대하면서 인사 말씀을 전해 드립니다.
KWMA 대표회장, 주안교회
주승중 목사
축사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롬11:33-36)
모든 곳에서 모든 곳으로!
주 안에서 하나되어 우리 모두가 함께 걸어가는 선교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열방 중에서 가장 연약했던 우리를 만세 전에 택하시고 복음으로 자라게 하시고 영육간에 풍성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맡겨주신 사명 가운데 한국교회가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하게 하시고,더군다나 전 세계 곳곳에서 한국을 주목케 하심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이 때,이 시대를 위함인지도 모릅니다.
한국교회가 받은 은혜를 NCOWE를 통해서 회고하고 반성하고 기대하며 결단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먼저 드림으로 갚으심을 받아 지금까지 맺게하신 업적과 열매, 방법과 지혜가 주님으로부터 나온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님으로 말미암는 책무를 다해야 할 것입니다. 각 지체는 모든 것 되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같은 마음을 품고 그리스도화 된 진실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종족, 성별, 문화, 과업을 뛰어넘어 자신을 비우고, 주님께서 펼치신 모든 지역과 영역에서 전 세계를 아우르는 사랑의 연결고리로서 주께 영광 돌리기를 소망합니다.
KWMA 법인이사회 서기, 주사랑선교교회
이여백 목사

추천사 1
오늘날 기독교는 서구 중심에서 다중심적(polycentric) 기독교로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포스트 모더니즘, 세속주의, 성(性)의 정치화 등이 서구 교회를 약화시키고, 원리주의적 종교들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 선교에 저항하고 있습니다. 급격한 변화 속에서 선교의 방향을 찾기 위해서는 치열한 자기 성찰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한국교회의 선교가 선교단체에 위임하는 모습으로, 단지 선교단체를 후원하는 것에 머물러 있지는 않았나 돌아봅니다. ‘선교가 교회를 위해 시작된 것이 아니라 교회가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시작되었다’라는 말을 기억하며, 교회의 사명이 선교에 있음을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교회는 선교회적 모습을 회복해야 하고 선교회는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회복해야 합니다. 교회와 선교회의 상호 협력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KWMA는 그동안 선교전략회의를 통해 교회지도자들과 선교목회자들, 비서구권 선교지도자들이 함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었습니다. 교회와 선교회의 협력을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제8차 NCOWE는 한국교회가 세계선교의 흐름과 전망, 과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 잘 준비된 대회였습니다. 지난 NCOWE 대회를 돌아보는 자료집을 통해 한국교회와 선교단체가 다시 한 번 스스로를 성찰하고 서로 협력하여 선교적 정체성과 영성을 회복하는 일에 귀하게 쓰임 받기를 소망합니다.
KWMA 법인이사, 온누리교회
이재훈 목사

추천사 2
2023 NCOWE 는 뉴노멀(New Normal) 비전축제였습니다.
코로나 이전에 존재한 모든 선교를 돌이켜보면서 한국세계선교에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는 뉴노멀(New Normal)비전축제였습니다
2023 NCOWE는 선교적교회 비전 축제였습니다.
선교는 교회를 축복한다. 그러므로 NCOWE는 한국의 모든교회가 선교에 참여하여 ‘모든 곳에서 모든 곳으로’ 가는 선교적교회 축제였습니다.
2023 NCOWE는 세계 기독교(World Christianity)비전 축제였습니다.
세계기독교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알고 한국교회의 세계선교를 통해서 세계기독교시대를 준비하는 월드 크리스챤 (WORLD CHRISTIAN) 축제였습니다.
2023 NCOWE는 말씀비전 축제였습니다.
‘다시, 그곳에서’(엡 2:10)라는 주제로 에베소서 전체를 목회자들이 매일 같이 나누어서 순서대로 에베소서를 설교한 말씀 축제였습니다.
2023 NCOWE 를 위해서 수고해 주신 600여명의 선교지도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이제 한국교회의 선교는 세계교회를 향한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고 있습니다.
지금도 선교지에서 십자가 사랑을 몸소 보여주고 계시는 현장선교사님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모든 영광을 오직 하나님에게만 올려드립니다.
KWMA 법인이사, 의정부 광명교회
최남수 목사

추천사 3
주후 4세기 이후 기독교는 로마 제국 전 영역에 걸쳐 뿌리 깊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기독교는 주변부에서 중심이 되었고 기독교인을 향했던 핍박은 한순간 추앙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즉 기독교는 국가의 모든 것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역사가들은 이를 크리스텐덤 시대로 명명합니다. 크리스텐덤 시대의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은 기독교를 국교로 삼았고 기독교는 패권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세계선교의 구심점과 축은 유럽을 중심으로 한 북반구의 국가들이 되었습니다. 북반구의 기독교 국가들은 복음의 정신에 따라 적극적인 선교정책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서구 열강의 식민주의 정책을 힘입어 기독교를 이식하려고 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기독교 선교의 아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크리스텐덤 시대의 팽창주의 기독교는 18세기 변곡점을 맞이합니다. 즉 계몽주의 영향으로 서구 기독교는 세속화되었고 탈 기독교화됩니다. 그 결과 19세기를 지나 20세기에 이르며 서구 교회는 힘을 상실했고 성도의 수는 줄었습니다. 급기야 21세기 들어 서구 열강의 식민지였던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의 기독교가 약진하며 서구 지역의 기독교인 수를 추월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세계 기독교 지형의 큰 변혁입니다. 남반구의 기독교 영향력이 증가하기 시작했으며 1972년 시작된 로잔 운동을 기점으로 세계 선교의 중심은 2/3 세계로 전이되었습니다.
이번 제8차 NCOWE 대회는 지난 세기 세계 선교 흐름의 장점과 단점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서구 팽창주의를 답습하던 선교 정책을 고백하고 포스트 크리스텐덤 시대, 즉 팬데믹 이후 우리가 천착해야 할 선교 과업과 전략을 살펴보는 자리였습니다.
컨텍스트가 변해도 복음은 변질되지 않아야 한다는 명확한 명제 아래 정보화의 혁명으로 급속한 변화의 시대 전해야 할 복음, 선교의 변방이었던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 즉 2/3 세계와 함께 세계 복음화를 위해 동역해야 할 우리의 자세와 위치를 확인하는 귀한 자리였습니다. 일방적 선교 시대를 뒤로하고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쌍방향, 다 중심 선교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런 태도는 온전한 복음을 온 세계에 전하여 온전한 교회를 세우는 로잔의 정신의 실현이 될 것입니다.
KWMA 법인이사, 지구촌교회
최성은 목사

격려사
하나님의 선교는 하나님 중심적인 선교가 되어야 합니다. 선교의 목적과 내용,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모색해야 할 선교의 방향과 전략들도 철저하게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최선의 선교가 되고, 많은 열매들도 맺어지게 될 것이 당연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이번 제8차 세계선교전략회의를 통해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실제적인 전략들을 모색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또한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의 실마리들이 보여졌는데 후속적인 모임들을 통해서 구체적인 전략을 찾아가고 있어서 더 큰 기대를 갖게 됩니다.
저는 우리의 모든 부족함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일하시고 계심을 봅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그 질투가 하나님의 선교를 완수하실 것임을 확신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랑으로 무장되고 주님께로 철저히 헌신된 분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바라기는,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서 여러 분야에서 헌신해 오신 분들의 지혜와 열정이 우리의 다음 세대들에게로 꼭 전해져서 하나님의 선교가 지속되고 더 놀라운 열매 맺기를 소원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지혜와 열정을 온전히 담고 나누는 일에 이 자료가 귀중하게 쓰여 지기를 바라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온 삶으로 섬기시는 한국 교회와 선교사님들, 그리고 늘 기쁘게 헌신하며 수고하시는 KWMA 모든 이사님들과 사무총장님과 직원 여러분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KWMA 운영이사회 이사장, 포도나무 교회
여주봉 목사

발간사
제8차 NCOWE를 허락하신 우리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분들이 참석하여 의견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은 큰 열매라 믿습니다. 이번 국가 차원의 선교 전략회의를 마치면서 그 기간 중 한국 선교를 일 깨운 분들의 글을 책을 만들어 한국 교회 앞에 내놓을 수 있게 됨을 감사합니다. 주옥 같은 설교들과 시대 정신을 깨우는 강의들, 10개의 전략적인 트랙모임에서 발제 되어 나온 보석 같은 원고들입니다. 이번 NCOWE 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바뀐 세상의 ‘뉴 노말’에 대한 선교적 방향을 예언하고 이를 한국 교회안에 제안하신 것들은 한국 선교가 지금까지 행한 크리스텐덤 선교에 대한 회고이며 자성이었고, 앞으로의 선교는 비서구 교회들과 같이 가야 한다는 절박한 외침이었습니다. 한국 교회의 선교적 흐름을 새롭게 하자는 운동에 법인 와 운영이사, 그리고 정책위원회에서 지지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또한 미주 디아스포라 교회를 대표하는 KWMC와 선교 현장의 선교사를 대표하는 KWMF 에서도 같은 마음으로 지지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선교하시는 교회의 담임 목사님들께서 같은 마음으로 비서구 중심의 선교운동에 동참하시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이번 NCOWE 에는 비서구권(남미, 아시아등) 교회의 리더들이 참석하셨는데 이분들이 한국 교회의 선교적 흐름을 이해하시고 감사하게도 동참한 비서구권의 교회들과 같이 네트워크를 하자는 제안을 하셔서 Coala (Christ of Asia (Arab and Africa) LA(tin)가 탄생하였습니다. 결국 이번 제8차NCOWE 책자는 엔데믹 이후의 한국 선교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청사진이고, 특히 미래 세대의 동력이 움직여 지도록 동기 부여하는 대회가 되었으며, 한국 선교의 방향 전환을 위한 전략대회가 되었습니다. 한정판으로 발간되는 이번 기념 논문집이 미래적으로 교계와 선교계의 동력을 제공하며, 선교적 방향을 잃어버렸을 때에 두고 보는 나침판 같은 역할을 하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NCOWE 프로그램위원회(한철호, 김동화, 이금주, 공갈렙, 홍현철, 강대흥 등) 와 이 책을 만들어 주시는 일에 협력하신 편집인 분들과 일러스트 편집과 디자인 및 출판과 전자도서 제작에 협력해 주신 선교타임즈와 비전선교단, 그리고 정용구 선교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KWMA 사무총장
강대흥 선교사
제8차 NCOWE 개요
– 세계 기독교 시대의 한국선교
한철호 선교사(제8차 NCOWE 프로그램위원장)
2023년 1월 17일 KWMA 제33차 정기총회 발표자료
배경
오늘날 기독교가 서구 크리스텐텀(Christendom) 시대에서 탈식민지(post-colonial), 탈근대(post-modern), 탈서구(post-Western, post- Christendom) 시대를 거쳐 세계 기독교(World Christianity/Global Christianity) 시대로 옮겨 가면서, 세계 교회의 선교는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과거 선교지(mission field)였던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global south & global east)의 교회가 성장하면서, 이제는 세계 선교 세력(mission force)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제까지의 서구 중심의 선교 시대를 마감하고 세계 기독교 시대의 선교가 열리고 있다.
한편 이제까지 기독교의 중심이던 서구는 복음을 다시 들어야할 다민족 다문화 사회로 전환되고 있다. 이제 선교는 서구의 일방적인 주도에서 벗어나서 다중심적(polycentric)이고 쌍방향적이며 전방향(all-direction)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그 방식에 있어서는 총체적(Integral)이고 통합적(Wholistic)으로 전개되고 있다
선교는 코로나 펜데믹 시대를 통과하면서 우리에게 새로운 표준(New Normal)을 요청하고 있다. 서구선교 흐름의 마지막 시대에 부흥하기 시작하여 이제까지 서구 크리스텐덤(Christendom)방식의 선교에 참여해 온 한국선교는 새롭게 부상하는 세계 기독교(World Christianity)와 호흡을 같이하기 위해 새로운 선교로 전환되어야 한다.
코로나 시대가 가져다 준 가장 큰 깨달음은 지역성(Local)의 중요이다. 크리스덴덤 시대의 선교가 외부인 중심이었다면, 코로나 시대 이후 세계기독교 시대의 선교는 내부인(Indigenous)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제 자립, 자치, 자전을 넘어서서 내부인들이 중심이 되어(Centering local), 그들에 의한 자신학화가 이루지고 자신의 문화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공동체를 세워가는 과정과 이를 외부자가 돕는 과정으로 이해되고 있다.
한국선교는 2010년을 넘어서면서 새로운 국면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은 한국선교가 한국교회의 침체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교회가 본질적 변화를 모색해야 하듯이 한국 선교도 그래야 한다. 이것을 위해 지난 35년간 엄청난 속도로 확장되어 온 한국선교를 되짚어 볼 때(Re-think) 하나님께서 선교라는 선물을 한국교회에 허락한 것을 감사하면서 동시에 세계 기독교(World Christianity)라는 새로운 시대적 정황 속에서 한국선교는 무엇을 근본적으로 성찰하고(Reflect) 돌이키고(Repent) 새롭게 하여(Rebuild) 다시 활성화(Revive) 할 것인가를 논의해야만 하는 절박한 시점에 서 있다. 좋은 교회로부터 좋은 선교가 시작된다. 동시에 좋은 선교가 좋은 교회를 만든다. 따라서 우리가 좋은 선교를 모색하고 실현해 내는 과정에서 한국교회의 건강성도 회복될 것이다.
새로운 표준의 제시는 새로운 시각으로부터 가능하다. 새로운 시각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다보고 회개를 촉구하며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던 선자자들처럼, 현재의 한국 선교를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다보고 회개를 촉구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선지자적 시도가 필요하다. 선지자적 메시지는 인간의 계획과 의도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에게는 철저한 회개와 말씀으로부터 듣는 겸손함과 기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NCOWE(세계 복음화를 위한 국가 전략회의 National Consultation On World Evangelization)의 배경은 GCOWE(Global Consultation On World Evangelization)이다. GCOWE는 1974년 로잔대회에서 제시된 세계 복음화와 관련된 두 개의 중요한 패러다임 중에 하나로 랄프 윈터가 말한 미전도 종족선교의 과업을 실행하기 위해 1989년 4월 첫 싱가포르에서 모인 모임으로, 1995년(서울)과 1997년(프레토리아) 등에서 모인 전 세계적인 전략회의였다. KWMA는 GCOWE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국가별 전략회의를 개최할 요청에 반응하여, 1991년에 1차 회의를 시작으로 지난 2018년까지 7차에 걸친 NCOWE를 통해 GCOWE가 제시했던 전방 개척 선교의 완성이라는 선교 과제에 대한 한국선교의 전략을 논의했다. 초기에는 전방 개척 선교에 집중했고 후에는 그 논의의 범위를 넓혀 한국 선교 전반에 대한 논의로 확장하여 한국선교의 방향을 제시해 왔다.
이번 NOCOWE2023에서는 “세계 기독교 시대의 한국선교에 대한 이해와 나아갈 길”이라는 방향 아래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주제를 차례로 다루려고 한다.
- 선교와거룩(Mission and Holiness) : 선교는 우리에게 주어진 과업 이상의 것이다. 선교는 하나님의 것이고 이 세상을 향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움직임이다. 하나님은 거룩과 사랑의 본질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의 선교는 거룩과 사랑을 세상에 들어내는 일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선교에 초대된 우리 선교 또한 거룩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세상에 대한 사랑의 실천에 참여해야 한다.
- 한국선교와세계 기독교 (Korean mission and World Christianity): 우리 가운데 이미 와 있는 세계 기독교(World Christianity)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인식 그리고 그 안에서 한국선교(사)에 대한 반추와 본질적인 변화를 위해 어떤 질문을 해야 할 것인가, 어떻게 세계교회와의 협력을 이뤄 갈 것인가, 등에 대해 논의한다.
- 남겨진과제, 발견할 과제 (Frontiers in Mission): 한국선교에 주어졌던 세계복음화의 과업 중에서 돌파하지 못했던 것은 어떤 것들이며 그 이유를 확인 후 평가를 거쳐 수정하고, 동시에 세계 기독교 시대에 새로이 발견해가야 할 선교의 과업과 영역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확인한다.
- 하나님의영광을 위한 최선 (Best Practice for God’s Glory): 한국교회에 주어진 선교가 우리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물임을 깨닫고 예수님의 선교 방식인 성육신적 태도로 섬길 수 있기 위해, 변화된 선교 생태계를 이해하고 교회, 선체, 선교사, 성도, 그리고 다음세대가 각각 어떻게 최선의 방안을 만들고 실현해 갈 것인가를 논의한다.
트랙 모임에서는 각 영역에 실천가와 평가자가 반추하는 실천가(Reflective Practitioner)들이 함께 구체적인 실천 과제를 평가하고 논의하여 대안을 만들어 간다. 아래의 영역들 대부분은 이미 지난 여러 차례의 NCOWE에서 다뤄왔던 내용들이다. 그러나 세계 기독교(World Christianity) 시대라는 관점을 찬찬히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 유동선교(Poeple on the move) : 21세기에 들어서 인구 유동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디아스포라’는 지구촌(Glocal) 시대의 핵심 현상이며 하나님의 섭리다. 인구 유동(People on the move) 현상을 단순히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를 넘어서서 난민, 비즈니스, 국제결혼, 투자 등 다양한 형태의 이주민 그리고 유학생, IDP 등 그 범주가 확대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선교 형태와 기회가 만들어지고 있다.
- 다음세대 선교 동원: 선교 역사에서 ‘청년대학생’은 항상 그 중심에 있었다. 오늘날 한국교회와 청년대학생 사역의 현실에서 다시 그들 스스로가 선교의 주체가 되기 위해 새로운 도전과 시대가 일어나야 한다. 청년인구감소, 대학문화의 세속화 등 극복할 문제들이 많이 있지만 기독청년과 다음 세대 선교동원의 활성화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와 실천은 한국교회와 선교의 미래를 결정하게 된다.
- 선교생태계와 선교 단체 : 크리스텐덤(Christendom) 시대의 서구 선교 패러다임의 끝물에서 배우고 전달되어 시작된 한국선교와 이를 실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현재의 선교단체 구조가 어떻게 다가오는 시대에 새로운 세계기독교(World Christianity)시대에 적합한 선교 생태계로 전환되고 이에 걸맞는 구조로 변화되어야 하는지를 논의한다. 다가오는 시대에 선교 지속 가능성의 관점에서 선교단체의 구조, 모델, 운영방식, 선교사 정체성에 대한 본질적인 성찰과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다.
- 교회와선교 : 교회가 선교적 본질을 이해하고, 선교를 지원하는 구조 정도가 아니라 선교하는 공동체로 전환되기 위한 인식의 변화가 계속되어야 한다. 교회는 선교사 파송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교회 구성원 전체가 선교인(missioner)로 살아가도록 동원하고 훈련하고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가야 한다.
- 텐트메이커(Mission and Vocation): 변화된 선교현장과 세상은 직업과 선교를 연결하고 통합해야 하는 시대에 와 있다. 일과 영성을 통합하는 일터 영성의 세계관을 가지고 직업을 통하여 선교하고, 일터 안에서 선교하고, 직업을 가지고 선교하기 등 다양한 방식과 개념의 확장이 필요하다. 오늘날 변환된 선교 환경은 더 많은 텐트메이커와 비즈니스를 통한 선교 돌파를 기대하고 있다
- 전방개척선교(Frontiers in Mission) : 미전도, 미복음화, 최소 복음화 지역의 돌파와 자생적 교회 배가를 위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인종(종족), 종교, 사회계층 뿐만 아니라 복음으로부터 단절된 모든 문화 집단 안에 복음의 돌파가 일어나고, 스스로 배가하는 제자 그룹에 형성되고, 복음이 그들 문화에서 토착화된 방법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운동의 배가가 일어나야 하고 더 나아가서 문화로 단절된 계층(세대)과 영역(환경), 사상 안에도 복음이 벽을 넘어 전달되어야 한다.
- 정보화시대와 선교(Tech and Mission) : 한국선교는 사이버 세계와 신흥 기술의 도전 과제 및 기회를 이해하고 글로벌 선교를 가속화하기 위해 기술을 최적화하기 위해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선교정보, IT, 문서사역, 4차 산업시대의 선교 정보 이동과 활용, 리서치, 아카이브, 도서관, 미디어 등을 어떻게 선교와 연결 시킬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 현지교회와의협력(Collaboration in Mission) : 외부자에 의해서 주도되는 서구형태의 일방적인 선교 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한국선교(사)가 내부자 중심의 선교 시대에는 극복해야 할 한계를 가지고 있다. 돈과 선교, 파트너십, 리더십과 섬김, 입구전략과 출구전략, 내부인 주도의 배가되는 교회개척, 선교사의 언행일치(거룩), 고난받는 지역에서의 선교와 동반자 관계 등의 영역에서 새로운 표준이 필요하다.
- 여성선교사,가정 (Woman and Family): 세계 선교사의 반 수 이상은 여성 선교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하는 방식, 리더십 등의 영역에서 남성 중심적임으로 부인할 수 없다. 유교문화권에서 발전된 한국선교 안에서 여성선교의 역할과 위치를 건강하게 가져가기 위해, 여성리더십, 선교방식의 전환, 가정과 사역에서 역할분담, 건강한 가정, 자녀양육, 선교사 관리 등에 있어서 코로나 이후 시대에 적절한 새로운 표준이 마련되어야 한다.1
<실행과 기대>
위의 목적에 이르기 위해 NCOWE2023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길 기대한다.
- 교회,선교단체, 선교사 등 각 영역에서 실제 선교와 관련된 다양한 사역에 참여하고 있고, 한국선교를 뒤돌아보고 내다보는 대화에 겸손하게 서로를 존중하면서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참여자들을 중심으로 모인다.
- 세대별,관심별, 은사별 특징을 가진 참여자들이 한 테이블에서 서로 마음을 열고 대화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뉘우치며 함께 새로운 꿈을 꾸고 대안을 만들기 위해 세대, 남녀, 직위를 넘어서서 요엘 선지자의 비전인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요엘2:28-32)이 베드로를 통해 다시 확인되어 초대 교회를 시작하게 했던 것처럼, 이번 NCOWE에서 한국선교의 새로운 시작이 재현되는 소망을 가지는 테이블 대화가 강조된다.
- NCOWE기간(6월13일~13)도 중요 하지만 1월부터 모이는 트랙별 모임과 각종 사전 모임을 통해서 만들어져 가는(Build-up) 과정을 충실하게 해 간다면 NCOWE2023에서 한국선교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 이후에는이번 NCOWE에서 제시되고 모아진 방향과 대안의 구체적인 실현을 위한 후속 모임들을 통해 이를 실행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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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의 트랙은 후에 10개 트랙으로 조정이 되어지고, 각 트랙의 이름은 전문위원들이 좀 더 구체적인 명칭으로 변경하여, 10개의 트랙으로 모임이 진행이 되었다. (편집자 주)
[10개 트랙 소개]
트랙1. 디아스포라 : ‘디아스포라’라는 지구촌 시대의 핵심 현상이며 하나님의 섭리이다. 다양한 형태의 이주민과 범주로 확대되어가며 새로운 형태와 기회가 만들어지고 있다.
트랙2. 다음세대 선교동원 : 오늘날 한국교회와 청년대학생 사역의 현실에서 다시 그들 스스로가 선교의 주체가 되기 위해 새로운 도전과 시대가 일어나야 한다.
트랙3. 변화속의 선교단체 : 선교단체의 구조와 역할, 운영방식이 새로운 선교 생태계와 한국교회의 도전 앞에서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본질적인 성찰과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다.
트랙4. 선교적 교회로 가는 로드맵 : 교회가 선교적 본질을 이해하고 선교하는 공동체로 전환되기 위한 인식의 변화가 계속되어야 한다.
트랙5. 텐트메이킹 & BAM : 교회가 선교적 본질을 이해하고 선교하는 공동체로 전환되기 위한 인식의 변화가 계속되어야 한다.
트랙6. 전방개척선교 : 미전도, 미복음화, 최소 복음화 지역에서 성경 중심의 자생적 공동체 성장을 위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트랙7. 디지털 세계와 선교 : 사이버 세계와 신흥 기술의 도전 과제 및 기회를 이해하고 글로벌 선교를 가속화하기 위해 어떻게 기술을 최적화하고 연결시킬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트랙8. 현지인 중심의 동반자 선교 : 파트너십, 입구전략과 출구전략, 자생적으로 배가되는 교회개척, 선교사의 언행일치, 동반자 관계 등 내부자 중심의 새로운 표준이 필요하다.
트랙9. 변화하는 여성 선교사 : 변화하는 여성선교사의 정체성 재정립과 남녀선교사의 파트너십 강화, 세계 선교가 요구하는 한국 여성 선교사의 역할과 전문성을 확대하는 논의와 실천사항 지침을 마련하여야 한다.
트랙10. 자신학화 : 선교지에서 자신학화를 이루도록 돕는 방법에 대한 논의는 상당히 있었으나 이론적인 차원에서만 머물렀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적 적용, 사역 연계 결과물 등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제8차 NCOWE 주제어 선정 및 주제 성경구절
- NCOWE주제어선정
지난 2022년 1월 11일 NCOWE 프로그램 위원회에서 이야기 되어진 내용1으로 주제어 선정 및 성경구절 선정에 대한 내용을 위임받아 아래의 내용을 두 명의 카피라이터에게 기존 자료와 주제어들을 소개하고, 실무 대면하여 구체적으로 조율을 하고, 프로그램위원회와 KWMA 본부 직원, 랜덤으로 몇분의 선교사들과 리더십들에게 의견을 듣고, 2박 3일 정도 여러관점에서 생각을 해보고, 피드백을 종합하여 카피라이터와 다음과 같이 최종안을 만들었다.
다시, 그곳에서
카피라이터 제안 : 다시, 그곳에서는 ‘우리가 다시 그곳에 갔을 때, 어떤 모습으로 선교할지에 대한 질문이자 대답’이다. 다시는 ‘하다가 그친 것을 계속하여’, ‘방법이나 방향을 고쳐서 새로이’라는 의미가 있다. 과거에 부족했던 선교 방향을 고치고, 그곳으로 가겠다는 의미와 지난 과거를 디딤돌 삼아 도약하겠다는 다짐을 담고 있다. 동시에, ‘어지러운 세계에서의 추방, 다음 세대의 부재 등의 위기를 겪는 지금,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곳에 가겠다.’라는 의지가 담겨 있다.
응용 :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받은 그 시점에서의 세계선교역사를 되돌아 볼 수 있는 부분과 초기 한국교회의 선교역사로 되돌아가서 우리의 마음을 재점검하고, 초심을 회복하자는 접근을 할 수 있고, 우리가 준비하는 10개의 트랙이 새롭게 가야 될 미래지향적 ‘그 곳’으로 접근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였다
- 주제성구 : 에베소서 2장 10절
- 너희는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행위에서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 우리는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번 대회는 선교와 거룩을 시작으로 선교를 명하신 하나님 주신 사명을 다시 점검하고 나아갈 바를 정함에 성경 묵상을 에베소서로 정하였다. 에베소서는 전반부에서 하나님 구원사역의 섭리와 은혜를 말씀하고 후반부에서는 그 은혜 입은 자들의 삶의 모습을 말씀하고 있다. 에베소서 2장 8절~10절은 에베소서를 함축적으로 나타낸 말씀이다.일반적으로 우리는 구원의 은혜인 8절과 9절에 집중하여 이에 감사한 언급은 많지만, 구원의 은혜를 입은 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구원해 주신 이유가 무언지를 말씀하는 10절은 잘 인용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그 은혜를 전하는 목사, 선교사 그리고 장성한 성도는 10절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
10절 말씀을 묵상하면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는 말씀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먼저 말씀한다. 이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심을 받았기에 하나님의 거룩한 존재로 살아야 함을 말씀한다.그리고 구원으로 선택받은 이유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라고 하신다. 이는 하나님께서 피조 세계를 다스릴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하심을 나타내는 존재로 살아야 함을 말씀하는 우리의 존재 이유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나타내는 선교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내가 하는 선교가 아닌 (내부자 선교의 지향점) 하나님의 선교에 순종하여 따라가는 선교, 물질적인 것(서구적 선교)이 아닌 하나님의 방식(비서구권의 하나님의 은혜)대로 성육신(내려놓음과 현지화)의 섭리를 따라가는 제자도를 나타내는 선교가 되어야 한다로 이해할 수 있다.
- 부제
위의 주제어와 함께 프로그램위원회에서 전체 개요를 통해 설명한 아래의 내용을 부제로 사용하고, 네가지 주요 개념들을 잘 이해하도록 사용하기로 결의 하였다.
Rethinking Korean Mission in World Christianity Today and Beyond
“세계기독교 시대에 한국 선교의 이해와 나아갈 길”
1) 선교와 거룩 (Rethinking, Repent)
2) 한국선교와 세계기독교.(Christendom, World Christianity)
3) 남겨진 과제. 발견할 과제 (Rebuild, Revive, New Normal)
4)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최선(Best Practice)
1 기초자료 : NCOWE 프로그램위원회 정리 기록 15페이지
전체주제(안) 세계 기독교 시대의 한국선교의 재고 (Rethinking Korean mission in the World Christianity Today)
– 올 것이 왔다! 한국선교 리셋
– 변화된 세계 기독교 시대에 한국선교를 뒤돌아 보고 내다보기
– 변화된 시대에 한국선교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듣기
– 변화된 시대에 한국선교의 Best Practice 공유하기
KWMA 제8차 NCOWE Pre-Consultation 사전보도자료
KWMA는 2023년 4월 3일 오후 2시-5시30분까지 NCOWE 제1차 Pre-Consultation을 사랑의 교회(오정현 목사 시무)에서 진행한다. 이번 모임에서는 10개의 트랙 리더들이 지난1월 26일 첫 모임을 가진 후 2개월 정도 모임을 가지면서, 트랙 모임을 대면 모임과 줌을 통해 기획하고 준비한 내용들을 서로 발표하고, 4월부터 본격적으로 NCOWE에 등록신청을 한 참여자들과 사전 모임을 어떻게 준비하고 진행하게 될지를 논의하는 자리가 될 예정이다.
NCOWE 프로그램위원회(위원장 : 한철호 선교사)는 이번 NCOWE에서 각 트랙 주제에 따른 전문 사역자들이 트랙리더로 활동하면서, 본 대회에서 직접 트랙을 운영하고, 이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나누면서 한국선교의 미래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안하도록 기획을 했다.
이번 NCOWE의 주요 방향중에 하나가 ‘다양한 선교적 제안과 아이디어를 충분히 같이 듣고 라운드 테이블에서 논의를 하자’는 취지에 따라 각 트랙리더들이 많은 모임들을 통해 하나씩 구체화를 하고 있다.
또한 KWMA 운영이사들이 각 트랙에 협력위원장으로 함께 참여하여, 구체적인 제안들을 계속해서 실행하도록 협력 방안을 구체화 할 예정이다.
이번 프리컨설테이션의 일정은 다음과 같이 진행할 예정이다.
진행 : 정용구 선교사 (KWMA 협동총무)
2:00 – 2:10 인사말과 기도 : 강대흥 선교사 (KWMA 사무총장)
2:10 – 2:30 NCOWE 2023 개요와 방향 : 한철호 선교사 (프로그램위원장/미션파트너스)
2:30 – 3:00 세계기독교에 대한 이해와 적용
(임태순 선교사, GLF, Global Leadership Focus 사역본부장)
3:00 – 3:30 세계기독교에 대한 한국선교의 반응 (토론), 휴식시간 포함
3:30 – 4:40 트랙별 진행사항 발표 및 계획소개(본대회 및 미니포럼 일정 등, 트랙별 7분)
4:40 – 5:10 전체 토론 및 질의응답
5:10 – 5:20 전체 안내 및 진행사항 소개 – 박래득 선교사 (KWMA 사무국장)
5:20 – 5:30 기도팀 소개 및 기도회 – 강갈렙 선교사 (ENN 대표)
진행된 내용은 NCOWE 프로그램위원회(위원장 : 한철호 선교사)는 이번 NCOWE에서 각 트랙 주제에 따른 전문 사역자들이 트랙리더로 활동하면서, 본 대회에서 직접 트랙을 운영하고, 이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나누면서 한국선교의 미래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안하도록 기획을 했다.
이번 NCOWE의 주요 방향중에 하나가 ‘다양한 선교적 제안과 아이디어를 충분히 같이 듣고 라운드 테이블에서 논의를 하자’는 취지에 따라 각 트랙리더들이 많은 모임들을 통해 하나씩 구체화를 하고 있다.
또한 KWMA 운영이사들이 각 트랙에 협력위원장으로 함께 참여하여, 구체적인 제안들을 계속해서 실행하도록 협력 방안을 구체화 할 예정이다.
현재까지 진행된 트랙별 모임 조직 현황은 다음과 같다.
NCOWE 트랙별 조직 현황
프리컨설테이션 이후에 등록을 마친 참가자들 가운데 트랙 희망자들을 각 트랙에 함께 하도록 안내하여, 4월-5월 동안 더 깊게 트랙에서 사전 논의를 하도록 계획을 하였다. 이를 통해 심도 깊은 회의들을 통해 본 대회 기간 전체 참여자들과 함께 공유하고, 구체적인 한국교회의 미래 선교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안하려고 한다.
현재 5월 2일까지 최종 등록을 마친 500명의 트랙 참여 희망 분포는 다음과 같다.
트랙 리더들은 NCOWE 이후에도 계속적인 활동으로 통해 제안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후속 모임도 이어지도록 계획하고 있다.
KWMA는 초청장은 받은 예비 신청자들이 등록비를 입금하여 최종등록자가 되어 각 트랙에 신속하게 연결되어 사전 모임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도록 안내를 진행하고 있다.
| 번호 | 트랙명 | 트랙 리더 | 협력위원장 | KWMA |
| 1 | 디아스포라 | 문창선, 노규석, 홍광표 | 황덕영 | 노성천 |
| 2 | 다음 세대 선교 동원 | 최욥, 김장생, 박성민, 김성희 | 여주봉 | 노성천 |
| 3 | 변화속의 선교단체 | 조샘, 김동화 | 설동주 | 노성천 |
| 4 | 선교적교회로 가는 로드맵 | 오일영, 김충만, 손창남, 윤마태, 이명준 | 김영휘 | 정용구 |
| 5 | 텐트메이킹 & BAM | 이대경, 김기석, 변대현, 이다니엘,
김경일, 이기성, 민홍기, 강평강 |
임경철 | 정용구 |
| 6 | 전방개척 선교 | 주누가(이슬람) 김요한(이슬람) 이용웅(불교)
공갈렙(힌두교) 박미진(힌두교) |
하재삼 | 노성천 |
| 7 | 디지털 세계와 선교 | 박열방, 김승학, 구성모, 전생명,
박 범, 박성준 |
김찬곤 | 정용구 |
| 8 | 현지인 중심의 동반자 선교 | 홍경환,주민호,김동찬, 김광성,
조해룡,노태민 |
박정곤 | 정용구 |
| 9 | 변화하는 여성 선교사 | 조정희, 정승현, 이선이, 황정신, 김귀영,
윤성혜, 이시은, 김미경, 권미미 |
이여백 | 정용구 |
| 10 | 자신학화 | 장창수, 안건상, 남경우, 한종석 | 윤영찬 | 노성천 |
KWMA 제8차 NCOWE Pre-Consultation 행사 후 보도자료
보도자료 1. CBS 뉴스 오요셉 기자. 2023년 4월 4일
한국세계선교협의회, KWMA가 오는 6월 열리는 제8차 제8차 세계선교전략회의, 엔코위(NCOWE, National Consultation On World Evangelization) 준비모임을 갖고 본격적인 준비에 나섰습니다. KWMA는 오늘날 비서구권 교회의 역할이 중요해진 만큼 세계 선교를 위해 다양한 문화권의 기독교 정체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오요셉 기자입니다 .
[기자]
오늘날 서구권 기독교는 크게 쇠퇴한 반면,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 등 비서구권 교회는 크게 성장하면서 선교 지형에도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KWMA는 이런 변화 속에서 선교의 패러다임 역시 총체적인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일방적이고 외부인 중심이었던 기존의 서구 교회의 선교 방식을 넘어 다양한 문화권의 기독교 정체성을 인정하며 내부인 중심의 선교로 나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강대흥 사무총장 / KWMA]
“선교사들이 나가면 마땅히 교회 세우고, 학교 세우고, 병원 세우고, 센터 세우고, 이런 쪽으로 나갔는데 비서구권에서 선교사가 나온다고 했을 때, 인도 선교사가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필리핀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앞으로의 선교는 지금까지 해온 선교 스타일로 가기는 어렵겠다… 향후 한국교회가 어떤 입장을 가지고 비서구권 교회와 연합해서 사역을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합니다.)“
발제자로 나선 임태순 선교사는 “서구의 기독교 전통이 기독교의 기준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각각의 독특한 문화 위에 세워진 다양한 기독교 정체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오늘날 비서구권의 기독교의 부흥은 선교를 통해 서구 기독교가 확장된 것이 아니라, 각각의 문화적 토양 속에서 새로운 정체성의 기독교가 등장하고 성장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단 설명입니다.
특히, “서구 기독교가 크게 쇠락하면서 서구 본토에선 기존의 기독교 이해와 전통이 ‘유럽 부족의 기독교 신앙 전통’에 불과하다는 자기성찰적인 비판도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일종의 모자이크 작품처럼 고유한 정체성을 가진 교회 모습을 인정하면서, 이것들을 연결해 하나를 이루는 것이 궁극적인 선교의 지향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임태순 선교사는 “서구권에선 ‘스웨덴 불교도’말이 어색하게 들리듯이, ‘백인 그리스도인’이란 말이 모순처럼 들리는 날이 올 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오늘날 새로운 형태의 기독교가 일어나고 있는데, 과연 우리가 어떻게 함께하며 나아갈 것인가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임태순 선교사 / GLF 사역본부장]
“각 지역의 기독교는 서구에서 이식된 게 아니라, 복음은 이식됐지만 거기 토양에 맞는 기독교 정체성으로 자랐다, 그리고 이제 그것이 글로벌하게 연결되는 과정 가운데 있다, 그 다양성과 다양한 정체성이 유지되면서 하나를 이루는 것이 교회가 또는 선교가 지향하는 궁극적 방향성이다…”
한편, KWMA는 오는 6월에 열리는 세계선교전략회의에서 디아스포라와 다음세대 선교동원, 현지 중심의 동반자 선교 등 10개의 세부 주제별로 트랙 모임을 만들어 보다 진전된 논의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KWMA 제8차 NCOWE Pre-Consultation 행사 후 보도자료
– 제8차 NCOWE 프리컨설테이션 진행, “서구 크리스텐덤 넘어서야”
보도자료 2. GOOD TV 박건도 기자, 2023년 4월 3일
비서구권 교회가 약진하는 가운데 서구 선교 모델을 답습해 온 한국교회가 선교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8차 세계선교전략회의(이하 NCOWE)을 앞두고 한국세계선교협의회(이하 KWMA, 사무총장 강대흥)는 3일 사랑의교회에서 1차 사전모임을 진행, 새로운 선교 전략을 논의했다. 이날 ‘세계 기독교에 대한 이해와 적용’이라는 주제로 발제한 임태순 아신대학교 교수는 “기독교 세계의 무게 중심이 변화하고 있다”며 “서구교회는 선교지가 되어가고 있는 반면, 비서구 교회는 세계 선교의 주도적인 역할을 해갈 것”이라 밝혔다. 임 교수가 이같이 언급한 배경에는 21세기 들어 주목 받고 있는 세계 신학자와 선교학자의 전망이 자리하고 있다. ‘하나님의 선교’ 저자이자 존 스토트의 후계자로 불리는 크리스토퍼 라이트, 아프리카계 선교학자이자 예일신학대학교 교수 라민 사네 등 저명한 신학자들은 세계선교운동이 더 이상 서구 교회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이제는 비서구 교회를 세계 선교의 동반자로 봐야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들은 지난 20세기 동안 세계 선교를 주도한 서구 중심의 크리스텐덤을 벗어나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에 맞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입장을 꾸준히 제시해왔다. 크리스텐덤이란 313년 콘스탄티노플이 밀라노 칙령을 통해 구축해온 기독교 기반의 국가나 사회를 의미한다. 임태순 교수는 “스웨덴 불교도가 어색하듯이 백인 그리스도인이 어색한 날이 올 것”이라며 “아프리카 기독교가 21세기를 대표하는 기독교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전세계 기독교인 중 아프리카가 차지하는 비율은 27%, 전통적인 기독교 국가로 인식되는 유럽과 북미는 32.7%로 근소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구 변화와 복음화율을 고려할 때 2050년이 되면 아프리카가 38.4%, 유럽과 북미는 23.2%로 크게 역전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 기독교의 변화 속에서 한국교회의 선교 전략이 변화해야한다는 목소리가 함께 제기되고 있다.
임 교수는 “서구 교회가 서구 밖에서 많은 일을 했지만 정작 자신의 교회는 돌보지 못했다”며 “포스트모더니즘, 세속주의 등에 휩싸여 붕괴하고 약화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서구 교회의 선교 모델을 답습한 한국교회 역시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다”며 “한국교회 선교의 방향에 대해 논의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임태순 교수는 오는 6월 진행되는 제8차 NCOWE에서 한국교회 지도자들과 함께 이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을 함께 발전할 계획이다. 강대흥 KWMA 사무총장은 “이번 NCOWE는 선지자적 논의를 해갈 것으로 기대한다”며 “앞으로 한국선교가 걸어갈 길을 이번에 다루게 될 것”으로 밝혔다. 한편, 이번 제8차 NCOWE는 ‘다시, 그곳에서’라는 주제로 강원 평창 알펜시아에서 6월 13일부터 3박 4일간 한국교회 지도자과 함께 새로운 선교 전략을 4년 만에 모색한다.

1. 성경 강해 & 메시지
6월 13일(화) 개회예배 | 이규현 목사 (수영로교회)
제목 : 찬송하리로다
본문말씀 : 에베소서 1장 1-6절
코로나가 우리의 세상을 엄청나게 바꿔 놓았습니다. 그리고 챗GPT를 통해서 보니까 앞으로 한
10년 20년은 상상할 수 없는 변화를 우리가 맡게 되고 또 이 무신론적 또 불신이 가득한 기독교가 코너에 몰려 있는듯한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처해져 있습니다. 여러 가지 상황을 보면 희망적인 요 소들이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에베소에서 바울이 처했던 그 당시 로마가 가장 번성했던 제국의 힘 앞에 또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서 편지를 쓰고 있는 바울은 지금 감옥안에 어떻게 보면 기독교가 아 직 교리화 되지도 않고 체계화되지도 않고 교회가 세워져 있지만 그 시대도 엄청난 역사의 변화의 시 점에 있었다고 본다면 아마 바울이 처했던 입장이 오늘 우리의 상황보다 훨씬 더 열악했던 환경이었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바울이 편지의 핵심구절인 3절에 바울은 ‘찬송하리로다’로 시작을 합니다. 예배소서 앞부 분부터 바울은 찬송으로 시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 속에서 바울은 지금 찬 송으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우리의 일과 중에 찬송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사 역을 시작할 때 찬송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사실 오늘 우리 시대를 살아가다보면 찬송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찬송은 시선이 하나님을 향해 있다는 것이고 서신 초반부터 바울은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금방 염려와 근심과 수심에 갇힐 수밖에 없습니 다.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고정하지 않고 상황으로 옮겨지는 순간부터 우리는 찬송을 잃어버립 니다. 찬송은 그냥 터지는 것이 아닙니다. 논리적이고 의무적인 그런 찬송이 아니라 지금 편지 서신의 내용을 보면 그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찬송이 터지는 겁니다. 뭔가를 목격한 것입니다. 그는 그 안에 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목격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땅에 모든 저주를 풀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복 을 내리시고 그래서 오늘 1장 3절에는 하늘에 속한 복이라고 그랬습니다. 하늘이 열려야 그 복이 땅
에 임하는 것입니다. 하늘은 하나님만이 여시는 것입니다. 그 하늘을 여셔서 하나님이 보내신 것이 바
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모든 민족의 구원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일어난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신적 선택, 이 선택은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일어난 여러분 세상에 일어난 그 어떤 일도 하나님의 주권을 벗어나서 일어난 일은 없습니다. 코로나19도 하나님의 주권 속에 일어났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지금 지구촌에 일어난 각종 사건과 사 고들 그 속에도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와 손길이 움직이고 있는 걸 우리가 보게 됩니다. 그 섭리는 그 주권은 구원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가는 주권 속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위기입니다. 선교도 비상이라고 그럽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이 모든 일들을 통 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멈추지 아니하시고 방해를 받지 않으신다는 그것이 로마서 8장 28절 의 말씀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고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내가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고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 모든 주동 것은 주도권은 하나 님에게 있다는 겁니다. 개인의 구원도, 어떤 민족의 구원도 하나님이 하신다. 구원의 역사는 전적으 로 하나님에게 달려 있다. 오늘 여기 선택의 시점은 뭡니까? 창세의 진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구원은 하나님의 빈틈없는 완벽한 계획안에서 이루어졌다. 어느 것 하나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고, 그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어내시려고 하시는 사건과 연관이 있습니다.
C.S 루이스는 내가 그토록 만나지 않으려는 분에 지칠 줄 모르는 다가오심을 높였습니다. 거부 하려고 해도 거부할 수 없는 손길 이것이 하나님의 선택이고 이는 창세기 전부터 계획된바라고 말 합니다. 한국에 130년 전에 동방의 아주 작은 나라에 복음이 밀고 들어왔습니다. 어떤 선교학자는 1907년에 일어났던 평양 대복음 운동은 독특한 사건이라고 합니다. 한 민족을 완전히 복음으로 흔 들어놓는 도시를 흔들어놓고 민족을 흔들어 놓는 엄청난 복음의 괴력입니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 던 아무도 예측하지도 못했던 불가항력적인 은혜가 이 민족에게 임하시는 것입니다. 곧 창세전에 그 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를 사랑하면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라고 여러분 택하
심의 이유는 분명합니다. ‘새롭게 하심’ 죄로 인하여 완전히 더럽혀진 존재들, 아무 소망이 없는 그 존 재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라고 하는 그런 상태로 돌려놓으시는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그런 회복의 계획이 이 구원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매우 적극적이고 풍성합니다. 새로운 가족 관계 안으로 부르셨습니다. 하 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차이에도 불구
하고 유일하게 하나가 될 수 있는 이게 하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거죠. 그래서 바로 끊
임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 안서 그리스도 안에서를 강조하는 이유 그리스도 외에는 우리를 하 나 되게 하고 우리를 통일되게 하고, 우리는 한 가족으로 묶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 외국인들이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는데 아마 더 빠른 속도로 우리는 여러 나라 민족의 사람 들을 받아들여야 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에 우리가 놓여 있습니다. 문제는 백의민족, 혈통주의를 주장해왔던 한국 사람들에게는 도전입니다. 어떻게 여러 나라 민족과 함께 어울려 살 것인가가 앞으 로 우리나라에 굉장히 중요한 그런 주제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하나님의 어떤 뜻이 있 는 거죠. 여기서 여러분 답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복음입니다. 한국교회는 물질주의다. 이기적이다 폐 쇄적이다. 그런데 여러분 이 세 가지는 복음과 반하는 일들이에요. 여러분 다민족 사회는 교회의 새 로운 도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순간 모든 경계선이 허물어졌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과소평가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선교도 목회도 선교도 하나님이 하시죠. 우리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걸 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베풀 수신 구 원이 얼마나 놀라운지, 그 하나님의 계획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것인지, 그리고 그 구원의 사이즈가 얼마나 풍성한 것인지, 모든 사역이든 첫 번째는 그분의 경이로움에 눈을 뜨는 것입니다. 경이로움에 눈을 뜨는 만큼 감탄은 커지고 찬송은 깊어지고, 바울은 그 사실을 발견한 순간 감옥 속에서 그는 찬송이 터지고 있어 아무런 상황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 인간적으로 보면 아무것도 감사할 것도 없고 아무것도 찬송할 것이 없어 보이는 그 순간에 그는 지금 찬송이 터지고 있습니다. 바울의 심장 을 우리가 간접적으로라도 느낄 수 있다면 아마 우리도 가슴이 뛸 수밖에 없을 겁니다. 여러분 하나 님에게 다가갈수록 우리는 찬양한 터입니다. 찬양을 하는 사람은 어둡지 않습니다. 밝습니다. 찬양은 상황에 의존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택하시고 양자 삼아 주시고 구속하신 그 은혜만으로도 충 찬 양할 이유는 분명하다는 거죠.
요즘 한국교회 안에 패배주의가 만연해 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19를 지나면서 많은 각종 통계 와 수치들을 보면서 우리는 더 절망해야 합니다. 통계를 내고 분석을 하면 할수록 더 절망합니다. 우 리는 그 통계를 믿습니다. 그 통계를 신뢰합니다. 그리고 그 통계 안에 갇혀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통 계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제는 안 된다고 얘기합니다. 바울은 오늘 찬송하리로 바래서 바울의 상황은 오늘 우리보다 훨씬 더 열악합니다.
우리가 찬송하면 그분의 영광이 올라가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의 위상이 더 높아지시는 하나님 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찬송이 필요 없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뭘까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라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아는 게 아니고 그분의 뜻
을 알 뿐만 아니라 그분이 얼마나 선하시니 선하신 분인가를 경험하는 것.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 무엇인가를 알면 찬양이 던집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수록 찬양은 더 깊어 지는 거. 세상을 보면 절망적입니다. 소망 없음을 확인하고 확인합니다. 저는 주일날 저녁에 어떤 한 성도를 만났습니다. 아들의 문제를 가지고 깊은 상담을 만났는데 정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그 성도를 만났는데 대화를 하는데 답이 없더라고요.
마약이 얼마나 많이 퍼졌는지 몰라요. 미국은 지금 사실 그냥 정부가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근데 이제 한국은 멀지 않았어요. 도덕적 타락의 경계선을 넘었어. 교회의 자세를 받아 버려요. 세상에 답이 될 수 없었던 코로나19로 고통하는 이웃의 교회가 답이 되지 못했어. 무엇으로도 메시 지를 주지 못해 소망이 된다. 이 이 절망의 시대에 교회가 소망이라고 하는 이 것을 느낄 만큼 세상에
아무것도 준 게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전도도 지금 힘든 거예요. 여러분 교인들이 겁을 먹습니다.
찬송의 회복입니다. 상황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거죠. 바울이 지금 감옥에서 찬송을 부르고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눈에 띌 만한 어떤 돌출구 돌파구, 무슨 해답이 있는 건 아닙니다. 사 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처럼 오직 성령이 너에게 임하시며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야 방까지 이르러 내 증인들이라고 하는 말씀이 사도행전을 끌고 가는 스토리가 되잖아요.
하나님은 지금도 창세기 전에 당신이 선택하기로 작정된 백성들을 구원해내시는 하나님 하나님 은 나를 골라 구원하셨던 것처럼 130여 년 전에 한국에 선교사들을 보내서 이 숨어 있는 백성들을 끄집어내시고 1907년에 한국 영적인 그런 부흥을 일으키시고 한국 교회가 이 1세기의 중심에 선교 를 위해서 하나님의 동력을 사용해 주도하지만 이 계획은 창세 전에 있었던 우리는 하나님의 기가 막 힌 구원의 드라마를 바라보면서 감탄을 드는 거죠.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일들에 눈을 뜨면 찬양은 저절로 나옵니다. 오늘 일어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눈으로 재해석하는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라는 말은 그냥 살아있는 존재로 계신 분이 아니에요. 그분은 일하시는 하나님이시고요. 그분의 일하심은 구원의 역사이시고, 그 구원의 역사는 실패가 없으시도록 일하시
는 하나님은 성실하신 분이시다.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에게 달려 있는 것이지 하나님 우리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우리 한국교회는 승리주의에 도출되어 있습니다. 한때는 너무너무 우리는 들떠 있었어요.
근데 지금은 패배주의에 젖어 있습니다. 안 된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부정적 생각이 만연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패배주의의 이데올로기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자신감을 잃고 자신의 능 력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도 믿지 않는 여러분 바울의 찬송은 그런 감옥 안에서 자 신의 처지에 절망하거나 거대한 로마 제국의 번영에 기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셨던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비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비전 하나님이 주신 비 전, 마이 비즈니스가 아니라 그분의 비즈니스 저는 매일 아침 새벽 기도 하면서 기도가 길어질 때마 다 깊은 영적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 들어가는 그런 깊은 기도라 길이가 지는 것이 아니라 제 안에 있는 욕망과 싸우는데 그 욕망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 때문에 기도가 길어져요.
사투를 벌이는 거죠. 주님을 위한 목양을 한다고 하지만 내 안에 있는 욕망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번식되고 나를 지배해버리려고 하는 이 무서운 힘을 느끼기 때문에 새벽마다 사투를 벌여야 됩니다. 매일매일 나는 뭘 걱정하는가? 내 목회, 내 목적, 내 비전을 이루려고 하면 걱정이 많습니다. 근데 하나님의 비전,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바라본다면 그분은 그분의 일을 이루시고야 말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걱정을 계속 인간적 비전은 길을 잃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비전은 길을 잃 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모든 상황을 하나님 안에서 재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긍정 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냥 인간적 긍정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보면 새로운 시간 한국 교회
를 어떻게 사용하실지 우리는 기대해야 합니다.
부산에 오래된 메밀맛집이 있습니다. 오래된 건물이고 골목에 있어서 찾기도 힘듭니다. 굉장히 찾 기 어려운 곳인데 점심 때 가면 줄을 섭니다. 이 맛집은 70년 검증된 맛이에요. 70년 동안 망하지 않고 한 가게가 손님들 줄을 세우니까 이게 뭐가 있는 겁니다. 안 망한 거잖아요. 어떤 교회는 몇 년 만에 문 닫았는데 개척교회 없어지는데 말이죠. 교회는 2천년의 검증이 된 곳입니다. 2천년의 기독교 역사 속에 교회는 별별 일을 다 맞았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주님의 교회는 지금도 여전히 강력합니다. 마이 비즈니스는 망할 수 있습니다. 내 야망으로 세워진 교회는 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행하시 는 역사는 실패가 없습니다. 중단도 없습니다. 어쩌면 바울은 감옥 속에서 그것을 본 것입니다. 그의 입술에 찬송이 터진 것은 그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 그가 경험했던 복음, 그 율법주의에 사로잡혀 거 기에 자기의 모든 생명을 들었던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그 순간, 그의 인생이 뒤집어지고 그의 삶이 새로워지면서 그의 생애 전체를 쏟아 부었던 그 복음은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복음입니다.
우리의 비전을 내려놓으시고, 우리의 꿈과 야망대로서, 그분의 기쁘신 뜻대로 창세전부터 예정하 신 바대로 자기의 아들들을 택하시는 그 사역에 우리를 부름 받으시고, 우리가 있는 곳에서 이 진짜 복음, 거짓 복음이 아니라 값싼 복음이 아니라 순수한 복음을 붙잡고 내 삶을 올려드리게 될 때 하나
님의 비즈니스는 하나님의 꿈은 이루어지게 될 것이고,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줄로
믿습니다.
참으로 우리의 출발이 찬송으로부터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온 세상을 통일케 하시려는 하나님 이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온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던 하나님의 그 놀라운 계획을 바라보면서 또 그 안에 우리를 불러주신 것에 감격하고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때, 오늘 우리 안에 있는 패배주의와 절망을 걷어내고, 낙심을 걷어내고 주눅 든 걸 드러내고 당당하게 거침없이 담 대하게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주님을 위해 살아가게 될 때 주님께서 우리를 사용해 주실 줄 로 믿습니다.
6월 13일(화) 메시지 1 | 이찬수 목사 (분당우리교회)
제목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 본문말씀 : 에베소서 1장 7-14절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습관 책에 저는 그 트래비스라는 아이가 목회하는 내내 저에게 굉장히
저를 자각하게 하고 상기시켜주는 그런 역할을 하는데요. 트래비스가 어떤 면에서 저에게 영향을 주 는가 하니까 트래비스라와 또 게런이라는 두 아이에게 똑같이 칼하고 나무토막을 줬습니다. 그래서 이 두 아이가 열심히 나무를 깎았는데, 시간이 다 한참 지나고 나서 보니까 똑같이 칼과 같은 양의 나 무가 주어졌지만 트레비스 앞에는 너무 멋지고 아름다운 배가 만들어져 있었고 개런 앞에는 굉장히
어지러진 나무 조각과 쓰레기가 쌓여 있더라는 겁니다. 이게 어떻게 됐는가 보니까 트레비스는 ‘내가
배를 만들어야 되겠다.’ 뚜렷한 목표 목적을 가지고 있었고 개런은 그게 없었다는 겁니다. 제가 이 에 베소서를 계속 묵상하다가 이 트래비스가 떠올려졌던 이유는 여러분이 다 아시지만 사도 바울도 진 짜 그가 부여받았던 그 선교 사명은 이거는 거의 죽음을 방불케 하는 거 아닙니까? 얼마나 바울이
그 사명을 수행하는 과정이 힘들었던지 고린도후서 1장 8절 9절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아
시아에서 당한 환란을 여러분이 알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힘에 겹게 너무 짓눌려서 마침내 살 희망마 저 잃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이미 죽음을 선고받은 몸이라고 느꼈습니다.” 그 사명 감당하 는 그 일이 선교사에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런 처절한 고백을 하겠습니까.
에베소를 계속 묵상을 하면서 본문도 굉장히 도전이 됐지만 에베소서를 쓴 선교사로서 사도바 울의 모습을 보면서 제가 너무 이해가 안 되고 또 좀 와 닿지가 않아서 생각해보니 저는 개척 21년 동 안 타문화권에 가 있었습니까? 그저 분당에서 교회를 개척했는데도 그만두고 싶은 이런 충동을 셀 수 없이 많이 느꼈습니다. 제가 사역하다가 감옥에 갔습니까? 사도바울은 이런 끔찍한 고난의 과정 을 겪었는데 이분은 왜 이렇게 안 지치시는 건지 의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왜 이렇게 잘 지치지 걸핏하면 지치고 무너지는지 이해가 안됐습니다. 바울은 지쳐도 어떻게 금방 회복이 되는지 또 우리 는 왜 왜 이렇게 슬럼프가 자주 오고 한 번 또 지치면 막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이런 일이 도대 체 뭘까 생각했습니다.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둬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이런 목적으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애를 쓰셨대요. 하나님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
게 하려고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어떻게 애를 쓰셨는지 그 목적하신 바를 12절에서 똑같 이 이야기합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 라 마지막 성령 하나님이 하신 일도 같습니다. 13절 14절에서 성령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다 피력
하시고는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 심이라’ 사도 바울처럼 극심한 고난을 당하고 두들겨 맞고 감옥에 가본 적도 없는데요. 저는 못 견디 겠는 게 자꾸 오해하는 거더라고요.
왜 이렇게 자꾸 오해하지? 이게 목적이 다른 거예요. 목적이 우리 인간의 첫째 목적은 무엇입니 까? 첫째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10장 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또 칼빈도 이런 말 을 했답니다. ‘모든 교리 모든 신앙 모든 믿음의 고백 그 중심은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사도바울하고 저하고 비교를 해보니까 그 초점이 뭐냐 저는 본인한테 있어요. 여러분 잘 아시지만 자기한테 집중하 는 사람은 잘 지쳐요. 나보다 설교 더 잘하는 누가 또 나타났나? 이런 것이 신경 쓰이고 자기에게 집 중할수록 우리 에너지 낭비가 많고 잘 지쳐요. 내가 마음을 담고 있는 그게 상처예요. 누가 여러분 보 고 선교사님이 그렇게 영어를 그렇게 못하시느냐고 그러면 또 엄청 상처가 되실 거예요. 여러분 왜 이 렇게 잘 지치시는지를 점검해 보시는데요. 트레비스 이야기처럼 목표가 없거나 목표가 잘못 설정됐 거나 해요. 하나님이 여러분을 선교사로 왜 부르셨는지 한번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이 그 하인들 보고 그 항아리에 물을 채워라 그러시잖아요. 그날 하인들이 그걸 안 했습니 다. 귀찮아가지고 그래서 물을 안 채우셔서 그럼 예수님이 일을 못하시는 겁니까? 왜 예수님 사건 사 사건건 이런 쓸데도 없는 일인데 너희들이 먹을 걸 줘라. 그래서 그 제자들이 막 온 동네 다니면서 겨 우 구해 갖고 온 게 어린애 도시락이에요. 혹시 선교지에 가서 여러분 주님이 여러분 그 도시락 뽑아 오지 않으면 예수님은 그럼 기적을 못 베푸시는 겁니까? 근데 초점이 잘못됐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선교 사역 잘했다고 막 맨날 자랑하고 다니는 그분이 자기가 그래서 만든 것 가지고 그러면 장정만 5 천 명을 먹이게 된 거냐고요. 항아리에 그 물을 부으라고 그 하인들에게 주님이 시키셨는데 왜 그게 필요했느냐고요.
하나님은요 그냥 골대 앞에 서 있으라 그러시더라고요. 골대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들이 이제 목표가 좀 분명해야 되고요. 그건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수행하는 과정 에서 어떤 이 세상의 풍조에 우리가 놀아나다 보니까 자꾸 그 가시적인 그 숫자 규모 예산 이런 걸로 자기를 평가하기 때문에 이렇게 잘 지치는 거예요. 내가 한 게 없거든요. 그거 안 지치잖아요. 지쳤다
고도 금방 금방 회복이 되잖아요. 그래서 오늘 저는 우리가 두 가지 이제 목표라고 해도 되고요.
첫 번째가 거룩입니다. 거룩 에베소서 1장 4절에 보니까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 사 우리를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제가 이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의 큰 목
표 중에 하나가 거룩하신 그분을 닮은 거룩을 추구하는 자가 된다’는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보니까 우리랑 똑같이 이제 그 규모는 다르지만 똑같이 부름을 받았던 모세가 생각이 나는 거예요. 처음에 주님이 모세를 부르실 때 어디서 부르셨습니까? 출애굽기 3장 2절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 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내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내 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내 발에서 신을 벗어라.’ 여기서 신을 벗는다는 게 뭐 여러 가지로 해석이 되지
만 오늘은 그 신 벗는 것에도 초점을 두지 말고 바로 그 앞에 나오는 니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거 룩한 땅이니 여기다 초점을 맞춰 보자는 씨를 벗는 게 뭐냐 거룩을 추구하는 거잖아요. 한국교회가 이런 부끄러운 조롱을 당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 빠지게 된 건 다른 게 결핍이 아니고요. 거룩의 결핍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왜 그 떨기나무 이게 히브리 명으로 새내라는 단어인데 이 ‘새내’는 연약하 다는 뜻이에요. 왜 하나님이 정말 상상을 초월하시는 놀라우신 그 하나님이 왜 떨기나무로 임재하시 느냐고요. 모세한테 보여주고 싶은 게 뭡니까? 이 떨기나무가 이게 이집트 아카시아 종류의 가시덤불 인데요. 이게 외적으로도 눈에 띈 게 없는 평범한 나무지만 쓰임새도 별로 없는 볼품없는 나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럴 분이세요? 하나님이 그렇게 볼품없는 그런 존재시냐고요. 광야에서 40년이나
허비하고 지금 장인 밑에서 지금 양치질 하고 있는 그 초라한 존재 니가 떨기나무인데 지금 이 떨기 나무가 엄청나게 쓰임을 받고 있듯이 그리고 또 아까 그 신을 벗어라 이 거룩한 땅이다. 하나님 임재 가 드러나면 그게 어떤 땅이든지 거룩한 땅이 되는 겁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주시는 꿈입니다. 꿈 없이 선교하는 건 가장 치명적이잖아요. 여러분 오늘 본
문 에베소서 2장 9절 10절을 보십시오.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오 그의 기뻐하심을 따 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 나오는 통일되게 하다. 그리고 바울이 한 10여 년
선교하는 동안에 일이 터지고 저렇게 터지고 막 그냥 막 우리 같으면 슬럼프에 빠져가지고 더 이상 헤 어 나오지 못하는 상황인데 바울은 왜 지치지 않느냐. 감옥에서 꿈을 꾸기 때문입니다. 내가 감옥에 있느냐 왕국에 있느냐는 중요한 게 아니고 바울은 꿈을 꾸거든요.
통일되게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꿈을 알기 때문에 이 꿈에만 집중하니까 내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도시락 어리의 도시락 몇 개 모았는지 여기에 관심 없는 거 아닙니까? 제가 앞에서 부름 받던 당
시에 모세가 그 떨기나무 같은 존재였다고 제가 이렇게 말씀드렸는데요. 예레미야 17장 6절, 7절을 읽고 제가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예레미야 17장 6절입니다.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주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황야에서 자라는 가시덤 불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소금기가 많아서 사람이 살 수도 없는 땅 메마른 사막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다. 떨기나무 이미지가 광야 소금기 많은 땅 사람이 살지 않는 황량한 땅. 떨기는 나무 같은 내가 하나님을 더 의지해야 되는 거구나. 하나님을 더 의지하면 그게 거 룩이에요. 자꾸 내가 뭘 해보겠다고 되던가요? 거룩을 추구하기로 결정했다는 거는 이 메마른 땅. 아 까 다시 제가 그 끝에 부분을 읽어드릴게요. 그는 황양에서 자라는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소금기가 많아서 사람이 살 수도 없는 땅 메마른 사막에서 살게 될 것 이다. 그러나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다. 선교지 소금기가 많은 땅 같은 곳 아닙 니까? 아무리 아리 애를 써도 어린애 도시락 하나 구할 수 없는 열악한 그곳 아닙니까? 그래서 여러 분은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거 아니냐고요.
수많은 억장이 무너지고 가슴 쓸어내리고 외로워 견딜 수가 없고, 소금기 많은 땅에서 아무리 뭐 를 심어도 열매하나 나오기는커녕 뿌리조차도 제대로 심을 수 없는 그 열악한 땅에서 외로워서 하나 님도 의지하고 고독해서 하나님을 붙잡고 그게 성교라고 생각한다면 이제 더 이상 어린이 도시락 구 하러 다니러 수고하지 마세요. 어차피 그거 재료로 쓰시려고 이러고 부르는 거 아닙니다. 얼마나 의지 하는지를 보는 거잖아요. 얼마나 순종하는지를 하인들이 항아리에 물을 안 붓는다고 마중물이 없으 면 주님은 일을 못하시는 것처럼 주님을 제한하는 게 가장 악한 죄예요. 여러분 열매가 없어도 하나 님 하실 일 다 하세요. 왜 자꾸 우리를 시키느냐고요. 순종을 보고 싶은 거죠. 소금기 많은 땅에 아무 리 심어도 이게 안 되는 걸 뻔히 알지만 그래도 심어라 하시면 내가 신겠습니다. 소금기 많은 땅에 아 무것도 열매가 없다는 거 뻔히 알면서도 주님이 그리 하라 말씀하셨기에 주님 더 의지하며 주님 바라 보며 그렇게 달려갈 때 그것이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장 크고 소중한 열매가 되는 줄 믿으 시기 바랍니다.
6월 14일(수) 성경강해 1 | 정갑신 목사 (예수향남교회)
제목 : 목회성찰적 강해
본문말씀 : 에베소서 1장 15-23절
우리는 현실을 걱정한다. 동시에 찬송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이유에 새롭게 각성하면 된다는
말씀에 격려를 받는다. 하지만, 여전히 애매하고 희망적이지 않다. – 나는 눅 19장을 기억하면서 말씀 을 나누고 싶다. 1세기 초대교회와 20세기 후반의 리디머를 생각한다. – 우리에게 요청되는 핵심은 폐부에 와 닿아 내 존재를 형성하는 ‘복음’에 대한 재발견과, 21세기 영혼들의 가슴에 가 닿도록 그 복음을 보여주고 선포하고 대화하는 여정에 관한 거다.
- 성도들을 위한 기도(중보) 혹은 성도들을 향한 기도(연대) – 중보와 연대로서의 기도
바울의 기도는 분위기를 띄우는 기도가 아니라, 그 기도가 곧 하나님의 현실이라는 걸 아는 기도 였고, 그는 그 기도와 함께 자신의 사역을 완수함으로, 자신의 앎을 확증했다. – 무엇보다 바울은 언 제나 자신을, 기도 가운데 다른 신자들과 기대어 있는 존재로 인식함으로, 영적 네트워크 가운데 다 른 동료들과 더불어 서로를 향하려는 태도를 가졌다. 기도하는 자가 곧 기도를 부탁하는 자여야 함 을 알았던 거다. –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예수께 자신을 던지는 믿음과 모든 성도들을 향한 사랑이 작동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그 믿음과 사랑이 지속되기를 열망 했기 때문에 기도한다. – 15-16절.
하지만 안타까운 건 그 믿음과 사랑의 본질, 그리고 둘 사이의 균형은 언제든 깨지거나 뒤틀릴 수 있다는 거고, 우리가 알듯이 그건 결국 현실이 됐다. – 계시록의 에베소 교회 – 주님을 믿는가 싶 다가 주님을 믿는다고 스스로 확신하는 자신을 믿는 믿음의 분량이 더 커지는 자기 확신적 믿음으로 사랑을 억압하고, 주님으로부터 흐르는 사랑을 표현하는가 싶다가 자신이 그 사랑을 표현하는 존재 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확인하는 일에 몰두하는 값싼 사랑으로 진리를 비트는, 이미 우리 안에도 충 분한 그 이유 때문이었다. 이 은밀한 요소들이 어느 새 내 안에서 작동하는 때는 하나님과 상황을 내 가 웬만큼 안다고 생각할 때다. 내 안에 이미 자리 잡은 전제가 새로운 눈을 막고, 안다는 생각이 알 아가려는 열망을 억압하므로, 성찰이 실종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또 다시 하나님 아버지가 ‘계속하여 주고 계시는’ 지혜와 계시의 영을 통해, 하
나님과 하나님의 마음에 날마다 새롭게 눈을 떠야 한다. -17절 – 안다 하였던 생각을 부끄럽게 하시 는 예리한 말씀을 통해, 내 전제와 경험의 보자기를 찢고 자신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을 더 깊고 새롭 게 알아갈수록, 한 마디로, 황홀한 집착에 빠질수록, 우리는 당신을 믿을 수밖에 없도록 계시하신 하 나님을 다시 신선하게 믿게 되고,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내어주신 하나님을 다시 신선하게 사 랑하게 되어, 그 힘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발견할 수도 있고, 자신에게만 유리했던 틀을 급진적으로 내려놓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통해 하나님을 더 알게 하시고, 더 알게 된 ‘하나님을 아는 지식’ 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려는 건 기이한 계시가 아니라, 밝은 마음의 눈이다 -18절a – 하나님 마음을 알 게 하는 빛이 점점 밝아져 내 마음의 어두움을 물러가게 하는 동안, 하나님이 이미 행하신 일, 곧 복 음의 실체들을 ‘새로운 각성’으로 볼 수 있게 되는 눈이다. 바울은 그 눈을 위해 기도하고, 그 눈으로 봐야할 것들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길을 잃은 것 같은 상황에서도, 이미 이루 신 하나님의 일들과 이미 임한 은혜를 새로운 방식으로 각성할 때, 새로운 눈으로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게 된다. – 모든 설교의 결론은 항상 거기서 거기지만, 이미 주신 그것을 폐부에 가 닿도록 새롭
게 각성시킬 때
- 우리가 서로에게 기대어 있다는 걸 의도적으로 의식하면서, 세상과 교회와 성도들을 향한 우리 기도가 헛되지 않도록 보증하시는 하나님이 이미 행하신 일들이 있다. 네 가지다.
우리에게 요청되는 태도는 하나님이 이미 행하신 이것들을, 개인적으로, 또 학습공동체를 통해
서 날마다 새롭게 반추하고 성찰하고 배우려는 거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 모두는, 언제라도, 어느 날엔가는 어떤 작고 큰 번쩍이는 각성이 나를 사로잡을 것을 기대할 수 있다. 그 네 가지는
1) 소망으로 작동하는 부르심 -18절b-
부르심이 곧 소망이 되는 여부는, 부르신 자의 실체가 결정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영원하신 왕, 만물을 움직이시는 사랑과 능력의 인격적 근원의 부르심이므로, 그것은 그의 영원한 부요하심에 참 여시키려고 결심하신 부르심이다. 따라서 그 부르심에는 이미 인생과 교회와 역사에 대한 긍정적인 소망이 담긴다. 따라서 오늘 그 부르심에 답하려는 우리의 모든 마음과 행동에는 이미, ‘어떤 것도 두 려워할 것 없는’ 소망이 담긴다.
2) 지금 여기서 이미 누리는 배부름의 근원, 곧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 -18절c-
우리의 처절한 한계와 무기력을 배경으로, 이미 충분히 배부르도록 상속받은 영광의 실체를 제
대로 알 때, 주님 안에서 우리 삶이 이미 영원토록 풍성하다는 진실을 날마다 다시 새롭게 각성할 수
있다. 결핍으로 인한 갈망과 죽음의 그림자에 눌린 상태라도, 고개를 들어 그의 이름을 부를 때, 주 께서는 이미 내 현실이 된 배부름의 근원, 곧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에 대한 번쩍이는 각성으로, 다 시 일어서게 하실 수 있다 – 죽고자 하는 자는 살리라 하셨기에 살기 위해 죽으려 하는 초라한 얄궂 음에 빠지고, 또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낮아져야 하리라 하셨기에 높아지려고 낮아지는 위선에 빠지 는 우리가, 기꺼이 죽어도 괜찮은 이유, 아무리 낮아져도 아무 상관없는 이유, 곧 그 기업의 영광의 풍 성함을 다시 새롭게 장착하여 배부르게 하시는 거다.
3) 그의 힘의 능력이 우리의 능력으로 스며들게 하는 믿음 -19절–
우리가 해 낼 수 없다는 걸 아시면서도 ‘하라~’ 명령하심으로, 해낼 수 없는 자신의 무기력함에 대한 충분한 혹은 객관적인 이유보다, ‘하라 하신 창조자 왕의 말씀’이 더 크고 위대하고 똑똑하다는 걸 인식하여, 순종하려 하는 자로 하여금 결국에는 해 내게 하시는 주님을 알게 하신다. 그 믿음의 순종은 곧, 딸의 현실을 살고 있는 내가, 하늘의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나에게 명령하는 여정 – ‘내 영 혼아~’ 의 여정이다. 하나님의 힘의 능력은 그렇게 우리의 능력으로 스며든다.
4) 보이지 않는 믿음의 세계가 우리의 참 현실이 되게 하시는 통치, 곧 참 왕이신 그리스도의 현재 적이고 현실적인 통치’ -20-22절 –
우리 삶에 작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확실한 이유는, 그것이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죽으
심과 부활과 승천 안에서, 완전한 성취를 뚜렷이 이루었고, 그 이루신 성취가 날마다 오늘을 살아가 고 있는 우리의 현존과 현실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우리의 현존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통 해 이미 이루신 일들에 대한 간증과 이루실 일에 대한 약속이 담긴다. – 이루심에 대한 간증과 이루 실 일에 대한 약속이 날마다 내 현실이 되게 하시는 왕은, 교회를 통한 통치로 그 일들을 이루신다.
- 그리하여 교회는 하나님이 이미 행하신 일 위에서, 앞으로 행하실 일에 참여하도록, 매우 유 니크하게 선택된 주님의 몸이다 –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는, 특정 전통, 특정 신학적 체계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자신의머리시라는 걸 ‘오늘 여기서 새롭게 실천적으로 확신하는’ 교회들 안에서 친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의 충만으로 존재하는 이야기>를 펼치신다. – 23절.
대 전제 : 22절(머리)과 23절(몸)을 이어서 –
과연 새로운 선택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가장 오래된 선택으로부터 시작해야만 한다는 걸 우리 는 느낀다. – 새계명은 곧 옛계명이고, 옛계명이 우리의 존재를 새롭게 통과하는 것을 통해서만 우리 는 그 계명이 어떻게 우리 안과 밖에 가득한 옛 것들을 소멸시키는 새 계명이 되는지를 알게 된다. 우
리 자신의 기질적, 문화적, 시대적 갇힘과 전제들을 내려놓는 동시에, 자신에 대한 정직한 발견과 더
불어, 머리이신 그리스도로부터 듣고 그리스도의 몸으로 존재하려고 대답하는 신자와 공동체, 곧 < 질문과 들음과 급진적인 대답의 신자 및 공동체>를 형성하는 여정에서 세상은 어느새 신자와 교회 에 대하여, 예수와 복음에 관해 묻게 될 것이다 – 질문하게 하는 존재!
1) 그의 몸
예수께서 교회를 이 땅에 자기 몸으로 남기셨다는 사실이, 바울의 표현을 넘어 그리스도 자신의 뜻이라면, 교회는 그리스도를 볼 수 없는 이 땅에서 실제로 그를 보여줄 수 있는 존재로 부름 받은 거 다. 그렇다면, 교회는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여주는 방식으로 존재해야 한다. 그 존재됨은 무엇보다, 머리이신 그리스도로부터 ‘실천적으로 듣는 것’으로 형성된다. 그리고 진실로 그럴 수 있다면,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존재하셨던 방식을 따르게 된다. 곧 이 땅의 가치와 욕망을 따라 움켜쥐는 방 식으로 비대하려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뜻을 좇아 그리스도의 부요하심 안에서 자라고, 자기를 깨뜨 려 생명을 낳아 그 생명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자립체가 되어, 생명의 역사가 온 땅으로 확장되는 일에 급진적으로 순종한다. 결국, 사회 종교적 인종적 차별 없이, 새 백성을 낳으시는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기 위해, 기꺼이 자기 몸 깨뜨리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그의 몸’이 되는 거다 – 분립개척
2) 만물 안에 있는 그의 몸
- ‘그리스도안에서’가‘그리스도를 통하여’일 수 있듯이, ‘만물 안에서’는 ‘만물을 통하여’라 할 수 있다. ‘만물을 통하여’라 함은, 음식으로부터 맛을 분리할 수 없듯, 만물로부터 만물에 담긴 선하 신 뜻을 분리할 수 없다는 거다. 만물 안에서는 만물 위에서가 아니다. 곧 만물을 이용하여 형이상학 적 원형을 추구하는 게 아니다. 만물 아래서도 아니다. 곧, 만물에 파묻히는 것도 아니다. 만물 위에 계신 이의 위임받은 청지기로, 만물에 담긴 뜻을 자세히 발견하고 제자리로 돌려 고양하는 일을 위 해 그리스도께 귀 기울여 뛰어드는 자가 되는 거다.
- 이 땅 모든 피조물은 그리스도를 동시적으로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몸으로는 아니다. 따라서 이 땅 모든 피조물이 그리스도를 몸으로 만날 수 있도록(몸을 맞대고, 손을 잡고, 같은 공간에서 시 선을 교환하고, 상대의 숨결을 느끼는 동안, 몸으로 전해지는 복음이 가능하도록) 주님께서는 당신 의 몸을 온 땅에 세우셨다. 따라서 신자 각 자는 홀로 또 함께 그의 몸이 되어, 있게 하신 자리에서 자 기 존재와 삶을 통해,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존재로 부름 받았다 – 교회로 하여금 만물 안에 거하라 하시는건,교회를 거기에 있게 하신 뜻을 따라, ‘그 마을 그 도시’에서,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신실한 그의 몸으로 존재하는, 보편교회의 얼굴과 손발이 되라는 말씀이다 – 선교사 가려할 때 개척 / 한국 교회를 염려하지 말라 V 복음과 도시
3)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의 충만으로 존재하는 그의 몸
우리는 만물에 이미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충만하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뜻이, 만물을 섬 겨야 할 우리의 ‘지극히 강렬한 자기중심성’으로 크게 훼손되었고, 하나님의 계획과 그 수행하심에 제 대로 참여해야 할 교회의 행동들은 여전히 유보되거나 포기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따라서 교 회는 만물(사람, 가정, 교회, 상호관계, 각종 공동체들과 기관들, 세대, 문화, 국가, 자연과 온갖 질서 들)안에 이미 심겨져 있는 하나님의 선한 뜻을, 말씀과 현실에 대한 성찰로 다시 발견하고, 그 뜻 이루 시는 하나님의 일에 기꺼이 참여하기 위해, 항상 질문하고 기다리고, 뜻이 알려졌을 때는 급진적으로 뛰어드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거기에’ 존재해야 한다. 교회는 만물의 존재의 미들을 제자리로 돌려 회복시키시려는 하나님의 샬롬사역에 참여하도록 부르심 받고 있다 – 복음기도고백 / 복음의 신자
- 개인적 결론 – 보편교회를 향한 전망은 교회로 존재하는 개별 신자로부터 시작된다.
김영한의 종말적 낙관주의 V 손봉호의 선지자적 비관주의 – 구조문제의 개인화 – 변화된 개인이 어야만, 변화시키는 복음을 통과시킨 개인이어야만 구조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있다
데이빗 보쉬가 <길의 영성>에서 인용한, 핸드릭 크래머가 <비기독교 세계에서의 기독교 메시지> 라는 책에서 말한 게 의미 깊다 – (기독교의 메시지가 비기독교 세계에 접촉할 때) 오직 하나의 접촉 점만 있고 그 접촉점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 하나의 접촉점은 바로 선교사의 성품과 태도다. 똑 같 은 이야기도 ‘누가’ 말했느냐에 따라 의미와 깊이와 전달되는 깊이가 달라진다. 메시지는 바로 그 존 재를 통해 전달된다.
결국, 우리는 밝은 눈으로 복음을 성찰하면서, 이미 완전하게 주어진 부르심의 소망, 기업의 풍성, 내 능력으로 스며드는 그의 능력, 왕의 통치의 현재성을 날마다, 새 마음으로, 말씀을 통해, 나와 너 의 관계와 소통과 학습을 통해 성찰하는 존재로 자라가야 한다. 존재를 형성하는 세 요소, 타고남-빚 어짐-하나님의 예외적인 개입을 의도적으로 의지적으로 마음에 담고 성찰하는 거다. 하나님의 Great Narrative의 전망에서, 그리고 복음의 현재적 현실성 위에서, 내가 어떤 존재로 빚어졌는지를 정직하 고 성실하게 발견-인정하고, 나에게는 하나님의 예외적인 개입하심이 이미 충분하다는 사실을 새롭 게 각성하고, 그리하여 오늘 내가 어떻게 빚어지고 있는지를 곰곰히 반추하는 존재가 되는 거다. 곧 자신학적 성찰이 날마다 계속되는 존재로 서는 거다. 다만, 자신학을 이렇게 정의할 때 그렇다 – 자신 학은 새롭고 신선한 주체적 신학을 추구하려는 표현이 아니라, 자기중심적으로 왜곡된 본성의 비늘 이 벗겨지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려는 열망을 가진 한 유니크한 개별자가, 자신에게 부여된 기질과 인격과 언어와 문화의 창으로, 타자의 대등성을 충분히 헤아리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 의 사건과 말씀이 형성한 신자와 교회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몸부림이다.
결국, 세계와 보편교회를 향하기 전, 세계와 보편교회를 보는 자신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 – 우
리는 세상을 바꾸고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존재가 아니라, 변화시키는 복음을 알아가고, 그 복음이 우리를 통과하도록 내어드리는 동안, 복음 안에서 변화되어가는 자로, 세상 안에서, 세상과 함께 있 는 존재다. 변화는 복음의 능력이고, 복음을 전하는 자의 능력은 복음을 전하는 거다. 그리하여 우리 는 변화시키는 자가 되려는 ‘무의식적 자만’의 자리, 곧 복음을 전하는 자신을 전하는 자리에서 내려 와, ‘변화시키는 복음’을 전하는 자로 서기 위해, 내가 복음을 실천적으로 알고자 하는 ‘복음적 존재’ 인지를, 자신에게 계속해서 물어야 하고, 이를 위해 건강한 학습공동체를 통해 자신을 지속적으로 비추어 볼 수 있어야 한다.
6월 14일(수) 메시지 2 | 이재훈 목사 (온누리교회)
제목 : 한국선교와 세계 기독교 본문말씀 : 에베소서 2장 1-10절
오늘 본문 내용 에베소서 2장 1절에서 10절은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그리스도 밖에 있는 인간의
상태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상태인데, 이것이 교회의 선교, 또 이번 컨퍼런스의 주제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라고 제가 생각하는 가운데 떠오른 책 제목이 바로 이 교회 너머의 교회예요. 어떤 교회로서 존재해야 될 것인가를 북미 대륙의 교회들이 지금 급격하게 와해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선교 적 교회로 존재해야 되는가라는 심각한 고민을 또 missional network이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선교 적 교회론을 기초로 해서 미국적 상황에서 적용하고 있는 아주 소중한 고민이 담긴 그런 책이라고 생 각을 합니다.
알렌 교수님이 지금 북미교회의 상황이 급속도로 와해되고 있는 수준인데 자신은 이것을 기쁜 소식이라고 생각을 한다라고 합니다. 아마 이 부분 때문에 많은 공격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교회가 붕괴되고 있는 것 자체를 기뻐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적으로 보면 교회가 어떤 기득권화 조직적으로 경직화되고 본래의 사명을 이뤄가서 교회의 본질로부터 떠나고 있는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새롭게 하시기 위해서 이렇게 교회가 와해되는 현상을 허락하신다. 라는 것을 역 사적인 안목에서 근거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콘스탄트 황제 때 로마 때 국교가 공인되면서 교회가 정치권력과 거의 하나가 되면서 교회가 더 이상 선교에 소명감을 느끼지 못했을 때 사막의 수 도 운동 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5-8세기를 거치면서 교회가 교권화, 조직화 그리고 기성화 될 때 끊임없는 선교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이 알렌 락스버러 교수의 초점은 이렇게 교회들이 와해 되고 있는 이 자리가 믿음의 눈으로 볼 때는 희망의 자리이고 기회이다. 성령님께서 교회를 새롭게 하시는 특별히 선교적 교회를 일으키시는 새로운 기회다. 왜 ? 교회는 절대로 역사적으로 소멸되지 않을 것이다. 교회는 역사 속에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믿음 하에서 선교적 교회가 이일어난다 라는 소망을 우리가 이런 현상을 통해서 바라봐야 됩니다.
오늘 이 시대에 교회가 도덕적 위기, 또 선교적 위기를 겪으면서 교회가 더 사회적으로 선한 일을 해야 된다라는 그러한 평가가 있습니다. 동의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역사적으로 존재해 왔던 것이 착
한 일을 많이 했기 때문인가 도리어 교회 역사를 보면 어두운 면이 더 많았고 또 사회 속에 부작용이 되었던 때가 더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십자군 전쟁부터 시작을 해서 교회가 사회 속에 선한 영향력 보다는 오히려 좋지 않은 그림자의 모습도 많이 보여줬지만, 왜 교회가 존속되었을까? 그것은 교회에 맡겨진 하나님 나라의 복음 때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에베소서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교회의 본질을 선교적 관점에서 다시 우리가 re-thinking 다시 생각하고 또 교회의 지금 현실을
넘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을 우리가 이 자리를 통해서 함께 생각하는 자리가 되기를 원 합니다.
교회 위축이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거라면 선교적 교회가 더 많이 일어나야 되고 더 개척돼야 되 고, 또 선교사가 더 파손될 수 있도록 더 신실하게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교회가 관심을 다시 기울 여야 되는 시점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에베소서 2장의 표현대로 말하면 교회 너머의 교회는 어떤 교 회인가? 2장 7절의 말씀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이 은혜의 풍성함을 나타내는 교회, 교회 너머의 교 회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선교적이라는 표현을 다른 말로 여러 단어로 표현할 수 있지만, 에베소서 2장의 표현대로 하려면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사랑과 그 풍성하신 긍휼과 그 풍성하신 은혜를 여러 세대에 나타내는 교회, 그것이 선교적 교회의 모습입니다. 이미 7절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우리가 구속 죄 사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또 18절 19절에서도 성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유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우리를 위해 베푸신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권능이 어떤지 알게 하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이 풍성하신 긍휼과 풍성하신 은혜, 그로 인하여 교회가 존재할 수 있게 된 겁니다. 교회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시작되거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풍성하신 하나님의 긍휼과 풍성하신 은혜로 존재하게 되 었다는 겁니다.
긍휼과 은혜의 차이를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긍휼 버릇이라는 것은 우리가 마땅히 받아 야 될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않게 되는 것. 이것이 긍휼이고, 우리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임에도 불구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베푸시는 은총을 받는 것을 가리켜 은혜라고 말합니다. 이 순서가 또한 중요합 니다. 우리가 만일 긍휼하심을 먼저 얻지 못한다면 은혜 받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은혜가 임하려면 먼저 마땅히 받아야 될 하나님의 진노 음을 받지 않게 되는 이 그 비를 먼저 받아야 하고, 그래서 우 리는 자격 없는 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자녀 된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에 함께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크고 풍성한지를 체험한 이들의 공동체,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고백 속에 나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풍성한지를 고백하는 이들이, 그리고 그런 고백
이 가득한 이들이 이끄는 그런 공동체, 그런 교회는 반드시 선교적 교회로 향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2장 1-10절의 말씀을 보면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놀랍게도 문장이 딱 두 문장입니다. 1-7절까지가 한 문장으로 연결되어 있고, 8절에서 10절이 또 한 문장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문장을 끊을 수 없을 만큼 계속해서 이어져 갈 수밖에 없는 것. 이것은 문법 실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그 하나님의 풍성하신 긍휼과 은혜에 압도되어서 문장의 마침표를 끊을 수 없이 우 리가 그리스도 밖에 있었던 상태, 허물과제로 죽어 진노의 자녀일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 그 크신 사 랑으로 사랑의 자녀가 되고, 허물가재로 죽었던 우리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림을 받게 되고, 사단과 육신의 욕심을 따라 방탄하게 살던 우리들이 성령을 따라 살게 된 이 놀라운 변화, 그 하나님 의 풍성하신 긍휼과 은혜로 인하여 압도되어 이것을 한 문장으로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방법은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시킴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셨다라고 고백합 니다. 5절에 보면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라고 말하고, 6절에 보면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신 우리를 함께 일으키셔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라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6장에 보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 우리의 구원을 설명합니다. 로마서에서는 그리 스도의 죽으심과 연합한 것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연합해 세례를 받은 우리 가 죄에서 자유케 되는,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의 옛 사람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경험하는 이 구원에 의롭게 되고 거룩하게 되는 그 측면을 로마서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연합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죽음과 연합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물론 함께 부활한다는 언급도 있지만 많은 불량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연합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에베소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한 구원은 죽음은 전제로 하고, 함께 살리시는 이 부활부터 시 작한다는 것이 중요한 특징입니다. 그리고 로마서에는 언급되지 않은 부활부터 시작을 해서 함께 일 으키심을 받고 함께 하늘에 앉으신바 되었다. 시작이 부활이고 현재의 상태를 함께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하여 하늘에 앉힌바 된 이들이다. 강조점이 다릅니다. 또 로마서에는 그리스도와 연합도 부활부 터 전부 미래 시대로 선명합니다.
특별히 사도바울의 서신서에서 바울의 이 그리스도와 연합, 사상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이 우 리를 다시 살리셨다라는 이 메시지를 줌에 있어서 로마서에서는 죽음과의 연합을 강조했다며, 에베 소에서는 이 부활 이후를 강조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에베소서에서 보여주고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위치를 우리에게 설명하기 위해서 부활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외면하 는 게 아니라 전제로 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뻐하며 함께 공동체를 이룬 우리들이 함께 살아나는
정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승천과도 연합했고 하늘에 앉힌 바가 된 공동체라는 것. 이것을 그리스도
의 몸된 교회론으로 설명하였습니다.
교회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교회가 품는 비전은 현재에서 미래를 보는 비전이 아닙니다. 도리어 미래에서 현재를 보는 것.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오심으로써 우리가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듯이, 장차 온전히 임할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임함으로 우리가 그 나라에 들어 간 것은 하늘에 앉힌 바가 된 성도들이 이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을 우리에게 가져다주기 때문 이죠. 우리 세상의 비전은 현재에서 내가 미래에 어떤 것이 될까 어떤 사람이 될까 그것을 비전이라고 말하지만, 성경적인 비전은 미래에서 현재를 보는 것입니다. 교회의 비전은 하늘에 앉힌 바가 된 이 들이 이 땅의 일들을 바라보는, 그것은 이 땅의 일에서 도피하고 외면하고 무관심하다는 것이 아니 라 이 땅에 일어난 모든 일들을 해석할 때 우리는 하늘에 앉힌 바가 된 이들로서 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진정한 선교적 관점이라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서 일 어날 모든 일들, 그 일들을 통해서 이 세상을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증인 된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것 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들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허물과지로 죽었 던 이들이 함께 살리심을 받은 이 구원의 축복은 반드시 선교적 공동체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말 씀을 주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의 구원만이 아니라 하늘에 앉은 바가 된 이들이기에 이제 우리가 이 세상을 바라보고 종말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이런 지각을 만약 잃어버리면 교회의 1차적 의 무는 속한 교인들을 돌보는 것 이상을 넘어가기 어렵습니다. 교회 너머의 사람들을 바라보기 힘듭니 다. 교회 밖의 사람들을 바라볼 때 어떻게하면 교회 안으로 데려올까만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목회 의 개념이 성도들이 수동적으로 어떻게 하면 은혜 받게 할까 거기에 머무르게 되는 거거든요. 이것은 오늘 본문에 근거하면 온전한 구원의 개념이 아니다. 온전한 교회의 개념도 아니다.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살리심을 받고 함께 일으키심을 받고, 함께 하늘에 앉힌 바가 된 공동체라는 것을 분명 히 인식할 수 있다면 그런 교회는 절대로 내향적이 될 수 없다. 자기들만의 공동체로 머물 수가 없다. 다가오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며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최우선순위가 될 수밖에 없다.
선교가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불타오르지 않는 것은 불이 아니듯이 타오르지 않은 것은 불이 아니듯이 선교에 헌신하지 않은 교회는 교회일 수가 없다라는 말처럼 그렇게 선교적 책임을 다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목회를 하면서 여러 가지 교회 안에 들려오는 소식 우리 선교사님 들이 복음을 전할 때 이 교회의 모습을 통해서 얼마나 그 선교의 걸림돌이 되는지를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시기에 교회가 어떻게 교회 너머의 교회가 될 수 있을까?
한 가지 제가 목회하면서 여러 경험이 있지만 저희 교회 내 한 공동체에 일어난 일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강남에 있는 한 공동체인데 대한민국의 중심 중의 중심에서 전문인들이 모여서 잘 깨끗하 게 잘 살아가는 삶인데 그분들이 이제 아시아에 있는 어느 섬에 단기 선교를 한 15 정도 가정이 이렇 게 자녀들과 함께 단기 선교를 갔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의 표정과 모습에서 예전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뭔가 달라진 느낌을 제가 받았어요.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뭔가 은혜로워졌는가? 충만해 졌는가? 를 물었을 때 항공사의 착오로 이들이 붙인 짐이 다 모든 곳으로 가버린 거예요. 그래서 그 무더운 여름에 그분들이 가벼운 짐 외에는 아무것도 없이 일주일을 거기서 생존해야만 했던 거죠.
원주민과 같은 생활을 생애 처음으로 그 현장에서 하면서 이분들은 선교사님들을 생각하게 되고 자 신들의 살아온 삶을 반성하게 되고, 성경 말씀이 다시 읽어지고 그들의 예배가 새로워지고 공동체가 새로워지고 말씀을 듣는 태도가 달라진 것 단기 선교의 축복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분들이 신앙이 어느 단계에 있든지 이렇게 자신을 넘어서는 공동체를 넘어서는 그런 선교적 체험이 계속해서 일어 나야 한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좌편에 있는 행위를 오른쪽으로 보내도 같은 등식이 성립이 되기 때문에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에게서 나타나는 마땅한 행위, 선한 일,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통해 이 선 한 일은 무엇인가? 복음이 온 세상에 전해지는 일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오래전에 짐 콜린스라는 분이
스탠포드 대학의 분이 ‘Good, Great’이라는 책을 써서 교회까지 열풍이 불었습니다. 이제 좋은 교회 를 넘어 위대한 교회가 되기를 꿈꾸는 이것이 과연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할까 오히려 그 단어를 바꿔
야 되지 않을까? ‘Great, Good’ 위대해 지려기보다 선한 교회가 되는 것 하나님의 복음 증거에 착실하 게 성실하게 순종하는 이 착한 일, 선한 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교회 너머의 교회가 되기를 추구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구원받은 공동체로서의 합당한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오늘 이 시대 한국교회가 또 한국교회의 선교가 교회 너머의 교회가 되 기 위해서 반드시 우리가 회복해야 될 것. 교회가 선교적 영성을 회복하는 교회가 선교회와 다름없 이 움직여지는 거 정반대로 우리 선교 단체들은 교회 공동체로서의 모습을 회복하는 거 교회는 선교 회적인 모습을 회복하고 선교회는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서로 회복해 갈 때 이 땅에서 하늘에 앉힌 바됨 공동체로서 우리가 선교적 공동체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6월 15일(목) 성경강해 2 | 주승중 목사 (주안교회)
제목 : 담을 허무는 삶을 살라 본문말씀 : 에베소서 2장 11-22절
- 1. 들어가는 말: 십자가는 막힌 담을 허문 사건
(4개의 장벽에 대한 사진들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영상)
우리는 방금 서독과 동독 사이에 만들어졌던 베를린 장벽, 남북한의 휴전선 장벽, 그리고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세운 트럼프의 장벽, 그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세워진 장벽에 대한 사진 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1989년 11월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역사적인 장면을 짧은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민족을 가로막고 있는 저 휴전선의 장벽도 속히 저렇게 무너져 내리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인류의 역사는 서로 갈등하고 싸우면서 계속해서 담을 쌓는 역사였는데, 그 담을 결정적으로 무너뜨린 가장 의미 있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그 사건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그 사건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사건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우주적인 사건이요, 인류 역 사상 전무후무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눈치를 채셨겠지만, 그 사건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십자가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로 인하여 막힌 담을 허물어버리신 사건입니다.
- 본문의 배경
예수님 당시에 예루살렘 성전 안에는 몇 개의 벽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벽 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의 넘을 수 없는 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담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예루살렘 성전 뜰 안에 있었습니다. 바울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여러 개의 뜰 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성전 안의 뜰 사진). 성전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뜰은 제사장의 뜰이었습니 다. 이곳은 오직 제사장 지파인 레위 족속 남자들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은 유대 남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이스라엘의 뜰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유대 여인들이 들어갈 수 있는 여인 들의 뜰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전의 제일 외곽에 위치한 뜰이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이방인의 뜰이
었습니다.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도 들어갈 수 있었던 이 뜰은 그 당시 소외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바깥뜰은 유대인들만 들어갈 수 있는 안뜰과 구별하기 위하여 약 1.5m 정도의 높은 벽 을 쌓아서 분리시켜 놓았기 때문입니다(담장을 친 사진).
유대의 역사가 요세푸스(Jesephus)에 의하면 유대인들과 이방인을 나누는 이 벽에는 일정한 간 격을 두고 경고문이 새겨져 있었는데, 유대인들만 출입이 허락된 성전 구내에 침입하는 이방인은 누 구든지 사형에 처한다는 경고문이었다고 합니다(경고문사진).
지금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바울은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을 통하여 이 담 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야기 시키는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행전 21장 27-31을 보면, 바울이 이방 인들의 교회가 모아 준 구제헌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성전 안으로 들어갔다가 분노한 유대 군중에 의해서 몰매를 맞아 죽을 뻔했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때 일부 유대인들이 바울이 드로비모라는 에베소 사람(이방인)을 데리고 함께 성전 구내에 들어 갔다고 선동을 하였고, 그 결과 유대인들이 몰려 들어 바울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렇게 그 당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에 있던 담은 눈에 보이는 1.5m 높이의 담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거룩한 백성이라는 착각
과 교만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래서 유대인을 제외한 모든 이방인들은 바울의 표현대로 라면 “그리 스도 밖”에 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들”이요, “약속의 언약에 대해서 외인들”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는 사람들”이요, “하나님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엡 2:12). 이방인들에 대한 이런 유대인들 의 높은 편견과 교만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성전 안에 있던 이방인의 뜰을 둘러치고 있는 담벼
락이었던 것입니다.
-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죄악의 담을 허시려고 오신 예수님
그런데 오늘 에베소 본문에서 바울은 예수님께서 바로 이 담벼락을 허물러 오셨다고 말씀합니 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 고”(엡 2:14). 그럼 여기서 막힌 담은 무엇입니까?
일차적으로는 에베소 교회에 있던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거대한 담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 은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거룩한 백성이라는 착각과 교만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 당 시 유대인들은 지구상에는 오직 두 백성이 있는데, 하나는 유대인이고, 다른 하나는 이방인이라고 했 습니다. 유대인은 육체적으로는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언약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선택받은 선민이었 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다 이방인인데, 이방인은 지옥의 뗄감에 지나지 않는 다고 했습니다. 이 유대인을 제외한 모든 이방인들은 본문의 바울의 표현대로라면 “그리스도 밖”에 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들”이요, “약속의 언약에 대해서 외인들”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는
사람들”이요, “하나님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엡 2:12).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막
힌 담을 허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허무신 담벼락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의 혈통적, 민족적, 문화적, 종교 적 담벼락만이 아니었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2천년 전에 온 인류와 하나님 사이에 우리 의 죄로 말미암아 세워진 죄악의 담벼락도 허물려고 오셨고, 당신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 죄 악의 담이 무너지게 만드셨다는 사실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심으 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로 인하여 막혀 있던 담을 허무셨습니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예수 그리 스도를 믿고 고백하는 자들은 언제나 담대하게 하나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시온의 대로를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바로 이 사실을 히브리 기자는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그렇습니다. 평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원수 된 관계 에 있었던 온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에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죄악의 담을 허시고,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본문 16절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 시고”(엡 2:16).
여기서 “화목하게 하다”(아포카탈락세)라는 단어는 “완성”(아포)과 “화해하다”(카탈랏소)의 합성 어로 “완전히 화해하다” 또는 “이전의 조화로운 상태로 되돌리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단어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과거에 존재했던 원래의 조화로운 상태로 되돌린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생각해보면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 있었을 때에는 인간은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완전 한 조화로운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범죄함으로 화목(조화로운 관계)이 깨어진 이후 죄 와 불순종으로 인하여 인간은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롬 5장 10절 에서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라고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베소 본문에서는 14절과 16절에 두 번씩이나 “원수된 것”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범죄 한 이후로 모 든 인간은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인간들은 하나님과의 화목을 원하지도 않았습 니다. 인간들은 계속해서 바벨탑을 쌓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간의 불순종과 반항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시기를 멈추지 아니하시고, 마침내 당신의 때가 되어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들과의 화목을 이루시려 고 보내주셨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갈 4:4).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단번에 화목제물이 되심으로(롬 3:25 “이 예수를 하 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놓였 던 죄악의 담을 허물어 버리셨고,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원래 화목했던 관계로 다시 회복시켜 주
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전하여 주셨습니다. 여기 본문 17절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 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라는 말씀에서 “먼데 있는 너희” 는 이방인들을 의미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은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평안”을 전하셨는데, 여기 “평안”은 “에이레네”로 하나님과의 화목으로부터 오는 “영혼의 평강”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평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로 나아간 사람은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 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십자가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 를 가로 막는 죄악의 담을 허시므로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우리들을 화목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리고 우리 모두의 심령에 참된 평안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그것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노 래합니다.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 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 다”(엡 2:16-17)고 말입니다. 저는 바라기는 우리 선교사님들의 삶과 가정 속에 그리고 선교의 현장에 이런 놀라운 주님의 평안이 충만하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 선교적 삶이란 담을 허무는 삶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화평”이신 예수님, 온 인류가 쌓은 죄악의 담을 허무려고 오신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인 우리들에게 주어진 사명은 무엇입니까? 다시 말해서 이전에는 멀리 있던 우리들을 그리스도의 피로 용서하시고, 특별히 선교사로, 사역자로 부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을 주님께 서는 바울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 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 니라”(고후 5:18-19)
한 마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즉 화목의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화목하게 하는 직분”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화목의 복음을 전하는 삶,” 다시 말해서 우리들도 예수님처
럼 담을 허무는 선교적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담이 세워져 있습니다. 미국과 멕시코, 이스라엘 과 팔레스타인의 국경에 세워져 있는 담들처럼, 국가와 국가 간의 편견과 차별의 담이 있습니다. 21세 기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이데올로기의 담벼락과, 오늘 대한민국 사회에 존 재하고 있는 소위 좌파(촛불 세력)와 우파(태극기 세력)의 담벼락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회적 신분의 차이에서 오는 보이지 않는 벽과 인종이 다르다고 하여 무시하고 멸 시하는 인종차별의 벽은 우리 모두를 계속해서 분리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화목케 하는 사역을 통하여 세워진 교회들조차도, 여러 교파 와 교단으로 갈라져, 교파주의 벽을 쌓고, 교파가 다르면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거나 무시하기도 합니 다. 그리고 로마 천주교회와 일부 개신교회에서조차 아직도 성직자들과 평신도를 구별하는 성직자 주의의 담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또한 안타깝게도 지금 한국교회는 내부적으로 많은 분열과 갈등의 담을 쌓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많은 가정들 안에도 담이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불평의 담이 있고, 형 제들 사이에도 갈등의 벽이 있어 대화가 끊어진 경우도 있습니다. 또 시부모님과 며느리 사이에도 원 망의 담벼락이 있어 서로를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교지를 생각해보면, 그곳에도 많은 담이 있습니다. 선교사님들과 내부인들 사이에 담 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주로 선교사들의 은근한 우월의식에 근거한 교만 때문인 경우가 많습 니다. 21세기판 유대인(선교사)들과 이방인(현지인) 간의 담벼락이 선교현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 동 안 많은 서구의 선교사들이 식민시대를 배경으로 한 제국주의적(imperialistic)인 태도로 선교의 일 방적인 확장을 해 온 것이 사실이고, 그런 일방적인 태도는 선교지 현장에서 많은 담을 쌓게 만들었 고, 결과적으로 많은 미전도 종족선교에 있어서 돌파가 일어나지 못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한국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님들도 이런 서구 선교사들의 실수를 선교 현장에서 반복해 왔 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선교사들 간에도 많은 경쟁과 불신과 미움의 담을 쌓고 있습니다. 저는 저희 교단 (예장 통합)의 세계선교부 부장을 하면서 많은 선교현장을 방문하였는데, 놀랍게도 사도들과 선지자 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고 화목케 하는 복음을 전하러 간 선교사님들이 자체 내에서 갈등하고 경 쟁하느라고 서로 간에 담을 쌓고 있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야 할 선교사님들이 서로 간에 반목하고, 심지어는 한 국가에 5개의 분파로 나뉘어 담을 쌓고 있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서로 담을 쌓고 사역을
하고 있으니, 선교적 돌파를 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이런 우리를 향하여 주님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신 것처럼, 우리가 진정 하나님과 먼저 화목된 자들이라면, 우리도 화목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사이에 세워진 모든 담을 내가 먼저 허무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 수님의 보혈이 하늘과 땅 사이의 막힌 담을 헐었듯이, 나와 너 사이의 막힌 담을 헐고, 우리 안에 세 워진 울타리를 허무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담을 허무는 선교적 삶을 살 수가 있습니까?
- 어떻게 담을 허무는 선교적 삶을 살 수 있는가?
1) 먼저 하나님과 화목하라
우리가 담을 허무는 삶을 살려면 무엇보다 먼저 내(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오늘 우리는 진정 하나님과 화목된 관계에 있습니까? 만일 지금 이 시간 여러분의 마 음속에 그 무엇에 대한, 혹은 그 누군가에 대한 마음의 벽이 있다면, 여러분은 오늘 우리 속에 있는 모든 종류의 담, 죄악의 담, 편견의 담, 미움의 담, 원망의 담 등을 허물러 오신 예수님, 우리의 화평이 신 예수님을 다시 한 번 우리의 마음속에 영접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선교사된 우리가 먼저 다시 주님과 화목한 관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평강 의 왕이신 주님께서 주시는 화해의 능력으로 내 안에 있는 담과 우리의 가정과 선교지에서 내가 먼 저 담을 허무는 선교적 삶을 살 수 있고, 선교사역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2) 화목케 하는 말씀을 삶으로 전하라
그 다음에 우리는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전하되 말로만 전하면 안 되고, 우리의 화목하게 하는 삶을 통해 전해야 합니다. 즉 우리 선교 공동체 내부 에 있는 모든 편견과 죄악의 담을 우리의 화목하는 선교적 삶을 통해서 무너뜨려야 합니다. 주님께서 는 우리에게 이렇게 강력하게 권고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목 하라”(롬 12:18)고 말입니다. 여기 “모든 사람” 속에는 나를 배척하고 미워하는 사람, 즉 내게 대하여 미움의 벽을 치는 사람, 혹은 나에게 해를 끼친 사람, 즉 원수도 다 포함됩니다. 그러므로 이 명령은
결코 쉬운 명령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먼저 화목을 이룬 사람은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 우리
를 가로 막고 있는 원망과 미움과 편견의 담을 내가 먼저 허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경계선을 넘어 가야 합니다. 이방인의 뜰 경계선에 세운 담벼락과 같은, 선교사들이 세운 담벼락을 우리가 먼저 허 물고 내부인들이 그 경계선을 넘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교사들도 그 벽을 넘어 내부 인들에게 더욱 다가가야 합니다. 더욱이 선교사들 간의 미움과 갈등의 담을 내가 먼저 허물어야 합니 다. 선교현장에서 내부인(Indigenous/현지인)들이 바라볼 때 선교사들끼리 하나 되지 못하고 갈등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어떻게 그들에게 화목케 하는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한다는 것은 말처럼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화목하 게 하는 직분, 즉 담을 무너뜨리는 선교적 삶은 예수님처럼 자기를 먼저 내어주는 희생과 헌신이 없으 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화목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처럼 자기희생 과 자기를 먼저 내어줌이 있어야 화목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가지 종류 의 벽이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정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선교 현장에서 감당하려면, 우리는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달려 순교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죽어야 합니다. 내 생각의 벽, 내 가치관의 벽, 내 경험의 벽, 선교사로서의 내 자부심의 벽, 내부인을 향한 선교사의 우월감의 벽을 먼저 허물어 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고 고백했던 바울처럼, 원수들에 둘러싸여 돌 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60)라고 기도하며 순교했던 스 데반 집사처럼, 우리들도 날마다 내 생각과 경험과 편견과 우월감의 담을 먼저 허무는 순교자들이 되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모든 종류의 벽을 무너뜨리는 화목하게 하는 직분, 즉 선교사로 서의 직분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 성령님의 도우심에 힘입어 자기를 희생하면서까 지 화목하는 직분, 즉 담을 무너뜨리는 선교적인 삶을 살았던 한 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아버지 이야기
우리가 아까 설교의 시작에서 보았던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 전 동독과 서독의 사람들은 비교 적 쉽게 국경이라는 경계선을 통과하여 정착지를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주로 그 이동은 동쪽에서 서 쪽에로의 이동이었지요. 약 270만명의 동독인들이 자유를 찾아 서쪽으로 이동했다고 합니다. 그런 데 1954년 수많은 인파가 구름처럼 서쪽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정반대인 동쪽으로 떠나가는 한 가족 이 있었습니다. 서독 출신의 “호르스트 카스너” 목사의 가족이었습니다. 카스너 목사는 서독에서 남 부럽지 않은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고, 당시 그에게는 함부르크에서 낳은 겨우 6주가 된 아기가 있
었습니다. 이 신생아를 데리고 정한 거처도, 교회도 없는 동토를 향해 간다는 것은 누가 봐도 어리석
고 무모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바른 삶을 고민하던 그는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고, 교회도, 복음도, 온통 메말라 있는 공산치하의 동독으로 떠났습니다. 카스너 목사는 예수님처럼 경계 선을 넘어 더 낮은 곳을 향해 가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일이라고 여겼기에 죽음을 무릅쓰고 고난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는 동독에서 공산체제에 의해 어려운 목회를 하게 되지만 꿋꿋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소명을 감당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놀라운 역사가 펼쳐졌습니다. 당시 아버지의 품에 안겨 공산 치하의 동독으로 갔던 딸은 아버지의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자라납니다. 수학과 언어에 뛰어난 능력이 있었던 그녀는 동독에서 물리학자로 활동했고, 통일과정에서 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하여 머잖아환경부 장관에 오릅 니다. 그리고 2005년 독일 총선에서 총리가 된 후 2017년 무려 4선에 성공하여 16년간이나 독일의 총리로서 활동하며, 독일의 최장수이자 최고의 총리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소박한 시골교회서 자란 소녀가 통일 독일의 최고지도자가 되어 유럽의 경제위기 극복과 전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개혁을 이 끈 것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바로 앙겔라 메르켈입니다.
그녀는 최장수 총리였지만 먼저 독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녀는 세상의 불의와 결코 타협하 지 않았고 그 많은 정치 세월 동안 스캔들이나 부정행위에 연루된 적이 없습니다. 퇴임 직전에도 70 프로가 넘는 지지율을 보였던 그녀는, 때가 되었을 때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 퇴임 전에 살았던 소 박한 아파트로 돌아가 이전과 같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대의 가치나 풍조에 흔들리지 않고 주님의 뜻대로 살겠노라고 시대를 역행하며, 경계선을 거꾸 로 넘어갔던 카스너 목사와 같은 이들의 희생과 섬김은 이후 베를린장벽을 허무는 믿음의 초석이 되 었습니다. 서슬 퍼런 공산 치하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보며 동독주민들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는 선 교적 삶을 살았던 카스너 목사야말로 동과 서를 나누었던 장벽을 허문 화해의 사역자라고 하겠습니 다. 또한 카스너 목사의 신앙교육을 받고 자라난 딸 메르켈은, 총리가 되어 동독 출신인들과 서독 출 신인들 사이에 존재하던 심리적 장벽을 허물고 독일국민을 온전히 하나 되게 했던 것입니다.
- 7. 나가는 말: 담을 허무는 선교적 삶을 살라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이 시간 여러분의 마음속에 누군가에 대한 벽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가족 안에 보이지 않는 담이 있습니까? 교회에서 그리고 선교지에서 그리고 여러분이 속한 선교공동 체에서 누군가와 마음의 벽이 있어 불편한 관계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바로 그 곳에서 예수님
께서 하나님과 세상을 화해시키기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시고,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막힌 담을 허신
것처럼,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맡은 이로써 우리 사이의 모든 종류의 담을 내가 먼저 허무는 선교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서로 간에 쌓았던 담을 헐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선교사의 우월의식과 교만한 태도로 인한 선교현장에서 내 부인들과의 관계에서 있을 수 있는 담을 헐고, 우리 가 먼저 경계선을 넘어가야 합니다.
바라기는 이런 성육신적인 태도로 선교적 삶을 살아가는 우리 선교사님들이 가는 곳마다 여러 분들로 인하여 막힌 담이 무너지고, 분리의 장벽이 제거되어, 그곳에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시온 의 대로가 활짝 열리는 한국교회와 선교현장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찬송: 평화 하나님의 평강이
기도: 우리의 화평이신 하나님,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우리를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 과 화목한 자로 불러주심을 감사합니다. 바라옵기는 여기 모인 당신의 귀한 종들이 온 세상을 주님 과 화목케 하는 직분을 받았사오니, 먼저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종류의 담을 무너뜨리는 선교적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 선교현장에서 성육신적인 태도로 우리 자신을 겸손하게 내려놓고, 모든 담을 허물고 경계를 넘어가는 선교사역을 감당하도록 성령님 도와주옵소서.
소그룹모임을 위한 질문
- 지금 우리가 선교의 현장에서 돌파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담벼락들은 무엇인가?
1) 그것이 선교사인 나에게 원인이 있는 담벼락이라면, 그것들은 무엇인가?
2) 선교사와 내부인 간의 담벼락이라면 그것들은 무엇이고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3) 선교사 공동체 내의 담벼락이 있다면, 그것들은 무엇이고,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 2. 우리가 각각의 담벼락을 허무는 선교적 삶을 살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가?
- 선교의 현장에 세워진 담벼락을 허물고 경계를 돌파한 이야기가 있다면 함께 나누어 보자
6월 15일(목) 메시지 3 | 최남수 목사 (광명교회)
제목 : 세계선교를 마무리하자 본문말씀 : 에베소서 3장 1-12절
바울선교사님은 감옥에 투옥 중에도 에베소교회를 향한 선교를 멈추지 않으셨다.
엡 3:1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 바울 선교사님의 선교의 힘은 무엇인가?
1) 첫 번째 선교의 힘 –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 ->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용서와 사랑을 받은 죄인
엡 3:2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바울> 선교사는 감옥투옥 중에도 선교를 멈추지 않는 이유 1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
나 같은 핍박자에게 용서와 사랑과 구원의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의 큰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2) 두 번째 선교의 힘
엡 3;3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엡 3:4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하나님의 계시로 알게 된 – 하나님의 비밀이 선교의 힘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원리가 선교의 힘이다
다메섹도상에서 하늘로부터 빛을 맞은 후에 깨닫게 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비밀의 힘이다
- <바울> 선교사님의 선교의 힘 –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 – 예수 예수 예수
1) 첫 번째 예수 =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고전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2) 두 번째 예수 =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
롬 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3) 세 번째 예수 = 나의 예수 – 내 삶 속에서 나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 – 내 안에 거하시는 예수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참고 -> 베드로 사도의 선교의 힘도 바울의 선교의 힘과 똑같다
- 바울 선교사님은 복음의 폭탄을 맞은 사람 -> 복음의 천국 빛을 맞고 나가 떨어져서 죽다가 살아난 사람
엡 3:7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바울선교사님은 복음의 폭탄을 맞은 사람이다 그래서 나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일꾼이 되었노라
여러분 중에서 – 복음의 폭탄을 맞고 나가 떨어져서 죽다가 살아나서 선교사된 분이 계신가요?
행 9: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훌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행 9: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이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행 9: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사울은 스데반을 죽이라고 선동한 자요
예루살렘교회를 핍박하여 예루살렘 교회를 흩어버린 교회 핍박자이다
행 8: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 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그러나 복음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나는 복음의 일꾼이 되었다
① 하나님의 은혜가 나에게 강하게 임하면서 복음의 일꾼이 되었다
② 하나님의 능력이 나에게 강력하게 역사하셔서 복음의 일꾼이 되었다 복음의 능력은 무엇인가?
1) 율법이 아니다
2) 율법을 넘어선다
3) 예수님의 사랑이다
4) 예수님의 희생이다
5) 예수님의 용서이다 – 십자가 죽으심이다
6) 예수님의 구원이다
- 복음의 폭탄을 맞은 선교사님은 복음의 통로가 된다
엡 3: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 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1) 복음은 나 같은 죄인을 상속자가 되고 지체가 되고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셨다 그리스도의 족보에도 가까이 못가던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자가 되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지체가 되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이다
2) 복음은 이방인들을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 는 것
- 복음의 폭탄을 맞은 바울 선교사님의 무제한의 겸손의 영성 = 겸손의 능력
엡 3: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자기를 낮추는 것이 능력이다 -> 나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입니다
이것은 은혜 받은 복음의 일꾼이 자기를 낮추는 모습이다
사실 자기를 낮추는 것이 능력이다
자기는 작아지고 예수님이 커지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커 보인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서있는 자기가 한없이 작아 보인다
1) 나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딤전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 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2) 나는 만삭 되지 못한 자입니다
고전 15;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 자기 부인의 영성 – 자기를 낮추는 단계에서 자기를 철저하게 부정하는 단계까지 가야한다
3)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고후 12:11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나는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 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리라
왜 바울선교사님의 <자기부인>은 지나친 자기 겸손은 아닐까?
아닙니다.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으심을 죽어주신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십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죽어주신 예수님 외에는 모든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만이 구원입니다.
고전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
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전 3: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 7. 죽음의 영성 – 복음의 폭탄을 맞은 선교사님은 고난을 받아도 성도들의 영광으로 생각한다 선교사님 거기서 죽으세요
엡 3:12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엡 3:13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 의 영광이니라
바울 선교사님의 생각
내가 당하고 있는 여러 환난들 때문에 위축이 되지 말라
에베소 성도 여러분 – 나 바울선교사가 고난 받는 것이 오히려 여러분들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나 바울 선교사는 내가 죽는 것이 너희 영광이니라
그들의 죽음이 썩어진 밀알이 되어 한국교회가 부흥하였다
그런 비밀을 알고 있는 바울선교사님은 <고난의 영성>을 넘어서 <죽음의 영성>까지 선포하였다
1)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빌 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함께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 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고후 13:4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계시니 우
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선교사님은 환란이 올수록 선교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선교사님은 죽을 때까지 선교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선교사님은 죽을 때까지 선교하다가 죽을 것이다 선교사님께서 모든 선교사님들에게 메시지를 보내셨음
선교사님 거기서 죽으세요 – 선교사님의 죽음은 선교지 성도들에게 영광입니다 선교사님 거기서 죽으세요
선교지에서 뼈를 묻지 못하게 하시는 주님
다문화 국내선교 – 모든 곳에서 모든 곳으로 선교 이주민 선교 – 속지주의를 넘어서 속인주의로
힌드교 – 이슬람교 – 불교권 -> 성벽을 무너뜨려라 -> 공격적 태도로 접근했기 문에 실패하였다
-> 힌두교 – 이슬람권 – 불교권을 돌파할 수가 있을까?
2023 KWMA NCOWE 남겨진 과제 발견할 과업
- 100% 아데미 여신의 도시 에베소도시에 예수 예수 예수의 비밀을 전하라
- 2. 영적으로 죽어가고 있는 서구선교국가들이 다시복음의 폭탄을 맞아서다시부흥하도록 기도하자
- KWMA의 비전지도 – 세계선교를 마무리하는 한국교회가 되자 – 세계선교의 그물을 던져라
- 1. 100% 아데미 여신의 도시 에베소도시에 예수 예수 예수의 비밀을 전하라
행 19: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행 19:10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행 19: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행 19: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행 19:17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행 19:2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에베소 도서는 어떤 선교사도 성공할 수 없어“라고 할 만큼 에베소 도시는 우상 아데미 여신의 영 향력이 강력하였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아데미 여신에게 도전장을 냈다.
도시 안에 있는 두란노서원에서 장장 2년 동안 계속 말씀을 전하였다.
미국 예일대학교 역사학자인 Ramsey MacMullen에 의하면 사도 요한은 아데미 여신에게 직접 맞서기도 하였다. 그러자 아데미여신의 사원 일부가 무너져 내렸고, 그 이후에 아데미 여신은 계속 추 락하였고 50년 뒤에는 거의 소멸되어 갔고, 반면에 200년간은 기독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사도 바울 과 사도 요한은 믿음으로 거대한 불가능의 산을 옮긴 사람이 되었다.
- 2. 영적으로 죽어가고 있는 서구선교국가들이 다시 복음의 폭탄을 맞아서 다시 부흥하도록 기 도하자
서구선교의 주제국가들을 위하여 기도하다
1) 3년 기도하라 – 3년 기도하라 – 3년 기도하라 – 3년 기도하라 – 3년 기도하라 – 3년 기도하라 –
3년 기도하라 – 3년 기도 7번 끝나니까 59세가 되었다. 53세부터 세계기도자학교를 시작하여 70개 나라에 기도자 7,000명을 세우면 나라가 살아난다
2) 영국 기도선교 지도 – 2008년도 영국


3) 프랑스 기도선교 – 크레티앙

4) 미국 기도선교

- KWMA의 비전 – 2023 NCOWE 평창 선교전략대회 – 세계선교를 마무리하는 사람들 프랑스 크레티앙선교센타 – 비전그림 주심
사진 1 -> 크레티앙 선교단체

사진 2 -> 크레티앙 선교단체 비전을 그려주는 모습


사진 3 -> 2023 NCOWE 평창선교전략대회 – 비전으로 주심 – 세계선교의 그물을 던져라

6월 16일(금) 성경강해 3 | 최성은 목사 (지구촌교회)
제목 : 성숙한 교회가 성숙한 선교를 감당합니다. 본문말씀 : 에베소서 3장 14-21절
지구촌을 섬기는 최성은 목사 입니다. 저는 TV에서 [지구촌] 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심장이 벌렁
거립니다. 뉴스에서 [지구촌 소식]이라는 말만 나오면 벌떡 일어납니다. 저희 교회 이름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 선교 대회에서는 입에서 [지구촌 선교]라는 단어가 나올 때는 가슴이 뛰었습니다. 우리 목사님들은 지역 교회를 섬기시지만, 기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뒷모습을 보니, 선교사님들은 한 민 족과 나라를 섬기고 계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600여명의 선교사님들과 리더들이 모여서 찬양하고 기도할 때 그 모습을 여러 차례 제 핸드폰 영상에 담았는데, 제 가슴에 왠지 모를 뜨거운 감동이 밀려왔다. 선교사님들 모든 강의 하나 하나를 현장과 신문을 통해서 새겨 듣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놀라운 일들을 새롭게 하십니다.
성경은 참으로 신비하면서도 이상한 책입니다. 거대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야기 하시면서도 겨자 씨를 비유로 하십니다.
세상의 강력한 나라와 제국들을 통치하신다고 하시면서 어부들을 부르십니다. 세상의 심장을 변화시키시기 위해서 변두리에서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세상을 구원하겠다고 하시면서, 아들을 가장 연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보내십니다.
그리고 이번에 우리가 보고 있는 에베소서 말씀을 통해서 교회, 비밀, 하나님의 나라의 경륜, 주 님의 영광, 풍성, 하나됨… 이런 거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이제 한 사람의 속사람이 변화되어야 한 다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렇다. 나 한사람이 변화되지 않고는 교회가/ 선교지가/ 선교 단체가/ 민족과 세상이 변화 되지 않는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역사로 그들의 속사람이 충만해졌을 때 결국 선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에베소서는 이제 그 후 교회가 탄생 한 시점에서 한 지역교회 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동
시에 이 말씀은 시대와 민족을 초월해서 모든 우주적 교회에게 주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 6. 25 종전 70주년을 기념하는 해에, 한국 교회의 선교의 역사를 리뷰하며.
코로나가 엔데믹으로 선언되고 5년만에 이처럼 한자리에 모여 다시 선교를 논하는 이자리에서 우리는 오늘의 주제인 어떻게 하나님께 최선의 영광을 올려 드릴까? 를 다루어 봅니다.
How can we do the best practice for the glory of God?
그 시작은 무엇이어야 할까?
바울은 3장 1-13절까지 교회의 비밀 세가지를 이야기 했다.
- 교회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실천해 드리는 곳
- 교회는 모든 사람을 위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곳
- 교회는 하나님의 모든 지혜를 세상에 알리는 곳
자, 그런데 이런 놀라운 비밀을 선포하는 교회의 구성원이 누구인가? 바로 교회 공동체에 속해 있는 성도 개개인이다. 즉,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온전히 서 있어야 교회는 건강해지는 것이고, 그래 야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선교적 사명도 온전히 실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교회에 속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힘써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영적 성숙]이다.
바울은 이제 이러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를 드 린다. 상황은 에베소 성도를 위해 기도를 하지만, 이 기도문은 주께서 이 땅에 세우신 모든 우주적 교 회를 위한 기도문이나 마찬가지이다. 그 서문은 이렇다.
14-15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이러므로, (for this reason…), 즉 바로 앞에 있는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영광스런 비밀 때문 에 이렇게 기도 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자세가 비장하다. 하나님 앞에 완전히 맡기고, 전적으 로 의미하며 기도한다는 의미로 무릎을 꿇고 간구한다.
그리고 온 세상 모든 족속에게 선포된 하나님의 이름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간구한다. 즉, 2장
18절에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가 되게 하신 말씀처럼 이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는 담대함]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이제 성도가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기 위해 갖추어야 할 영적 성숙에 기도에 관하 여 가르치는데, 모든 성도는 교회에 속해 있고, 동시에 그 교회는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는 공동체이 므로 이 기도문은 결국 성숙한 선교를 감당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성숙한 선교를 위해 교회는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는가?
- 속사람이 강건해지는 교회 –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성령을 통해(16절)
그리스도인들이 우리의 영적 삶에서 가장 먼저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내면의 세계이다. <책 사 진>고든 맥도날드의 명작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이라는 책에서도 이야기 하지만, 사실 제자 훈련이라 하는 부분은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케 하는 훈련이다. 내가 신앙생활을 오래 했는데도 불구 하고, 속사람인 내면의 세계가 성숙해지지 않고, 자꾸 외적인 성과나 보이는 부분에만 집착하면 그것 은 영적 어린아이 상태이다. 교회의 사역이나 선교도 마찬가지이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 사역지에서의 많은 문제들은 속사람이 성숙하지 않은 부분에서 생겨나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이다. 서로가 이해해 주지 못하고, 양보하지 못하고, 높여주지 못하는 문제들은 속사람이 자라지 않은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언제 파트너십을 하고, 언제 이양을 해 주어야 할지, 때 를 분별하는 것은 속사람이 성령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전하! 이럴 수는 없습니다. 통촉하여 주옵소서] 하는 문제들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죽고 사는 문 제가 아닌데, 바로 내 자아가 살아 있기 때문에 목숨을 거는 것이다. 사탄은 늘 이 상황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영적 성숙의 목표를 내 속에 있는 새로운 사람이 자라는데 둔다면, 하나님은 이 일을 최고로 기뻐하시며 도와주실 것이다. 내가 예수님의 사람이 되어야 결국 교회도 선교 사역도 건 강하게 감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 그런데 이 일은 절대로 우리의 힘으로 안 된다. 우리는 속사람이 성장해지는 일을 훈련하다가 낙심할 때가 많다. 주저앉아 아예 성장하는 일을 포기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때 반드시 다시 기억해 야 하는 것은, 나에게 새로운 자아, 새로운 속 사람을 주신 분이 누구인지를 다시 깨닫는 것이다.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오늘 16절 초반부는 [그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라고 말한다. 우리의 빈 자아를 채워 주시는 분
은 바로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이 채워 주실 것들이 영광스럽고 풍성하다고 하신다. 에베소서에서 중요하게 반복되는 단어이다.
이 풍성함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영광을 이렇게 풍성하게 부어 주 시기에 준비되어 있으시다. 문제는 나는 그 영광을 담을 그릇을 준비하고 있는 가 하는 것이다. 그 그 릇이 바로 우리의 인격이다.
때문에 속사람이 강건해지는 것은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16절 후반부는 ;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우리의 내면에 머무시는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이 우리에게 채워지는 것은 오직 성령께서 도우실 때만 가능하다.
에베소서는 그래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필요할 때마다 늘 채 워 주신다고 약속 하신다. 표e fullness of the Holy Spirit는 늘 re:fll 해 주신다. 목마른 자들아 다 내 게로 오라. 내가 채워줄께.
타국에서 선교를 감당하시느라 지친 몸, 수많은 영혼들을 돌보느라 곤고한 내 마음… 바울 역시 세계 선교를 감당하며 이 부분을 적지 않게 느꼈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의 속사람이 성령으로 충만 해 지는 것을 경험 했다.
고후 4 장 16-18 절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속사람이 강건한 교회 공동체! 그 교회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열방을 품을 수 밖에 없다. 아버지 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놀랍지 않은가? 우리의 속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담는 그릇이다.
두 번째 성숙한 선교를 위해 교회는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는가?
- 예수님께서 내주 하시는 교회 – 믿음으로 말미암아 (17절)
사실 이 두 번째는 첫 번째 기도의 부분인데, 첫 번째 기도의 결과이다. 즉 하나님의 풍성함과 성 령의 능력으로 속 사람이 강건해지기를 간구하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결과를 얻 게 된다.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순종하지 않고, 제멋대로 살 때에는 내 안에 계신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낮 아짐을 경험한다.
예수님이 나가신 것이 아니라, 내가 마음에서 예수님을 밀어 낸 것이다. 구원은 받았을지 모르겠 지만, 내가 다시 내 삶에 주인이 되어서 사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회복하는 길은 다시 속사람을 하나님께 내어 보이고, 성령님께 의지하여, 하나님의 풍성함으로 채우실 것을 진심으로 간구하는 것이다.
교회사 2천년 역사 속에 일어난 모든 부흥의 역사는 기도와 회개 운동으로 시작 되었다. 만약 숫
자적 성장을 했는데, 그 속에 회개가 없었다면 그것은 가짜 부흥일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그 간의 한국 선교를 뒤돌아보며, 과연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는 선교를 했는가? Rethinking, look back 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전에 우리가 걸어온 길이 정말 하나님께서 애초에 원하셨던 그림인가를 되살펴 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신비한 분이시다. 한 사람 한사람이 성전인 시대에, 우리 안에 거대한 하나님 나라를 심 어 놓으셨다. 그 하나님 나라를 담는 그릇이 바로 우리의 인격이다. 예수님께서 내주 하시는 우리와 교회가 될 때 우리는 건강한 선교적 교회로 다시 거듭날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을 통치하지만, 그 나라에 속한 내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먼저 통치하심을 받 아야 한다. 그래야 전도자가 복음으로 세상을 통치한다.
세 번째 성숙한 선교를 위해 교회는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는가?
- 모든 성도가 사랑 안에 거하는 교회- 예수님 사랑을 기초로 삼는 가운데 (17-18절)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면서 나타나는 영적 성숙의 첫 번째 현상이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가지신 사랑으로 속사람이 채워지는 것이다.
17 절 전반부 말씀은 이렇게 연결된다.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 히고 터가 굳어져서
우리의 모든 사역, 행위는 사랑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그런데 그냥 사랑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 이다. 이 사랑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어야 하고, 점검되어져야 한다. 우리 선교의 근거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어야 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예수님의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징, 요란한 꽹과리만 될 뿐이다. 사랑 없는 천사의 말도 소용 없고, 불 속에 목숨을 내어 던지는 신념도 헛된 것이다.
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그래서 이 사랑에 대해서 서로가 말씀을 연구하고, 그 지식에 넘치고, 그리고 그 사랑으로 서로가 연합되어야 한다. 교회는 자기 의만 넘치고, 사랑이 식을 때 분쟁을 하게 된다. 선교지는 동력을 잃게 된다. 목회자와 선교사님의 사랑의 분량만 큼 선교지는 사랑으로 물들게 되어 있다.
때문에 어떤 어려움을 격어도 예수님의 사랑을 서로 공유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나아가면 하나 님은 거기에 예상치 못한 열매를 주신다.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결국 우리가 인생의 마지막에 하나님의 판단을 받을 때, 한가지 기준은 사랑으로 행한 일만 남는 다는 것이다.
어떤 교회가 건강한 선교를 할까?
- 하나님의 풍성함에 거하는 교회 –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는 가운데 (19절)
우리가 예수님을 내 안에 든든히 모셔서 거기에 뿌리를 내리고,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아 서로가 연합할 때 우리는 다시 한번 하나님의 풍성하심으로 충만케 된다.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 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처음에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충만하심도 감당이 안 되는 것이지만, 우리의 속사람이 성령님과 예수님으로 채워지고, 그래서 예수님 닮은 사람으로 성장할 때 그것을 가장 기뻐하시는 분은 바로 아 버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이런 순간에 주저하지 않으시고,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다시 한 번 충만하게 하신다. 그렇다. 영적인 축복은 연쇄 현상이다. 마치 우라늄 원소가 핵 폭발을 일으킬 때 계속되는 연쇄
반응으로 엄청난 파괴력을 박으로 내 뿜듯이 영적인 것도 연쇄 작용이다.
- 속 사람이 강건해 지는 교회 –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성령을 통해 (16)
- 예수님께서 내주 하시는 교회 – 믿음으로 말미암아 (17)
- 모든 성도가 사랑 안에 거하는 교회– 예수님 사랑을 기초로 삼는 가운데 (17-18)
- 하나님의 풍성함에 거하는 교회 – 예수님 사랑을 깊이 깨닫는 가운데 (19)
이처럼 영적 성숙의 작용들은 서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영적 사이클로 계속 돌아가게 되어 있다.
내가 얼마만큼 성숙해 질지에 대하여 고민하지 말라. 하나님은 제한이 없으신 분이시다. 자기 아 들을 죽인 공산당원을 용서 하고 양자 삼는 그런 사랑을 한 손양원 목사님 같은 분을 보아라. 겉 사 람으로서는 능히 감당할 수 없다. 오직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을 붙들 때 만 가능한 일이다.
자, 이 바울의 기도를 종합해 보면, 영광, 풍성함, 넘침, 이런 단어들이 이 짧은 문장 속에 반복된 다. 마지막 바울의 기도에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는 기도에서도 이것이 나타난다.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그러니까 오늘 기도의 핵심은 성도와 교회가 하나님 앞에 영적 성장에 대한 기도를 하면 하나님 께서는 능히 모든 것에 풍성하고 넘치도록 채워 주신 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모든 열방 가운데 선포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은 우리가 정말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심각한 문제가 있다. 하나님 이거 해 주 세요, 저거 해 주세요 라는 우리의 소원은 많이 올리는데, 과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순간, 우리의 속사 람이 강건해지는 기도,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기도, 그 분께 순종하는 기도를 올려 드리는가?
교회와 선교지를 섬기는 우리 리더들의 내면의 세계가 이렇게 예수님 닮아가려고 애쓰는 모습들 로 충만할 때 이것은 고스란히 사역과 선교의 현장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예화) 한 선교지는 능력과 달란트를 가지고 열심히 많은 선교사님들이 포진되어 있었지만, 서로 가 시기와 질투심으로 과다 경쟁을 해서 선교지가 초토화 되어갔다. 누구도 승자가 없었고, 한 교회 만 컸는데, 한인 교회이지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는 아니었다.
그러나 남미에 있는 어느 한 나라의 도시는 선교사님들 40여명이 정말 한 가족처럼 지내는 모습 을 보았다. 그런데 거기에 이유가 있었는데, 바로 한 선교사님의 희생적인 헌신이었다.
목사가 곧 교회이다 라는 다소 과장된 말이 있다. 그 목사에 의해서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어지고, 제자가 길러진다. 그 목사의 목회 철학과 설교 사역을 통해 교회는 독특한 영적 DNA 가지게 된다.
우리 모두가 각자 다양한 은사를 가지고 사역하지만, 우리의 한가지의 공통된 목표는 Missional church를 이루는 것이다.
- 속 사람이 강건해 지는 교회
- 예수님께서 내주 하시는 교회
- 모든 성도가 사랑 안에 거하는 교회
- 하나님의 풍성함에 거하는 교회
결국 교회가 예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임재하심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면, 하나님이 부어 주 시는 영광과 능력이 풍성하여, 그분의 마음을 따라 선교적인 교회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기도한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4)] 기도문의 의미이다.
1995년 한국에서 열린 GCOWE를 참석하고, 1995년 그해 말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그리고
1996년 전세계에서 가장 큰 선교 대회로 알려진 얼바나 미션 컨퍼런스를 참석하였다. 그리고 당시 미 국 휘튼 대학에서 열리는 국제 코스타를 10년간 참석을 했다. 모두가 너무도 가슴 뛰는 일들이었다.
이제 내년 한국에서 로잔 50주년을 뒤돌아보며 세계 복음주의와 선교를 다시 한 번 재정립하는 놀라운 기회가 주어졌다.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송도에서 로잔 국제 이사회의가 있어서 일부 참석하고 왔다. 그 중에 Jerry White 미공군 장군이면서, 나사에서 일하고, 내비게이토 출신이신 분이 이사로 섬기시는데, 오 래전에 Church & para church 라는 책을 썼다. 이분의 이야기가 1974년도만 하더라도 전 세계 선교 단체가 만여개가 조금 넘었었는데, 2천 년대 들어서 10만개가 넘는다고 하는 것이다. 엄청난 발전이 다. 많은 것이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아프리카 가나에서 온 국제 로잔 이사 중에 한 목사님은 남반구의 파이팅을 외치셨다. 지금 우리 가 NCOWE 에서 하는 이야기들을 또 다른 미팅에서도 동일하게 다 하고 있다. 서구 중심의 선교에 서 비서구권으로, 권력 중심의 선교에서 변두리 중심으로, center 중심에서, local indigenous 선교로. 80년대 90년대의 교회의 화두는 부흥과 성장이었다. 하나님께서 놀랍게 부흥을 부어 주셔서 한국 과 미국의 교회들은 괄목한 만한 성장을 했다. 그런데 2천년대 들어서면서 교회의 화두는 건강으로 바뀌었다. 일부에서 지나치게 교회 성장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교회는 커지고 성장했지만, 건강하지 않은 모습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교회가 커진 것과 거기에 속한 성도들의 신앙이 성숙해진 것 은 다른 문제라는 것을 놓친 것이다.
큰 교회 다니고, 좋은 목사님 밑에 있으면 나는 좋은 성도라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우리 목회자 들도 교회가 숫자적으로 성장했다면 꼭 건강하게 목회했다는 생각도 착각이고, 교회가 숫자적으로 성 장하지 않는다고 해서 건강하지 않는다고 낙심하는 것도 오산이다. 선교지의 평가도 마찬가지이다.
이제는 교회의 사이즈를 떠나서 교회가 다시 새롭게 되고, 건강해지지 않으면 세상의 지탄이 되
고, 하나님께서 교회에 맡겨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데도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선교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그동안 정말 지역 교회와 선교 단체, 그리고 선교사님들의 수 많은 희생과 노력으로 우리는 세계에서 몇 번째 안에 들어가는 선교사 파송 강국이 된지 오래다. 이 제는 정말 NCOWE 같은 대회를 통하여 우리의 선교가 건강한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특별히 펜데 믹 상황은 우리가 고속으로 달리던 수 많은 사역들을 멈추게 하고 우리를 돌아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숨은 은혜가 있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우리의 최선은 무엇인가? 무엇을 통 해 그 분 앞에 최고의 영광을 돌릴 것인가? 우리 스스로가 질문하고 기도와 말씀 안에 답을 찾아야 할 때이다.
6월 16일(금) 폐회예배 3 | 황덕영 목사 (새중앙교회)
제목 : 성령으로 하나되게 하소서 본문말씀 : 에베소서 4장 1-6절
저는 이곳에 오신 한분 한 분 보면서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다. 그 순수한 열정과 비전과 그리고
그 통찰력과 지혜와 그리고 그 인격과 성품을 이렇게 대화하면 알잖아요. 정말 우리는 하나 될 수 있 다. 정말 겸손한 자다 이런 생각을 하거든요. 한번 서로 바라보면서 진심으로 이렇게 인사하겠습니다. 저보다 대단하십니다. 여러분 진심으로 하셨습니까? 이렇게 보면 하나 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나 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되는데 내가 남보다 낫다고 여기기 때문에 사실은 하나 되지 못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되는데 성경은 분명히 시옷 받침인데 우리는 지옥 받침으로 오 해하고 할 때가 많아요. 우리가 서로를 진심으로 안다면 정말 겸손할 수 없다는 것은 양심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뛰어난 분들이 있고 이렇게 귀한 분들이 있고 정말 다 배워야 되고 따라갈 분들 인데 정말 하나님 앞에 내세울 자랑할 것이 없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겸손과 온유 또 이 하나 됨에 대해서 나누는 이유는 본문말씀에서 계속 반복적으로 나오는 표현 이 바로 ‘하나됨’에 관련된 표현입니다. “너희는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오래 참음으로 사랑으로 용납하고 평안을 맺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성령님은 하나 되게 하시는 분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입니다. 몸이 딴 게 아닙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인 거죠. 여러 가지 소망이 아닙니다. 다양한 것들을 나눌 수 있고 다양한 전략과 방향을 말할 수 있지만 우리 의 소망은 하나인 겁니다. 그러기에 하나 될 수가 있는 겁니다. 그 하나의 소망은 하나님의 영광, 하나 님의 영광을 위한 최선 모든 민족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great commission, 위대한 그 지 상 명령에 순종하면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것, 주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 것 그 하 나님의 영광을 위한 한 소망이고요.
우리 아버지는 한 분이십니다. 한 아버지 아래에서 형제, 자매에 대한 지체가 된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KWMA 자체가 놀라운 우리 민족을 향한 우리 한국교회를 향한 한국교 회, 선교를 향한 하나님의 엄청난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교단체들이 다 연합해서 모이는 몇 몇 단체 모일 수 있지만 그건 그 단체들의 이야기고 그 단체의 연합의 이야기로 선을 그을 때가 있습
니다. 여러 교회가 연합을 할 수가 있습니다.
1차와 2차와 3차 사도행전을 보면 너무나 잘 나와 있습니다. 그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성 령께서 선교의 문을 돌파하시면서 역사하게 하셨다는 겁니다. 인간의 힘과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사 도행전에 보면 16장이죠. 소아시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성령께서 아시아 지역에 복음을 전하 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더라. 이건 정말 기가 막힌 일입니다. 성령님이 복음 전파를 막으셨다. 지금 이 시대가 복음 전파가 참 위축되었다고 말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한국교회가 그러하고 세계 선교 가 위축되고 참 여러 가지 위기 가운데 있다라고 말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지만, 성령님은 그걸 막으 시는 게 아니라 복음 전파를 포기하신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을 열고 계시는 것이죠.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시기 때문에 광야에 길 내고 사막에 각을 내시는 그 새 일을 행하시는 하 나님이시기 때문에 바울과 바울 일행이 기도하는 사람이니까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그 권능을 가지 고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니까 마귀도 환상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묻혀 있었던 위험이 아니라 이 제 바다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떠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3자 때 그동안에 회당 중심에서 복음을 전했 지만 회당에서 복음을 전할 때 얼마나 사람들이 박해를 하는지 마음이 굳어져가지고 순종하지 않고 막 공개적으로 비방하니까요. 바울은 성령의 사람이니까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두 란노서원이라고 하는 강당을 빌려서 3차선 여행의 아주 중요한 지역이 에베소 지역이었는데 석달동 안은 회당 중심으로 복음 전하다가 새로운 창조적인 방법으로 두 해 동안 2년 동안 제자 양육을 하 면서 주님의 신실한 제자들을 키워내는 데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바울이 한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서 성령님께서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이 말씀과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있었는지 악귀가 떠나가고, 아시아의 지역에 사는 모든 유대인과 헬라인들 다 주의 말씀을 들었다고 그럽니다. 병든 자들이 치유가 되고, 마술을 행하던 사 람들이 책을 다 불태우고 우상숭배를 다 끝내는 것이죠. 강력한 교회였습니다. 그 에베소 교회를 향 해서 바울이 이제 로마의 감옥에 있을 때 사랑의 마음으로 편지하는 겁니다.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 해서 복음의 씨를 뿌리고, 그리고 대부분의 지역들은 길어야 몇 달, 짧으면 며칠 그리고 거쳐 가서 복 음의 씨앗을 뿌렸는데, 에베소 지역은 2년이 넘도록 주의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놀라운 성령의 강력 한 역사가 있었던 놀라운 선지적 돌파를 이루었던 교회 아닙니까? 그 교회를 향해서 사랑의 마음을 담아서 편지하는 겁니다. 하나 되어야 된다라고
에베소교회에 편지를 하는데 우리가 다 알다시피 성령께서 에베소 교회에 책망을 한 가지를 하시 는데 그 책망이 다른 것에 대한 이슈가 아니라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 그래서 너희가 어디서부터
떨어진지를 생각하고 처음 행위를 가져라라. 너희가 회개하지 않으면 그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이게 엄청난 경고의 말씀입니다. 이 진리를 사수하는 것, 진리를 붙잡는 것 하나님의 말씀의 순수성을 지켜나가는 건 너무너무 중요한데 문제는 무엇이 하면 그것이 사랑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죠. 모든 것을 다 잘했을지 모르지만 첫 사랑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성령의 경고를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할 것 많고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될 것 많고 정말 힘써야 될 것이 많다. 이런 여 러 가지 메시지를 듣는데 여러분 시대가 바뀌어도 상황이 바뀌고 패러다임이 엄청난 시프트 지금 코 로나 기간을 보내서 지금 팬데믹에서 팬데믹으로 가면서 지금 새로운 지금 세계 기독교가 열리고 있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이 새로운 어떤 선교의 어떤 비전과 전략이 필요할 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될 것 은 하나님께 칭찬을 받아야 되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야 된다는 거. 모든 시대와 그리고 모든 패러다 임을 돌파할 수 있는 비결이 있다고 한다면 예수님의 삶을 살아가는 것 예수님을 닮아가는 거예요.
그들과 우리와 같이 하나가 되게 하사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세상으로 믿게 하여 주옵 소서 우리가 하나가 되어 준다면 세상의 놀라운 복음의 전파의 역사가 힘 있게 일어날 줄로 믿습니 다. 위대한 명령밖에 위대한 계명 마태복음 22장에 나와 있듯이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 무엇입 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겁니다. 그리고 내 이웃을 내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 에베소 교회가 첫 사랑을 버렸다고 하는 것은 주님을 향한 그 사랑, 하나님을 향한 그 사랑, 그리고 교회 안에서의 성도 안에서의 사랑, 동역자 안에서의 사랑, 그리고 세상을 향한 영혼들을 향한 그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책망을 들은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것은 아닌데 주님의 마음은 주님의 도전은 너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주님이 우리를, 나 자신을 그렇게 사랑하셨기 때문이 지 않습니까? 마음을 다하여 나를 사랑해 주셨고 목숨을 다하여 나를 사랑해 주셨고 뜻을 다하여 나를 사랑해 주셨기 때문에 너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여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라. 정말 이것 이 하나님의 힘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압니다. 저는 이 하나 됨의 축복이 어떻게 선유 역사로 나 타나는지 저는 우리나라를 향한 한국교회와 한국 선교를 향한 하나님의 시대적인 부르심이 있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분단된 나라 입니다. 나라와 민족마다 하나님의 시대적인 부르심이 있습니다. 이제 7월달이 되면 70주년이 됩니다. 휴전선이 그어진지 하나 되지 못하고 통일되지 못한 이민족전쟁의 폐허 가운데 그 아픔 가운데 나 뉘어졌기 때문에 이 정서적인 분단이 지금 70년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가 될 수가 있습니 까? 여러분 절대 다른 것으로 하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사랑 안에서 모든 겸손과 온 유로 하나님이 한 분이시니까 우리는 한 몸이니까. 근데 이것이 정말 사람의 힘으로 안 되더라고요.
교단마다 많이 있으시고 또 연합 단체 또 여러 모임들 이런 포럼들이 굉장히 많으신데 저도 얼마 전 에 통일에 관련된 어느 포럼 목회자분들하고 해서 같이 참여를 했는데 통일에 대한 모임인데 그 안에
서 통일이 안 되더라고요. 하여튼 그런 분이 또 좀 오셨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제 통일에 대한 인식
이 다르니까 좀 민망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그 은혜를 사모하면서 성령의 정말 감화 감동이 있어야 되는데 우리 힘으로 안 되기 때문에요. 근데 정말 결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쓰 라고 했기 때문에 저는 처음에 인사를 나누셨듯이 서로를 귀하게 여기고 배우고 그리고 따라가고 존 경하고 뒤에서 다른 얘기하지 않고 물론 잘못된 것을 분별하고 가르치고 경책하고 돌이켜야 되지만 그 모든 것이 사랑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게사실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많지 만 비전도 많고 전략도 많고 다 중요한 거 하나님이 다 주시지만 사실 하나님께서 너무 많은 것들을 주셨거든요. 이 자리에 계신 한국교회와 한국 선교를 대표한다고 여겨지는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직분을 가지신 분들이 모였는데 이 안에서만이라도 서로를 존중하고 배우고 따라갈 수 있다고 한다 면 한국교회는 새롭게 되어 지고 그리고 세계 기독교 이 선지 세대 가운데 놀라운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우리 연결됩시다. 축복합니다. 이것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뒤에서 진리가 아닌 것들의 발목을 잡고 뒷머리를 잡아당기고 끌어당기고 이런 것들만 사라져도 여러분 이 하나 됨에 대한 것 정말 예수 그 리스도의 그 사랑 안에서 성령 안에서 가능합니다. 예수님이 내 곁에 가까이만 계신 것이 아니라 예 수님의 사랑이 내 안에 들어왔고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이 들어왔고, 예수님의 그 능력이 그 예수님의 은혜가 보잘 것 없는 죄인 될 수밖에 없는 영원한 멸망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나를 그 사랑으로 십자 가 보혈의 능력으로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한 명령에 따라갈 수 있는 귀한 복음의 일꾼으로 세워주신 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서로에게 사랑을 나 누고 온전히 성령 안에서 연합하고 하나님께 칭찬받는 우리 인생의 결말은 주님 앞에 섰을 때입니다.
다른 것 때문에 하나님이 촛대 옮기시는 것이 아니고 사랑 잃어버리면 촛대를 옮기신다고 말씀하 세요. 실력이 없어도 자원이 없어도 어떤 세상적인 자랑할 것 없어도 능력이 없어도 그런 것 때문에 책망 받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을 잘 하고 있어도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면 성령 안에서 하나 되 게 하시는 이 귀한 주님의 사랑과 영혼들을 향한 동역자 간에 이 사랑을 잃어버리면 촛대를 잃어버리 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하고 우리 한국교회에 주신 이 놀라운 축복의 선교에 놀라운 이 촛대 가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함께 성경으로 하나 되어 하나님 앞에 기쁨 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 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주제 강의
세계선교의 새로운 방향을 향하여
(2023 제8차 NCOWE 키노트 스피치)강대흥 선교사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사무총장)
친애하는 목사님들, 선교사님들, 신학자들과 리더 여러분,
이 자리에 함께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히 먼 해외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신 분들, 그리고 차세대와 여성 리더들까지, 선교를 다시 생각하고 나아갈 방향을 함께 고민하기 위해 모이신 모든 분들께 깊은 환영의 인사를 드립니다.
- “Rethinking& Beyond” – 다시 생각하고, 그 너머를 향해
1955년, 해방 이후 한국교회가 처음 선교사를 태국에 파송한 이래 68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한국 선교는 비약적으로 성장해 1989년 1천 명, 2003년 1만 명, 그리고 2016년 이후에는 2만 명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이러한 성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한국 선교를 되돌아보면서 그동안 “우리 한국 교회의 선교가, 지금까지 해온 선교가 과연 잘한 것이었는가?” 하는 자문을 해 보았습니다. 프로그람 우원회에서는 이런 이슈를 여러 번에 결쳐 자문하였고 결국 이번 대회의 주제를 한국 선교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는 것으로 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제8차 세계선교전략회의(NCOWE)의 주제는 “Rethinking Korean Mission in
World Christianity Today and Beyond”입니다.
‘Rethinking’은 회고와 성찰입니다. ‘Beyond’는 내일을 위한 상상과 결단입니다. 한국 교회가 23,000 명 (해외의 시각으로는 35,000명 이상의 한국인 선교사가 있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상의 선교사를 파송했는데…. 과연 한국 선교사의 사역이 현장의 리더십이 보았을 때에 건강한 선교였는지…? 그리고 현지 교회에 도움이 되는 선교를 했는지 한번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Beyond’는 오늘 날의 선교를 반추하면서 미래의 한국 선교를 위한 상상과 결단입니다 우리는 이 둘의 긴장과 균형 속에서 한국 선교의 다음 장을 써 내려가야 합니다.
- NCOWE의 역사와 역할
NCOWE는 1991년 제1차 회의를 시작으로 4년마다 한국 선교의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장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다음과 같은 주제들이 다루어졌습니다:
과거 7차례 회의에서는 다음과 같은 주요 이슈들을 다루어 왔습니다.
– 1차: 민족과 세계를 향한 복음화
– 2차: 미전도 종족
– 3차: 선교사 재배치
– 4차: 타겟2030
– 5차: 하나님의 선교행전과 한국적 선교모델
– 6차: 선교 자산 악화와 신학적 기초
– 7차: 4차 산업혁명과 선교 전략
이처럼 한국 선교의 중요한 의제들은 당시 상황에 맞게 깊이 있게 다뤄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또 하나의 전환점 앞에 서 있습니다. 세계 교회가 겪고 있는 급격한 변화 속에서, 한국 선교 역시 그 흐름을 읽고 전략을 새롭게 재정립해야 할 때입니다.
- 세계 기독교의 흐름: 비서구의 부상
1900년대, 전 세계 기독교인의 82%가 서구에 있었지만, 2020년 현재는 그 비율이 33%로 줄었고, 비서구(Global South) 기독교인의 비중은 67%에 달합니다. 2050년에는 세계기독교인의 60%가 아프리카에 있으리라는 통계도 발표되었습니다.
기독교의 중심은 이미 50년 전부터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로 이동했으며, 서구의 기독교가 쇠퇴하는 사이 비서구 지역의 교회들은 오늘날 기독교의 성장과 부흥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지역들은 동시에 이 지역들은 빈곤, 불안정한 자원, 교육 기회의 부족 등으로 인한 도전에도 직면해 있습니다.
또한 1970년과 2021년을 비교했을 때,
– 서구 선교사 수는 거의 동일하게 22만 7천 명 수준으로 유지되었지만,
– 비서구 선교사 수는 3만 1천 명에서 20만 3천 명으로 급증했습니다.
이는 앞으로의 선교 흐름이 비서구 중심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한국 교회와 한국 선교가 나아갈 길은 어떠해야 할까요?
- 한국 선교의 변화 방향
대한민국은 지리적으로 비서구이지만 경제적 위치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가 파송한 선교사님들은 우리가 배웠던 대로 서구 선교사들이 선교했던 방식(크리스텐덤 선교: Christendom Mission) 즉, 자본(선교재정) 중심, 건물 중심, 외부자 중심, 프로젝트 중심의 선교를
그대로 반복하였습니다. 그러나 통계가 보여주는 시대적 상황은 이런 서양 주도의 외부자 중심적인
선교(Christendom Mission)는 더 이상 진행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다음의 세 가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① 현지인 중심(Local-Led)의 선교
선교사는 단독으로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 교회와 사역자들과 네트워크를 이루고 그들을 중심에 두는 구조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현지 교회가 선교의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선교사의 역할은 현지교회를 제쳐놓고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교회가 선교(목회)를 잘 하도록 그들을 돕는 역할입니다. 선교사의 사역(교회 개척 등) 을 현지인이 얼마나 긍정적으로 인지하는 지가 중요합니다.
② 내부자 중심(Insider Movement)의 선교
내부자는 그 나라의 주인입니다. 현지인이 비록 재정적으로 가난하고, 교육이 높지 않고 신학적 소양이 부족하다고 하여도 그들은 그 땅의 주인이고 선교사는 태생적으로 외부인이기에 언젠가는 고국으로 돌어가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지인은 자기 나라의 문화와 언어에 선교사(외부인) 보다 우수하며 내부자(insider)자기 문화권안에서 사회 안에서 복음 이해가 더욱 높다고 하겠습니다.
③ 자본(선교재정) 중심 선교 지양
선교사는 돈(선교재정)으로 하는 사역이 아닌, 기도와 영적 능력으로 이끄는 사역을 회복해야 합니다. 값비싼 건물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고, 시스템이 아니라 영적 생명입니다. 성육신 하신 예수님을 본받아 그 땅에서 생존가능한 전략이 필요합니다. 물질로 현지인과 관계를 맺는 것은 언젠가는 관계가 단절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비서구 나라들에서 인간관계는 중요하기에 선교사는 물질로 관계를 맺기 보다 인간적인 관계를 갖는 것이 좋습니다.
- 공동체와 협력의 선교로
이번 NCOWE8에는 다양한 부문에서 초청된 14개의 위원회가 함께했습니다.
– 전체 참가자의 35%는 여성,
– 참석자는 목회자, 신학자, 차세대, 선교사, 선교단체 리더 등 다양하며
– 글로벌 남반구의 리더들(남미, 아시아, 아프리카)과 협력하며 논의가 진행됩니다.
이는 과거의 폐쇄적인 선교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성과 상호 협력, 그리고 세계 교회와의 공동 리더십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발걸음입니다.
이제 말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국 선교는 이제 ‘보내는 교회’의 역할을 넘어서, 함께 걷는 선교, 동역의 선교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서구와 비서구, 남과 북, 세대와 성별, 직분과 지역을 넘어서는 진정한 하나님 나라 중심의
선교 협력이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시작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번 제8회NCOWE에 참석하신 여러분 모두의 기도와 헌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제8회 전략회의를 통해 한국 선교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설계해 나가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새로운 교회를 소망하여 / 한철호 선교사
(미션파트너스, NCOWE 프로그램위원장)
변화의 지점들
- 1. 오래전부터 비서구권 교회의 성장을 주시했던 선교 역사학자 앤드루 월스는 지난 2000년 동안 일어난 교회의 확장 역사에서 세 번의 큰 전환점이 있었다고 관찰했다. 첫 번째는 안디옥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유대 그리스도인이 이스라엘 민족의 메시아를 그리스도인들의 주(Kyrios)라고 전파한 것이다. (행11;19~20) 이 사건을 통해 유대인들에게만 머물러 있던 복음이 헬레니즘 문명권과 전 세계로 문화의 경계를 넘어 확산되는 길을 열게 되었다. 두 번째 전환점은 5세기 북유럽과 서유럽이 복음화되면서 기독교 왕국 즉 국가 권력과 기독교가 동일시되면서 기독교가 힘을 가진 세력으로 복음을 전하는 크리스텐덤 시대가 열린 것이다. 세 번째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그 절정을 향해 가고 있는 것으로 기독교가 남반구 대륙 전역으로 확산하면서 진정한 의미의 세계 기독교 시대가 열린 것이다.1우리가 이러한 세 차례의 변화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선교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뀐 지점들이라는 것 때문이다.
- 2. 패러다임(paradigm)이란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테두리로서의 인식의 체계, 또는 사물에 대한 이론적인 틀이나 체계를 의미하는 개념이다.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은 한 시대의 과학의 틀이 한계에 봉착하면 다른 체계가 대체해 왔다는 패러다임(paradigm)전환 이론을 주장하였다. 패러다임 전환이란 특정한 패러다임으로 해결될 수 없는 현상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날 때 일어나는 현상으로 이미 패러다임이 이동되었음에도 계속 과거의 패러다임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결국 한계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현상은 단지 과학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 따라서 패러다임의 이동은 자발적으로는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상황과 환경이 변화될 때 일어나게 된다.
오늘날 세계선교의 상황과 환경이 바뀌고 있다. 이로 인해 오늘날 선교의 패러다임이 이동했다는
1 앤드류 월스, <세계기독교와 선교운동>, 박상연 옮김 (서울: IVP, 2018), 153
사실을 한국선교가 인지하고 이에 적응하지 않으면 한국 선교는 한계를 경험하지 않을 수 없다.
상황 인식
- 선교 패러다임의 이동이 발생하게 된 배경과 상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 오늘날 기독교는 서구의 크리스텐덤(Christendom) 시대에서 탈식민지화(post-colonial), 탈서구(post-Western) 시대를 지나고 세계 기독교(World Christianity/Global Christianity) 시대로 옮겨 가고 있다. 과거 선교지(mission :feld)였던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global south & global east)의 교회가 성장하면서 이제 그들은 선교 세력(mission force)으로 바뀌고 있다. 서구 크리스텐덤 선교의 기본 작동 방식은 힘이었다. 길게는 서유럽의 교회가 활성화된 지난 1300년 동안 그리고 짧게는 17세기 이후 서구 중심의 ‘위대한 선교의 시대’가 가능하게 했던 것도 힘에 의한 선교였다. 물론 서구 선교의 바탕에는 교회와 선교사의 희생과 섬김이 있었지만, 선구 선교는 열강의 식민지 확장이라는 배경을 가지고 진행되었음을 부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힘에 의한 선교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2) 또한 이제까지 기독교의 중심지였던 서구는 현대사회(modern)와 후기 현대사회(post- modern)를 지나 초 후기 현대사회((post-post-modern)로 들어가면서 급속한 세속화로 더 이상 기독교 중심지가 아니며, 오히려 세계화와 인구 이동으로 인해 오히려 복음을 들어야 할 다인종 다문화 사회로 전환되고 있다. 그 결과 선교는 서구가 일방적으로 주도하던 것에서 벗어나 다중심적이고(polycentric) 쌍방향적 혹은 전 방향(all direction)으로 진행되며 통합적(Integral)이고 총체적(Wholistic)으로 전개되는 시점에 와 있다.
3) 세계화(Globalization)와 산업화의 폐해가 불러온 코로나 팬데믹 시대가 가져다준 가장 큰 깨달음은 지역(Local)의 중요성이다. 크리스덴덤 시대의 선교가 외부로부터 가는 자 중심이었다면, 코로나 시대 이후 세계 기독교 시대의 선교는 내부인(Indigenous)이 중심이 되어야 하며(Centering local, the future of mission is in indigenous)2, 내부인들은 자립, 자치, 자전을 넘어서서 그들에 의한 자신학화 혹은 자선교화를 통해 자신의 문화 공동체 안에서 스스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공동체를 세워가고 이 과정을 외부자가 돕는 것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즉 오늘날 선교는 세계가 주도하고 지역이 반응하는 관점에서 지역이 주도하고 세계가 반응하는 것으로 전환되었다.
2 WEA 선교분과 디텍터인 J Matenga는 ‘선교의 미래는 내부인에 달려있다’(the future of mission is in indigenous)라고 주장한다.
4) 서구 복음주의의 선교의 흐름은 확장된 선교 개념을 수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서구 선교가
주도했던 지리적 개념과 힘에 의한 선교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복음이 지리적, 민족적, 종교적 경계를 넘어가는 것 정도가 아니라 영역, 세대, 세계관, 신분, 계급, 빈부, 문화의 경계를 넘어가지 않으면 전달될 수 없음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또한 자신들의 국가에서는 복음이 더 이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데 해외에 가서 선교하는 일의 정당성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한 측면과 더불어 서구 사회 자체가 선교지임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즉 서구교회는 이제까지 해온 선교 방향에 대한 자성의 차원에서 자신의 교회를 반추하고 서구 교회의 내부적 변화에 관심이 증가하는 한편, 다수세계교회(Majority World)에서는 교회 성장의 결과로 선교가 시작되는 시점이라 가는 선교에 참여하는 방향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이 경우 서구 선교는 지리적 또는 문화적 경계를 넘는 일에 소극적일 수 있고, 한편 준비되지 않은 다수세계교회의 선교는 서구 선교에 대한 충분한 반추의 부재로 실수를 반복할 수 있다. 즉 오늘날 세계 기독교 상황에서 필립 젠킨스의 지적대로 서구교회는 부흥의 과제가 있고,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는 다수세계교회는 신학적 발전의 과제가 주어져 있다.3
5) 한편 한국선교의 모체가 되는 한국 교회는 권위주의와 유교문화의 역기능적 측면이 가진 한계와 급속한 세속화와 인구 격감 등의 사회적 변화의 직격탄을 맞고 정체 상태에 돌입하면서 교회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이 논의의 결과에 따라 한국선교의 방향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6) 세상과 마찬가지로 세계 기독교(World Christianity) 시대에 선교는 새로운 표준(New Normal)을 요청하고 있다. 서구 선교 흐름의 마지막 시대에 부흥하기 시작하여 이제까지 서구 방식의 선교에 참여한 한국선교는 이제 부상하는 세계 기독교와 호흡을 같이하는 선교의 새로운 표준이 필요하다. 좋은 교회로부터 좋은 선교가 시작된다. 동시에 선교가 교회를 만든다. 따라서 선교에 참여하는 우리들이 좋은 선교를 모색하고 실현해 내는 과정에서 한국교회의 건강성도 회복될 것이다.
7) 새로운 표준 제시는 새로운 시각으로부터 가능하다. 새로운 시각은 하나님에게서 온다.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다보고 회개를 촉구하며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던 선자자들처럼,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현재의 한국 선교를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다보고 회개를
3 Philip Jenkins, 표e Next Christendom, Oxford University Press (Oxford, 2007)
촉구하면 대안을 제시하는 예언자적 상상력이 필요하다.4 선지자적 메시지는 인간의 계획과 의도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에게는 철저한 회개와 말씀으로부터 듣는 겸손함과 기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 4. 한국선교의 현상과 과제
2000년 경 한국 선교사의 수가 미국에 이어 세계선교사수 2위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회자되면서 세계교회는 한국선교의 성장을 감탄해 하면서 동시에 한국선교를 평가하기 시작했다. 아래의 사항들이 세계교가 보는 한국 선교사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이다. 문제는 선교지의 세계 교회로부터의 이런 평가가 2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하고 있지 않다는 있다는 점이다.5
장점
- activism but often too simple and no strategy (활동적 그러나 단순하고 전략 부재)
- Culturally and geographically near to major un-reached area (주요 미전도 지역과 문화- 지리적 근접)
- Understand spiritual warfare (영적 전투에 대한 이해력)
- Good theological education (좋은 신학 교육)
- Sacri:fcial commitment (희생적 헌신)
- Passion for evangelism (전도에 대한 열정)
- 표eological conviction and Bible knowledge (신학적 확신과 성경 지식)
- Strong support from local church in prayer and :fnance (파송교회의 기도와 재정의 강력한 지원)
- Can survive in diffi ult situation (어려운 상황에서의 생존력)
단점
- weak in network and partnership (네트웍과 파트너십)
- weak in cross-cultural sensitivity (타문화에 대한 민감성)
- weak cooperation in the :feld (현장에서의 협력)
- need next generation of global minded ones for strategic thinking (전략적 사고를 위한 전세계적 생각을 가지 다음 세대의 출현)
- too much denominational/ individual local church centered (과도한 교단 혹은 지역교회 중심)
- strong theological conviction brings inflexibility (강력한 신학적 확신으로 인한 유연성 부재)
4 월터 브루그만, 예언자적 상상력, 복있는 사람, (서울, 2023)
5 William Taylor, 2004년 선교한국 선교사 모임 발표 자료
- lack of theology of vocation/work (일과 소명에 대한 신학 부재)
- aggressive but no solid content (저돌적이지만 단단히 내실 부재)
- weak pre-:feld training or cross-cultural experience (예비 선교사 훈련과 현장 경험의 적절성)
상당한 시간 동안 한국선교가 다양한 변화를 모색했지만, 같은 문제가 계속 발생하는 것은 패러다임의 이동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일 한 패러다임 안에서 기존 방식을 보완하거나 새로운 전략을 소개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패러다임 이동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즉 한국선교는 앤드루 월스가 언급한 역사 속에서 일어난 세 번의 패러다임 변화를 인지하고 이를 수용하는 데 여전히 미숙한 상태에 있다.
1) 첫째, 선교는 단지 멀리 가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경계를 넘어가야 한다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완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선교가 해외로 가는 것(overseas)이 아니라, 문화를 넘어가는 것 혹은 문화가 교차하는 과정(cross-cultural)에서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라는 점을 여전히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선교가 지리적으로 해외로 가는 것이라는 측면만 강조된 것은 근대 선교가 서구 열강들이 해외로 가서 영토를 정복하고 그 뒤를 따라 선교사가 나가는 형태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된 한국선교의 단점에서 나타난 여러 현상은 이런 점을 반영하고 있다. 선교는 어디로 가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로 가느냐의 문제이다. 이 변화를 초대교회가 인식했고(행10:21), 근현대 선교 운동에서 종족 중심의 선교 운동을 재발견했고, 그리고 오늘날 움직이는 사람들 시대(people on the move)를 통해서 다시 확인되고 있다.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그 사람과 그가 속한 공동체의 문화, 사상, 종교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우선 되어야 한다.
2) 둘째, 근현대 선교를 주도했던 서구의 크리스텐덤 방식, 즉 힘에 의한 선교는 복음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사회적 변화를 수용하거나 적응하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앤드루 월스가 언급한 대로
‘문화의 포로이자 해방자로서의 복음’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힘에 의한 선교는 우리가 벗어나야 할 사회적 패러다임이다. 역사 속에서 거듭 확인된 것은 선교는 힘 있는 자들에 의해서 발전되지 않았다. 선교는 오히려 연약한 자, 고난받는 자, 정복당한 자에 의해서 이뤄졌다. 중심부가 주변부를 바꾼 것이 아니라 주변부가 중심부를 바꾸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초대교회의 주변부가 로마를 복음화한 것이지, 중심부였던 로마는 세계를 복음화하지 않았다. 오히려 복음의 확산은 당시 주변부였던 중부 유럽 야만인의 로마 침공으로 이뤄진 것이고, 그 이후 세계 복음화의 과정 또한 비록 서부
및 북부 유럽의 기독교 국가 세력에 의해 이뤄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의 복음화는 주변부 세력에 의해서 이뤄진 것이다. 중심 세력이 주도한 복음화 시도는 온통 지배와 분열과 파괴와 억압의 시간이었고, 이것이 교회 역사의 비극이었다.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한국교회와 선교의 확장도
한국교회가 세상에서 주변부였을 때 일어난 일이다. 한국교회와 선교가 주변부에서 성장하여
중심부 세력이 되면서 한국교회는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배척되고 선교는 그 힘을 잃어버리고 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우리의 과제인 한국교회의 재부흥과 선교의 회복은 반드시 주변부에서부터 일어나야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중심부가 이점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한국선교의 중심부에 있는 이들이 모여서 목표를 세우고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역사적 시각에서 볼 때 크게 유의미하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선교 중심부가 모색해야 할 것은 오히려 회개와 태도의 변화이다.
이제 한국선교는 무엇이 성공적인 선교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한국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하지 않거나 놀라운 교회의 부흥이 일어나지 않는 한 현재 교회와 선교의 회복과 성장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제까지 해왔던 방식으로 선교를 활성화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한국선교가 현재보다 더 큰 수적 성장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한국선교의 성장과 성숙을 다른 방식으로 계측해야 한다. 예를 들면, 선교사의 수가 늘어나는 것이 한국선교가 성장하거나 성숙해진 증거라는 과거의 잣대를 바꿔야 한다. 선교는 선교사가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의 전환이 가능하다면 한국선교의 성숙을 가늠하는 잣대가 달라질 수 있다. 한 선교사가 얼마나 많은 교회를 개척했는가 대신 현지 교회가 스스로 배가하고 열매 맺을 수 있도록 선교사가 무엇을 했는가의 잣대를 사용한다면 그 결과는 달라질 것이다.
3) 셋째, 최근 확산하는 세계교회에 대한 담론은 1910년 에든버러대회에서 언급된 세계교회 혹은 1960년대 전후로 확산한 WCC에서 말하는 에큐메니즘과는 다른 현상을 말한다. 1910년에서 전 세계에서 사역하는 서양 선교사 들의 시각에서 언급된 세계교회였고, 1960년대는 교회의 연합으로서의 세계교회를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등장하는 세계교회에 대한 담론은 세계의 모든 교회가 그들이 가진 다양한 문화와 특징을 가지고 선교적으로 함께 동등하게 관여하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세계교회가 극복해야 할 과제는 역사상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도전에 직면한 과제이다. 예를 들면, 서구교회가 비서구교회의 성장을 인정하고 함께 파트너십을 만들어 가려고 하고 있지만 진정한 파트너십은 동등한 우정 관계에서만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않으면 요즘 등장하는 수정된 크리스텐덤 모델 즉 서구는 물적 혹은 전략적 자원을 공급하고 비서구는 인적 자원을 공급하는 것과 같은 모델은 성공할 수 없다. 자원과 전략적 지원 없이 어떤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없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또한 부상하는 다수세계 교회(Majority World Church)도 장차 스스로 패권적 선교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체득하지 않는 한 세계교회의 등장이 가져다준 오늘의 시대적 기회는 세계 복음화로 이어질 수 없다.
- 선지자적 상상력을 위한 간구와 태도 변화
1) 결국 우리는 선교의 주인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최근 복음주의 권에서도 선교는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본질과 관련된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대한 적극적인 이해와 적용이 일어나고 있다. 또한 하나님의 선교를 이해하려면 하나님의 선교의 대상인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창조된 인간에 대한 이해도 동반되어야 한다. 최근 복음주의 선교 신학자들이 인간 이해에 대한 새로운 모색을 시도하고 있다.
2) 우리에게 선지자적 혹은 예언자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선지자들은 단지 환상으로 미래를 본 것이 아니다. 현상을 바라다보고 이를 역사적 시각을 보면서 미래를 예언하고 상상한 것이다. 성경에서 선지자들이 촉구한 것은 행동의 변화 이전에 태도의 변화였다. 한국선교가 새로운 시대에 자신의 위치를 발견하고 세계교회와 함께 선교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태도의 변화를 모색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발견한 핵심 가치에 대한 비전을 세우고 그 비전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우선해야 할 것은 발견한 핵심 가치를 어떤 시각으로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는 일이다. 오늘날 한국선교에서 부재한 것은 핵심 가치에 대한 비전과 행동 전략이 아니다. 전환된 핵심 가치를 어떤 태도로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번 NCOWE는 비전과 행동 전략보다는 핵심 가치의 변화에 따른 우리의 태도를 함께 숙고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태도 변화를 위해서는 상황과 상대로부터 경청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경청은 우리를 자기 성찰로 이끈다. 자기성찰이 가능할 때만 위기 탈출이 가능하다. 태도 변화를 위한 경청과 자기 성찰이 한국 선교를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다.
3) 이번 8차 NCOWE의 주제어인 “세계 기독교 시대에 한국선교의 재고와 전망” (Rethinking Korean mission in World Christianity Today and Beyond)이 가지는 함의는 한국선교를 되짚어 볼 때(Rethink) 단순히 보완해야 할 부분을 점검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시대적 상황 속에서 무엇이 문제였는가를 근본적으로 함께 성찰하고(Reflect) 돌이키고(Repent) 새롭게 하여(Rebuild) 다시 활성화해야 하는 (Revive) 것을 의미한다.
서구 선교의 끝부분에 부흥을 경험하고 성장한 한국선교는 서구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 유산을 이어가면서 세계 선교에 공헌하는 은혜를 누린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한다. 한편 이제는 우리 가운데 내재한 서구 선교의 한계를 극복하고, 겸손하게 세계 교회의 일원으로
함께 나아갈 필요가 있다. 이제까지의 한국 선교가 반추적으로 적용하지 못했던 서구 크리스텐덤
패러다임과 한국 사회에 내재한 유교문화의 역기능적 요소를 극복하는 새로운 태도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8차 NCOWE 프로그램개요
- 이번 8차 NCOWE 프로그램은 이런 상황 인식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1) NCOWE(세계 복음화를 위한 국가 전략회의 National Consultation On World Evangelization)의 배경은 GCOWE(Global Consultation On World Evangelization)이다. GCOWE는 1974년 로잔대회에서 제시된 세계 복음화와 관련된 두 개의 중요한 패러다임 중의 하나로 랄프 윈터가 말한 미전도 종족선교의 과업을 실행하기 위해 1989년 4월 첫 싱가포르에서 시작한 모임으로, 1989년 8월 2차 로잔대회 이후 확산한 AD2000 & Beyond 운동(a church for every people and the gospel for every person by the year 2000)의 실천을 위해 1995년(서울)과 1997년(프리토리아) 등에서 모인 전 세계적인 전략회의였다.
KWMA는 GCOWE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국가별 전략회의를 개최할 요청에 반응하여, 1991년에 1차 회의를 시작으로 지난 2018년까지 7차에 걸친 NCOWE를 통해 GCOWE가 제시했던 전방 개척 선교의 완성이라는 선교 과제에 대한 한국선교 전략을 논의했다. 초기에는 전방 개척 선교 논의에 집중했고 후에는 그 논의의 범위를 넓혀 한국 선교 전반에 대해 논의하여 방향을 제시했다. 지난 일곱 번의 NCOWE에서는 주로 이런 관점에서 전략을 논의하고 특정한 시점에 성취할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가속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2) 이번 8차 NCOWE를 이전 모임들과 견주어 볼 때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가진다. 세계 복음화를 위한 한국선교의 방향을 모색하고 추진한다는 측면에서 연속성이 있다. 따라서 이번 NCOWE에서도 한국교회 전반에 대해서 논의하기보다는 논의의 폭을 좁혀서 선교 즉 타 문화권 복음 전파라는 타 문화권 선교 진영에게 주어진 과제에 집중한다. 물론 선교의 본질이라는 측면에서 교회와 선교를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선교는 교회가 하는 것이고 따라서 좋은 교회가 좋은 선교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교함으로써 교회가 만들어진다. 따라서 좋은 선교가 좋은 교회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번 8차 NCOWE에서 변화된 타 문화권 선교 환경에 대한 논의에 집중함으로서 한국 선교가 한국 교회를 섬기는 역할을 감당할 것이라는 기대가 이번 모임의 방향이다. 한편 불연속적인 측면도 있다. 패러다임이 변화된 것을 수용한다면 그 실천 과제는
우리가 하는 선교에 대한 태도와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 있다. 체계적인 폐기(Systematic
Abandonment)와 단절이 필요하다. 이번 8차 NCOWE에서는 모임을 마치면서 이전처럼 어떤 가시적 목표지점과 성취해야 할 내용을 제시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가야 할 새로운 방향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지점에 이르길 기대한다.
큰 배가 방향을 바꾸는 일은 천천히 해야 하고 오래 걸리는 일이다. 저항도 만만치 않다. 성공을 장담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 소망이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교이기 때문이다. 이번 기간에 우리가 겸손히 선교의 본체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대하며 은혜를 구하는 일이 일어날 것을 소망한다.
- 이런 방향성에 공감한 프로그램팀은 이번 8차 NCOWE에서 네 가지 주제를 다루고자 한다. 이 네 주제는 주로 설교와 매일 오전에 진행되는 주제 강의를 통해서 전달된다.
1) 첫째, 선교와 거룩(Mission and Holiness)이다. 선교는 우리에게 주어진 과업 이상의 것이다. 선교는 하나님의 것이고 이 세상을 향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움직임이다. 하나님은 거룩과 사랑의 본질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의 선교는 거룩과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는 일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선교에 초대된 우리 또한 거룩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세상에 대한 사랑의 실천에 참여하는 선교를 해야 한다.
둘째, 한국선교와 세계 기독교 (Korean mission and World Christianity)이다. 우리 가운데 이미 와 있는 세계 기독교(World Christianity)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인식 그리고 그 안에서 한국선교(사)에 대한 반추와 본질적인 변화를 위해 어떤 질문을 해야 할 것인가, 어떻게 세계교회와의 협력을 이뤄 갈 것인가 등에 대해 논의한다.
셋째, 남겨진 과제, 발견할 과제 (Frontiers in Mission)이다. 한국선교에 주어졌던 세계 복음화의 과업 중에서 돌파하지 못했던 지역과 영역 혹은 사상과 문화는 어떤 것들이며 그 이유를 확인 후 평가를 거쳐 수정하고, 실제적 돌파를 위한 모델들을 제시한다.
넷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최선(Best Practice for God’s Glory)을 모색하는 것이다. 한국교회에 주어진 선교가 우리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광스러운 선물임을 깨닫고 겸손과 최선을 다해 예수님의 선교 방식인 성육신적 태도로 섬길 수 있기 위해, 변화된 선교
생태계를 이해하고 한국교회, 선교단체, 선교사, 성도, 그리고 다음 세대가 각각 어떤 지속 가능한
최선의 방안을 만들고 실현해 갈 것인가를 제시하고 논의한다.
2) 아침저녁으로 이어지는 성경 강해와 말씀 을 통해 우 주적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고 통일하시는 전 세계적 계획 가운데 한국 선교에 들려주시는 선지적 메시지를 듣게 된다. 일반적으로 에베소서는 교회론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바울의 다른
서신들이 특정한 교회(지역)에 보내진 서신인 것에 반해 에베소서에서 ‘교회’는 보편적인 교회를
가리킨다. 전 우주적이고 세계적이며 만물을 통합하는 예수께서 머리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회를 말한다(1; 21~23, 3; 9~11). 교회는 만물을 온전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삶과 사역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온 세상에 선포하는 보내심을 받은 선교적 교회이다. 이런 의미에서 에베소서는 선교서신이다.
1장 1절부터 4장 6절까지의 8번의 설교를 통해서 다시 출발선상에 선 한국선교와 이를 품고 있는 한국교회를 위한 말씀이 선포되길 소망하고 있다. 오전 성경강해의 경우 설교를 들은 후에 참가자들은 테이블별로 나눔과 기도의 시간을 가진다. 저녁 설교의 경우 설교를 들은 후 주제와 관련된 2인(선교사)의 간증이 이어지고, 간증 후에 모두 함께 긴 호흡으로 기도하는 기도회로 이어진다.
3) 트랙별 모임은 이번 NCOWE에서 깊은 논의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서 준비되었다. 이번 NCOWE의 핵심은 전체 발제자들보다는 각 트랙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를 함께 듣고 토론하고 기도하는 트랙 참가자들이다.
⑴ 다음 세대 선교 동원(Next generation mission mobilization): 다음 세대 선교 동원: 선교
역사에서 ‘청년 대학생’은 항상 그 중심에 있었다. 오늘날 한국교회와 청년대학생 사역의 현실에서 다시 그들 스스로가 선교의 주체로 서기 위해서는 새로운 도전과 플랫폼이 필요하다. 청년인구감소,
대학문화의 세속화 등 극복할 문제들이 많이 있지만 기독청년과 다음 세대 선교동원의 활성화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와 실천은 한국교회와 선교의 미래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사안이다.
⑵ 디아스포라 (People on the move) : 21세기에 들어서 인구 유동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디아스포라’는 지구촌(Glocal) 시대의 핵심 현상이며 하나님의 섭리다. 인구 유동(People on the move) 현상을 단순히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를 넘어서서 난민, 비즈니스, 국제결혼, 투자 등 다양한 형태의 이주민 그리고 유학생 등 그 범주가 확대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선교 형태와 기회가 만들어지고 있다.
⑶ 디지털 시대와 선교(Tech and Mission) : 한국선교는 사이버 세계와 신흥 기술의 도전 과제
및 기회를 이해하고 글로벌 선교를 가속화하기 위해 기술을 최적화하기 위해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선교정보, IT, 문서사역, 4차 산업시대의 선교 정보 이동과 활용, 리서치, 아카이브, 도서관, 미디어 등을 어떻게 선교와 연결 시킬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⑷ 변화 속의 선교단체(Missions and agencies in f lux) : 크리스텐덤(Christendom) 시대의 서구 선교 패러다임의 끝물에서 배우고 전달되어 시작된 한국선교와 이를 실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현재의 선교단체 구조가 어떻게 다가오는 시대에 새로운 세계기독교(World Christianity)시대에 적합한 선교 생태계로 전환되고 이에 걸맞는 구조로 변화되어야 하는지를 논의한다. 다가오는 시대에 선교 지속 가능성의 관점에서 선교단체의 구조, 모델, 운영방식, 선교사 정체성에 대한 본질적인 성찰과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다.
⑸ 변화하는 여성 선교사(Transforming Woman Missionary) : 변화하는 여성선교사의 정체성 재정립과 남녀선교사의 파트너십 강화, 세계 선교가 요구하는 한국 여성 선교사의 역할과 전문성을 확대하는 논의와 실천사항 지침을 마련하여야 한다.
⑹ 선교적교회로 가는 로드맵(Roadmap to a Missional Church) : 교회가 선교적 본질을 이해하고, 선교를 지원하는 구조 정도가 아니라 선교하는 공동체로 전환되기 위한 인식의 변화가 계속되어야 한다. 교회는 선교사 파송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교회 구성원 전체가 선교인(missioner)로 살아가도록 동원하고 훈련하고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가야 한다.
⑺ 자신학화(Self-표eologizing and Training) : 한국선교는 선교의 자립, 자치, 자전을 넘어서서 자신학화를 어떻게 이루어 가면 선교지에서 어떻게 이뤄가도록 도울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상당히 오랫동안 논의되어 왔으나 이론적 차원에서만 남겨져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실제적 적용과 논의가 확산될 필요가 있다. 선교적 성경읽기 또한 중요한 영역인데, 선교사들이 현장에서 어떻게 선교적 성경읽기를 해내고 이를 사역과 연계해 갈 것인가 등에 대해 신학자, 실천가들이 함께 논의하고 그 결과물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⑻ 전방개척 선교(Frontiers in Mission) : 미전도, 미복음화, 최소 복음화 지역의 돌파와 자생적 교회 배가를 위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인종(종족), 종교, 사회계층뿐만 아니라 복음으로부터 단절된 모든 문화 집단 안에 복음의 돌파가 일어나고, 스스로 배가하는 제자 그룹에 형성되고, 복음이 그들 문화에서 토착화된 방법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운동의 배가가 일어나야 하고 더
나아가서 문화로 단절된 계층(세대)과 영역(환경), 사상 안에도 복음이 벽을 넘어 전달되어야 한다.
⑼ 텐트메이킹 & BAM(Mission and Vocation) : 변화된 선교현장과 세상은 직업과 선교를 연결하고 통합해야 하는 시대에 와 있다. 일과 영성을 통합하는 일터 영성의 세계관을 가지고 직업을 통하여 선교하고, 일터 안에서 선교하고, 직업을 가지고 선교하기 등 다양한 방식과 개념의 확장이 필요하다. 오늘날 변환된 선교 환경은 더 많은 텐트메이커와 비즈니스를 통한 선교 돌파를 기대하고 있다.
⑽ 현지인 중심의 동반자 선교(Collaboration in Mission) : 외부자에 의해서 주도되는 서구형태의 일방적인 선교 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한국선교(사)가 내부자 중심의 선교 시대에는 극복해야 할 한계를 가지고 있다. 돈과 선교, 파트너십, 리더십과 섬김, 입구전략과 출구전략, 내부인 주도의 배가되는 교회개척, 선교사의 언행일치(거룩), 고난 받는 지역에서의 선교와 동반자 관계 등의 영역에서 새로운 표준이 필요하다.
- 이번 NCOWE의 또 하나 핵심 가치는 하나됨이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이 촉구했던 것은 하나님의 선교는 하나됨으로 완성된다. 바울은 만물의 통치자이시면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 되는 것에서부터 교회는 시작된다고 말한다. 에베소서 2장 11절~22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하나가 되었다는 표현을 무려 7번이나 사용한다. 하나됨은 다름 아닌 제자들이 수행할 선교를 위한 핵심임을 말씀하신다. 요한복음 17:21 절에서“아버지께서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을 가시적으로 누리기 위해 이번 NOCWE는 모두 함께 식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성찬식 이후 점심 애찬을 나누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함께 먹고 마시는 일이다. 마지막 날에 모든 민족과 족속과
나라와 열방들이 다 하나님에 베푸시는 천국의 잔치에 함께 참여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누리고 함께 먹고 마시며 찬송과 영광과 경배를 하나님께 돌리는 꿈을 함께 꾸는 것이다.
기대
- 초대교회는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제자들에게 위임하신 모든 민족을 복음화하는 일을 위해 만들어 졌다. 그 교회는 약속하신 오순절 성령 강림 후 베드로의 설교로부터 시작되었다. 베드로가 선지자 요엘의 예언을 인용하면서부터 시작된다.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오늘 이 자리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하나님의 복음이 온 세상에 선포되기를 소망하는 젊은이, 늙은이, 남자, 여자들이 다 같이 모였다. 이번 NCOWE에 우리가 함께 있는 동안 젊은이들이 한국 선교의 미래에 대한 환상을 보길 소망한다. 선교의 선배들은 다 이루지 못한 한국 선교의 미래를 다시 꿈꾸고 그 꿈을 다음 세대들에게 전해 주길 원한다. 하나님의 성령이 참가한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부어지어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진리를 다시 깨닫고, 우리의 연약함과 회개해야 할 것들, 그리고 나아갈 길에 대한 예언을 말하는 장이 되길 기대한다. 우리가 모두
한국선교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성령의 부어지심과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라는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는 역사에 다시 참여하는 역사가 이번
8차 NCOWE에서 일어나길 소망한다.
한국선교의 이해와 과제 / 홍현철 원장1(한국선교연구원)
이 글은 이전 한국선교연구원의 선교현황 자료 일부와 함께 2020년부터 한국선교연구원 (KRIM)과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가 선교 현황을 단일화하기로 한 후, 필자가 한국선교연 구원의 연구 책임자로 최근 삼 년간 조사 분석한 현황을 주요 기반으로 하여 작성하였으며, 현재 한 국선교의 현황과 함께 성찰적 관점 속에서 한국 선교를 이해하고 그 과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 I. 한국선교운동의 지속성과 과제
- 장기 선교사2와 선교 단체의 규모 변화
1900년대 초반 한국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하기 시작한 이래, 본격적인 한국선교현황은 1979년 부터 조사하기 시작하여 발표되었는데, 1979년에서 1989년까지 10년 동안 한국인 선교사 수는 93 명에서 1,178명으로 늘어났다. 이후 선교사의 수는 급격하게 증가하였지만, 2012년(19,798명)부터 는 더 이상 큰 폭의 증가가 나타나지 않았으며 완만한 증가를 하다가, 최근 3년간의 장기 선교사 수 (2020년 22,259명, 2021년 22,210명, 2022년 22,204명)는 거의 변화가 없으며, 미세하게 줄어든 수 준에 이르렀다. 선교 단체 또한 1979년 조사에서 선교 단체의 수는 21개로 시작하여 2022년 말 현재 228개 단체(교단 43개, 초교파 185개)로 증가하였다.3
아래 도표에서 보듯이 최근 3년간의 단체 인원 규모별 선교단체 수의 변화를 보면, 50명 이상 규
1 동아시아 지역에서 16년 동안 선교 사역을 하였으며, 현재 한국선교연구원(KRIM)의 원장을 맡고 있다.
2 최근 3년간 자료에서 선교사의 정의는 이전의 한국선교연구원에서 정의한 선교사 정의를 기반으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이전 한국선교연구원의 선교사 수에 관한 데이터는 함께 고려해서 볼 수 있다. 장기 선교사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타문화권(타문화권 선교에 직간접 기여)에서 2년 이상의 계획으로 선교사역을 하고 있는 한국인(한국 국적)으로서, 한국 내에 분명한 파송 단체 혹은 후원 주체(개교회 파송은 제외)가 있으며, 선교사로 모금을 하는 풀타임 사역자를 말한다. 국내본부의 장기, 행정 사역자, 단체 소속의 관리감독을 받는 자비량 선교사는 인정하고, 선교사 부부는 2명으로 계산하였다. 해외 선교 사역에 관여하지 않는 한인교회 목회자, 파송이 아닌 협력 선교사는 제외하였다. 이중으로 정식 소속된 선교사는 포함하되, 이중 소속 단체를 표기하여 중 복 계산되지 않도록 하였다. 다만, 최근의 동향을 반영하고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기 위해 한국 국적의 장기 선교사와 선교 단체 소속의 단기 선교사, 그리고 한국 단체의 파송을 받은 타국적의 국제 선교사로 구분하였다. 한국선교연구원, 「2020 한국선교현황 보고」, 2021년 2월 (서울: 한국선교연구원, 2021), 4.
3 한국선교연구원, 「1979-2022년 한국선교사 수」, https://krim.org/statisticsdata-2, 2023.02.21.
모의 단체 수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괄호 안은 전체 선교사에 대한 해당 규모 단체 소속 선교사 비율
(%)이다.
| 단체 규모 | 2020년4 | 2021년5 | 2022년6 |
| 50명 미만 | 162 (9.8) | 157 (10.1) | 155 (9.2) |
| 50-99 명 | 27 (8.3) | 26 (7.9) | 28 (8.2) |
| 100-199 명 | 19 (10.5) | 19 (10.3) | 19 (10.7) |
| 200-499 명 | 16 (26.2) | 16 (26.1) | 17 (26.2) |
| 500-999 명 | 4 (10.7) | 4 (11.0) | 4 (11.0) |
| 1000 명 이상 | 5 (34.5) | 5 (34.6) | 5 (34.7) |
<표 1> 최근 선교단체 규모별 수의 변화
특히 2022년 말 한국 선교사들 대부분(82.6%)은 선교사 회원이 100명 이상인 규모의 단체에 소속되어 있으며, 이 비율은 지난 3년간의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2020년 81.9%, 2021년 82.0%, 2022년 82.6%).
위에서 나타난 선교사 수의 변화와 선교단체 규모별 수의 변화를 볼 때, 단기적 관점에서 보면
2010년 이전의 선교사 증가처럼 큰 폭으로 늘거나 줄어들지 않는 안정화 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 2. 지속성의 과제
1) 연령 분포와 추이
우선 현재 선교사의 연령 분포를 살펴보면 50대 이상이 65.5%를 차지하고 있다(2022년 말 기 준). 반면, 30세 이하의 선교사 수는 8.0%에 불과하다.7 아래 표를 참조하면, 초창기 장기 선교사 중 30대 이하의 비율이 매우 높았으나 이후 가장 많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 선교사 연령 | 1994년8 | 2004년9 | 2012년10 | 2022년11 |
| 20대 | 17.8 | 7.9 | 4.4 | 0.9 |
| 30대 | 52.4 | 36.4 | 17.9 | 7.1 |
| 40대 | 22.4 | 41.8 | 42.2 | 26.5 |
| 50대 | 5.7 | 11.3 | 28.4 | 39.0 |
| 60대 이상 | 1.8 | 2.6 | 7.2 | 26.5 |
<표 2> 장기 선교사 연령별 분포 추이
4 한국선교연구원,「2020 한국선교현황 보고」, 4.
5 한국선교연구원,「2021 한국선교현황 보고」, 2022년 2월 (서울: 한국선교연구원, 2022), 3.
6 한국선교연구원,「2022 한국선교현황 보고」, 2023년 2월 (서울: 한국선교연구원, 2023), 7.
7 앞의 글, 2.
8 문상철,「1994년 기준 한국선교현황」, https://krim.org/1994-korean-mission-statistics, 1994. 10.10.
9 문상철,「2004년 기준 한국선교현황」, https://krim.org/2005-korean-mission-statistics, 2005. 03.09.
10 문상철,「한국선교현황 및 재정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https://krim.org/한국선교현황-및-재정에-대한-설문조사-결과, 2013.04.01.
11 한국선교연구원,「2022 한국선교현황 보고」, 2.
최근 신규 파송 선교사 중에서 30대 이하가 차지하는 비율은 좀 더 높은 수치(2022년 25.0%)를
보이기는 하지만, 신규로 파송되는 선교사가 전체 선교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3.50%인 것을 감안 하면, 30대 이하가 현재의 연령 비율에서 의미 있는 수치로 증가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12
2) 고령화
현재 한국 선교사의 평균연령은 53.1세이다. 60대 이상이 26.5%를 차지하고 있고, 70세 이상의 선교사는 3.39%로서,13 최근 그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14 이에 반해 지난 3년간 은퇴하는 선교 사의 수는 많지 않았다(2020년 170명, 2021년 189명, 2022년 202명). 그뿐만 아니라, 은퇴한 후에도 선교 사역을 중단하지 않고 지속하는 선교사의 비율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2020년 44.1%, 2021년 54.8%, 2022년 58.8%).15
이후 선교 현황을 모두 예측할 수는 없지만, 현 추세를 바탕으로 10년 이후의 한국 선교사 수를 예측해 본다면, 선교 단체의 규모와 선교사 수가 비슷하게 유지될 수도 있지만,16 지금보다 감소한 상 태의 모습으로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17 분명한 것은, 선교사 연령 비율에 있어서는 지금보다 한층 더 고령화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18 이러한 현상은 우리의 예상보다 더 심화하고, 또 빨리 진행될 수 도 있다. 고령화의 문제는 선교에 있어서 여러 가지 문제와 함께 선교계 전체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선교사 연령의 고령화는 건강 및 활동 지역의 제약과 관련된 문제뿐만 아니라, 은퇴에 따른 여러 제반 문제, 선교 운동의 역할과 자원에 있어 새로운 세대로의 흐름이 약화되는 현상이 생길 수 있으 며, 급격하게 변하는 선교 환경 가운데 정책을 정하거나 대처하는 데 있어 각 세대의 관점을 적절히 반영하기 어렵다. 그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평균연령이 낮은 국가에서 사역하게 될 경우 연령 차이
12 앞의 글, 3-4.
13 앞의 글, 2.
14 2020년에는 2.7%이며. 2021년은 2.92%이다. 다음을 참조하라. 한국선교연구원, 「2020 한국선교현황 보고」, 5; 2021 「한국선교현황 보고」, 5.
15 한국선교연구원,「2022 한국선교현황 보고」, 2-3;「2021 한국선교현황 보고」, 5. 은퇴 선교사를 조사할 때, 담당 실무자가 누적된 은퇴 선교사 총수를 답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를 피하고자 한 해 동안 발생한 은퇴라는 것을 명시하였다. 특히 2021년 현황조사에서는 48개 단체(전체 한국 장기 선교사의 59.6%가 소속)에서 제출한 10년 동안 누적된 은퇴 선교사 수가 608명으로 집계되었음을 참고할 때, 지난 시기에도 은퇴하는 선교사의 수가 많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16 한국선교연구원,「2020 한국선교현황 보고」, 1-6;「2021 한국선교현황 보고」, 1-6;「2022 한국선교현황 보고」, 1-4. 표면적인 선교사 수 증감요소들의 비율(신규파송, 사역중단, 은퇴)을 통해 볼 때에는 3년간 증감요인의 수치는 약 1% 증가하거나 1% 미만의 증가 요인이 계산된다(2020년 0.24%, 2021년 0.91%, 2023년 1.17%). 하지만, 실제로는 2021년에 -0.22%, 2022년에는 –0.03%의 변화가 있었다.
17 이는 장기 선교사로 헌신할 수 있는 인구 변화(한국기독교인 수의 증감과 한국사회의 연령 비율)의 요소를 반영하여 예측해 볼 수도 있지만 그러한 요 소는 선교에 직접적인 요인이라기보다는 간접적인 요인이며, 선교현황 자료의 추이를 통해 볼 때 장기 선교사 수의 전년대비 증가율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데 있다. 2021년(–0.22%), 2022년(-0.03%)으로 미세하게 감소하였으며, 무엇보다도 50명 이하의 소규모 선교단체 중 일부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폐쇄됨 으로 인해 단체 수(2020년 162개, 2021년 157개, 2022년 155개)가 지속적으로 감소되고 있다. 신규로 추가되는 소규모 선교단체들은 수집된 현황의 데이터 를 분석해 볼 때, 대부분 파송단체가 아닌 전문 또는 지원 단체이다. 참조, 한국선교연구원,「2020 한국선교현황 보고」, 1-3;「2021 한국선교현황 보고」, 1-2;
「2022 한국선교현황 보고」, 1-8.
18 한국선교연구원,「2022 한국선교현황 보고」, 1-2; 최근 3년 간 장기 선교사 평균 연령은 2020년 52.1세, 2021년 52.5세, 2022년 53.1세이다.
로 인해 생기는 문제들에 직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는 높은 출산율로 인해 세
계에서 가장 젊은 인구를 가지고 있으며,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인구 70%가 30세 미만으로 구성 되어 있다.19 인도의 경우에도 10명 중 4명 이상(42.7%)이 25세 미만의 사람들이다.20 현재 평균 연령 이 53.1세인 한국 선교사가 이들 국가에서 사역할 때 연령과 세대 차이로 인해 생기는 어려움은 생각 하는 것보다 훨씬 클 수 있다.
따라서, 고령화의 문제는 선교 경험과 지식의 축적, 신중함 등에 있어서는 유리한 점이 있으나 선 교 전반에 있어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고령화 문제와 이에 따른 은퇴 선교사에 대한 구체적 인 규정이나 대책조차 아직 갖추지 못한 단체가 많이 있다.21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교 회와 개별 선교단체의 차원에서 논의하기보다는 좀 더 연합적인 차원에서 다룰 필요가 있으며, 파송 교회들과 선교단체들, 선교사 모두가 유기적으로 참여하여 정책을 세워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3) 성숙의 과제와 상호 책무
지금까지 한국의 세계선교가 양적으로 급격하게 성장함으로 인해 세계선교에 기여한 부분도 있 지만, 한국선교운동은 더 이상 양적인 성장이나 한국교회의 성장모델을 이식하는 것을 통해 세계선 교에 기여하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먼저 한국선교운동의 지속성과 관련하여 선교사들이 사역에 있어 자질과 태도에서 더욱 성숙해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선교단체와 선교사들의 내부 목소리를 반영한 보고서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22
성숙의 과제는 선교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선교적 책무를 함께 지고 있는 파송교회와 선교 단체에게도 있다. 일례로 2022년 현황조사에서는 장기 선교사들의 사역 유형(예: 교회개척, 교육사 업, 신학교, 캠퍼스 선교 등)을 파악하여 정리해 놓지 못했거나 사역 유형이 파악되지 않는 단체의 소 속 선교사의 수는 전체 선교사 중 18.3%를 차지하고 있다.23 그중 파송단체는 28개(전체 파송단체의 21.2%)이며, 그중 7개는 100명 이상의 선교사가 있는 단체이다.24
물론 일정 규모 이상의 한국 선교단체들 중에는 멤버관리와 위기관리 등 선교본부가 잘 갖춰진
- “YoungPeople’s Potential, the Key to Africa’s Sustainable Development,” https://www.un.org/ohrlls/news/young-people’s-potential-key-africa’s- sustainable- development, accessed Jun 1, 2023. 이와 관련하여 상세한 자료는 UN의 World Population Prospects 2022를 참조하라.
- LauraSilver, Christine Huang and Laura Clancy, “Key Facts as India Surpasses China as the World’s Most Populous Country,” https:// pewresearch.org/short-reads/2023/02/ 09/key-facts-as-india-surpasses-china-as-the-worlds-most-populous-country, Feb 9,2023.
21 은퇴 연령 규정에 답변을 한 단체(전체 단체의 81.5%) 중에서, 은퇴연령 규정이 있는 곳은 49.2%, 은퇴 연령 규정이 없는 곳은 50.8%로 나타났다. 한국 선교연구원, 「2022 한국선교현황 보고」, 3.
22 문상철,『한국 선교운동의 지속가능성과 재활성화 연구』 (서울: 한국선교연구원, 2016), 56-58.
23 한국선교연구원,「2022 한국선교현황 보고」, 6.
24 「2022 한국선교현황 보고」를 위해 수집된 내부 자료 참고.
파송단체도 다수 있지만, 한국의 파송선교단체 중 1/5에 해당하는 파송단체가 현장 선교사의 사역
에 관한 기초 정보인 사역유형에 대해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 선교단체가 선교사 동 원과 보내는 노력에 비해 선교사의 성숙한 사역을 이루도록 함께 책무를 지는 데 쏟는 노력은 부족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선교단체와 파송교회에서 선교 현장의 정보와 현장의 이슈에 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책무이기도 하다. 특히 선교사가 현장에서 팀을 이루어 리더십 이양과 지속성, 모금, 소유의 문제 등 이 관련된 사역을 진행할 경우 성숙한 선교를 하기 위해서는 선교사, 선교단체, 파송교회가 함께 상 호책무(mutual accountability)의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선교 현장의 핵심 관계자(stakeholders)인 현지 교회 지도자나 교단, 지역 교회 등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상호책무의 관점에서 보면, 선교 현장 사역의 구체적인 내용과 현장의 소리를 적극적으로 듣는 것은 성숙한 선교를 이루는 핵심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선교단체의 인력부족의 이유와 권한을 선교 현장과 선교지 필드 책임자에게 일임했다는 이유만으로 선교 현장의 상세한 정보와 현장의 이 슈를 관리하지 않는 것은 선교단체로서의 책무를 온전하게 실행했다고 볼 수 없다.
선교단체 본부는 다양한 선교 현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선 교사가 일정규모 이상이며, 본부의 체계가 잘 갖춰진 파송단체에서도 종종 국내에서 선교사 대회나 전체 회의를 할 때, 회의를 준비하고 주관하는 선교 단체 본부의 관점에서 출발한 의제(agenda)나 목 표가 대부분의 분량을 차지하기 쉬운데, 의도적으로 선교 현장(현장 선교사, 선교 현지인의 소리)의 다양한 의제가 좀 더 많이 반영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토착 교회나 사회가 가진 다양한 삶의 문제와 과제, 그리고 그들 속에 사역하는 선교사에게 발생하는 의제들은 비록 일부 지역의 문제일 수도 있지 만, 이후 미래 선교를 위한 중요한 열쇠를 제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 선교가 더욱 성숙해지려면, 신학적 성찰(theological reflection) 역량을 강화할 필요 가 있다. 선교사뿐만 아니라 선교 단체의 주요 관계자들이 표면에 드러난 것만 다룰 것이 아니라, 선 교 현장과 선교사, 선교 단체를 비평적이면서도 성찰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역량은 성숙한 선교를 이 뤄내는 데 중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교육적 측면에서 볼 때, 선교단체에서 실시하는 선교사 연장 교 육은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최근 선교단체에서 선교사의 연장 교육을 포함한 선교사 재교육 프로 그램을 실시하는 단체가 2021년에 비해 증가했다(2020년 23개 단체 774명, 2021년 27개 단체 511명, 2022년 29개 단체 964명).25 이러한 현장 선교사를 위한 교육프로그램들이 늘어나고 참여하는 수가 많아지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선교 단체에서 제출한 프로그램의 명칭들을 살펴볼 때(명 확하게 구분하기는 쉽지 않지만), 선교사의 전문성을 높이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전문성을 높이는 재교육도 중요하지만, 본질 회복을 위한 비평적이면서도 신학적 사고를 돕는 프로그램이 좀 더 늘어
25 한국선교연구원,「2022 한국선교현황 보고」, 10. 장단기 선교사의 연장 교육(또는 재교육)을 위해 활용되는 훈련 프로그램은 38개(단체 자체 프로그램
33개, 외부 프로그램 5개)로 집계되었다.
날 필요가 있다.26
- II. 선교 현장의 변화 속 선교 과제
- 선교지의 불안정성 증가
한국선교운동이 발전하면서 단체와 선교 구조가 빠른 속도와 함께 양적으로 성장하게 된 것에 는 전 지구적으로 형성된 글로벌화라는 흐름이 있었다. 이 흐름 가운데 선교적 기회와 안정성이 일정 부분 제공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전 지구적 시스템의 불안성과 모호성이 커져가고, 극 단적 지역주의와 민족주의 현상의 증가로 인해 일부 선교 현장의 안정성이 많이 떨어지고 있다.
선교지의 불안정성은 국내 임시 귀국하는 비율 속에서도 잘 드러난다. 2021년 한 해 동안 전체 선교사 중에서 임시로 귀국한 장기 선교사의 비율은 14.4%였다. 여기에서 일반적인 개인 이유(정기 안식년, 건강, 모금, 방문 등)은 49.2%였으며 코로나19와 함께 사역지 환경의 부득이한 사유(치안, 비 자거절, 추방 등)는 50.8%였다.27 2022년 한 해 동안 임시 귀국한 선교사 비율은 7.1%로서 이전보다 줄어들었지만, 이는 코로나19의 영향이 다소 감소한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일반적인 개인 사유 이외에 36.9%가 사역지 환경의 부득이한 사유(치안, 비자 거절, 종교정책, 추방, 전염병 등)로 입 국한 것으로 파악되었는데,28 선교지의 불안정성은 아직도 해소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선교 현장의 불안정성과 국내에서 형성된 타문화권 선교의 기회로 인해 국내가 선교지로 변화 되는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특히 2021년 한 해 동안만 보더라도 임시 귀국하여 국내에 머물면서 국 내 사역으로 전환한 장기 선교사는 전체 선교사 수의 0.91%(202명)이며, 그중에서 국내 외국인(타문 화)를 대상으로 사역을 전환한 선교사는 0.31%(87명)로 집계되었다.29 이는 2021년 한 해만 고려한 것이므로 이전부터 국내에 머물면서 국내 사역으로 전환 중에 있거나 입장을 유보하고 있는 선교사 수를 고려하면 좀 더 높은 수치일 것이다.
특히 선교사의 사역대상국 순위(2022년)에서 미국(1,655명)과 A권역(1,547명)에 이어 한국이 세 번째(1,382명)로 높게 나왔다. A권역 등 일부 사역대상국으로 하는 선교사의 실제 거주지는 한국 인 경우가 많은데, 사역대상국은 한국이 아니지만, 실제 거주지가 한국이라고 적은 데이터를 반영하 면 한국 실거주 선교사는 1,940명(또는 그 이상)이며, 이 숫자는 임시 귀국 선교사를 포함하지 않은
26 「2022 한국선교현황 보고」를 위해 수집된 내부 자료 참고.
27 한국선교연구원, 「2021 한국선교현황 보고」, 10.
28 한국선교연구원, 「2022 한국선교현황 보고」, 6.
29 한국선교연구원, 「2021 한국선교현황 보고」, 10. 해당 질문에 응답한 146개 단체에 속하는 선교사 수는 17,082명(전체의 73.2%)으로, 이 수를 기반으 로 비율을 산출한 것이다. 응답 기준(146개 단체)으로 집계된 수로는 2021년 한 해 동안 국내 사역으로 전환은 155명이, 국내 외국인(타문화)을 대상으로 사역을 전환한 선교사는 67명이다.
것이다.30 따라서 실거주지 순위로 본다면, 한국은 미국과 A권역보다도 높은 순위로서 가장 많은 선
교사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으로 변화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교지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야기되는 위기관리, 전방개척지역 개념에 대한 변화, 사역지 변경과 파송교회와의 소통 등 여러 문제들은 단일 주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많은 주제와 연결되어 있다. 최근 이러한 불안정한 요소는 지속적으로 증대되고 있기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별 단체 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여러 단체의 연합적 차원의 논의와 대책이 필요하다.
- 일방적 과업에서 토착교회 중심으로
선교 현장의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세계적 이주 현상과 기술의 발달로 선교지의 개념이 변화되는 시기 가운데 한국선교 운동과 선교단체에서 이전에 설정한 많은 비전들이 이제는 그대로 실천되기 에는 한계가 있다.
이전에 한국선교운동이 설정한 목표들은 선교 현장의 필요를 듣고, ‘그들’의 삶의 자리에서 발생
하는 그들의 ‘의제’(agenda)와 ‘과업’(task)에서 출발하여 그들이 스스로 교회를 세워가도록 하는 비 전을 돕는 역할보다는 급격하게 확장된 ‘우리’의 선교 자원(재정, 인력 등)에 기반하여 우리의 선교적 ‘과업’과 ‘의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전이 중심을 이루었고, 우리의 ‘주도적 역할’에 관심이 집중되었으 며, ‘그들’의 소리를 듣는 것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부족하였다.
이로 인해, 선교사가 주도권을 가지고 토착교회에 방향을 제시하거나 한국의 문화 속에서 형성
된 성공적 모델과 복음 이해를 선교지에 그대로 전달하는 방법을 채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부 선 교 단체(일부 교단 포함)들은 이러한 비전을 실행하기 위해 토착교회의 의제와 필요에 대한 관심보다 는 단체의 전문성을 높이고 선교 현장에 영향력을 끼치는 것, 즉 자원과 역량의 확장에 더 많은 노력 을 쏟았다.
비평적 성찰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로부터 출발한 (일방적) 방향성과 선교 과업은 한국선교를 토착교회와의 상호적(mutual)인 관계 또는 동반자적 관계(interdependent partnership)로 이끌었다
고 하기보다는 가부장적인 온정주의적(paternalistic) 관계 형성에 좀 더 많은 노력을 쏟게 했다고 평 가할 수 있다.
한국 선교가 상호적 또는 동반자적 관계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선교 현 장과 토착교회들의 의제와 이슈, 그리고 그들의 소리를 경청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비전과 선교적 역량, 목표가 출발점이 되는 한 우리의 선교적 영향력은 커질 수는 있으나 토 착교회의 자신학화를 돕거나 상호적, 동반자적 관계는 이루기 어려워질 것이다.31
30 한국선교연구원, 「2022 한국선교현황 보고」, 5.
31 물론 선교 현장과 지역의 다양한 중요성들을 무작정 받아들이기보다는, 글로벌 관점과 보편적 관점으로 함께 어우러질 수 있도록 하는 노력도 필요하
2020년부터는 장기 선교사 수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한국 선교 단체가 파송한 타국적 선교사
들은 국제선교사로 분류하여 그 수를 집계하였다. 2022년의 한국 선교단체가 파송한 국제선교사는 910명(47개 단체, 89개 국적)이다. 2020년에 비해 전체적으로는 숫자가 줄어들었는데, 일부 한국 선 교 단체에서 타국적 국제선교사들에 대해 장기적 협력보다는 단기적인 관점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 인 것으로 보인다.32 타국적 국제선교사들은 다양한 의견과 관점을 가지고 있으며, 토착교회의 의제 와 이슈, 소리를 한국 교회와 선교단체에 잘 전달할 수 있는 통로이므로, 그들의 표현이 한국 선교운 동 속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따라서, 타국적 국제 선교사를 한국 선교의 과업의 달 성을 위한 선교 자원의 확산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세계 선교를 위한 동반자적이며 상호적 관계로 생각한다면, 단기적인 협력보다는 좀 더 장기적 차원에서 지원과 협력이 필요하다.
III. 결론
지금까지 한국선교현황을 통해 살펴본 한국선교운동은 양적인 성장의 한계, 고령화 등으로 인해 지속성을 위한 과제를 안고 있으며, 선교사를 비롯하여 선교단체, 파송교회는 무엇보다 상호 책무적 관점에서 함께 성숙한 사역을 위해 노력해 나가야 함을 다루었다.
최근에는 전 지구적 시스템의 불안정성과 모호성이 증가함으로 생겨나는 여러 현상들과 일부 선 교 현장의 안정성이 약화됨으로 인해 생기는 현상들은 단일한 문제로 끝나지 않고 다른 주제들과 연 결되어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선교사와 단체와 파송교회 간의 연합적인 논의와 대책이 필요하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의 의제와 자원이나 역량으로부터 나오는 일방적 방향성이나 실용주의적인 접근보다는 다양한 세계 기독교 속 토착교회들과 상호적 또는 동반자적 관계를 이루기 위해 다양한 선교 현장과 토착교회들의 의제와 그리고 그들의 소리를 경청하는 것에서부터 다시 출발하는 것이 중요하며, 선교사와 선교단체 그리고 한국교회가 함께 성찰적 관점에서 한국선교운동을 기초에서부터 다시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노력과 과정은 이후 미래를 위한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지역의 의제(agenda)와 이슈, 그들의 소리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은 이후 토착교회와 상호적이며 동역자적 관계를 이루게 하는 기초로 여겨진다.
32 2020년은 44개 단체(2020년 내부자료 참고), 70개 국적, 1,435명이며, 2021년은 47개 단체, 74개 국적, 929명이다. 한국선교연구원,「2022 한국선교현 황 보고」, 6;「2021 한국선교현황 보고」, 9.
글로벌 선교의 현실에 개입하기 / 문상철 원장(카리스교차문화학연구원장)
– 포커스그룹 인터뷰를 통한 경청
문상철 원장(카리스교차문화학연구원장)
Global Listening Team
서론
로잔운동의 지도부는 2024년 9월 서울에서 열릴 제4차 로잔대회의 준비의 일환으로 세계의 복 음주의 지도자들을 초청해서 공청회를 여는 일을 주도했다.
첫번째 공청회는 Covid-19 팬데믹의 영향이 강했던 2020년 9월부터 2021년 7월까지 12개의 권 역과 23개의 이슈네트웍 그리고 젊은 세대 지도자들 모임 (TLGen) 네트웍을 포함해서 총 36개 그 룹 모임을 통해 진행되었다. 이 공청회의 분석 보고서는 로잔운동의 Global Listening Team에 의해 준비되어 2021년 9월에 발표되었다.
두번째 공청회는 보다 깊은 차원의 경청과 분석을 위해 Global Listening Team에 의해 계획되 고 시행되었다. 2022년 9월부터 2023년 2월 사이에 총 30회의 포커스그룹 인터뷰가 진행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세계의 8개 권역을 대표하는 12개 국가들에서 시행되었다. 이들 권역들과 국가들은 영 어 알파벳 순으로 동아시아 (일본과 한국), 유럽 (스페인과 영국), 불어권 아프리카 (카메룬), 중동 (이 스라엘과 레바논), 북미 (미국), 남아메리카 (아르헨티나), 남아시아 (파키스탄), 동남아시아 (말레이시 아와 싱가포르) 등이다.
인터뷰를 위한 매개 언어는 그 나라의 공용어였는데, 이로 인해 보다 깊은 차원의 토론이 촉진되었다. 아래는 포커스그룹 인터뷰의 토론을 촉진하기 위해 쓰인 질문들의 세트이다:
1). 대위임령을 성취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간극, 혹은 아직 다 이루지 못하고 남아있는 기회는 무엇인가? 그리고 대위임령의 성취를 위해서 사역에 있어서 어떻게 그 간극 혹은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겠는가?
2). 대위임령의 성취를 촉진할 수 있는 돌파구나 혁신의 사례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이러한 사역적인 돌파구나 혁신 사례의 특징들은 무엇인가? 그것들이 어떻게 촉진되고 추진되는가? 사역의 추가적인 발전을 위해서 그러한 돌파구와 혁신에 대해서 어떻게 추가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가?
3). 대위임령의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 어떤 분야에서 협업이 더 필요한가? 그 분야에서의 협업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촉진할 수 있는가? 기독교 지도자들이 협업에 더 많이 참여하도록 어떻게 전략적 으로 동원하고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가?
4).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한 분야는 어디인가? 그러한 이슈들을 다루기 위해 선교 연구를 어떻게
더 촉진할 수 있는가? 그러한 이슈들을 다루는 연구를 누가 감당해야 하는가?
5). 이 공청회 과정의 일환으로 추가적으로 어떤 사람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가? 우리 팀은 미래에 설문조사를 시행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 그러한 경청의 대상을 어떻게 설문조사에 응하 도록 할 수 있겠는가? 그 설문조사를 통해 다룰 특정한 질문이나 이슈들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두번째 공청회는 포커스그룹 인터뷰에 대한 30개의 보고서를 내었는데, 그 전체 단어수는
278,753개에 달하였다.
(도표 1. 글로벌 포커스그룹의 단어 클라우드)
데이터 분석에 쓰인 방법론은 근거이론 (grounded theory)의 구성주의 방식을 따랐고, 데이터 분 석의 첫번째 단계인 행별 코딩 (line-by-line coding)과 두번째 단계인 집중코딩 (focused coding)과 이에 연결된 주제들의 비교분석의 과정에서는 NVivo for Mac이라는 소프트웨어가 사용되었다. 이 후 세번째요 마지막 단계인 이론적 코딩 (theoretical coding)과 통합의 과정이 결론에 이르는 이론적 통합의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글로벌 지배적 주제들 (Global Dominant Themes)
데이터를 수집한 30개 그룹 중 10개 이상의 그룹에서 반복적으로 대두된 주제는 8개였다. 글로 벌차원에서 이렇게 지배적으로 등장한 주제들은 ‘사역의 돌파구 사례’, ‘제자도의 중요성’, ‘훈련의 필 요성’, ‘젊은이들에게 귀 기울이기’, ‘상황화의 필요’, ‘교회들이 외부 현실에 개입할 필요’, ‘미전도종족
| 주제 | 포커스그룹 | 국가 | 언급 |
| 사역의 돌파구 사례 | 21 | 10 | 68 |
| 제자도의 중요성 | 18 | 11 | 66 |
| 훈련의 필요 | 15 | 10 | 31 |
| 젊은이에게 경청하기 | 15 | 10 | 20 |
| 상황화의 필요 | 13 | 9 | 35 |
| 교회가 외부 현실에 개입할 필요 | 13 | 8 | 22 |
| 미전도종족 복음화 | 12 | 6 | 25 |
| 대위임령의 의미를 분명히 이해할 필요 | 11 | 6 | 15 |
<테이블 1> 글로벌 지배적 주제들
복음화’, ‘대위임령의 의미 분명히 이해하기’ 등이다. 테이블 1에는 지배적 주제들의 집단의 숫자, 나라의 숫자, 언급된 회수가 표기되었다.
사역의 돌파구 사례
사역에 있어서 돌파구 사례라는 주제는 포커스그룹 참가자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주제이다. 이
주제는 7개 권역의 10개 국가의 21 포커스그룹에서 총 68회에 걸쳐 언급한 것이다. … 이 주제의 주 요 내용은 사역 환경의 도전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사역적인 돌파구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스페인에서 한 그룹은 글로벌화의 물결 가운데 새로운 기술들을 활용해서 돌파구가 일어난 것 들에 대해 언급했다. 참가자들은 Langham Partnership이 주최한 설교자를 위한 설교 웍샵의 영향 에 대해 말했고, 또한 이에 바탕을 두고 지도자들이 함께 일해서 협업과 돌파구 마련이 가능해진 것 을 설명했다. 다른 스페인 그룹에서는 젊은이들을 위한 성공적인 파드캐스트 사례와 구내 식당이나 피자집 등 만나기 좋은 곳에서 전도적인 대화를 통해 결실을 본 사례들을 소개했다.
카메룬의 포커스그룹에서는 새로운 매체를 활용해서 전도를 성공적으로 한 사례를 강조했다. 참가자들은 최근의 통신 기술들이 혁신적으로 전도하는 사역에 도움이 된다고 보았다.
레바논의 포커스그룹에서는 참가자들이 교회들이 이전보다 주변 환경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으 며 그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처하려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교회들은 전반적으로 첨단 기술들을 활용 한 새로운 접근을 함으로써 복음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더 잘 준비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싱가포르 포커스그룹에서는 미전도종족 가운데 복음을 전하는 사역에 있어서 디지털 자료들이 제자삼는 사역과 성경 공부에 특별히 효과적이라는 인식이 공유되었다.
제자도의 중요성
제자도의 중요성은 글로벌하게 강조된 또다른 지배적 주제이다. 8개 권역의 11개 국가의 18개 포 커스그룹에서 이 주제에 대해 주요하게 다루었는데, 전체 언급회수는 66회에 달했다.
영국의 포커스그룹들은 보통 그리스도인들이 기본적인 일을 잘 할 필요를 강조했다. 이 그룹들 에 의하면, 사람들은 제자훈련을 잘 받지 못했으며, 실제적인 삶의 모범을 배우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세속적인 환경 속에서 사람들이 자기들의 신앙을 민감하게 전달하도록 도울 필요는 시급하고 중요한 것이다.
레바논 참가자들은 특별히 무슬림 배경 신자들 (Muslim Background Believers)을 제자화할 필 요에 관심을 환기시켰다.
북미의 참가자들 또한 제자도의 이슈에 대해 주요하게 토의했다. 다른 그룹들과 마찬가지로, 그 들은 제자도의 깊이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이 이슈들의 상당수는 북미의 상황에서 다루어졌지만, 그 들 역시 미전도종족들을 위한 제자훈련을 중요한 필요로 인식했다. 선교적 관점에서 젊은이들을 제
자화하는 것은 중요한 이슈로 여겨졌다.
아르헨티나 포커스그룹은 그리스도의 주되심 (lordship)이 교회들의 가르침에서 빠져 있다고 구 체적으로 지적했다. 보통 신자들의 선교적 사명에 대한 대체적인 무지는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대한 이 약한 개념과 관련이 있다.
훈련의 필요
훈련의 필요는 8개 권역의 10개국에서 열린 15개 포커스그룹에서 총 31회에 걸쳐 언급된 글로 벌하게 강조된 또다른 주제이다. 모든 대륙에서 이 주제는 복음주의 지도자들 사이에서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말레이시아에서 양질의 신학 훈련이 많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신학 교육에 있어서 질적인 수준이 문제가 된 몇몇 신학 기관들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파키스탄 포커스그룹은 교회들이 보통 그리스도인들에게 양질의 훈련을 제공해야 할 필요를 다루었다.
지도자 훈련의 필요는 아르헨티나 포커스그룹에서 제기되었다.
훈련의 필요는 미국의 복음주의 지도자들 사이에서 중요한 이슈로 인식되기도 했다. 목회 사역, 도시 사역, 교차문화적 사역, 제자도를 비롯한 여러 사역에서 더 많은 훈련 프로그램들이 요청되었다.
비슷한 이슈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틴인 포커스그룹에서 제기되었다. 참가자들은 MBB들의 구별 되는 점들을 지적했고, 이에 따라 제자도와 지도자 훈련 프로그램에서 상황화된 접근을 필요로 한 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연결되었다.
한국의 토론에서는 교회 사역자들을 훈련할 필요가 제기되었다. 일본의 포커스그룹들은 보통의 그리스도인들을 훈련해서 선교적으로 개입하도록 할 필요에 대해 강조했다.
젊은이들에게 귀 기울이기
추가적인 경청을 위해서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 제안되었는데, 젊은이들 (15개 포커스그룹에서
강조됨), 비신자들 (7개 그룹), 소외된 사람들 (7개 그룹), 여성 (5개 그룹), 현장에 있는 사람들 (5개 그룹), 이주자들과 디아스포라들 (5개 그룹), 보통 사람들 (4개 그룹), 교회를 떠난 사람들 (3개 그룹), 새신자들 (3개 그룹), 해외 선교사들 (3개 그룹), 공동체 (2개 그룹), 전문가들 (2개 그룹), 전문인들 (2 개 그룹), 학문적인 지도자들 (2개 그룹) 등이 그들이다.
젊은이들에게 귀 기울이기는 반복적으로 강조되었다. 그것은 7개 권역의 11개 국가의 15개 포커 스그룹에서 20번에 걸쳐 언급할 정도로 글로벌하게 지배적인 주제로 떠올랐다.
말레이시아 그룹은 지도자들이 내부서클을 벗어나 10대와 같이 사역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사 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을 지적했다. 싱가포르 그룹은 젊은이들 혹은 다음 세대에 대해 귀 를 기울이는 것의 중요성을 조명하기도 했다.
파키스탄 그룹 또한 기독교 지도자들과 젊은 사람들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르헨티나 포커스그룹은 교회와 단체의 사역에 있어서 Z세대와 젊은 세대들의 선호도에 맞추
는 것의 중요성을 구체적으로 강조했다.
미국의 참가자들은 젊은이들을 기독교 단체 안으로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토의했다.
한국의 포커스그룹에서는 젊은이들 가운데서 선교사 지망생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우려가 표현 되었다.
상황화의 필요
상황화의 필요는 6권역의 9개 국가의 13개 포커스그룹에서 총 35회에 걸쳐 언급된 또다른 글로 벌한 차원의 지배적인 주제이다.
가장 중요한 공통적인 강조점 중의 하나는 기독교 사역의 적실성에 대한 질문과 관심이었다. 포 커스그룹의 참가자들 다수는 상황화의 이슈에 대해 질문을 하고 관심을 표했다.
다수세계 (표e Majority World) 복음주의 지도자들에게는 상황화 이슈의 핵심에는 서구 전통,
유산, 자원에 대한 의존심의 문제가 있다. 이 지도자들은 상황화를 진지하게 추구하기 위해서는 이 러한 의존심을 극복해야 한다고 본다.
서구 지도자들은 다수세계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문화적 적실성 이슈에 대해 헌신되어 있지만, 이 이슈와 관련해서는 다른 안건을 가지고 있었다. 서구 지도자들은 다수세계의 전통과 문화적 유산 에 대해 높은 수준의 개방성을 보여주었지만, 다른 상황에서의 문화적 다양성을 전제로 했다. 서구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상황화 이슈를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안건으로 여기기보다 신학적이거나 선교 학적인 과제로 여기고 접근하는 듯이 보였다.
스페인 포커스그룹의 참가자들은 극도로 미디어에 초점을 맞춘 세대들에게 복음으로 다가가는 것에 대한 관심을 피력했다. 그들은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미디어가 이전 세대와 다른 것에 대해 다루 면서 이것이 다른 상황화된 접근법을 필요로 한다고 보았다.
상황화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서구인들과 다수세계인들이 관점이 다른 것은 아주 명확한 것은 아니다. 특별히 디아스포라 배경을 가진 서구 국가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그들의 사고방식에 있어 서 서구와 다수세계 중간의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교회들이 외부 현실에 개입할 필요
포커스그룹들은 복음주의 교회들이 외부 현실에 보다 더 활발하게 개입할 필요를 강조했다. 6개 권역의 8개 국가의 13개 포커스그룹에서 이에 대해 22회에 걸쳐 언급했다.
한 한국인 목회자는 교회들이 자체적인 생존에만 급급한 나머지 복음의 빛을 외부에 발산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우려를 표하면서 교회들이 외부적인 현실에 개입하기 위한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함 을 강조했다.
스페인 참가자들은 교회들이 세상에서 전개되는 일에서 소외되거나 멀어진 현실에 관심을 기울 일 것을 촉구했다.
영국 참가자들 역시 외부 현실에 개입하는 것은 교회들이 대위임령에 진정으로 충실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참가자들 또한 교회들이 사회에서 고립된 문제를 조명했다. 팔레스틴과 같은 무슬림이
다수인 지역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무슬림들과 상호작용을 많이 하지 않아서 영향력을 별로 행사하 지 못한다는 것이다.
레바논 상황에서 교회들은 시리아 난민들에 대해 보다 더 개방적이고 환영하는 정신이 필요하다 는 점이 강조되었다.
아르헨티나 참가자들 또한 이 점을 강조하면서, 교회 지도자들은 사람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그들이 현실을 보다 더 긴밀하게 다루어야 함을 주장했다.
미전도 종족 복음화
글로벌 차원에서 또다른 지배적인 주제 한 가지는 미전도 종족을 복음화하는 것인데, 이 전략적 인 비전은 원래 1974년 제1차 로잔대회에서 랄프 D. 윈터에 의해 명쾌하게 제시된 것이다. 이 전략은 자생적이고 전도의 활기가 있는 교회가 없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나아가는 교회개척운동 과 같은 외부의 선교적 노력이 필요한 숨겨진 종족 혹은 미전도 종족들의 존재에 대한 것이다. 6개 권 역의 6개 나라들의 12개 포커스그룹이 이 중요한 간극을 지적하면서 25번에 걸쳐 언급했다.
이 비전은 처음에 미국에서 제시되어서 북미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 현재 북미의 복음주의 지도 자들이 말하는 바에 비추어 이 주제를 분석할 때 원래의 전략의 가치와 적실성을 확인하게 된다. 미 전도 종족의 복음화는 세계 복음화의 지전을 완수함에 있어서 계속해서 중요한 간극으로 남아있다.
한 참가자는 미전도 종족을 향한 도시기반의 접근법의 전략적인 타당성에 대해 말했는데, 미전 도 인구들이 대도시로 이주하는 변화된 역동성을 고려할 때 이는 앞선 전략적인 제안이다.
북미의 포커스그룹에서 나온 또다른 중요한 제안 한가지는 디아스포라 선교학의 개념이 미전도 종족을 위한 개척선교학의 개념과 통합될 때 전략적인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교회들은 지난 30여년간 미전도 종족들을 복음화하려는 전략적인 비전에 대해 열정적인 헌신을 계속해왔다. 한국 선교 지도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 비전을 가지고 전진하는데 열정적이지만, 이 강조점과 열정이 한국의 교회들 가운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약화되었다는 관측이 있기도 하다.
어떤 나라들은 미전도 종족의 이슈를 시급한 선교적 과제로 다루는데, 그것은 그러한 종족들이
그 나라 안에 있기 때문이다. 한 카메룬 지도자는 교회들이 이 선교적 과제에 대해서 그리스도인들 을 가르칠 필요를 강조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포커스그룹은 미전도 종족을 복음화하려는 이 엄청 난 필요에 비해 할당된 자원이 너무 부족하기에 미전도 종족의 복음화를 위해 자원들을 적절히 할당 해야 한다는 언급을 하기도 했다.
대위임령의 의미를 분명히 이해하기
대위임령의 의미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단순하고 명확한 것이지만, 구체적인 상황에 있는 많은 사 람들에게는 해설과 설명이 필요하다. 이 주제는 6권역의 6 나라의 11개 포커스그룹에서 15번이나 반
복되었다. 이 주제의 주안점은 짧지만 심오하게 싱가포르인들의 대화에 잘 표현되었다: “교회들이 사 용자친화적인 도구들에 기초한 우리 신앙의 대중화된 패키지나 축소주의적인 버전을 영구화하기보
다 역사적 기독교를 회복하도록 대위임령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규정할 필요가 있다.”
파키스탄의 토론에서는 제자도의 차원이 대위임령의 의미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강조되었다. 카메룬의 포커스그룹도 같은 맥락에서 선교 세미나 등을 운영해서 교회들과 그리스도인들 사이
에 선교적 인식을 고양하는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영국의 포커스그룹에서는 선교가 성경적으로 무엇이고 그것이 현재 세계에서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를 설명하는 분명한 선언의 필요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다른 북미의 포커스그룹에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선교에 대해 적절히 가르칠 그 교육적 필요가 구체적으로 지적되었다. 그들의 관점에서는 교회들과 신자들이 선교를 단시 선교 여행으로 축소해서 이해하지 않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포커스그룹에서는 대위임령의 의미를 이해함에 있어서 서구의 영향력이 있었음을 인정 하면서 이 주제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상황화의 질문을 제기하였다. ‘땅끝’의 개념은 선교지의 변화된 현실을 고려해서 재정의될 필요가 있다.
대위임령을 우리 시대에 분명히 이해하고 가르치는 이슈는 글로벌 교회의 실재적인 필요이다. 글 로벌 교회와 그 글로벌 선교에 대한 다중심적 선교적 전망의 패러다임을 공유하면서 이 토론을 계속
하고 심화시킬 필요가 있다.
권역별 지배적 주제들
제2차 공청회에서는 8개 권역을 대표하는 12개 나라에서 포커스그룹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그 권역들은 동아시아, 유럽, 불어권 아프리카, 중동,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등 이다. 그 대화들의 지배적인 주제들은 아래에 지역별로 분석될 것이다.
동아시아
이 권역에서는 총 11개의 포커스그룹 인터뷰가 진행되었는데, 일보에서 4개, 한국에서 7개가 진 행되었다.
도표 2. 동아시아 포커스그룹의 단어 클라우드
이 권역에서는 가르침보다는 실천에 대해 중요한 강조점이 있었다.
정보의 부족은 이 권역의 포커스그룹 참가자들에 의해 중요한 이슈로 지적되었다.
지역 공동체에 개입할 필요는 4개의 포커스그룹에서 반복될 만큼 중요한 간극으로 지적되었다. 미전도 종족의 복음화의 전략적인 중요성은 4개의 포커스그룹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었다. 회개와 화해의 실천이 또한 이 권역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강조되었다. 인상적인 사역의 돌파구 사례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지도자들이 사역의 고정관념들을 극복하고
새로운 발상으로 새로운 접근을 했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그들은 초교파적으로 다른 교회와 지도
자들과 파트너십과 협업을 모색했다. 이러한 사례들을 나눔에 있어서 그들은 수치적인 결과보다 진 정한 선교적 정신과 헌신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유럽
도표 3. 유럽 포커스그룹의 단어 클라우드
글로벌화는 한편으로 하나의 거대한 도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복음의 거대한 기회이기도 하다. 기술적인 혁신은 앞선 기술들이 현명하게 또한 전략적으로 사용될 때 새로운 차원의 기회들을 가져 온다. 많은 혁신적인 프로그램들과 활동들이 많은 사역 상황에서 실행되고 있다. 많은 경우에, 다양 한 형태로 이전보다 더 많은 자료들이 있고, 비용도 전통적인 형태보다 더 적게 드는 상황이다.
유럽 지도자들은 협업을 추구함에 있어서 많은 경우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일중심적인 경향 (task-orientation)을 극복하고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일중심적인 경향의 한계는 유럽 지도자들 의 대화에 드러난 관계에 대한 강조점에 비추어 검토될 필요가 있다.
연구에 관한 한, 유럽 지도자들의 대화는 연구자들이 유럽의 교회들과 기독교 사역들이 직면한 다양한 선교적 이슈들에 대해 심도있는 연구를 할 필요를 지적했다. 그러한 연구를 할 연구자의 자 질 중의 한 가지는 사회과학 분야에서의 훈련을 받는 것이다. 또하나의 다른 자질은 엄청난 연구의 과제들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팀을 구성해서 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영국과 스페인의 포커스그룹에서 공히 젊은이들에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제기되기도 했 다. 이 주제는 글로벌한 함의를 가지고 있지만, 유럽 상황에서도 유효한 시사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유럽 지도자들의 대화는 깊은 차원에서 통찰력있는 관찰과 제안을 했다. 많은 제안들이 권역에 구체적으로 해당되는 내용들이었지만, 유럽 권역에만 국한되는 내용들은 아니었다. 많은 발언 내용 들이 글로벌한 시사점을 가진 핵심적인 복음주의적 본질을 다루었다. 이 권역에서의 풍부한 복음주 의적 유산은 문화를 넘어선 상호간의 배움의 차원 취지에서 글로벌 교회가 함께 누릴 필요가 있다.
불어권 아프리카
도표 4. 불어권 아프리카 포커스그룹 단어 클라우드
카메룬 참가자들은 제자도 훈련을 사역에 있어서 중요한 간극으로 보았다. 이 주제는 다른 주제 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자세하게 토론한 주제였다.
비록 제자도가 평생에 걸친 배움과 실천을 요하지만, 제자도를 현실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가
르침의 체계 혹은 골격들을 일정한 시간을 두고 조직화해야 한다.
불어권 아프리카 포커스그룹은 또한 사회의 상류층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에 있어서 어려움을 토로했다.
총체적인 관점의 결여에 대해서 이 권역의 토론에서 다루어졌다.
미전도 종족들을 복음화하는 것은 이 권역의 토론에서 중요한 간극으로 여겨졌다.
이주는 우리 시대에 중요한 역학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미전도 지역에서 사람들이 도 시 지역으로 이주하는 주목할만한 움직임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였는데, 이러한 움직임이 미전도 종 족들을 복음화하는 선교적 기회를 제공한다고 본 것이다.
카메룬 그룹은 미래의 연구 과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제안을 했다.
중동
도표 5. 중동 포커스그룹의 단어 클라우드
이 권역의 세 그룹이 모두에서 반복된 가장 많이 조명된 주제 중 하나는 교회들이 외부 현실에 개입할 필요에 대한 것이다. 이 주제는 교회들이 사회로부터 고립되는 문제에 대한 지적이다.
훈련의 필요에 대해서는 이 권역의 토론에서 상당한 정도로 다루어졌는데, 두 그룹에서 이 주제 가 반복되어 나타났다. 한 이스라엘인 그룹은 문화적인 선입견을 효과적으로 극복하고 문화적으로 민감한 방식으로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훈련의 필요성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강조했다. 이러한 목적에 부합한 자료들이 있지만, 사람들은 그 자료들을 사용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레바논 상 황에서 훈련의 필요는 효과적인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MBB들을 훈련할 필요에 대한 것이었다.
상황화의 필요성은 두 포커스그룹에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주제이기도 하다.
디지털 플랫폼의 필요는 두 그룹에 의해서 기독교 사역의 중요한 간극으로 지적되었다.
특별히 이스라엘 상황에서, 재정은 거대한 간극으로 여겨졌다. 이 문제는 사역을 시작하려는 젊 은이들에게 실제적인 필요이다. 교회들은 체제와 정책입안을 통해서 그러한 필요에 대해 대응할 필
요가 있다.
소셜미디어는, 세 그룹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와 같이, 간극으로 여겨질 뿐만 아니라 사역적 인 돌파구 마련에 기여한 중요한 요소로 여겨지기도 했다.
어떤 사역적인 돌파구 사례들은 이 권역에서 인종적인 장벽들을 넘는 협업의 노력과 함께 일어났다. 이 권역에서 포커스그룹의 참가자들은 미래의 연구 과제에 대한 제안을 적극적으로 했다. 공동체의 필요는 공동체와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는 가운데 충족될 필요가 있다.
북아메리카
도표 6. 북아메리카 포커스그룹 단어 클라우드
미국 참가자들은 그들의 포커스그룹 인터뷰에서 제자도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참가자들은 대위임령의 전체적인 개념을 고려할 때 그리스도인들의 제자도에 깊이가 결여된 것
에 대해서 우려를 표했다.
북미의 세 포커스그룹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제자도와 사역 훈련에서의 기본적인 필요는 사람 들이 대위임령의 의미를 분명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세 포커스그룹의 미국 참가자들은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잊 지 않았다. 그들은 Z세대와 같은 젊은 세대들의 복음화가 점점 더 약화되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많은 돌파구 사례들이 글로벌 복음주의 서클에서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역의 혁신과 함께 일어 났다. 어떤 사례들은 같은 지역의 다수의 교회들과 단체들이 관련된 가운데 협업에 있어서 혁신적인
사례들이었다.
앞의 내용과 관련되어, 참가자들은 북미의 교회들이 이전보다 더 연합되었고 협업을 하고 있다 고 느낀다.
북미의 참가자들은 로잔운동이 협업의 플랫폼이며, 앞으로도 그러해야 한다고 반복해서 강조했다. 연구와 관련해서는 북미의 지도자들은 연구의 접근법으로 현장기반의 경험적 연구를 중시하였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필요한 것은 현장에 기반을 두고 연구를 경험적으로 하는 것이다고 주장하였다.
남아메리카
도표 7. 남미 포커스그룹의 단어 클라우드
제자도의 중요성이 이 그룹에서 강조되었는데, 이 점에 대해서 세 번에 걸쳐 언급되었다. 제자도 의 주요 이슈는 그리스도의 주되심의 개념을 중심으로 이해되었다.
또다른 중요한 필요는 교회들이 외부 현실에 더 능동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다.
중복의 문제는 사역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로 여겨졌다.
이 권역의 토론에서도 Covid-19 기간의 디지털 혁신이 분명히 확인되었다. 디지털 혁명은 공간과 시간의 장벽들을 극복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게 만들었는데, 그로 인해 새로운 종류의 사역들이 가능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지도자들 사이에는 교단의 장벽들이 이전보다 덜 문제가 되며, 교회들이 더 연합하고 협업을 하 는 것으로 여겨진다.
연구의 이슈에 관한 한, 일반적인 의견은 연구를 위한 협업이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참가자들은 교회들과 기독교 단체들의 사역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이슈들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 연 합된 노력이 기울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제안에 따르면, 사역의 대상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은 전략적인 일이라고 여겨졌다. 설 문조사는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남미 지도자들의 권역 모임에서 지도자들은 사역의 간극과 연구에 대해 상당한 분량의 시간을 썼다.
남아시아
도표 8. 남아시아 포커스그룹의 단어 클라우드
파키스탄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교회들이 외부 현실에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를 지적 했다. 그들의 경계 너머를 보면서 교회들은 공동체들, 특히 젊은 세대 사람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파키스탄 지도자들은 그들의 토론에서 두려움의 문제에 대해 토의했다. 파키스탄의 그리스도인
들 사이에 있는 고통과 핍박에 대한 두려움의 문제를 다룬 것이다.
파키스탄 지도자들은 많은 신자들이 다양한 이유로 실망한 상태에 있다고 본다. 교회들과 단체 들의 사역을 통해서 신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들의 상태를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별히 용기를 잃은 사역자들을 잘 돌보아서 그들이 사역적으로 전진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상황화는 중요한 이슈가 된다. 상황화의 이슈는 젊은 사람들이 교회들 에 대해 뭐라고 하는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파키스탄 지도자들은 교회들과 기독교 단체들이 복음 전파의 사역을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현대 의 기술들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남아시아 지도자들은 선교를 위해 목회자들을 동원할 필요를 지적했는데, 이것은 이 권역에서
실적인 이슈가 된다.
사역의 돌파구가 마련된 사례들이 토론 그룹에서 다루어졌다. 이 대화에서 나온 한가지 주목
할만한 메시지는 파키스탄의 복음주의 지도자들 사이에 거대한 부흥에 대한 희망과 기대감이 있 다는 것이다.
이 권역의 상황에서 선교 연구는 제한없이 진행하기가 어려울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
의 중요성이 토론 참가자들에 의해 강조되었다. 그들은 연구의 과정에서 사역의 실천가들이 효과적 으로 연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들은 또한 효과적인 전도, 제자도, 설교, 그리고 상황화의 주제에 대한 탄탄한 연구가 더 많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한 남아시아 포커스그룹은 고통과 핍박의 신학을 강조했다. 참가자들은 지도자들, 목회자들, 젊 은이들, 신입자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고통과 핍박에 대한 성경적인 가르침으로 무장할 필요가 있 다고 강조했다.
동남아시아
도표 9. 동남아 포커스그룹 단어 클라우드
동남아 포커스그룹들은 제자도의 이슈에 대해 다루었는데, 말레이시아 그룹은 더 자세하게 이 에 대해 토론했다. 그 요지는 제자도의 중요성에 대한 것이었지만, 참가자들은 그것의 중요성을 공동 체와의 관계 속에서 다루었다.
젊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의 필요성은 사역에 있어서 한 중요한 문제로 여겨졌다. 마켓플레이스의 중요성은 사역에 있어서 중요한 간극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싱가포르 그룹도 미전도 종족들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강조했는데, 특별히 그들에게 복음을 전 하기 위해 디지털 자료들을 활용하는 이슈를 다루었다.
싱가포르 그룹은 선교를 위한 재정 확보에 대해 토론했는데, 특별히 선교지에서 장기적으로 영적 인 영향력을 미치는 사역을 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재정 지원에 대해 고민했다. 선교 지도자들은 이 러한 종류의 교차문화적 사역을 위해 더 많은 공급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 그룹은 사역에 있어서 혁신적인 돌파구 사례들을 설명했다. 말레이시아 그룹은 디지털 선교 여행이 Covid-19 기간 동안 좋은 대안이 되었다고 보았으며, 싱가포르 그룹은 성경 공부와 제자도 프 로그램을 위한 디지털 자료들의 유용성을 강조했다.
Covid-19의 경험에 대한 전반적인 관점은 그 위기가 새로운 기회들을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싱가포르 그룹은 특별히 사업과 선교 간의 협업에 대해 강조했다.
협업의 노력은 교회들이나 단체들에 의해서 공식적으로 진행되기 보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가운 데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방식이 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있었다.
연구에 관한 한, 참가자들은 이론적이고 학문적이기보다 사역에 더 실질적으로 적용될 수 있어
야 한다고 강조했다.
말레이시아 그룹에서는 상황화를 연구해야 한다는 중요한 제안이 있었다. 싱가포르 참가자들은 디아스포라 선교학에 대해 강조했다.
이 권역에서 제기된 한 가지 중요한 제안은 모델 교회 공동체에서 사람들이 점점 더 전형적인 프 로파일과 같지 않다는 인식에 기초해서 “포용적인 신앙 공동체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또다른 중요한 메시지는 사라왁에서 현재 경험하듯이 기도를 통해 부흥과 재활성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
글로벌 선교의 현실에 개입하기
1). 사역에 있어서 돌파구가 마련된 사례들과 관련하여 로잔운동의 지역별 네트웍은 그 돌파구 사례들을 소개하고 그로부터 배우기 위해 권역별 포럼을 열 수 있을 것이다.
2). 제자도의 중요성은 2024년 서울대회에서 하나의 주요 주제로 다룰 필요가 있다.
3). 훈련의 필요성은 로잔운동의 권역별 네트웍을 통해 다양한 권역별 포럼에서 다루어질 수 있 을 것이다.
4). 공청회 프로젝트는 로잔운동의 권역별 및 국가별 네트웍에서 젊은이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계획할 수 있을 것이다.
5). 상황화와 관련해서는 로잔운동의 권역별 네트웍별로 연구 프로젝트와 포럼을 열어서 그 결 과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6). 교회들이 외부 현실에 개입할 필요에 대해서는 2024년 서울 대회의 한 주요 주제로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7). 미전도 종족들을 복음화하려는 중요한 필요는 남은 과업을 재정의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 어 글로벌 차원의 포럼에서 다룰 수 있을 것이다.
8). 대위임령의 의미를 분명히 이해하고자 하는 중요한 필요는 그 이슈에 대한 집중적인 관심을
필요로 한다.
권역별 선교의 현실에 개입하기
1). 로잔운동의 각 권역별 네트웍은 일련의 포럼을 열어서 사역적 돌파구가 마련된 사례들을 나 눌 수 있을 것이다.
2). 로잔운동의 각 권역별 네트웍은 전략회의를 열어서 사역의 다른 주체들을 초청한 가운데 그 들 간의 협업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3). 로잔운동이 각 권역별 네트웍은 다양한 차원에서 공청회 프로그램을 개최해볼 수 있을 것이다.
4). 로잔운동의 각 권역별 네트웍은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서 사역의 권역별 간극에 대해 다룰 수 있을 것이다.
5). 아래는 연구 프로젝트와 포럼을 통해서 다룰만한 사역의 중요한 간극들의 리스트이다:
선교 연구는 우선적으로 열매 맺는 사역에 방해가 되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룰 필요가 있다. 현 장 기반의 경험적 연구의 필요는 반복적으로 강조되었는데, 이러한 방식의 연구가 위에서 제기한 이 슈들, 즉 사역의 실제 문제들에 대해서 다룰 필요가 있다.
세계의 다른 지역에 있는 그리스도 예수의 다른 몸들은 상호모순적이라기보다 상호보완적인 목 소리를 내었다. 많은 경우에 그 다름은 표면적인 차원의 것이었고, 깊은 차원의 공통점들은 경청의 과정이 나선형으로 진행되어 감에 따라 점점 더 명백해졌다. 그 공통점들은 성경적 진리에 대한 복 음주의적 신앙의 본질을 반영한 것이었다. 이 현상은 글로벌화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 도의 영원한 진리에 같은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 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 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에베소서 4:4-6, 개역개정판)
세계기독교와 한국교회 선교 / 임태순 선교사(GLFocus/GMP)
들어가는 말
세계기독교”는 단순히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다는 의미를 담은 용어가 아니다. 21세기 의 새로운 기독교적 정체성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새로운 개념이다. 이제까지 세계 기독교 하면 서구의 기독교가 근대 선교운동을 통해 온 세상에 확산된 상태로 이해되어 왔는데, “세계기독교” 개 념은 이 관점을 정면으로 부정하기 위해 제안된 개념이라는 의미다. 근대선교운동이 (서구의) 기독교 를 전세계로 퍼뜨린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 결과로 나타난 세계화된 기독교는 서구 교회가 그리던 모습이 아니었다. 서구 기독교가 전 세계로 퍼진 것이라기보다는 각 문화에 심겨진 복음은 그
문화의 고유한 기독교 정체성들로 새롭게 형성되었고 그 다양한 정체성들이 연결되면서 만들어진 21세기의 세계화된 기독교는 전혀 새로운 모습의 기독교로 성장했다. “세계기독교”는 이 새로운 기 독교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제안된 개념이다. 때문에 세계기독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구 기독교 의 세계적 확산이라는 기존의 이해를 내려놓아야 한다.
근대선교역사를 설명한 스티븐 니일(Stephen Neill)의 문장에 대한 라민 사네(lamin Sanneh)의 비판이 이 관점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니일은 근대선교운동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크리 스텐덤이 전세계로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두 세기 동안 선교사들의 사역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네는 이 문장은 두 가지 면에서 오류가 있다고 지적한다. 하나는 근대선교운동을 서구 크리스텐덤
의 확장으로 해석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독교의 세계화를 선교사들의 공헌이라고 본 것이다. 근대 선교운동은 서구 기독교의 확장으로 볼 수 없으며 기독교의 세계화도 선교사의 공헌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위대한 세기” 동안 각 지역에 형성된 기독교는 그 지역 문화에 기초한 새로운 정체성의 기 독교였으며 이 교회들은 선교사와 토착 지도자들이 함께 희생적 사역을 한 결과였다.
각 지역에 뿌리내린 기독교는 서구 기독교의 이식이 아니며 반대로 그 지역 토양에서 새롭게 자 라난 새로운 품종의 나무로 이해된다. 전세계, 특히 비서구 다수세계에 형성된 기독교가 서구 기독교
의 모조품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 선교학계가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대표적
사례 중 하나로 한국 기독교의 형성과정을 예로 든다. 재미 한인학자인 옥성득 교수는 2014년 『한국 기독교형성사』(표e Making of Korean Christianity)를 출판했다.1 이 책에서 옥 교수는 한국교회는 서구 선교사들에 의한 서구 기독교의 이식의 결과가 아니라, 서구로부터 받은 복음이 한국적 토양에 서 재해석되어 한국적인 정체성을 가진 새로운 기독교로 “형성”(Making)된 결과라고 주장한다. 한 국 기독교의 초기 역사를 새로운 기독교의 형성 과정으로 분석했다.
이 책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앵글로색슨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기독교가 한국에서 중국 기 독교와 한문 문서를 이용하여 한국종교와 만나 접촉점을 찾고 대화하면서 한국 문화에 접목되어 새 로운 한국적 기독교라는 신품종을 만든 통합의 역사를 탐구한다. … 삼겹줄처럼 강력한 미중한의
삼중 요소의 통합은 한국인의 주도성과 영성과 신학적 창조성으로 만들어졌다. … 이 책은 한국 기
독교 형성과정에 나타난 기독교의 번역성과 현지화의 독특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동시에 그 종교 문 화적 토착성을 가진 한국 기독교가 세계 기독교의 보편성과 다양성에 기여하는 길을 찾으려 한다. (옥성득 2020, 15-16)
한국 기독교는 서구 기독교가 가장 잘 이식된 사례로 여겨져 왔는데 옥성득 교수는 이를 정면으 로 부정한 것이다. 한국 기독교는 복음의 번역성에 기초해 “새롭게 형성된 신품종 기독교”이며, 새로 운 기독교적 정체성으로 태어난 한국 기독교는 다시 세계화된 기독교의 보편성과 연결되면서 새로 운 기독교 형성의 길에 참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구 기독교적 틀로 설명되던 이전의 패러다임으로는 오늘날의 새로운 기독교 상황을 설명하기 어렵다. 21세기의 세계화된 기독교, 즉 “세계기독교”는 전세계 거의 모든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고유 한 정체성으로 발전하고 있는 세계 모든 교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기독교이기 때문이다. 본 소고에 서는 21세기 세계화된 기독교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왜 “세계기독교”란 새로운 개념이 필요한가? 를 살펴보고, “세계기독교”의 새로운 이해가 우리의 선교 현장에 던지는 의미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세계기독교”라는 새로운 개념이 필요한 배경
세계기독교는 전세계 모든 문화권의 다양한 기독교 정체성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새로운 기독교 이해다. 기독교 정체성에 대한 모든 기준들은 서구 교회로부터 나와야 한다고 믿던 시대가 저물고 있 다. 오늘날 세계화된 기독교는 각 문화권에서 형성된 토착교회들의 목소리들이 모여 하나의 “세계기
1 이 책은 그해 International Bulletin of Mission Research (IBMR)이 선정한 선교 관련 올해의 저서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독교”를 이룬다. 각 지역의 고유한 정체성이 유지되면서 동시에 이들이 전세계로 연결되는 두 방향의
운동이 공존한다. 특정 문화권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 모든 교회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모 여 만들어 내는 기독교다. “기독교” 앞에 “세계”를 붙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구 기독교는 그 목소 리들 중 하나로 간주된다. 물론 피부적으로는 여전히 세계화된 기독교를 규정하는 것이 서구 기독교
라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기독교 세계의 대부분의 학문적 업적이 서구의 유수한 신학교들과 서구 학자들에게서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 모든 문화권의 교회들이 세우는 다양한 기독교적 정체성 들이 모여 기독교를 이룬다는 주장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서구 교회가 주도하던 기독교 이해는 물러가고 서구의 기독교와 거리가 먼 새로운 기독 교 정체성들이 모여 세계화된 기독교의 성격을 규정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렇다면 서구 기독교 가 규범이 되던 시대를 넘어 “세계기독교”로의 전환이 이뤄지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그 배경이 되는 다음의 몇 가지 변화에 대해 살펴볼까 한다.
- 인구통계학적 역전: 기독교 무게중심의 이동
첫째, 기독교의 인구 통계적 변화다. 대표적인 복음주의 선교학 저널 중 하나인 International Bulletin of Mission Research (IBMR)이 최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21년 현재 전세계 기독교 인 구 중 북반구(서구) 기독교에 속한 비율은 32.7%에 불과하며 기독교 인구의 67.3%는 서구 밖의 비 서구 다수세계에 살고 있다. 이 비율은 2050년이 되면 23%와 77%로 그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다. 이 통계가 의미하는 것 중 하나는 세계화된 기독교를 더 이상 서구 기독교의 관점에서 배타적으로 규정 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독교의 무게 중심이 서구에서 비서구로 전환되고 있다는 사실은 서구교회가 주도하던 이제까지의 기독교 정체성에 대한 해석이 전세계 모든 교회들의 목소리가 반 영되는 새로운 형태로 바뀌어야 함을 암시한다. 비서구 지역 출신 학자들이 배출되고 있고 성장하는 교회들의 관점을 반영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존 파라트 (John Parratt)는 기독교의 인구학적 무게중심의 전환은 기독교를 서구의 종교라는 인식에서 세계적인 종교, 아니 전 세계 다양한 문화권에서 해석된 기독교 정체성들의 총합이라는 인 식으로 바꾸고 있다고 설명한다.
지난 세기 동안 기독교 신앙이 직면한 가장 큰 변화를 한 가지 꼽으라면, 그것은 (기독교의) 전통 적인 중심이 유럽과 북미로부터 멀어지는 인구 통계학적 변화였다. … 단순한 데이터가 모든 것을 말 해주지는 않지만, 기독교가 더 이상 ‘서구’ 종교로 간주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전세계의
종교가 되었으며 서구 교회는 이를 구성하는 단지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Parratt 2004, 1)
서구의 대표적 선교학자 중 하나인 티모시 텐넌트 박사도 이 관점에 동의한다. 그는 시간이 지날 수록 기독교의 정체성을 주도하던 서구 기독교의 목소리는 줄어들 것이고 미래에는 기독교를 대변 하는 얼굴이 비서구 지역 교회 성도로 바뀔 것이라 전망한다.
21세기가 시작될 무렵, 기독교인의 전형적인 “얼굴”은 런던에서 보다 (나이지리아) 라고스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서구에 사는 우리에게 ‘스웨덴인 불교도’라는 말이 매우 어색하게 들리듯이, 머지 않은 장래에는 ‘백인 그리스도인'이란 말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리고 조금은 모순처럼 들리 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 오늘날 네번째 기독교 분파가 일어나고 있는데 이들은 로마 가톨릭, 동방정 교회, 개신교 등 우리가 친숙한 기독교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새롭게 일어나는 분파이다. 앤드류 월 스는 이렇게까지 말한다. “현재의 추세가 계속된다면 아프리카 기독교가 21세기의 대표적인 기독교 가 될 것이다.” (Tennent 2007, 105)
- 서구 기독교 내부의 목소리
둘째, 서구 기독교의 관점에서 규정되던 기독교를, “세계기독교”라는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서구 기독교 내부로부터 나오는 목소리에서 찾을 수 있다. 세계화된 기독교 시대에는 서구 기독교가 이전의 주도적 위치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부 선교학자들과 교회 지도자 들이 주장하던 이 목소리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서구, 특히 유럽의 기독교가 급 격히 쇠퇴하는 상황에 대한 깊은 좌절감이 이런 목소리에 힘을 더해주고 있다.
미국선교학회(ASM) 회장이었던 밴 겔더의 주장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2013년 학회의 회장 으로서 행한 연설에서 세계 기독교 역사를 보는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 이 주장했다.
“Latourette (1937)에 의해 훌륭하게 틀이 짜이고 Neill (1964)에 의해 요약된 “기독교 선교 역사”
는 서구 기독교의 확산 이야기라는 서구중심적 프레임에 기초했었습니다. 그러나 이 관점은 Irvin과 Sunquist (2009, 2012)와 같은 학자들에 의해 “전세계 모든 기독교가 함께 이룬 운동”의 역사로 새롭 게 재구성되고 있습니다. … 부상하고 있는 남반구 교회들의 관점을 포함하는 보다 총체적인 관점에 서 기존의 역사적 사료들을 해석해야 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또 다른 영역에서도 명백해지고 있는데, 이는 기독교의 보편적 규범으로 여겨졌던 “유럽 부족 기독교 신앙 전통” (the Euro-tribal Christian faith tradition)이 주변부의 하나의 관점으로 재구성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Van Gelder 2013, 45)
이 강연에서 그는 서구 중심적 기독교 역사 해석을 내려놓고 기독교 역사를 다양한 문화 위에서 형성된 전세계 모든 교회들이 함께 이룬 것으로 새롭게 재구성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보다 더 충격적 인 것은 기독교의 보편적 규범으로 간주되었던 서구 기독교적 전통을 “유럽 부족”에 의해 발전된 “하
나의” 신앙 전통이며 기독교를 구성하는 “주변부”의 관점 중 하나일 뿐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자신을 낮춘 겸손한 주장이며 기존의 고정관념을 깬 매우 파격적인 관점이었다. 밴 겔더의 이 표현은 서구 기독교가 급격히 쇠락하는 상황을 반영하는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지도에 나타난 통계는 PEW 통계센터에서 2017년 발표한 것으로 영국의 기독교인 비율이 73% 로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British Academy가 2015년 발표한 정기적인 교회 출 석자의 비율은 전혀 다른 수치를 보여준다. 월 1회 이상 정기적으로 예배에 참여하는 비율은 4.7%에 불과하다. 1980년 11.1%에서 35년만에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이다. 이 추세를 통해 기독교 세계의 중심이었던 영국이 빠르게 선교지로 변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구 (유럽) 교회의 급격한 붕괴의 원인을 분석한 레슬리 뉴비긴은 이 상황에 대해 의외의 진단 을 내린다. 뉴비긴은 인도 남부에서 40년 가까이 선교사역을 한 뒤 1974년 귀국해 변화된 영국교회 상황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는다. 한때 기독교의 중심이었고 세계선교를 주도하던 영국교회의 교세 가 빠르게 줄어들고 특히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서구 교회가 왜 이렇게 되었는 가? 라고 질문한다. 많은 연구 뒤 그는 계몽주의 세계관의 지배를 받는 서구의 신학, 서구의 복음 해 석이 오히려 서구인들을 기독교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서구 교회의 신학은 (계
몽주의와 인본주의적 세계관에 물든) “일종의 혼합주의”라고 진단한다. 역사비평적 성경연구는 성경
의 계시성을 약화시켰고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을 “차가운 경멸”(cold contempt)로 대하도록 만들었 다고 탄식한다.
선교사는 두 가지 함정을 피하려고 노력한다. 하나는 문화에 대한 이해에 실패해 메시지가 상황 과 무관해지는 상태고, 다른 하나는 기존 문화에 대한 도전을 포기하고 무비판적으로 기존의 문화 에 함몰되어 메시지가 왜곡되는 경우다. 두번째 상황을 우리는 ‘혼합주의’라 부른다. 현대 영국(그리 고 대부분의 서구) 기독교가 “세련된 혼합주의” (an advanced case of syncretism)라는 것을 부인하 기 어렵다. (Newbigin 1983, 23).
내부적으로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서구의 기독교 정체성을 세계화된 오늘날의 기독교의 기준 으로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서구가 이미 선교지로 변해 있음을 인정하고, 동시에 서구 교회는 세계화된 기독교를 구성하는 한 일원에 불과함을 받아들여야 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서구 교회
가 뒤로 물러선 상황에서 오늘날의 세계화된 기독교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누가 이 세계기독교를
규정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 바로 “세계기독교” 패러다임이다. 즉 서 구 교회가 물러난 빈 자리를 전세계 모든 교회들이 함께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새로운 중
심으로 등장하고 있는 비서구 다수세계교회들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세계화된 기독교의 성격 규정 을 주도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전세계 모든 곳에 존재하는 교회들이 정당한 일원으로서 함께 기독 교 정체성을 세우는 상황이 바로 “세계기독교”의 등장 배경이다.
- 전환된 중심, 새로운 기독교 정체성
마지막으로 21세기의 세계화된 기독교가 서구 기독교의 세계적 확산이 아니라 “세계기독교”라 는 새로운 관점으로 설명되어야 하는 이유를 한 가지 더 추가한다면, 그것은 세계화된 기독교의 새
로운 중심으로 대두되고 있는 서구 밖의 비서구 다수세계 교회들이 나타내는 기독교 정체성들이 서 구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는 점이다. 교회역사학자인 필립 젠킨스는 그의 책 『신의 미래』 (표e Next Christendom)에서 이를 잘 설명했다. 그는 비서구 다수세계 교회들이 새롭게 만들어내고 있는 미래 의 기독교적 정체성은 서구의 그것과는 많이 다를 것이라 전망했다. Cabrita와 Maxwell은 젠킨스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젠킨스의 주장은 단순하다: 20 세기 동안 기독교 신앙은 남쪽으로 움직였다. 인구통계학적으로 기독교 인구의 중심이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 및 태평양으로의 거대한 이동이 있었다. 동시 에 ‘북반구’ (global North)로 알려진 유럽과 북미 등의 기독교는 말기적 침체에 빠졌고 교회들은 쪼 그라들고 예배당은 비어갔다. ‘남반구’에서 전례가 없는 거대한 교회 성장이 진행되고 있으며, 기독교 는 또 다른 위대한 종교개혁의 문턱을 넘고 있거나 실제로 넘어섰다. 이는 신학적으로 보수적이고 초 자연적 현상을 중시하며 영적인 관점을 지향하는 (남반구) 신앙이 자유주의적 사고에 기반한 북반 구의 상대주의적 신앙을 도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Cabrita & Maxwell 2017, 7)
세계기독교의 중심축으로 변화되고 있는 남반구 기독교는 북반구(서구)의 기독교와는 전혀 다 른 신앙적 성향을 나타낸다. 신학적, 윤리적으로 더욱 보수주의적 입장을 견지하며, 초자연적 신앙현 상에 대해 열린 태도를 보이며 성경해석에서도 근본주의적 관점을 적용하려 한다. 비서구 교회들의 가세는 그들과 함께 (기독교 안으로) 유입되는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로 기독교가 새롭게 재해석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서구 기독교가 주도하던 기독교 정체성을 넘어 전세계 모든 교회들의 다양한 기독 교 이해들에 의해 규정되는 “세계기독교”로 나아간다.
세계화된 기독교 상황에서의 복음 이해와 새로운 기독교 정체성의 형성은 최근 동서양의 많은 학자들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21세기 선교학 토론의 가장 뜨거운 주제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세계기 독교”에 관한 학술적 토론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된 것은, 앤드류 월스와 라민 사네가 주도해 1992년 부터 시작되었고 현재까지 매년 다양한 논문을 발표하고 있는 “예일-에딘버러 세계 기독교 및 선교역 사학회”의 활동이다.2 또한 서구의 유수한 신학교, 대학교들의 “세계기독교”를 다루는 연구 기관 설 립과 각 대학에 세계기독교 관련 과목 개설이 확대되고 있다.3 “세계기독교”를 전공한 학자들이 양성 되고, 저널들을 통해 논문들이 발표되고 있다. 이를 통해 많은 학자들이 21세기의 세계화된 기독교 를 “세계기독교” 패러다임에 기초해 새롭게 재해석하고 미래의 기독교 발전 방향성을 모색하고 있다.
- “세계기독교”의개념적 정의
기존의 서구 기독교의 전세계적 확장과 구별되는 “세계기독교” 개념은 어떻게 정의하는가? “세계 기독교”의 정의로 널리 공유되는 어빈 (Dale T. Irvin) 교수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기독교”는 글로벌하게 전개되고 있는 오늘날 기독교의 복잡한 상황을 설명하는 효과적인 관점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새로운 용어는 그 안에 새로운 의미를 담고 있 다. … “세계기독교”는 전세계 모든 대륙에서 발견되는 기독교 공동체들, 그들의 신앙과 실천들의 다
양한 교회적 전통들을 드러내고 그들의 역사적 문화적인 경험들을 알려주고 분석하는 새로운 연구 분야로 부상하고 있다. 이 용어는 전세계 모든 곳에서 발견되는 신앙과 그리스도인 삶의 지역적이며 토착적 표현들의 다양성, 그리고 이 다양성이 어떻게 서로 비판적이며 건설적으로 시간과 공간을 넘 어 다양하게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지에 관심을 갖는다.” (Dale T. Irvin 2008, 1)
어빈 교수는 세계기독교를 두 개의 상반된 흐름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나는 각 문화적 토양에 심 겨진 복음이 토착화된 고유의 기독교적 정체성으로 형성되는 과정이다. 복음이 새로운 문화 속에서 새롭게 재해석되며 그 결과로 고유한 기독교적 정체성을 형성한다. 다른 하나는 각 문화권의 다양한 기독교적 이해, 번역된 복음이 세계화라는 공간 속에서 하나로 연결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과 정이다.
2 이 학회의 연구활동과 의미에 대해서는 이재근 교수가 그의 논문 “세계기독교학의 부상과 연구 현황”(2014)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3 다음은 “세계기독교”를 연구하는 대표적인 기관들의 이름이다. 에딘버러 대학의 Centre for the Study of world Christianity, 보스턴대학의 Center for Global Christianity and Mission, 캠브리지 대학의 Cambridge Centre for Christianity Worldwide, 미국의 칼빈대학교의 Nagel Institute for the Study of World Christianity, 고든-콘웰 대학교 Center for the study of Global Christianity, 존스홉킨스 대학교의 Studies in World Christianity, 풀러신학교 의 Global Research Institute 그리고 트리니티복음주의 신학교의 표e Paul G. Hiebert Center for World Christianity and Global 표eology 등 다양하다. 한국의 대학교와 신학교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데, 연세대학교는 최근 World Christianity and Mission Studies 프로그램을 개설했고 횃불 트 리니티 대학원 등에서도 세계기독교 관련 과목들을 개설하고 이와 관련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선교문화인류학자인 폴 히버트 (Paul Hiebert)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전자는 “비판적 상황화”
또는 “자신학화” (Self-theologizing) 과정이라 할 수 있고 후자는 “국제적인 해석학적 공동체”를 통 해 만들어지는 “글로벌 신학화” (Global-표eologizing) 과정이라 할 수 있다. (Cathcart & Nichols 2009, 212) 즉 세계기독교는 자신학화를 통한 기독교 신앙의 지역화 (토착화) 과정과 전세계적으로
다양하게 형성된 기독교 정체성들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세계화 과정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 존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세계기독교는 상태에 도달해 있는 정적인 모습이라기보다는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주고받으면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동적인 개념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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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독교를 형성하는 두 흐름
세계기독교 상황에서의 선교운동
- 세계기독교와 선교운동의 통합
전세계에 세워진 다양한 교회들의 토착적 정체성들의 총합으로서의 세계기독교를 두 개의 상반 된 흐름으로 설명한 어빈 교수의 정의는 선교운동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즉 세계기독교 상황에서 의 선교운동은 전세계 모든 지역과 상황 속에 그 문화 고유의 토착적인 교회들을 세우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이 교회들이 세계화라는 네트워크 속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그리스도의 온전한 몸으로 통합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먼저, 새로운 문화 속에 복음이 심겨지고 교회들이 개척될 때 외부자가 이해하는 기독교적 정체 성을 심는 것을 지양하고, 현지 신자들의 주도로 토착화, 자신학화 과정을 거치면서 그들 문화에 기 초한 고유의 기독교적 정체성을 세울 수 있도록 돕는다. 이는 자국 내 타문화 선교상황 뿐 아니라 국 외의 타문화 선교현장에도 적용된다. 한편 각 지역에서 고유의 기독교 정체성으로 발전한 토착 기독 교들은, 세계기독교 안에 있는 두번째 흐름, 즉 전 세계를 잇는 글로벌 네트워크 속에서 각 문화권의 교회들이 서로 연결되고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하나의 거대한 선교운동을 지향한다. 각 문화와 지역의 거리가 짧아지는 세계화 움직임 속에서 전 세계 모든 교회들의 다양한 선교운동들이 하나로
통합되는 과정이 선교운동의 주요한 특성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전자의 흐름을 “복음의 번역 가 능성” (translatability of the Gospel)이 구현되는 과정이라면 후자의 흐름은 다양한 색깔의 선교운
동들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만들어 내는 전 지구적 차원의 선교운동의 “세계화” (globalization)로 부 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기독교 상황에서의 선교운동은 글로벌화 (Globalization)과 로컬화
(Localization)의 두 방향성이 공존하는 글로컬화 (Glocalization)의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선교운동은 서구 기독교가 비서구 지역으로 확산되는, 일방통행적이었던 근대선교운동의 패 러다임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지구적 차원과 지역적 차원이 서로 교차하며 상호영향을 준다는 면
에서 “모든 곳에서 모든 곳으로” 흐르는 선교이며 그 내용 역시 각 문화권의 다양한 기독교 정체성이 선교운동을 통해 전세계로 흘러간다는 면에서 다원적 선교라 할 수 있다.
- “세계기독교” 상황에맞는새로운 선교 패러다임
21세기 선교운동은 기독교의 새로운 무게중심으로 성장한 비서구 다수세계 교회들의 선교운동 을 담아내야 한다. 이는 우월한 문명, 막강한 재정적 파워, 잘 정립된 신학 등을 앞세워 진행하던 서 구의 크리스텐덤 선교 방식이 재고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근대선교운동을 이끌던 서구의 선교방식을 비서구 교회들이 따라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세계기독교 상황은 다수를 차지하는 비서구 교회들의 상황에 맞는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을 요구한다. 즉 “세계기독교” 상황에서의 선교 패러다 임은 전세계 모든 교회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형태여야 한다.
아래 인용문에 나타난 크리스토퍼 라이트의 자기비판적 주장은 서구의 근대 선교 패러다임의 퇴진이 피할 수 없는 도전임을 보여준다. 그는 선교에 대한 논의는 이제 전 지구적 차원에서 진행되어 야 하며 특히 성장하고 있는 비서구 다수세계교회들의 관점이 반영되는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이 세 워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 겸손과 회개가 필요하다. 겸손은 교회 성장과 세계복음화에 관한 엄청난 양의 책, 프로 그램 그리고 전략 등이, 활발한 성장과는 거리가 먼 오히려 장기적인 생존여부를 염려해야 하는 그 런 교회가 있는 세계로부터 나오고 있다는 아이러니에 대해 골똘히 숙고하게 만든다. … 전도에 관 해 더 많은 것을 가르칠 수 있는 교회에 우리는 기성복 같은 전략들을 뻔뻔스럽게 수출하고 있다. 둘 째 진정한 동반자 정신이 필요하다. … 실제로 유럽은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도전을 받고 있는 절실 한 ‘선교지’… 이전에 복음을 받았던 국가들이 지금은 자신들이 받았던 10배나 더 많은 선교사들을 타문화권 선교를 위해 보내고 있는 (인도의 경우처럼) 상황에서조차, 우리는 여전히 “보내는 국가”와 “받는 국가”라는 말을 하고 있다. (라이트 2012, 201-202)
그렇다면 과연 전세계 모든 교회의 선교운동이 연결된 “세계기독교” 상황에 맞는 새로운 선교 패 러다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다양한 시도들이 진행되고 있고 아직까지는 서구 선교가 세운 틀
안에 비서구 출신 선교사들이 채워지고 그들이 리더십을 발휘하도록 배려하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실제로 20세기 후반부터 서구교회가 이끌던 국제선교단체들은 이 방향으로의 개혁을 계속해 왔다. 단체의 리더십에 비서구 출신 지도자들을 세우고 단체 운영 방식도 비서구적 상황을 포용하려 노력 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은 서구적 틀이 유지된 채 비서구 선교자원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일부 수정한 것에 불과 것으로 한계가 있었다. 세계기독교 상황은 서구와 비서구 출신 선교사들이 함께 선교의 틀 자체를 새롭게 세우는 데까지 나아가야 하는데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국제 위클리프 번역선교회의 패러다임 전환이라 할 수 있다.
국제위클리프선교회는 서구 교회들 특히 북미주 교회들이 주도하던 전형적인 서구 선교단체였다. 그런데 이 선교회는 서구교회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세계기독교 (지구촌기독교)로 전환된 21세기 상 황에 맞도록 전세계 각 문화권의 토착 선교운동들의 연합으로 선교회의 기본 틀 자체를 바꿨다. 서 구교회에 맞도록 세워져 있던 신학적, 선교학적 그리고 조직적 틀을 “세계기독교적” 패러다임에 맞 도록 전환했다. 이를 위해 2011년 단체명도 “위클리프 성경번역 선교회”에서 “위클리프글로벌연맹” (Wycliff Global Alliance)으로 변경했다. 서구 선교사들이 갖고 있던 단체의 리더십을 과감하게 내 려놓고 글로벌 차원의 공유된 리더십으로 전환한 것이다. 21세기 세계기독교 상황에서 “위대한 선교
세기”를 이끌던 전문 파송선교단체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되고 있다.
이 전환 과정을 이끈 지도자였던 커크 프랭클린 (Kirk Flanklin)은 21세기의 변화된 선교 상황 을 담아내기 위한 위클리프 선교회의 여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위클리프글로벌연맹 (WGA)의 지나온 여정을 예로 들어 (선교) 패러다임 전환에 대해 살펴보 았다. … 다중심주의(polycentrism)에 대한 분석은 기존의 확고한 권력을 의도적으로 내려놓고 (소 외되어 있던) 사람들로부터 그리고 그들과 함께 리더십을 형성하도록 돕는다. 중앙집권적 “국제” 구 조를 떠나 분산되고 하이브리드 구조로 전환하기 위해 WGA가 걸어온 여정은, 다중심주의 관점 의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들은 선교를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영감을 제공한다. (Franklin 2017, 297)
“성경번역”이란 특정 사역 목표를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궁극적 목적을 보다 큰 “하나님의 선교” 의 참여로 변경한 것이고, “세계기독교”적 정체성 위에서 전세계 모든 교회들이 함께 운영하는 형태
로 선교회 조직 자체를 바꾼 것이다. 성경번역 사역과 조직 운영에 있어서의 주도권을 과감하게 내려
놓고 글로벌 차원의 공유된 리더십으로 전환한 것은 매우 혁신적 도전이며 이는 21세기 “세계기독 교” 상황에서의 선교구조를 보여주는 선지자적 결단이었다.
- 초기 기독교 선교 패러다임으로의 복귀
한편 전세계 모든 교회들의 기독교적 정체성이 모여 “세계화된” 기독교를 규정하고 이 세계기독 교 패러다임 위에서 전세계 모든 교회들이 함께 공유하는 새로운 선교구조로의 전환은, 그에 합당 한 (선교) “내용의 변화”를 요구한다. 세계기독교 상황에서의 선교의 내용과 태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이에 대한 응답으로 최근 대두되는 것이 초기 기독교 선교 패러다임으로의 復歸다.
앤드류 월스는, 정치적 경제적 약자이며 문명적으로도 우월하지 않은 비서구 교회들은, 식민주 의의 정치적 힘과 우월한 서구 문명을 앞세워 복음을 전파했던 서구의 선교 패턴과는 다른 길을 가 야 한다고 말한다. 그 길은 핍박 속에서 사회적 약자로 살아야 했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걸었던 선 교 여정과 유사할 것이라 예측했다. 초기 기독교는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로마 제국을 복음으로 정복 했는데 그 이유를 크리스텐덤 패러다임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들은 문명의 변두리 출신들이었고 각종 핍박을 견뎌내야 했던 정치적, 경제적 약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복음을 퍼뜨릴 수 있었던 비밀
은, 오직 약함에서 나오는 복음의 능력 뿐이었으며,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후12:10) 외쳤던 바 울의 고백 뿐이었다. 월스는 가난하고 무지한 비서구 교회들이 주도하게 될 세계기독교 상황에서의 새로운 선교운동은 여러 면에서 초기 기독교 선교와 닮을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데이비드 보쉬 (David Bosch)는 그의 책 『길의 영성』 (A Spirituality of the Road)에서 바울의 선교적 영성을, 권력에 의해 무기력하게 희생되었지만 이를 통해 온 세상의 구원하신 십자가의 영성 의 연장으로 설명한다. 바울 선교의 비밀을 “연약할 수 있는 용기” 즉 “약함의 선교”에서 찾는다. 초 기 기독교 성공의 비밀을 연구한 앨런 크라이더 역시 그의 책 『초기 교회와 인내의 발효』(2016)에서 동일한 결론을 내린다. 이 책의 부제 “로마 제국 안에 뿌리내린 초기 기독교의 성장 비밀”이 보여주듯 이 그의 관심은 아무 힘이 없던 초기 기독교가 어떻게 당시 전세계를 복음으로 정복할 수 있었을까? 에 있었다. 다양한 역사적 사료들을 분석한 뒤 그는 초기 기독교의 성장 비밀은 저들의 약함에 있었 다고 결론을 내린다. 초기 기독교 구성원들은 권력의 바깥에 위치해 있었고 오히려 권력의 탄압 대상 이었다. 사회적 약자였으며 경제적으로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어두운 지하 공동묘지 카타콤 에서 숨어 지내야 했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강점은 약함 속에서 피어나는 특이한 삶의 방식이었고
사람들을 악한 영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케 하는 영적 능력에 있었다.
초기 기독교 선교에 대한 연구들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것이 성경이 제시하는 바람 직한 선교의 모습이기 때문이며, 동시에 “세계기독교” 시대의 선교운동을 주도하게 될 비서구 교회 들의 상황을 담아낼 수 있는 선교 모델이기 때문이다. 초기 기독교 선교의 진정한 힘은 약함에서 나 오는 성령의 능력에 있었다. 정치적, 문명적, 재정적 배경이 없는 비서구 교회들이 주도하게 될 21세
기 선교운동은 “약한 자들을 들어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친히 일하셨던 초기 기독교 상황을 재현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한국교회 선교에 주는 의미
그렇다면 세계기독교 시대의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을 어떻게 한국교회 선교운동에 적용할 수 있 을까? “세계기독교”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수용하고 이에 적합한 선교운동 패러다임을 세우기 위한 몇 가지 전제 조건을 언급함으로써 본 소고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첫째, 앞에서 살펴본 서구 선교 지도자들의 고백(?)을 귀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다. 저들의 외침 은 서구적 선교 패러다임을 따라 선교운동에 참여해 온 한국교회의 선교운동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세기” 동안 근대선교운동을 이끈 서구 선교사들은, 서구 문명과 서구의 기독교적 정체성이 온 세상을 위한 유일한 대안이라 여겼고 이를 전 세계에 전파하는 것을 자신들
이 “짊어져야 할 운명”으로 믿었다. 이 사명감 때문에 희생적으로 서구 문명과 서구 기독교를 전세계 에 전파했다. 전세계에 교회들이 세워지고 그들이 빠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들의 꿈이 성 취되었다고 느꼈다. 그런데 1970년대 비서구 여러 지역의 교회들로부터 “선교중지 (모라토리엄) 요청” 을 받게 되면서 서구교회는 커다란 충격에 빠졌다. 선교사의 존재가 자신들의 성장에 방해가 되므로
떠나 달라는 피선교지 교회의 요구를 접하면서 서구 교회 지도자들은 지난 시절 자신들의 선교에 대해 비판적 성찰을 시작했다. 그리고 서구 선교운동이 어느 순간 자기 중심적 오만에 빠져 있었음 을 발견한다. 마침 그 기간 동안 진행된 서구 (유럽) 교회의 급격한 붕괴 상황은 이 자기성찰을 더 깊 고 무겁게 만들었다. “서구 기독교를 온 세상을 위한 유일한 대안으로 여기고 이의 확산에 전력투구 했던 과거의 선교는 옳았는가?” 이들은 자신의 교만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전세계 모든 교회들과 함 께 하는 새로운 선교운동을 위해 진지하고 고민하게 되었다. 주도하던 위치에서 내려와 자신들을 단
순히 “세계기독교”의 한 부분으로서 자리매김하려 했고 비서구 교회들과 함께 하는 세계선교의 틀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서구의 선교운동이 걷고 있는 이 여정은 어쩌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요구되 는 도전일 수 있다.
둘째, 당연한 이야기지만, 세계기독교 상황에서의 선교 운동은 새롭게 성장하고 있는 비서구 다
수세계 교회들과 함께 하는 선교운동이어야 한다. 주님은 피선교지였던 교회들 안에 하나님의 선교 운동을 일으키고 있고 그들을 통해 이미 많은 수의 선교사들이 파송되고 있다. 2021년 IBMR이 발 표한 통계에 따르면 전세계 (개신교) 선교사 파송국가 순위에서 미국(1위)을 제외하면 2-6위는 “브라 질 – 한국 – 필리핀 – 나이지리아 – 중국”의 순으로 비서구 국가들이 자리잡고 있다. (지도 참조) 이 외에도 대부분의 성장하는 비서구 다수세계교회들 안에서 타문화 선교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
한 변화는 한국교회 선교운동이 앞으로 비서구 교회로부터 파송되는 선교사들과의 적극적인 연합 과 동역을 개발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 역할을 감당함에 있어 한국교회는 강점을 갖고 있다. 피선교지 교회로서 선교운동을 주도한 경험이 있고 비서구 출신 교회로서 서구적 선교모델을 경험한 교회이기도 하다. 서구 주도적 선교운
동이 퇴장하고 “세계기독교” 상황에서의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을 세워야 하는 상황에서 한국교회 선교의 이러한 경험은 유용한 자원이 될 수 있다. 비서구 교회들은 많은 재정과 문명적 우위에 기초 해 운영되는 서구의 선교구조를 감당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약함의 선교”, 즉 희생적 삶과 섬 김, 그리고 영적 능력 등에 기초한 초기 기독교의 선교 영성을 담아내는 선교구조를 새롭게 (저들과 함께) 만들어야 한다. 그동안 서구 선교패러다임에 기초해 선교운동을 진행해 왔지만 그럼에도 우리
중에는 초기 기독교가 걸어왔던 “약함의 선교”를 실천한 많은 선교사들이 존재한다. 이들의 사례를 발굴하고 그 경험을 기초로 비서구교회 선교운동과 함께 세계기독교 상황에 맞는 새로운 선교 패러 다임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미전도지역 선교에 대한 재발견이다. “선교 중지” (모라토리엄)” 요청이 선포되고 에 큐메니컬 선교운동에 따른 세상 변혁적 선교 패러다임이 강력하게 일어나던 1960년대 말과 1970년 대 초, 복음전도와 교회개척 중심의 복음주의 선교운동은 큰 위기를 직면했다. 이 위기를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로잔세계복음화대회 (1974)를 계기로 제기된 “미전도종족 선교운동”이었다. 복음
이 없는 지역을 향한 새로운 관심이 일어나면서 복음주의 선교운동은 다시 선교적 부흥기를 맞이했 다. 한국교회의 선교운동 역시 미전도종족 선교운동의 열풍 속에서 폭발적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21세기 “세계기독교” 시대는 여러 면에서 1970년대 상황과 유사해 보인다. “선교 일시중지 (모라 토리움)” 요청은 없지만 비서구 교회들의 선교운동이 활성화되면서 서구 (한국)의 선교운동의 도움 이 필요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 이 점은 다른 의미의 선교 모라토리움 요청이 될 수 있다. 이런 위기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은 1970년대와 마찬가지로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지역, 영혼들을 향 한 새로운 각성 운동이다. 미전도종족 선교운동은 여러 이유로 21세기 들어 그 열기가 식었는데 이
는 이 운동이 갖고 있던 여러 한계들의 결과다.4 그러나 이 운동이 강조했던 것, 즉 복음으로부터 단
절되어 있는 지역과 영혼들에 대한 영적 부담은 여전히 소중하며 21세기 선교운동이 회복해야 할 영 역이다. 2021년 현재 전세계에는 아직도 28.2%의 인구가 교회가 없고 여러 이유로 복음으로부터 차 단된 지역에 살고 있다 (Zurlo, Johnson & Crossing 2021, 23) 많은 이들이 아직도 파송된 선교사가 없이는 복음을 접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면서 타문화 선교운동을 다시 일으킬 필 요가 있다.
한편 세계기독교 상황에서의 미전도 지역을 향한 선교운동은 서구 선교세력 뿐아니라 비서구 교회들의 선교세력과의 대등한 연대 위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어쩌면 문화적, 지역적으로 미전도지 역에 더 근접한 교회들이 주도하고 여타 지역 출신 선교사들이 참여하는 형태가 되어야 할 지도 모 른다. 한편 이런 상황은 선교운동의 초점과 관련하여 열린 토론을 요청한다. 젠킨스의 주장에 따르 면 비서구 교회들은 신학적으로 더 보수적이고 선교의 영적 차원을 강조한다. 영혼구원이나 교회개 척, 영적 은사들에 대한 강조 등을 통해 지역적 경계를 넘어 복음을 전하려는 욕구가 강하다. 이에
반해 최근 서구에서 논의되는 선교의 주제들은 피조세계 전반의 회복을 향한 “하나님의 선교,” “자
신학화,” “교회의 선교적 본질 회복” 등 서구교회의 침체를 해결하기 위한 토론의 연장선상에서 제기 된 것들에 집중된 면이 있다. 서구교회가 직면한 위기 해결을 위한 내부적 개혁 성향이 강해 보인다.
세계기독교 시대의 선교운동은 서구와 비서구가 제기하고 있는 두 관점이 건강한 긴장관계를 이루 면서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을 찾을 필요가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1974년 로잔세계복음화대회에서 제기되었던 미전도상태에 있는 영혼들에 대한 책무, 그들 가운데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워야 한다는 긴박감을 오늘날 상황에 맞도록 되살 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서구 다수세계 교회들과 함께 “그들의 방식을 따라” 미전도지역을 향하는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을 세워야 한다. 어쩌면 미전도지역을 향한 선교적 움직임, 잃어버린 영혼들에 대한 열정 회복에 침체한 서구교회와 한국교회의 문제 극복의 대안이 있을 지 모른다. (지역적, 영역 적 경계를 넘어) “땅끝을 향한 행진”, 이것이야말로 오순절날 성령이 임해 하나님의 교회가 시작되던 그 순간부터 교회를 지배하던 불변의 지향성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맺는 말
4 당시 서구 기독교 지도자들의 토의는 다분히 자신들이 직면한 위기 극복을 위한 자기생존 논리의 성격이 강했다. 미전도상태에 대한 규정, 종족과 복음 화 기준 등 지나치게 복잡한 이론적 논의가 지배했다. 정량적 목표를 설정하고 경영학적 전략을 통해 이를 성취하려던 인본주의적 접근의 한계도 있었다. 위
기 상황에서 서구 선교단체들의 생존논리로 작용했던 부분도 배제되어야 하고 성경해석의 오류와 자의적인 종말론적 구호들도 선교운동의 혼란을 겪게 된 원인이 되었다.
“세계기독교”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이미 들어와 있는 21세기의 새로운 기독교 상황을
의미한다. 지난 세기 동안 엄청난 변화를 지나온 (세계화된) 기독교가 어디쯤 와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개념이다.
“세계기독교” 패러다임은 선교운동에도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세계기독교 상황에서는 전 세 계 모든 곳 각 지역 교회의 고유한 정체성들이 형성되고 동시에 이들 교회들은 다시 세계적인 네트 워크로 연결되면서 하나됨을 지향한다. 이 과정은 동시에 선교운동의 틀로 작용한다. 즉 번역가능한 복음에 대한 이해에 기초해 각 문화권마다 자신의 문화적 토양에 맞는 기독교적 정체성을 세우고 이 를 기초로 그 문화 내에 빠르게 복음을 확산시킨다. 동시에 각 문화 내에서 진행되는 이 운동은 “세
계화” “지구촌화”라는 상황 속에서 빠르게 전세계로 연결되고 상호 영향을 주고받게 된다. 한편 이
두 흐름은 미전도지역과 영역에 대한 관심과 헌신으로 이어지고 전세계 모든 교회들이 연합해 미전 도 지역의 복음화 운동으로 나아간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향해야 하는 최종 목적지는 언제나 복 음이 뿌리내리지 못한 “땅끝”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서구 학자들이 “세계기독교” (서구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 모든 교회가 주인이 되어 정의되는 기독교)를 이야기하는 배경에는 그들의 과거 제국주의적 실수들에 대한 죄책감이 깔 려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세계기독교의 “세계”는 과거에 대한 미안함을 담는 단어여서는 안 된다. 아 직 복음을 듣지 못한 세계를 향한 미래지향적 도전, 즉 전세계 모든 교회가 여전히 남아 있는 이 과 제를 향해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도전의 의미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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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기독교 – 아프리카의 실제 / 김영섭 선교사(GMS, 차드)
들어가는 말
필자는 1992년 선교에 부르심을 받고 준비하다가 1999년 아프리카 차드 선교사로 파송을 받고 지금까지 사역하고 있다. 이번 2023년 NCOWE 모임에 “세계 기독교 – 아프리카의 실제”에 대해 발 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감사를 드린다.
발제는 먼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아프리카에 대한 선입견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고 아프리카에 대한 일반 정보, 아프리카의 현재 모습, 아프리카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기를 원한다. 그리고 아프리 카 선교 연합운동인 MANI를 중심으로 아프리카 교회들이 아프리카에 남아있는 미전도 종족과 세 계선교화를 위해 어떤 전략과 방향을 가지고 나아가고 있는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마지막은 아프리 카 교회 리더들의 바람을 나누면서 아프리카 선교의 도전과 방향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 아프리카에 대한 선입견을 벗자
1) 아프리카 대륙에는 많은 나라가 있다. 필자는 아프리카의 56개 나라 중 중북부 지역에 위치한 차드라는 나라에서 사역을 함에도 불구하고 필자를 소개할 때 ‘아프리카 선교사’라고 하시는 분들
이 있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어떤 나라를 방문하신 분들이 “아프리카를 다녀왔다. 아프리카는 이렇
다”라고 말하는 것을 종종 듣는다. 특정 나라에 대한 경험을 아프리카 전체에 해당되는 것처럼 일반 화 시키는 것이다. 하나를 보고 전체가 이렇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2) 아프리카의 모든 나라들이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다. 아시아에도 경제적으 로 잘 사는 나라들이 있고 못사는 나라들이 있듯이 마찬가지로 아프리카에도 경제적으로 잘 사는
나라들이 있고 못사는 나라들이 있다. 아프리카라고 하면 ‘가난과 내전 그리고 질병’을 떠올린다. NGO 단체들의 구제 호소 광고로 인해 이런 선입견이 강하다. 아프리카에 곳곳에 이런 어려움과
도움의 필요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프리카 대륙에는 천연자원들이 풍부하며 경제적인 성장이 가속화 되고 있다. 잠재력이 있는 대륙이기에 세계 강국들이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과의 교류를 맺고 있고 외교에 힘쓰고 있다. 가난과 내전 그리고 질병이라는 단어에 아프리카를 가두지
말았으면 한다.
3) 아프리카 대륙은 다양함으로 가득하다. 아프리카 대륙에는 많은 언어와 민족과 문화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 또한 많은 언어와 민족과 문화가 한 나라에 함께 공존하고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 과 함께 공존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워간다. 그리고 자연의 질서를 존중하며 살아가고 어떤 색깔도 소화해내는 융통성이 있다. 슬픔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저력이 있다. 피부색으로 그들 안에 있 는 다양성을 보지 못하는 실수를 범하지 말자
- 2. 아프리카의 일반 정보
1) 아프리카 대륙은 아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면적이 넓고 인구가 많다. 56개국에 13.41
억 명(2020년 기준, 위키피디아)이 살고 있으며, 세계 인구의 15%에 해당한다.1
2) 아프리카에는 56개국(UN 54개국)이 있으며 3,707개의 부족과 2,146개가 넘는 언어가 있다.
3) 언어권(불어권, 영어권, 포어권, 아랍권 등), 지역권(북부, 중부, 서부, 동부, 중부 등), 종교권(개 신교, 가톨릭, 이슬람, 전통종교 등)으로 다양하게 분류된다.
4) 아프리카에는 다양한 문화가 있다. 문화적 구분은 아랍 문화와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문화 와, 전통적 방법으로 사는 아프리카 지역과 문명의 발달로 살아가는 근대적 지역으로 나누기도 한다.
5) 종교는 크게 이슬람교, 기독교, 전통종교로 나뉜다.
- 아프리카의 종교들
(1) 이슬람
이슬람교는 7세기에 아라비아 반도에서 아프리카로 전해져 지중해 연안지역으로 퍼졌다. 이슬람 교가 사하라 사막을 넘어 아프리카 전역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은 11세기 무렵으로, 평화적인 포교활 동과 지하드, 그리고 북아프리카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의 교역활동에 힘입어 널리 전파되었다. 이슬람교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로의 확대과정은 19세기 말에 시작된 열강의 아프리카 식민지 분 할기에도 계속되었다(출처: 2022년 11월 27일 위키미디어)
| 지역 | 나라 | 인구: 1억 9,240만명(1982년) |
| 북부 | 이집트, 리비아,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 | 2/4 |
| 서부 | 니제르, 말리, 세네갈, 모리타니아, 감비아 | 1/4 |
| 동부와 남부 | 수단, 소말리아, 이디오피아, 케냐, 탄자니아, 모잠비크, 차드, 카메룬 | 1/4 |
(2) 기독교
1) 2018년 고든콘웰신학교 글로벌기독교연구센터 통계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기독교인수는 총 6
억 3100만. 기독교 교파는 개신교, 카톨릭, 정교, 성공회, 장로교, 침례교, 순복음, 아프리카 독립 기
독교회(African Independence Christian Church)등이 있다.2
2) 아프리카는 초대 기독교가 부흥한 곳이고 기독교 역사에 중요한 신학자들(터툴리안, 어거스 틴, 오리겐, 이레니우스 등)이 배출된 지역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디오피아, 이집트, 튀니지, 알제 리, 리비아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3) 기독교가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에 전파된 시기는 15세기 말 포르투갈의 진출에 의해 시작 이 되었고 본격적인 선교는 18세기 영국, 프랑스, 벨기에 등의 식민지주의의 진출과 함께 시작되었다.
(3) 그 외의 종교들
1) 힌두교 신도는 약 138만 명을 헤아리나 분포지역은 인도 사람이 많은 남아공이나 케냐 등 동 아프리카 일부에 주로 산다.
2) 그 외에 정령숭배(애니미즘)로 분류되는 여러 가지 전통종교를 가지고 있는데, 사회의 근대화 에 따라 기독교나 이슬람교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 아프리카 대륙을 지역으로 구분
| 지역 | 나라 |
| 북부(7) | 리비아, 모로코, 서사하라, 북수단, 알제리, 이집트, 튀니지 |
| 중앙(7) | 남수단, 차드, 르완다, 부룬디, 우간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콩고민주공화국 |
| 동부와 남부(21) | 나미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레소토, 레위니옹, 마다가스카르, 마요트, 말라위, 모리셔스, 모잠비크, 보츠와나, 앙골 라, 잠비아, 짐바브웨이, 세이쉘, 소말리아, 에리트레아, 에티오피아, 지부티, 케냐, 코모로, 탄자니아 |
| 서부(21) | 가나, 가봉, 감비아, 기니, 기니비사우, 나이지리아, 말리, 니제르, 세네갈, 베냉, 라이베리아, 부르키나파소, 카보베르데, 코트디브아르, 모리타니아, 시에라리온, 토고, 콩고 공화국, 적도 기니, 카메룬 |
- 아프리카의 언어들
아프리카에는 3,000개가 넘는 많은 언어들이 존재하는데 열강의 식민주의로 인해 영어와 프랑 스어, 포르투갈 등이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 아프리칸스어 | 포르투갈어 |
| 아랍어 | 스페인어 |
| 영어 | 스와힐리어 |
| 프랑스어 | 기타 |

- 아프리카의 아픔의 역사
(1) 노예제도: 7세기-20세기에 이르기까지 아프리카 노예 무역은 사하라 사막과 인도양 교역로를 통하여 1천8백만 노예들이 아프리카를 떠났다.
(2) 식민주의: 19세기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은 아프리카에서 영토 쟁탈전을 벌이면서 대륙을 자
2 https://www.christiantoday.co.kr/ 기독교인이 가장 많은 대륙 아프리카: 2018.07.12
기들 임의로 나누었다. 2차 세계대전 후 리비아, 튀니지, 모로코, 가나, 알제리 등으로 독립이 이루어
지고 1960년대에 대부분의 나라들이 프랑스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독립은 하였으나 계속되 는 쿠테타와 내전이 일어났다.
(3) 아프리카에는 천연자원이 풍부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저개발 지역으로, 그 원인으로 질병과 바이러스(에이즈와 말라리아 등), 정부의 부패, 국가 계획의 실패, 높은 문맹률, 해외 자본의 부족 등이다.
(4) 아프리카 사람들은 의료 부족과 빈곤, 사막화, 영양실조, 부적절한 수도 공급과 위생으로 고 통을 받고 있다.
- 7. 변화하는 아프리카: 절망에서 희망으로, 분리에서 연합으로
인구학자들은 아프리카는 세계에서 인구가 빠르게 성장하는 대륙으로 2050년이 되면 세계 인 구의 ¼이 아프리카 사람이 될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 성장을 보여주면서 블랙이 아닌 컬러풀 아프리카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3
1960년대에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을 하면서 풍부한 지하자원과 발전 가능성
을 가진 “희망의 대륙”으로 불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70년대부터 낮은 교육 수준, 인종과 부족 간의 갈등, 잦은 쿠데타와 정치적 불안정, 부정부패, 정부의 무능력에 경제 성장은 어려워졌고, 두 차
례의 석유 파동으로 수출은 줄고 수입 부담이 늘어 경제적 어려움은 가중되면서 아프리카는 “절망 의 대륙”으로 불려졌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아프리카 경제가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면서 “희망의 대륙”이라는 이름을 되찾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1세기 들어 가장 빠르게 성장한 10개국 중 6개국이 아프리카에
속한 국가이며. 1995년에서 2005년까지 아프리카의 경제성장률은 올라가서, 2005년에 평균 5%대이 다. 2008년 이후 지속된 세계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국가 대부분이 큰 타격 없이 이 성장 세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산업분야는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연평균 15~23% 성장했다. 열강들은 아프리카에 남아있는 천연 자원들(석유, 우라늄, 금, 다이아몬드 등)과 아프리카 대륙의 경제권을 장 악하기 위해 다시 아프리카를 향해 진출하고 있다(예: 중국의 자원 외교).
전기나 수도시설이 없고 도로가 깔리지 않은 오지에서도 핸드폰이 터지고, 젊은이들이 facebook, whatsapp 등 SNS을 통하여 서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도시에는 전기와 수도 시설의 보편 화와 건축 붐으로 고층 건물들이 세워지며, 일거리를 찾기 위해 젊은이들이 마을에서 도시로 이동 하는 도시화 현상이 짙어지고 있다. 경제 성장으로 중산층이 조금씩 늘고 있으며, 자원의 수출 등이 일어나고 있다. 저가폰을 중심으로 통신 시장이 발달하고 있다. 인터넷은 풍부하고 다양한 정보들로 젊은이들에게 미래를 위한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준다.
젊은이들은 유학으로, 상인들은 비즈니스로, 종교인들은 선교사들을 북미와 유럽과 아시아로 보내
고 있다. 타잔 시대, 부시맨 시대, 아웃오브 아프리카 시대는 벌써 지나고 많은 변화들이 진행되고 있다.


- 아프리카 교회의 부흥
아프리카 근대와 현대에 교회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준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나이지리아 사람 새뮤얼 아자이 크라우더(Samuel Adjai Crowther, 1807~1891)로 1864년에 성공회 주교로 서임 받았 고 아프리카인의 긍지와 재능을 전 세계에 알렸다다. 또 한 사람은 우간다 사람 페스토 키벵게레(Festo Kivengere, 1919~1988)인데 그는 복음전도자로 20세기 아프리카 영적 부흥에 기여를 하였다. 동아프 리카 부흥은 1920년대 말과 1930년대에 동아프리카 지역의 개신교 교회에서 부흥이 일어났다.4
지난 50년 동안의 아프리카 기독교는 괄목할 수준으로 성장했다. 아프리카 교회는 그 성장속도 가 빠르다. 지금부터 백 년 전 아프리카의 무슬림 인구는 기독교인의 4배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아프 리카 기독교인은 아프리카 전체 인구의 46%를 차지하며 아프리카 무슬림 인구를 능가하고 있다. 이 슬람과 정령숭배에서 개종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데이비드 바렛(David Barrett)은 지난 1970년 아프리카 전체의 교회 수를 24만7천 개로 추정했 다. 그 후 25년 뒤의 아프리카 교회 수는 55만2천개(1만2천5백 교단)로 늘어났다. 아프리카 교회들 은 일반적으로 복음주의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아프리카 교회들은 회심을 강조하고, 성경의 가르침 에 신앙의 기본을 두며, 아주 활동적이다.5
21세기가 시작된 지 약 20년이 지난 오늘날. 기독교가 신앙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전반을 주도하
는 세계를 의미하는 ‘크리스텐돔(Christendom)’에 가장 어울리는 대륙은 전통적인 크리스텐돔이었 던 유럽이 아니다.6 오히려 가톨릭 크리스텐톰의 유산을 상당 부분 유지하는 남아메리카, 그리고 새 로운 기독교의 중심 세계로 부상한 아프리카다. 오늘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인구 대비 기독교인 의 비율에도, 지역 교회의 열정과 헌신도 다른 어떤 대륙보다 훨씬 기독교적이다.
4 『복음주의 인물사』, 티모시 라슨 편/ 이재근, 송훈 역 (서울: CLC, 2018)
5 Christianity Today, 2007년 11월호, 한국선교연구원(kriM) 파발마 638호 “아프리카 교회의 성장과 부흥 (2)
6 『신의 미래』, 필립 젠킨스 저/ 김신권, 최요한 역 (서울: 도마의길, 2009).
- 아프리카의 선교 연합 운동
아프리카 선교 연합 운동의 출발점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을 쟁취한 1960년대였다. 1960년 대 중반에 Evangelism in Depth 운동은 콩고 자이르에서 시작되었고 나이지리아 중앙 고원에서도 New Life For All 운동이 시작되었다. 지난 40년 동안 37개 아프리카 국가는 국가적 및 세계적 복음 화를 위해 교회와 사역을 동원하기 위한 국가적 이니셔티브를 시작했다. 이러한 운동은 1970년대에 교회의 갱신, 개척, 성장과 선교를 위하여 가나 전도 위원회(GEC)의 출현을 촉진하였다.
1980년대에는 Target 2000 운동이 짐바브웨에서, Finish the Task 운동이 나이지리아에서 시 작되었다. 국가적 협력의 노력으로 나이지리아에 교회가 증가하고 나이지리아 안팎에서 불신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나이지리아인 선교사들의 헌신으로 이어졌다.
1997년 7월 46개국에서 온 1,200명의 아프리카 지도자들이 남아프리카에서 열린 GCOWE ’97에서 아프리카 국가 이니셔티브에 대한 협의에 모였다. 이 협의는 조직화된 아프리카 국가 이니셔 티브의 탄생과 발전을 가속화했다. 이 촉매적 사건은 Finish the Task Kenya와 같은 새로운 국가 운 동의 확산으로 이어졌다.
- 10. MANI(Movement for African National Initiatives) Consultation
(1) MANI 모임의 발족: 2001년 3월, 아프리카 36개국에서 온 320명의 대표들이 아프리카 밀 레니엄 협의를 위해 예루살렘에 모였다. 협의회에 모인 사람들은 아프리카 교회가 아프리카에서의 마지막 복음 추진에 일차적인 책임을 져야 하며, 아프리카 교회가 21세기 세계 복음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을 인식하고 참석자들은 만장일치로 ‘예루살렘 선언’을 채택하여 AD 2000 and
Beyond 운동이 제시한 국가적, 세계적 복음화의 횃불을 들어 올리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아프리카 의 시간은 아프리카와 그 너머에서 마지막 복음 추진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을 져야 할 때가 되었으며
아프리카 교회는 21세기 세계 복음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 이런 모토 위에 아프리카 국가 이니셔티브를 위한 운동(MANI)은 이렇게 출범하였다.7
(2) MANI의 목적: MANI는 국가 이니셔티브에 대한 옹호와 지원을 통해 아프리카와 세계의 미전도 종족과 가장 복음화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겠다는 비전을 교회 지도자들에게 나누면 서 선교 동기를 부여하고, 동원하고, 네트워크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3) 전략적 협의: MANI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전략적 회의다. 새로운 비전, 전략적 계획 및 지 상명령의 성취를 위한 집중된 열의는 교회 지도자들이 함께 모여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기도 할 때 나타나기 때문이다. 매 5년마다 정기적인 대륙 협의를 개최하였다. 각 협의의 목적은 아프리카 대륙과 세계의 사람들 사이에서 주님의 구속 계획을 진전시키기 위해 아프리카 교회 안에서, 아프리 카 교회와 함께, 그리고 아프리카 교회를 통해 하고 계신 일을 찬양하는 것이다. 과거의 목표를 검토
하고 함께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새로운 통찰력과 인도하심을 받기 위함이다.
(4) MANI의 역사
1) 2001년 3월 20일, 아프리카 36개국에서 온 2001명의 대표단이 예루살렘에 모여 아프리카 밀 레니엄 협의회(AMC)를 개최하여 수년 동안 아프리카 복음화에 대한 하나님을 찬양하고 아프리카 와 세계의 미완성 과업에 대해 함께 협의하여 MANI를 탄생시켰다.
2) MANI 2006, 케냐 나이로비에서 520개국에서 영향력 있는 지도자 65명이 모였다. 이 협의는 아프리카 교회의 활기찬 성장을 축하하고 아프리카 대륙을 향한 주님의 의도에 대한 깊은 희망을 표 명하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협의에서 제기된 중요한 문제, 즉 제자도의 필요성, 변혁 적 리더십, 연합된 기도와 사역을 위한 여성의 권한 부여, HIV/AIDS, 전체론적 공동체 변화, 이슬람 의 도전 등에 대한 대륙의 수확을 목격했다. MANI 2006 협의 후 일련의 활동, 행사 및 프로그램이 대륙 전체에 걸쳐 국가, 지역 및 사역 초점 수준에서 수행되었다. MANI는 다른 대륙(아시아, 아메리 카)에 있는 파트너들에게 손을 내밀고 상호 작용했으며 지속적인 글로벌 대화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2008년 남아공에서 열린 MANI 모임은 Global South와 Global North에서 온 약 40명의 선교 지도자들이 모였다. 이 모임에서 아프리카에 대한 관련 문제를 나이지리아 Dr. Uzo Obed와 남아공
Caesar Molebatsi 이 명확하게 정의하였다. Obed 박사는 “아프리카가 나머지 세계에 복음을 전할 신성한 운명을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인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꾸는 방법은 아프리카에 대한 진정
한 인식을 갖는 것이고 아프리카에 대한 진정한 인식은 예수님이 보시는 방식으로 아프리카를 보는 것이다”라고 도전을 주었다.
3) MANI 2011년 9월 4-10일, 나이지리아 아부자에서 60개국의 참가자들이 모였다. 이 협의회에
서는 교단 지도자, 새로운 지도자, 아프리카 여성 사역, 전략적 기도 네트워크 등에 대해 논의를 하였다. 4) MANI 2016년 7-11일 제3회 대륙 협의가 에티오피아의 아디스 아바바에서 열렸다. 그것
은 ‘현재 상황에서 아프리카 교회의 선교 임무’가 무엇인지를 상고하고 아프리카 대륙과 세계에서 일 어나는 사건의 현실이 성령의 지시와 인도에 따라 수행되도록 하자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MANI는 제자 양육, 무슬렘 선교, 지역 교회와 교단과 선교단체의 동역, 여성 사역, 어린이 사 역 등에 대한 분과들이 생기고 각 분과에 코디네이트를 정하여서 모임을 하고 있다. 또한 영어, 프랑 스어, 포르투칼어 등 언어권과 아프리카 지역들을 나누고 코디네이티를 임명하여 전략적으로 사역 을 하고 있다.
MANI는 아프리카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다루시는 일을 검토하고, 모든 결과에서 그분의 신 실하심을 기리고, 아프리카 사람들과 교회가 직면한 도전을 식별해야 한다. 아프리카 교회들이 하나 님의 다루심에 응답하고 세계 선교 과업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지상 명령을 수행하는 교회의 세계적 노력에 대하여 기여 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MANI는 아프리카인들이 아프리카의 미전도 지역을 선교하고 제자화 하는데 노력하고 있으며
아프리카 교회들과 선교 지도자들이 자국에서 미완성 과제 평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새로운 정 보를 사용하여 교회들에 동기를 부여하고 동원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글로벌 미션을 수행하는 국가 들(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가나. 케냐, 이디오피아, 잠비아, 말라위, 코트디브아르 등)이 늘어 나고 있다.

11, 아프리카 교회들의 선교 흐름
아프리카 교회들은 아프리카 대륙을 넘어 아시아, 아메리카와 유럽 등으로 이민을 가면서 그곳에 서 디아스포라 교회들을 세우며 복음을 전하고 있으며 나이지리아와 가나 등 아프리카 나라들이 유 럽과 북미에 선교사를 보내고 있다. 180년의 기독교 역사를 지닌 나이지리아 교회는 미전도 종족에 대한 선교에 박차를 가하면서 아프리카와 세계 복음화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나이지리아 복음주의선 교협회(NEMA)는 아프리카와 중동의 10/40창 지역으로 선교사 동원, 훈련, 파송에 힘을 쏟고 있으 며8 나이지리아의 ECWA(Evangelical Church Winning All)의 교회들은 1,830 부부를 선교사로 타 국으로 파송했다. 이디오피아의 바케네 예수 교단도 선교사들을 이웃 나라에 선교사들을 파송했으 며 케냐의 예수전도단, 콩고의 네베게이토, 잠비아의 오엠 등의 선교단체들도 아프리카 나라들에 선 교사들을 보내고 있다. 그 외에 가나, 이집트, 남아공 등에서도 타국을 선교사들을 보내고 있다.
아프리카 교회들은 복음을 받는 나라에서 복음을 주는 교회로 전환을 하고 있다. 자국안에 여 전히 남아있는 미전도 종족을 향한 선교도 활성화되고 있다. 예를들면 차드에는 184개의 종족이 있 고 2001년 필자가 선교지로 갈 당시 2/3가 미전도 종족이었다. 그런데 현재는 미전도 종족수가 1/3 로 감소되었다. 이런 결과를 내는 데는 차드 현지 교단과 현지인 선교사들의 수고가 컸다.
- 12. 아프리카의 자신학화
(1) 아프리카 독립교단
아프리카 기독교의 다양성은 11,500여 개의 교단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으며 그
안에는 많은 독립교회들(AIC: African Independent Churches)이 있다. AIC 교회들은 성공회, 장
로회, 침례회, 감리회, 가톨릭, 오순절 등의 서양 교회 전통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선교사들이 아니 라 아프리카인이 주도적으로 설립하거나, 주도하는 교회를 지칭한다.
아프리카 독립교단의 특징은 ‘주도'(initiated), ‘독립'(independent), ‘토착'(indigenous), ‘시 작'(instituted)과 같은 단어들로 묘사할 수 있다.9 1980년대 초에 모든 아프리카 기독교인의 15%가 량이 이 유형의 교회에 속했고, 지금은 최소 30% 이상이 이 아프리카 토착 교회 소속이다.
봉크 박사에 따르면 AIC는 성령의 인도와 기독교 커뮤니티 운동을 중심 삼는 특징이 있으며, 사 회적 약자와의 연대감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강조, 아프리카 전통과 토착 신앙에 대한 존중을 또 다른 특징들로 보이고 있다.
(2) 아프리카의 해방 신학
아프리카 신학의 주요 경향은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경향은 아프리카 전통종교의 신학으 로서 이 신학 경향은 아프리카의 전통적 종교들을 신학적으로 해석하여 아프리카인들의 종교와 기 독교 신앙과의 연속성을 살리려는 신학적 시도이다. 전통종교의 신학은 전통적 종교체험을 반성적 으로 비판적으로 해석하여 신학적 의미를 확대해 나가는 방법이다. 존 음비티(John,Mbiti)는 이 신 학 경향의 대표적인 신학자이다.10
두 번째 경향은 아프리카 신학이다. 아프리카 전통종교의 신학이 기독교보다 전통종교에 근거를 둔 신학이라면 아프리카 신학은 아프리카에 소재한 교회를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신학으로 집약된 다. 아프리카 신학은 성문화된 신학서적에 의존해 전개되는 신학이다. 특히 아프리카 신학은 신학의 전개를 위해 아프리카의 전통종교, 성서, 아프리카 독립교회, 그리고 AACC등의 자료로부터 신학적 통찰을 이끌어 내나 가장 기본적인 자료로는 성서에 근거하고 있다. 이 신학 경향은 1966년 아프리 카 신학협의회가 구성된 이후 형성, 발전되었다.
세 번째 경향은 아프리카의 남아프리카의 흑인신학경향이 있다. 남아프리카의 흑인신학이라는 용어는 북미의 흑인신학자들에게서 차용한 것이다. 미국의 흑인 신학자 제임스콘이 1969년의 첫번 째 저서에서 차용한 개념이다. 그러나 이 용어가 널리 받아질 무렵 남아프리카에서 흑인신학의 중 심적인 내용은 이미 형성되어 존재하고 있었다. 이 흑인 신학은 다른 아프리카 신학보다 정치해방적 요소가 강하다. 주요 신학자로는 성공회주교인 데스몬드 투투(Desmond Tutu)와 알란 보삭(Allan Boesak)이 있다.
- 13. 아프리카 선교의 도전과 방향
아프리카 대륙은 영적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곳이다. 뿌리 박힌 전통 종교, 오랜 역사
9 『세계 기독교와 선교 운동』, 앤드류 윌스 저/ 방연상 역 (서울: IVP, 2018)
10 토착 종교와 접목한 아프리카 해방신학 유태영 박사 2012.12.13
속에 상업을 통하여 성장하는 회교와 아프리카의 전통과 혼합을 한 가톨릭 그리고 복음을 통하여 세워진 교회들과의 긴장이 있는 대륙이다.11 2023년 여호수아 프로젝트 보고에 의하면 아프리카의 3,707 부족 가운데 아직도 1,000여개의 미전도 종족들이 남아 있기에 선교의 필요성이 큰 대륙이다.
그러나 동시에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아프리카 교회는 부흥하고 성장했으며 아프리카 교회 스스 로가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어야 하는 필요성을 잘 인지하고 있다. 이들은 더 이상 외국 선교 사들이 주도하는 선교를 원치 않는다. 기독교 나라들인 동부 아프리카에서 선교사 비자를 받기 어 려워지는 현상이 이 현상을 잘 말해 주고 있다. 이런 현상을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 히려 각 나라에 주도적으로 선교하려고 하는 복음주의 교단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선교적 사명을 진정한 동역자 관계에서 이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회들의 영적 부흥, 세계적인 문제에 대한 의식의 증가, 전도와 교회성장에 대한 관심과 미전도 종족을 향한 선교사 파송을 하고 있는 아프리카 교회들과 교단들을 세계의 복음화를 담당하는 선 교적 파트너로 인식하고 서로를 상호보완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앞당겨야 한다. 아프리카 교회의 성장과 성숙을 우리는 인식하고 우리가 그들을 파트너로 받아들이면서 선교를 해야한다. 그렇지 않 으면 아프리카 교회는 한국 교회와 선교사들을 배척할 것이다.
복음 전파에 우선 순위를 둔 선교사가 필요한 시대이다. 민족주의의 고조와 확대, 정치적 불안 및 민주주의의 붕괴, 비기독교 종교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는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하나님, 인간, 죄 및 구원에 관한 유일한 진리가 있음을 전해야 한다.
오일 달러로 지역마다 학교와 우물과 보건소를 지어서 공격적은 포교를 하는 이슬람 선교가 지 속되고 있으며 쿠테타를 통한 군부 독재가 지속될 것이다. 남부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해방신학이 복 음에 기초를 둔 교회들에게 도전을 주고 있다. 번영신학이 아프리카에 침투하고 있어 말씀으로 분별 하고 교회들의 순수성을 지키도록 말씀을 지속적으로 가르치고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 선한 영향력 을 미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 14. 아프리카 지도자들의 조언들
(1)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도록 두라:
아프리카 현지 교회들은 복음의 열정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현지 문화를 잘 알고 현지어를 잘하 여서 전도와 교회 개척을 잘 한다. 또한 현지 교회들과 교단들은 나름대로의 철학을 갖고 교단 신학 교, 교회들과 교단을 잘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현지 지도자들은 선교사들에게 교회 개척, 신학교, 교단 운영 등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충분히 할 수 있으니 현지인들에게 맡기기를 부탁하며 더불어 이 미 교단이 있는데 다시 새로운 교단을 만들지 말고 기존의 교단과 협력하기를 부탁하였다
(2) 우리가 어려워하는 사역들에 협력하라
11 https://joshuaproject.net/
현지 교단들과 교회 지도자들은 선교사들이 전문성을 가지고 무슬림 사역, 미전도종족, 제자
양육, 성경번역, 문해사역, 전방개척, 전문인사역(컴퓨터, 농업, 정비, 간호, 의사, 스포츠, 교사 등) 등 에 현지 사역자들을 도와주기를 바란다.
(3) 현지 문화와 현지어를 배우고 함께 사역하라.
선교사들은 현지인들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적으로 해야 한다. 그들의 문화와 생각을 얼 마나 이해하느냐가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을 얼마나 잘 전달하느냐에 관건이 된다. 선교사는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마음을 터치할 수 있어야 하며 현지인들과 함께 생활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그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4) 게토화하지 마라
선교사들은 센터를 짓고 그곳에 모여 머물면서 자신들의 성을 쌓지 말고 할 수만 있으면 흩어져 현지인들과 현지 성도들 그리고 사역자들과 많이 교제하며 살아야 한다. 한국인들만 모여 사는 게 토화를 만들지 말고 할 수만 있으면 현지인들과 더불어 살기를 권면한다.
나가는 말
지금까지 필자는 아프리카 교회들의 역사와 부흥과 그리고 현재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설명했 고 앞으로의 도전들에 대해 나누었다. 아프리카 교회들도 한국 교회와 동일하게 주님께서 부탁하 신 선교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모여서 기도하고 의논하고 계획 실행하고 있다. 우리 한국 교회와 선 교회는 세계 기독교 안에서 부흥과 성장하는 아프리카 교회를 선교의 임무를 감당해야 하는 동역 자로의 인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과 앞으로 어떻게 협력할 것인지를 고민해 야 하리라고 본다.
어느 민족과 나라의 교회나 각자의 특성상 장점과 단점이 있다. 우리는 이러한 다양성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경제적인 능력으로만 선교를 할 수 있는 나라와 할 수 없는 나라로 단정할 수 없는 것 이다. 우리는 그 동안 아프리카 대륙을 너무 경제적인 기준으로만 바라보고 우리가 무조건 주어야만 하는 나라로 보았다.
22년을 차드에서 사역하는 필자는 우리나라 교회들보다 더 복음적인 차드 교회를 볼 때가 많다. 우리의 선교는 일방적인 선교가 아닌 서로를 복음으로 더 세우는 쌍방적인 선교가 되어야 한다. 그리 고 우리나라에서 하는 식으로 지교회를 개척하는 자기 중심적 선교를 하지 말고 기존의 현지 복음 주의 교단과 현지인들과 협력하면서 사역지를 이해하는데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복음화의 전체적인 그림 안에 내가 담당해야 하는 퍼즐 조각이 무엇인지를 인식하며 선교를 하는 것이 하나님나라 완성 을 위한 아름다운 길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한국 선교가 아프리카에 시작한지는 세월이 많이 지났다. 우리는 아프리카 교회를 지금까지 어
떻게 보고 있는지? 그리고 아프리카 교회들과 현지인들은 우리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하나님께
서는 우리가 아프리카에서 어떤 역할들을 하기를 원하시는가? 자기 중심적 선교에서 벗어나 세계 선 교를 향한 우리의 역할에 대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자 다시 주님 앞에 무릎 꿇는 우리가 되기 를 소원한다.
참고문헌
https://ko.wikipedia.org/wiki/아프리카의 종교 2022.11.27 http://www.gordonconwell.edu 전 세계 기독교 분포도 2018년 https://www.christiantoday.co.kr/ 기독교인이 가장 많은 대륙 아프리카: 2018.07.12 www. Newsnjoy.or.kr/아프리카 기독교의 역동성을 체헌한 아프리카 사도 2019.10.02
https://m.blog.naver.com/hub.african [아이네디터] 과거와 다른 미래, ‘성장’하고 있는 아프리카 2019.11.13. https://maniafrica.com/movement-for-african-national-initiatives-mani-an-overview/ https://joshuaproject.net/
https://krim.org/pabalma-plus-2023.5.1 세계 선교와 나이지리아 필립 젠킨스. 2009. 『신의 미래』 김신권, 최요한 역. 서울: 도마의길. 앤드류 윌스. 2018. 『세계 기독교와 선교 운동』 방연상 역. 서울: IVP. 티모시 라슨. 2018. 『복음주의 인물사』 이재근, 송훈 역. 서울: CLC.
Christianity Today. 2007년 11월호, 한국선교연구원(kriM) 파발마 638호 “아프리카 교회의 성장과 부흥 (2)
유태영. 『토착 종교와 접목한 아프리카 해방신학』 2012.12.13.
세계 기독교 상황에서 / 한국선교의 변화를 위한 제언1 / 한종석 선교사(PCK-GBT, 서남아시아 A국)
- 1. 들어가는 말
우리는 바야흐로 세계 기독교의 시대에 살고 있다.2 필자는 이 글을 통해서 세계 기독교의 상황 에서 한국 선교를 되돌아 보고 하나님이 주인이신 선교의 참여자로서 한국 선교에 필요한 변화에 대 해 함께 생각하고자 한다. 이 글은 한국교회가 세계 선교를 위해 애쓴 노력과 결과들을 부정하기 위 한 것이 아니고 또한 급변하는 세계 기독교 지형의 변화에 단순하게 대응하려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논의되는 논점들은 필자의 현장 경험을 통해서 얻어진 선교지에 대한 인식과 자세에 대한 자기 성찰 에서 출발했으며 현재와 다가오는 미래에 한국 기독교가 세계기독교의 일원으로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함에 있어서 보다 긍정적인 변화를 위한 제언임을 밝힌다.
- 선교지에 대한 편견
사람은 사물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어느 정도의 편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편견은 사 람 간의 관계에 장애물이 되기도 하는데 편견이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집단적인 편견으로 발전되 게 되면 한 집단과 다른 집단 간의 관계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미국의 인공
지능(AI) 이미지 생성도구인 미드저니(Midjourney)에게 “선글라스를 낀 채 한 손에 커피를 든 여성
이 거리를 당당하게 걷는 모습을 그려줘”라고 입력했더니, 미드저니는 대부분의 경우 백인여성을 모 델로 해서 이미지를 생성했다. 반면, “거리 가판대에서 음식을 팔고 있는 여성을 그려줘”라고 입력을 했더니, 모두 머리와 가슴을 두빠따(dupatta)라고 불리는 전통적인 숄로 가린 인도 혹은 파키스탄의 중년 여성이 허름한 골목에서 음식을 팔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3 흑인 여성이 선글라스를 낀 채 커피
1 이 글은 한국해외선교회출판부에서 출간된『선교, 이제 어떻게 하지? –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의 모색』(서울: 한국해외선교회출판부, 2022)에 수록된 필 자의 글 “진정한 동반의 길을 찾아서” 중 일부를 사용하고 본 발제의 목적에 맞게 편집 및 수정 되었음을 밝힌다.
2 임태순은 기독교 역사학자 마크 놀(Mark Noll)의 세계 기독교에 대한 견해를 소개하면서 ‘세계 기독교’는 단순히 기독교가 전 세계적으로 퍼졌다는 의 미를 넘어서 세계적이면서 지역적인 정체성이 공존하는 기독교를 말한다고 쓰고 있다 (임태순 2022, 78).
3 네이트,「커피 든 선글라스 여성 요청에…편견쟁이 AI, 이 그림 그렸다」,
를 들고 거리를 걷기도 하고 백인 여성이 가판대에서 음식을 팔고 있는 경우도 수없이 많을 텐데 말 이다. AI가 인간의 생각을 반영한다고 볼 때, 이 사례는 서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집단적인 편견을 보 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선교사인 우리는 혹은 한국교회는 선교지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는지 점검을 해보는 것은 매우 유익할 것이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우리가 선교지의 사람들 보다 영적으로 지적 으로 우월하다,”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그 들은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거나 혹은 “우리가 그 들을 영적, 지적, 문화적 무지의 상태에서 구해주어야 한다”라는 편견을 가지고 선교지에서 사역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선교지하면 구호단체들의 모금방송에서 나오는 모습이 자동으로 떠오른 다면 우리는 선교지에 대한 심각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편견을 일으키는 첫번째 원인은 경제적 불평등이다. 우리는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상 대적인 물질의 풍요함으로 인해 선교지의 그리스도인들을 무시하는 혹은 측은해 하는 경향이 없는 지 살펴보아야 한다. 상대적인 빈곤이 영적 혹은 지적인 무지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경우가 부지 기수인 데도 말이다. 경제적인 불평등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선교지의 교회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 이다.4 서구교회가 선교지 교회를 열등하게 인식하고 자신들은 그들보다 우월하므로 그들을 돌보아 주어야 한다는 자세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는데 우리도 그러한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 아야 한다. 선교지 교회와의 불평등한 관계를 심화시키는 것은 그 관계 안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이미 유물이 되어버린 “식민주의”다. 데이비드 보쉬 (David Bosch)는 16세기 이후 선교와 식민주의 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지적한다.5 여기서 식민주의는 단순히 정치체제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고 정
신적 문화적 경제적 우월주의 뿐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들을 택하셨다는 선민 의식도 포함한다.6 따 라서 정치체제로서의 식민주의는 종식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정신적인 요소와 사회경제적 권력의 역 학관계에서 여전히 힘을 잃지 않고 있다. 식민주의가 갖는 그릇된 편견은 경제적 우월주의 뿐 아니라
정신적인 우월주의도 포함하는데 “우리가 그들보다 우월하고 더 잘 알고 있다”는 특권의식이다. 알버 트 메미(Albert Memmi)가 지적한대로 특권의식은 식민주의적 관계의 중심에 있다. 예를 들어 “가
장 가난한 식민지배자도 자신이 어떤 피식민지배자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7 이는 경제 적인 측면 뿐 아니라 지적 도덕적 영역에서도 그러하다.
“신식민시대” 는 이러한 식민주의적인 편견이나 구조들이 공식적인 식민시대가 끝났음에도 여전 히 명백한 힘을 발휘하는 상황을 이야기한다. 식민주의와 신식민주의의 근본적인 공통점은 “우리가
https://m.news.nate.com/view/20230404n01067/, 2023. 06. 05.
4 식민주의와 신식민주의가 기존교회와 신생교회의 관계에 미친 영향은 요어그 리거 (Joerg Rieger) (2004)의 소논문과 테일러 덴여(2018)의 논문 2장을 참조하였다.
- David Bosch, Transforming Mission: Paradigm Shifts in 표eology of M American Society of Missiology Series, no. 16. (Maryknoll, N.Y: Orbis Books, 1991), 303.
- David Bosch, Transforming Mission, 298.
- Albert Memmi, 1974. 표e Colonizer and the Colonized, (London: Earthscan Publications, 1974), 8.
더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는 교회 구조안에서도 예외일 수는 없다. 만약에 선교사를 보내는
교회가 갖고 있는 피선교지인들에 대한 인식에 우리가 그들보다 우월하고 더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면 우리는 여전히 식민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신식민시대의 특징은 다국적 기업의 지배력이다. 한편으로 다국적 기업의 편리함, 저비용, 효율을 무기로 전 세계를 지배하 며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의 자립, 공동체, 정체성들을 희생하고 있다. 이러한 다국적 기업의 특징은 다국적 선교단체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날 위험이 있다. 서구교회가 선교지 교회와의 협력에 대해 심 각하게 고려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자신들 만으로는 과업을 완수하기 어렵다는 인식 때문이었다.8 만약에 다국적 선교단체가 자신들이 할 수 없는 일을 저비용 고효율로 선교지 교회가 대신 할 수 있 다는 인식을 가지고 접근한다면 다국적기업과 다를 바 없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식민시대 보다는 두드러지지 않겠지만 여전히 많은 재정적 권한과 영적인 권위가 의문의 여지없이 선교사들에 게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신식민의 정신세계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또 다른 식민주의의 모습은 구원자 컴플렉스이다.9 구원자 컴플렉스는 한마디로 가난하고 영적으 로 지적으로 무지한 사람들에게 가서 그들을 구원하겠다는 내적인 갈망이다.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 고 도움을 주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그들은 구원을 받을 수 없 다거나 현지교회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우리가 나서야 한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면 이 것은 건강한 선교사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선교사 개인의 모습이 겸손하고 현지의 권위를 존중하고 순종 할 준비가 되어 있더라도 구조적인 한계에 부딪힐 수가 있다. 선교지 교회와의 관계 및 협력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이다. 식민시대에 살고 있는 지배국의 주민이 자신은 지배국 국민이 아니라고 외쳐도 여전히 지배국 국민이고 식민지 주민이 아무리 자신은 식민지인이 아니라고 외쳐도 여전히 식민지인일 수 밖에 없다. 선교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선교 구조가 이러한 신식민주의안에 갇혀 있다면 개인의 저항 혹은 노력은 거대한 물결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국제선교단체의 일원으 로 일하고 있는 필자도 구조적인 문제 앞에서 개인의 노력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낀 적이 있었다.
요어그 리거(Joerg Rieger)에 의하면 미국인들이 신식민주의에 둔감한 것은 자신들이 공식적으로 는 식민 지배 세력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10 한국교회도 마찬가지 아닐까? 제국주의에 의 해서 식민지배를 당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가 식민주의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면 그 누구도 받 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이렇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식민지배자였던 적이 없고 오히려 피지배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에 우리 안에 위에서 말한 식민주의적인 생각과 구조 가 있고 그 안에 갇혀 있다면 우리와 현지 동역자들의 관계는 건강한 관계로 발전되기 어려울 것이다.
- Samuel Cueva, Mission Partnership in Creative Tension, (Cumbria, UK: Langham Partnership, 2015).
- TaylorW. Denyer, “Decolonizing Mission Partnerships: Evolving Collaboration between United Methodists in North Katanga and the United States of A” D표 diss., (표e University of South Africa, 2018), 56.
- JoergRieg 2004. “표eology and Mission Between Neocolonialism and Postcolonialism.” Mission Studies 21, no. 2 (2004), 209.
- 변화의 영역
이러한 편견을 극복하고 한국 교회가 변화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선교의 참여자로 지속적이 고 긍정적인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 세가지 영역에서의 인식변화가 요구된다. 이 영역은 1) 의사 결정 2) 성경해석 3) 재정의 영역이다. 이 영역들은 삼자원칙과도 깊은 연관이 있는데 선교지의 교회가 스 스로 복음을 증거하는 (자전)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외부에 재정적/영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자급) 스스로 권위를 가지고 의사 결정을 하고 (자치) 스스로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자신학화) 노력 이 필수 적이다. 필자의 현지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떠한 변화가 요구되는지 제안하도록 하겠다.
3.1 의사결정
필자가 살고 있는 지역은 대부분의 주민이 이슬람을 믿는 곳이다. 기독교 공동체의 내부적인 문 제와 외부적인 억압, 편견, 법률에 대한 오용 등으로 현지 기독교인들이 무슬림들에게 전도하는 것이 그리 녹녹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숫자의 현지인 기독교인들이 무슬림 선교를 위해서 나름대로 애를 쓰고 열매를 맺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국인 선교사들이 들어와 서 무슬림 대상으로 선교를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현지 교회와 동역하지 않고 자기들이 직접 선교를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현지 기독교 지도자들은 불편해 하고 있다.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중요한 결정에 현지교회가 제외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2010년대 초반에 번역의 문제로 현지의 성서공회와 번역을 주관하던 국제단체에 큰 충돌이 일 어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한 언어공동체를 위해 국제단체와 같이 번역을 하던 현지 성서공회 가 갑자기 번역에 이의를 제기하고 이 문제를 국제단체의 본부에 단체의 현지 지부가 잘못된 번역을
하고 있으니 후원을 취소하고 제재를 가하라는 편지를 쓴 것에서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아들”의 번 역의 문제가 첨예한 이슈였는데 선교 단체와 현지 성서공회간의 갈등에서 선교 단체 내부로 번져서
“하나님의 아들”의 상황화 된 번역을 찬성하는 편과 반대하는 편으로 나뉘어 논쟁을 하며 내부에서 도 큰 갈등이 생기게 되었다. 결국 내부에서 결론을 내지 못하고 국제복음연맹에 사건을 위임하고 지 도를 따르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어느 번역이 올바른 번역인지를 논의하는 것이 이 사례를 이야 기 하는 목적이 아니다. 지금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어느 번역이 옳은 지 아닌 지에 대한 언어학적, 주석학적, 혹은 신학적인 문제를 넘어서 이러한 결정의 주체가 누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선교학적인 성찰이 결여되었다는 것이다. 현지교회가 언어학적, 주석적, 신학적으로 외부인 선교사 들에 비해 부족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들은 이 곳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이 곳에 살아가고 있는 사 람들이다. 그러나 오랜 기간의 논의와 결정과정에서 외부인들 간의 갈등과 논쟁이 있었고 수 많은 외 부인들이 관여를 했지만 정작 현지교회는 배제가 되었다. 현지교회 패싱의 전형적인 예이다. “우리가
더 잘 안다”라는 그릇된 편견이 드러난 그리고 시간이 걸려도 현지교회와 대화를 하고 함께 가고자 하는 노력보다는 어찌되었든 우리(외부인)가 결정을 내려서 번역 프로그램이 진행되도록 하려는 “과 업 중심”의 모습이 드러난 사례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의사 결정과정에서 외부인인 선교사가 주도권을 갖는 상황에 대해 제이 마텡가( Jay Matenga)의 글은 우리에게 통찰을 제시해주고 있다.11 마텡가는 뉴질랜드 마오리족 그리스도인으로 서구 교육을 받고 서구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다가 마오리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새로 발견하고 토 착화된 교회가 선교의 주역이 되는 일에 다양한 기여를 하고 있다. 먼저 마텡가는 식민주의적 개념 에 대비해서 토착 문화와 전통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우리가 섬기 는 지역이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로 미개하고 발전이 필요하고 문명화가 되지 않았다고 치부해왔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섬기는 교회가 있는 곳을 미개하고 덜 발달되어 있고 문명화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 들이 우리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 설 수 없다는 편견으로 바라보지 말 아야 한다.
마텡가는 코로나 이후의 선교에서 지역에 적합한 혁신과 의사결정제도가 필요할 것이라고 제안 하였다.12 이는 코로나 이후에 이동의 제한과 선교사의 거주가 제한되는 경우를 대비해서 선교사가 참여하고 있던 의사결정과정의 혁신에 대한 준비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사결정과정의 혁신은 반강제적으로 필자가 거주하는 나라에서 이미 코로나 사태 이전에 일어나고 있었다. 이 곳의 선교기관이나 신학교에서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에는 지금까지 상당수의 외국인 선교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외국선교사에 의해서 세워진 선교기관이나 신학교등은 외국인 선교사들이 의사결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 변화로 인해 이제 더 이상 신학교나 선 교기관에 외국인이 이사로 참여할 수 없게 되었다. 여전히 재정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지만 주어진 제도 내에서 외국인들은 의사결정과정에서 제외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정부의 결정에 의해서이지만 의사결정과정의 현지화가 급격히 일어나고 있다. 이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들도 적지 않 지만 오히려 선교사들이 이양하지 못하고 미적거리던 것이 반강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현 지 중심의 의사결정과정으로의 변환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긍정적인 변화로 여겨야 한다.
3.2 성경해석
두번째는 성경해석의 권위와 상황화에 관한 문제이다. 마텡가는 지금까지 진행된 상황화의 문제 는 “우리가 이해한 복음을 다른 문화 상황으로 번역 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 것은 여전히 산
- JayMatenga, “Centring the Local: 표e Indigenous Future of Missio” Paper presented at the Wycliffe Global Alliance/SIL “Together in Christ 2021” Conference, https://jaymatenga.com/pdfs/MatengaJ_CentringLocal.pdf
- Jay Matenga,“Centring the Local”, 4.
업화 시대의 정신에 기인한 것이라고 지적한다.13 먼저 우리에 의해서 복음이 해석되어지고 그 해석
된 결과를 새로운 상황에 적용하는 것이다. 마텡가는 복음은 “외부에서 들어온 선교사에 의해서 번 역된 인식체계’가 아니라고 한다.14 현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토대도 그리스도를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복음이 해석되고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신학 작업을 자신학화라고 이야기 한다면 자신학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것이다. 물론 이 자신학화는 고립된 상태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 고 전세계 교회와의 대화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해석의 권위는 토착화된 기독교인
들에게 주어지고 외부인들은 현지 기독교인들의 초대에 의해서 선교에 참여하게 된다. 여기서 외부인 의 역할은 현지인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올바른 질문을 하도록 돕는 것이지 완전히 다른 상황에서 얻어진 해답을 제공하는 것을 아니다. 이는 우리가 믿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새로운 신 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상황과 문화에 맞는 복음의 이해를 제공하시기에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계 시다는 것을 신뢰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외부인인 선교사는 자신들의 특권을 포기하고 “모든 문제”에 대해서 현지인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여기에는 외부인이 가진 힘으로 외부인 이 생각하는 대로 능력을 키우던 기존의 방식도 포기하는 것도 포함된다. 많은 선교사들이 현지에
가서 자신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훈련을 현지의 필요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고국에서 하듯이 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이에 관련해서 필자가 사역하는 현지 신학교의 학장과의 대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 나라에도 외부에서 강사들이 와서 현지인 교회 지도자들을 초청해서 세미나 워크샵등을 많이 개최한다. 그 학장의 말에 의하면 며칠 동안 진행되는 세미나에서 외국인 강사들은 마치 세일 즈맨이 상품을 팔듯이 자신들이 가지고 온 프로그램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이 프로그램을 현지에서 도 진행하고 싶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일반적이 패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 현지인들의 의 견을 묻거나 현지에서의 필요성 적용 가능성에 대해서 물어보는 프로그램을 자신은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제 훈련의 과정도 외부에서 결정해서 “아 이런 것이 현지에 필요할 거야”라고 생 각해서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현지에 필요에 의한 것 아니면 현지인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된다면 마텡가의 지적대로 다양한 이유로 인해 외부선교사 들이 줄어들거나 없어지더라고 현지인 주도의 선교는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지인 주도의 성경해석과 자기계발이 시작되려면 외부인들은 자신들을 지도자, 교사 혹은 대장의 자리에서 내려 와서 손님, 학생 그리고 섬기는 자의 자리에 앉아야 한다는 마텡가의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15 이 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선교활동의 네 가지 단계의 마지막 단계인 참여단계와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선교사들은 현지교회가 있는 곳이라면 의지적으로 부모단계, 파트너단계를 넘어서 마지막인 참여단
- Jay Matenga,“Centring the Local”, 3.
- Jay Matenga,“Centring the Local”, 3.
- Jay Matenga,“Centring the Local”, 4.
계로 부터 시작하도록 노력해야한다. 이렇게 선교가 이루어 진다면 우리가 고민하는 이양의 문제는
시작부터 생기지 않게 될 것이다.
3.3 재정
현지교회와의 관계에서 우리의 한계가 드러나는 영역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선교지 교회와의 건 강한 동역에 가장 걸림돌이 되었던 것은 재정의 문제이다. 경제적인 불균형은 선교지 교회로 하여금 선교사들에게 의지하게 하였고 선교사들에게 선교지의 교회들을 자신들의 생각대로 움직이고자 하는 여지를 제공했다. 여전히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는 선교지의 처지를 보면 경제적인 도움을 불 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하는 질문을 던져보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경험을 나누도록 하겠다. 현지에 있다 보면 한국교회가 가진 재정적인 힘으 로 인해서 현지인들은 한국 선교사에게 혹은 서구 선교사들에게 재정적인 도움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음을 경험한다. 필자가 강의하는 신학교 졸업생 중에서 교회를 개척하며 지역사회 개발을 포함한 다양한 사역을 하는 목회자가 있다. 열악한 기독교인들의 교육과 이에 따른 안정된 직업을 찾기 어려 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아이들의 학업을 돕기 위한 방과 후 학교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 학교의 개교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애초에는 필자를 초청하려고 했으나 하지 않기로 결정을 했다는 연락 을 받았다. 이 학교는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순전히 교회 구성원들의 협력을 통해서 시작하고 운 영되는 학교인데 외국인 선교사가 개교 예배에 오게 되면 참석자들이 외국인 선교사의 재정적인 도 움으로 학교를 시작한 것이라고 오해를 할 소지가 많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이 학교가 외부의 도 움없이 시작되는 학교임을 알리고 시작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외국인의 존재와 재정의 도움
을 연결 지어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좋은 결정이다”라고 말하며 그 목회자의 결정을 지 지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폴 벤더-사무엘(Paul Vendor-Samuel)은 서구 선교사들이 재정과 교육 수
준의 차이 그리고 단순히 서양인이라는 사실이 가져오는 힘의 불균형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 을 지적하고 있다.16 이러한 힘의 불균형에 대한 인식의 필요성에 한국 선교사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이러한 고민에 요한에 의해서 소개되는 오병이어 사건은 선교사와 현지인 동역자 그리고 재정에 대한 성찰을 제공한다. 요한복음의 오병이어 이야기에는 네 사람이 등장한다. 예수님과 제자 빌립,
안드레 그리고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를 제공한 한 아이다.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에게 먹이겠느냐”고 물어보시자 빌립은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 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라며 부정적인 대답을 한다. 그나마 안드레는 빌립보다는 좀 더 적극적이어서 한 아이가 가지고 온 것을 예수님 앞에 두지만 그 또한 부정적이다. 그는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니까?”라고 체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것이 아마도 서구교
16 Paul Vendor-Samuel,『선교, 이제 어떻게 하지? –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의 모색』 (서울: 한국해외선교회출판부, 2022), 226-227.
회가 선교지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 혹은 우리가 선교지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닐까 싶다. “현
지에서 조금씩 조달해 봤자 턱도 없이 모자랄 거야. 현지에서 조달 한다고 하더라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재정에 비교하면 얼마나 되겠어?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로 오천명은 커녕 한 명도 배 불리 먹을 수 없을 걸. 그냥 우리가 외부에서 조달해서 채워주는 게 빠르겠어.” 그러나 예수님은 그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기셨다. 마찬가지로
현지에서도 예수님은 보잘 것 없어 보이는 현지의 재정 능력 자원을 가지고 충분히 하나님의 일을 완 성하실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아마도 자기가 먹을 도시락을 가지고 온 사람이 그 아이만은 아 니었을 것이다. 선교사가 해야 할 것은 현지의 것을 과소평가 하거나 당장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무 엇인가를 외부에서 조달해서 주기 보다는 비록 우리들의 눈에는 형편 없어 보이지만 그들이 가진 것 을 발견하고 나누도록 격려하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선교에 동참하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몇 배의 시 간이 더 걸리거나 우리의 시간표대로 일이 진척이 되지 않더라도 말이다. 오병이어의 주님이 또한 선 교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 나가는 말
한국 선교가 세계 기독교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선교의 참여자로서 긍정적인 기여를 지속적으 로 하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있는 편견과 자세를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 선교는 현지에서의 이양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양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양을 할 일을 시작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주는 자로 혹은 결정권자로 현지에 있지 않고 손님으로 있게 된다면 우리에게는 이양할 것들이 시작부터 없을 것이다. 이 글에서 논의된 것들은 이러한 상황으 로 가기 위한 출발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언들이 다소 이상적이고 급진적이라고 비판하는 독자들 도 있을 것이다. 모든 선교지에서 단번에 변화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선교지의 상황이 다르다고 우리의 지향점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선교지마다 변화의 시점과 속도는 다를지라도 이러한 변화에 대한 의지와 자세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선교사가 현지에 있는 것은 현지에 무엇을 주는 자로 있는 것이 아니라 현지 그리스도인과 연합함과 하나됨으로 그리고 함께 삶을 살아 나감을 통해서 하나님의 샬롬의 증인으로 현지에 있는 것이다. 선교지의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자리에서 권위를 가지고 스스로 의사 결정을 하며 (자치), 외부에 재정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자급), 자신들의 삶의 자리에서 얻은 경험과 성찰을 통해서 성경을 해석하며 적용할 때 (자신학화), 비로소 스스로 복음을 힘있게 증거하는 (자전) 공동체로 자라나게 될 것이다. 이 글이 한국선교의 긍정적인 변화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며 글을 마무리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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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mi, Albert, 표e Colonizer and the Colonized, (London: Earthscan Publications, 1974).
Rieger, Joerg, “표eology and Mission Between Neocolonialism and Postcolonialism.” Mission Studies 21, no. 2: 201-27, 2004.
임태순, “지난 세기의 선교 패러다임 변화들과 코로나 이후의 선교,”『선교, 이제 어떻게 하지? –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의 모색』(서울: 한국해외선교회출판부, 2022), 63-95.
힌두교, 불교, 이슬람 선교의 장벽과 다리 / 진기영 원장(아릴락선교연구원)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전도종족이 신봉하는 종교인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는 모두 전방 개척선 교의 우선 사역 대상이다. 인도 한 나라만 해도 세계 100대 미전도 종족 중 거의 50%를 포함하며1, 전 인구의 98%인 14억명 가까운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다. 인도의 기독교 인구는 공식적으 로 2.3%(2011)이지만 카스트 별로 보면 이들의 다수는 최하층에 속한다. 정통 힌두에 속하는 상층 카스트, 그리고 중산층을 초점으로 보면 이들은 2% 중에서도 전도에서 제외되고 숨겨진 족속이다. 서양선교 500년 역사를 통해 가장 많은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힌두와 무슬림, 상좌부 불교도 가운데는 왜 이렇게 복음의 진전이 없는가?
아래에서 먼저 최소전도지역인 힌두권, 불교권, 이슬람권에서 돌파가 일어나지 못하는 원인을 살 펴 보고자 한다. 그동안 선교사들은 현지 종교, 문화와 같은 외적인 장벽에 주목했는데 이 글에서는 그와 함께 선교사들이 갖고 있는 내적 장벽에도 무게를 두고 다루고자 한다.
무엇보다 이 글에서는 ‘돌파’라는 용어 자체가 돌파에 도움이 안 될 수 있다는 점에 주의를 환기 시키고자 한다. 영어의 ‘breakthrough’나 한국어의 ‘돌파’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무엇인가를 뚫고 나 아가는 것, 어떤 틈 사이로 파고 들어가 부수어 뜨리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이 어떤 분야에서 중요한
성취나 진전을 나타내는 데 일반적으로도 쓰일 수 있지만 적군의 방어선을 뚫는 군사적인 이미지를 준다. 힌두와 불교도와 무슬림을 적으로 여겨 그 약점을 공격하여 무너뜨리고자 하는 것은 그동안 서양 선교가 실패한 주요 요인 중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세계 주요 종교권은 그렇게 해서 무너지는 것 이 아님을 그간의 선교역사가 증거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무슬림 선교를 위한 한 스터디 교재의 제 목 “우리의 친구 무슬림”처럼, Friendship First2, 친구 되기가 먼저, 우정 쌓기가 먼저라는 생각의 전 환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필자는 본 강의에서 종교권 장벽 ‘돌파’가 아니라 친구를 위해 다리 놓는 이야기, 또한 뚫을 필요도 없이 열려진 문을 통해 친구로 들어가 복음의 결실을 맺는 이야기에 대해 나누고자 한다.
1 정보애, “21세기 미전도 종족,” 『한국선교 KMQ 』 vol.22 No.3, 2023 봄호, 통권 85호, 17.
2 스티브 벨/이슬람파트너십, 『우리의 친구 무슬림』 (서울: 한국기독학생출판부, 2016). 이 책의 영어 원제는 Friendship First이다.
- 장벽
손승호 선교사의 『불교권 선교 가이드』를 보면 불교권 선교의 장애물 12가지가 나온다.3 이는 기 독교와 거리가 먼 무신론 신관, 인간론, 죄론, 구원론. 그리고 불교와 문화와 생활이 하나가 되어 나 눌 수 없는 점, 효과적인 의사소통의 어려움, 기독교는 서양종교인 반면 태국인/미얀마인/라오스 인 이 되는 것은 불교인이 되는 것이라는 인식, 상황에 맞지 않는 복음 전달과 같은 것이다. 크게 보아 교 리적(신학적) 장벽과 문화적 장벽으로 요약된다. 그의 말대로 선교사들이 아무리 유창하게 현지어를 구사해도 A라고 복음을 전하는데 불교권 청자가 Z라고 받아들이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면 복음 은 장벽에 막혀 전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공일주 선교사의 『이슬람권 선교 가이드』에서는 무슬림이 복음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데 놓인 장애물로 이슬람이 최종, 최고의 종교라는 인식, 그리고 변절을 허용하지 않는 종교문화를 언급한 다.4 또한 회심한 무슬림의 디사이플쉽을 방해하는 장벽으로서 문화적 장벽, 다른 신자와 교제하는 기회의 부족, 그리고 사회와 분리될 수 없는 이슬람 문화를 지적했다.5
필자의 『힌두권 선교 가이드』에서도 기독교 복음에 반감과 거절을 가져오는 교리적 장벽을 언 급했다. 힌두는 여러 가지 구원의 길이 있다고 믿기에 기독교가 유일한 길이라는 것에 반대하며, 윤 회라는 여러 번의 기회를 믿기에 단 한 번 이생의 삶으로 천국이나 지옥에서의 영원한 삶이 결정되
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죄를 지은 자는 벌을 받아야 하기에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어지는 대 속의 교리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또한 카스트제도와 같은 사회제도는 전통적으로 힌두 개종의 주요 장벽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힌두교와 힌두들이 가진 장벽의 높음보다 복음 전달자 인 선교사와 교회가 가진 내적 장벽을 더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예를 들면 “힌두들 의 눈으로 볼 때 최악의 범죄”에 해당하는 기독교인의 소/고기 먹는 문화이다.6 힌두교는 이슬람이나 기독교와 달리 교리가 필수인 종교가 아니라 문화가 필수인 종교이다. 그러므로 힌두의 문화적 관점 에서 용납할 수 없고 그 문화에 맞지 않는 선교사들/현지 기독교인들의 문화와 부정한 삶이 주요 장 벽이 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위의 책들에서는 많이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서양인들의 아시아, 아프리카에 대한 침 탈과 식민지배를 경험한 데서 나온 역사적 장벽 역시 기독교를 서양종교로 보고 거부하는 주요한 이 유 중 하나이다.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다가 서양의 도움을 받아 독립한 한국의 독특한 경험과는 달 리 거의 대부분의 비서구권 세계는 서양의 식민지배를 받았으며 기독교 선교는 식민지배의 협력자와 앞잡이 역할을 했다. 그래서 스티브 벨은 앞의 무슬림 선교 교재에서 이슬람의 분노를 일으키는 과 거의 십자군 뿐 아니라 그 십자군의 연장으로 여기고 있는 오늘날 사우디아라비아에 주둔하는 미군
3 손승호, 『불교권 선교 가이드』 (포항: 아릴락 북스, 2023), 265-271.
4 공일주 『이슬람권 선교 가이드』 (포항: 아릴락 북스, 2023), 274.
5 위의 책, 282.
6 진기영, 『힌두권 선교 가이드』 (포항: 아릴락 북스, 2023), 144.
문제를 포함한 역사적 장벽에 대해 길게 소개하고 있다.7 영국은 처칠 수상 때 2차대전을 치르면서
인도의 식량을 수탈해 갔는데 그 결과 3백만명의 인도인이 기근으로 아사했다.8 이런 뼈 아픈 식민지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인도인은 한국인과 달리 서양 및 서양문화에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특히 인 도 국민당(BJP)이 정권을 잡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 힌두민족주의 이념(Hindutva)이 일반 대중들 의 일상에 깊이 침투하여 조상이 인도인이라 해서 인도인이 아니라 힌두문화를 가져야 인도인이라 는 생각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 역시 외부 침략자들의 종교와 문화에 대한 주류 인도인의 거부감 을 잘 보여준다.
- 다리
힌두권, 불교권, 이슬람권의 교리적, 문화적, 역사적 장벽들을 볼 때 그 장벽이 꽤 높아서 도저 히 그 성벽 안으로 들어갈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타 종교권의 사람을 만나 복음을 전하는 시도를 해 본 사람이라면 그동안 지극히 제한적으로 열매맺는 것에 그쳤던 것이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그 러나 자세히 살펴 보면 모든 성벽은 외부로부터 접근할 수 있는 다리가 있고, 안에서 열 수 있는 문 이 있어 접근가능하고 내부자들과 외부자들의 상호소통과 교류가 가능하다. 외부 공격자와 적군에 게는 다리를 거두어 드리고 차단하지만 이웃과 친구들에게는 상호유익과 필요를 위해서라도 다리가 개방된다. 이 다리는 기독교와 타종교 세계 사이를 연결하는 길로서 그 길을 통해 성 안에 들어가 복 음을 나누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러면 타종교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기독교 선교사가 놓아야 할 다리는 어떤 것일까? 첫째, 나 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그리스도의 순결하고 고귀한 인격, 질병을 치료하고 마귀를 좇아내 는 신적인 능력,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드러내는 십자가 희생은 힌두들을 감동감화시키는 강력한 매력이다. 예수님의 이름은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와 너무 달라 안 될 것 같지만 그들이 반대하는 것 은 기독교인들의 공격적인 행동, 타락한 문화와 제국주의적 역사이지 예수님과 복음 자체는 환영하 며 매력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된 다리를 놓는 데 외적인 장애만큼 큰 장애는 선교사들이 돈을 의존하는 것이다. 돈 의존 선교, 또는 물량주의 선교는 500년 전 포르투갈로부터 시작해서 세람포 르 선교의 아버지인 윌리암 캐리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난 서양선교 방식이다. 지금은 인도에서만이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다 보여지는 글로벌 표준방식이다. 돈을 의존하면 권위와 영향력이 생 기고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일부 가시적인 선교의 결과를 맺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돈 선교 와 선교사의 풍요는 쌀신자와 의존적인 기독교인을 양산하게 되며, 조나단 봉크(Jonathan Bonk)가
7 『우리의 친구 무슬림』, 39-42.
8 Madhusree Mukerjee, Churchill’s Secret War (New York: Basic Books, 2010)
말한대로 복음의 왜곡을 가져 온다.9 더욱 중요한 것은 이것은 종교 또는 신앙을 중시하는 힌두교, 불
교, 이슬람교 문화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10
마하트마 간디는 만일 힌두의 모든 경전이 불에 타 재로 변하는 일이 벌어져도 이샤 우빠니샤드 의 한 구절만 힌두의 기억 속에 남아도 힌두교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 내용은 결 코 변하지 않는 신을 만나는 것과 변하는 세상 재물에 대한 탐심을 끊어버림으로 누리는 기쁨에 대 해 말하고 있다(Isha Upanishad 1). 물론 인도에서 삶의 네 가지 단계에 따른 목표 중에 돈을 버는 단계도 있기에 돈 버는데 진심인 힌두들도 많지만, 힌두신앙에서 돈보다 더 높은 목표는 다르마(도 덕, 의무)와 목샤(해방)이다. 힌두권에서 제자들의 어두움을 비춰서 빛으로 인도하는 구루로서 종교 교사는 물질에 자유로와야 하며 물질을 탐내지 말아야 한다. 인도의 대표적인 구루 라마끄리슈나 (Ramakrishna Paramahansa)가 보여주는 대로 가난하고 검소하고 단순한 생활이 기독교 구루인 선 교사에게도 요구되는 덕목이다. 은과 금의 다리를 놓으면 일부 하층민과 가난한 자들에게는 나아갈 수 있을지 몰라도 인도의 주류시민; 상층카스트와 중산층은 계속 버려진 족속으로 놔두게 될 것이 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을 의지하는 사람은 복음의 다리를 통해 상하층 힌두, 불교 도, 무슬림들에게 나아가 그리스도를 가난한 자들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만민의 주님으로 높일 수 있 을 것이다.
두 번째로 놓아야 할 다리는 현지문화의 다리이다. 시릴 꾸티야니깔(Cyril Kuttiyanikkal)이라 는 인도의 선교학자는 인도에서 기독교 선교가 거부되는 한 가지 이유를 제시하는데 그것은 기독교 가 인도의 문화와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11 선교사는 기독교가 거룩한 종교, 탁월한 신앙이라 는 자부심이 있겠지만 인도 문화의 시각으로 보면 기독교는 타락한 종교, 부정하고 불경건한 문화이 다. 인도인은 먹고 마시고 입고 생활하는 모든 방식에 정결하고 부정한 것, 윤리적인 것과 비윤리적인 것이 규정되어 있다. 채식은 정결한 것, 육식은 부정한 삶이다. 결혼한 여성이 천 하나로 된 사리옷을 입고 다리를 가리는 것은 경건한 삶이지만 사리를 입지 않고 다리를 노출하는 것은 불경건한 삶이 다. 성소에 들어가면 부정한 가죽신발을 벗고 바닥에 앉아야 하는데 신발을 신고 의자에 앉는 것은 신 앞에 경건한 태도가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도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인도의 관습과 문화 에 어울리는 삶을 살고 인도의 문화에 맞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선교사의 방 식대로 거룩하게 살아도 인도인의 눈에는 거룩해 보이지 않고 타락한 범죄자로 보일 수가 있다. 다수 의 인도인에게 기독교가 거부되는 것은 복음 때문에가 아니라 고기 먹는 기독교인의 부정한 삶 때문 이다. 종종 선교사가 단지 한 번 화를 내었을 뿐인데 개종자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심을 다 잃는 경우
9 Jonathan J. Bonk, Missions and Money Affluence: Aa A Missionary Problem… Revisited (New York: Maryknoll, 2006), 74. 10 진기영, 『서양식 선교 방식의 종말』,(서울: CLC, 2017),
11 Cyril Kuttiyanikkal CMI, Christ Devotees (Delhi: ISPCK, 2022), 2.
가 생긴다. 왜냐하면 분노는 자기 절제를 상실하는 것으로서 힌두권 문화에서는 종교 선생(구루, 제
자 양성가)의 결격 사유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인도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하며 열매를 많이 맺은 전도자 중 한 사람으로 알려진 선다 싱(Sundar Singh)은 “그리스도의 생명수를 인 도의 그릇에 담아서 줘라”고 했다.12 여기서 인도의 그릇은 선교학자 앤드류 월즈(Andrew F. Walls)
가 말한 ‘토착화의 원리’와 일치하는 것으로서 현지인들이 이해할 수 있고 편안하게 수용할 수 있는 인도의 문화로 복음을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현지문화를 사용해야 힌두와 불교도와 무슬림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데 많은 선교 사들은 현지문화를 파괴하고 서양문화 또는 외국문화로 된 다리를 건설하려고 시도했다. 선교사들 의 노력에 힘입어 인도의 교회들과 기독교인은 먹고 입고 생활하고 예배당을 세우고 예배드리는 거 의 모든 방식이 서양화되었다. 그 결과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 성안으로 들어가는 대부분의 다리가 끊어지고 말았다. 선교사와 현지인 신자들의 공격적 태도, 우월주의, 현지문화에 대한 무시와 파괴 는 반감과 분노를 불러 일으켜 선교의 장벽만 높이고 있다.
폴 히버트(Paul Hiebert)는 아프리카 가나 신학자 존 포비(John Pobee)의 말을 인용하여 선교사 의 이러한 태도를 타불라라사(Tabula rasa, 빈 석판)주의라고 말했다.13 이는 비기독교문화는 그 안 에 아무런 선한 것도 없으므로 기독교를 그 땅에 세우기 전에 먼저 전통적인 비기독교 문화의 요소 들은 전부 파괴되어야 한다는 선교사 교리를 말한다. 그런데 앞의 문화적 장벽에서 말했듯이 불교 신앙과 문화 그리고 민족적 정체성은 불교도에게 불가분리의 것이다. 무슬림에게도 이슬람은 삶의 방식 곧 문화이다.14 힌두교는 신명과 교리가 각기 다른 여러 종교들로 구성되기에 교리보다는 전체 를 하나로 엮을 수 있는 문화를 더 중시한다. 그래서 옥스퍼드 대학 교수 출신 힌두 철학자이자 초대 인도 대통령이었던 라다끄리슈난(S. Radhakrishnan)은 힌두교를 삶의 방식/문화라고 정의 내린 바 있다.15
타종교의 문화에는 분명히 비성경적인 요소가 많이 있다. 선교사는 과도한 상황화에 빠져 복음 의 본질을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혼합주의에 빠져 복음의 변질을 가져오는 것에 대해 선교 사는 언제나 경계의 태세를 가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500년간 서양선교는 교리 지키기 와 성화에 주로 무게를 두다보니 힌두, 불교도, 무슬림에게 서양문화라는 무거운 짐을 부과함으로 그들이 그리스도께로 나아오는 것을 힘들게 한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제 세계 기독교 시대에 한국인이 서양선교사가 밟은 전철에서 벗어나 힌두, 불교도, 무슬림 선교에 새로운 전기를 가져오기
- Dayanand Bharati,Living Water and Indian Bowl: An Analysis of Christian Failings In Communicating Christ to Hindus (Delhi: ISPC K, 1997),
- PaulG. Hiebert, “Critical Contextualization,” International Bulletin of Missionary Research, 11 No.3, Jul 1987, 104. 14 『우리의 친구 무슬림』, 43.
15 이는 라다끄리슈난 뿐 아니라 서구의 힌두 전문가 클라우스 클로스터마이어(Klaus K. Klostermaier), 그리고 또 다른 인도인 전문가 고빈드 데쉬판데 (Govind Deshpande), 비쉬와나탄 (Vishwanathan)의 경우도 동일하다. 필자의 『힌두교에 대한 기독교 메시지, 선교방식』 (포항: 아릴락북스, 2020), 43쪽 을 참고하라.
위해서는 단지 개종자 수 증가만이 아니라 개종자의 삶의 방식(문화)에 어떻게 복음의 빛을 비출 것
인가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 출발점은 서양문화/한인문화 우월주의 방식의 선교를 중단하 고 타문화 속의 부정적인 면뿐만 아니라 공통점을 찾아 그들에게 나아갈 삶의 방식, 곧 문화의 다리 놓는 일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세 번째 다리는 개종자들의 자연적인 다리인 출생 공동체의 다리이다. 이 다리는 선교사가 놓아 야 할 다리라기보다는 놓여 있는 기존 다리를 유지, 활용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다리는 선교사의 관점 또는 방침에 따라 다리가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다리는 모든 개종 자가 갖고 있는, 가족과 친지 또는 소속 카스트가 포함된 출생 공동체이다. 윌리암 캐리 선교사는 근 대 선교 및 인도의 총체적 복음전도에 대한 기여가 큰 선교사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를 비롯한 다 수의 서양선교사들은 선교기지 또는 기독교 마을을 만들어 개종자들을 나머지 사회로부터 분리시 키는 분리주의식(빼어내오기식) 방식을 사용했다.16 이 방식은 핍박받는 개종자를 보호하고 생계수 단을 제공하며, 개종자들의 신앙 유지와 교육의 편리성이 있어 선교사들이 선호하는 방식이었다. 이 는 개종자들이 가족행사나 종교 축제에 참여함으로 힌두교, 불교, 무슬림 신앙과 문화로부터 영향받 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가족으로부터 박해받는 개종자들의 피난처로써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이 방식에는 결정적 약점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이 방식이 비성육신적, 비성경적 방식 이라는 것이다. 둘째로 그 방식은 개종자가 속한 가족, 친지, 사회공동체와의 모든 인간관계, 사회적 관계를 끊어버림으써 개종자가 자신의 공동체 내에 복음을 전할 길을 모두 막아버린다는 것이다. 인 도인 복음전도자 다야난드 바라띠(Dayanand Bharati)는 서양인의 인도선교 역사에서 가장 큰 비극 중의 하나는 공동체에 들어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개종자들로 하여금 공동체를 반대하게 하고 공동체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킨 것이라고 지적했다.17 소금은 음식물에 들어가고, 누룩은 반죽에 들 어가야 하며 등불은 등경 위에 놓아야 맛을 내고 부패를 방지하며 세상의 어두움을 밝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인도의 소금과 반죽과 등불인 기독교인들은 완전히 분리되어 따로 보관되며 등경 밑에 두고 있기 때문에 사회에 거의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기에 힌두권, 불교권, 힌 두권 선교는 일부 비주류민을 제외하고는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다.
미국인 선교사 학자로서 인도에서 오랜 세월 사역했던 리처드 히브너(Richard Hivner)는 이것을 ‘자
연적 다리 불태우기’라고 표현했는데, 그는 그동안 선교사들이 자연적 다리를 불태운 것이 힌두권 선 교의 결정적 패착임을 인정하고 자연적 다리를 살리는 방식의 선교를 역설했다.18 개종자는 하나님이
16 『서양식 선교 방식의 종말』, 347-350.
17 Dayanand Bharati, 55.
18 『서양식 선교 방식의 종말』, 389, 391.
만들어 주신 자연적 다리이다. 외부자인 선교사는 결코 만날 수 없고 영향력을 끼치기 어려운 사람
들을 연결해주고 복음의 빛을 증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현지인 개종자들인 것이다.
그동안 개종자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공동체를 이탈하거나 이동하는 방식의 폐해를 성찰하면 서 내부자로서의 지속적인 역할과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개종자가 공동체에 머무르는 방식의 필요 성과 취지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었다.19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이교문화 가 지배적인 가운데 머물면서 어떻게, 어느 정도로 내부자가 되어야 하는가 라는 중요한 질문이 제기 된다. 그래서 공동체를 떠나지 않고 머무르는 방식은 필연적으로 본질의 왜곡을 피할 수 없고 혼합 주의의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를 던지면서 반대하는 사람들로 인해 선교현장에서 이것을 적 용하는 것에 주저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그룹의 시각으로 보면 공동체 내에 머무르는 방식은 결과 또는 숫자만을 강조하는 타락한 실용주의 노선이며, 개척선교를 위해 선교사들이 만든 전략적 상상 력의 발휘에 다름 아니다.20 또한 공동체 내에 머무르는 방식은 집단개종 운동에 집착하기 때문에 발 생한 전략으로 종교개혁 전통과 성경적인 가르침에서 벗어나는 위험한 시도이다. 그들의 눈으로 볼 때는 공동체 내에 머무르는 것은 단지 수단이지 목표가 될 수는 없다.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충성스럽게 사는 것은 핍박과 박해를 받을지라도 오직 가족과 공동체를 떠나 는 길 뿐이다.21 이들은 공통적으로 공동체에 머무르는 방식을 평가할 때 구원론을 중심으로 전개하 는 것은 옳지 못하고 이후의 성화 문제, 그리고 교회론적 관점에 평가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윌리암 캐리 시대든 오늘날이든 전통적으로 분리주의 방식을 지지하는 분들의 우려, 곧 혼합주 의를 막고 본질적인 성경적 가치를 지키고자하는 결의는 모든 선교사가 공유하는 중요한 가치이자 원리이다. 우리는 결코 결과와 수단과 실용주의에 치우쳐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충성스럽게 사는 궁 극적 목표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점을 긍정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 그리스도인의 제자로서 충성스럽게 사는 길이 왜 반드시 가족과 공동체를 떠나는 길만 있다고 보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 다. 힌두권, 불교권, 이슬람권에서 신앙으로 그 공동체를 떠나는 것이 쉬울까, 남는 것이 쉬울까? 떠 나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핍박을 피하여 가족과 공동체와 나라를 한 번 떠나는 것은, 그 공동 체에 남아서 평생 핍박 속에 신앙을 지키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내부에서부터 그 공동체를 변혁시 켜 나가는 사람들에 비해서는 아주 쉬운 일로 보인다. 앞은 한 번 죽는 것이고, 뒤에서는 여러 번 계 속 죽는 것이다. 앞에서도 피치 못하게 떠나는 것이겠지만 그것만이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충성스럽 게 사는 길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출생 공동체를 떠나지 않으면서도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충성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상층카스트 힌두 배경 기독교인인 수밤마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지역 사회의 구루이신 삼촌 중에 한 분은 성경
19 개종자가 공동체 내부에 머무르는 내부자 운동에 대해서 부정적인 비평을 내린 다음의 글에서도 그 동기와 중요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것을 볼 수 있 다. 문상철, “개척선교 전략으로서 내부자 운동에 대한 비평” 『한국선교 KMQ 』, Vol. 8 No. 4, 2009 여름호 통권 30호, 18.
20 위의 글, 20.
21 위의 글, 24.
과의 비교연구를 통해 그리스도를 아바타 중의 하나로 받아들인 분이시다. 어머니도 복음에는 관심
이 있으셨다. 그러나 그들은 깜마[상층] 카스트를 떠나 천민의 교회 공동체로 들어간다는 것은 결코 상상도 할 수 없었으므로, 기독 신앙에 대해 알고자 하는 어떤 시도도 결코 할 수가 없었다. 이것이 오늘날 대부분의 카스트 힌두들이 안고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나는 마침내 1942년 3월 23일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나는 천민 공동체로 들어가지 않고 우리 집 안에 가정교회를 세웠다. 나는 기독교인 이 되었으나 내가 태어난 출생 공동체를 떠나지 않고 원래 있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제자요 그리스 도 증인의 삶을 살기 시작한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족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구루로 따를지라 도 여전히 가족과 친족을 떠나지 않고 그들에게 헌신적인 가족의 일원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음을 설 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몇 년이 지난 후 수백 명의 깜마 카스트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나아오게 되 었다. 이를 통해 나는 세상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교회가 반드시 다루어야 할 문제가 있음 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가족과 친족 공동체를 떠남이 없이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돕는
것이다.”22
캐리와 같은 분리주의자들이 성경의 가치(텍스트)를 지키고자 하는 데 대한 깊은 관심에 공감 을 가지면서도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힌두, 불교도, 무슬림들이 살고 있는 세상(콘텍스트)에 대한 이 해 부족이다. 힌두, 불교도, 무슬림 개종자들이 자신들의 공동체에 반드시 머물러야 하는 이유는 선 교를 위한 상상력 때문도, 다수의 개종자를 이끌어 내기 위한 수단이나 타락한 실용주의 때문이 아 니다. 하나님이 섭리 가운데 허락하신 가족과 친지와 친구와 공동체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가족 과 친구와 나라는 언제든지 내게 도움이 안 되면 떠나고 버릴 수 있는 수단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랑하셨듯이 위하여 목숨까지 버려 사랑해야 할 신자의 사랑의 대상이자 목적이다. 무엇보다 타종교 배경의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께 충성된 제자의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의 가족과 공동체의 충실한 일원으로 남기를 바란다. 적어도 힌두권에서 이것이 가능한 것은 힌두신앙은 특정 신을 믿는 것이 필수인 종교가 아니며 누구든지 원하는대로 자신의 신을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가리켜 이쉬따 데바따(Ishta Devata, 선택한 신)라고 한다. 힌두는 이렇게 여러 신 들 중에 자신만의 신을 선택하여 믿는다. 놀랍게도 근대와 현대 가장 영향력이 있는 힌두 구루인 라 마끄리슈나와 싸이 바바(Sai Baba)가 예수님을 성육신한 신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어떤 압박도 없이 자신의 신앙을 지켜 나갈 수 있다, 단 한 가지 조건만 지키면. 그 조건은 먹고 마시고 입고 생활하는 것과 관련된 인도의 습관, 인도의 문화이다. 그 문화 중에 카스트보다 더
중요한 최고 가치는 가족이다. 인도에서 ‘기독교인’은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최
하층 천민’이라는 신분개념이다. 그리고 ‘소먹는 종교인’이라는 문화적 개념이다. 그러므로 가족을 떠 나지 않고 공동체 이동을 하지 않는 것은, 반란과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인도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복음 전도가 주 목적이라면 전도자가 반드시 유념해야 할 가치이다.
22 B. V. Subbamma, “Smoothing the Paths: A Caste Hindu Tells Her Story,” Mission Frontiers, Jan. 2001, Special Issue.
무엇보다 공동체 내에 머무르는 것은 예수님의 성육신적 선교와 정확히 일치한다. 예수님은 세
상이 악하고 더럽다하여 세상 밖으로 그 제자들을 이끌어내지 않으셨다. 도리어 어두운 세상에 들 어와 그 고결한 삶과 십자가와 부활로 빛을 비추셨다. 사도 바울도 당시 노예제도가 지배적인 사회였 지만 노예출신이 다수인 초대교회 신자들에게 이교사회를 떠나 신세계를 건설하라고 하지 않았다. 주인에게 순복하며 착한 행동으로 빛을 증거하도록 도전했다.
분리주의 방식을 지지하는 자들은 공동체 내에 머물러야 할 필연성은 인정하면서도 머무르기의 어려움, 다른 말로 하면 성화의 어려움을 이유로 공동체에 머무는 것을 거절한다. 성화는 구원이 중 요한 만큼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왜 서구인과 한국인은 자신들의 타락한 세상에서는 성화의 삶이 가능한 것을 믿으면서도 힌두, 불교도, 무슬림 배경의 신자들에게는 그들의 공동체에서 성화의 삶이 절대 안될 것처럼 말하는지 의아하다. 성령 하나님은 그들 나라에만 있고 힌두, 불교도, 무슬림 나라 에는 활동이 없으신건가, 아니면 악령의 세력 때문에 힘이 약해지셨다는 말인가? 혹시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에서 개종한 자들의 성경의 가치를 지키고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열정과 충성심은 미국과 한국 신자들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고 보는 것일까? 우리는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님과 헌신적인 한국 기독교인만 볼 것이 아니라 힌두권, 불교권, 이슬람권 가운데 일하시는 성령님과 헌신적인 현지 기독교인을 살펴 봐야 한다.
힌두권, 불교권, 이슬람권은 공통적으로 공동체 문화가 지배적인 곳이다. 또한 이슬람권에서 기 독교인이 되면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고립되듯이, 인도에서도 개종은 천민으로 신분 이동이 되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에 자연히 가족과 공동체로부터 고립되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인도에서 힌 두 사회에 머물러 있으면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예수 박타(Yeshu Bhakta, 공동체 내에서 예수를 따 르는 신자)가 일찍부터 등장하는 배경이 된다. 윌리암 캐리의 선교 동역자였던 다카 기지의 개척자인 오웬 레너드(Owen Leonard) 선교사는 세람포르 선교사 중에 개종자들로 하여금 가족을 떠나게 하 고 카스트를 잃게 하는 방침은 그들을 현지인 공동체와 분리하도록 함으로써 복음전도를 원천적으
로 가로막는 방식인 것을 인식한 유일한 선교사였다. 그는 개종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 께 대한 신앙고백을 한다고 해서 당신이 속한 사회 공동체를 떠나는 것은 저의 바라는 바가 아닙니
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당신이 힌두로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냥 힌두가 아니 라 기독교인 힌두가 되는 거지요. 우상숭배와 모든 죄를 떠나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면서 힌
두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십시오.”23
오늘날에는 오웬과 같은 방침으로 힌두 공동체 속에 살면서 그리스도를 따르고 증거하는 수많 은 신자들이 존재한다. 그중에 따밀 기독교인으로서 남 뻔잡 지역에서 친구선교사기도대(FMPB)의 선교사가 되어 시크교인들을 위해 헌신했던 뻔잡 데이빗의 예를 들어 본다.24 그는 20년간의 사역으
23 『서양식 선교 방식의 종말』, 222-224.
24 위의 책, 394, 395.
로 기독교회가 전무했던 이곳에 십 만 명이 넘는 교인들과 수많은 교회를 세워 놓았다. 그의 사역 방
법을 나는 쁘레미(premi) 방식이라고 부르는데 왜냐하면 그는 개종자들을 기독교인이라 부르지 않 고 쁘레미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이라는 명칭은 시크교인이 지배하는 뻔잡 지역에서 ‘부정 한 사람’, ‘타락한 사람’, ‘천민’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이름을 사용하는 순간 전도는 멈 춰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기독교인이라는 이름 대신에 쁘레미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쁘레 미로서 정체성을 갖는다. ‘쁘레미’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자’라는 뜻이다. 쁘레미들은 시크의 제자가 아니라 예수님만을 참 구주, 참 구루로 받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을 믿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또한 쁘레미 방식은 가족과 사회 공동체를 떠나지 않고 그
내부에 머무르면서 그리스도를 따르고 증거하는 방식이다. 그들은 가족의 가치, 그리고 성경에 어긋 나지 않는 공동체의 문화를 존중하고자 최대한 노력하기 때문에 기존 사회와 충돌되기보다는 도리 어 사회의 지지와 협조를 받아가며 전도하고 있다. 데이빗은 쁘레미들에게 세례도 주고 성찬식도 하 며 교인들의 헌신으로 교회건축도 한다. 그리고 전통종교의 제자삼는 방식을 따라 지속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배출하고 있다.
- 열린 문
아무리 좋은 다리를 놔도 성문이 언제나 굳게 닫혀져 있고 무엇을 말하든 아무 것도 알아듣지를 못 하고 아무런 공통점도, 공감대도 없다면 선교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모든 종교와 문화권 안에는 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 준비하신 복음의 준비가 있다. 이 준비가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라는 거대한 성벽 안에 열린 문이다. 다리가 열린 문과 연결이 될 때 현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용어와 방식으로 복음의 소통이 이뤄지게 된다. 예를 들면 헬라인들이 만물의 배후에 존재하는 것으로 믿은 바 창조자 개념으로서의 로고스라는 용어는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으나 본래 신성을 가지신 예 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데 중요한 준비가 되었다(요1:1). 또한 존 로스 선교사가 한국어 성경을 번역할 때에 한국의 샤머니즘이 가졌던 바 하늘에 계신 최고신, 주신으로서 하나님이란 용어를 한국의 신명으 로 채택했는데, 이는 한국인들이 성경의 하나님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와 같 이 어느 문화권마다 복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하나님의 준비가 있는데 이를 가리켜 캐나다 선
교사 돈 리쳐드슨은 ‘구속적 유비’라고 했다. 이것은 다른 관점에서 말하면 특수 계시인 성경(그리스도) 과 함께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계시의 두 손 중 하나인 일반(자연)계시이다.
일반계시는 보통 인간의 양심에 새겨진 자연법이나 우주에 인간의 이성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정 교한 질서 및 법칙과 관련하여 설명되어진다. 그러나 이와 함께 선교사에게 중요한 것은 세계 종교 안에 있는 일반계시이다. 헬라 신앙 안에도 창조주 개념, 신의 아들 개념이 있지만 힌두교 안에는 놀 랍게도 삼위일체 개념, 성육신, 그리고 창조주이신데 인간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생들을 위해 희생 제물이 된 쁘라자빠띠(prajapati)란 신명이 나온다. 따밀의 쉬바 쉬단따(Shaiva Siddhanta)라는 경전
을 보면 잃어버린 아들을 찾기 위해 온 세계를 찾아 헤매는 왕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왕은 산을 넘
고 물을 건너며 아들을 찾다가 뱀에게 물리고 독이 든 물을 잘 못 마셔 목숨까지 잃게 되는데 신의 은총으로 부활하여 기적과 같이 잃은 아들을 되찾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잃어버린 아 들을 찾기 위해 세상에 오신 하늘의 왕 이야기의 구속적 유비가 될 수 있다.25 아들을 위한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 이야기는 십자가와 부활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뿐 아니 라 힌두교에는 하나님의 아들 바유가 유일한 중보자가 된다는 이야기가 나올뿐더러 오직 유일한 창 조주이자 구원자인 특정 신을 믿음으로써만 구원받는다는 신앙의 구원론이 비슈누파, 쉬바파, 샥띠 파 신자들의 구원론으로 자리잡고 있다.
상좌부불교는 신을 믿지 않을 뿐더러 사랑을 집착의 마음으로 보기 때문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 처럼 사랑하사 보내신 그 아들을 믿어야 한다는 전통적인 복음 메시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 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불교의 사성제인 고제, 집제, 멸제, 도제의 순서를 따라 미얀마의 불교
배경 개종자가 만든 “예수님의 사성제” 메시지는 구속적 유비를 사용하여 많은 불교도의 마음을 끌 었고 수많은 불자들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26
스티브 벨은 아브라함의 희생제사를 구속적 유비로 제시한다. 아들 이삭 대신 제물로 바친 수양 을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관련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또한 하즈 순례와 무슬림 예배의 중 심으로 여기는 메카 성전 중앙의 검은돌 까바(kaaba)도 좋은 복음의 준비가 된다.27 이 돌 색깔이 검 은 것은 순례자들이 입을 맞추거나 손을 댈 때 그들의 죄가 돌에 옮겨지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이를 기초로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갈 때 죄를 용서받는 기독교의 검은 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다. 물론 이슬람 선교에는 성육신과 삼위일체론이 주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무슬림 경 전인 꾸란에는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과 그 분의 초자연적 성격과 거룩함이 분명히 나온다. 예수님의 탄생, 기적들, 가르침, 죽으심과 승천, 그리고 다시 오실 것에 대한 내용까지 나오기 때문에 불교권, 힌 두권에 비해 훨씬 수월하게 꾸란의 열린 문을 통로로 해서 무슬림 구도자를 직접 그리스도께로 인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모든 열린 문과 복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를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 리고 이 문들을 활용하여 힌두와 불교도와 무슬림이 이해할 수 있는 말과 개념으로 복음전도를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한인 선교가 과거 서양선교사들의 비성육신적 선교, 현 지문화에 부적절한 방법으로 하는 선교에서 벗어나 현지 가운데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구속적 유 비, 일반계시를 이용하고 자연적 공동체를 살린 다리를 놓음으로 수많은 힌두, 불교도, 무슬림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도한다.
25 『힌두권 선교 가이드』, 109.
26 『불교권 선교 가이드』, 384.
27 『우리의 친구 무슬림』, 93.
새로운 선교의 최전방: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대한 교회의 선교적 사명과 책임 / 이명석 교수(아신대학교 / 전 PCK 아프리카 가나 선교사)
- I. 들어가는 말: 문제제기
지난 2020년 2월부터 최근까지 전 세계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바로 1세기 전 전세계를 강타 했던 스페인독감의 생태적인 도전을 새로운 형태로 또 한 번 겪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인류는 기후와 생태환경의 변화로 인한 결과가 이제 먼 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삶과 생활양식에 중 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절감하였다. 또한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축적한 환경과 생태계의 혼란 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팬데믹으로 나타나면서 인류의 생존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음도 확인하 게 되었다. 이러한 미증유의 현상을 겪으면서 한국교회 안에서도 창조세계와의 평화로운 공존에 대 한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사명에 더욱 관심이 늘어가고 있다.
세계적으로 하나님의 창조세계 전반에 대한 교회의 선교적 사명과 책임의식을 고취하는 의미 있는 진전이 여러 방면으로 이뤄지고 있다. 최근 들어 세계적인 선교포럼과 세계선교학회들의 대회 주제들에서도 그 관심의 정도가 드러난다.1 이제 전 세계 교회는 미래 세대의 몫까지 염두에 두는 생 태정의의 실현을 통하여 창조세계 전반을 포괄하는 생명선교로 넓혀 가야 하는 시대적인 요청에 직 면하고 있다. 이번 2023년 세계선교전략회의에서도 환경과 생태에 대한 영역을 새로운 선교의 최전 방으로 인식하고 이에 대한 선교전략을 수립하고자 하는 것은 선교적으로 크게 의미 있는 시도라고 하겠다.
이번 발표에서 필자는 다음의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하고자 한다: 환경과 생태의 위기에 대 한 문제의식을 촉발한 계기는 무엇이었나? 지금의 환경과 생태의 위기는 어디에서 왔나? 환경과 생
1 2009년 세계 5대륙 38개국에서 온 회원들이 케냐의 리무루(Limuru)에서 모인 미가 네트워크 대회의 주제로 “창조세계 청지기 선언과 기후 변화 (Declaration on Creation Stewardship and Climate Change)”를 설정하고 전 지구적인 환경위기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였다. Micah Network, “Declaration on Creation Stewardship and Climate Change,” IBMR, Vol 33, No. 4, (April, 2009), 182; 2022년 7월 7-11일 동안 호 주 시드니 열린 제15회 세계선교학회(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Mission Studies)의 대회 주제는 “권력, 불평등, 취약성: 상처입은 세상속에서의 선교” 이었으며 환경과 생태에 대한 주제들도 포괄적으로 다뤄졌다. 2023년 6월 23-24일까지 에딘버러 대학교에서 열리는 Yale-Edinburgh Group on World Christianity and the History of Mission의 대회 주제는 “Creation, Climate Change, and World Christianity”로 창조와 기후변화 그리고 세계 기독교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태계 보전에 대해서 어떤 대응들이 있었나? 지금까지 창조세계의 보전과 생태적 책임에 대한 교회의
대응은 어떠했는가? 환경과 생태는 선교의 새로운 최전방 영역인가?
- I. 환경과 생태의 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촉발한 계기는 무엇이었나?
역사적으로 돌이켜 보면 사람들이 가진 인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강력한 외력에 의한 인위적인 조작이 아니라 종종 의도치 않은 조그만 사건에서 비롯된 경우가 있다. 세계이차대전 이 끝나고 1950년대부터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된 살충제의 일종인 DDT의 위험성을 세상에 알린 이는 레이철 카슨(1907~1964)이다. 그가 쓴 『침묵의 봄』 은 당시 수백만 명이 읽었으며 “환경운동”이 라는 말이 사람들에게서 오르내리게 된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일례로 『침묵의 봄』 이 가져온 여파는 미소 냉전의 시기에 존 F. 케네디 대통령으로 하여금 정부 내 환경보호국이 신설하게 하였고 유해 살충제의 사용을 금지하는 조처로 이어졌다. 1998년 4월 타 임지는 카슨을 20세기를 빛낸 100인중의 한 명으로 선정했으며 그녀가 평생 투쟁했던 DDT를 20 세기 최악의 아이디어 100가지 중 하나로 선정했다. 하지만 침묵의 봄으로 인해 막대한 이윤의 근원 을 잃게 된 거대한 화학회사들과의 힘겨운 싸움이 이어졌다. 그로 연유로 지금도 여전히 살충제의 위 험에 대한 논쟁은 지속되고 있다.
카슨이 쓴 『침묵의 봄』이 일반인들에게 환경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일으키고 생태라는 말이 일 상에서 통용되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를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몇 가지 있다. 그것은 먼저 카슨이 심층연구를 통해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을 정도의 자료를 바탕으로 집필을 했다는 점이다. 이로 인 해 거대 살충제 회사에 고용된 전문가들을 거침없이 상대할 수 있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점은 그가 일반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체로 글을 썼다는 점이다. 카슨은 자신이 쓴 글을 소리 내어 읽 어보면서 썼다고 한다. 한 시대의 사회에 변화를 가져다 주는 것에는 어려운 과학적인 논리가 아니라 누구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명징한 소통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중요한 예이다.
책 첫머리에 있는 ‘내일을 위한 우화’에는 “아침이면 새들의 아름다운 합창이 울려 퍼지곤 했는 데, 이제는 기묘한 침묵만이 감돈다”라고 적고 있다. 살충제 살포로 인해 매일 아침 듣던 새들의 소리 가 갑자기 사라졌을 때 사람들은 새가 죽은 것이 아닌 사람들은 자신들에게도 닥쳐올 운명으로 느
꼈다. 하나의 생물 종이 인간의 사소한 부주의로 지구상에서 영원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을 때 사람 들은 마치 핵폭발이 가져올 전 생태계의 멸종의 서막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는 마치 한 동네에 서 기르던 애완견이 모두 집단으로 죽었을 때 느낄 수 있는 공포와 비슷한 경험일 것이다.
지금까지의 환경운동이나 생태학적 표현들은 상당히 많은 부분 과학적 언어로 쓰여졌으며 전문
적인 식견을 가져야 이해할 수 있는 언어적 표현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다 보니 대중들의 가슴을
움직이는 것에는 미흡한 경우가 많았다. 또한 세계교회연합(WCC)과 같은 곳에서 유래한 환경과 생태 관련 용어들은 서양식 사고방식에서 발전된 표현들이 많아서 일반 대중이나 평신도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필자의 이번 발표도 선교와 생태와의 관계를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일반인도 알기 쉽 게 다루고자 한다. 또한 선교현장에서 창조세계를 보호하는 선교를 진행하는 것에 대한 실제적인 예 를 들어 제언을 하고자 한다.
- II. 지금의 환경과 생태의 위기는 어디서 왔나?2
기독교 역사학자인 린 화이트(Lynn White Jr.)가 1967년 3월 ‘사이언스’지에 기고한 유명한 논문 ‘우리의 생태위기에 대한 역사적 근거들 (표e Historical roots of our ecological crisis)’은 오늘날 전 세 계적으로 생태적 관심을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킨 계기를 만들었다. 그는 그의 글에서 중세시대부터
유래한 ‘서구방식의 기독교’와 과학기술이 1960년대 생태위기에 책임이 있다고 파격적으로 주장했다.3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가 지금의 생태위기를 가져온 원인이라는 그의 주장으로 인해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여기서 화이트가 말하는 기독교는 일반적인 기독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계
몽주의 시대 이후의 서구 기독교와 거기서 파생된 과학기술이라는 점에서 사뭇 다르다.
화이트가 말하는 주장의 핵심은 사람들이 가진 종교와 세계관이 그들이 사는 환경에 지대한 영 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로 주변 환경과 기후가 사람들의 종교와 세계관 형성에 미치는 영향도 자명하다. 결국 화이트의 주장처럼 계몽주의 시대 이후의 서구 기독교 안에 들어온 세계관은 하나님과 자연 그리고 인간사회를 분리하여 보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로 인한 신학적인 변 화로 사람들이 자연의 신비를 경외하던 것에서 자연을 비신성화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과 도하게 인간중심적으로 해석된 서구 기독교에 의해 지금의 환경생태적인 위기가 야기된 것이라고 보 는 것이다.4
화이트는 지금 우리가 겪는 “환경생태의 문제의 근원이 종교적이라면 그 회복도 종교적이어야 한다”고 옳게 주장한다.5 즉, 그에 의하면 만약 종교인 것으로 인해서 지금의 환경문제가 기인했다면
2 보다 더 자세한 사항은 필자의 이전 글, 이명석, “생태학적 신학의 발전에 대한 탐구와 선교적 적용,” 「복음과 선교」 제50집 (2020): 245-273을 참조하라.
- LynnWhite, , “표e Historical Roots of Our Ecologic Crisis,” Science, 155/3767(1967): 1205-1207.
- White, ‘표e Historical Roots of Our Ecologic Crisis’, 1205.
- “Sincethe roots of our trouble are so largely religious, the remedy must also be essentially religious, whether we call it that or not.” White, ‘표e Historical Roots of Our Ecologic Crisis’, 1207.
역설적으로 그 문제의 해결도 종교적인 것에서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그는 계몽주
의 이전의 기독교 세계관으로 표상되는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St. Francis)를 생태주의자들의 수호성 인으로 추대함으로 그의 글을 결론짓고 있다.6
역사적으로 보면 기독교가 헬라로마 문화권으로 전파되기 시작하면서 기독교의 전파는 문명화 라는 기치와 결을 같이하는 흐름이 강했다. 결과적으로 미신적이고 토속적인 것은 다스려져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 결과 유럽에 복음이 전파되었을 때 수많은 전통신앙과 결부된 자연과의 조화 로운 삶에 대한 태도는 비문명적인 요소로 인식되었으며 복음의 걸림돌로 이해되었다. 이러한 선교 적인 흐름은 19세기 초반 아프리카에 파송된 선교사들을 의식을 지배한 것이기도 했다.
III. 환경과 생태계 보전에 대해서 어떤 해법들이 제시되었나?
화이트가 제기한 이러한 주장은 그 이후 서구 사회에 아주 커다란 반향을 불러왔다. 특히 유대- 기독교 신학자들과 비기독교 생태주의자들의 활발한 반응을 이끌어 내었다. 그 대표적인 것들이 생 태청지기(stewardship), 심층생태학(deep ecology), 생태여성주의(ecofeminism), 그리고 생태정의 (ecojustice) 등이다.
① 생태 청지기(Stewardship)사명과 안식일 정신
유대교계통의 학자들인 데이비드 에렌펠드(David Ehrenfeld)와 필립 벤틀리(Philp J. Bentley) 는 이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유대교 전통 안에는 “청지기 매뉴얼(steward’s manual)”이 있다고 주장 한다. 신명기 20장 19절에 나오는 “파괴하지 마라(baltashchit)”는 규정과 신명기 22장 6절에 기초한 “살아있는 생물에 고통을 주지마라(za’arbaaleihayyim)”는 규정은 인간으로 하여금 다른 피조물들 과 자연을 지키는 청지기 사명이 원래 구약성서 안에 들어 있음을 밝힌다.7
에렌펠트와 벤틀리는 이러한 생태 청지기 사명이 현대 기술사회에서 쉽게 훼손되기 쉬운 점이 있 음을 옳게 지적하면서 그 한계를 극복할 대안을 따로 제시하고 있다. 즉, 생태 청지기의 사명이 구약성 서의 안식일 정신과 함께 적용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창조질서 보전을 위한 “유대주의의 지혜를 온전
히 발현”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8 이는 생태 청지기 사명의식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이미 복잡하게 구성되어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기술문명의 진보와 발전의 이름으로 파괴되어가는 환경을 보전하는
것과 인간의 무한한 소비에 대한 욕심을 제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현실자각인 것이다.
② 심층생태학(Deep ecology)과 표층생태학(Shallow ecology)
- White,’표e Historical Roots of Our Ecologic Crisis’, 1207.
- David Ehrenfeld and Philp Bentley, ‘Judaism and the Practice of Stewardship’, In Earthcare, ed. David Clowney et al (Plymouth: Rowman & Little:feld, 2009), 70.
- Ehrenfeld and Philp J. Bentley, ‘Judaism and the Practice of Stewardship’, 70.
아르너 네스(Arne Naess)는 “생태 청지기”를 표층생태학(shallow ecology)이라고 비판하면서 보
다 더 근원적이고 급진적인 해결방안인 심층생태학(deep ecology)으로 나아갈 것을 주장한다.9 네스 에 의하면 환경오염이나 자연자원의 고갈 같은 과학기술적인 문제해결을 다루는 것을 ‘표층생태학’ 이라 정의한다. 대신에 인간의 행동양식을 심연에서부터 철저히 파헤치면서 사회구조와 규범에까지
폭넓게 포괄하면서 다루는 철학적이고 생태학적인 접근방식을 ‘심층생태학’이라고 정의한다.10 이러한 심층생태학적인 접근은 다른 생명체와 인간과의 수평적인 관계를 형성하여 지배와 착취
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도의 장점이 있기도 하지만, 역으로 보면 기독교의 유일신관을 희 석시키고 자연을 다시 신성시하는 과거의 함정으로 빠져드는 위험을 가져올 소지가 매우 크다.11 하 지만 심층생태학이 주장하는 것처럼 환경파괴의 원인이 되는 인간사회의 구조적 변혁이 없이는 온 전한 생태적 회복을 기대할 수 없다고 하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③ 생태여성주의(Ecofeminism)
로즈마리 래드포드 류터(Rosemary Radford Ruether)와 같은 생태여성신학자들은 인간의 자연 에 대한 지배가 남성에 의한 여성의 지배를 정당화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남성중심주의적이고 가
부장적인 문화를 자연의 질서와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통념에서 벗어나서 “성차별과 계급과
인종의 차별이 없는 공동체의 재발견”을 해야만 현재의 생태적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임을 제시하고 있다.12
류터의 이와 같은 주장은 여성의 시각에서 새롭게 생태신학을 개발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한 것으 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생태여성주의자들은 여성들이 남성보다 대지와 자연과 더 친밀한 관 계를 가지기 때문에 현재 지구의 생태적 위기를 해결하는 데에 여성들이 더 큰 잠재력을 가진다는 주장은 논쟁의 여지가 많다. 필자는 오히려 생태여성학자들이 추구하는 이분법적인 접근법보다는 남성과 여성이 협력하여 서로 다른 강점과 지식을 결합하는 것이 생태적으로 손상된 자연을 치유하 는 데에 보다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된다.
④ 생태정의(Eco–Justice)
송준인은 우리 시대의 생태위기의 뿌리가 기독교의 창조교리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 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된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런 이유로 그는 창조세계의 보전과 회복
- 네스는1973년 ‘심층생태학’, ‘표층생태학’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Arne Naess, ‘표e Shallow and the Deep, Long-Range Ecology Movement. a Summary,’ Inquiry, 16/1 (1973): 99; Arne Naess, ‘표e Deep Ecological Movement: Some Philosophical Aspects’, In Environment Philosophy, Michael Zimmerman (Englewood Cliffs, NJ: Prentice–Hall, 1993), 402
- Naess, ‘표e Deep Ecological Movement: Some PhilosophicalAspects’, 95-99. 11 백운철, “환경신학과 성서”,「Catholic 표eology and 표ought」 25(1998):
12 Rosemary Radford Ruether, ‘Ecofeminist Philosophy, Theology, and Ethics: A Comparative View’, in Ecospirit, eds. Laurel Kearns and Catherine Keller (New York: Fordham University Press, 2007), 85.
을 위한 실천적인 방안으로 “생태정의”를 실현할 것을 제안한다.13 이현모는 자연생태계의 보전과 경
제적 평등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고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상태를 생태정의로 표현한다.14
생태정의는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이 주장하는 것처럼 사회구조와 경제적 불평등에 의해서 억 압받는 가난한 사람만을 관심의 대상으로 두는 것이 아니다. 생태정의는 더 넓은 차원에서 생태계 보전과 인간사회의 경제정의가 함께 지속가능한 사회를 구현하는 기독교인의 행동인 것이다. 그러므
로 생태자원의 무분별한 남용과 개발의 명분으로 이뤄지는 생태계 훼손 행위를 “다음세대에 대한 부정의”라는 이현모의 주장은 그래서 더욱 타당성을 갖는다.15 이런 면에서 교회의 생태적 관심은 현 세대 뿐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생태정의 실현의 밑거름이 된다.
- I 지금까지 창조세계의 보전과 생태적 책임에 대한 교회의 대응은 어떠했는가?
우리나라는 1960년대와 70년대 당시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후유증으로 사회의 모순적인 현상이 축적되었다. 1980년대는 대규모 중화학공업단지의 조성으로 인해 심각해진 산업공해 문제 에 대처하고자 여러 시민사회와 교회 단체들이 조직되어 환경운동을 시작한 시기였다.16 이러한 환경 단체들은 주로 정부의 환경공해 관련 정책들을 비판하고, 공해문제의 심각성을 대중에게 적극적으 로 알리는 캠페인을 선구적으로 이끌어 왔다. 하지만 이 시기의 환경운동은 대부분 민중운동의 관 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의 종교성이 갖는 본성에 대해서 민 감하지 못하여 민중교회는 위축되었고, 특히 당시에 제시되기 시작한 환경문제와 기후변화의 결과 에 대해서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17 또한 이 시기 대부분의 한국 교회는 개인 의 영혼 구원과 교회 성장이라는 교회중심의 패러다임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창조세계 전반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서는 그 관심의 정도가 낮을 수밖에 없었다.
세계적으로 창조세계의 보전과 교회의 생태적 책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가자 세계교회 안 에서는 에큐메니칼과 복음주의의 진영 양측 모두에게서 이를 새로운 신학적인 과제로 인식하는 현
상이 확대되어 나타났다.18 에큐메니칼 진영에서는 1983년 “예수 그리스도 세상의 생명”이라는 주
13 Timothy Chun-In Song, “A 표eological-Ethical Study of the Relationship Between Eco-Justice and Economic Growth in the Context of the Social Transformation of Modern Korea”, (Ph.D. Dissertation, University of Stellenbosch, 1999: 5, 91, 252-318.
14 이현모, “피조세계도 선교의 대상인가?”, 302.
15 이현모, “피조세계도 선교의 대상인가?”, 303.
16 대표적인 환경운동 단체로서 <한국공해문제연구소>, <공해추방운동연합>, <공해반대시민운동연합회>, <반공해운동협의회>, <한국반핵반공해평화 연구소>, <기독교환경운동연대> 등이 있다.
17 한국교회환경연구소 편, 『현대생태신학자의 신학과 윤리』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6); 조명래, 이정배, 『기후붕괴시대, 아주 불편한 진실 조금 불편 한 삶』 (서울: 동연, 2010); 한국교회환경연구소 편, 『녹색교회와 생명목회』, (서울: 동연, 2013).
18 이현모, “피조세계도 선교의 대상인가?”, 「복음과 선교」 49(2020): 280-82.
제로 모인 뱅쿠버 총회와 1990년 서울대회를 거치면서 교회의 책임영역을 정의, 평화, 창조의 보전
으로 확대하고 있다. 또한 1989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 개혁교회 총회가 ‘창조의 보존(Integrity of Creation)’을 총회의 주제로 정한 것은 이러한 시대적인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었다.
복음주의 진영 안에서도 시대적인 요청에 부응하여 선교의 일환으로 생명에 대한 관심과 환경 보전을 선교적 과제로 설정하고 구체적인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그 결정적인 계기는 1974년의 스 위스 로잔에서 열린 국제대회이다. 이 대회에서 라틴 아메리카 신학자인 사무엘 에스코바(Samuel Escobar)와 르네 파딜라(Rene Padilla)는 교회의 선교적 사역으로서 복음전도와 사회정의가 모두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이는 마치 통밀빵의 내용물처럼 서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총체 적 선교(integral mission) 또는 전인적 선교개념으로 소개되었다.19 파딜라는 1999년 총체적 선교를 지향하는 미가 네트워크(Micah Network)의 결성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20 특히 2001년 미가 네트워크 대회에서 나온 ‘총체적 선교에 관한 미가선언문(Micah Declaration on Integral Mission)’ 에는 “창조세계에 대한 책임적이며 지속가능한 자원의 사용을 위한 노력”을 담고 있다.21
이러한 교회의 환경에 관한 관심과 생태위기에 대한 대처들은 보다 더 큰 단위로 영향을 미쳤 다. 특히 국가기관들과 정치인들의 환경과 생태에 대한 태도에 변화를 가져다 주었고 세계적으로 거 시적인 흐름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 그 한 예로 1988년에 설립된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를 들 수 있다.22 2023년 3월 20일, IPCC는 6차 평가 보고서를 발표하였는데 이 보고서에는 지난 10년 동안 가장 종합적이고 접근 가능한 방식 으로 기후 변화의 원인, 영향 및 해결책을 보고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기후 위기의 현실적인 상황과 위험성을 강조하며, 식량 부족, 열과 습도로 인한 인간 및 동물의 사망, 서식지와 생물종의 상실 등과 같은 파괴적인 영향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생물 다양성의 상실, 기후 변화, 빈곤과 불평등이라는 세 가지 세계적 위기가 동시에 존재하며, 이러한 위기들은 서로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관계에 있 음을 밝히고 있다.
- V. 환경과 생태는 선교의 새로운 최전방 영역인가?
기후환경과 생태계 위기로 인한 여러 가지 재난이 발생하면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에 있는 사람들과 생태계의 가장 연역한 층에 속한 존재들의 생명이 생존의 위험에 처하고 고통을 당
19 박보경, “르네 파딜라(Rene Padilla)의 총체적 선교 연구”,「복음과 선교」 46(2019): 217-18.
20 Micah Network, “Declaration on Creation Stewardship and Climate Change”, 182. 21 박보경, “르네 파딜라(Rene Padilla)의 총체적 선교 연구”, 18.
22 IPCC는 세계 기상 기구(WMO)와 국제 연합 환경 계획(UNEP)에 의해 구성된 독특한 기관으로, 195개 정부 대표로 이루어져 있다. IPCC는 매 6~7
년 주기로 정책을 결정자들에게 기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과학적 자료와 잠재적인 선택지를 평가해 제공하고 있다.
한다. 생태계와 살을 맞대고 살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이 오히려 전 인류의 생존을 위협했던
팬데믹을 통해서 모두가 경험한 것이다. 여기에 교회의 환경과 생태에 대한 선교 이유가 자명하게 존재한다.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와 그에 따른 환경공해 문제 대두로 이제 선교는 인종, 문화, 종교를 뛰어넘 어 다른 생명체에까지 그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과연 “환경과 생태는 선교 의 새로운 최전방 영역인가?”에 대한 질문을 먼저 던지게 된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 안에 생태계가 포함되는가? 포함된다면 어떻게 포함되는가?”라는 질문도 나올 수 있다. “하나님의 선교 안에는 생태 계 전반에 대한 우리의 책임의식이 동시에 존재하는가? 생태계 영역을 향한 선교에 대해 성서는 어떻 게 말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도 동시에 던질 수 있다.
① 성서 본문의 의미 재발견
창세기의 1장과 2장의 구절들에 대해서 그간 보편적으로 해석된 바와 같이 인간의 자연 피조물 에 대한 지배를 당연시 했던 것은 편향된 성서해석에 기초를 둔 것이었다. 본래의 성서적 의미는 인 간에게 하나님의 피조물 세계에 대한 청지기의 사명이 부여 되어있음을 밝히고 있다. 성서의 본뜻에 대한 바른 해석이 환경문제의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세계를 무분별하게 착취하여 생태계를 파괴하는 인간들의 죄와 탐욕을 심판하시 는 분이시다. 인간에게 생태청지기로서의 책임(신 20:19; 22:6)을 묻는 분이시다. 베어드 캘리코트(J. Baird Callicott)와 제임스 맥래(James McRae)는 창세기에는 인간에게 자연을 수호하는 “생태 청지 기(stewardship)”를 강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23
② 구속주 하나님이 창조세계의 하나님과 동일한 분인가?
“구속주 하나님이 창조세계의 하나님과 동일한 분인가?”라는 질문은 신약학자인 영국의 C. H. 도드(Dodd)가 던진 질문이다.24 하나님은 창조세계와 별개로 초월자로서만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라, 모든 생명의 근원으로서 창조세계 내에 내재하시며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강조이다. 구속사적 인 관점에서의 성경해석은 인간 중심적인 역사와 성경의 이해를 가져왔다. 그러다 보니 창조세계를 초 월하시면서도 또한 창조세계 내에 내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생태계 영역을 향한 하 나님의 선교는 창조세계를 지속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과의 신령한 교통을 전제로 하고 있다.
③ ‘생명선교’로의 지향
- Baird Callicott and James McRae, Environmental Philosophy in Asian Traditions of 표ought (Albany: SUNY Press, 2014), xx.
- Mercy Amba Oduyoye, Hearing and Knowing: 표eological Reflections on Christianity in Africa (New York: Orbis Books, 1986), 75.에서 재인용.
한국일은 기존의 한국 교회의 선교가 개인의 영혼구원과 교세확장에 치중된 선교패러다임에 머물러 있었음을 지적하면서 이는 한국 교회가 교회 중심적 선교관으로 인해 교인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가 “창조의 중보자이며 인류와 우주 만물의 화해자요”(고후 5:19) 또한 “우주와 만물의 주
관자(엡 1:10; 21-23)로서 새 창조주인 사실”에 대해서 무관심하도록 만든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25 그는 이 시대의 하나님의 선교는 전 세계를 선교의 장으로 포함해야 하며 인간만이 아니라 “피조세 계와 전 우주”를 선교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생명선교로 나아가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26
④ 생태학적 종말론적 지향
이승갑은 현재 한국 교회가 이기주의적이며 과도한 소비주의에 빠져 생태적 위기를 초래하고 지 구의 미래를 간과하는 등 생태의식이 결여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한다.27 그는 한국교회 안에 반생태적인 성향이 발생한 원인으로 생태계를 포괄하는 기독교 종말론 의식을 지목한다. 교회는 생 태학적 종말론적 지향을 수용함으로써 보다 지속 가능한 미래에 기여하고 지구와 지구의 모든 주민 을 돌보겠다는 헌신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⑤ 선교의 다섯가지 표지
1990년 성공회 협의회 (Anglican Consultative Council)는 선교의 다섯 가지 표지(The Five Marks of Mission)로 알려진 선교의 정의를 확장하여 선교 모델의 틀을 제시하고 있다. 이 표지에는 “창조세계의 완전성을 보호하고 지구의 생명을 유지하고 갱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선교에 포함 시켰다.28 이러한 선교의 정의는 기존의 복음 선포에 새로운 차원을 포함시켜야 함을 강조하고 있으 며, 환경보전을 위한 복음적 선포와 그에 따르는 책임 있는 행동이 부족했던 점을 지적하였다. 이제 복음 선포는 개인의 영혼구원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연약한 이웃인 생태환경까지도 포괄하는 새로운 모델이 형성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⑥ 선교의 다섯가지 최전방
지난 2023년 5월 새문안교회의 초청으로 제14회 언더우드 국제심포지엄의 주강사로 내한한 보 스턴 대학교의 선교학 교수인 데이나 로버트 (Dana L. Robert)는 “우리의 땅끝은 어디인가?”에 대 한 주제로 강의를 하였다. 그의 강의 중에서 보스턴대학교 신학부에 속한 글로벌 기독교와 선교센 터(Center for Global Christianity and Mission)에서 북미 전지역에 진행한 선교 관련 리처치를 통 해서 얻은 오늘 세계 선교에 필요한 “최전방”의 우선순위 5가지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지역안에
25 한국일, “생명선교 (Life Mission)”, 「장신논단」27(2006): 335-67. 26 한국일, “생명선교 (Life Mission)”, 338.
- SeungGap Lee, “표e Hope of the Earth: A Process Ecoeschatology for South Korea,” in Ecospirit: Religions and Philosophies for the Earth, ed Laurel Kearns and Catherine Keller (New York: Fordham University Press,
- JesseZink, “표e Five Marks of Mission,” Journal of Anglican Studies 15, no. 2 (June 2017): 145.
서 세계로 (표e Global in Local); 지리적에서 세대적으로(From Geography to Generations); 주변
으로부터 선교(Mission from the Margins); 초문화적을 넘어 상호문화적으로 (Intercultural over Cross-Cultural; 창조세계 돌봄(Creation Care).29
마지막 다섯번 째 최전방인 “창조세계 돌봄”에서 로버트는 전 세계로 선교의 최전방을 확장해 나 가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셨던 세계를 돌보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30 특히 창조세계의 돌봄 의 사명은 창조세계인 지구의 파괴로 인하여 자신들의 황폐해진 고향 땅을 등지고 다른 곳으로 이주 해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을 포함하는 것임을 확인한다. 이는 선교의 영역에서 창조세계
를 돌보는 사역이 새로운 선교적인 최전방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VI. 생태계와의 조화로운 삶의 추구와 생명 공동체의 형성을 위한 선교적 적용 사례들
전술한 바와 같이 이론적이며 개괄적인 설명과 함께 선교현장에서 선교사로서 직접 적용할 수 있 는 생명선교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아마도 생태계와의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며 행하 는 선교현장의 사례들을 직접 살펴보는 것이 이번 세계선교전략회의에서 유용한 적용이 될 것이다.
① 중앙 아프리카 니제르에서의 Farmer Managed Natural Regeneration (FMNR) 사례
1980년대 사역한 호주 출신 SIM(Serving in Mission) 선교사 토니 리나우도(Tony Rinaudo)는 니제르에서 조림 사업을 담당하고 있었다. 리나우도는 척박한 환경과 지역주민들의 경계심과 무관심 으로 인해 자신의 조림 사역에 큰 어려움을 직면하고 있었다. 리나우도가 경험한 도전은 아프리카인 들이 가진 산림 자원에 대한 태도와 전통이다.31 이는 땅의 소유권과 무관하게 지역민 중 그 누구도 산림자원의 이용에서 배제되어서는 안 되는 원리로 아프리카만의 독특한 전통이 아니라 한국의 왕 조시대에도 있었던 전통이다.32 이런 전통은 산림자원이 풍부할 때는 무난하게 작동하는 원리이다. 하지만 수요와 공급에 불균형이 발생했을 때는 심각한 부조화가 따른다. 문제는 이런 부조화가 발생 하고 있을 때 어떻게 해야 수급불균형의 악순환 고리를 깰 수 있느냐이다.
그는 한 마을을 지나가는 도중 타이어에 바람이 빠져서 차를 세우는 동안 예전에 그 지역에 심 었던 묘목들이 죽어가는 황량한 풍경을 보며 절망적인 마음으로 다음과 같은 기도를 하게 되었다:
29 Dana Robert, “우리의 땅끝은 어디인가?” 제14회 언더우드 국제심포지엄, 미간행 자료집, 2023년 5월 27일-28일, 새문안교회, 51-52.
30 Robert, “우리의 땅끝은 어디인가?”, 51-52.
31 Tony Rinaudo, “표e Development of Farmer Managed Natural Regeneration”, Leisa Magazine, 23/2. (June 2007) 33
32 조선시대의 “산림천택” 정책은 특정계층이나 개인이 공유자원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조선후기에 들어서면서 이상저온 현상이 지속 되자 산림자원에 대한 사점이 횡행하여 사회취약층에 고통이 가중되었다: 김선경, “조선후기 山林川澤 私占에 관한 연구”, 경희대학교대학원 박사논문 (1999), 14-61.
“환경 파괴가 고통과 굶주림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우리가 [하나님이 지으신]
아름다운 창조세계를 파괴한 것을 용서해 주옵시고, 하나님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보여 주시옵소서.”
기도를 마친 바로 그때 리나우도는 근처에 자라는 작은 덤불을 자세히 살펴보니 주민들에 의해 잘라진 나무둥치에 다시 싹이 트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리나우도는 지역주민들과 함 께 하는 Farmer Managed Natural Regeneration (FMNR) 운동을 새롭게 전개하였다.33
리나우도가 시작한 FMNR은 운동을 전개하면서 선교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생태운동의 중요 한 원리들을 발견하였다. 그 첫번째 관건은 산림녹화 프로젝트에 있어서 현지 주민들의 자발적 협력 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그것은 산림녹화 프로젝트가 현지 주민들에게 실제적인 혜택이 주어졌을 때 가능함을 발견한 것이다. 리나우도의 FMNR은 생태자원의 재생과 보전을 위한 주민들의 자발적 인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서 주민들에 대한 인센티브와 환경교육과 주민들의 자체 거버넌스를 적극 활용 하였다.
두번째로 FMNR의 주목할 점은 외부 재정에 대한 의존도가 작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서구 주 도 생태 보전 프로그램이 다수세계 지역에서 결실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지속적인 재정 투입을 전제 로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접근은 경제규모가 열악한 아프리카 국가와 같은 곳에서 진행되는 사막화를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임이 증명되었다. 외부의 재정적인 도움없이도 아프리카 내에서 자체적으로 운 영 가능한 생태 보전 프로젝트의 시행은 또다른 정서적인 의미를 가져다 주었다. 그것은 현지 주민의 자긍심이다. 함께 동역하는 주민들에게 자긍심이 생겼을 때 비로서 지속가능한 환경 운동이 되었다. 이런 면에서 리나우도의 새로운 접근방식이 아프리카에서도 자체적으로 지속가능한 방법을 찾아냈 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FMNR은 환경운동에 기독교 영성을 접맥한 점이다. 그동안 일반 생태관련운동이 나 학술활동이 기독교의 기도 영성과는 거리가 있었다. 오히려 그간 현대의 생태운동은 기독교적인 영향을 일부러 배제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리나우도의 FMNR에서 기도가 중요한 이유 는 하나님과 창조 세계와 인간사회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독교 영성 이 계몽주의 시대 이전의 아씨시의 성 프란시스 (St. Francis of Assisi)가 주장했던 생태영성과 맥을 같이 한다.34 이는 하늘과 사람과 자연의 공존을 추구했던 아프리카와 동양적 생태 사고방식과도 잘
- TonyRinaudo, “표e Development of Farmer Managed Natural Regeneration”, Leisa Magazine, 23/2. June (2007) 32-34(33)
- Johannes Jörgensen, T O’conor Sloane (tr), St. Francis of Assisi (New York: Longman, Green and C, 1957), 314-15.
조화를 이룬다.35
② 남아프리카 짐바브웨 “Earth Keeping Movement”의 사례
네덜란드 개혁교회 선교사 마르티누스 대닐(Marthinus Daneel)은 짐바브웨(구 로디지아)에서 성장하여 현지어인 쇼나어에 능통하였다. 대닐은 1965년대 로디지아가 영국으로 부터 독립을 선언 하고 나서 15년간의 독립전쟁을 치루는 과정에서 함께 협력하여 현지교회 지도자들과 교인들의 돈 독한 신뢰를 얻었다. 특히 인종차별을 반대하고 쇼나 공유지에 3년간 들어가 함께 공동생활을 하면 서 쇼나 전통종교인들과 우의를 다졌다. 그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그는 내전중인 1972년에 그의 아 프리카 독립교회 동료들과 더불어 아프리카 독립교회 협의회(Fambizano yamaKerke avaTema) 를 결성하였다.36
독립전쟁 이후 무분별한 벌목과 농지확보를 위한 산림파괴로 인해 황폐해진 자연환경은 독립된 짐바브웨 국가에 커다란 짐이 되었다. 대닐이 현지 교회지도자들과 연합하여 세운 아프리카독립교 회는 전후 생태환경 회복에 전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전통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조림사 역을 하면서 생태환경에 지은 죄를 회개하고 기독교의 성찬식(Eucharest)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을 생태환경에 까지 확대하여 적용한 것이다. 이는 그의 스승 헤르만 바빙크의 성례신학을 적용한 것이 라고 대닐은 밝혔다.37
대닐이 세운 비정부기구 Earth Keeper Movement는 이후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는데 이는 독립 운동의 상흔을 치유하고 그 에너지를 생태환경 회복으로 전환한 좋은 예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생 태환경 회복 운동은 이후 현지인에게 리더쉽 전환하는 이양과정에서 순조롭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그의 후임자가 재정비리와 비합리적인 조직 운영, 친인척 고용 등으로 조직을 와해하고 그 결과 후원 자들이 지원을 중지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어떤 선한 동기에서 시작한 환경운동과 생태보존 활동이라도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이기심 과 욕심을 제어하지 못하면 그 운동은 오래 지속되지 못함을 절실하게 깨닫게 하는 실례라 하겠다.
③ 동아프리카 케냐 “Care of Creation Kenya” 사례
동아프리카 국가에서 의료선교사 부모 밑에서 성장한 크레이그 소얼리(Craig Sorley)는 케냐에
- Yo Han Bae, 표e Divine-Human Relationship in Korean Religious Traditions (Saarbrücken: VDM Verlag D Müller 36Dana Robert, “우리의 땅끝은 어디인가?”, 75.
37 필자는 2014년 생태신학으로 박사과정 리서치를 하던 중에 뉴욕 메리놀 수도원에서 열린 미국선교신학회에서 보스턴신학교의 대닐 교수를 만나 그가 짐바브웨에서 행한 생태선교에 대해서 직접 듣는 기회가 있었다.
서 ‘케냐 창조보호 Care of Creation Kenya (CCK)’를 설립하였다. 이 단체는 복음적인 선교단체로
환경과 농업 분야에서의 청지적 사명을 확인하고 교회로 하여금 그러한 사역에 눈을 뜨게 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소얼리에 의하면 1973부터 2003년 30여년 동안 케냐의 전체 조림지와 산림의 55% 가 헐벗은 상태가 되었다. 이는 급속한 인구증가로 인한 나무의 수요증가와 가뭄에 기인한 것이었다. 산림이 줄어들자 표토층의 유실은 더 가속화되었으며 농업용수와 식수의 부족현상으로 이어졌다. 이런 현상은 케냐 주변 동아프리카 국가들에 나타나는 유사한 경향이기도 했다.38
CCK가 케냐 키자베(Kijabe)지역에 속한 음바우-이니(Mbau-ini)마을에서 주최한 “하나님과 창
조(God and Creation)”에서 있었던 일이다. 워크샵 강연 중에 한 케냐 강사가 우리가 창조청지기로 서의 사명을 행하는 것에 대한 성경적 기초와 환경을 보호하는 것을 통해서 어떻게 그리스도를 영화 롭게 하는 지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그러자 강연을 듣던 한 키쿠유(Kikuyu) 부족 출신의 참여자가
이런 질문을 했다:
“왜 수십년간 이곳에 왔던 선교사들은 우리가 삼림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하나님이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한 번도 말해 주지 않았습니까? 왜 그들은 이 땅에서 환경파괴가 일 어나는 동안 그저 방관만 하고 있었습니까?”39
이 사례는 선교지에서 생태환경 보전과 더불어 함께 사는 것에 대한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시대 적 과제인지 알려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④ 서아프리카 가나 불법 금채굴과 가나 교회의 선교적 대응 사례
거대한 산업네트워크와 정부 조직 간의 밀월관계는 쉽게 무너뜨리기 어려운 카르텔이다. 선교지 국가들의 빈곤의 원인도 부의 불평등한 분배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광물자원을 확보하는 과정에 서 발생하는 반영구적인 환경오염도 선교지역에 사는 저소득층 사람들의 빈곤의 늪에 빠지게 하고 삶을 황폐케 하는데 일조하고 있다.40
서부 아프리카 기니만과 적도 상에 위치한 가나(Ghana)는 일찍이 유럽 국가에 황금해안(Gold
- CraigSorley, “Christ, Creation, Stewardship and Missions: How Discipleship into a Biblical Worldview on Environmental Stewardship Can
Transform People and 표eir Land,” International Bulletin of Missionary Research 35/3(2011): 137-43. https://doi.org/10.1177/239693931103500306.
- Sorley,“Christ, Creation, Stewardship and Missions,” 13
40 서지현은 페부 북부에서 다국적 금광 채굴업자들이 페루 정부로 부터 수자원 이용권을 획득한 후 지역 농부들이 농업용수를 쓰는 것에 대한 제한을 가하는 경우에 대해서 연구했다: 서지현, “ 공동자원 거버넌스와 자원의 신자유주의화: 페루 북부 안데스의 경험을 중심으로,” 「아태연구」, 27/2 (2020): 94-98.
Coast)로 알려졌을 정도로 금과 같은 광물 매장량이 풍부한 나라이다. 경제성장으로 인해 해외 광
물 자원 확보에 열중하고 있는 중국 정부의 기조로 인해 가나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약 5만명 가량의 중국인들이 유입되어 소규모 불법 금채굴(현지인들에 의해서 galamasey로 불리는)이 성행하 여 반영구적인 환경문제와 사회문제를 동시에 발생시키고 있다.41 불법채굴 과정에서 오용 또는 남용 되는 수은이나 납 같은 중금속은 그 지역의 식수원을 오염시키고 항구적인 환경재앙으로 남는다. 이 러한 불법 금채굴은 코코 농장 같은 기존 농업분야에도 영향을 미쳐서 취약한 아프리카 국가의 경제 와 산업전반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아프리카와 같은 저개발국가에서 이러한 불법 금채굴이 번성할 수 있는 이유는 불명확한 땅의 소유권과 정부의 비효율적 채굴권 관리, 세계 경제 패권을 가지고 오려는 중국정부와의 카르텔이 복 합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국정부는 기축통화로 진입하기 위한 조건으로 정부차원에서 금확보 에 나서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저개발 아프리카 국가들의 정부와 지방 토착 지도자들 간의 개발 이익 의 배분은 미래세대가 누릴 환경을 담보로 현재 세대가 무분별하게 환경자원을 소모하고 파괴하는 악순환을 가져오고 있다.42
불법 금채굴이 장기적으로 환경에 미칠 심각한 악영향을 감지한 가나 교회는 교단 지도자들이 불법 금채굴 현장에 방문하여 신구교와 교단연합적으로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43 오순절교회 총회 장인 은냐메체(Nyamekye) 목사는 다음과 역설한다:
[교회]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스스로 법을 집행할 것이고, 모든 곳에 서 부정부패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지도자들에게 솔선수범을 촉구합니다. 누군가는 갈람시 산업에 종사하는 젊은이들을 통제해야 하고, 누군가는 그들을 교육해야 합니다. [교회]리더 십이 없는 곳에서는 일이 잘못됩니다.44
거대 다국적 기업과 패권국사 그리고 권력기관인 정부기관을 개인이 혼자 감당하기는 힘들다. 그러므로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과 이 같은 형태에도 교회의 선지자 역할이 요구되는 것이다.
- JamesBoafo, Sebastian Angzoorokuu Paalo, and Senyo Dotsey, “Illicit Chinese Small-Scale Mining in Ghana: Beyond Institutional
Weakness?”, Sustainability, 11, no. 5943 (2019), 1-18.
- Boafo,Paalo, and Senyo Dotsey, “Illicit Chinese Small-Scale Mining in Ghana,”
- https://ghanastar.com/stories/churches-join-:fght-against-galamsey/
- Benjamin A. Commey, ‘Galamsey’:Leadership of Christian groups call for collaboration to :fght canker, Ghana News Agency, October 16, www.gna.org.gh.
⑤ 아시아 몽골 GreenAsia의 “사막화 방지 사업” 사례
지금의 환경문제는 한 국가나 일부 지역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지구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최근 들어 한국 교회가 선교적으로 개교회적인 접근방식보다는 국제적인 공동협력을 도모하고 있다
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예를 들어, 비정부 기구 환경단체가 하는 ‘몽골 사막화 방지사업’에 한국 교회가 참여하여 협력하는 것은 좋은 사례이다.45 이는 한국 교회의 역할이 교회중심적인 선교에서 하나님의 창조세계 전체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보다 근본적인 접근은 사막화는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관점이다. 로이드 팀버레이 크(Lloyd Timberlake)가 지적하듯이 “사막화는 사막이 넓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막화는 지 구의 피부가 잘못 관리되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발생하는 발진이다.”46
하지만 팀버레이크 사막화 자체를 원인으로 지목하고 제방을 구축하고, 관개시설과 바람에 의 한 침식방지 시설과 같은 대응에만 치중한다면 이는 마치 한센씨병 환자에게 피부연고만 바르는 것 처럼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는 현지 농부들이 결코 그러한 사막화방지와 같은 노 력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팀버레이크의 지적은 환경과 생태문제에 대한 대응에 있어서 정확한 원인진단이 선행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중요한 예라 하겠다.
한국교회와 사회단체들의 사막화방지 사업의 선례는 이제 환경과 생태의 문제는 공동체적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또한 인류가 사는 지구 공동체를 지역이나 인종 또는 문화적으 로 분리해서 이해하던 기존의 선교관점을 탈피해서, 지구 공동체 전체가 서로 긴밀하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한다.
⑥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사례
평소 일본은 평소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4,235개의 지진계로 구성된 시스템으로 지진의 예후를 잡아낼 수 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최신 지진 시스템으로는 후쿠시마 원전을 비롯한 주요 국가 기반 시설의 파괴를 막지 못했고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ABC47 의 도쿄 특파원 (2008~2013년)이었 던 마크 윌라시 (Mark Willacy)48 는 2011년 일본의 쓰나미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취재하면서 혼
45 임희모, “몽골 ‘은총의 숲’ 생태선교: 북한 산림녹화 생태선교에 주는 함의”, 「선교와 신학」 27(2011): 47–77.
- “Desertificationis not about spreading desert It is a rash which breaks out in patches wherever the planet’s skin is mis treated.” Lloyd Timberlake, Africa Is Crisis: 표e Causes, the Cures of Environmental Bankruptcy. Edited by John Tinker London and Washington: Earthscan, 1985), 60.
- Australian Broadcasting Corporation
- MarkWillacy won the Walkley Award for his coverage of Japan’s 2011 tsunami and Fukushima meltdo Mark Willacy, ‘Japan Earthquake:
슈 섬의 북동쪽 해안선을 따라 산재한 “수백 년 된” 쓰나미 스톤을 “계명에 귀 기울이는 자에게 구원
을 약속하는 성경의 돌판”이라고 묘사했다.49 윌라시는 고립된 반도의 작은 마을인 아네요시가 일본 에서 18,0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진도 9의 후쿠시마 지진과 쓰나미에도 무사히 살아남은 것을 목 격했다. 주민들은 산악 마을 바로 아래에 세워진 석판에 새겨진 “이 지점 아래에는 집을 짓지 말라!” 는 조상들의 경고에 충실했기 때문이었다.
선교현장에서 선교사로서 선진 기술과 지식을 더 신봉할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 오랜 세 월을 살았던 사라들의 지혜가 더 빛을 발하는 경우가 많다. 아프리카인들은 습한 물가보다는 말라 리아 모기가 덜 서식하는 건조한 곳을 집터로 잡고 사는 지혜가 있었다. 매일 아침 님트리 조각으로 이를 닦았던 것도 그 나무에 천연 항말라리아 성분인 클로로퀸이 들어 있어서 예방효과가 있었던 것 을 조상들로부터 배웠던 것이다. 이를 무시한 서구선교사들이 말라리아로 많이 희생되었다. 선교 현 지에서 그들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생태적 지혜에 선교사가 경청하여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 기에 있는 것이다.
VII. 나가는 글: 창조세계 돌봄이 사명
우리 한국교회의 선교가 이제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선교의 최전방 영역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 는 분명하다.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생명의 주인으로 살아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에게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책무를 지니게 하셨다. ‘창조세계 돌봄이(Creation Care)’의 사 명이다. 지금 우리가 이 사명을 감당하지 않으면 선교지의 가장 취약한 형제자매들과 그들의 삶의 터 전인 자연환경이 제일 큰 고통을 당한다. 그들의 호소를 하나님은 흘려 듣지 않으신다. 우리가 이 사 명을 신실하게 잘 감당하고 있는지 하나님이 지켜 보신다.
앞으로 한국교회의 선교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교회의 주인되실 뿐 아니라 인간 사회를 포함하여 그가 창조하신 생명 모두의 참 주인되심을 고백하면서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이 온 세상이 지속가능 하도록 보전하시며 이를 위해 살아 역사하시는 분임을 고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교회 의 선교는 창조세계에 대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을 새롭게 조명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더 풍성하고도 균형 있는 이해와 실천을 하는 선교이어야 할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의 선교는 기존의 인간중심적인 선교관점에서 창조세계 전반으로 그 신학적 지평을 확장시켜야 한다.
Fukushima Nuclear Plant Remains the Gap in a Wall of Disaster Defences’, ABC News, 22nd November 2016. Accessed 29th May 2023, https:// www.abc.net.au/news/2016-11-22/fukushima-nuclear-plant-gap-in-japans-wall-of-disaster-defences/8045894.
- Willacy,‘Japan Earthquake’.
한국 교회의 선교가 생태선교적 관점으로 바르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교인들로 하여금 우리의 삶의 터전이 직면한 생태환경의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도록 생태의식을 교육해야 한다. 선교지에서 환경과 공해 또는 이상기후 문제로 발생하는 재난에 대비할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는 우리 스스로가 자기중심적 소비주의에서 창조세계 돌봄이의 책임을 다하도록 삶의 방향을 전환 해야 한다. 또한 생태적 지속 가능성을 촉진하는 동기부여를 통해 교인들의 적극적으로 생태보호에 참여하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제공해야 한다.
남겨진 과제, 이주민 선교 / 최헌주 선교사(위디국제선교회)
Ⅰ. 들어가는 말
혹시 지하철 승차권 발매기나 버스 요금함 앞에서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수상한 사람을 본 적 이 있나? 그 사람이 외국인이 아닌 한국 사람이라면 귀국한 선교사일 확률이 상당히 높다. 선교사에 게 고향은 어디일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선교지가 고향이 될 수는 없는 것 같다. 특히 중국이나 인도 같은 곳은 선교사 신분을 숨기고 살아가야 하는 땅이다. 그렇다고 한국을 방문 해도 더 이상 고향처럼 편하지만은 않다. 해가 갈수록 점점 많은 것들이 새로워지고 또 낯설어진다.
예전에 한 선배 선교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선교사는 가방 하나의 인생이다.” 물론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이 본향을 향해 걸어가는 나그네 인생이다. 하지만 특히 선
교사의 삶은 가방 하나 들고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하고 살아가는 유목민의 삶이자 길 위의 인생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그 떠남 중에는 자발적인 떠남도 있지만 비자발적인 떠남도 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선교사들이 가방 하나를 들고 선교지를 떠나야만 하는 상황이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하 고 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이번 NCOWE에서 다루고 있는 변화하는 세계선교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간략하게 변화하는 세계선교의 흐름을 살펴보겠다.
Ⅱ. 변화하는 선교 흐름
세계선교의 흐름은 지금까지의 서구 중심의 크리스텐덤(Christendom) 시대에서 세계 기독교 (World Christianity)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또한 외부인이 주도하는 선교에서 내부인이 주도하는 선교로 변화하고 있다. 선교사는 산모가 아닌 산파 역할을 하는 것이다. 랄프 윈터의 4P 전략에 따르 면 Parent(부모)가 아닌 Participant(참여자)가 되는 것이다.1 그리고 세계선교는 속지주의에서 속인
1 두란노 목회와 신학 「한인교회를 통한 현지 교회의 개척」
http://www.duranno.com/moksin/gms_detail.asp?cts_id=65865 백성철, 2007.12
주의 선교로 변화하고 있다. 이제까지 국가나 지역 테두리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선교가 지구촌 어디
든 선교 대상국 사람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또한 정착에서 이주로 변화하고 있다. 이제는 그야말 로 모든 사람이 모든 곳으로 이동하는 시대가 되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흐름은 전통적인 목회자 중심의 선교에서 평신도 전문인 중심의 선교로 변 화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목회자의 신분으로 들어가서 사역할 수 있는 선교의 문이 점점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지역이나 종족 대상의 선교를 넘어 총체적 영역에서 선교해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흐름을 가속화 하는 것이 세계 곳곳에서 점점 높아져만 가는 민족주의와 종 교극단주의 장벽이다. 그에 따라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선교사의 비자발적 철수가 일 어나고 있다. 이처럼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세계선교는 바야흐로 다중심적 선교로 나아가고 있다. 한 마디로 모든 곳에서 모든 곳으로 선교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Ⅲ. 비자발적 철수 선교사
한국선교연구원(KRIM)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임시 귀국한 장기 선교사는 1,230명인데 그 중에서 치안, 전염병, 비자 거절, 추방 등으로 비자발적 철수한 장기 선교사는 36.9%인 453명이다.2 비자발적으로 중도 귀국한 선교사가 겪는 심리적, 실제적 어려움은 생각보다 크다. 먼저 철수 과정에 서 겪은 충격이나 거절감으로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고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다는 실패감에 사로잡 힐 수 있다. 그러면서 정신적 혹은 영적 번아웃을 경험하기도 한다. 아울러 선교지를 떠난 선교사로 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한다. 또 선교지에서 오래 사역한 분들일수록 건강에 적신호가 오는 경 우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안식년을 가지거나 마음 편히 쉬기도 어렵다. 현실적인 문제들이 눈앞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우선 선교지보다 물가가 비싼 한국에서 재정적 어려움을 겪게 된다. 거기다가 선교사가 선 교지를 떠났다는 이유로 후원이 감소하고 심지어 후원이 끊어지기도 한다. 빨리 다른 선교지를 찾아 서 나가라는 파송교회의 직간접적인 독촉에 눈치가 보이고 조급한 마음이 생긴다. 이 모든 현실적 어 려움은 결국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진다.
자 그렇다면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 중도 탈락의 길을 걷게 된다. 아니면 파송교회의 눈치나 압박에 못 이겨 성급하게 선교지를 이동했다가 나중에 후회하
2 한국선교연구원(KRIM) 「2022 선교현황 최종보고서」
https://krim.org/2022-korean-mission-statistics/ 2023.02.22
기도 한다. 어떤 선교사는 선교지에 뼈를 묻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혹은 떠나온 선교지를 너무 사
랑하고 그리워하면서 무작정 현장 복귀를 기다리기도 한다. 그런데 한번 블랙 리스트에 올라서 추방 되거나 입국을 거부당한 경우는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재입국하기가 쉽지 않다.
또 어떤 선교사들은 재정적 어려움과 생계 곤란으로 어쩔 수 없이 택배나 대리운전 같은 일을 하 면서 이중직 생계형 선교사로 살아가기도 한다. 또 다른 선교사들은 비거주 선교의 길을 선택한다. 관광 비자 등으로 단기 입국이 가능한 경우 한국에 거주하면서 일 년에 한두 번 방문을 통해서 선교 사역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귀국선교사 중 일부는 국내 선교본부 사역으로 전환하거나 아니면 선교사를 사임하고 국내 목회 사역을 하기도 한다.
Ⅳ. 남겨진 과제 “이주민 선교”
- 선교사의 뼈를 원하지 않는 선교지
필자는 2006년에 선교지에 뼈를 묻으리라고 결심하고 인도로 갔다. 인도는 선교사의 입국을 허 락하지 않는 나라이지만 10년 전까지만 해도 비자 발급에 별 어려움 없이 사역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14년 모디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분위기가 급변했다. 힌두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새로운 정부에 서 선교사 비자 발급과 입국 거부의 물결이 시작된 것이다. 결국 필자도 16년간의 인도 사역 후 비자 연장 거절로 귀국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선교지가 더 이상 선교사의 뼈를 원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필자의 경우 몇 년 동안 비자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떠날 시간이 가까웠음을 어느 정도 예상했었 고 강제 추방이나 입국 거부가 아닌 비자 연장 거절이었기 때문에 귀국 후 심리적인 공황에 빠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파송교회가 독촉하지 않았음에도 선교사는 선교지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왠지 모 를 조급함이 있었다. 그래서 마음에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인근 국가로 선교지를 이동하려고 나름대 로 언어도 배우면서 준비하기 시작했다. 속히 코로나 상황이 호전되어서 선교지 입국이 자유로워질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생각지도 못했던 국내 이주민 선교에 대한 마음을 부어주셨다. 단기 선교와 선교 훈련을 포함하면 20년을 넘게 가방 하나의 나그네 삶을 살아왔음을 깨달으면서 나그네 를 향한 마음을 품게 되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작년부터 인도 비거주 선 교와 함께 국내 이주민 선교를 동역하면서 배워가고 있다.
1974년 레슬리 뉴비긴이 40년 가까운 인도 선교를 마치고 고국인 영국에 돌아왔을 때 영국이 선
교지와 다를 바 없는 다문화 이교도 사회이자 선교지가 되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2020 년대 한국도 1970년대 영국 못지않은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땅끝 미전도 종족이 우리의 곁에 서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는 시대가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이제 한국도 선교 최전방이 되었다.
- 디아스포라 속인주의 선교
그렇다면 우리는 변화하는 세계선교 흐름에 맞는 새로운 선교를 고민해야만 한다. 요즘 어딜 가 나 모든 곳에서 모든 곳으로 가는 선교, 속지주의가 아닌 속인주의 선교를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우 리는 속인주의 선교를 어떻게 실제로 감당할 수 있을까? 국가나 지역 중심이 아닌 민족과 사람 중심 의 속인주의 선교를 감당할 수 있는 최적의 장이 바로 이주민 선교다.
인도 선교를 예로 들어보자. 전 세계에 1,800만 디아스포라가 흩어져 있는 인도는 국경선 안에 서 이루어지는 속지주의 선교뿐 아니라 한국과 전 세계 인도인 디아스포라를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속인주의 사역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인도에서는 한국 선교사가 중상류층에 접근하기가 매우 어 렵다. 인도 현지 교회는 한국 선교사들이 그들이 할 수 없는 중상류층 사역을 감당해주길 원한다. 하 지만 기독교는 하층민의 종교라는 인식, 선교사 신분을 숨겨야 하는 상황, 힌두 문화권 깊숙이 들어 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 등 여러 가지 제약으로 인해 선교사가 중상류층에게 다가가서 복음 을 전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한국에 온 인도인들은 대부분 중상류층으로 박사과정 유학생들과 아 이티 기업에서 근무하는 전문인들이다. 그들에게 다가가서 복음을 전하고 제자화해서 역파송한다면 그토록 힘든 중상류층 복음화의 길이 열릴 수 있지 않을까?
현재 인도에서 귀국한 선교사 중에 유학생 사역을 하시는 분이 있다. 유학생의 경우 학업을 마친 후 본국이 아닌 제3국, 특히 미국이나 유럽으로 가서 공부를 계속하거나 직업을 가지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인도인 유학생 디아스포라를 제자훈련해서 미국이나 영국으로 파송한다면 어떨 까? 현재 영국 총리는 인도인이다. 그로 인해 영국에서 힌두교 영향력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구글 이나 트위터 같은 세계적 아이티 기업 CEO 중에도 인도인 디아스포라가 많다. 세계 여러 곳에서 영 향력을 끼치고 있는 인도인 대부분은 인도 본토 거주자가 아닌 디아스포라들이다. 인도 선교사들이 인도 본토 사역을 넘어 이처럼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인도인 디아스포라를 대상으로 선교한다면 인 도 상류층 전도와 인도의 변화에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필자가 속한 교단의 경우 최근 서남아 지역 선교부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도, 네팔, 스
리랑카, 방글라데시 등 서남아 지역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며 동역하고
네트워킹하는 것이다. 서남아 지역 국가들의 경우 언어나 문화적 유사성이 많아서 동역과 네트워킹 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더 나아가서 국내에 있는 서남아 이주민 사역과도 네트워크 사역 이 가능하다. 스리랑카 시니어 선교사님 한 분은 한국 귀국 중 스리랑카 이주민 사역지를 방문해서 말씀을 전할 기회가 있었는데 자신들의 언어로 말씀을 들은 이주민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모습을 보 고 네트워크 사역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번 NCOWE 디아스포라 트랙 발제자 중 한 분도 중앙아시아 유학생 사역을 하면서 중앙아시아 해외선교사와 국내 이주민 선교사와의 네트워크를 통 해서 효과적인 영적 지도자 양성을 하고 있다.
- 한국교회의 선교 패러다임 전환
이제는 구호를 넘어 실제로 세계 기독교적인 시각에서 선교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의 목적은 온 세상이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온 세상을 복음화하려면 세상 모든 곳에서 모든 곳 으로 나아가야 한다. 선교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넓힐 필요가 있다. 해안선 선교, 내지 선교, 미전도 종족 선교를 넘어 이제는 모든 곳에서 모든 곳으로 나아가는 선교가 필요하다. 한 국가 내에서만 하 는 것이 선교가 아니다. 존 웨슬리의 말처럼 세계는 우리의 교구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한국 파송교 회와 성도들, 아니 선교사 자신부터가 그것을 수용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선교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서는 한국교회의 이해와 동역이 절실하다. 필자가 국내 이주민 선교 로 전환하면서 가장 감사했던 부분이 파송교회의 이해와 지지였다. 필자는 앞으로 파송교회 성도들 을 선교의 동역자로 세워서 함께 국내 이주민 선교를 감당하길 소망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현재는 파송교회 성도들을 대상으로 설교나 선교적 성경 읽기 등을 통해 하나님의 선교에 대해 나누고 성도 들을 선교적 그리스도인으로 세우기 위해 애쓰고 있다.
아직도 한국교회 성도들 대부분은 비행기를 타고 해외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만이 선교라 는 인식을 지니고 있다. 그에 따라 교회에게 맡겨진 선교 사명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후원하고 기도 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주민 선교는 이러한 전통적인 선교관을 벗어나서 교회가 직 접 선교의 주체가 되어서 선교하는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가능케 한다.
로잔 운동 슬로건처럼 하나님의 선교는 온 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온 세계에 전함으로 성취된다.3
3 Lausanne Movement 「Whole Gospel, Whole Church, Whole World https://lausanne.org/content/whole-gospel-whole-church-whole-world Christoper J.H. Wright 2023.05.24
전국에 흩어진 250만 이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주민 선교단체나 선교사들만으로는 불
가능하다. 온 이주민을 복음화하려면 결국 온 교회, 즉 모든 그리스도인이 주변의 땅끝 이웃들에게 다가가야만 한다. 그뿐 아니라 이 땅의 이주민들에게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선포를 넘어 삶으로 전해지는 온전한 총체적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적임자는 선교사가 아니라 날마다 학교와 일터에서 이 주민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평범한 그리스도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주민 선교는 온 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 새 로운 선교의 블루오션이다. 이주민 선교는 온 교회 즉 모든 그리스도인이 온전한 복음 즉 삶으로 전 해지는 총체적인 복음을 온 세상 즉 우리 곁에 찾아온 땅끝 이웃에게 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주 민 선교는 한국교회 성도가 선교적 그리스도인으로 세워지고 한국교회가 선교적 교회로 세워지는 중요한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주민 선교야말로 세계기독교 시대에 새롭게 발견해야 할 선교 영역이며 남겨진 과제다.
한국교회가 이 남겨진 과제를 완수하려면 무엇보다 선교 패러다임 전환과 인식 변화가 절실하 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부분이 교회와 성도들을 대상으로 한 이주민 선교 교육과 훈련이다. 필자는 지금 이주민선교학교의 코디네이터로 섬기고 있다. 현재 국내 이주민을 섬기고 있거나 앞으로 섬기길 소망하는 평신도, 목회자, 선교사들이 함께 훈련받고 있다. 또한 울산 지역에도 예수전도단 팀을 중 심으로 이주민 선교 훈련이 진행되고 있다. 지역별, 교회별로 이주민 선교 훈련이 더 많이 생겨나서 이주민 선교에 대한 한국교회의 인식이 변화할 수 있길 간절히 소망한다.
Ⅴ. 나가는 말
필자에게는 선교 한국의 추억이 있다. 필자는 1994년 선교 한국 대회를 통해 선교사로 헌신했 다. 그때는 5천 명의 청년이 참석해서 그중 천 명이 선교에 헌신했다. 선교 필드에서 그때 함께 헌신했 던 선교 한국 출신 선교사들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런데 그 당시 뜨거웠던 선교의 열 정이 지금은 많이 식은 것이 사실이다. 지금의 청년들은 더 이상 그때처럼 선교에 헌신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한국교회 선교가 쇠퇴기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렇다면 과연 이주민 선교가 하 나의 해답이 될 수 있을까?
최근에 끝난 이주민선교학교 마지막 시간에 훈련생들이 각자 이주민 선교를 연구 발표하는 시 간을 가졌다. 훈련생 중 한 대학생 형제는 다문화 2세 아이들의 학습을 도와주는 이주민 선교 계획 을 발표했다. 장소는 출석 교회 공간을 이용하고 교재에 들어가는 비용은 아르바이트로 충당하겠다
고 한다. 학습 지원을 통해 이주민 2세 아이들과 관계를 형성한 다음 그 아이들이 참된 정체성을 찾
아가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비전을 품고 있었다. 그 발표를 들으면서 청년 선교 동원이 점점 더 힘들 어지는 이때 어쩌면 이주민 선교가 청년 선교 동원의 돌파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디아스포라 선교만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정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길 원한다. 우리의 선교 대상인 세상이 바뀌고 있다면 우리의 선교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국내 다문화 사역자도 해외선교사와 같은 타문화 선교사로 인정하고 파송하고 후원하 고 있는가? 한국교회는 국내 250만 이주민을 선교하는 사명이 선교사만이 아니라 한국교회 모든 성 도에게 주어졌음을 인식하고 있는가? 한국교회 선교는 과연 세계 기독교적 관점을 가지고 모든 사람 이 모든 곳을 향해, 모든 곳에서 모든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전후방 구분 없이 모든 곳에서 모 든 곳으로 선교적 네트워킹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선교의 하나님이 온 세상보다 크신 분이라면 하나 님의 백성인 우리의 선교는 얼마나 큰가? 지금은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교회와 선교단체와 선교사가 함께 그 해답을 찾아가며 새롭게 도전하고 돌파해야 할 때라고 믿는다.
<저자 소개>
이름: 최헌주, Choe Hunju 소속 단체: GMS/위디선교회 경력: 2006년부터 인도 선교사,
2022년부터 인도 비거주 선교/국내 이주민 선교
<키워드>
비자발적 철수, 디아스포라 선교, 속인주의, 네트워킹, 패러다임 전환
풀뿌리 선교 / 손창남 선교사(OMF)
들어가면서
오랫동안 선교는 선교사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져 왔다. 이것은 선교사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많 은 교회들의 오해에 기인한다고 생각된다. 선교동원가로 교회를 방문하면서 늘 듣는 이야기는 요즘 선교가 잘 되느냐, 요즘 선교사 파송이 잘 되느냐이다. 선교가 잘 된다는 것을 선교사들이 얼마나 많 이 파송되느냐로 판단하는 교회의 이런 모습은 선교는 선교사가 한다는 전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선교는 선교사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생각은 선교에 대한 성경적 이해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사도 바울은 선교사였고, 따라서 선교는 사도 바울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하는 선입견을 갖 는 사람들에게 성경은 제한적으로 읽혀지게 되어 있다. 사도 바울이 훌륭한 선교사였으며 그로 인해 이방인들이 주님께 돌아온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사도 바울이 한 선교가
큰 선교의 그림 중에 나오는 한 부분임을 알려준다.
지난 200년 동안 선구 교회에 의해서 진행된 선교는 많은 지역에서 선교사들에 의해 진행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당시 선교사들은 열악한 선교지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했다. 하지만 그 시 절의 선교사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지배하고 있는 지역으로 갔기 때문에 비자를 받는 것과 같은 선 교지 진입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오늘날 선교사의 사역은 지구상 상당히 많은 지역에서 선교사 비자를 받지 못해 선교지에 진입하는 데에 상당한 제한을 받 고 있다.
이 글을 통해서 필자는 풀뿌리 선교라는 다소 생소한 용어를 소개하려고 한다. 풀뿌리 선교란 선교사라는 정체성을 갖지 않고, 자기가 있는 곳에서 선교를 담당하는 타문화 복음 전파를 말한다. 풀뿌리 선교라는 단어는 생경하게 들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풀뿌리 선교가 최근에 갑자기 튀어 나온 것은 아니다. 이미 사도행전에도 등장하고, 초대교회와 근대, 심지어는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이 글 에서는 풀뿌리 선교의 의미와 성경적 근거, 그리고 풀뿌리 선교의 역사적인 예들을 설명하고 선교사 들의 진입이 제한을 받는 오늘날 선교적 환경에서 풀뿌리 선교가 어떻게 대안이 될 수 있는가를 설 명하려고 한다.
- 1. 풀뿌리 선교의 정의
풀뿌리 선교란 선교사라는 타이틀과 상관없이 자기의 상황 속에서 자발적으로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을 실천하는 모든 선교적 행동을 말한다. 풀뿌리 선교의 전제는 다음과 같다.
(1) 선교사가 아니라는 정체성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선교는 선교사들이 한다고 생각하다. 풀뿌리 선교에는 선 교사들에 의해서 진행되는 선교는 포함하지 않는다. 풀뿌리 선교란 선교사라는 타이틀을 지니지 않 은 성도들에 의해서 진행되는 선교만을 말하는 것이다.
(2) 자기의 상황 속에서
풀뿌리 선교에서 가장 중요한 전제는 자기가 있는 상황 속에서 선교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즉 풀뿌리 선교란 자기가 속해 있는 사회 안에 있는 다른 문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같은 직장, 같은 캠퍼스, 자기가 거주하는 동네에서 수시로 만나는 사람들게 관심 을 갖고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을 풀뿌리 선교라고 한다. 따라서 자신이 속한 상황을 넘어서 진행 되는 단기 선교 여행 등은 풀뿌리 선교가 아니다.
(3) 자발적으로
풀뿌리 선교는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말의 의미는 선교단체에 속한다든지 어느 그룹에서 하는 선교사역의 일부로 진행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즉 풀뿌리 선교는 누군가에 의해서 강제되지 않 은 자발적 동기에 의해서 진행된다는 뜻이다.
(4) 삶의 목표: 지상명령의 성취
풀뿌리 선교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목표를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성취하는 것으 로 정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무엇이든 희생하려는 헌신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러한 헌신 안에는 복음을 전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은 물론이고, 그들의 언어와 문 화와 종교를 배우고 연구하려는 열정을 포함한다.
- 2. 풀뿌리 선교의 유사한 개념들
풀뿌리 선교와 유사하지만 다른 개념들은 다음과 같다.
| 1 타입 | 2 타입 | 3 타입 | 4 타입 | 5 타입 | |
| 타이틀 | 선교사 | 직업을 가진 선교사 | 선교사가 된 직업인 | 해외에 있는 직업인 | 국내에 있는 직업인 |
| 소속 단체 | 유 | 유 | 유 | 무 | 무 |
| 사역적, 재정적 책무 | 유 | 유 | 유 | 무 | 무 |
| 언어와 문화 이해 | 높다 | 높다 | 높다 | 낮다 | 전무 |
| 후원 | 필요 | 필요 | 대부분 필요 | 필요 없음 | 필요 없음 |
| 선교지 비자 | 선교사 비자 | 직업 비자 | 직업 비자 | 직업 비자 | 없음 |
| 사역의 기대 | 높다 | 높다 | 상대적 | 낮다 | 낮다 |
| 선교지의 선택 | 의도적 | 의도적 | 중간 | 비의도적 | 없음 |
- 직업선교 (missions with vocations)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직업을 가지고 선교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직업 선교사라는 의미는 다양하다. 필자는 직업 선교를 다섯 가지 타입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다음의 표를 통해 다섯 가지 타 입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타입은 전통적인 선교사를 의미한다. 이들은 선교사라는 정체성만을 가지고 있었다. 1타입의 선교사들은 대부분 직업이 없었으며, 설령 직업이 있었다 해도 선교사라고 하는 정체성만을 유지한 다. 2타입은 대부분 선교지에서 선교사 비자를 가질 수 없어서 직업을 갖게 되는 경우다. 이들은 본 국에서는 선교사라고 하지만 선교지에서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는 두 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2타입의 경우 대부분 직업적 전문성이 낮거나 그 직업을 실천하지 않는다. 2타입의 선교사들은 직업 적 전문성은 낮지만 사역적인 전문성은 높은 편이다. 3타입은 선교지에 갈 때 실제 직업을 가지고 가 는 선교사들을 말한다. 이들은 직업적 전문성이 높고, 현지에서 그 직업을 실천한다. 4타입은 선교사 가 아니며 현지에 일반인처럼 해외에서 취업을 한 경우를 말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실 천하는 그리스도인을 말한다. 5타입은 국내에 있으면서 해외에서 온 이주민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말한다. 풀뿌리 선교는 위에서 설명하는 다섯 가지 타입 가운데 4타입과 5타 입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 전문인선교 (missions by professionals)
직업을 가지고 선교지에 가는 선교사들 가운데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나 직업적 전문성 이 매우 높은 선교사들을 전문인 선교사라고 부르며, 이들이 하는 선교사역을 전문인 선교사역이라 고 한다. 전문직이라고 할 때는 의사나, 교수처럼 특정 직업에 종사하기 위해서 소정의 학업이나 훈련 을 필요로 하는 경우를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특정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만을 전문인 선교사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 직업의 경우에도 그 분야를 사람들을 가르치거나 훈련하는 사람들은 전문인 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선교지에서 한국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을 전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한국 요리 강사는 전문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전문인 선교사들은 개방된 일반 선교지보다 창의적 접
근지역에 봉사 형태로 가게 된다.
- 평신도선교 (missions by lay people)
평신도라는 용어는 사제나 목사와 같은 성직자 (clergy)에 대응되는 용어다. 이런 용어는 가톨릭 교회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만인제사장을 기반으로 하는 개신교에는 어울리는 용어가 아니다. 대부 분 신학을 하지 않고, 목사로 안수 받지 않은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풀뿌리 선교는 대부분 평신도 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평신도들이 하는 선교사역을 모두 풀뿌리 선교라고 할 수는 없다. 만약 평신도들이 자신의 상황에서 벗어나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선교를 하거나 교회나 어떤 단체의 지원 등을 배경으로 선교한다면 그것은 풀뿌리 선교라고 할 수 없다.
- 텐트메이커 (tent–making missions)
텐트메이커란 사도행전 18장에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머물 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와 함께 천막을 만들었다는 것에 착안하여 1960년대부터 등장한 용어다. 따라서 텐트메이커란 직업을 가지고 선교하는 모든 선교를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설명한 직업선교의 2타입에서 5타입까 지를 모두 일컫는다. 미국에서 시작된 이 용어가 한국 교회에서 소개될 때 자비량 선교로 소개되었 는데, 자비량 선교는 직업을 통해서 소득이 발생되고 따라서 교회나 후원자들로부터 후원이 필요 없 는 선교를 말한다. 텐트메이커 가운데는 2타입처럼 직업은 있지만 그 직업으로부터 소득이 없거나 있어도 여전히 후원이 필요한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는 자비량 선교라고 할 수 없다. 텐트메이커들 가운데 풀뿌리 선교를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 풀뿌리 선교의 성경적 근거
사도행전을 살펴보면 선교는 사도행전 13장에서 안디옥 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이방인들에게 파송하기 이전부터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1 사도행전 8장과 11장에는 스데반의 순교로 시작 된 핍박을 피해서 사마리아로 간 사람들과 안디옥으로 간 흩어진 사람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이들은 선교라는 차원에서 다시 조명될 필요가 있다.
(1) 흩어진 사람들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 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 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1 사도행전을 선교적으로 읽으면 두 모델이 보인다. 손창남, 죠이출판부, 2015, pp 105-149
돌아오더라 (행11:19-21)
특별히 사도행전 11장 20절에서 안디옥에 갔던 흩어진 사람들은 처음에는 유대인들에게만 복 음을 전하다고 헬라인들에게도 주 예수를 전파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선교를 타문화 사람들에게 복 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 이 흩어진 사람들은 선교를 감당했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11장 20
절에서 흩어진 사람들이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사용한 ‘주(kyrios)’라는 용어는 당시 헬라의 신들에게 사용되었던 경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복음을 전파하는 대상에 따라서 그들의 문화에 적절
한 사역을 했다고 할 수 있다.2
(2) 바나바의 안디옥 파송
그 후 안디옥에서 헬라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 교회가 바나바를 안 디옥으로 파송하게 된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그가 이르러 하나님 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 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바나바가 사울 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 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행11:22-26)
흥미로운 것은 예루살렘 교회가 무명의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파송했다는 사실이다. 바나바는 사도행전 4장 36절의 기록대로라면 구브로에서 태어난 유대인 디아스포라다. 그가 예루살렘으로부
터 파송을 받아 안디옥에 갔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다고 고백한 것은 하나도 놀라운 일이 아니 다. 그는 헬라인들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선교사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더욱이 바나바는 안디옥 에서 새로운 사역의 기회들이 생겼을 때 자신을 파송한 예루살렘 교회에 추가로 사역자를 보내달라
고 한 것이 아니라 다소 출신의 디아스포라인 사울을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헬라인 성도들을 위한 사역을 함께 하게 된다.
(3) 바나바와 바울의 사역팀
그리고 안디옥 교회는 얼마 지난 후 바나바와 바울을 다른 지역에 복음을 전하도록 재파송 하기 로 한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
2 기독교의 미래, 이문장, Andrew Walls 외, 청림출판, 2006, p112
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
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행13:1-3)
여기서 필자가 재파송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바나바의 경우는 사도행전 11장 22절에 기록 된 것처럼 이미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 교회에서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나바를 보냈다’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록이야말로 예루살렘 교회가 공식적으로 바나바를 파송했음을 의미한다. 사울의 경우도 사도행전 11장 27절부터 30절을 보면 바나바와 함께
예루살렘에 가서 사도들과 새로운 차원에서 교류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사울을 새롭게 파송한 것이므로 필자를 재파송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싶다.
바나바와 바울이 안디옥을 중심으로 해서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동안 흩어진 사람들은 사 라져버린 것이 아니다. 그들은 사도행전 8장 4절에 기록된 것처럼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을 것이 다. 이러한 흔적은 사도행전 11장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런 풀뿌리 선교사역을 담당했던 흩어진 사 람들의 모습은 계속해서 18장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 20장에 가이사랴에서 계속 전도자로 서의 삶을 살고 있던 빌립 집사, 21장의 오래된 제자 나손, 그리고 바울이 로마에 도착했을 형제들이 바울을 영접했다.
실제로 흩어진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풀뿌리 사역은 사도 바울의 사역지보다 더 넓은 곳에 서 이루어졌다. 엄밀하게 말해서 사도 바울은 시리아, 길리기아, 갈라디아, 아시아, 그리고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의 한정된 지역에서만 사역했다.

어떤 이들은 사도 바울의 사역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스페인까지 이른다고 말하지만 그런 근거는 성경에 나와 있지 않다. 심지어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28장에서 피고인의 자격으로 로마 군인들의 호 송 하에 로마에 도착하게 되는데, 사도 바울이 로마에 도착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로마에 있는 성
도들이 그를 영접하러 나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로마에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이미 로마에 복음을 전한 사람들이 있다는 증거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가기 전에 쓴 로마서에 도 로마 교회 성도들이 이름이 많이 열거 되고 있음은 사도 바울의 로마 방문 이전에 이미 로마에 교 회가 존재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필자는 흩어진 사람들에 의해 로마에도 복음이 전해졌을 것이라 확 신한다.
- 두 모델의 비교
위에서 언급한 흩어진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선교 모델을 필자는 풀뿌리 선교 모델이라고 하고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사도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선교 모델을 바-바 (바울과 바나바의 이름 따 서 필자가 붙여 본 것임) 선교 모델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렇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은 표로 설명이 가 능할 것이다.
| 풀뿌리 선교 | 바-바 팀 선교 | |
| 선교의 주체 | 모든 성도 (사도 이외) | 사도 |
| 선교지역 | 모든 지역 | 제한된 지역의 전략적 선택 |
| 조직 | 자유로움 | 팀 형태 |
| 재정 후원 | 후원이 필요 없음 | 후원이 필요함 |
| 파송교회 | 없음 | 안디옥 교회 |
| 선교전략 | 자유로움 | 팀에서 세움 |
| 현지의 수용성 | 비교적 반발이 적음 | 반발이 많음 |
(1) 선교의 주체
우선 선교의 주체를 보면 풀뿌리 선교는 특정한 사람들만이 한 것이 아니라 당시 그리스도를 따 르는 많은 사람이 선교를 감당한 것으로 보인다. 스데반의 죽음으로 인한 핍박이 왔을 때 예루살렘 에서 사도 외에는 모두 흩어져갔는데 그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고 말한다. 한편 바-바 모델은 교회에서 인정받은 사도들에 의해서 행해졌다.
(2) 사역한 지역
풀뿌리 선교를 담당한 성도들은 로마 전역으로 흩어져 사역했다. 사도행전 8장 4절은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했다”고 전하고 있다. 이들이 사역한 지역은 한정되어 있지 않 다.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서 유대와 사마리아와, 모든 지역으로 흩어져 갔다. 하지만 바울과 바 나바가 사역한 지역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아시아와 아가야, 마게도냐 지역에 한정되어 있다.
(3) 사역 팀 조직
풀뿌리 선교를 담당한 성도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사역팀이 없었다. 하지만 바울과 바나바와 같 은 사도는 언제나 팀으로 사역했다. 바울은 처음에 바나바와 사역했지만 사도행전 15장에서 바나바 와 헤어진 후로는 실라와 디모데, 후에는 더 많은 사람들과 팀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풀뿌리 선교사 들은 상황에 따라서는 팀으로 그렇지 않은 경우는 독립적으로 사역했다.
(4) 재정후원
풀뿌리 선교를 한 사람들은 자신의 재정을 자신들의 직업을 통해 충당했다. 따라서 풀뿌리 선 교는 글자 그대로 자비량 선교의 전형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바-바 모델의 경우는 교회나 개인의 후 원에 의존한 경우가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사도 바울에 대한 오해 가운데 하나는 사도 바울이 텐트 메이커였다는 점이다. 필자는 사도 바울이 텐트를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가끔 씩 기술을 이용해서 사역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해 가며 선교를 감당했다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텐 트 만드는 일을 사도 바울이 전업으로 했다고 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유대인들의 전통 속에는 고관대작의 자녀라도 반드시 세속적 직업을 하나는 가지고 살 수 있도 록 했다. 아마도 오랫동안 타민족의 지배를 받으며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매우 현명한 가르침 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사도 바울도 그렇게 했을 것은 이해가 가는 장면이다. 그리고 자신의 직업이 필요한 때 얼마든지 그것으로 전도에 활용하거나 혹은 재정을 충당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 만 사도 바울이 텐트 만드는 일을 전업으로 했다고 하는 증거는 없다.
어떤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후원을 받지 않고 직업을 가지고 자비량으로 선교를 했다고 하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성경을 보면 오히려 사도 바울은 교회들로부터 재정을 후원받 았다고 하는 증거가 더 많다. 우리가 잘 아는 고린도 전서 9장, 고린도 후서 12장, 그리고 빌립보서 4 장에서 사도 바울은 노골적으로 재정 이야기를 한다. 성경에 나오는 이런 표현들이 사도 바울이 텐 트만 계속 만드는 자비량 선교사였고 교회들이나 성도들로부터의 후원이 필요 없었다고 말하는 것 에 대한 중요한 반증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그는 사도로서 후원을 받으며 전적으로 사역에 전념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도행전 8장부터 나오는 흩어진 사람들은 재정과 관련해서 다르다. 이들은 누구에게도 이런 재정적 요청을 하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다. 그들은 아마도 가는 곳마다 계속 텐트를 만들었을 것이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에게는 텐트를 만드는 것이 오히려 선교사역을 하는데 더 효과적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단순한 재정적 필요를 충족하는 것만이 아 니라 사람들과의 접촉에서도 효과적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5) 현지의 수용성
풀뿌리 선교를 담당한 성도들은 선교지에서 로우키 (low-key)로 지냈다. 그들은 현지인들을 동
네 이웃으로, 시장에서 자신들처럼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으로 만났다. 그렇다고 해서 풀뿌리 선교를 담당했던 사람들의 사역적 수준이 낮았다고 할 수 없다. 풀뿌리 선교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브리 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경우 에베소에 머무는 동안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사역자 아볼로를 데려다 가 성경을 가르치고 그를 고린도 교회의 사역자로 파송하는 일을 감당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반면 바-바 선교팀은 자신들의 신앙을 전파하는 사람들로 이해했다. 그들은 교회에서 교사, 선지 자, 사도라는 직책으로 불렸다. 풀뿌리 선교를 하던 성도들과는 대조적으로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팔 며 일반 사람들과 만나기보다는 종교지도자들과 논쟁을 하기도 했다. 따라서 때때로 적대적인 군중들 과 마주해야만 했다. 사도 바울 팀은 그들이 전한 복음 때문에 여러 번 소요사태를 마주해야만 했다.
- 역사적 풀뿌리 선교 모델
(1) 초대교회의 선교
선교의 역사를 보아도 선교가 진행되는 모든 형태를 풀뿌리 유형과 바-바 유형으로 나누어서 볼 수 있다. 일찍이 F. F. Bruce는 2세기 말 초대 영국 선교 사역에서 평신도의 활동에 대해서 이렇게 말 하고 있다. “영국에 기독교가 전파된 것은 평범한 사람들 곧 고올 (Gaul) 지방에서 온 상인들이었다.” 이들은 날마다 사업장을 통해서 선교의 역사를 이룰 수 있었다.3 이들이야말로 이 글에서 말하는 풀뿌리 모델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2) 모라비안 교도들의 선교
풀뿌리의 유형은 모라비안 교도들이나 바젤 선교회 등의 모습에 잘 나타나 있다. 모라비안 교도 들은 선교사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형태로 파송한다면 세계 선교를 이룰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 하여 의도적으로 직업을 가지고 생계 문제를 해결해 가면서 선교 사역을 감당하는 모델을 개발하고 이를 실천해 나갔다.4
1732년에서 1760년 사이에 무려 226명의 모라비안 선교사들이 10여 개 국으로 파송되었다. 모 라비안 선교사들은 세인트 크로이 섬, 수리남, 남아프리카, 북미, 자메이카, 엔티가 섬 등으로 나갔다. 그들은 에스키모인들과의 교역을 하여 남은 이익으로 선교 사역을 하기도 했다. 모라비안 교도들은 후에 바젤 선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는데, 이들은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리는 회사의 운영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여주면서 선교를 한 풀뿌리 선교 운동의 대표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3 F. F. Bruce, Epistle to the Hebrews: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Publishing Companya,
1964), p. 354, 재인용 from 전문인 선교론 이수환 저. 한국학술정보, 2009
4 퍼스펙티브스, 4판, 랄프 윈터, 한철호 외. 예수전도단, 2010, p 709
(3) 근대의 풀뿌리 선교
선교의 황금 세기라고 불리는 19세기에도 선교사들만이 선교지에서 그리스도를 증거 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19세기 중반에 인도네시아에서 안팅 (Anthing)이라는 사람은 당시 인도네시아를 지배하고 있던 네덜란드 총독부의 관리로 왔지만 서구식 기독교가 아니라 인도네시아 문화에 뿌리 박은 기독교를 심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다 탕진하여, 자바와 순다의 토착적 교회를 위해 노력했다.
1871년에 일본 구마모토에 간 제인스 대위 (Captain Janes)는 선교사로 간 것이 아니라 그 지방 의 다이묘의 군인들에게 신식 군사기술을 가르치러 갔다. 하지만 제인스 대위는 영어와 성경이 서구 의 근본임을 강조하면서 군사기술과 함께 성경을 가르쳤다. 1876년 1월 35명의 사무라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충성하겠다는 맹세를 하게 된다. 이 때 그리스도에게만 충성하기로 한 그리스도인 사 무라이들을 구마모토 밴드 (Kumamoto Band)라 부른다. 이들은 이 후 신문기자, 문인, 교수, 목사 등으로 활약하며 일본 기독교계는 물론이요 일본 근대화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다.5
1876년 홋카이도에 홋카이도 농업 대학이 생기고 미국의 농업학자인 클라크 박사 (Dr. Clark) 가 교수로 가게 된다. 그는 1회 입학생 15명에게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데, 이 때 그리스도 를 믿기로 한 사람들을 일본에서는 홋카이도 밴드 (Hokkaido Band)라고 부른다. 이들 역시 이 후 일본 교계에 중요한 기여를 하게 된다.6
- 대안으로의 풀뿌리 선교
(1) 창의적 접근 지역의 확대
우선 상당히 많은 선교지에 선교사들이 더 이상 쉽게 입국할 수 없게 되었다. 몇 십 년 전에도 선 교지가 선교사를 환영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당시에는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들이 영국, 프 랑스, 독일 같이 다른 나라를 지배하던 세계열강이었기에 선교지 진입이 어렵지는 않았다. 그 당시에 피선교지 정부가 선교사의 자국 체류를 싫어해도 선교사를 쫓아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많은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 선교사를 파송한 나라의 정부가 무서워서 선교사를 쫓아내지 못하거나 선교사에게 비자를 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이 이슬람 국가들이나 여전히 공산 정부가 있는 나라에서는 선교사라고 하는 신분으로 입국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렇게 선교사 비자를 받고 들어갈 수 없는 지역을 창의적 접근지역이라 부르는데, 이런 지역은 시간이 지날수록 확 대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인도는 1980년 이후 새로운 선교사 비자를 발급하지 않고 있다.
(2) 개방적 접근 지역의 접촉점의 한계
창의적 접근 지역에 대응되는 나라들, 즉 정부로부터 정식으로 선교사 비자를 받고 들어갈 수 있
5 일본 기독교 선교의 역사, 나카무라 사토시, 홍성사, 2016, pp 154-158 6 ibid, pp 158-164
는 나라들을 개방적 접근지역이라고 부르는데, 우리가 개방된 나라라고 부르는 일본, 태국, 대만 같
은 곳에서도 사실 최근의 선교적 상황은 창의적 접근 지역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 개방된 접근 지역 에 들어갈 때 선교사들이 정식으로 선교사 비자를 받아 가기는 하지만 100년 전처럼 혹은 50년 전 처럼 선교사라고 하는 외국인에게 현지인들은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런 개방된 지역에서 선 교사들은 다시 현지인들과의 새로운 접촉점을 마련하기 위해서 창의적인 노력을 해야만 한다. 태국 이나 일본 같은 지역에서 교회를 개척한다 해도 50년 혹은 60년 전처럼 사람들을 교회에 모으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전도 이전에 태권도를 가르친다든지, 기타를 가르친다든지, 영어를 가 르친다든지, 혹은 한국 요리를 가르치면서 현지인들과 접촉점을 만들려고 애쓴다.
(3) 선교비의 증가
전통적인 선교사는 선교지에 갈 때 일반적으로 매우 높은 비용의 지출을 전제로 한다. 선교본부 를 운영해야 하고, 여러 가지 멤버 케어를 위해서 들어가는 비용을 포함하면 선교사들이 모금하는 액수는 높아지게 된다. 이런 재정적 운영 형태가 되어서는 높은 선교비를 모금할 수 있는 한정된 숫 자의 선교사 밖에는 파송하기가 어렵다. 한국 교회가 2만 명의 선교를 위해서 지출하는 비용이 줄잡 아 연간 5억불 가량 된다. 이런 상황에서 선교사를 추가로 더 파송하는 것은 그만큼 한국 교회의 재 정적 부담을 더 증가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풀뿌리 선교의 경우는 스스로가 재원을 조달함으로 재정 후원을 받아야 하는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4) 이슬람 선교에서 배워야 할 교훈
필자가 인도네시아에서 교수 사역을 할 때 한 세미나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그 세미나에서는 인도네시아에 어떻게 이슬람이 전파될 수 있었는가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었다. 세 가지 강력한 가설 이 있었는데,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아라비아의 상인들이 이슬람 신앙을 가지고 왔을 것이다. 둘째, 인도의 상인들이 이슬람 신앙을 가지고 왔을 것이다. 셋째, 중국의 상인들이 이슬람 신앙을 가지고 왔을 것이다.
필자에게 있어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이 세 가지 가설 속에 나타난 공통점이었다. 이들이 모두 상인들이라고 하는 점이다. 이러한 이슬람의 선교의 모델이야말로 사도행전에 나타난 풀뿌리 선교 의 모습이 아닌가.
- 7. 풀뿌리 선교의 회복을 위한 제안
한국 교회들이 그 동안 가지고 있었던 선교사 중심의 선교에서 흩어진 사람들 즉 풀뿌리로 선교 가 그 운동력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를 제언한다.
(1) 모든 선교지역을 창의적 접근 지역으로 보아야 한다.
창의적 접근 지역에 진입할 때는 물론 더 조심을 해야 하지만 개방된 지역이라고 하더라도 종교 다원주의 등의 영향으로 기독교의 고자세적인 태도에 대해서 냉담하거나 심지어 적대적인 태도를 보 이고 있다. 따라서 선교사가 큰 소리 치며 다니는 시대는 지나갔다는 인식을 빨리 해야 한다. 이제 풀 뿌리 선교처럼 로우키로 현지인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2) 모든 성도들이 선교적으로 사는 것이 준비되어야 한다.
풀뿌리 선교를 담당하는 성도들은 공적으로 파송되는 선교사 못지않게 선교적 자질을 갖추어 야 하며 본국에 있을 때부터 선교적으로 사는 것은 더 중요하다. 풀뿌리 선교를 하려는 비전이 있는 사람이 본국에서 그런 직업을 갖고 자기의 상황 속에서 사역을 해본 적이 없다면 선교지에서 선교사 역의 열매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풀뿌리 선교를 감당할 성도들은 적어도 본국에서 자신의 직업을 가 지고 어떤 형태로든 사역을 감당하는 훈련이 전제되어야 한다.
(3) 약함으로부터의 선교를 배워야 한다.
이제까지 선구 선교 그리고 그 선교를 답습하고 있는 한국 교회의 선교는 무언가 해 줄 것이 있 어야 선교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선교지에 센터를 세우고, 교회당을 건설하고 심지어 현 지 사역자들의 생활비를 제공하는 것이 선교의 전제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러기 위해서 선교는 강 력한 재정적 지원을 전제로 진행된다는 생각이 교회나 성도들에게 일반적으로 팽배하게 퍼져있다.
하지만 선교는 강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의 흩어진 성도들처럼 연약한 상태에서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7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흩어진 사람들은 자신들보다 강대한 로 마제국을 향해 나갔다. 그리고 자신들을 지내하는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이들이 가지고 있 는 것이라고는 복음 이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4) 새롭게 주어진 기회를 잡아야 한다.
두 가지 새로운 기회를 주님이 우리에게 열어 주고 계시는데, 하나는 800만에 달하는 한국 디아 스포라를 통한 선교이며, 또 하나는 우리나라에 와 있는 200만 명에 달하는 이주 노동자들에게서 복음을 전할 기회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하는 필리핀 노동자, 혹 은 인도 출신의 노동자들은 선교사라고 말하지 않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
7 정용갑, 약함으로부터의 선교, 지혜의 일곱 기둥, 2009 p.78
해서 최선을 다 하고 있다. 이들은 풀뿌리 선교를 실천하고 있다.
(5) 2,3 세계 교회에 선교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오늘날 교회의 중심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로 이동하고 있다. 하지만 선교의 동력은 불균형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여전히 선교의 인적, 물적 자원은 서구 교회나 혹은 서구 교회를 따 라가고 있는 몇 몇 국가들에서 나오고 있다. 이들 2,3 세계가 지난 200 년 동안 서구 교회가 해왔던 선교사 중심의 선교를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이제는 저비용의 새로운 선교의 모델이 필요 하다. 그 모델은 아마도 풀뿌리 선교모델이 될 것이다.
나가면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필자가 제안하는 풀뿌리 선교 모델은 새롭게 등장한 선교 모델처럼 보인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풀뿌리 선교 모델은 이미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을 뿐 아니라 지난 2000 년 선교 역사에 계속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대부분의 선교역사는 선교사를 중심으로 기록되 어 있어서 그 동안 풀뿌리 선교에 대한 조명이 약했을 뿐이다.
이제 선교사를 파송하는 전통적 선교 방식은 많은 지역에서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하지만 풀뿌 리 선교를 통해 새로운 선교의 동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선교적 상황을 우리에게 허락하신다. 새로운 선교적 상황은 새로운 선교 모델을 필요로 한다. 이런 상황에서 풀뿌 리 선교 모델은 21세기에 적절한 선교모델이 될 것이다
참고 문헌
직업과 선교, 죠이출판사, 2016, 손창남
사도행전을 선교적으로 읽으면 두 모델이 보인다. 죠이출판사, 2017, 손창남
다음 세대와 선교를 연결하라 / 김장생 목사(CCC 해외선교팀장)
1.들어가는 말
1) Story for A6 Project
– A6는 2011년 한국CCC에서 시작한 캠퍼스 개척운동
– 아프리카 등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지인 주도의 선교운동
2) 다음세대 선교지원자 감소는 어쩔 수 없는 흐름인가?
약 30년 전 통계에 따르면 한국선교사의 수는 3,272명이었고 대부분인 70%가 2-30대 선교사들 이었다.1 올해 2월에 KRIM에서 발표한 한국 선교 현황 조사에 따르면 지난 30년 동안 2-30대 청년 들의 선교사 파송추이는 급격하게 감소되어 현재 20대는 0.88%, 30대를 합해도 8%가 되지 않는 상 황이 되었다.2 심지어 증가하던 40대 선교사마저 감소되고 있고 50대 60대 선교사 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현상은 선교의 유업을 이어가야 할 미래의 전망을 암울하게 한다.

1 한국선교핸드북, 한국선교연구원(KRIM), 1994
2 2022 한국선교현황보고, 한국선교연구원(KRIM), 2023. 2. 21
청년선교의 현상과 전망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일반적이다. 2030세대의 탈 종교화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종교를 가진 청년들에게 앞으로 종교를 가질 의향을 묻는 질문 에서 8.7%만이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것은 ‘종교를 포기하고 싶다’는 13.7%의 응답보다 낮은 것 이어서 앞으로도 종교 유출인구가 더욱 늘어나 탈종교화 현상은 당분간 심화될 것으로 보여 진다.3
3) 우리에겐 아직 12만 척의 배가 남아있다.
그러나 청년선교동원 전망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탈종교화의 분위기속에 탈교회화 현상도 일어나고 있지만 다른 종교에 비해 기독교의 청년 이탈율이 비교적 낮다는 것은 약간의 희망을 가질 만한 현상이라고 하겠다.

2023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대한민국 20대 인구는 전체 5155만여 명 중 12.56%에 해당하는 약 647만여 명 정도, 30대는 12.56% 680만여 명이다.4 그리고 한국리서치에서 조사한 2022년 한국 종교인구 현황에 따르면 개신교인의 비율은 20대에서 14%, 30대에서 15%로 조사되었다.5
단순한 숫자로만 계산하면 20대 개신교인이 906,596명, 30대가 1,020,849명으로 계산된다. 무 려 190만 이상의 2-30대 개신교인들이 있다는 것이다.
‘2022 청년트렌드리포트’에 따르면 개신교인중 14.8%가 직접 해외선교사로 나갈 의향이 있고 19.1%가 보내는 선교사로 재정후원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아래 도표)6. 그렇다면 우리에겐 아 직도 13만 4천여 명의 20대 선교지망생들이 있는 것이다.
4) 출구가 없다.
올해 새롭게 선교현장으로 파송 받은 20대 선교사는 22명에 불과하다. 상기한 것처럼 선교 인적
3 2022 청년트렌드 리포트, 학원복음화협의회, 2022. 183페이지
4 통계청 인구상황판 (https://kosis.kr/visual/populationKorea/PopulationDashBoardMain.do) 5 2022 종교인식조사] 종교인구 현황과 종교 활동, https://hrcopinion.co.kr/archives/25186
6 2022 청년트렌드 리포트, 학원복음화협의회, 2022. 231페이지

자원이 충분히 있음에도 왜 소수의 청년들만 선교에 헌신하게 될까? 낯선 환경에서의 삶에 대한 불
확실성과 두려움, 선교비 준비에 대한 재정적 부담, 선교사로서 언어와 사역경험 부족, 영적 미성숙 등의 어려움을 예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청년들 개개인의 문제보다 선교 생태계의 구조적인 문제가 더 크다는 생각이다.
KRIM에서 발표한 ‘2022 한국선교현황보고’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42개 단체에서 선교관 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훈련을 제공하였으며 훈련받은 사람은 4,757명에 불과했다. 훈련 참가자가 전 연령대에 걸쳐 있다고 본다면 20대 참가자수는 1000명 이내에 불과하다. 20대 개신교인의 0.1% 만 선교훈련의 기회를 가진 것이다.
훈련 뿐 아니라 선교의 첫 발걸음인 단기선교 역시 2022년 26개 단체에서 2,562명만이 참여한 것으로 보고되었는데 이는 개 교회 별로 진행된 일부 단기선교가 통계에서 누락 되었다 하더라도 매 우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선교 관심자는 많지만 실제적으로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선교훈련과 단기선교 프로그램들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실제 파송까지의 로드맵은 아예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모 중견 교단의 선교사 대부분이 신학을 마치고 지원한 선교사들이라고 한다. 일반 교회를 다니는 청년이 선교의 마음이 있다고 해도 평신도 나 전문인 선교사로 선교지에 가는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본론: 다음세대와 선교 활성화를 위한 제안들
1) 선교의 본질로 돌아가라.
20세기 위대한 설교가로 꼽히는 미국의 에이든 토저(Aiden W. Tozer, 1897-1963)목사는
“만약 오늘날 교회에서 성령을 뺀다 해도, 우리가 하는 일의 95%가 계속될 것이고 아무도 차이
를 알지 못할 것이다. 만약 신약 교회에서 성령을 뺀다면, 그들이 행했던 일의 95%는 멈췄을 것이 고 모두 그 차이를 알았을 것이다. (If the Holy Spirit was withdrawn from the church today, 95
percent of what we do would go on and no one would know the diff rence. If the Holy Spirit had been withdrawn from the New Testament church, 95 percent of what they did would stop, and
everybody would know the diff rence.)” 라는 말로 20세기 서구교회가 본질에서 벗어나 있음을 지 적한다.
‘잊혀진 교회의 길’7에서 앨런허쉬(Alan Hirsch, 1959~ 현, 호주)는 지금의 교회를 ‘크리스텐덤 모드’로 평가하고 다시 초대교회와 같은 ‘사도적 모드’로 회복하기를 주장하며 ‘선교적 모드’의 교회
를 세워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 역시 ‘선교적 교회’운동과 더불어 본질을 잃어버린 기성교회에 대한 냉정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현대선교의 거장으로 불리는 랄프윈터(Ralph D. Winter, 1924-2009, 미국) 박사도 2007년 방 콕에서 개최된 ASM(Asian Society of Missiology, 아시아선교학회) 국제 컨퍼런스에서 ‘서구선교 12가지 실수’8 라는 제목으로 아시아교회 선교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내용을 나누기도 했다.
미국 상원의 채플린으로 섬겼던 리차드 핼버슨(Richard C. Halverson, 1916~ 미국) 목사는 기 독교의 역사를 설명하며 “초대교회는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형제자매들의 교제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런 다음 교회는 그리스로 옮겨가서 철학이 되었고 로마에서는 제도가 되었습니다. 그
리고 유럽으로 옮겨 가서 교회는 문화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으로 건너 왔을 때 교회는
기업이 되었습니다.(In the beginning the church was a fellowship of men and women centering on the living Christ. 표en the church moved to Greece, where it became a philosophy. 표en it moved to Rome, where it became an institution. Next, it moved to Europe, where it became a culture. And, :fnally, it moved to America, where it became an enterprise.)” 여기에 2014년 ’쿼바 디스‘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김재환 감독은 “교회는 한국으로 와서는 대기업이 되었다”라는 말 을 덧붙인다.
한국교회는 수많은 비판에 직면하면서 사회적 신뢰도를 잃어버렸다. 기윤실에서 실시한 2023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독교는 신뢰도, 호감도, 친근함, 사회적 기여도
7 앨런 허쉬, 잊혀진 교회의 길(표e Forgotten Ways, 아르카, 2020)
8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188662
면에서 가톨릭이나 불교에 비해서도 낮게 평가되고 있다.9 한국교회의 문제에 대한 지적은 수없이 많
았고 공감하기에 재차 언급할 필요는 없지만 교회의 자기중심적 이기주의, 배타주의, 형식주의, 권위 주의, 세속주의, 성장제일주의, 소극적 사회참여, 연합운동의 부재 등을 꼽는다. 교회가 바뀌어야 한 다. 이런 맛을 잃어버린, 진정성을 잃어버린 교회를 향해 젊은이들은 등을 돌리고 있다. 다음세대를 선교와 연결하는 일의 첫 단추는 맛을 잃어버린 교회가 변화되는 것에서 출발할 것이다.
2) 교회와 선교단체가 선교를 위한 전략적 연합을 도모해야 한다.
청년선교 동원에서 지역교회와 선교단체의 선교적 연합은 매우 절실하며 시급하다. 일반적으로 지역교회는 선교에 있어 파송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지 않다. 선교훈련을 제공하거나 아웃리치를 시 행하는 정도가 있을 뿐이다. 일반적인 교단 파송 선교사들은 신학을 마친 이후에 지원이 가능한 구 조를 가지고 있으며 평신도가 지역교회에서 선교사로 파송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반면에 선교단 체는 중장기선교까지 선교 전반의 파송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다.
지역교회는 선교를 위한 인적, 재정적 자원을 가지고 있고 선교단체는 선교 전략과 선교사 케어 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에겐 여전히 충분한 수의 선교자원이 있다. 단지 그들이 파송될 수 있는 시스템 안에 들어와 있지 않을 뿐이다. 선교를 위해 지역교회와 선교단 체의 상호 의존적 연합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며 이를 통해 한국교회는 선교운동의 폭발적 시너지(Synergy)를 경험 할 수 있을 것이다.

몇 가지 가능한 연합사역의 예를 생각해보자. 우선 지역교회들이 선교에 대한 기초를 세우기 위 해 선교단체들이 제공하고 있는, 커넥션스쿨, 단기선교 학교, 카이로스, 퍼스펙티브스 등의 선교훈련 들을 도입할 수 있다. 아울러 CCC, IVF, JDM 등 학생선교단체들에 지역교회의 청소년, 대학생들 이 참여 할 수 있도록 공식적으로 광고하고 안내해 주는 것, 청년들이 참여 할 수 있는 CCC의 스틴
트(Short-term International)같은 인턴선교사 제도나 선교한국대회 같은 훈련의 장을 안내 해주는 것 등 선교단체로 자원들이 연결 될 수 있도록 길만 만들어 주어도 즉각적인 선교의 부흥을 경험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교회와 선교단체들이 지난 수십 년 동안의 한국 교회 영적 부흥기의 열매들
9 http://m.pckworld.com/article.php?aid=9689115749
을 통해 풍성한 사역을 해왔다. 그러나 여러 도전들 앞에 우리는 보다 긴밀한 연합을 요구받고 있다.
3) 선교 조기교육이 필요하다.
선교를 위한 자원 개발의 과정은 장기적 안목으로 계획되어야 한다. 선교사는 어느 날 갑자기 등 장하지 않는다. 주일학교부터 Mission Planting을 하고 선교에 관해 단계별로 개념을 잡아주고 부 분적으로 참여시키는 입체적 선교훈련이 필요하다. 초등부에서는 다른 나라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게 한다든지, 외국어로 인사를 한다든지, 외국 과자를 간식으로 주면서 그 나라에 대해 얘기한다든지, 자녀들과 함께하는 비전트립(단기선교), 어린이 선교학교, 선교기도모임 참여 등 등등 다양한 선교 환경에 노출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대학을 진학하기 전 상당수가 이미 진로에 대한 방향을 잡고 학과 선택을 하게 된다. 진로결정을 하기 이전에 선교적 비전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 을 위해서 교단 교육부, 어린이, 청소년, 학생 선교단체 등 다양한 한국교회 구성원들의 연합작업과 상호협력이 필요하겠다.
4) 다양한 선교훈련들이 개발되고 공유되어야 한다.
퍼스펙티브스, 카이로스 등의 훈련들이 한국교회가 함께 사용 할 수 있는 선교훈련이었다. 그 이 외에는 교단별로, 대형교회 자체 프로그램으로서 선교 훈련이 진행되고 있다. 외국 교재들을 번역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115년이 넘는 한국 교회 선교 역사가 공유되지도 못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훈 련들은 선교헌신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이었고 선교사나 전문 강사들이 강의하는 형태로 진행되었 다. 5만여 한국교회가 사용할 선교훈련 과정들이 좀 더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교역자들이 가르칠 수 있는 과정으로 만들어져야한다. CCC에서는 이런 필요들을 보고 2019년부터 선교적 공동체를 세 우고 선교적 삶을 살도록 돕기 위한 한국형 기초선교훈련인 커넥션스쿨을 시작하여 목회자들이 지 역교회에서 선교학교 과정을 직접 개설하여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커넥션스쿨과 같은 다 양한 선교 훈련들이 개발되고 한국교회에서 활용되기를 소망한다.
5) 성공적인 단기선교를 살려내야 한다.
코로나 이전 한국교회의 단기선교 참가자 수는 통계수합이 불가능할 정도로 많았다. 혹자는 년 10만명이 참여한다는 추정하기도 했다. 단기선교는 중장기선교 헌신자를 배출하는 시작점이다.
CCC 내부의 통계로는 간사지원자는 평균 2.5회, 스틴트 지원자는 2.75회, 선교사 지원자는 5.9회의 단기선교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10 양질의 단기선교가 양질의 선교사를 배출한다. 효과적이고 의미 있는 단기선교가 그 다음 단계의 선교로 자연스럽게 안내할 것이다.
10 단기선교를 통한 장기선교자원의 효과적 개발 (김장생) 2018, 동서선교연구개발원
6) 다양한 선교적 활동을 시작하라.
한국에 선교하는 교회가 얼마나 될까? KWMA 비전 중 첫 번째가 “2030년까지 50% 이상의 한국교회가 선교에 동참한다”는 것만 보아도 절반에 훨씬 못 미치는 교회가 선교에 참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A 교단은 약 20%의 교회가 공식적인 선교헌금을 보내고 있다고 하고 한국교회의 10%
이하가 적극적으로 선교하는 교회라고 하는 의견도 있다. 선교헌금이든, 중보 기도이든, 선교 세미나
나 선교 헌신예배, 선교 대회를 하든, 비전트립이나 선교사 파송이나, 지금 이 시점에서는 교회의 존 재적 본질을 드러낼 수 있는 선교적인 활동들이(Missions) 더욱 다양해지기를 제안한다. 발제자는 본질적 내면의 변화가 외형과 형식을 바꾸었을 때도 일어 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다양한 활동들을 하다보면 좀더 개선하면서 선교의 다양한 관심과 참여의 장이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
- 나가는 말
코로나로 인해 위축된 사역현장들은 코로나 이후 선교적 필요가 더욱 커지고 더욱 적극적인 도움 을 요청받고 있다. 우리는 아프리카부터 남미까지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행16:9)는 전 세계적인 마 게도냐 환상을 보고 있다. 아프리카를 비롯해 이슬람권과 힌두권, 불교권 뿐 만 아니라 최근 중동에서 도 이전에 없던 부흥과 변화의 소식을 접하고 있다. 아울러 기독교 선교의 축이 서구권 중심의 Global North에서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중심의 Global South로 이미 옮겨진 시점에서 한국은 서구중심의 기독교 운동이 아닌 세계기독교(World Christianity)운동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요청받고 있다.
우리가 어느 시대보다 힘을 다해 더 많은 선교자원을 일으켜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다음세대가 선교는 반드시 연결 되어야 한다. 다음세대 없는 선교는 분명히 주님의 지상명령 성취를 더디게 할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의 미래도 어두워질 것이다. 선교는 교회의 존재 이유이면서 동시에 교회의 생 존조건이기 때문이다. 선교없는 교회는 존재 이유가 없고 청년 없는 교회는 미래가 없다.
선교는 어느 한 단체나 한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다. 지상명령 성취에 한 마음을 가진 그리스도 인들이 함께 하는 일이다. 모든 교회가 함께 연합해서 할 일이다. 단시간에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어릴 때부터 차근히 선교를 가르치고 남녀노소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동참 시키자.
교회의 본질로 돌아가자. 부르심의 자리로 돌아가자. 다시 기도하자. 성령의 역사하심을 갈망하자.
3. 트랙별 발제자료
다음 세대 선교 동원 – 다음 세대 선교동원의 추이 / 최욥 선교사(선교한국 사무총장)
Ⅰ. 들어가며
“진리와 진실은 너무나 무거워 젊은이 밖에는 운반할 수 없다” 탈무드의 격언이다. 과연 인류의 역사는 변혁이 필요한 순간마다 젊은이들의 헌신을 통해서 진보되어 왔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교도 이와 다르지 않다. 19-20세기 영미선교는 학생자원운동을 통하여 꽃을 피웠고 조선에 왔던 언더우드, 아펜젤러같은 선교사들도 모두 20대 초반의 청년들이었다. 한국이 미국을 뒤 잇는 선교 파송국이라는 호칭을 얻은 배경에는 선교한국 같은 청년선교운동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 지 표에서 다음세대 선교동원의 적색불이 들어왔다. 본 소고에서는 그동안 청년선교동원의 추이를 알 아보고 상승, 고원, 하강으로 이어지는 시기마다 기독교의 외부적, 내부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관찰하였다. 이는 세계기독교의 관점에서 선교 헌신자의 증감원인을 선교계의 단일 요인이 아닌 한 국사회와 교회라는 다맥락적인 상황에서 보고자 함이다.
Ⅱ. 본론
- 젊은 선교자원 고갈 현상

<그림1> 장기 선교사의 연령 비율 변화
한국선교연구원의 통계를 따르면 장기선교사의 연령분포에서 2-30대의 비율은 1994년 70%였
다. 그러나 그 비율은 갈수록 낮아져서 최근엔 7%대로 줄어들었다. 반면 50대 이상은 65.5%로 많아
졌다. 이는 30년 전에 헌신했던 2-30대가 그대로 중노년이 되었고 그 아래로 젊은 선교사들이 수급
되고 있지 않음을 나타낸다. 한국선교는 세계 제2위 선교대국이라는 호칭을 얻자마자 선교자원 고 갈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림2> 선교한국대회 참가자 추이
선교한국대회의 참석자들의 추이를 보면 청년선교자원의 하강을 실감할 수 있다. 1988년부터
1996년까지는 가파르게 우상향하는 성장기였다. 그 후 1996부터 2008년까지는 5-6천명이 참석하 는 고원기를 보냈고 2010년부터 최근까지는 하강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 세 시기의 기독교 내부적, 외부적 요인들은 다음과 같다.
- 성장기의 선교동원 (1988-1996)
1) 기독교 내부의 상황
한국선교동원에 있어서 부흥기는 선교사 증가율이 29-17%에 달했던 1988-1996년이다.
한국기독교는 60-80년대에 폭발적인 양적 성장을 경험하였는데 60년대 5,011개였던 교회가 70 년대 12,866개, 80년대 21,243개, 90년대 35,819개로 증가하였다. 70년대 교계에서는 각종대형집회 들이 개최되기 시작했는데 73년 빌리그레이엄 전도집회, 74년 EXPLO74, 77년 민족복음화 대성 회 등이 그것이다. EXPLO74대회 때 김준곤 목사는 “젊은이들이 예수의 꿈을 꾸고 인류구원의 환 상을 보며 한 손에는 복음을, 다른 한 손에는 사랑을 들고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비는 거룩한 민족이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고 이런 내용을 담는 집회들이 80년 세계 복음화 대성회, 84년 한국기독 교 100주년 대회 등으로 이어졌다. 또한 80-90년대에는 대학마다 CCC, IVF, JOY같은 학원선교단 체들이 확산되었다. 88올림픽 이후 해외여행 자유화와 90년대 1인당 GDP 1만불 시대를 맞이하면 서 본격적인 해외선교사역은 꽃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1988년 제1회 선교한국대회가 664명의 참석 으로 시작된 이후 96년 대회 때는 6,300명이 모여서 8년동안 10배에 가까운 동원 증가가 있었다. 전 에 없던 선교동원의 백화제방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이때 토마스 왕, 피터 와그너등에 의해서 2000년 까지 세계복음화 완수를 외쳤던 AD2000운동이 한국에 소개되면서 그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2) 기독교 외부의 상황
한국교회에 부흥과 선교의 꽃이 피었었을 때 한국사회는 경제성장과 민주화 운동으로 뜨거웠 다. 60-70년대는 농어촌 인구의 대거 상경이 있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산업화를 위한 저임금 근로자 계층이 되었다. 교회는 도시로 올라와 고단한 삶을 살며 준거집단을 찾는 이들에게 현세적 축복과 내세적 구원의 복음을 제시했다. 한편 군사독제에 의한 산업화는 피라미드식 빈부 계층화를 초래하 였는데 경제적 불균형이 심화 될수록 국민들은 점점 의식화되었다. 특히 5공 시절 호헌철폐, 독재타 도를 외치던 대학가에는 전경들이 배치되고 불시검문이 이어졌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가 보 장 받지 못하던 시기에 유독 개신교는 체육관, 캠퍼스, 심지어 여의도광장에서도 대형 집회를 허락 받았다. 이는 당시 전반적인 교계의 분위기가 민주화를 지향하기 보다는 독재정권과 유착하는 태도 를 보였기 때문이다. 일례로 1980년 8월 6일 전두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을 위한 조 찬기도회는 공중파를 통해서 전국에 생중계되었는데 개신교 목사들은 전두환을 민족의 여호수아로
칭하며 “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직책을 맡아 사회악을 제거하고 정화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 는 기도를 드렸다.1
교계의 이러한 행동은 민주화를 시대적 사명으로 생각하던 다수의 젊은이들에게 개신교안에는 보편적 지성과 정의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절망을 안겨주었다. 당시 같은 캠퍼스 안에서 각각 민주화 운동과 찬양집회로 학생들이 모이곤 했었는데 기독교신앙은 이 둘 사이에서 가교를 잘 놓지 못했다. 이 모습을 보며 자란 많은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났는데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1995년의 기독청년인 구는 10년이 지나는 동안 60만 명이(597,619명) 감소하였다. 개신교 청년인구의 감소율은 전체연령 의 평균 감소율보다 4배가 많았는데 청년들이 스스로 밝힌 교회를 떠나는 이유의 61.6%는 ‘교회의 기득권층 옹호, 세습, 비리연루 등 이미지 실추’ 였다.2
젊은이들이 윤리와 정의에 대한 문제로 기독교에 회의적이되는 것은 선교동원에도 큰 영향을 미 친다. 자신이 사는 사회에서 기독교에 긍지를 느끼지 못한 청년들이 어떻게 기독교 신앙을 전하는 선 교사가 되려고 선뜻 나설 수 있겠는가? 교회가 사회적으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하지 못한 것이 그 즉시 선교헌신 감소로 나타나진 않았다. 그러나 충분한 복선으로 깔렸고 IMF시기를 지나면서는 가 시적인 숫자로 드러나게 되었다.
- 고원기의 선교동원(1998-2010)
1) 기독교 내부의 상황
고원기는 선교사 증가율이 8-17%를 기록한 1997-2007년이다. 이 시기의 특징은 개신교 인구의
1 48년째 이어오고 있는 개신교와 권력의 유착”# [민중의 소리] 2016.3.5., http://www.vop.co.kr/A00000999075.html 2023. 6. 3 접속
2 한국교회의 내일 청년, 위기의 갈림길에 서다”# [뉴스미션] 2013.4.28., http://m.newsmission.com/news/index.php?m=1&sort_index=regdate&order_type=desc&document_srl=53709&mid=opinion 2016.3.16 접속
증가는 멈추었지만 신도시를 중심으로 교회성장학파와 NCD이론을 적용한 중, 대형교회들이 생겨
났고 건축 붐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더불어 이 무렵 셀교회, 두 날개 등 다양한 교회양적, 질적 성장 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소개되었다. 그러나 당시 이미 정체된 한국기독교 인구가 말하듯이 대형 교회 들의 성장은 대부분 작은교회 신도들의 수평이동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당시 중대형 교회 안에는 해외선교부가 생겨났는데 이는 선교헌신자들이 주로 수도권 중대형교 회로 몰리는 원인이 되었다. 또한 이 무렵에는 대형 선교집회뿐 아니라 다양한 선교훈련들이 개설되 어서 10/40창, 미전도종족 입양, 전문인 선교 등의 개념이 보급되었다. 이러한 기반 위에 초교파 선교 단체들이 많이 생겨났고 여러 국제선교단체들도 국내에 소개되었다. 성장기 때 선교헌신을 했던 많 은 사람들은 수도권 및 신도시의 중, 대형교회를 파송 기반으로 삼고 다양한 국내외 단체들에 허입 되는 모델을 통하여 선교지로 나갔다. 해외 선교사 숫자의 증가와 함께 단기선교도 활성화되었는데 90년대를 지나면서 단기선교는 교회의 일반적인 행사로 자리 잡았고 이런 분위기를 힘입어 96-06년 선교한국대회에는 5-6천명의 참석자가 운집했다.
그러나 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가면서 동원사역의 불안한 징후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것 은 캠퍼스선교단체의 축소이다. 아래 표는 88년 선교한국대회 때부터 선교동원에 힘써왔던 J단체의 전국 수련회 참석자 추이이다. 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상승하여 2000년대 초에 정점을 찍고 2000 년대 중반 이후엔 급속히 하락하였는데 대부분의 캠퍼스 선교단체들이 이와 비슷한 궤적을 그렸다.3

<그림3> J단체 전국수련회참석자 추이
이는 수년 뒤 동원사역에 있어서 위기의 복선이 되었는데 전통적으로 많은 선교사자원들이 학 생 선교단체들을 통해서 배출되어왔기 때문이다. 캠퍼스 선교단체의 하강은 그 후 7-10년 뒤 선교사 증가율의 쇄락을 어느 정도 예고하는 것이었다.
2) 기독교 외부의 상황
9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 한국 기독교의 수적 성장은 멈추었고 특히 IMF후로 그 하락세는 깊어 졌다. IMF가 한국의 경제구조와 한국인의 삶에 끼친 영향은 지대한데 그 것은 한마디로 신자유주
3 다음세대를 좌우하는 캠퍼스 선교단체”# [들소리 신문] 2010.11.22. http://www.deulsori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489 2023. 6. 3 접속#
의에 의한 금융자본주의 시대의 도래였다. 국내기업의 많은 지분이 외국으로 매각되었고 그 후로 대
대적인 구조조정, 중산층의 몰락, 비정규직의 양산, 기회의 축소, 대기업의 골목상권 지배, 자영업의 몰락, 실업의 증가, 사교육비의 증가, 이로 인한 노후빈곤의 도미노현상이 있어왔다.
이런 사회를 살아내었던 국민들의 체감고통은 자살률의 증가로 나타난다. IMF전 96년 한 해 자살자는 5,959명인데 이는 인구 10만명당 14.1명으로서 OECD국가들 중 하위에 속하는 수치였 다. 그러나 IMF직후 98년 고금리시절에는 자살률이 전년대비 42.3% 증가하였고 양극화가 굳어지 며 부동산투기 광풍이 불었던 2003년에는 한국의 자살자는 10,898명, 즉 10만명 당 24명에 달하여 OECD 1위의 자살국이 되었다. 2008년 금융위기를 지나면서는 한국의 자살률은 10만명당 29.1명 으로 OECD평균보다 두 배가 넘는 자살국가가 되었다.4
다수 서민들의 삶이 힘들어졌던 이 시기에 한국교회 강단의 주된 메시지는 성장과 성공 그리고 교회당 건축이었다. 금융권들의 대 교회 대출전략을 살펴보면 2001년 농협은 최초로 교회전용 상 품인 미션대출을 출시했고 10개월만에 380건 1716억, 2012년까지 9000억의 실적을 올렸다. 수협은 2001년 12월 샬롬대출을 시작해서 2010년 1조7천억을 기록했다. 농협과 수협의 교회대출 상품이 성공하자 신한은행(플러스교회대출), 우리은행 (실로암대출) 등이 등장하였다.5
교회성장과 건축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교회의 목적에 대한 성경적, 상황적 고민 없이 교회성장론이 교회론을 대신해버린 것이다. 성도들은 힘든 가운데서도 건축헌금을 하고 교회
성장을 위한 여러 행사와 훈련에 동원되었는데 강단에서는 “사업이 안되는 어려운 형편에 장로님이 2억을 헌금했는데 다른 회사들은 다 망하는데 우리 장로님은 안 망했다. 어려울 때 성전 짓기 위해 서 헌금을 했더니 회사도 일어나고 만사형통이었다. 할렐루야.” (한국 S 교회 J 목사)6” 식의 영웅담들 이 전파되었다.
그러나 도산과 부도 그리고 실직이 넘치는 사회 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삶은 경제적 고통, 가정불 화, 우울증 등으로 무너지고 있었고 이들은 교회에서 충분한 케어를 받지 못했다. 일례로 이 즈음에 자살한 연예인들(최진실, 최진영, 안재환, 유니, 이은주, 정다빈, 박용하)은 모두 크리스천이다. [그들 의 자살, 그리고 우리]의 저자 조성돈 교수는 설문조사를 통해 전체 크리스천들 중 20%가 자살충동 을 느껴본 적이 있는데 목회자를 찾아가는 경우는 그들 중 18.8%에 불과함을 밝혔다. 결국 IMF이 후 성장, 성공신화, 엘리트주의, 헌신을 전제로한 축복 메시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점점 기독교에 등
4 !심층분석 자살”# [동아뉴스] 2009. 9.27
http://news.donga.com/3/all/20070215/8407797/1 2023. 6. 3 접속
!한국은 자살공화국”[프레시안] 2004. 9.22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27985 2023. 6. 3 접속
5 !신앙 은행에 담보 잡히다”# [복음과 상황] 2012. 2. 28
6 !예배당이 뭐길래”# [NEWSM] 2009. 12. 21
http://www.newsm.com/news/articleView.html?idxno=1655 2023. 6. 3접속
을 돌리게 만드는 암초가 된 것이다.7 현실과 동떨어지고 윤리성이 결여된 공적 신앙의 부재는 호환
성 없는 기독교를 만들어냈고 결국 선교동원에 있어서도 급격한 하락을 가져오게 되었다.
- 하강기의 선교동원 (2012-현재)
1) 기독교 내부의 상황
쇠퇴기는 2007- 2016년 현재까지인데 이 기간 동안 선교사 증가율은 평균 2.41%로 떨어졌고 특 히 2013년부터는 1%대에 머물게 되었다. 2007년 교계에서는 평양부흥 1907년을 기념하는 큰 대회 들이 기획되고 있었으나 2007년 7월 19일 아프카니스탄 피랍사태는 교계와 특히 선교계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되었다. 한국정부가 탈레반과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인질들이 순교할 때마다 한국사 회는 한국교회의 선교활동이 공격적이고 과시적이었으며 반성과 자숙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 다.8 때마침 연일 불거진 목사들의 교회세습, 성추행, 폭력, 거액의 은퇴금, 소통없는 비도적적인 모습 들은 개독교라는 이미지를 형성하였는데 이른바 성숙없이 성장 일변도로 달려온 과거30년의 부작 용을 맞이한 것이다.
격조 높은 예배당, 세련된 음악 선곡, 성공과 축복의 메시지가 사람들을 모으는 동력을 잃어갈 무렵 교회에 돌아온 것은 막대한 건축 빚과 그에 따른 선교비의 축소였다. 2012년 4월 금융감독원의 제1금융권과 상호금융권에 대한 감사결과 한국교회의 대출 빚은 8조9천억원인데 그 중 대부분은 건 축 빚이다. 이는 한 달에 이자로 지출되는 헌금이 600억이란 뜻이며 제 3금융권까지 포함하면 규모 는 더 커질 수 있다. 경매에 나온 종교시설 현황을 보면 2008년 181개, 2010년 299개, 2012년 312 개, 2014년 480개로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 교회가 사찰보다 7.5배가 더 많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선교 와 구제가 힘있게 이루어지기는 어렵다.9
캠퍼스 선교단체 간사들은 과거 캠퍼스사역의 가장 큰 어려움은 기독교에 대한 무관심이었지 만 지금은 기독교에 대한 적대감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 시기의 많은 청년들은 성장 과정에서 가정이 IMF로 인해 해체되거나 무너진 경험을 가지고 있는데 성인이 된 후에도 여전히 극심한 경쟁에 내던 져진 삶을 살고 있다. 비싼 등록금과 취업전쟁의 부담은 대학입학 후 취업 스팩 9종세트(토익, 학벌, 학점, 어학연수, 2외국어, 인턴십, 자격증, 성형)를 준비 한 뒤 학자금 대출 빚을 안고 졸업하는 상황
7 !자살률 세계 1위속의 한국교회”# [아멘넷뉴스] 2010. 10. 28
http://usaamen.net/news/board.php?board=p2013&page=3&sort=wdate&command=body&no=522 2016. 4. 5접속
8 !아프간 피랍, 그 잔인했던 대한민국의 이야기”# [크리스차니티 투데이] 2015. 6. 23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 종결2개월 2007.10.26.”# [뉴스코리아] http://www.wnewskorea.com/bbs/board.php?bo_table=weekly_issue&wr_id=420&page=4 2023.6.3 접속
9 “교회 빛과 소금되랬더니 빚지고 소금쳐야 할 판” [노컷뉴스] 2012. 5. 7
http://www.nocutnews.co.kr/news/935285 2016. 4. 8 접속
“빚내서 몸키우는 한국 대형교회들” [시사저널] 2011. 7. 12
사치스러운 교회건축 중단하라” [기독교한국신문] 2013. 12. 9
“무리한 교회건축 꼭 해야하나” [한국기독신문] 2015. 1. 17
을 낳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학원선교단체들은 반 토막이 났는데 선교한국동원인원의 70%를 차지
하던 학원선교단체의 축소는 동원사역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10 2008년까지 5000명대를 유지 하던 선교한국집회는 2010년 3975명, 2014년 2250명으로 지속적으로 하강하였다.
선교사 증가율 역시 이런 흐름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과거 매년 1000명이 넘던 선 교사 파송 숫자가 2014년에 들어오면서 900명대가 되었고 2015년에는 500명대로 줄었는데 이는 약 10년 만에 선교사 증가율이 60% 이상이 감소하였음을 의미한다.11
KRIM의 통계(표3) 를 보면 한국의 선교사 증가율은 1980년대 29.8%, 1990년대 17.0%, 2000 년대 10.5% 였으나 2014년 1.90% 2015년에는 1.01%로 감소하였다. 2015년 한해 동안 3개의 단체 가 패업하였고 47개 선교단체의 선교사가 줄어들었다는 보고가 있었다. 사역대상국도 전년도보다 6 개국이 줄어든 171개국으로 나타났다.12
2) 기독교 외부의 상황
이 시기의 한국사회의 주된 흐름은 금융자본주의를 넘어 세습자본주의로의 진입이다. 오늘날 청년들은 노력과 능력보다 부모의 지위가 자신의 미래를 규정하는 확정적인 변수로 인식하며 끝없 는 경쟁 속에 던져진 자신의 삶을 한탄한다.13 한국의 소득불균형의 추이를 보면 상위10%의 소득비 중이 79-95년까지 30%대였지만 2000년 35% 2006년 42% 2012년 45%가 되었다.14 자산불균형은 더욱 심한데 2010-2013년 전체66%의 자산을 상위10%가 소유하고 있음에 비해 하위50%가 가진 자산은 2000년 전체의 2.6%, 2006년 2.2% 2013년 1.9%로 원래 미비했던 자산규모가 더욱 작아졌 다.15 한국은 현재 OECD 평균보다 두배의 비정규직 근로자 비중을 가지고 있다. 2013년 교육부 취 업통계연보에 9급16공무원시험은 수능 다음으로 가장 큰 공적시험 되었는데 그 원인은 실업난이다.
좋은 점수,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소득이 아니면 존재감을 찾지 못하도록 자라온 청년들은 사회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성공과 성장스토리 일색인 교회 안에서도 박탈감을 갖고 있다. 목회데이터 연구소 지용근의 연구를 따르면 예장통합 소속 981명의 목회자들이 생각하는 목회의 우선적 대상 은 31%가 3-40대, 23%가 교회학교, 22%가 노년세대인데 반해 청년들에 대한 관심은 10%로 우선
10 “교회 이미지 하락이 캠퍼스 사역의 최대 걸림돌” [아이굿뉴스] 2015.3.10, http://christiantoday.us/sub_read.html?uid=1652§ion=section4 2023.6.3 접속
11 “KWMA 2015년 12월 말 한국선교사 파송현황 통계” http://likumc.org/cp/?p=22811 2016. 3. 15 접속
12 문상철 [한국선교운동의 지속가능성과 재활성화연구] GMF Press 2016. 4. 1 8-9p
13 조한혜정, 엄기호 외 [노오력의 배신] 창비 2016. 5. 13 18-19p
14 연 수입..한국 소득 상위10%”# [주간조선] 2014. 9. 29
15 상위10%가 부66% 보유.. 돈이 돈버는 세상”# [한국일보] 2015. 10. 29
# !우리나라 상위10%가 부66% 보유.. 하위50% 자산은 2% 불과”# [연합뉴스] 2015. 10. 29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0/28/0200000 000AKR20151028218700002.HTML 2023. 6. 3 접속
16 나는 구준생이다 사상최대9급전쟁 SKY도 유학파도”# [주간조선 2401호] 2016. 4. 5
순위에서 크게 밀려나있다.17
문제는 청년뿐 아니라 중장년 교인들도 이원론적이며 소통 없이 자기비전에만 취해있는 목회자 아래서 교회성장과 건축을 위한 각종 봉사와 훈련에 매진하지만 막상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는 냉대 받는 기독교에 지쳐있다는 것이다. 이는 가나안 성도의 양산을 낳았다. 오늘날 비종교인 중 50%가 과거 교회를 다닌 적이 있다고 반응하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18 2010년 후로 선교동력이 힘을 잃 게 된 것은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 학복협 2022청년 트렌드 리포트
그렇다면 이시대의 청년들은 타문화선교에 대해서 아무런 의욕이 없는가? 2022년 학복협에서 발간한 청년 트렌드 레포트의 연구를 보면 앞서 다룬 내용과 상반된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전체 기 독대학생의 14.8%가 해외선교에 참여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 문항에는 “몇 주간의 단기선교여 행은 제외하고 직접해외선교사로 나갈 의향” 이라는 한정어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유의미하다. 이 통 계를 숫자로 환산하면 선교사역에 관심을 가진 청년의 숫자는 6만6천명을 훌쩍 넘는다. 여기에 해
외선교에 대한 응답자 세부특성을 고려하면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 경우의 선교헌신의향은 무려 25.5%에 달한다. 이 관점에서 다음세대선교동원을 접근하게 되면 선교자원의 고갈은 밭의 문제가 아니라 농부의 문제임이 드러난다. 청년 트렌드 리포트2022를 통해서 나타난 점은 청년들은 여전히 영적으로 목말라하고 스스로 우물을 파고 있는데 이들의 영적인 수요에 대한 교계와 선교계의 공급 이 여러 이유로 양자간에 제대로 매칭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청년 트렌드 레포트의 또 다른 발견은 예전과는 달리 모태신앙에 의해서 신앙이 전수되는 케이 스가 가파르게 증가되고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경우의 80%가 4-14살 사 이에 이루어진다는 4/14창 현상도 가속되고 있다. 2012년 조사에서 최초 교회 출석시기에 대한 질 문에 모태신앙이 27.9%였는데 2022년에는 68.7%가 되었다. 오늘날 대학이후 교회에 처음 출석하는 경우는 전체의 4.5%밖에 되지 않고 대학이후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경우는 13.9%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영접은 중학교이전에 이루어지는데 문제는 평소의 예배와 주일학교 교육에서 복음과 선교 를 접할 수 있는 일이 적다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계기는 주로 특별집회나 기도회가 차 지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기독청년들의 영접율이 2012년 63%에서 2022년 33.3%로 반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인데 이는 오늘날 교회안의 청년들 중 주님을 영접한 사람은 10명 중 3명에 불과하
17 예장통합/기아대책/목회데이터연구소 ‘코로나19이후한국교회 변화추적조사(목회자대상),2022.05.25. (예장통합소속교회 담임목사, 전국981명, 지앤 컴리서치, 2022.04.27.-04.30)
18 한국 비정규직 비율 OECD 평균2배 수준”# [동아뉴스] 2015. 5. 28
http://news.donga.com/List/EconomyJob/3/010010/20150528/71518050/1 2023. 6. 3 접속 가나안 성도의 속 마음 들여다보기”# [크리스챠니티 투데이] 2014. 10. 21
문상철 11p
다는 뜻이다.
청년 트렌드 레포트를 통해서 다음세대선교운동에 적용할 수 있는 통찰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신앙의 벨류체인 관리가 필요하다.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청년들은 모태신앙의 배경을 가 지고 있고 그들의 신앙은 14살전에 80%가 결정된다. 그러므로 복음과 선교를 어린나이 때부터 교회 안에서 가르쳐야한다. 둘째, 주님 영접과 선교 헌신의 촉발사건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영접은 14살전에 이루어지고 그것은 특별집회를 통해서였다. 그리고 영접한 경우 선교헌신의 의지 가 25%에 달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청년의 영접률이 10년전보다 반토막이 되었다는 것은 목회자들이 얼마나 깨어있어야 하는지를 잘 드러내준다. 셋째,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선교의 장을 제공해야 한다. 기독청년의 14.8%는 단기가 아닌 장기선교에 참여하고 픈 의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선교현장의 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오늘날 강의 듣 고 나누는 선교훈련은 있지만 청년의 입장에서 쉽게 선교현장까지 이어주는 선교사역의 기회는 많 지 않다. 5-60대의 선교사들이 주력인 상황에서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선교지에서 무언가를 펼칠 수 있는 일이 현실적으로 많지 않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94년에는 2-30대 선교사가 70%였다는 점이다. 우리가 새로운 혁신의 주인공으로 MZ세대들을 환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 스스로 미래선교의 문을 닫는 것과 다르지 않다.
Ⅲ. 결론
필자는 본 소고를 통해서 한국의 선교동원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88년 이후 지난 35년간 선교 동원의 추이를 살펴보았다. 선교동원은 선교계 내부만의 변수로 좌우되지 않는다. 교회가 자신이 속 한 사회 속에서 부름받고 보냄받은 선교적 정체성을 담지하고 있느냐가 다음시대의 선교동원에 영 향에 큰 영향을 끼친다. 선교동원은 세계기독교의 관점에서 교회와 로컬사회의 다양한 이슈가 포함 된 다맥락적 사고를 통해서 접근해야 한다. 지금까지 선교동원추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점은 과거 부흥기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선교자원들이 대거 헌신했지만 그 후는 이렇다 할 모멘텀없이 점차 힘 을 잃고 청년선교동원이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침신대 이현모 교수는 한때 뜨거웠던 선교자원의 열정이 식어버린 것에 대하여 Wind fall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지금까지 한국선교는 교회 성숙의 결과라기보다는 마치 바람이 불어서 사과열매 가 우수수 떨어진 것처럼 외부 바람에 의한 횡재였다는 것이다. 만약 선교가 교회의 본질이라면 정 직한 씨뿌림과 노고를 통해서 열매를 거두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의 발달과정에 따른 선교의 커리큘 럼을 두어서 주일학교 때부터 선교에대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함을 의미한다. 그 뒤 청년이 되었을 때 교회와 교단의 차원에서 청년들을 타문화선교를 경험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면 그들은 교회의 일군 이 되고 신학교의 학생이 되며 선교지의 사역자가 될 수 있다.
선교역사는 우상향을 통해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멸망과 포로기를 통해
서도 당신의 선교의 목적을 이루신다. 선교는 하나님의 언약과 도모하심이기 때문에 인간의 불순종
과 죄악이 막을 수 없다. 다만 성숙한 마음으로 속한 사회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사랑하 는 마음으로 다음세대에 복음과 선교의 씨를 뿌리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오늘날 우리가 다음세대 선교자원을 별로 거두지 못하는 것은 정직한 씨뿌림이 없었기 때문임을 돌아보아야 한다. 이현모는 이렇게 말한다. “성숙이 따라오지 못할 경우 선교는 남들이 하기 때문에 따라하는 유행이나 프로그 램이 되어 버리고 유행의 시기가 넘어가면 기울어지게 된다.”19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 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19 이현모[2016년 선교한국을 준비하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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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혜정, 엄기호 외 [노오력의 배신] 서울 : 창비 2016.5
문상철. 2016 [한국 선교운동의 지속가능성과 재활성화 연구] 서울 : GMF Press.
이현모 “2016년 선교한국을 준비하며” 표e Joy 2015 9,10월 호
최형근. 2012 “선교적 교회의 태동과 발전, 그리고 한국적 적용에 대한 소고” [선교적교회]
현대선교14, 서울 : GMF Press.
선교한국. 2015 [선교한국 미래를 위한 보고서]서울 : 선교한국. 이현모. 2007 [현대선교의 이해] 대전 : 침신대출판부.
“빚내서 몸키우는 한국 대형교회들” [시사저널] 2011. 7
“한국해외선교 어디에” [크리스찬 투데이] 2003.7
“가나안 성도의 속 마음 들여다보기” [크리스챠니티 투데이] 2014. 10
“연 수입..한국 소득 상위10%” [주간조선] 2014. 9. 29
“상위10%가 부66% 보유.. 돈이 돈버는 세상” [한국일보] 2015. 10. 29
“신앙 은행에 담보 잡히다” [복음과 상황] 2012. 2
다음 세대 선교 동원 – 어려운 세대인가? 새로운 세대인가? / 김성희 목사(학원복음화협의회 캠퍼스청년연구소장)
시작하며
청년선교가 중요한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한국선교의 미래를 위해서 청년선교는 필수적이 며, 다음세대 선교는 청년선교와 관계가 있음을 거의 모든 선교사와 전문가들은 동의할 것이다. 그런 데 한국교회 청년선교의 위기라고 한다. 한국선교계에서 청년선교사 비중이 작아지고 있다는 우려 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한마디로 청년선교가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선교연구원(KRIM)에서 발표한 2022년 말 기준의 장기선교사 연령 분포와 지난 30여 년의 선교사 연령 비율 변화를 보면 이러한 우려를 받아들일만 하다. 장기선교사의 연령 분포 에서 50대 이상이 65.50%를 차지하고 있으며, 60대 이상의 선교사는 26.52%를 차지하고 있다. 반 면, 30세 이하의 선교사 수는 7.98%이다.1 또 하나의 중요한 청년선교의 지표는 선교한국의 통계이 다. 1988년부터 한국의 청년선교운동을 견인해 온 선교한국의 최근 참석자는 2,000명 내외, 헌신자 수는 1,000명 내외로 나타났다.2
발제자에게 주어진 과제는 이러한 청년선교 상황에 대한 해석이다. 현재 청년선교는 어떤 황이 며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청년선교가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만들어 갈 것인가를 전망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어려운 세대인가, 새로운 세대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고 응답하고자 한다. 이 질문에 응답하기 위해서 인구통계학적 관점, 사회문화적 관점, 선교학적 관점에
서 정리하고자 한다.
- 인구통계적 관점에서
1) 통계청 총인구 조사에 나타난 청년층 인구와 종교 비율
우리나라는 10년 주기로 인구 총조사를 실시한다. <표1>는 1985~2015년에 실시한 30년간의 청 년층 종교 비율을 파악할 수 있는 통계표이다. 1985년과 2015년을 비교하면, 전체 인구가 8,632,737
1 KRIM, “2022 선교현황 최종보고서”, 2.
2 선교한국대회는 1988년에 시작한 청년학생선교운동으로 2021년 17회 대회까지 7만 명이 참석하였다. 11개 학생선교단체, 26개 해외파송단체, 9개 지 역교회가 함께하는 한국교회 연합선교운동이다. “선교한국 미래를 위한 보고서(선교한국, 2015)”와 “선교한국 8818+3”을 참고하면 전체 참석자 수, 국내참 석자 수, 헌신자 수 등을 파악할 수 있다.
명 증가하였는데 청년층에 해당하는 20~34세에 해당하는 인구는 오히려 1,887,526명 감소하였다.
전체 개신교인은 3,186,479명 증가하여 인구대비 3.65% 증가하였다. 반면에 청년층 개신교 인구는 오히려 304,909명 감소하였다.
청년층 종교 비율 변화 추이3
| 연령별 | 전체 인구 | 개신교 | 인구대비 개신교인 비율
(연령별) |
개신교인대비
연령별 구성비율 |
|
|
전체 |
1985년 | 40,419,652 | 6,489,282 | 16.05% | |
| 1995년 | 44,553,310 | 8,760,336 | 19.70% | ||
| 2005년 | 47,041,434 | 8,616,438 | 18.30% | ||
| 2015년 | 49,052,389 | 9,675,761 | 19.70% | ||
|
20~24세 |
1985년 | 4,245,090 | 756,395 | 17.82% | 11.66% |
| 1995년 | 4,304,378 | 915,230 | 21.30% | 10.45% | |
| 2005년 | 3,662,123 | 684,530 | 18.70% | 7.94% | |
| 2015년 | 2,955,135 | 533,428 | 18.10% | 5.10% | |
|
25~29세 |
1985년 | 4,070,408 | 682,293 | 16.76% | 10.51% |
| 1995년 | 4,137,913 | 749,886 | 18.10% | 8.56% | |
| 2005년 | 3,671,847 | 626,381 | 17.10% | 7.27% | |
| 2015년 | 3,012,538 | 518,165 | 17.20% | 5.36% | |
|
30~34세 |
1985년 | 3,115,238 | 560,091 | 17.98% | 8.63% |
| 1995년 | 4,230,239 | 816,395 | 19.30% | 9.32% | |
| 2005년 | 4,096,282 | 714,953 | 17.50% | 8.30% | |
| 2015년 | 3,575,537 | 642,277 | 18.00% | 6.64% | |
<표 1> 1985~2015년 청년층의 연령별 개신교인 비율과 개신교인대비 개신교인 구성비율
전체적으로 청년층 인구 감소 현상이 나타나는데 <표2>을 보면 지난 30년간 인구 구성비에 큰 변화가 있었다. 1985년부터 0~34세의 인구 비율은 68.88%, 60.09%, 49.99%, 39,90%로 감소하고 있다. 반면에 35세 이상의 인구는 1985년부터 31.12%, 39.91%, 50.01%, 60.1%로 증가했다. 이 기간 에 전체 인구에서 20~34세 인구의 구성비는 0~34세 인구 비율이 감소하는 것에 비례하여 28.28%, 28.44%, 24.30%, 19.5%로 감소하였다. 즉 한국 사회의 출산율 감소와 고령화 현상 등의 영향으로
1985년과 비교해 볼 때 2015년 한국의 전체 인구에서 청년층(20~34세)의 구성비율이 8.83% 감소 한 것이다. 전체 개신교인구 구성비율에서도 청년층(20~34세)의 비율은 1985년에는 30.80%에서 2015년에는 17.51%로 감소(13.29%)하였다. 개신교에서의 청년층 구성 비율은 전체 인구 구성비율 보다도 더 감소폭(8.83%<13.29%)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전체인구에서 같은 청년층에서 개신교인구 구성비율은 30년간 비슷한 비율(17.49%, 19.58%, 17.72%, 17.75%)을 유지하고 있는 것 으로 나타나 특이할 만하다.
3 KOSIS 국가통계포털, 「인구총조사」, https://kosis.kr/statisticsList/statisticsListIndex.do?arentId=A.1&vwcd=MT_ZTITLE&menuId=M_01_01에서 재구성.
청년층 인구 비율과 종교인구 비율 변화 추이4
| 연도 | 연령 | 전체 | 전체인구
대비비율 |
개신교인 | 해당연령
대비비율 |
전체 개신교인
대비비율 |
|
1985년 |
0~34세 | 27,841,890 | 68.88% | 4,662,737 | 71.85% | |
| 35세 이상 | 12,577,762 | 31.12% | 1,826,564 | 28.15% | ||
| 20~34세 | 11,430,736 | 28.28% | 1,998,779 | 17.49% | 30.80% | |
|
1995년 |
0~34세 | 26,771,525 | 60.09% | 5,449,289 | 62.20% | |
| 35세 이상 | 17,781,776 | 39.91% | 3,310,956 | 37.79% | ||
| 20~34세 | 12,672,530 | 28.44% | 2,481,511 | 19.58% | 28.33% | |
|
2005년 |
0~34세 | 23,516,903 | 49.99% | 4,467,653 | 51.85% | |
| 35세 이상 | 23,524,531 | 50.01% | 4,148,785 | 48.15% | ||
| 20~34세 | 11,430,252 | 24.30% | 2,025,764 | 17.72% | 23.51% | |
|
2015년 |
0~34세 | 19,569,894 | 39.90% | 3,835,516 | 39.64% | |
| 35세 이상 | 29,482,495 | 60.10% | 5,840,245 | 60.36% | ||
| 20~34세 | 9,543,210 | 19.46% | 1,693,870 | 17.75% | 17.51% |
<표2> 전체 인구 대비 청년층의 구성 비율(인구총조사)
아래 <표3>는 지난 30년간 4번의 조사에서 청년층(20~34세)의 주요 종교인구 비율이다.
청년층의 주요 종교 비율 변화 추이5
| 구분 | 개신교 | 불교 | 천주교 | 무종교/기타 |
| 1985년 | 17.49% | 19.95% | 5.09% | 57.47% |
| 1995년 | 19.58% | 20.40% | 6.00% | 54.02% |
| 2005년 | 17.72% | 19.00% | 10.60% | 52.68% |
| 2015년 | 17.75% | 10.20% | 7.50% | 64.55% |
<표3> 1985~2015년 주요 종교의 청년층 인구비율
개신교는 17.49%, 19.58%, 17.72%, 17.75%, 불교는 19.95%, 20.40%, 19.00%, 10.20%, 천주교는
5.09%, 6.00%, 10.60%, 7.50%의 비율을 보였다. 개신교와 천주교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으나 불교 는 절반 가까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의 인구통계학적 결과는 개신교의 17.75%는 불교, 천주교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현재 여러 종교 중에서 청년층의 선교에 비교적 선전(?)하고 있는 것은 개신교라고 볼 수 있다. 종교를 가진 청년층 인구의 절반 정도가 기독교인 것으로 나타났다.
요약하자면, 지난 30년간 전체 인구는 약 863만명 증가, 청년층에 해당하는 연령에서의 인구 는 약 319만명이 감소, 청년층의 기독교인은 약 30만명 감소하였다. 그래서 청년층 기독인의 비율은 17~18%대를 유지하고 있다.
2) 갤럽의 한국인 종교 실태 조사에 나타난 청년층 비율
4 KOSIS 국가통계포털, 「인구총조사」에서 재구성.
5 KOSIS 국가통계포털, 「인구총조사」에서 재구성.
갤럽 조사의 연령 기준은 통계청의 기준과 다르다. 2021년 갤럽리포트에 의하면 한국인의 종교
인 비율은 다음과 같다.
종교인 비율은 1984년 44%, 1989년 49%, 1997년 47%에서 2004년 54%까지 늘었으나 2014년 50%, 이번 2021년 조사에서는 40%로 줄었다. 2000년대 이후 종교인 감소의 가장 큰 원인은 청년층 에 있다. 2004년의 20대 중에서는 45%가 종교를 믿었지만, 2014년 20대는 31%, 2021년 20대에서 는 그 비율이 22%에 불과하다. 30대의 종교인 비율 역시 2004년 49%, 2014년 38%, 2021년 30%로 감소했다. 이러한 20·30대의 탈(脫)종교 현상은 종교 인구의 고령화와 전체 종교 인구 감소로 이어지 고 있다.6
이것을 도표로 정리하면 다음 <표4>와 같다.
종교인 비율(단위 %)7
| 1984년 | 1989년 | 1997년 | 2004년 | 2014년 | 2021년 | ||
| 종교인 | 44 | 49 | 47 | 54 | 50 | 40 | |
| 무종교인 | 56 | 51 | 53 | 46 | 50 | 60 | |
| 성별 | 남성 | 34 | 40 | 36 | 44 | 44 | 34 |
| 여성 | 53 | 58 | 58 | 63 | 57 | 56 | |
|
연령별 |
19-29세 | 36 | 39 | 36 | 45 | 31 | 22 |
| 30대 | 45 | 46 | 47 | 49 | 38 | 30 | |
| 40대 | 49 | 54 | 53 | 57 | 51 | 32 | |
| 50대 | 53 | 58 | 56 | 62 | 60 | 43 | |
| 60대 이상 | 68 | 59 | |||||
<표4> 1984-2021 종교인 비율
역대 청년층 종교인의 비율은 <표5>과 같다. 청년층의 불교인 비율은 5% 내외까지 감소하는 것
으로 나타났다. 천주교는 큰 변화 없이 5% 내외를, 기독교는 15~20%대를 유지하고 있다. 20대나 30 대 모두 2021년에 비종교인의 비율이 각각 78%, 70%로 갤럽 조사 중에서 해당 연령에서 최대치를 기록하였다. 점타 찰종교화, 비종교화 현상이 가속화되는 경향을 확연하게 보이며 최근 청년층에서 종교에 대한 무관심이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9~29세에서 개신교인의 비율은 14%로 조사 중에 서 최저치를 보였다. 그러나 타종교의 비율에 비하면 월등히 앞서는 비율이다. 30대에서는 불교의 감 소가 두드러지지만, 개신교는 소폭 감소로 나타났다. 2021년도의 경우, 19~29세의 종교인의 비율이 총 22%인데 개신교가 14%, 30대의 종교인 비율은 총 30%인데 개신교는 19%의 비율을 보여 청년 층에서 개신교인의 비율이 타종교 비율보다 월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6 갤럽리포트, 「한국인의 종교 1984-2021 (1) 종교 현황」, https://www.gallup.co.kr/gallupdb/reportContent.asp?seqNo=1208에서 요약.
7 갤럽리포트, 「한국인의 종교 1984-2021 (1) 종교 현황」에서 재구성.
청년층의 종교인 비율8
| 구분 | 19~29세 | 30대 | ||||||||
| 년도(년) | 1984 | 1997 | 2004 | 2014 | 2021 | 1984 | 1997 | 2004 | 2014 | 2021 |
| 개신교인 | 20% | 19% | 23% | 18% | 14% | 19% | 22% | 23% | 20% | 19% |
| 불교인 | 10% | 10% | 15% | 10% | 4% | 17% | 15% | 21% | 11% | 6% |
| 천주교인 | 5% | 6% | 6% | 3% | 3% | 7% | 8% | 6% | 7% | 5% |
| 비종교인 | 64% | 64% | 55% | 69% | 78% | 55% | 53% | 51% | 62% | 70% |
<표5> 1984-2021 청년층의 종교인 비율
3) 학원복음화협의 한국대학생 의식조사에 나타난 종교 비율
학원복음화협의회에서는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하여 대학생의 종교인 비율은 <표6>과 같다. 한때 청년대학생의 기독인 비율이 3% 정도라는 소문이 유포되기도 했으나 신뢰성 있는 전문조사기관에 서 연구조사 보고서를 통해서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여 청년선교를 감당하길 기대했다. 개신교 대 학생의 비율이 14.5%라는 조사 결과는 대학생과 대학원생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통계청의 총 인구 조사와 갤럽리프트의 종교 관련 보고서와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따라서 전문조사 연구 기관 들이 비슷한 수치의 통계를 내고 있다면 이에 근거해서 현재의 청년선교의 현황을 분석, 평가하고 대 안을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리라 본다.
청년대학생 종교 현황9
| 구분 | 사례수(명) | 개신교 | 천주교 | 불교 | 무종교 | |
| 2022년 | 학복협 | 1,000 | 14.5% | 4.9% | 6.6% | 73.7% |
| 2021년 | 갤럽 | 251 | 14.0% | 3.0% | 4.0% | 78.0% |
| 2020년 | 학복협 | 400 | 15.3% | 4.5% | 8.0% | 71.3% |
| 2017년 | 학복협 | 1,000 | 15.0% | 8.4% | 8.9% | 67.7% |
| 2015년 | 인구센서스 | 17.6% | 7.3% | 9.7% | 65.4% | |
| 2012년 | 학복협 | 1,000 | 17.2% | 7.3% | 8.8% | 66.7% |
<표6> 2022 청년트렌트리포트에 나타난 청년대학생 종교 현황
이상의 인구통계학적 흐름은 청년층에서의 종교적 흐름과 개신교의 위치를 잘 보여준다. 한국사
회에서 청년 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인해 양적인 측면에서 개신교 청년의 감소 현상은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청년층에서 개신교인의 감소는 일차적으로는 청년층의 인구 감소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으 로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러면서 청년층에서의 개신교인의 비율은 소폭 감소 내지 현상유지를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청년층에서의 개신교인의 비율은 타종교인의 비율과 비교해 볼 때는 상 대적으로 높은 비율임을 알 수 있다. 전반적으로 무종교인의 증가 추세에도 불구하고 개신교는 타종 교와 비교해서는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다. 그 이유는 40~60대 연령대에서의 개신교인의 증가에 따른 가정종교현상에 따른 결과라는 것, 교회 청년부와 선교단체의 캠퍼스 사역 등으로 다른 종교
8 앞의 책에서 재구성.
9 학원복음화협의회(2022), 『2022 청년트렌트리포트』, 177-178.
의 청년층 대상으로 하는 사역보다는 활발한 기독교라는 데서 찾을 수 있겠다.
- 2.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1) 대학의 변화
1980년 대학진학률은 27.3%였다. 그런데 1990~2005년 사이에 50% 가까이 크게 상승하여
2005년 82.1%로 최대치를 기록하였다. 2022년에는 고등학교에서 고등교육기관으로의 진학률이
73.5%로 나타났다.10 현재 한국의 일반대학은 190개, 전문대학은 144개, 대학에 다니는 학생 수는
312만 명이고 전임교원 수는 8.9만 명이다.11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매해 제공되는 교육 부 문에 대한 통계자료를 보면, 한국 청년층(25-34세) 대졸자 비중은 69.0%(OECD 압도적 1위, 평균 48.0%)지만, 장년층(55-64세) 대졸자 비중은 25.1%(OECD 평균 29.1%)이다.12 그 격차는 약 3배에 달한다. 이렇게 고등교육자 비율은 계속 상승하리라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표7>와 같이 우리나라 학령인구의 변화 추이를 살펴보면 향후 출산인구 감소로 인하여 대입 대상자가 급격히 줄어든다. 이 자료에 의하면 2014년도부터 대입 대상자가 대학입학 정원 60만 명 미만이 되었다.
학령인구 변화 추계13
| 구분(년도) | 학령인구
(6~21세) |
학령인구
(비율) |
초등학교
(6~14세) |
중학교
(12~14세) |
고등학교
(15~17세) |
대학교
(18~21세) |
대입
대상자 |
대학생 수 |
| 1970 | 12,604 | 39.1% | 5,711 | 2,574 | 2,101 | 2,218 | 609 | 201 |
| 1980 | 14,401 | 37.8% | 5,499 | 2,599 | 2,671 | 3,632 | 923 | 648 |
| 1990 | 13,361 | 31.2% | 4,786 | 2,317 | 2,595 | 3,633 | 920 | 1,691 |
| 2000 | 11,383 | 24.1% | 4,073 | 1,869 | 2,166 | 3,275 | 827 | 3,363 |
| 2010 | 9,950 | 20.0% | 3,280 | 1,985 | 2,084 | 2,601 | 695 | 3,644 |
| 2020 | 7,888 | 15.1% | 2,720 | 1,360 | 1,390 | 2,410 | 517 | 3,276 |
| 2030 | 5,943 | 11.7% | 1,590 | 1,150 | 1,321 | 1,874 | 470 | |
| 2040 | 4,468 | 8.9% | 2,085 | 1,017 | 916 | 1,176 | 259 |
<표7> 장래인구추계에서 정리한 학령인구 변화(단위: 천명)
대학은 구조조정과 유학생의 유치를 통하여 부족한 정원을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에 따른
청년대학생의 대학생활과 대학문화의 변화도 불가피하다.
오늘날 대학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학문공동체이자 상아탑으로서의 전통적 대학의 모습과 달
10 교육부,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분석자료집-유초중등교육통계편”(2022), 78. 여기에서 말하는 진학이란 4년제 대학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 고등 교육기관에 속하는 모든 대학을 말한다. 예를 들어 전문대학, 방송통신대학, 사이버대학, 기술대학, 기능대학, 원격대학 등의 진학도 여기에 포함된다.
11 교육부, “2022년 교육기본통계 주요 내용”, 18-28.
12 OECD, “Education at a Glance 2022: OECD Indicators”(2022), 38-39.
13 통계청 통계표, 장래인구추계(https://kosis.kr/statHtml/statHtml.do)에서 재구성(단위: 천명, %, 중위 시나리오)
리, 사회와 기업의 요구에 맞추어 변화를 요구하는 대학의 기업화와 실용성에 대한 갈등이다. 이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대학은 퇴출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대학의 경쟁력 확보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필수적 선결요건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대학은 명분/가치 중심에서 무게중심이 실용 중심으로 바뀌었다. 대학이 취업준비기관이 된 셈이다. 각종 고시생, 재수생, 반수생, 편입시험 준비생, 취업준 비를 위한 학원수강생 등이 양산되고 있다.
또한 기독교 대학도 그 건학 정신에서 벗어나 세속화의 경향을 보인다. 기독교대학과 일반대학 사이에 차이점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그것은 기독교대학이 자체의 철학과 본질을 스스로 포기하
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최초의 기독교 대학인 연세대학교의 건학정신, 연세이념, 정관 등에는 ‘진리
와 자유’(요 8:31~32)를 모토로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대학운영을 표방하고 있지만, 그 실상은 기독 교 정체성이 드러나기보다는 오히려 세계 100위권 대학 진입과 같은 대학의 명예와 많은 기부금을 끌어올 수 있는 교수들이 총장과 주요 보직을 맡는 등 돈의 논리가 더 우선시 되고 있다.
사실, 대학의 기원과 이념 속에는 교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곧 대학이 구체적으로 설립되기 이전부터 교회는 나름의 교육기관을 갖고 있었다. 곧 예비문답학교(Catechumental School)와 고급 문답학교(Cathedral School), 수도원 학교(Monastic School) 등이다. 초기 많은 대학은 신앙과 문화 의 종합으로 교회의 후원으로 설립되고 발전하였다. 그래서 과거의 대학은 기독교의 영향 아래 학문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대학은 당장 유용한 단기적 전문 기술을 넘어 평생에 걸친 삶의 방향과 지혜,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배우는 품성과 식견을 갖추도록 해야 할 것이다. 청년대학생들이 신자유 주의, 실용주의의 포로가 되어 한 사회나 국가에 필요한 교양과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익히는 교 육 환경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2) 교회의 위기
오늘의 한국 교회는 여러 영역에서 심각한 위기 가운데 있다. 무엇보다도 양적으로 감소 추세에 있다. 교회의 사회적 영향력과 신뢰도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사회는 문화적으로, 환경적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 이전에 거의 예상치 못한 엄청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최근에는 코 로나19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여전히 그로 인한 변수가 남아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교회의 위기가 청년선교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실제적인 지표는 요인은 ‘한국교회 신 뢰도’이다. 청년들에게는 상식이 통하지 않고, 기본을 거스르는 종교로 인식되어 교회의 위기를 자초 하고 있는 모습이다. 교회세습, 목회자의 성윤리 문제, 재정 비리, 분열과 다툼 등의 행태로 인하여 교 회를 등지고 있는 청년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2023년 2월 16일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주최한 “2023년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 발표회”에서 공유한 결과는 한국교회가 맞고 있 는 위기를 사회적 지표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조사 결과, 한국교회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는 ‘신뢰한다(매우+약간)’ 21.0%, ‘신뢰하지 않는다(별로+전혀)’ 74.0%로, 국민의 5명 중 1명 정도만이
한국교회를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14

이는 6차 조사인 2020년과 비교했을 때, 신뢰도가 10.8% 정도 낮아진 것이다. 6차 조사가 코로 나19 확산 직전인 2020년 1월에 조사된 것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전염병 확산에 대한 교회의 대응 이 한국교회 신뢰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온 것으로 추정한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 가장 신뢰하 는 종교는 가톨릭(21.4%), 개신교(16.5%), 불교(15.7%) 순이었다.15 2020년에는 가톨릭(30.0%), 불 교(26.2%), 기독교(18.9%) 순이었는데 이번에는 기독교가 약간 반등한 것으로 나타났다.16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에서 긍정의 인식보다 부정의 인식이 높았고, 이념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의 응답자 가 신뢰도가 높고(긍정 41.1%), 진보적인 성향을 보인 응답자일수록 신뢰도가 낮아지는 경향성(긍정 11.8%)을 볼 수 있다. 특히 무종교인 응답자의 신뢰도가 낮다는 것(긍정 10.6%)이 뼈아프다.
이러한 한국 교회의 위기 상황은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대학원의 지원자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을 통해서도 확인될 수 있다. 2021년도 입시에서 총신신대원이 1.44대 1, 장신신대원이 2.41 대 1, 합동신학대학원 1.20대 1, 그리고 고신신대원 1대1로 지원자가 입학정원을 간신히 초과했지만, 서울신학대학원(0.54대 1), 한신신대원(0.43대 1), 성결신대원(0.40대 1)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0.28 대 1) 등은 정원에 크게 못 미쳤다. 그런데 2013년의 입시 경쟁률은 총신신대원 2.56대 1, 장신신대원 3.28대 1, 합동신학대학원 2.31대 1, 고려신학대학원 1.84대 1, 서울신학대학원 1.23대 1, 한신신대 원 1.1대 1이었다.17 이와 같은 신학대학원의 입시경쟁률 하락은 사역자 질적 수준의 하락으로 이어 질 것이 분명하다.
14 기윤실, 『2023년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 발표회 자료집』(2023. 2. 16), 13-14.
15 기윤실, 『2023년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 발표회 자료집』, 22-23.
16 ‘한국교회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는 2008년 이후 이번 조사까지 총 7차례 조사했는데, 5차까지는 전반적인 신뢰도 문항에서 ‘보통’이 포함된 5점 척 도로 질문하였는데, 2020년도 6차 조사부터는 ‘보통’을 제외한 4점 척도로 질문하였기에 과거 차수와 직접적인 비교는 할 수 없다. 그러나 2022년 4월에 ‘사
귐과섬김 코디연구소’와 ‘국민일보’가 공동 의뢰하여 ‘지앤컴리서치’에서 조사한 ‘기독교에 대한 대국민 이미지 조사’에서 동일한 문항으로 측정한 한국교회 신뢰도가 18.1%였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7차 조사에서는 2.9%p 소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20년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기독교가 관련되면서 한 국교회 신뢰도가 급락하였는데, 2022년에 신뢰도가 소폭 반등한 것으로 추정된다.
17 김창훈, “뉴노멀(New Normal) 시대의 도래,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신학지남」 제 88호, 312.
3) 청년의 위기
MZ세대, 대략 1990년대 중반에서 201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청년들의 문화 이해, 사고방식 과 생활 태도는 현저히 변화하였다. 이들은 이전 세대보다 인터넷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없는 진정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라고 할수 있다. 이러한 친숙함은 MZ 세대만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 사회적 소통방식, 가치관과 행동양식 등을 낳았다. 이런 변화의 특징은 세 가지로 요약한다면, 1) 집단 중심 에서 개인 중심으로, 2) 지성-사고 중심에서 감성-감각 중심으로, 3) 명분/가치 중심에서 실용 중심 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러한 청년세대가 살아가는 한국 사회에는 해법을 찾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들이 있다. 서로 연 결되는 부분도 구분하면, 저성장 문제, 저출생 고령화 문제, 제조업 일자리 감소 문제, 젠더 갈등 문
제 등이다. “이는 기성세대에게도 영향을 미치지만, ‘MZ세대’의 관점에선 턱 밑까지 물이 차오른 것
처럼 삶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문제들이다.”18 청년 자체의 위기가 팽배해 있는 것이다. 학원복음화 협의회에서 진행한 2022 대학생 의식조사에 나타난 청년의 위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19
대학생의 경제 활동_무모한 투자인가 창의적 도전인가20: 대학생의 개인 빚(개인생활대출, 학자
금대출, 카드론 등)이 있는지 질문했을 때 17.3%가 ‘있다’라고 응답했다. 채무가 있는 경우, 금액은 ‘500~999만 원’이 27.7%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아울러, 대학생들의 경제 투자 활동을 조사했 다. 그 결과 ‘국내 주식 투자’가 44.8%로 매우 높았다. ‘해외 주식 투자’도 21.2%였으며, 요즘 주목을 받는 ‘암호화폐’도 16.3%가 하고 있어서 대학생들이 리스크를 동반한 투자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관심 있는 투자로 ‘주식’에 대한 관심이 53.2%, ‘부동산’에 대한 관심이 10.1% 로 ‘주식’에 대한 관심이 압도적이었다.
여전히 가장 큰 관심사와 스트레스는 취업21: 대학생들의 평소 관심사 가운데 ‘진로/취업’이 38.6%로 가장 큰 관심사였다. ‘취미 활동’(12.5%)과 ‘학업/성적’(12.1%)이 약 10% 초반대로 나타났 다. 요즘 고민을 질문했을 때 ‘진로/취업문제’라는 응답이 61.6%로 가장 높았다. 그다음은 ‘경제적인
문제’가 20.0%였다. ‘진로/취업문제’가 고민이라는 응답은 남자(58.1%)보다 여자(65.9%)가 더 많이 응답했는데, 여자의 취업 전망이 남자보다 더 어려운 현실을 반영하는 응답이다. 취업에 대한 스트
레스를 받는다는 응답은 77.6%였다. 남자(74.4%)보다 여자(81.5%)가 조금 더 취업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여자의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방보다 일자리가 많다고 알려진 서울 소개 학 생(83.3%)들이 오히려 취업 스트레스를 더 받고 있었다. 가정경제수준이 낮을수록 취업 스트레스를
18 양승훈, “MZ세대’는 한국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철학과 현실」 제132호, 87.
19 학원복음화협의회에서는 2012, 2017, 2022년에 전문연구기관에 의뢰하여 ‘대학생 생활 및 의식조사’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022년 조사의 총 표본은
1,548명이며, 121개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고, 표본 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P, 조사 방법은 온라인 조사(온라인 패널 이용)로 2022년 8월 17일~8 월 31일(14일간)에 진행되었다. 이 연구보고서는 “2022 청년트렌드리포트”(450쪽)라는 제목으로 학복협 캠퍼스청년연구소 정기간행물 특별호로 출간되었다. 20 학원복음화협의회, 『2022 청년트렌드리포트』, 75-81.
21 앞의 책, 57-58; 88-89.
많이 받아서 ‘하층’의 대부분(83.3%)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응답했다. 취업의 절박성이 더 크기 때
문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정서적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대학생 증가22: 현재 자기 삶에 대한 인식을 보면, ‘내 삶에 만족한 다’가 61.1%로 비교적 높지만, ‘거의 매일 피곤하거나 에너지가 생기지 않는다’(42.6%), ‘거의 하루 종 일 슬프거나 짜증 난다’(25.0%)는 응답을 보면 대학생들은 생활에 ‘만족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생활 속의 무기력과 스트레스가 상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자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 있다’라고 4명 가운데 1명(24.8%) 정도가 응답한 것을 보면 위기에 몰린 대학생이 적지 않다. 지 난 1년간 불안증/수면장애/우울증 등의 경험은 38.4%로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60.9% 는 아무런 도움을 받은 적 없다고 응답했고, ‘정신과 상담과 약 처방’(17.4%, 전체 대학생의 6.7%), ‘정신과에서 상담만’(13.3%), ‘학교 심리상담소’(12.5%)를 통해 고민을 해결했다. 가정경제수준 ‘하 층’(46.1%)과 ‘부모와 비동거학생’(49.2%)도 불안증/수면장애/우울증을 겪은 비율이 높았는데, 이들 의 공통점은 생활이 불안정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결혼과 연애, 성윤리 개방화는 현실23: 결혼 계획에 대해서는 ‘결혼할 것’ 31.1%, ‘결혼하지 않 을 것’, 18.3%,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음’ 49.9%로 결혼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 으로 나타났다. 결혼 적령기는 평균 31세라고 응답했다. 2017년에도 31세라고 응답했는데 같은 결 과였다. ‘결혼 전에는 순결을 지켜야 함’이 4.8%,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면 있을 수 있는 일’이 8.1% 로 결혼 안에서 성관계할 수 있다는 의견은 12.9%인데 비해 ‘사랑하는 사이라면 있을 수 있는 일’이 54.1%로 절반이 넘었고 ‘감정의 자연스러운 표현이므로 얼마든지 가능함’이 33.0%나 되었다. 87.1% 가 결혼과 상관없이 성관계할 수 있다는 태도였다. 성관계 경험이 있다는 학생이 43.3%였다. 남자 (47.3%), 가정경제수준 ‘상층’(52.1%), 부모와 비동거 학생(51.9%)의 성관계 경험률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개신교 학생의 성관계 경험률은 38.6%로 비개신교 학생의 44.1%보다 약간 낮았다.
이대남 현상? 분명한 남녀 차이24: 정치적으로 ‘보수’ 25.4%, ‘중도’ 52.1%, ‘진보’ 22.5%로 보 수와 진보가 거의 비슷했다. 2017년에는 진보가 보수보다 16.8%P 더 높았던 것과 비교하면 진보 는 12.7%P 감소했고 보수는 7.0%P 증가한 결과이다. 남녀 간에는 명확하게 갈리는데 남자는 보수 33.5%, 진보 15.6%로 보수가 진보보다 2배 더 높았으며, 여자는 진보 30.8%, 보수는 15.4%로 진보 가 보수보다 2배 정도 더 높았다. 여성 차별에 대해 ‘심각하다’는 응답이 40.1%, ‘심각하지 않다’는 응 답이 45.6%로 ‘심각하지 않다’가 약간 더 많았으나 큰 차이는 아니었다. 남성 차별에 대해서는 ‘심각 하다’ 46.4%, ‘심각하지 않다’ 36.7%로 ‘심각하다’가 9.7%P 더 높았다. 여성 차별에 대해서는 ‘심각하 다’ 40.1%, ‘심각하지 않다’ 45.6%인 것과 비교하면 응답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 차별도 심각하
22 앞의 책, 91-95.
23 앞의 책, 142-152.
24 앞의 책, 163-170.
고 남성 차별도 심각하다는 인식을 보인다.
4) 코로나19 이후 주요 변화
목회데이터연구소와 기아대책에서 발간한 『한국교회 트렌드 2023』은 10가지 트렌드 키워드를 제시한다.25 『한국교회 트렌드 2023』에서 제시하는 키워드를 재분류하면, 코로나 이후에 마주하게 될 한국교회의 상황과 해법의 방향성을 엿볼 수 있다. 영적 갈망(플로팅 크리스천),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 공동체를 추구(플로팅 크리스천, SBNR, 몰라큘 라이프, 하이브리드 처치), 급변하는 세대의 필요(액티브 시니어, 올라인 교육, 쫓아가면 도망가는 MZ 세대), 교회의 공공성(퍼블릭 처치, 기후교 회), 교회 양극화 극복(격차교회, 서바이블 목회) 등이다. 이 중에 청년선교와 깊이 있게 연결되는 두 개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는 ‘플로팅 크리스천’26의 출현이다. ‘가나안 성도’는 자발적으로 교회를 ‘안 나가’는 사람이지 만, ‘플로팅 크리스천’은 코로나19로 예배와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이 ‘붕’ 뜬 사람들이다. 플로팅 크리 스천은 출석 교회에 참석하면서 다른 교회의 설교를 듣는 ‘닻형’과 교회 등록은 했지만, 소속 교회나 다른 교회의 온라인 예배만 드리는 ‘부평초형’으로 나눈다. 특히 온라인 예배에 익숙해진 청년층이 부평초형 플로팅 크리스천이 될 개연성이 높다. 결국에는 가나안 성도와 이 부평초형 플로팅 크리스 천이 교회를 떠날 가능성이 있는 그룹이다.
둘째는 ‘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27 증가이다. 청년들에게는 이전에는 영적인 사람과 종교적인 사람이 같은 의미였지만, 이제는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을 수 있고 종교적이지만 영적이 지 않을 수 있다. SBNR은 교회에 가지 않지만, 하나님은 부정하지 않는다. 플로팅 크리스천이나 가 나안 성도를 합하면, SBNR은 개신교의 54.2%에 해당한다. SBNR의 특징은 첫째, ‘코로나 SBNR’ 로 방역 규제가 풀렸지만, 현장에 돌아오지 않고 온라인 예배만을 선호한다. 둘째, 개인적인 신앙생 활을 원하면서도 영적인 경험을 원한다. SBNR 중 영적 체험을 하고 싶은 사람은 62.6%나 되고, 개 신교인 중 34.0%가 교회에 출석하지 않지만, 영적인 경험을 원한다.
이상에서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대학의 변질, 교회의 위기, 청년의 위기, 코로나19 이후의 주요변 화를 살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청년선교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25 트렌드 키워드로 정리한 10가지 주제는 다음과 같다. 플로팅 크리스천, 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 하이브리드 처치, 몰라큘라이프, 액티브
시니어, 쫓아가면 도망가는 MZ 세대, 올라인 교육, 퍼블릭 처치, 격차교회 서바이벌 목회, 기후교회 등이다. 지용근 외, 『한국 교회 트렌드 2023』 (서울: 규 장, 2022)의 서문에서 재구성.
26 플로팅 크리스천(Floating Christian)이란 기존의 한국 기독교 문화, 고정된 신앙적 전통이나 가치, 특정한 교리를 따르지 않고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한 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으로 더욱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추구하는 크리스천을 말한다. 지용근 외, 『한국 교회 트렌드 2023』, 32.
27 SBNR은 영적인 것을 추구하고 지향하지만, 교회에 나가지 않은 사람들을 나타내는 단어로 과거에는 ‘가나안 성도’로 규정했다. 이들은 크리스천으로 서의 정체성을 교회 출석여부에 두지 않고 영성을 가졌는지에 두고 있으며 종교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고 영적인 것을 추구한다. 지용근 외, 『한국 교회 트렌 드 2023』, 58.
- 선교적 관점에서
청년들이 해외선교에 관심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선교에 참여하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한 것인 가? 청년대학생의 해외선교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 “2022 청년트렌드리포트”에서 기독대학생들은 ‘직접 해외 선교사로 나갈 의향이 있음(또는 다녀옴)’이 있다고 14.8% 응답하였다.
‘보내는 선교사로 재정 후원 의향(또는 하고 있음)’이 있는 경우는 19.1%였다.28 이 둘을 합한 33.9%의 청년대학생은 선교에 대해 적극적 태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추가로 조사한 선교단체에 서 활동하는 대학생들은 이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응답을 보였다. ‘직접 해외 선교사로 나갈 의향이 있음(또는 다녀옴)’이 30.7%였고, ‘보내는 선교사로 재정 후원 의향(또는 하고 있음)’은 42.8%로 전체 73.5% 정도가 해외선교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왜 청년선교가 어렵다고 하는가?
1) 잊혀진 부르심
청년들이 모이는 선교공동체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제자훈련일 것이다. 대학선교단체나 교 회 청년대학부에서 진행되는 제자훈련의 한계에서 선교의 한계, 선교의 변질을 찾을 수 있다. 제자훈 련이나 선교훈련은 단순한 주입식 교육을 넘어 개개인의 인격 변화를 추구하는 전인적 훈련이라는 점에서 유용하다. 문제는 이것이 개인 차원에서 머문다면 역동적인 청년선교의 장애물이 될 수 있다. 훈련을 통해 인격적인 변화를 경험한 청년대학생이 사회와 세상에 관심을 두고 일상에서 급진적인 제자도를 실천하면서 공동체에서 선교적 책무를 이행하는 것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안 에 개인경건훈련을 반복하면서 대부분의 에너지를 내부에서의 활동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우리를 구원하신 분의 온전하신 뜻이라고 할 수 없다.
학교, 대학, 교회를 방문하여 목회자만 모집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그리스도를 섬기 고 이웃을 섬길 수 있는 흥미로운 다양한 기회들을 청년들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 오로지 타문화 선교사가 되는 것에 최우선순위를 부여하는 선교 집회가 아닌, 안수 받 은 목사직에게만 집중하는 사역 집회가 아닌,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교가 폭넓음 을 보여 주고, 그것을 오늘날의 세상에 적용하여, 청년들이 기독교 선교의 측면에서 섬 기겠다고 조금도 거리낌 없이 헌신하도록 도전하는 선교 집회를 보고 싶다.29
이는 존 스토트가 선교를 정의하면서 “전도와 사회적 행동과의 관계를 동반자”라고 표현하는 것 을 제안하면서 하나님의 다양한 부르심(소명)에 응답할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최근에 한국교회 안 에 청년선교의 부진함을 지적할 때 그 기준은 전통적인 ‘선교사’이다. 청년들이 선교에 헌신할 수 있
28 학원복음화협의회, 『2022 청년트렌드리포트』, 230-231.
29 Stott, John R. W., 『선교란 무엇인가』, 37.
는 다양한 영역과 방법을 기존의 선교틀을 고집하다 보니 담아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온전한 부
르심으로 응답하는 개인, 공동체를 기대하자.
2) 선교의 변질
알렌 크라이더(Alan Kreider)는 세 개의 역사적 패러다임을 제안하는데, 크리스텐덤 이전(pre- Christendom), 크리스텐덤(pre-Christendom), 크리스텐덤 이후(post-Christendom)이다.30 그는 앤 드류 월스(Andrew F. Walls)가 주창한 새로운 문화권에서 선교가 시작될 때 요청되는 두 가지 원 리, 그 사회의 고유한 형식과 언어로 복음을 표현하는 ‘현지화(indigenous)원칙’과 모든 문화권에 공 동으로 도전하는 보편적 가치를 일컫는 ‘순례자(pilgrim) 원칙’에 동의한다. 특별히 크리스텐덤 이전 (pre-Christendom)의 기독교인은 외부적 압박에서든 습관적으로 ‘순례자 원칙’을 지치게 강조했고,
크리스텐덤 시대에는 기독교인이 ‘현지화 원칙’에 집중한 나머지 스스로를 구별해야한다는 사실을 망각했다고 진단한다.31 그의 주장은 크리스텐덤 이전에는 두 원칙 사이의 긴장을 유지하면서 외부인 들에게 매력을 발산하는 것으로 전도와 선교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분명한 회심을 위한 고백 이 있었고, 회심하면 고난받고 대가를 지불했다. 그런데 크리스텐덤 시대에는 선교의 변질이 일어나 서 기독인이 되는 것이 세상에서의 이익을 수반하는 것으로 되었다.
청년들에게 선교는 어떤 희생과 역할을 요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한국교회 선교 가 성장주의 토대 위에서 전개되는 부분에서 선교의 변질을 볼 수 있다. 해외 선교를 하는 것이 교회 에 더 효과적이라고 강조하는 현상이다. 이벤트화된 선교, 교회 성장의 방편으로 준비되고 진행되는 선교여행(?)이 그것이다. 선교 본질이 가지는 성육신적 삶은 명확한 대가를 치를 밖에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데, 오히려 자랑이고 영광이 되는 것은 변질된 것이다.
이러한 선교를 지금 청년대학생들이 긍정적으로 반응할 수 있을까? 르네 빠딜라(Rene Padilla)
는 현대 교회가 “불완전한 복음”, “수적 성장을 강조함으로 … 단순화시킨 복음”, “인위적인 소비자 대중을 위하여 편리하게 만들어진 복음”으로 복음의 본질을 변질, 왜곡시켰다고 지적한다.32 우리의 선교도 이러한 복음의 변질과 유사하다. 더 많은 만족을 줄 수 있는 세상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대 위임 명령에 기꺼이 응답하는 선교의 본질이 필요하다. 청년선교의 미래는 본질의 회복, 깊이 있는 성숙이 기본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마무리하며
현시대는 청년 세대에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청년의 범주, 청년층 인구, 청년들의 삶의
30 Alan Kreider, Worship and evangelism in pre-christendom, 허현, 고학준 역, 『초기 기독교의 예배와 복음전도 / 선교의 변질』(충청남도: 대장간, 2019), 162.
31 앞의 책, 141-142.
32 C. Rene, Padilla, Mission between the times: essays on the kingdom, 이문장 역, 『복음에 대한 새로운 이해』(대전: 대장간, 2012), 70-91.
환경 등이 급격히 변화하였다. 한국 교회는 과거의 잣대로 청년들을 평가하거나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한국 교회는 청년선교의 역사적 흐름을 냉철하게 평가하고 그에 기초하여 청년들의 삶의 자 리를 이해하고 청년 친화적인 자세를 가지고 청년선교에 임해야 한다. 다른 종교와 비교해서는 비교 적 청년선교를 잘 감당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변화 속에서 어떻게 청년선교를 수행해 야 할지 그 길을 차분히 모색해야 할 것이다. 한국 교회 앞에 높은 청년선교의 전도적 과제, 양육적 과제, 시대적 과제, 연합적 과제를 잘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 교회는 청년선교의 수원지이다. 그 수원지에서 맑고 깨끗한 물이 풍성히 흘러나오기를 기대한다.
“7.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 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8.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9.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
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10.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
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 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사사기 2:7~10)
1세대 여호수아와 갈렙 이후에 ‘다른 세대’가 일어났다는 기록이다.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 민족도 세대 차이가 있었다. 메시지 성경에서는 ‘새로운 세대’로 번역하였다. 일반적으로 한 세대가 지나가면 ‘다음 세대’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성경에서 ‘다음 세대’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다른 세대’라는 기록한 것에 주목하자. 여러 면에서 이전 세대와는 너무도 다른, 전혀 다르고 ‘새로운 세 대’가 일어난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청년 세대와 이들을 중심으로 하는 사역환경이 2000년대 이후로 급속히 변화하
였다. 어려운 세대가 아니라 새로운 세대가 일어났다. 다른 세대, 새로운 세대를 향한 선교적 사명이 주어진 것이다. 청년선교는 청년 자체와 그들의 문화에 대한 이해와 성육신적 소통과 공감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들과 그들을 향한 사역환경은 변화하고 있고, 수많은 변수에 의해 진화하고 있다. 선교 적 상상력으로 그들을 품고 사랑하는 일을 즐거이 감당하길 기도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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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der, Alan. Worship and evangelism in pre-christendom, 허현, 고학준 역, 『초기 기독교의 예배와 복음전도 / 선교의 변질』 (대전: 대장간, 2019). Padilla, C. Rene. Mission between the times: essays on the kingdom, 이문장 역 『복음에 대한 새로운 이해 대전 대장간』 (대전:대장간,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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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gallup.co.kr/gallupdb/reportContent.asp?seqNo=1208, 2023.05.07.
다음 세대 선교 동원 – 포도나무교회의 사례로 본 다음세대 선교동원을 위한 제언 / 박성민 목사(사단법인 청년선교 본부장)
■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포도나무교회의 청년선교와 해외선교 사례 Ⅲ. 다음세대 선교동원을 위한 제언
Ⅳ. 나가는 말
■ 키워드: 다음세대, 청년, 선교동원, 예배회복
- 1. 들어가는 말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21세기 교회연구소와 한국교회탐구센터가 2-30대 기독 청년 7백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기독청년들의 신앙생활 탐구’1에 의하면 기독청년 40.4%는 성경말씀을 지키고 살면 사회에서 성공할 수 없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최고의 가치는 돈이라는 것에 92%가 동의했다. 이와 같은 결과는 적지 않은 기독교 MZ 청년들이 물질만능주의와 자기중심적인 신앙관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은 청년선교 현장에서도 여실히 전해진다. 하나님은 그저 나의 필요를 채워주셔야 하는 분이며, 교회는 나에게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곳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이와 같이 신앙의 본질과 하나님 중심적인 신앙, 성경적인 가치관이 자리잡지 못한 기독교 MZ세대들에게 경제적 여건이 불안정하고, 헌신을 요하는 선교는 너무 먼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이렇게 볼 때 지금의 2-30대 선교사 파송 추이는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여진다(20대 0.88%, 30대 7.1%)2. 이들에 대한 근본적인 회복의 노력이 없이 선교동원의 결과를 기다리는 것은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 웅덩이에 바가지를 아무리 효과적으로, 전략적으로 퍼올려도 충분한 물을 얻을 수 없는 것과 같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고자 하는 청년들과 선교, 선교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1 2021 기독 청년의 신앙과 교회 인식 조사 세미나, 21세기교회연구소-한국교회탐구센터-목회데이터연구소
2 2022 한국선교현황보고, 한국선교연구원(KRIM)
청년들은 여전히 존재한다.3 우리는 이들을 위한 청년맞춤선교전략과 더불어 교회 안에 있으나
자기중심적인 신앙이 당연시 되어가는 다음세대들에게 예배의 회복과 메시지의 회복을 통해 신앙의 방향성 전환과 성장이 함께 일어나야 할 것이며 이에 대한 지역교회와 선교단체의 진지한 반성과 대안들이 이번 제 8차 NCOWE를 통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청년선교의 현재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패배의식과 무력감 그리고 안일함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현장에서 느끼는 바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의 다음세대를 포기 하지 않으시고, 지금도 놀랍게 일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이에 본 글은 지금도 주의 몸된 교회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며 청년선교와 해외선교에 전력투구하고 있는 포도나무교회의 사례를 살펴보고, 다음세대 선교동원의 적용과 제언을 하고자 한다.
- 2. 포도나무교회의 청년선교와 해외선교 사례
포도나무교회(담임목사 여주봉/ KW MA 운영이사회 이사장) 는 1994년에 개척되어 기독교한국침례회에 소속되어 있다. 포도나무교회는 다음 세대 사역과 해외선교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교회영구표어는 ‘오는 세대들과 열방을 책임지는 교회’이다. 수년 전부터 하나님께서 교회 전체를 다음세대 사역으로 전환하게 하셨고 이에 순종하며 따라나섰다. 그리고 이를 더 조직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2018년도에는 함께 연합하는 초교파 교회(새물결선교회)4들과 함께 (사)청년선교5를 설립하였다.
(사)청년선교는 한국 청년들의 5대 거점 지대인 군-캠퍼스-직장-해외선교-지역교회를 5축으로 정하고 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기 위한 역할을 하고자 한다. 청년들이 살아나고, 그들이 열방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군과 캠퍼스, 직장을 연결하여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십자가의 복음으로 양육하여 지역교회와 해외선교까지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각각의 톱니바퀴들이 움직여져야
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다음세대 선교동원’은 이 거대한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려 움직이게 될 때에야 비로소 거대한 동력이 전달되어질 것이다.
이 거대한 톱니바퀴의 첫 시작은 군선교부터였다. 2007년부터 군교회에 교역자를 파송하고 후원하는 사역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군사역은 파송, 세례(침례), 군종병 집체교육(사단, 여단, 연대), 찬양학교, 자매결연, 학군단신우회, 기타 섬김으로 확대되었다. 단순히 개교회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하기 힘든 일이었다. 전 군(문무대, 상무대, 부사관학교, 해군사관학교등)을 모두 섬기다시피 했기에
3 학원복음화협의회, 『2022 청년트렌드리포트』, 230-231.
- 새물결선교회 홈페이지 http://newwave.or.kr/
- 청년선교 홈페이지 https://ymission.org/
상당한 예산이 소요되었지만 교회에 직접적으로 얻어지는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포도나무교회는
작은 교회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때나 지금이나 대형교회는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앞서시고 원하시는 일이 분명함을 보며 합심하여 따라갔다. 그렇게 시작한 군선교는 현재 군선교사 6명을 파송하고 협력중이며, 전국 119개 학군단 75개소에 93명의 간사(2023년 6월 기준)를 파견하여 영적 리더십을 가진 학군장교를 양성하고 있다. 학군단 후보생들은 임관 후 관계하게 될 많은 용사(병사)들에게 영적 리더십을 발휘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될 것이다.
군선교가 시작된 이후 제대 장병들이 캠퍼스로 돌아가는 것을 보며 그들 역시 캠퍼스로 돌아가 세상적인 문화와 각종 이단에 뺏기지 않고 담아내기 위해 캠퍼스 선교(캠퍼스 선교단체 YMC / 학원복음화협회 준회원)를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되었다. 연합하는 초교파 교회들을 통해 자비량 간사들을 지원받았고, 현재는 전국 캠퍼스의 140여 개 캠퍼스에 151명의 간사들(2023년 6월 기준)을 세워서 섬기고 있다. 타학생선교단체와 다른 점은 캠퍼스 간사들 대부분이 연합하는 교회의 목회자, 목회자 사모, 성도들(장년, 청년 포함)이라는 점이다. 이는 타학생 선교단체들과 출발점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비량으로 캠퍼스에서 전도하고, 가입 학생이 생기면 그들을 십자가의 복음으로 양육하고 돌보며 지역교회로 연결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YMC학생들이 가입된 캠퍼스는 25개소이며 학생이 없는 캠퍼스에서는 간사들이 전도하고, 타선교단체와 같이 예배하며 해당 캠퍼스의 부흥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해외선교이다. 이렇게 훈련된 청년들을 해외 선교지에 보내어 1년 동안 훈련하고 하나님의 꿈을 같이 꾸는 영적리더십으로 세워가는 청년맞춤 선교훈련 ‘2+2 인턴선교사 플랫폼’을 전개하고 있다. 청년인턴선교사들은 1년의 단기선교기간과 사전 연수과정을 통해 영적 리더로 자라나고, 선교지의 젊은이들과 다음세대들을 변화시키는 열매들을 맺게 된다. 귀국 후에는 장기선교사 혹은 열방을 품으며 선교적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 제도의 시작점은 포도나무교회 청년인 최씨앗자매를 2년 단기선교사로 중앙아시아 Y국에 파송하면서부터였다. 현지 선교사의 지도 아래 훈련을 받으며 영어캠프인도와 주일 학교 및 지역봉사 사역을 했다. 이때 중점적으로 여겼던 것은 ‘사역이 아닌 훈련’이었다. 그럼에도 하나님 중심적 가치관, 십자가의 복음을 배우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 온 삶으로 동참하는 사역의
원칙을 현장에서 실천해 가자 인턴선교사의 활동 지평이 넓혀지는 동시에 후배 인턴선교사들을 보내는 계기가 되었다. 최씨앗 인턴선교사의 활동은 고령화된 선교 현장에서 젊은 세대를 섬기는 사역에 청년이 필요함을 더욱 실감하게 되었고, 선교 현장으로부터 이와 같은 청년들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2명의 포도나무교회 청년 인턴선교사를 추가로 1년간 파송하게 되었고
현지에서는 어린이 사역, 청년 사역이 더욱 활발히 일어났다. 김좌진(대학생) 청년과 안초롱(유치원 교사) 청년은 선배인 최씨앗 인턴선교사와 함께 6개월간 팀사역을 이루어 사역하게 되었다. 이들은 이슬람권 국가에서 주일학교와 청년공동체를 든든히 세우고 예배팀을 세웠으며 예배인도와 말씀사역, 성도가정의 심방, 지역봉사까지 선교사의 모든 사역을 훌륭하게 감당했다. 2017년 4월, 지역 아동을 대상으로 주중에 모임을 가지는 Kids English 수업이 1명으로 시작되었으나 2017년 하반기에는 평균 80여 명(최대 100여명)의 아이들이 몰려왔다. 해당 국가는 기독교인들은 아이들을 해친다는 편견이 있는 곳이었음에도 하나님의 일하심 앞에는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이렇게 시작된
초기 사역의 열매들로 ‘2+2인턴선교사 플랫폼’의 기틀을 잡는 계기가 되었다.
‘2+2 인턴선교사 플랫폼’은 청년 두 명을 한 조로 1년씩, 6개월 간격으로 지속적으로 파송함으로써, 한 곳에서 4명이 한 팀을 이루어 섬기며 온전한 선교사로서 모든 영역에서 훈련받고 사역하게끔 체계를 구축하였다. 핵심은 ‘사역이 아니라 청년세대의 인재양성’에 있으며, 이러한 선교 훈련을 토대로, 각 분야에서 선교적 마인드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꾼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2+2 인턴선교사들은 6개월이면 현지어로 간증하고 전도하며, 9개월 차에는 강단에서 현지어로 설교를 한다. 선교지의 언어를 집중적으로 배우고 훈련하는 것을 우선시하는 결과이다. 또한 4명이 팀사역을 감당하면서 인간관계와 리더십, 팔로우십을 훈련한다. 그리고 지도선교사의 훈련으로 자기 관리와 인성, 인격의 성장, 신앙의 성숙, 비전의 발견, 주님과 동행하는 훈련등 개인적, 신앙적으로 큰 성장이 일어나게 된다.
이 제도의 핵심은 ‘사역이 아니라 훈련’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자세와 신앙의 본질을 훈련하고, 결국 ‘아버지의 일이 나의 일’이라는 마음으로 가지게 되는 청년들을 통해 놀라운 하나님의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초기에 다녀온 4명 중 3명이 장기선교사로 자원하였고, 그 외 청년들도 귀국한 이후에 학교, 직장, 선교단체등에서 열방을 품고 선교적 삶을 살아가며 지속적인
열매를 맺고 있는 등 이 프로그램이 청년들을 근본적으로 하나님께로 돌이키며 한국선교에 큰 동력이 될 전략임을 확인하고 있다.
포도나무교회부터 시작한 ‘2+2 인턴선교사’는 연합하는 지역교회들에서도 청년들이 지원하면서 코로나 이전까지 24명의 청년들을 파송하였으며, 올 8월에 2명을 대만으로 파송하는
것을 시작으로 다시금 해외선교의 톱니바퀴가 돌아가게 된다. 세계 250개 지역에 매년 1,000명의 인턴선교사 파송을 목표로 기도하고 있다.
‘2+2 인턴선교사 플랫폼’ 사례는 2017년 11월, 강원도 속초에서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주최로 열린 제16회 한국선교지도자포럼 (주제 : 한국선교의 변곡점)에서 발표되어 큰 호응을 얻었다. KWMA 조용중 전 사무총장은 마무리 강연에서 한국교회의 청년들을 1년~2년 선교지에
보내는 것이 청년들에게 매우 유익한 시간이며 한국교회를 살리는 길이라고 강조하며 이 ‘2+2
인턴선교사 플랫폼’의 사례가 우리 한국교회의 하나의 운동으로 일어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듬해 2018년 6월, 부산 수영로교회에서 한국세계선교협의회 KWMA 주최로 열린 2018
세계선교대회 및 제7차 세계선교전략회의(NCOWE VI)에서는 포도나무교회 담임목사이자 (사)청년선교 이사장인 여주봉 목사가 ‘4차 산업 혁명시대의 청년선교 플랫폼, 2+2 인턴선교사’를 발표하면서 또 한 번의 호응을 얻었다. 이날은 당시 2+2인턴선교사 파송예정이었던 청년(4기, 5기)들이 전 세계에서 모인 선교사들에게 블레싱을 받았으며 포도나무교회는 선교 모범 교회로 선정됐다.
이외에도 서울시 등록 비영리민간단체(NGO) 아프리카 프로젝트를 세우고 문화, 농업, 기술, 의료지원, 학교설립, 구제활동을 아프리카의 필요를 채우는 일을 감당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마다가스카르에 부교역자를 선교사로 파송하고, 양계장 사업으로 현지인들에게 먹거리를 제공하고 복음을 전하는 사업을 위해 교회 성도들로 구성된 TF팀을 꾸려 준비 중에 있다.
최근에는 필리핀 바타안 지역의 4만평의 대지에 아시아 선교센터를 건립 준비에 들어갔다. 선교센터가 지어지면 필리핀 현지 목회자 및 신학생 신학교육, 국내외 목회자 및 성도의 훈련, 다음세대 영어 연수등 아시아 선교의 전초기지가 될 전망이다. 지역의 리양 초등학교에는 절대빈곤층의 아이들에게 15년 동안 급식후원과 성경공부 사역을 진행해 오고 있다. 이 섬김으로 아이들, 지역교회에 크고 작은 열매가 맺어지게 되었다. 또한 MK 수련회를 침례교단 해외선교부(FMB)와 공동으로 준비하고 섬기고 있으며, 모 대학의 MK 학생들에게 장학금 후원 일부를 하고 있다.
이러한 일에는 앞으로 포도나무교회 청년들 뿐 아니라, 한국교회 청년들을 초청함으로써 이들에게 전인적인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고 더 나아가 국가적 차원에서 글로벌 인재가 양성될 수 있도록 든든한 징검다리 역할 또한 감당하고자 한다.
이와 더불어 포도나무교회는 MZ 청년세대뿐 아니라 청소년과 알파세대를 담기 위해 모판에 볍씨를 심고 못자리를 준비하는 사역들을 하고 있다. K-Mission(1~13세 어린이 사역)와 T-Mission(14~19세 청소년 사역)이 그것이다. 이들을 철저히 십자가의 복음으로 훈련하고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도록 지속적으로 가르치고 훈련한다. 나아가 성경적 세계관으로 무장되어 각 삶의 영역에서 선교적 삶을 살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T-mission에서는 문화, 예배사역의 일환으로 10대들 중심의 찬양팀인 ‘NewWineskins’을 구성하고 자작곡으로 직접 싱어, 악기, 촬영, 편집을 하며 유튜브6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의 찬양 ‘내 처음과 마지막’은 2021년 발매된
CCM 2,000곡 중 최고의 곡 30위에 올랐다(CCM공방선정).
K-mission 역시 포도나무 아동부 교사들이 직접 작사, 작곡한 곡들로 찬양과 안무 영상을 만들고 ‘회복과 부흥의 세대’ 찬양음반을 정식발매 하고 유튜브를 운영 중이다.7
또한 절대적인 진리를 부정하는 포스트 모더니즘, 창조를 부정하는 진화론 등을 배우는 다음
세대들을 품을 교육기관의 필요성을 느끼며 기독대안교육기관인 새물결기독학교8 (New Wave Christian School)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설립 및 운영 중이다. 새물결기독학교는 십자가의 복음에 기초로 성경적 가치관과 기독교적 세계관을 갖추도록 자녀들을 교육하고 영성, 인성, 지성이 균형 있게 자리한 창의, 융합적 사고를 겸비한 미래리더양성을 목적으로 한다. 또한 무분별한 미디어 시청을 통해 오염된 세계관에 물들지 않도록 미디어 절제훈련(미디어사용 계획서 작성)을 실시하고 있다. 글로벌 비전트립을 통해 2+2 인턴선교사 플랫폼 선교지를 방문하여 몇 년 후 선배들처럼 자신들도 인턴선교사로 나갈 것을 꿈꾼다. 이렇게 교육받은 졸업생들은 대학교에 가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이들은 분명 차원이 다른 세대로 자라나고 있다. 현재 130여 명의 초중고 학생들과 60여 명의 교직원들이 함께 하고 있다. 현재 고등학교 과정까지 운영되고 있는 새물결기독학교는 앞으로 새물결국제기독학교(NWICS)와 새물결대학교를 세우는 것이 목표이다.
또한 영유아, 유치 대상 교육을 위해서 포도나무 선교원을 운영 중이다. 독일 칼비테 목사의 교육법을 모델로 한 창조론적 발달과정에 근거해 영적, 지적, 정서적 각 영역을 계발하는 전인적 교육을 조기에 실시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교회가 추구하는 신앙의 본질에 바탕한 신앙, 인성, 지성을 훈련하여 다양한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 민족, 열방을 섬길 인재가 되도록 돕는 것이 목표이다. 1-4세까지는 엄마들이 모두 나와 공동육아를 하고, 수업 역시 정식 교사들 외에도 학부모들의 전공을 살려 재능기부 형식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이는 선교원 운영 재정을 줄이는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경력이 단절되고 신앙의 공백기가 생기며 우울증을 겪는 엄마들에게 활력이 되며 영적인 공동체가 형성되는 효과를 낳게 되었다. 인구절벽을 넘어 국가소멸의 소리가 들리는 이때에 이와 같은 방식의 선교원들이 운영되면 효과적인 저출산대책이 될 수 있으며 교회의 허리세대인 20~40대 엄마들 뿐 아니라 아빠들까지도 더욱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다음세대 교회개척 프로젝트(Next Generation Church Planting Project/NGCPP)를 연합하는 새물결선교회와 함께 실행하고 있다. 교회는 다음세대를 중점적으로 품고 신앙의 본질부터 훈련하는 것이 중요하나, 그것을 위해서는 앞으로 이들을 섬길 영적리더들, 젊은 목회자들부터 올바른 가치관과 비전을 품고 다음세대의 중요성을 공유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적지
7 K-Mission 공식 유튜브 https://www.youtube.com/@k-mission401/featured 8 새물결기독학교 홈페이지 http://www.nwcs.kr/
않은 젊은 신학생과 전도사의 경우 주일학교와 중고등부, 청년부는 장년을 섬기기 이전에 잠시
맡겨진 역할, 징검다리와 같이 여기는 경우들이 있다. 이에 2020년 2월 젊은 목회자와 신학생을 위한 십자가와 성령컨퍼런스를 열고 다음세대 교회개척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올해 2월부터 2-30여 명의 젊은 목회자들(80년대생 이하)을 2년 과정으로 훈련하고 있다. 이 과정을 마친 목회자들은 심사를 거쳐 군선교, 캠퍼스선교, 해외선교등을 통해 돌이켜진 청년들을 다시 담아내고 영적 재생산이 이루어지도록 캠퍼스 주변에 개척을 돕고 지원하며 초교파 교회들이 협력하는 프로젝트이다.
이와 같이 포도나무교회는 초교파 지역교회들과 연합하여 (사)청년선교를 통해 군, 캠퍼스, 해외선교등으로 연결된 청년세대들에 대한 거대한 톱니바퀴를 돌리는 일들과 다음세대들인 청소년, 어린이들부터 십자가의 복음과 성경적 가치관 위에 세우는 일에 힘쓰고 있다. 이 모든 사역을 통합하여 ‘오세예(오는 세대들과 세계를 예수님께로)’라고 명칭한다.9
포도나무교회가 하나님을 위하여 전심으로 함께 따라갈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호6:6)을 신앙의 핵심으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에 대한 순수하고, 온전한 사랑이 없이는 전심으로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고 따라갈 수가 없으며 여전히 내가 중심이 되어 하나님을 찾게 되면 그분의 말씀에 부분적으로 순종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어느 순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놓칠까 주저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도나무교회는 다윗(시27:4)처럼 매일, 매주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찾고, 임재 가득하고 역동적인 예배를 추구하며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다.
- 다음세대 선교동원의 적용 및 제언
앞선 사례연구를 통해 보듯이 우리는 다음세대 선교동원에 있어 근본적인 뿌리, 못자리부터 다시 정비하여 체계적으로 빌드 업(Build-up) 해가야 할 것이다. 선교는 대형교회나 역사 깊은 선교단체처럼 역량과 자원이 있어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위 사례처럼 교회의 유익부터 살피며
접근하지 않고 이것이 ‘아버지의 일이기에 나의 일’이라는 자세로 동참할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감당할 자원을 뒷받침해 주시는 것임을 보게 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신앙의 방향성을 먼저 회복하고, 하나님께서 각 교회와 선교단체에게 원하시는 다음세대 사역이 무엇인지 기도하며 주시해보아야 할 것이다. 군선교, 캠퍼스선교, 직장선교, 문화선교, 청소년, 어린이, 대안학교운동, 선교원 설립운동, 다음세대 목회자 훈련 등 지역교회와 지역교회, 지역교회와 선교단체, 선교단체와 선교단체가 연대하여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하고, 모두가 한 마음으로 다음세대의 거대한 톱니바퀴를 돌리는 일에 힘을 모을 때이다.
9 https://www.오세예.kr/
우선 지역교회와 선교단체가 힘을 모아 시작할 수 있는 ‘청년단기선교운동(선교지에서의 1년
생활)’을 한국교회에 제안한다. 지역교회가 청년세대들을 훈련하여 영적리더십을 성장시키고, 직접적으로 선교를 접하고 장기선교사나 선교적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세워가는 전략으로서 두드림투게더 무브먼트 (Do-dream Two-gether Movement) 이다.
1) 두드림투게더 무브먼트 Do-dream Two–gether Movement (2+2 인턴선교사 훈련 플랫폼)
두드림투게더 운동은 청년 맞춤형 해외 단기선교 플랫폼(2+2 인턴선교사 플랫폼)이다. 이를 기획하고 진행 중인 (사)청년선교에서는 이 청년 맞춤형 선교운동(Mission Movement)을 한국 교회에 널리 알리는 동시에 각교회 간 유기적이고 창의적인 상호협력 및 동참을 유도하고자 한다. 250개의 국가(지역)에 매년 1,000명의 청년들이 파송되는 것을 목표로 하며 한국교회가 함께 움직이고 연합할 때 다음세대 선교동원뿐 아니라 근본적인 다음세대의 신앙회복이 일어나게 될 것을 기대한다.
① 두드림투게더 운동의 핵심은 청년세대들의 훈련이다
청년 2명을 한 조로, 1년씩 6개월 간격으로 지속적으로 파송하여 한 곳에 4명이 한 팀을 이루어 섬기게 한다. 현지 지도선교사의 지도 아래 언어와 문화, 관계와 리더십등 모든 영역을 배우고 성장하는 것을 추구한다. 그래서 두드림투게더의 핵심은 사역이 아니라 청년세대들의 ‘훈련’에 있다. 사실 청년들은 선교‘동원’이라는 단어조차 싫어한다. 그들이 소모되지 않고 신앙적으로, 기능적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중점 목표이다. 자기중심적이고 희생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세대인 그들에게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이 짐이 아니라 특별한 초청이요 축복임을 먼저 맛보게 하고 성장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면 하나님을 살아계심을 맛본 그들은 누구보다 자발적으로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위해 온 삶으로 동참하는 것을 보게 된다.
아래는 인턴선교사들의 생생한 간증이다.
▶ 2+2 인턴선교사 7기 최나리 자매 (Y국): “저는 선교를 최고로 거룩한 사람만 가능한 것이라 생각했기에 ‘나는 선교를 못할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훈련 이후 선교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유일한 이유’라고 확신하게 되었어요.”
▶ 2+2 인턴선교사 4기 이잎새 자매 (Y국): “ 보물 찾기를 하는 시간이었다고 표현하고 싶어요. 하나님 나라를 궁금해하며 하나님께 묻고, 성경을 공부하고, 하나님의 실제를 경험하면서 마치 보물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렸어요. 복음이 무엇인지부터, 나는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인지, 예배가 얼마나 소중한지, 한 영혼이 얼마나 소중한지 등 정말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1년의 시간을
대가지불이라고 생각했는데 받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 2+2 인턴선교사 7기 배중손 형제 (A국): ‘하나님께서 나의 중심을 깨뜨리시고 빚으시다’이 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턴선교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선교에 대한 벽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들에게 훨씬 높게 느껴졌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2+2 인턴선교사로 단기선교를 경험하고 나면 선교는 특별한 자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면 부족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공통적으로 고백한다. 선교의 벽을 낮추고 그들이 단기선교로 선교를 경험해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② 재정지원
우리는 이들 을 위해 장기 선교사처럼 지원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들이 쉽게 선교라는 문을 두드리기가 어렵고, 그럼 훈련을 통해 성장을 맛보기 이전에 돌아서게 된다. 포도나무교회에서는 처음에는 1명당 현지 생활비 월 1백만 원씩을 지원했다. 당연히 예산이 많이 소용되지만, 다음 세대를 살리는 일이기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지금은 한국교회 전체를 대상으로 이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100%가 아닌 현지생활비 필요액의 일부(최대 월 50만 원)를 매칭펀드로 지급한다. 나머지 필요액(국가마다 상이함)은 본인이 소속 교회, 가족, 지인 등을 통해 모금할 수 있도록 소속 교회(교회 해외선교위원회)와 협력한다. 그리고 인턴선교사들을 지도, 훈련하는 지도선교사님에게도 매달 50만 원을 지원한다.
③ 두드림투게더의 목적은 훈련이지만, 선교지에서 놀라운 사역의 열매가 맺어진다.
이 선교운동의 초점은 청년들의 훈련에 있다. 6개월 간격으로 파송되기 때문에, 초반 6개월은 먼저 파송된 선임 인턴선교사로부터 팔로우십을 배우게 되고, 6개월 후에는 선임이 되기 때문에 리더십을 배우게 된다. 1인가구 시대, 나노시대로 1인 생활에 익숙한 청년들이 함께 숙식하며 의견충 돌도 일어나지만 하나님 안에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지혜롭게 문제를 풀어가며 공동체 생활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현지 언어를 현지어학당에 등록해서 집중해서 배우고, 지도선교사에게도 도제식으로 신앙양육을 받게 된다. 가기 전에는 연수과정을 통해 글로벌 매너와 에티켓, 미디어콘텐츠 활용법도 배운다.
그런데 프로젝트를 운영하며 놀랐던 것은 훈련과 영적성장을 우선시하지만 오히려 현지 사역의 열매들이 놀랍게 맺어지게 보았다. 청년들이기에 K-문화에 관심이 큰 현지 청년, 중고등학생이 마음을 열고 다가오게 되며 캠퍼스에서도 전도의 열매들이 맺어져서 선교지 교회 안에 청년부가
생기기도 하였다. 기독교인들을 경계하는 중앙아시아 Y국에서는 아이 한 명을 시작으로 동네아이들
전체가 줄을 서서 교회를 찾으며 어린이사역의 부흥이 일어나기도 했다.
< 사례 >
▶ 2+2 인턴선교사 3기 윤봉길 형제 (Y국) : 사역 가운데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보며 정말 놀라웠습니다. 제가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사역은 내가 십자가의 복음 위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④ 청년인턴선교사는 해외, 지역교회, 캠퍼스로 연결되고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많은 청년들의 경우 수련회등을 통해 경험한 뜨거운 열정과 헌신이 오래가지 못하고 금세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버리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하지만 두드림투게더 인턴선교사들은 신앙과 삶의 여러 분야에서 훈련받고 세워져 있기에 1년의 시간을 마치고 귀국한 이후에도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을 본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인턴선교사들이 장기선교사로 헌신하도록 강요하거나 바라는 것이 아님에도 적지 않은 인턴선교사들이 스스로 장기선교사가 되기를 선택하고 훈련 중이며 학교, 직장, 교회에서 영적리더십으로 동료와 후배들을 이끌고 있음을 본다. 그리고 청년선교의 캠퍼스, 학군단신우회 간사로 지원하며 거대한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일에 함께 힘을 모으고 있다.
< 사례 >
▶ 지역교회로 – 4기 윤봉길 : 포도나무교회 서울처소 담당자로 세종대와 한양대 YMC간사로 섬기며 주변 캠퍼스의 대학생(외국인 유학생)과 교제, 성경공부를 하며 지역교회로 인도하고 있다.
▶ 선교지로 – 1기 김좌진 : 귀국 후 일본 나라현 천리대학교로 교환학생으로 갔고 그의 전도로 일본인 청년들이 현지 교회로 모이게 되었다. 이를 본 현지 선교사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감탄하며 ‘청년이 청년을 부르고 있다’고 하였다. 지역교회에서 일본인 다음세대예배를 섬기며 일본 장기선교사를 준비 중이다.
▶ 캠퍼스와 군선교로 – 7기 최나리: 캠퍼스 선교단체 YMC와 학군단신우회(백석대) 간사로 지원하여 청년들을 양육하고 섬기고 있다.
2) 장, 단기 선교훈련 프로그램과 현지 단기 인턴선교사 활동영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 구축
2+2 인턴선교사 플랫폼과 같이 청년 단기선교 파송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는 선교단체들과 자체적으로 단기선교훈련을 기획하고자 하는 지역교회에게 함께 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한다.
지난 2023년 2월 17일, KWMA 본부에서 ‘청년인턴십 설명회’가 개최되었다.10 (사)청년선교의
두드림투게더를 포함하여 OM, SIM, IMB, OMF, 콤케드에서 진행중인 단기선교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이 설명회에 지역교회 청년사역자들이 참석을 하였으나 더 많은 한국교회 청년사역자들과 청년들에게 소개되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정작 선교단체 소속 사역자나 청년 사역자라 해도 본인의 단체와 교회의 선교프로그램 및 훈련외에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또 일일이 상세정보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러다가 자원자가 생겨도 모집기간을 아쉽게 놓치는 경우도 생긴다. 실제로 최근 선교에 대한 마음이 생긴 한 청년은 선교사가 되려면 어떻해야 하는지, 어디서 상담을 받아야 하는지 정보를 찾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이에 선교에 관심이 있는 청년들과 청년사역자, 선교단체 관자자들 누구나 한 곳에서 정보들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개설한다면 청년들에게는 높아보이는 선교에 대한 장벽을 낮출 수 있고, 또 효과적으로 안내할 수 있을 것이다. 물건 하나를 구매하더라도 꼼꼼히 따져보고
똑똑하게 구매하는 ‘체리 슈머’(cherry Sumer)성향을 가진 MZ에게는 이러한 플랫폼은 선교를 더 잘 비교하고 생각해볼 수 있게 하고, 또 동료들에게도 소개할 수있는 곳이 될 것이다. 선교에 크고
작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청년들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11
이와같은 온라인 플랫폼은 KWMA와 같은 협의체가 우선 중심을 잡으며, 동참할 지역교회와 선교단체를 모집하여 운영방안을 논의할 것을 제안한다. 장, 단기 선교훈련 과정과 프로그램이 있는 모든 교회와 선교단체들이 각자 게시와 관리하여 모집기간과 홍보자료를 나눌 수 있는 장으로 활용되길 바란다.
또한 여기에는 관련 정보 외에도 각 선교단체에서 파송 중인 MZ 단기선교사들의 ‘선교지
VLOG (비디오와 블로그의 합성어)’나 ‘영상 기도편지’를 제작하여 올릴 수 있도록 하면 선교의 벽을 높게만 생각하는 있는 MZ 기독청년들이 선교는 오지에서 성자들만 하는 것이 아니구나를 눈으로 보며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실제 2+2 인턴선교사 1기 김좌진 형제는 TV프로그램에서 만년설을 보고 선교지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고 한다.
요즘 유튜부에서 가장 많은 구독자를 얻고 MZ들이 호응하는 카테고리 중 하나가 ‘해외여행 유튜버’ 들이다. MZ세대들은 그것을 보고 해외여행을 꿈꾸고, 계획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에게 MZ 단기선교사들의 브이로그를 보며 랜선 선교여행을 하며 관심있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놓으면 만들어내는 MZ 인턴선교사들도 즐겁고, 그것을 보는 MZ 청년들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함께 보며 기도도 하고, 또 도전해볼 마음을 가지게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두드림투게더(2+2 인턴선교사 플랫폼)에서는 올 8월에 파송할 인턴선교사들에게 미디어 활용법을
10 국민일보, 「청년 선교단체들, 인턴십 활용 ‘MZ선교사’양성한다」, https://v.daum.net/v/20230220030511029
11 학원복음화협의회(2022), 『2022 청년트렌트리포트』,
연수하여 이것을 적용할 예정이다.
온라인 플랫폼 구축 보다 조금 더 가볍고 간편하게 바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오픈채팅방’이다. 물론 온라인 플랫폼보다는 자료를 모아두고, 검색하는 데에는 기능이 떨어지지만 개설이 쉽고 접근성이 좋은 장점이 있다. 최근 온라인 사역단체 ‘교회친구다모여’에서는 실명제 오픈채팅방을 개설하였는데 여기에는 한국교회를 섬기는 다양한 사역자들이 모여 자료도 나누고, 고충상담을 하는 등 교류가 이어지고 있다. 찬양사역자방에는 1300명, 다음세대 교역자방에는 1200명, 미디어사역자방에는 1100명, 담임목사들이 ‘요셉의 창고’방에도 600여명이 모여 이들 모두를 합치면 5000명 규모 수준이다. 한국교회에 전에 없던 공식적인 초대형 커뮤니티라고 볼 수 있다. 오픈채팅방은 신청제이며 이단가입방지를 막기 위해 실명제로 운영중이다.12
요즘 남녀노소 누구나 사용하는 중고거래장터 ‘당근마켓’, ‘번개장터’를 통해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동네 상권까지 살리고 있는 온라인 플랫폼이 전연령대에 사용되고 있듯이, 한국교회와 선교단체도 NCOWE이후 이와 같은 오픈채팅방을 함께 개설하여 개교회와 각 선교단체별로 운영되고 있는 장,단기선교와 단기선교훈련등의 정보가 공유되는 장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이는 청년단기선교운동 뿐 아니라 다음세대선교동원에도 교회와 교회, 교회와 선교단체간의 협력의 시작점으로 일차적인 정보공유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개교회로 단기선교훈련이 운영되고 있는 교회와 선교단체들뿐 아니라 청년부서가 없는 교회의 청년, 미자립교회를 다니는 다음세대가 선교의 정보를 얻고, 단기선교와 훈련을 함께 참여해 볼 수 있는 징검다리로 활용되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3) 하나님중심적인 신앙의 회복
선교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을 위하여 2+2 인턴선교사와 온라인 정보 플랫폼에 대한 제안을 하였다. 이와 더불어 교회 안에 있으나 자기중심적인 신앙이 당연시 되어가는 다음세대들에게 예배의 회복과 메시지의 회복을 통해 하나님 중심적인 신앙으로의 방향성 전환과 성장이 일어나야 한다. 이것은 청년들에게뿐 아니라 유아,유치,아동부부터 중고등부까지 점검되어야 하겠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위 사례에 있었던 다음세대 교회개척 프로젝트(Next Generation Church Planting Project/ NGCPP)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겠다. 앞으로 청년들과 다음세대들을 섬길 젊은 목회자들이 먼저 하나님 중심적인 가치관과 열방을 향한 비전을 품을 수 있도록 재훈련하고, 다음세대를 섬기는 사역이 담임목회 이전의 징검다리가 아니라 전문적인 사역이 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 물론 담임목회를 하더라도 이와같은 마음으로 목회를 하며 지역교회와 선교단체와 연대한다면 큰 시너지가 날 것이다.
12 국민일보, 「담임목사님 600명이 까톡까톡…교회친구다모여 오픈채팅 5천 돌파」, https://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8243483&code=61221111&cp=kd)
아직도 교회 안에 있는 청년들이, 이 교회 저 교회의 예배를 찾아다니는 노마드 기독청년들이
갈급해하는 것은 재미와 위로를 넘어선 생생한 하나님과의 만남이 일어나는 임재 가득한 예배이다. 그리고 신앙의 방향성을 잡아줄 살아있는 메시지와 양육이다. 청년들이 선교, 하나님의 꿈을 같이 꾸는 데까지는 하나님을 알고, 경험하고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청년들의 예배가 회복되고, 그들에게 전해지는 메시지의 회복이 시급하다.
- 나가는 말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요5:17) 예수님은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온 삶으로 동참하는 삶을 사셨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내가 하면 어떤 유익이 생기는가?’에 따라 움직이신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그것이 나에게 유익이 아니라 불이익이 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아버지의 일에 기꺼이 동참하셨다.
열방은 하나님께서 모든 신약의 교회에 주신 유업이며, 선교는 하나님의 꿈이다. 선교는 재정과 동참할 인원이 있는 중대형 교회만의 일이 아니며, 선교단체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일이고, 우리 모두의 일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훑고 지나간 교회와 청년부, 다음세대 그리고 선교지에서 적지 않은 신음과
한숨 소리가 들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일이 나의 일’이 되어야 하는 것에는 변함이 있을 수 없다. 단지 나와 우리 교회, 우리 단체가 생존하는 일에만 몰두해서는
지금까지의 많은 하나님의 일들이 이 땅에서는 그저 추억과 사진으로만 기억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청년들을 포함한 다음세대를 살리고 열방을 살리는 선교에 우리 모두가 나의 ‘남은 가루 한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왕상17:12)일지라도,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마26:7)을 주를 사랑함으로 내어드리는 친밀한 사랑의 관계로 더욱 회복되어지길 바란다. 이 자세와 마음으로 돌아가서 아버지께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 주시하여 보고, 나에게 유익이 없을지라도 온
삶으로 동참하고 서로 힘을 모을 때 비로소 다음세대의 거대한 톱니바퀴들이 돌아가며 ‘다음세대 선교동원’에 동력이 전달되어질 것이다.
참고 문헌
포도나무교회 25년사 – 포도나무교회
포도나무교회 사역을 위한 하나님의 비전 –여주봉 / 새물결출판사 학원복음화협의회. 『2022 청년트렌트리포트』 (서울: 학원복음화협의회, 2022) 지용근 외. 『한국 교회 트렌드 2023』 (서울: 규장, 2022)
2021 기독 청년의 신앙과 교회 인식 조사 세미나, 21세기교회연구소-한국교회탐구센터-목회데이터연구소
*** 저자 소개
박성민(Park Sungmin) 목사
(사) 청년선교 본부장 묵상카툰 ‘하땅이이야기’ 작가 前 동안교회 대학부 담당
한국에서의‘모자이크 선교 교회’모델에 대한 연구1 / 노규석 목사 (온누리M센터)
<차 례>
I. 서론
II. 본론
1. 선교적 교회와 선교 교회(Missional church and Mission church)
2. 단일문화권 선교 교회(Mono-cultural church, M¹)
3. 모자이크 선교 교회(Mosaic mission church, M²)
4. 모자이크 선교 교회(M²) 모델들
5. 국내 다문화 선교 교회(M¹, M²) 모델의 특징
6. 모자이크 선교 교회(M²)의 선교적 함의와 과제
7. 코로나 시대 이후에 등장할 새로운 교회 모델에 관한 연구 필요성
III. 결론
- 서론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말씀2에 따라, 이 땅에 온 나그네들을 경제적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 으로 보아야 한다. 21세기 이주와 이민의 전지구적 현상들 속에서 이주민들을 향한 다문화 사역도 선교의 중요한 영역이 되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선교의 대상인 이주민들이 열방을 향한 선교의 동역자가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최근까지 한국교회는 해외 타문화권 선교에 큰 관심과 투자를 기울이면서도 이주와 이민이라는 새로운 지구촌 현상에 대해서는 둔감했다. 2021년 12월 통계3에 한국교회는 22,210명의 선교사를 해외로 파송하였다. 반면, 국내 다문화 교회 및 이주민 선교 기관은 약 1,000여개 있다.4 5만 6천여
1 노규석, “한국에서의 ‘모자이크 선교 교회’ 모델에 대한 연구: 온누리교회 다문화 선교를 중심으로” (박사학위논문, 아신대학교 대학원, 2023). 이 논문 의 요약본임
2 출애굽기 23:9, 신명기 10:18-19, 요한 3서 1:5, 디도서 1:8
3 https://krim.org/2021-korean-mission-statistics, 2022년 4월 23일. 4 김영애, 『이주 다문화 그리고 다양성』(서울: CLC, 2021), 113.
개의 한국교회 중 다문화 선교에 참여하는 교회는 약 2%에 불과하다.
5코로나 팬데믹 사태 이후, 다문화 선교는 한국 사회의 급변과 맞물려 더욱 다양한 형태로 변화 하고 있다. 따라서 새롭게 다문화 선교에 참여하는 한국교회들에게는 ‘다양한 한국형 다문화 교회
모델’이 필요하다. 선교는 행동(doing)에 그쳐서는 안 되며 그 존재(being)로도 드러나야 한다. 다문 화 사회가 된 대한민국에서 이주민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형제와 자매로 받아들이고 이
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룰 뿐 아니라, 열방에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 공동체’의 구축 이 한국교회에 필요하다. 이러한 ‘한국형 다문화 교회’ 모델의 하나로써, 선교적 다문화, 다언어, 다 민족 공동체인 ‘모자이크 선교 교회(M²)’ 모델에 관한 연구를 시도하였다.
130여 년 전, 서구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에 개척된 교회들은 ‘단일문화권 교회’(mono-cultural church, M¹)였다. 1950년대 이후 한국교회들은 지역 사회를 기반으로 한 전통적인 교단 중심의 교
회 뿐 아니라, 과거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학교, 군대, 교도소, 병원, 중동의 사막 건설 현장에 선교적 목적으로 교회를 개척하였다. 앞서 언급한 교회들과 함께, 해외 타문화권 선교에 참여하는 한국교
회, 국내 다문화 교회, 그리고 해외에 개척된 디아스포라 한인교회들 대부분이 한국인 중심의 ‘단일
문화권 선교 교회’(M¹)의 특징을 보여준다.그러나, 21세기 한국 사회가 급격히 다문화 사회로 변화 하면서, 다문화 선교에 참여하던 일부 교회들에서 전통적인 한국교회와는 다른 형태의 교회론적 변 환가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교회들은 이주민들을 선교의 대상으로 타자화(他者化)하던 ‘단일문화 권 선교 교회’(M¹)의 모습에서, 이주민들과 다문화 가정들을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이면서, 다민족, 다문화, 다언어로 구성된 ‘모자이크 선교 교회’(Mosaic mission church M²)로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단일문화권 선교 교회(M¹)와 모자이크 선교 교회(M²) 모델과 같은 ‘한국형 다문화 선교 교회’ 들은 서구 교회에서 일어난 ‘선교적 교회론’(missional ecclesiology)의 흐름 속에 촉발(觸發)되었다 고 생각한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서구 교회와는 다른 한국적 상황에서 등장한 이 교회들을 구분 하기 위해, ‘선교적 교회’라는 용어 대신, ‘선교 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또한 ‘모자이크 선교 교 회’(M²) 모델을 통해 발견하게 되는 몇몇 특징들, 이주민 성도들로 인한 다문화 교회의 내부적 변화, 타문화와 다문화 선교의 융합선교, 지역교회(modality)와 선교단체(sodality)의 융합선교라는 주제
들은 앞으로 선교신학에서 다루어야할 연구과제들이다.
- 본 론
- 선교적 교회와 선교 교회(Missional church and Mission church)
5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9616, 2021년 3월14일.
| 주제 | 선교적 교회
(Missional Church) |
선교교회
(Mission Church) |
| 배경 | 서구 사회 | 한국 사회 |
| 종교 | 기독교 →다종교 사회로 변화 | 다종교 사회 |
| 문화 | 다문화, 다민족, 다언어 | 단일문화 → 다문화 사회로 변화 |
| 선교 | 지역 사회에서의 선교적 존재 | 해외 타문화 + 국내 다문화 |
<표 1. 선교적 교회 vs. 선교 교회>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에 의하면, 서구사회는 기독교가 압도적 주류였던 단일 종교 사 회였으나 이주자들에 의해 서구사회가 종교 다원적인 공간이 되었다고 말한다.6 이러한 변화는 서구 교회 안에서 위기의식과 함께 ‘교회는 본질적으로 선교적이다’라는 인식을 불러 일으켰고, 이어서 선 교적 교회론(missional ecclesiology)이 대두되었다.7
한국은 오랜 세월 다종교 사회로 존재해왔다. 이러한 다종교 사회에 개척된 한국교회는 초기부 터 한국 사회 안에서 스스로 ‘선교적 존재’(missional being)로써의 인식이 매우 강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의 많은 교회들은 의도적으로 선교를 교회의 최우선 순위에 놓았고, ‘단일문화권 선교 교회’(Mono-cultural Mission Church, M¹)로써 다양한 국내 선교사역들과 함께, 해외 선교사역들 (missions)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한편, 세계화의 영향으로 한국사회도 급속히 다문화 사회로 변화하였다. 한국에 들어온 이주 민들에 대한 선교적 반응으로, 한국교회는 지역 사회 안에서 선교적 존재(missional being) 가 되 기 위해 다문화 선교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다문화 선교 교회 (Multi-cultural mission church)들은 서구에서 등장한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와 ‘선교적 교회론’(missional ecclesiology)을 공유하면서도, 사회적 배경(Social background)과 상황(context)의 다름 속에서 발 생하였기에, ‘선교적 교회’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기에는 결(veining)이 다른 모습을 가지게 되었 다. 또한, 국내 다문화 선교 교회들의 상당수가 이주민의 역파송을 비전으로 삼고, 해외 타문화권 선 교에도 적극적으로 참여고 있다는 점에서도 서구 교회의 ‘선교적 교회’와는 다른 특징들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유로, 서구의 다종교 사회로의 변화와 한국의 다문화 사회로의 차이를 고려하여, 국
내 ‘다문화 선교 교회’를 표현함에 있어,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이라는 용어 대신에 ‘선교 교 회’(mission church)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 단일문화권 선교 교회(Mono-cultural church, M¹)
국내 다문화 선교에 참여하는 교회들은 대부분 ‘단일문화권 선교 교회’(M¹) 형태로 시작되었다. 이러한 교회는 해외 타문화 선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교회들 가운데 많이 나타났으며, 해외 타
6 Miroslav Volf, A Public Faith: How Followers of Christ Should Serve the Common Good (Grand Rapids, MI: Brazos Press, 2013), 119-123. 7 최동규, 『미셔널 처치』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7), 18
문화 선교 방식을 그대로 국내 이주민 선교에 적용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이 교회는 이주민들을 선
교의 대상(target)으로 여기고, 복음 전파와 제자 양육, 그리고 각 국가의 언어로 된 외국어 예배들을 교회 내부에 만들었다. 또한 국내 다문화 선교를 해외 타문화권 선교의 보조적 방법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문창선의 다문화 교회 10가지 모델8로 살펴보면, ➁교회 부설 모델(department church model),
➂교회내 다국어 예배 모델(multi-congregational mode), ➃교회 외부 개척형 모델(outreach model), ➄교회 연합 지원 및 파트너 모델(partnership model) 등이 단일문화권 선교 교회(M¹)로 볼 수 있는 유형들이다. 본 연구에서는 온누리교회 1기 (1993-2011년)를 비롯하여, 경북 상주교회, 새 중앙교회, 주안교회, 여의도 순복음교회 등을 단일문화권 선교 교회(M¹) 모델로 분류하였다.
- 모자이크 선교 교회(Mosaic mission church, M²)
본 연구에서는 다문화, 다언어, 다민족으로 구성된 한국형 선교적 교회를 ‘모자이크 선교교 회’(Mosaic mission church, M²)라 명명한다. 이 교회는 존재론적(being)으로 그리고 사역적(doing) 으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수행하며, 지역교회(modality)이면서도 선교단체(sodality)적 특 징들을 공유하고 있다.
여기서 사용되는 ‘모자이크’라는 용어는 미술 영역에서 사용하는 모자이크(mosaic)9라는 용어 와 모세의 언약(Mosaic covenant)10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내포한다.
8 문창선, “한국교회의 이주민 선교”, 「한국선교 KMQ 」60호 (2016): 27-28.
9 안호은, “시각예술에서의 모자이크기법 사용과 시각표상 -모자이크의 역사적 고찰과 현대작가를 중심으로”,「디자인포럼」(2009): 215-224. 미술에서 모 자이크(mosaic)는 여러 가지 빛깔의 돌, 색유리, 조가비, 타일, 나무, 종이 따위의 조각을 맞추어 만든 무늬나 그림, 또는 그러한 미술 형식을 말한다.
10 http://www.balashon.com/2006/02/mosaic.html, 2020년 8월 15일. 어원적으로 모자이크(mosaic)라는 단어는 중세 라틴어 ‘musa’ 또는 ‘muse’에서 기원하였으며, 이 라틴어 단어는 일반적으로 그리스 신의 이름인 ‘Muses’로부터 기원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한편, 랍비 아리야 카플랜(Rabbi Aryeh Kaplan) 은 그의 모세오경 주석에서 모세의 이름이 그리스 신들 중, ‘Muses’ 이름에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하며, 출애굽의 모세(Moses)와 모자이크(mosaic)의 연관 가능성을 언급했다.
성경에서 ‘모자이크 공동체’는 시내산 아래에서 이스라엘과 다양한 민족들이 하나님과 언약 을 맺는 모세의 언약(Mosaic covenant)으로 탄생한 광야교회로부터 시작한다. 이후 다윗의 통일 왕국과 솔로몬의 성전(왕상 8:41-43)을 통해 다민족 신앙공동체의 형태로 발전했으며, 이사야와 예 수님을 통해 ‘만민의 기도하는 집’(사 56:7, 막 11:17)으로 언급되었다. 이 공동체는 사도행전의 안디 옥교회를 통해 ‘다문화 선교공동체’(multi-cultural mission community)로 서의 ‘모자이크 선교 교 회’(M²)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요한계시록11에서 하나님 선교(missio Dei)의 완성된 형태로 다 양한 민족들이 다양한 언어와 문화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모자이크 예배 공동체(mosaic worship community)’로 성취될 것이라 예언하고 있다.
존 스토트(John Stott)는 그의 책 『살아있는 교회』(표e Living Church)에서 교회의 선교적 모 델을 ‘그리스도를 본받는 성육신적 선교’로 설명한다. 그는 “우리는 모두 교회의 선교에 헌신한다. 교 회의 선교는 그리스도의 선교를 모델로 삼는다. 그분의 선교는 성육신을 의미했다. 모든 진정한 선교 는 성육신적인 선교다.”12라고 설명한다.
그는 맥가브란이 교회성장을 강조하면서 동일 집단의 원리를 주장한 것에 대해 이는 교회의 본 질적 모습이 아니며, 교회는 인종과 언어와 문화라는 장벽을 뛰어넘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보편 성과 다양성을 보여주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13존 스토트의 교회론은 모자이크 선교 교회(M²) 모델의 핵심 교회론을 구성한다. 그는 우리의 예배는 그리스도의 몸이 지닌 국제적이고 이종 문화적(cross-cultural)인 특성을 분명하게 드러내야 하며 문화를 초월하여 연합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동일 집단 교회(homogeneous unit church)들 즉 단일 문화권 교회(mono-culture church: M¹)를 추구하는 것은 자칫 예수님이 무 너뜨리신 인종적 장벽을 다시 세우는 것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였다. 그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 지닌 보편성과 다양성을 반영하기 위해 다양한 이들에게 다가가고 그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몸된 교 회를 이루어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의 선교적 교회론은 영국교회 뿐 아니라, 그 에게서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고)하용조 목사를 비롯하여, 많은 한국교회 목회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11 요한계시록 5:9-10, 7:9-10.
12 John Stott, 표e Living Church, (Downers Grove: IVP, 2007). 19-20.
13 Stott, 표e Living Church, 39-40. “우리의 공동 회중 예배는 그리스도의 몸이 지닌 국제적이고 이종 문화적(Cross-cultural)인 특성을 분명하게 드러 내야 한다. 문화를 초월하여 연합된 예배라는 쟁점은 도널드 맥가브란 박사가 발전시킨 ‘동일 집단 원리(Homogeneous unit principle)’에 대한 논의에서 표 면에 드러나게 되었다. 그 ‘동일 집단 원리’가 전도에서 정당하다고 하여, 교회에서도 정당한가? 우리는 동일 집단 교회(Homogeneous unit church)들 즉 모 두가 동일하고 특수한 문화에 속한 교인들의 교회(Mono-culture church)를 환영까지는 아니더라도 용인해야 하는가? 분명 아니다. 예수님이 유대인과 이방 인, 남자와 여자, 그리고 종과 자유인 사이의 장벽을 무너뜨리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그러한 장벽을 폐지하신 유일한 공동체에서 우리가 어떻게 새로운 장벽들을 세울 수 있단 말인가? 비록 어떤 동일 집단 교회가 정당하고 믿을 만한 교회일 수 있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그 자체로는 결코 완전한 교회일 수 없다 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그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 지닌 보편성과 다양성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동일 집단 교회는 교회의 통일성과 다양성 을 드러내기 위하여 그 교재권을 넓히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특별히 우리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 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구원받고 서 있는 종말론적 비전에 고무되어야 한다(계 7:9-10).”
- 모자이크 선교 교회 모델들

‘단일문화권 선교 교회’(M¹) 모델로 다문화 선교에 참여하던 한국 교회들 중, 점차 그 형태가 ‘모자이크 선교 교회’(M²) 모델로 변화되는 경우들이 등장하고 있다. M²모델에서는 해외 타문화 선 교와 국내 다문화 선교의 상호작용을 깊이 인식하고, 두 가지 선교의 융합을 추구한다. 이 모델의 교 회들은 이주민들을 선교의 대상으로만 여기지 않고 선교의 동역자로 여길 뿐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서 한 몸된 교회와 성도로 여긴다.
| 교회 | 온누리교회 (2기) | 기독교 한국침례회
국내선교회 |
중국동포 교회 | 나섬 공동체 | FAN | 생수가 흐르는 숲
교회 |
| 목사 | (고) 하용조,
이재훈 |
교단선교부 | 김해성 | 유해근 | 전철한 | 오영섭 |
| 위치 | 서울 용산구 | 안산, 아산,
대전,서울 |
서울 구로구 | 서울 광진구 | 인천 남동구 | 서울 동대문구 |
| 개척 | 1985년 | 1990년 | 1996년 | 1997년 | 2001년 | 2014년 |
| 사역대상 | 외국인 근로자,
다문화가정, 유학생 |
외국인 근로자, 유 학생 | 외국인 근로자, 중 국동포 | 외국인 근로자, 다 문화 자녀 | 외국인 근로자 | 다국적 유학생 |
| 주요국가 | 한국어,
영어, 중국, 일본, 몽골, 러시아 등 20개국 |
필리핀을 중심으로 동남아권 | 중국, 네팔, 몽골, 이슬람권, 동남아권 | 몽골, 중국, 이슬람권, 동남아권 | 필리핀, 러시아, 파키스탄, 태국 등 | 한국어, 영어, 중국어 |
| 특징 | 교회가 다문화 선교
단체 설립 다양한 외국어 예배 개척함. |
교단 선교부가 다문 화 교회를 개척함. | 선교회가 다문화교
회를 개척함. 센터, 병원 등 다양한기관들 설립함. |
선교회가 다문화교
회를 개척함. 학교와 다양한기관 들 설립함. |
선교회가 다문화교
회를 개척함, 공장지역, 국내외 8 지부 |
선교회가 유학생교 회를 개척함. 연합집회, 카페교회 |
< 표 4. 국내 모자이크 선교 교회(M²) 비교 >
이 M²교회에서는 전통적인 복음 선교와 함께 복지, 교육, 상담, 인권, 직업 개발 등 총체적 선교 를 병행하며, 이를 위해 교회(modality)와 선교단체(sodality)의 병행구조를 가지는 경우들이 많다.
또한, 각 국가 및 언어별로 구성된 예배 공동체들을 개척할 뿐 아니라, 예배 공동체들의 연합을 중요
시 여긴다.
| 5. 국내 다 |
| 문화 선교 교회(M¹, M²) 모델의 특징들 |
다문화 목회 유형분석으로 M²교회 모델을 살펴보면, 먼저 조지 얀시의 ‘네트워크 다인종교회’ 형태와 유사하다.14 노영상의 4가지 유형에서는 ‘문화 상호 교류적 모델’15과 유사한데, 각자의 문화를 존중하고 각자의 언어로 예배를 드리지만, 서로 다른 언어 공동체들이 상호 문화 교류를 통해 서로에 게 배우고 함께 공존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동시에 연합예배와 연합 활동 들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한 교회라는 연합의식을 가진다. 한편, 황종하의 논문16에서 언급한 4가지 목회 유형으 로 본다면, 이 모델은 ‘병행 유형’(교회와 선교센터)의 특징을 가지며, 복음 선교와 총체적 선교를 함 께 진행한다. 문창선의 10가지 모델17들 중에서는 7) 병합 및 동화 모델(assimilation model), 9) 다인 종 교회 모델(multi-ethnic model) 10) 복합 모델(blended model) 등에서 M²교회 모델과 유사한 특 징들을 발견하게 된다.
| 단일문화권 선교 교회(M¹) | 모자이크 선교 교회(M²) | |
| 사역 방향 | 이주민들의 필요에 따른,
아래로부터의 선교 |
공동체 상호 간의 지원,
수평적인 선교 |
| 사역 중점 | 긍휼 사역에서 제자화로,
제자화에서 역파송 선교로 |
예배 공동체 형성 |
| 복음 전도 중심 | 총체적 선교 + 복음 선교 | |
| 리더십 | 한국인 중심 | 현지인과 한국인 공유 |
| 관점 | 이주민은 전도와
사회통합의 대상 |
한국인과 이주민
상호 문화 인정과 존중 |
| 영성 |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 |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
| 예배 | 각 언어별/국가별 예배 성장 | 다언어/다국적 연합예배 |
| 교회와
선교단체 |
교회 중심의 선교
교회 안으로 |
교회와 선교단체의 융합선교
교회 밖으로 |
| 해외선교 | 다문화 선교는 해외선교를 위한
보조적 선교방법 |
국내 다문화 선교와 해외 타문화
선교의 융합선교 추구 |
| 공통된 특징 | 1. 다양한 형태의 다문화 교회들로 존재
2. 이중 언어, 다중 언어 구사하는 성도들이 많음 3. 다문화 교회 참여하는 외국인 성도의 다수가 1세대 신앙. 4. 다문화 교회 성도들은 타문화 이주 경험 공유함. 5. 다문화 교회 성도들은 역파송 선교에 적극 참여함. |
|
<도표 5. 다문화 선교 교회 모델(M¹-M²)의 특징들>
한국교회의 이주민 선교와 다문화 목회에 대한 선교적, 신학적 이론 연구는 2010년을 전후하 여 시작되었다. ‘단일문화권 선교 교회’(M¹)는 ‘이주민들에게’(mission to diaspora)에 집중하는 형
14 George A, Yancey. One Body, One Spirit: Principles of Successful Multiracial Churches (Downers Grove: IVF, 2003), 51-64. 15 박찬식, 정노화 편, 『21C 신유목민 시대와 이주자 선교』(서울: 기독교산업사회연구소 출판사, 2008). 173-177.
16 황종하, “한국교회의 다문화 목회 유형 연구” (박사학위논문: 개신대학원대학교, 2020), 154.
17 문창선, “한국교회의 이주민 선교”,「한국선교 KMQ 」60호 (2016): 27-28.
태가 주로 나타나는 반면, ‘모자이크 선교 교회’(M²)는 ‘이주민들을 통한, 그리고 이주민들을 넘어
서’(mission by diaspora, mission beyond diaspora)는 형태들이 나타난다.
앞서 언급했던, 문창선은 ‘다문화 교회 10가지 모델’에서 에녹 완(Enoch Wan)의 3단계 사역 을 인용하면서, 한국의 ‘이주민 선교’(gathered)와 세계의 ‘디아스포라 선교’(scattered), 이 두 가지 가 하나로 이해되고 연합함으로 ‘이주민들에게, 이주민들을 통한, 이주민들을 넘어서’ “mission to diaspora”, “mission by diaspora”, “mission beyond diaspora”18는 선교적 연합사역이 이루어지고 적 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크레이크 오트(Craig Ott)에 의하면, 단순히 교회가 본질상 선교적이라고 선포하는 것만으로는 자동적으로 교회를 선교적인 존재로 만들지 못한다. 모든 교회는 의식적으로 선교를 분별해야 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의 연장선상에서 의도적으로 성경에 계시된 선교를 성취해 나가야 한다. 교회가 본 질상 선교적이라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교회가 자동적으로 그 선교와 일치를 이루며 살아가고 행동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교회는 의도적으로 선교적으로 살아가고 선교적 우선순위들을 세워야 한다19. 지난 30년간, 다문화 선교에 참여하는 한국 다문화 선교 교회들은 시대의 변화와 목회자의 목회 철학에 따라, 대부분 단일문화권 선교 교회(M¹)의 모습으로 시작되었으나, 일부 교회들에서 모자이
크 선교 교회(M²)로의 변화가 나타난다. 두 모델의 특징들과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1) 단일문화권 선교 교회(M¹)의 특징과 평가
‘단일문화권 선교 교회’(Mono-cultural Mission Church, M¹)는 전통적 개념에서의 해외 타문 화권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선교에 집중하는 교회’(Mission focused church)일 뿐 아니라, 동시에 서 구교회에서 말하는 지역사회 안에서 교회가 ‘선교적 존재’(missional being)로 존재하는 ‘한국형 선 교 교회’로써, 한국인 중심으로 국내 이주민들에게 섬김과 복음전도를 통해 다문화 선교에 참여하 는 교회 모델이다.
본 연구에서 살펴본 지역교회들의 모습을 통해 발견한 M¹교회 모델의 첫째 특징은 성도들의 필 요와 자발적 참여에 의해 ‘아래로부터의 선교’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지역 사회에 들어온 외국인 근 로자, 다문화 가정들의 필요를 긍휼 사역 차원에서 지역 교회의 성도들의 요청과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 다문화 사역이 시작되는 경우들이 많았다.
두번째 특징은 복음 전도 중심과 각 언어별 예배 개척에 사역이 집중한다는 점이다. M¹교회들 은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개인적 전도에 머물지 않고, 자체 교회 안에 외국어 예배들 을 개척했다. 또한, 국내 다문화 선교를 해외 타문화 선교의 보조적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 MichaelPocock and Enoch Wan, Diaspora Missiology (Pasadena, CA: William Carey Library, 2015), 215-216. 문창선, “이주민 선교”,「한국선교
KMQ 」60호 (2016): 26.에서 재인용.
- Craig Ott and Stephen Strauss, Encountering 표eology of Mission (Grand Rapids, MI: Baker, 2010), 437.
세번째 특징으로, 많은 M¹교회들이 다문화 선교 초기에는 긍휼사역으로 시작하지만, 점차 복
음전도와 제자양육을 실시하고, 각 언어별 예배들을 개척한 이후에는 결국에는 역파송 선교를 시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M¹교회 모델의 특징은 다문화 선교의 주도권이 한국인에게 있으며, 이주민을 복음 전도와 사회 통합의 대상으로만 여긴다는 점이다. 이 교회들은 자체에 외국어 예배들을 개척하지만, 한국인들이 리더십을 가지고 많은 부분들을 결정한다. 이는 M¹교회의 전형적인 모습들로 외국어 예 배를 개설한 대부분의 국내 중대형 교회에서 이러한 경향이 강하다. 영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교
회들은 마태복음 28:19의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선교적 영성을 강조한다.
한편, 2004년 온누리교회의 다문화 선교를 연구한 김 예브게니(Kim Evgeniy)의 비판처럼, 2000년대 초반, 온누리교회 대다수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국내 외국인 사역에 대해 자비를 베푸 는 긍휼사역이라는 인식이 매우 강했고, 외국인 근로자 사역의 전문성이 필요한 상황임에도 불구하 고, 온누리미션 담당 한국인 목회자가 매년 바뀌면서 전문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비평하였다. 20또한, 한국인들이 주도권을 가지고 리더십을 발휘하였다. 이로 인해, 외국인 목회자들과 현지인 성도들에 의한 자립적 예배공동체로 성장하는 데에는 많은 제약들이 있었고, 심지어, 외국인 목회자들과 현지 인 리더들을 예배통역 등, 기능적 역할만 수행케 함으로써, 이들을 수단화(手段化)하고 소모적(消 耗的)으로 이용했다는 평가들이 있었다.
2) 모자이크 선교 교회(M²)의 특징과 평가
1990년 이후, 국내 지역교회와 이주민 선교단체들은 대부분 이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시작했다. 이러한 선교 단체 및 교회들 중에는 점차 단일문화권 선교 교회(M¹)에서 다민족, 다문화, 다언어로 구성된 ‘모자이크 선교 교회’(M²)로 변화하는 교회들이 나타났다.
21M²교회의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특징은 ‘이주민이 이주민에게’(migrants to migrants) 선교하는 수평적 선교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또한 이주민들을 향한 개인 전도를 통한 예배 개척를 넘어서서 온누리M센터의 ‘Group to Group’ 전략처럼, 각 언어별/국가별 교회가 다른 지역에 같은 언어별/국가별 교회를 개척하는 특징도 나타난다.
두 번째 특징은 M²교회 모델에서는 지역교회인 ‘모달리티’(modality)로부터 시작된 M²교회들 이 이주민 선교단체나 다문화 센터와 같은 ‘소달리티’(Sodality)를 만들거나, 반대로 이주민 선교단 체들에 의해 개척된 형태의 다문화 교회들이 M²교회로 발전되는 경우들이 많다. 이로 인해, M²교 회 모델에서는 지역교회(Modlity)와 선교단체(Sodality)의 선교적 융합 구조 및 연합 사역의 특징 들을 확인하게 된다. 또한, 이러한 융합선교는 복음전도와 함께, 교육선교, 복지선교, 의료선교, 비
20 김 예브게니, “한국교회의 외국인 노동자 선교현황과 문제점에 관한 연구: 온누리 미션 사역을 중으로”, 35-53
21 김진봉 편, 『난민, 이주민, 탈북민에 대한 선교 책무』, (서울:두란노, 2018), 125.
즈니스 선교, 직업 교육, 임금체불과 비자문제 등과 같은 노동권 및 인권보호 사역 등 총체적 선교
(Wholistic mission)의 필요에 대응하면서 나타나게 된 특징들이다.
세 번째는 변화하는 M²교회들은 한국인 중심의 선교에서 점차 한국인과 이주민이 리더십을 공 유하고 이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이주민들 스스로가 주도적으로 선교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발전하 는 특징을 보인다.
네 번째 특징은 M²교회 모델의 영성적 측면인데, 이주민을 복음전도와 사회적 통합의 대상으로 타자화(他者化)시키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 하나 됨을 추구한다. 이 모델에 서는 한국인과 이주민이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가진 존재로써 상호 문화를 존중하고 교류와 상호 배움을 추구하며, 영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에베소서 2:16-22절에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거하 실 처소가 되기 위해 성령 안에서 하나되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써의 하나됨을 추구한다. M²교 회를 지향하는 교회들은 그 안에 한국어 이외에도 다양한 언어의 예배 공동체들을 개척하지만, 서 로 다른 언어 예배공동체들이 함께 연합 예배(1년에 4-6차례)와 연합 사역들을 통해, 언어와 인종의 장벽을 뛰어넘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된 교회를 시도한다.
마지막으로 M²교회 성도들은 2-3개 언어를 하는 외국인 성도들뿐 아니라, 한국인 봉사자들 중 에도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비율이 높다는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특징은 M²교회가 국내 다문화 선 교뿐 아니라, 해외 타문화 선교를 감당할 수 있는 잠재력 있는 선교적 인재들이 많음을 의미한다. 실 재로 이런 이중 언어가 가능한 성도들을 중심으로 M²교회는 해외 아웃리치를 비롯하여, 해외 타문 화권 선교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 모자이크 선교 교회(M²)의 선교적 함의와 과제
1) 모자이크 선교 교회(M²)의 선교적 함의
다인종 교회에 관해 연구한, 얀시(Yancey)는 ‘인종적으로 분리된 교회들은 기독교 문화보다는 자신들의 인종 문화를 반영한다’고 경고한다.22 성경은 신앙의 일치가 문화의 차이보다 우선한다고 가르친다.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들에게 어떤 문화도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믿음을 고수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친다. 신약성경은 분명하게 많은 다른 나라와 문화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된 교회를 구성하고 있음을 묘사한다.(마 28:19, 고전 12:13, 갈 3:28, 계 5:9)
최경순은 「다문화 선교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위한 기독교교육과정 연구」에서 ‘다문화 선교 공동 체’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다문화적 선교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안으로는 인종과 성별과 계급을 초월하는 다양한 문화를 허용하는 예배의식과 삶의 표현을 선호하며, 분리와 동화가 아닌, 초문화적 감식력을 가진 상호문화주의 교육을 실시하며, 밖으로는 신앙공동체 자체가 증인과 선교
22 Yancey, One Body One Spirit: Principles of Successful Multiracial Churches, 79.
공동체 역할을 하도록, 지역 공동체와 세계의 필요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섬기는 순례의 길을 지향한
다. 이를 위한 다문화 기독교 교육은 공동체 안에서 삶을 나누는 환대와 동행, 참여와 순례의 모습이 어야 한다.”23
안점식은 한국교회가 다문화적 상황을 자문화 중심주의를 넘어서 글로벌(global)한 시각을 갖
는 시민교육의 기회로 삼아야하며, 세계 선교의 기회와 선교훈련의 장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다문화적 상황에서 교회의 사역은 교회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으로 교회가 다문화적 상황 속 에서 사역을 감당할 때, 인간 안에 내재된 하나님의 형상과 교회의 보편성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밝 히 드러내는 실천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24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라는 용어는 불과 30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국제화의 흐름 속에서, 한국 교회는 헌신된 선교사를 파송하는 타문화권 선교에는 익숙했지만, 우리 동네에 들어온 이주민 들을 향한 다문화 선교는 낯설어했다. 선교는 전문가인 선교사들이 담당하는 것이지, 지역 교회와 성도들에게 선교는 너무나도 낯설고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그러하기에 지역 교회와 성도들은 낯선 이 주민들에게 다가가는 것을 꺼려했다. 이주민들은 낯선 이방인으로, 때로는 위험한 인물들로 여겨져, 그들을 우리의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낯선 이주민들과 함께 예배 를 드리고, 그들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이루어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생각해보지 않았던 선교적 도전이었다.
30여년 전, 초기 국내 다문화 선교를 담당했던 사역자들도 외국인 근로자들을 단지 긍휼의 대 상, 복음 전도의 대상, 인권 보호의 대상, 자국으로 역파송하는 대상으로 여겼지, 그들과 함께 그리스 도의 몸된 교회 공동체, 가족 공동체를 이룬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21세기에 들어서며, 결혼 이주 여성들과 다문화 자녀들, 그리고 장기적으로 한국에 체류하는 이 주민들의 증가로 인해, 한국 사회에는 다양한 이주민들과 함께 다문화 교회를 이루고 이들과 함께
선교에 동참하는 다양한 형태의 ‘모자이크 선교 교회’(M²)들이 곳곳에서 생겨나게 되었다. 여러 다 문화 교회들에서 나타난, M²교회 모델은 타문화 선교와 다문화 선교가 조화를 이루며 상호 시너지
를 일으키는 융합선교, 지역교회(modality)가 선교단체(sodality)를 만들고, 그 선교단체가 다시 지역 교회들에게 M²교회로써, 지역사회 안에서 선교적 존재(missional being)로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 도록 자극하는 한국형 선교 모델이라 생각한다.
이는 존 스토트(John Stott)의 교회론에 나타난 지역교회가 ‘오는 구조’를 만들 뿐만 아니라, 지 역사회에 적극적으로 찾아들어가는 ‘가는 구조’를 만들고, 이 두 가지 구조가 상호 작용하는 교회
모델과 매우 유사하다. M²교회 모델은 ‘오는 구조’와 ‘가는 구조’를 선교적 융합 형태로 실체화(實體 化)한 교회 모델이라 말할 수 있다.
23 최경순, “다문화 선교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위한 기독교교육과정 연구” (박사학위논문, 장로회신학대학교, 2011), 322
24 안점식, “다문화적 상황은 한국교회에게 기회이다”,「선교타임즈」 2012년 7월호, 74-75.
2) 모자이크 선교 교회(M²) 모델의 과제들
현재 대한민국은 낮은 출산율로 인해 주일학교는 점차 축소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체류 외국인 의 증가에 따라, 이주민 교회, 다문화 교회, 유학생 교회들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주민의 증가를 목회적 기회, 그리고 선교적 기회로 살린다면, 우리는 한국교회와 아시아 교회의 성장 동력뿐 아니 라, 선교적 차원에서도 큰 동력을 얻을 수 있다.
KWMA 부이사장 황성주 박사는 ‘100만 자비량 선교사 파송운동’을 추진하면서, 선교자원개
발에 있어 이주민 선교자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세계선교가 이제 현관을 넘어 안방으 로 침투해 들어왔습니다. 200만 다문화 가정과 외국인 노동자, 탈북자를 친구로 삼아 우정의 네트워 크를 형성하고 선교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멀리 가는 선교만 선교가 아니고 가까이 있는 이방인을 품는 것이 선교의 고속도로를 놓는 길입니다. 이주민을 품고 탈북자를 품어야 그 나라에 선교의 문 이 열립니다. 그들을 사랑하고 섬기면서 ‘주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이주민 선교 운동을 모든 교회에 확산시켜야 합니다. 선교훈련시 다문화 가정과 외국인 근로자, 탈북자를 밀접하게 섬기는 프로그램 을 추가할 필요가 있습니다.”25
외국인 이주민에 대한 한국교회의 태도가 중요하다. 진정한 세계 선교는 바로 우리 동네에서 시작 할 수 있다. 이주민들을 선교의 대상일 뿐 아니라, 선교의 동역자,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이 루는 지체(肢體)로 바라봄으로써, 이주민들과 함께하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시도해야 한다. 본 연구에서 다룬, ‘단일문화권 선교 교회’(M¹) 모델과 ‘모자이크 선교 교회’(M²)모델 대부분은 대도시 교회들이다. 앞으로 더 많은 다문화 교회 모델들이 연구되어야하는데, 중소형 교회 모델, 농 어촌교회 모델, 유학생 교회 모델 등이 다양한 규모와 독창적인 색깔을 가진 ‘한국형 다문화 선교 교 회’의 모델들에 관한 구체적인 사례 연구들이 심도 깊게 다루어지고, 한국교회와 세계 교회에 제시
될 필요가 있다.
더불어, ‘모자이크 선교 교회’(M²)의 리더십에 관한 연구가 필요하다. 특별히 한국인 리더십과 외국인 리더십의 역학관계가 ‘모자이크 선교 교회’(M²)에 미치는 영향, 한국인 목회자에서 외국인 목회자로의 리더십 이양에 관한 부분들이 연구되어야한다.
또한, 타문화 선교와 다문화 선교의 상호작용과 융합선교에 대한 연구도 앞으로 심도 깊은 연구 를 필요로 한다. 역파송된 외국인 선교사들과 한국 선교사들의 팀(team)사역, 그리고 국내에 복귀 한 한국 선교사의 다문화 목회와 다문화 선교의 효과 등에 관한 연구는 아직 시도되지 않았다. 앞으 로 이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 연구들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한국형 다문화 선교 신학’의 자신학화도 심도 깊게 연구되어야 할 영역이다.다문 화 선교 신학과 디아스포라 선교학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같은 현상을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
25 황성주, 『문명사의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다』 (서울: 발견, 2021), 204.
라 다른 접근이 이루어진다. 현재까지 테츠나오 야마모리(Tetsunao Yamamori)와 사디리 조이 티라
| 7. 코로나 시대 이후에 등장할 새로운 교회 모델에 관한 연구 필요성 |
(Sadiri Joy Tira)에 의해 연구된 ‘디아스포라 선교학’26이 다양한 국가들의 디아스포라 사역들과 교 회들에 관한 대표적인 연구이다. 이제는 지난 30년의 한국교회의 다문화 선교에 대한 경험과 신학들 을 자신학화 작업을 통해, 한국형 다문화 선교 신학을 세워나가고 세계 교회를 향해 다양한 교회 모 델들을 제시할 수 있길 소망한다.

| 시대의 변화 | 선교적 교회 | 특징 |
| 전통 사회 (20c) | M1 (Mono-culture 교회) | 동일문화, 동일집단 |
| 글로벌&다문화시대 (21c) | M2 (Mosaic Mission 교회) | 다문화, 다언어, 다민족 |
| 온라인,디지털 (코로나 시대) | M3 (Mobile/ 온라인 교회) | 유튜브, Zoom |
| 4차 산업 (메타버스 시대) | M4 (Meta-verse 교회) | VR예배, 아바타 성도 |
| 우주시대 (2030년 이후) | M5 (Multi-verse 초우주적 교회) | M1-4 공존
*아폴로 8호(최초 우주 예배) |
<도표 6. 시대의 변화와 선교적 교회들(M1-M5)의 등장>
2020년 전세계적인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인해, 모든 사회 영역에서 급속한 디지털 온라인 시 대로의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 전세계에서 온라인 대학, 온라인 비즈니스, 온라인 결혼식, 그리고 온 라인 교회까지 등장하고 있다. 코로나 펜데믹 사태로 인해 우리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의 문명사적 전환을 경험하였다.
교회 건물 안에서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상황에서 대안으로 온라인 예배를 시작하였다. 많은 교 회들이 Youtube, Zoom, Facebook live 등을 통한 온라인 예배와 성경공부, 소그룹 모임을 대안적 방법으로 사용하였다. 다양한 형태의 온라인 예배과 교회들이 등장하였지만, 이 교회들을 정의하는 합의된 용어는 아직 없다.
성도들이 핸드폰(mobile phone)으로 참여하는 온라인 예배들, 비대면 드라이브 스루(drive-
26 Sadiri Joy Tira and Tetsunao Yamamori ed. A Global Compendium of Diaspora Missiology, 문창선 역,『디아스포라 선교학』(경기: 더메이커, 2018).
through) 방식의 심방, 정부 방역지침에 따라 가정 예배, 또는 4명으로 구성된 소그룹 예배, 기숙사
나 야외 공원 벤치에서 드리는 일종의 ‘움직이는 예배’(mobile worship)를 드리면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병행되는 새로운 형태의 움직이는 교회를 ‘모바일 교회’(Mobile church)로 명명해 보았다. 이러한 형태의 교회는 온라인 교회, 디지털 교회, 스마트 교회, 하이브리드 교회 등 다양한 용어로 불릴 가능성이 크다. 물론, 아직 그 형태가 정형화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다양 한 모습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크기에, 여기서 정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 생각한다. 앞으로 이러한 형 태의 교회들에 관한 선교학적 연구가 필요하다.
2021년 6월 한국대학생 선교회 CCC(대표: 박성민 목사)는 메타버스 가상공간을 활용한 수련 회를 열었다. 272021년 10월 28일 국민일보에서 열린 ‘2021 국민미션포럼’에서 이재훈 목사(온누리교 회)는 ‘메타버스 시대의 메타처지 목회’에 대해 발표하였고, 김병삼 목사(만나교회)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문화라는 매개체를 활용하는 것이 선교의 역사였다,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매개체도 복음을 전 하기 위한 좋은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미래에도 전통적인 단일문화권 교회(M¹), 세계화 시대의 모자이크 선교 교회(M²)는 존재 할 것이다. 더불어, 코로나 펜데믹 시대에 등장한 가칭(假稱) ‘모바일 교회’(Mobile Church), 메타버 스와 AI의 등장과 함께 논의되는 ‘메타버스 교회’(Metaverse Church), 근미래에 달기지 건설과 화 성 탐사가 시도되는 우주시대에 우주 교회들은 기존 교회들과 함께 공존하거나, 새로운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기에 등장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교회들에 대한 관심과 선교적, 교회론적 연구를 시도 할 필요가 있다.
- 결 론
국제 이주기구(IOM; 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Migration)에 의하면, 21세기 전세계 이 주자 인구는 세계인구 7명 중 1명인 약 10억 명에 이른다.28 세계적인 이주현상은 하나의 거대한 흐름 (mega trend)이다. 벨기에 사회학자인 마르코 마르티니엘로는(Marco Martinirllo)는 앞으로 다문화 사회는 더욱 다양하고 복잡해질 것이라 예견하였다. 29프랑스 학자인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는
단순히 이주자들의 증가뿐 아니라, 일명 ‘하이퍼 노마드’(hyper-nomad)로 불리는 경제적, 문화적으 로 하이클래스의 사람들도 새로운 이주자로써 실재와 가상 공간에서 새로운 식민지를 찾고 있다고
예견하였다.30
- https://igood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66846, 2021년 9월 11일. 28)
- http://ior.kr/index.php/%EA%B5%AD%EC%A0%9C%EC%9D%B4%EC%A3%BC-%ED%95%9 C%EB%88%88%EC%97%90-%EB%B3%B4%EA%B8%B0/, 2021년 8월 20일.
- Martiniello Marco, Sortir des Ghettos Culturels, 윤진역, 『현대사회와 다문화주의』 (서울: 한울, 2002), 153.
30 Jacques Attali, Homme Nomade, 이효숙 역,『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 (서울: 웅진, 2005), 31-34. 오늘날에는 5억명 이상의 사람들이 일 또는 정 치와 관련된 노마드들로 간주될 수 있다. 이민자, 망명객, 고국을 떠난 사람들, 노숙자, 그리고 온갖 종류의 이주 노동자들이 그들이다. 매년 10억 이상의 인 구가 좋아서든 의무 때문이든 간에 여행을 한다. 9천만명은 자기가 살던 곳이 아닌 새로운 곳에 가 있고, 매년 약 1천만명이 자기 나라를 떠나고 있다. 앞으로
이러한 국내외 학자들의 분석은 이주민 자체가 새로운 선교지일 뿐 아니라, 이주민들 자신이 선
교의 주체가 될 것임을 예견하고 있다. 세계 선교도 ‘모든 곳에서 모든 곳으로’(from everywhere to everywhere) 향해가는, 전방향 선교 시대를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또한 이주민들이 다양한 모습의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는 ‘모자이크 선교 교회’(M²)의 등장과 성장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다양성이 기본이 되는 다문화 사회에서 전통적인 ‘단일문화권 교회’(M¹) 모델 하나로는 한계점이 분명하다. 한국교회는 사도행전의 안디옥교회 모델을 따라, 다양한 형태의 ‘모자이크 선교 교회’(M²)를 다양한 이주민들에게 맞춤형으로 시도해야 한다.
타민족에게 복음을 들고 가는 전통적 방식의 선교 패러다임인 행함(doing)으로써 선교 뿐 아니
라, 교회의 존재론적 목적인 선교적 존재(being)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바로 다문화 선교에서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우리의 이웃인 이주민들과 함께 ‘모자이크 선교 교회’(M²,modality)’를 이루고, 나아 가 이들과 함께 선교팀(sodality)을 이루어 선교의 동역자로, 열방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면, 그것은 마치,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가 보여주었던 사도행전의 ‘바로 그 교회’를 만들어가 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예배와 선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듯, ‘모자이크 선교 교회’(M²)는 지역교회와 선 교단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으로 융합된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열방을 사랑하시는 선교하시는 한분 하나님으로 오늘도 일하고 계신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가시적 임재로 써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다언어, 다문화, 다민족의 다양성(diversity)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united)됨을 이루는 ‘선교적 존재’(missional being)가 될 수 있다.
또한 아탈리(Attali)가 예견하듯이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새로운 하이퍼 노마드들은 온라인 공간과 가상공간에 새로운 개척지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 가상공간 역시 세계교회에게는 복음을 전 하고 믿음의 공동체를 개척해야하는 새로운 선교지가 될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모바일 교회, 또는 사이버 교회, 메타버스 교회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오늘 한국교회에게 요구되는 것은 시대적, 문화적, 기술적 변화
에 대응하여, 교회를 ‘선교적 존재’(missional being)로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이다. 고정된 개념의 교회가 아닌,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반응하며 새로운 형태의 교회를 시도하는 ‘성육신적 선 교’(incarnational mission)가 필요하다.
50년 후면 10억명 이상이 조국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게 될 수도 있다. 하이퍼 노마드들(예술가, 노마드적 자산 보유자, 특허권 또는 노하우의 보유자)은 세계
화의 주역들이다. 정착에 대해 아무런 애착도 없는 그들은 서커스단이나 연극단의 스타들이다. 하이퍼 클래스를 형성하는 그들은 수천만 명에 달한다. 그들 은 전 세계를 지배하는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실제와 가상공간에서 새로운 식민지를 찾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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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
노규석 (Kyu Suk, Rho)
소속: 온누리교회, 온누리M센터
주요 경력 (교육, 선교, 목회, 학회)
2000.09 – 현재 온누리교회 부목사
2003.09. – 2009.08. 두란노해외선교회(TIM/이라크,요르단) 선교사
2010.12. – 2014.06. U.A.E 아부다비 온누리교회 담당목사
2013.09 – 현재 아신대 아랍문화 연구원 원장
2014.12. – 현재 온누리M센터 센터장
저술 목록
학술지: 복음과 선교 43호, 무슬림 선교전략: 30일 역라마단 기도운동 (2018.9)
복음과 선교 60호, 로잔운동이 한국교회와 하용조의 선교적 목회철학에 미친 영향에 관한 연구 (2020.12)
박사학위논문: 한국에서의 ‘모자이크 선교 교회’ 모델에 대한 연구 (아신대학교, 2023. 2)
다문화사회 환경에서 한국교회 인식변화와 효과적인 이주민선교를 위한 실천적 제안 / 전 욱 선교사 (중앙아시아유학생센터)
- 1. 이주민에 대한 ‘환대 선교’ 실천을 위해 개선되어야 할 한국교회의 두 가지 태도
현한나 교수는 <지역교회와 다문화가정을 연결하는 ‘이주와 난민신학’과 이주민 사역을 향한 ‘환대선교’의 실천>에서 그루디(Daniel Groody)가 제시한 이주와 난민 신학의 토대를 네 가지 용어
– 하나님의 형상(Imago Dei), 하나님의 말씀(Verbum Dei),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하나님의 관점(Visio Dei) – 로 잘 정리해 주었다. 이와 함께 사우어(Christof Sauer)가 강조한 하나님의 긍휼 (Compassio Dei)을 추가하여 한국교회가 ‘주는 자’ ‘선교적 방관자’, ‘선교적 우위에 선 자’의 자리에 서 내려와 타인의 고통을 체휼하는 하나님(Compassio Dei)을 따라 ‘고통에 참여하는 자’로서 성육 신적 선교를 지향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다민족, 다문화사회로 급격하게 변화되고 있는 새로운 사
회적 환경 가운데 이주민을 향해 ‘환대선교’를 실행하려면 두 가지 면에서 한국교회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첫 번째는 단일민족주의와 한민족중심사상에서 비롯되는 이주민에 대한 배타적 태도이다. 단일 민족주의 정서가 강하다보니 이주민선교에 대한 지역 교회의 관심과 호응이 적고 외국인에 대한 혐 오증도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일반 사회학과 다문화교육 분야에서도 문제점으로 지적 되고 있는 내용이다. 한국인의 민족주의는 한국이 다문화사회로 나아가는데 걸림돌1이 된다고 인식
되고 있다(오경석 외, 2007; 윤인진, 2014). ‘분단 상황’과 ‘다문화 상황’이 공존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특수성에서 비롯되는 이주민 내 서열화 문제2도 앞으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양영자, 2007).
다문화사회가 중시하는 두 가지 가치는 다양성(diversity)과 통일성(unity)이다. 통일성이 없는 다
양성은 “국민국가의 분파주의와 분열”을 초래하고 다양성이 없는 통일성은 “문화적 억압과 헤게모
니”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에 “다양성과 통일성 간에 정교한 균형을 이루는 것”은 다문화 민주사회 가 지향해야 하는 핵심 목표이다.3 미국, 캐나다, 호주와 같이 이주의 역사가 길고 다양한 인종과 민
1 “한국인의 강한 단일민족주의 정서가 한국인의 마음속에 순혈 한국인이라는 신화를 만들어 냈고 그것의 부정적 형태가 소수자와 이주자에 대한 배타 성과 차별이라고 할 수 있다”(이제봉, 2012: 207)
2 “결국 국외 이주자의 통합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한국 사회에는 탈북자/중국 조선족/아시아 이주자라는 서열이 존재하는 셈이다. 이 서열의 중요한 기준 은 민족이며, 이 기준에 따라 각기 다른 정책이 적용되고 있다.”(이종두 외, 2012: 344)
3 “다양성과 통일성 간에 정교한 균형을 이루는 것이 민주 국가의 핵심 목표인 동시에 민주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교수 학습의 핵심 목표가 되어야 한다. 다
족 집단으로 구성된 사회에서는 다양성 속에서 모든 시민이 공유할 수 있는 통일성을 찾는 것이 중 요한 과제가 된다. 이에 반해 한국은 오랜 기간 단일민족의식을 갖고 언어와 문화, 역사를 공유하며 동질성이 강한 한민족정체성을 갖고 살아왔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다양한 민족적 배경을 가진 이주
민들을 한국의 시민으로 포용하여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다문화사회로 만들어 가야할 과제를 안고 있다. 그래서 동질성이 유난히 강한 한국 민족주의의 형성 과정과 특징을 검토하고 새롭게 등 장한 다문화주의와 상충되지 않는 민족주의의 유형을 모색하기 위해 “성찰적 민족주의”4 “다문화민 족주의”5와 같은 개념이 제안되기 도 했다(김혜승, 2004; 양영자, 2007; 윤인진 외, 2015; 김중혁 외, 2019). 이와 같이 다문화 민주사회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동일하지만 나라마다 역사적 경험 과 전통이 다르기 때문에 각 나라의 맥락에 맞추어 다문화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해야 한다.6
현재 이주민을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는 사회통합교육은 사실 한국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국 인의 다문화 수용성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폭넓게 실시되어야 한다. 이주민이 한국사회를 이해하 고 적응하려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한국인도 이주민의 문화와 삶의 특성을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자 세가 필요하다. 다양성과 통일성이 공존하는 진정한 사회통합을 위해서는 이주민과 원주민의 공동 노력이 요구된다.
‘환대선교’를 실천하기 위해 개선되어야 할 두 번째 태도는 한국교회의 일방적인 시혜자(施惠者) 적 태도이다. 이러한 태도는 결과적으로 기부자와 수혜자 사이의 종속과 지배 관계를 낳을 수 있다.
한국교회가 손님을 맞는 주인(Host)으로서의 입장을 내려놓고 ‘고통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고 현 교수는 말한다. “내부적으로 반성적 윤리의식을 통해 우리가 섬기는 이들이 곧 그리스도를 모 심의 자리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환대’의 자리는 이미 하나님의 초청에서 시작됨을 기억하는 것이 환대 선교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우리’와 ‘그들’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벗고 우리도 그들과 동일하 게 이 땅에서 나그네라는 ‘디아스포라’ 정체성을 갖고 ‘먼저 초청받은 이방인’으로서 공동의 정체성
(Communal Identity)을 형성하여 ‘디아스포라와 함께(With Diaspora)’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려 는 자세가 필요하다.
조셉 커밍(Joseph Cumming)은 무슬림을 적으로 규정하고 정복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그리스
양성이 결여된 통일성은,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중국에서 이루어진 문화혁명이나 소련의 사례처럼, 문화적 억압과 헤게모니로 귀결된다. 통일성을 배제한 다양성은, 2000년대 말에 종파 간 갈등과 분열이 가뜩이나 취약한 국가를 위태롭게 했던 이라크 전쟁의 경우처럼, 국민 국가의 분파주의와 분열을 초래한 다. 국가가 국민들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성에 대응할 때, 통일성을 중요한 목표로 삼아야 한다.”(Banks, 2016: 50)
4 “곧 민족주의의 긍정적 역할과 성취를 인정하되, 경계와 구분을 완화하여, 민족성을 중심에 두면서도 민족주의를 지배하는 규율이 민족의 이익에 그치 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지향해 가는 민족주의이다.”(양영자 2007: 36)
5 “다문화 민족주의는 한반도의 주민들과 재외동포들이 공유하는 핵심적인 정체성(예를 들어, 한민족 동일시, 애착심, 소속감)을 공통분모로 삼고 재외동 포들이 다양하게 발전시킨 문화와 정체성을 인정하고 존중하여 다양성 속에서 통일을 추구하는 이념으로 삼을 수 있다.”(윤인진 외 2015: 63)
6 “Distinctive histories and traditions matter here, and it is important not to project the experiences of one country onto the rest of the world.”(Banting, Kymlicka 2006: 44)
도인의 ‘당파적 정체성’7을 비판하면서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도’를 근간으로 ‘정중한 복음 증거’를 실천해야 한다고 했다(우드베리, 2018: 480-495). 일방적인 태도와 물리적인 힘을 동원해서라고 정복하고 이기려는 자세를 버리고 십자가의 본질인 희 생과 섬김의 자세를 가지고 무슬림을 향해 정중한 자세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요1:14).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거하실 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하
신 아들 성자 하나님으로서의 영광을 보여주셨고 충만한 형태의 은혜와 진리를 분명하게 드러내실 수 있었다. 한국교회가 무슬림을 포함한 타종교권 이주민을 향해 이분법적 거리감을 제거하고 그들 가운데 거하면서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을 회복하려고 노력할 때 하나님께서 한국교회 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지니는 구원의 영광을 나타내시지 않을까?
아마도르 레미지오(Amador Remigio, Jr.)는 예수님의 성육신을 이주 신학적 관점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이주와 디아스포라에 대한 성경의 반응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상기시켜준다. 하나님은 사 랑이시고, 의롭고, 공의로우시며, 어떤 형태의 억압이나 착취도 혐오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토 록 사랑하사 성육신(Incarnation)이라는 이주의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그리고 이를 통
해 우리가 하나님께 이주할 수 있게 하셨다(요1:14; 3:16).”(티라 외, 2018: 77) 예수님은 하늘의 모든 영광을 내려놓고 이 땅에 이주민으로 오셔서 우리 모두를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가 되게 하사 담대 히 그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활짝 열어놓으셨다.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 오셔서 죄인을 환대하사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자녀가 되게 하신 예수님의 모범을 본받아 한국교회도 Host로서의 태도를 버리고 섬기는 종의 자세로 이주민과 함께 거할 수 있어야 한다.
- 실천적 제안
한국교회 성도들이 배타성을 띠는 혈통중심의 한민족중심사상에서 탈피하여 다문화에 대한 이해도와 다문화수용성을 높이고, 이주민을 주변화(Marginalization)하지 않고 성육신적 태도로
‘디아스포라와 함께’ 머물면서 환대 선교를 실천하도록 하기 위해 사역적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세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1) 지역교회를 중심으로 <이주민 선교를 위한 한국어교사 양성과정> 운영하는 방안
한국교회 성도들이 이주민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직접 만나 관계를 형성하는 것보다 다문화 를 이해하고 이주민의 고충을 파악하도록 하는데 효과적인 전략은 드물다. 이미 교회 안에는 한국 어 교원 자격증을 갖고 있는 성도들도 적지 않고 다문화사회 전문가 과정을 이수한 분들도 있다. 그
7 “사탄의 가장 위대한 걸작품은 십자군이었다고 믿는다. . . 십자가는 기독교 믿음 전체의 핵심인데, 십자군 전쟁 이후 유대인과 무슬림에게 그것이 의미 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제 십자가는 ‘기독교인들은 당신을 죽일 정도로 증오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본래 십자가는 무엇을 의미해야 하는가? ‘하 나님은 당신을 너무 사랑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셨고, 나도 당신을 사랑하므로 내 목숨을 내어 줄 수 있다’를 의미해야 한다. 십자군 전쟁을 통해 사탄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훼손시키는데 성공하여 그 의미를 다르게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반대를 의미하게 만들었다.”(우드베리, 2018: 494)
런데 자격증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주민 선교에 대한 동기 부여가 되어 있지 못하거나 이주민의 문화 와 언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막연한 두려움 속에 이주민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 서 사랑의교회는 2018년 디아스포라 선교회를 조직하고 매년 가을 10주 과정의 <이주민 선교를 위 한 한국어교사 양성과정>을 개설하여 성도들에게 이주민 선교의 중요성과 현황, 이주민 선교의 실
제를 교육함과 동시에 한국어교사로서의 기본 소양을 갖추게 하여 원어민 교사로서 자신감을 갖고 이주민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2019년에는 교육을 하지 못했 고 2020년과 2021년에는 비대면으로 교육을 실시하다가 금년에는 다시 대면으로 전환했는데 모집 정원 50명을 초과하여 신청자가 쇄도할 정도로 성도들의 관심이 높다(현재 조장 10명을 포함하여 70명이 훈련을 받고 있다). 교사양성과정을 마친다고 해서 한국어교원 자격증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디아스포라 선교회에서 운영하는 한국어교실에 선생님으로 봉사 가능하다(모든 수업은 일대일로 이루어진다). 교사 양성과정의 강사진은 타문화권 선교 경험을 갖고 있는 해외선교사, 이주민선교사, 한국어교육 전문가, 디아스포라 선교회 한국어교실 선생님이 담당한다.
금년 교사양성과정에는 사랑의교회 한국어교실에서 한글을 배운 대만 출신 유학생(그리스도 인)도 참여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어교실 선생님에게 받은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해 자신도 한국어교 사가 되어 또 다른 이주민을 섬기려는 것이 신청 동기다.
<모집 광고: 사랑의교회 주보(2022.8.28.)>

참고로, 본 과정에는 타 교회 성도들도 얼마든지 참여 가능하다. 이와 같이 각 지역의 중대형 교
회가 중심이 되어서 타 교회 성도들도 참여 가능한 교사양성과정을 운영하게 되면 지역사회의 모든 교회가 교회 주변에 있는 이주민들에게 직접 다가가 한글을 매개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선교 기 회가 창출된다. 평신도를 훈련하고 구비시켜 이주민선교의 일꾼으로 만드는 데 <이주민선교를 위한 한국어교사 양성과정>은 실제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 영적 지도자 양성을 위한 해외선교사와 국내 이주민선교사의 협력 네트워크 구축
기독교를 배척하는 타종교권 국가에서 한 사람의 영적 지도자를 훈련하여 세우는 일은 한국교 회와 선교사가 감당해야 할 최우선적 과제라 할 수 있다. 타종교를 갖고 있던 한 사람이 온전한 예수 님의 제자로 성숙하기까지는 오랜 기다림과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국제 이 주 시대를 맞아 한국도 이주민 수용국가로 발돋움했기 때문에 해외에서 선교사들의 전도와 양육을
받던 사람들이 한국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외선교사와 국내 이주민
선교사가 상호 신뢰하며 협력한다면 연속성을 갖고 한 사람을 공동 양육하여 영적 지도자로 키워나 갈 수 있다.
중앙아시아유학생센터에서 경험한 두 가지 사례를 나누고 싶다. 카자흐스탄에서 온 A는 모태신
앙 그리스도인이다. 한국 선교사가 개척한 교회에서 엄마와 외할머니가 예수님을 영접하여 A는 어 릴 적부터 엄마의 손을 잡고 교회를 다녔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정부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성균관 대 대학원으로 유학을 왔는데 안타깝게도 코로나로 인해 지역교회에 정착하지 못했고 무슬림 남학 생과 교제하면서 신앙적으로 방황하다가 쓰러져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다행히 방학 기간에 고향에 돌아가 신앙을 어느 정도 회복하고 돌아왔는데 친구의 소개로 우리 센터에 연결되었고 2년 동안 성경을 함께 공부하면서 건강한 리더로 성장했다. 지금은 매월 5만원씩 선교헌금도 하면서 중앙아시아 유학생들을 사역자의 마음으로 섬기고 있다. 만약 A가 한국에 유학 을 올 때 지역교회 혹은 이주민선교센터와 연결되어 지속적인 양육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두 번째 사례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G의 경우이다. 사랑의교회 파송선교사가 양육하던 학생인데 얼마 전 대구 계명대에 교환학생으로 오게 되었다. 평소 그 선교사와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었기 때문에 G 가 한국에 오게 되는 과정을 이미 잘 알고 있었고 5개월 체류 기간에 어떤 부분에 도움이 필요한지 선교사와 의견을 나누면서 우리의 역할을 찾을 수 있었다. 부족한 생활비 일부를 우리 센터에서 장 학금(매월 10만원)으로 지원하고 격주로 주말에 서울로 올라와서 토요일에는 중앙아시아유학생들 을 위한 LF(Lunch Fellowship) 행사에 참여하여 교제권을 형성하고 주일에는 사랑의교회에서 예 배를 함께 드린 후 주일학교를 탐방하고 있다. 비록 5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G가 예수님의 장 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성장해 가는 과정에 함께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부부에게는 큰 보람이 고 우즈벡 무슬림도 G처럼 변화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했다.
선교 현장에 있는 선교사와 그 현장에서 온 이주민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국내 이주민선교사가 서로 소통하면서 협력할 수 있는 길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누구의 열매인가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오직 예수님의 제자를 양성한다는 일념으로 서로 신뢰하면서 정보를 공유하고 한 영혼을 공동 양육 하는 협력 네트워크가 구축된다면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삼겹줄 동역8의 시너지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3) 이주민과 한국 성도들이 함께 하는 공동체 형성
이주민에 대한 편견과 오해는 대부분 ‘무지(Ignorance)’와 ‘무관심(Indifference)’에서 비롯된다. 이주민을 직접 만나서 대화를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우정 관계를 형성하면 ‘우리’와 ‘그들’이라는 이분법적 담벼락이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물론 문화와 사고방식에 차이점이 있지만 미래에 대한 고
8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 4:12)
민과 꿈, 가족 관계와 행복에 대한 기도제목 등은 우리와 별반 차이가 없는 사람들이란 것을 알게 되
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유학생센터(Center for Central Asian Students. 이하 CCAS)는 학기마다 격주 토요일에 LF를 실시한다. 유학생들이 호감을 갖고 참여할만한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점심을 한 끼 대접하고 함께 교제하는 사역이다. 우리는 LF에 중앙아시아유학생들만을 초대하지 않고 한국 의 기독 청년들과 장년 성도들도 초대한다. 지금까지 성복중앙교회 청년부, 사랑의교회 대학부, 관악 ESF, 사랑의교회 직장인 권사회에서 LF를 함께 했다. 그리고 지난 여름에는 <제1회 CCAS 여름캠 프: Be the Bridge!>(2박3일)를 진행했는데 중앙아시아유학생 24명과 기독 청년 12명이 참여했다.

유학생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한국인 친구다. 국가 정책적으로 다문화가정과 이주민에 대한 다양한 지원책이 마련되고 있어서 이주민의 삶이 개선되는 면도 많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주민들이 호소하는 어려움은 바로 정서적인 외로움과 친구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같은 나라에서 온 이주민들 이 서로 의지하고 공동체를 이루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에서 정착하여 살아가기 원하는 이주 민들에게는 한국인 친구와의 우정 어린 관계와 교제가 필요하다.
| 출처: 여성가족부(2018). <2018년 전국다문화가족 실태조사 연구> |
우즈벡에서 온 유학생 A는 한국 생활이 힘들어서 졸업하면 무조건 우즈벡으로 돌아갈 계획이었
지만 CCAS LF와 여름캠프를 통해 한국인 친구를 사귀게 되면서 지금은 졸업 후에 한국에서 직장 을 다니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그리고 성복중앙교회 청년은 중앙아시아 유학생들과 교제하면서 이 사역에 대한 비전을 발견하여 지금은 러시아어를 배고 있고 CCAS의 staff으로 헌신하고 있다. 이주 민과 한국 성도들이 함께 하는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고 계신다.
이주민을 위한 ‘환대 선교’는 ‘디아스포라와 함께’하는 선교를 지향한다. 이주민들만의 공동체와 예배가 필요한 만큼 이주민과 한국 성도가 자연스럽게 함께 만나 교제할 수 있는 만남의 장 또한 반
드시 필요하다. 시혜자와 수혜자의 입장이 아니라 동등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서로를 존중하면서
한국교회가 명실상부한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이주민 선교 현장이 자꾸만 주변 으로 밀려나가 지역교회 성도들의 일상적인 교회 모임에서 이주민을 만날 기회가 사라지는 것은 결 코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은 이주민들에게 찾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을 사랑의 마음으로 우리
의 삶의 자리로 초대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주민을 편견 없이 우리의 가족으로
맞아줄 수 있는 영적 안목9과 사랑이 필요하다. 우리가 저들의 가족이 되어 줄 때 저들도 우리를 가 족으로 맞아줄 것이다.
9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르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
니이니라 하시더라.”(마12:49-50)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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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영 역(2018). 씨앗에서 열매로. 좋은씨앗.
국내 우즈벡무슬림 현황과 동반자선교 비전적 대안 – 김해 우즈벡 센터를 중심으로- / 정요셉 선교사 (FMB)
들어가는 말
올해는 625 정전 70주년이다. 전쟁의 아픔은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수많은 피난민의 다양한 모 습의 상처가 남아 있다. 그러나 또 한편, 피난민과 이주민과 함께 대한민국은 찬란하게 새로 거듭나 는 기회가 되었다. 대한민국이 풍전등화에 있을 때, 부산, 경남 분들은 타지역의 피난민을 3년간 섬겼 다. 또한 그때 전국에서 모인 피난 이주 목회자들과 함께 부산의 초량교회와 중앙교회에서 회개운동 과 구국기도회가 시작되면서 주의 은혜로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였다.1 그 후 어려움을 극복하고 부 흥하면서 세계가 인정하는 선교 대한민국이 되었다.
이주민은 세계적 현상이고, 의심할 여지 없이 세계의 모든 지역교회가 거부할 수 없는 사역 대상 이 되었다. 한국에 늘어나는 외국인의 수는 팬데믹으로 주춤했지만 계속 늘어나서 곧 300만에 이를 것이다. 특히 팬데믹 이후의 국제 혼돈 과정에서 다양한 이유로 국제 이주민의 수는 증가할 것이고 국내 무슬림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아직도 논쟁 중인 대구 북구 대현동의 이슬람 사원 건축 건2처럼 이해되지 못한 동거는 갈등으로 문제화될 것이다. 그러므로 더 이상 무슬림 선교의 방향을 갈등 관계로의 시작이 아닌 환대를 통한 새로운 세대를 향한 동반자 비전에 두어야 한다. 그 옛날 아 브라함과 모세와 다니엘, 그리고 수많은 믿음의 조상이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이주민들도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에서 뿌리 내리고 꽃피고 열매 맺도록 복음으로 환대하고 새로운 비전을 향한 동반자로서 의 이주민 선교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현재 국내에는 30만 이상의 이주 무슬림이 있다. 등록된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는 전국에 23곳 이 있고, 기도처인 무쌀라는 이슬람 연합회의 자료로 221곳이다. 더욱이 한국인 무슬림의 수도 이미 7만을 넘어 곧 10만명 시대가 된다고 한다. 국내 선교 중에서도 무슬림 선교는 더 이상 고민 차원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 도래와 한국교회에 남은 마지막 사명의 차원에서 주시는 놀라운 선교의 기회 라고 확신한다.
국내 무슬림 중에서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민족이 우즈벡이다.3 한국의 무슬림 선교는 전방
1 부산기독이야기, 전쟁기 부산교계: 기도운동, https://kcnp.com/news/view.php?no=7038
2 대구 대현동 이슬람 사원건립과 대한민국 다문화주의 ‘인권’, 크리스천투데이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53288
3 2020년 법무부 통계, 중국 89만명, 베트남 21만명, 태국 18만명, 미국 14만명, 우즈벡6만5천, 필리핀4만9천, 일본2만6천등 https://www.moj.go.kr/
위 선교가 되어야 할 만큼 다양한 곳에서 점차 게토화4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부산 이슬람연합회가
정리한 대로, 현재 김해와 부산, 울산, 경남(부울경)지역에 50곳의 이슬람 사원이 형성됐다. 이에 본 연구는 필자와 지역교회의 선교 정책과 협력을 통해 무슬림이 집중되고 있는 경상남도 김해시의 이 주 우즈벡을 중심으로 무슬림의 현황과 동반자 선교비전 사역을 제시하려 한다.
- I. 김해 개관
경남 김해지역은 고대 가야의 발원지이며, 삼국유사에 의하면 당시 인도의 아유타국 출신의 왕 의 딸인 허황후는 김수로왕을 만나 결혼하였다고 한다. 후에 10명의 자녀를 낳아 그중 두 명에게 허 씨 성을 주었다고 기록5되어 있다. 이러한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김해는 한국의 첫 이주민이 정착한 도시이자 동반자가 되어 국제결혼, 다문화 가정이 시작된 곳이다.
김해 인구는 1995년도 김해시와 군이 통합할 때, 25만 정도였다. 2010년에 50만을 넘겼으니 15 년 만에 배가 된 것이다. 2019년 12월에 56만 정도가 되었다. 사업체 수도 이와 비슷하게 2001년 10,543개였던 것이 2019년 12월 47,914개로 훌쩍 뛰었다. 6김해시청 통계에 따르면 김해의 외국인 수 는 2000년 3,453명에서 2019년 33,718명이다.
이들 지역은 산업 공단과 영세 중소 공장들이 밀집해 있다. 부산과 창원(마산) 사이의 김해는 산 업 물품을 납품하기 위한 저렴하고 근접한 넓은 지역으로 안성맞춤이다. 이러한 변방 김해는 특별한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개별공장들이 1980년대부터 시작하여 2000년도에 중소기업 단지로 변화
되었고, 후에 노무현 대통령은 본인의 고향 김해를 “난개발의 전형”7이라고 지적하였다. 이들 대부분 의 작업 환경은 한국 사람들이 꺼리는 3D 직종군에 속하기에 외국 이주노동자들이 몰렸다.
- II. 김해의 이슬람 공동체
국내 입국의 무슬림들의 다양한 통계가 있지만 대략 30만 정도로 볼 수 있는데 그중 부울경 지 역의 이슬람 기도처는 50곳에 도시 중심으로 세워졌다. 특히 대학에 있는 기도실은 이슬람 국가에 서 온 학생들을 관리하는 책임자가 있고, 새롭게 입국하는 학생들은 부산 이슬람 사원에서 면담한 다. 이에 각 지역의 무슬림 공동체가 견고한 진이 되기 전, 지금 지역교회가 선교적 연합이 필요하다.
- 김해 무슬림 현황
moj/2412/subview.do
4 Ghetto(게토): 게토라는 이름은 1516년경 베네치아에서 처음 등장했다. 게토의 원래 목적은 유대인들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현재는 그 의미가 “외국 출 신 이민자들, 또는 특정 인종이 모여 사는 곳”으로 바뀌었다.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그들만의 체제로 살아가는 집단을 두고 게토화 되었다는 표현을 쓴다. https://namu.wiki/w/%EA%B2%8C%ED%86%A0
5 삼국유사 제2 기이(紀異第二) 가락국기(駕洛國記), https://db.history.go.kr/id/sy_002r_0010_0230_0030
6 https://stat.gimhae.go.kr/
7 부산일보 2005.12.8.일 자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051208000016
김해에는 52개국의 이주민이 살고 있다. 그중 이슬람 협력기구(Organization of Islamic
Cooperation, 약칭 OIC)에 속한 나라의 이주민의 수는 6,027명이다. 그중에 가장 많은 무슬림인 우 즈벡인 수가 2,645명이다. 외국인 거리는 주로 토요일과 일요일 중심으로 활성화되어 있으며 이들은 김해의 3만 명을 포함 주변 도시의 이주민 수는 7만명8에 이른다. 또한 전통시장 중심으로 5개의 이 슬람 사원이 모여 있어 특히 이슬람 기도시간 후인 금요일 낮엔 사원마다 150-200명 정도로 기도를 마친 1000여명의 무슬림의 집중 현상이 생긴다. 이들은 이슬람 명절인 두 번의 하이트 메이람엔 국 가별로 연합기도회9를 한다. 이를 위해서 김해 무슬림 연합회에서 연합기도회를 할 공간을 요청하는 데, 시에서는 각 기도처와 체육관 등의 제한된 공간에서 예배하도록 협조하고 있다.
- 김해의 이슬람화
김해의 5개 사원은 각각 나라별로 운영되지만 본질적으로 무슬림 연합회로 협력하며 함께 한다. 이들은 몇 가지 이유로 김해시청에 민원을 넣었는데, 김해에 3,000명이 함께 예배할 수 있는 대형사 원 건축허가를 바라고 있었다. 또한 이것이 지어질 때까지 정기적인 기도와 예배를 위해 김해 중심의 종로길을 금요일 낮 예배 시간에 차량을 통제하고 길거리 기도장소로 요청했다고 사원의 방문때, 필 자에게 직접 전했다. 김해시는 난감해하며 지역민들의 혐오시설 반대 정서로 여론과 함께 무슬림의 상황도 관찰하는 중이다.
해마다 두차례 고르반 축제와 라마단 종료축제를 위해 국가별로 모여서 기도회를 한다. 당일 아 침 각 이슬람 사원에서 자신들의 집회 인원을 시에 보고하고 기도집회를 진행한다. 지난 코로나 전에 는 700명 모인다는 불암 체육관에 우즈벡인 중심으로 3,000명의 다국적 무슬림이 기도회를 진행했 다. 또 다른 사원과 거리에서는 각각 500명, 300여명의 무슬림이 예배했다.
III. 다양한 무슬림 사역의 실제
현장 선교사로서 국내 사역을 시작하기에 앞서 선교의 개념 정리가 필요했다. 선교에 대한 개인
적인 부르심은 마28:19-20 말씀이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이전 속지주의적 선 교에서는 직접 찾아 가야했지만 이젠 글로벌 현상이 국제적 이동을 통해 지역화가 가속됨으로 속인 주의적 선교의 개념에서 찾아온 열방의 국내 이주민(디아스포라) 사역이 오늘날 중요한 선교사역이
되었다. 지역에 국한된 선교가 아니라 민족과 종족개념의 보편화와 선교사가 불필요하거나 추방하는
나라들의 증가로 찾아온 이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모든 곳에서 모든 곳으로”의 선교개념이 실 제화되었다.
8 2019년 12월 경상남도 통계청자료.
9 라마단-하이트와 쿠르반-하이트, 이슬람교의 종교 관련 경축일로, 라마단의 한 달간의 금식일이 끝나고 음식을 먹기 시작하는 날이 라마단-하이트이며, 라마단-하이트 70일 후에 쿠르반-하이트가 된다.
- 전략적인 초기 사역
안식년을 방문한 필자는 선교대회 장소인 교회에서 우즈벡 무슬림에 대한 설명 요청을 받고 해 외 무슬림사역자로서 설명회를 시작하였다. 이어서 지역교회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관심과 관계자들 이 함께 기도회를 시작하였다. 그후 김해지역을 방문하면서 연결된 우즈벡 근로자들과 유학생들이 모일 센터 오픈을 위해 어떤 필요가 있는지를 묻고 교제하는 공청회 시간을 열었다. 이들은 이주민 의 일반적인 필요인 의사소통의 한글교육, 직장문제, 의료도움, 분쟁해결, 비자문제 등으로 비자 유 무에 따라 필요에 차이가 있었다.
그후 성경공부를 통해 교회를 세우고 성장하여 재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시작하였다. 해외에선 선교사들이 나그네의 입장으로 현지인을 만나고 도움을 받으며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그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면 국내 사역은 나그네로 온 이들에게 하나하나 노출하면서 우리 속으로 받아들이 는 작업을 이해하여야 했다. 만남을 지속하면서 친구로 만남과 예배자로 만남 간에 생기는 조급함의 갈등이 드러나기 시작되었다. 사역이 시작되고 반갑게 친구가 되지만 곧 외국인 거리에서 눈에 띄고 소문이 났다. 점차 몇 친구들과 주일 예배가 시작되지만, 보안과 훈련을 위하여 할 수만 있다면 주일 예배는 늦게 시작해야 했다.
다양한 사역 중, 국제심방 사역은 이주민의 마음을 열고 열매를 취하는 중요한 사역이다. 돌아간 이들과 현재 일하는 근로자 가정을 방문하여 함께 기뻐하는 사역은 상상할 수 없는 결과들을 가져 오기도 했다. 사역초기 길거리에서 3명의 우즈벡 지방출신 여인들을 만났다. 한동네에 사는 남편들 이 일하러 왔다가 교통사고로 모두 사망한 일을 처리하러 온 것이었다. 도우며 교제하며 모두 복음 을 듣고 영접하고 성경공부하다가 돌아갔다. 그해 우즈벡을 방문했을 때, 그들의 집들을 방문하며 그 들의 자녀들과 함께 여행하며 위로하고 축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후 교회 리더들에게 위임하고 돌 아왔다. 지난 여름 우즈벡을 방문하여 수련회에 그들을 초청하였는데, 자녀들 친척들 13명이 참석하 여 침례 받는 은혜가 있었다. 국내 사역과 현지 사역자 그리고 복음을 듣고 돌아간 이들과의 만남은 환대와 복음의 멋진 콜라보10 사역이었다.
- 김해 지역연구 사역
모든 기업의 사업은 초기에 연구개발을 기반으로 진행한다. 선교사역도 연구와 조사가 기초하여 야 한다. 2021년 통계청 자료엔 국내에는 우즈벡인 6만7천명, OIC 국가 출신 외국인은 25만명11에 국내 무슬림 6만명(한국 이슬람교 중앙회 통계)12을 포함하여 30만 정도의 국내에 무슬림이 있다. 김
10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의 약어, 프랑스의 말로 어원은 협력, 합작, 공동연구나 공동제작 등 한 개 이상의 단체나 조직, 개체가 서로 협력, 합작하 는 것을 의미한다. 서로 이질적으로 전혀 연관성이 없는 기관들이 협력, 합작하여 가치를 창출하는 것도 콜라보레이션이다. https://blog.daum.net/enp.or.kr/38
11 https://kosis.kr/statHtml/statHtml.do?orgId=111&tblId=DT_1B040A6 12 https://www.yna.co.kr/view/AKR20201019082900501
해시청 통계에 의하면 300개의 등록교회와 153곳의 사찰, 13곳의 성당이 있고 무속인은 있는 것이
다. 이주민 중에 우즈벡 인은 2,600명 정도, 무슬림은 6천명 정도다.
한국 이주민 중에서 우즈벡 인은 전체의 4번째 외국인으로 3%에 불과하고, 30만 정도의 무슬림 의 수도 국내 이주민의 수에 13%에 불과하다. 그러나 김해의 2만4천 명의 이주민 근로자 중에 우즈 벡인은 2천600명으로 올해는 김해의 가장 많은 외국인이 되었다. 특히 무슬림의 수 6천명은 전체의 25%나 된다. 이 비율은 김해가 전국에서 가장 높은 비율의 무슬림의 도시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유로 우즈벡 무슬림은 부울경 지역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었고 이후 김해시청의 중요 한 관리 민족이 되었다. 이에 김해시청은 ‘이주민 바른 정착 프로젝트’에 따라 첫 번째 민족으로 우즈 벡을 선택하였고 이후 10개 민족으로 협의서(MOU)를 작성하였다. 이러한 협력은 이후 센터 사역 에 큰 격려가 되었다.
- IV. 전략적 교회 개척 사역
- 센터 사역
김해의 초기 사역은 2019년도부터 동역자들과 함께 기도회와 한글 수업으로 시작하였다. 한글 수업 후, 노래 교실 그리고 자유로운 교제 시간 후 자원하는 사람들 중심으로 우즈벡어 예배를 드린 다. 노래와 운동, 여행과 다양한 도움 등으로 관계를 만들어 갔다. 경제적 이유와 더 나은 삶을 위해 찾아온 이들에게 우리는 가장 풍성한 삶을 소개할 수 있는 유일한 자들이다. 찾아온 우즈벡인들에 게 우리도 겁 없이 복음을 전하고 성경공부를 시작하고 예배를 시작하였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환 대와 관계보다 동역하는 분들의 열정과 수고에 예배모임을 보다 일찍 시작하였다.
센터의 모든 사역의 방향은 그 방향대로 동역자들이 각자의 역활을 담당하였다. 규모에 맞게 한 글 교육이 시작되었고 부산투어, 야유회와 체육대회, 심방등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주의 은혜로 관심자 그룹과 함께 예배그룹이 형성되었다. 동역자들은 개별적인 긍휼 사역으로 우즈벡인들과 다 양한 대면, 비대면 심방이 시작되었다. 초기 사역엔 이러한 사역으로 센터를 통하여 다양한 도움을 받지만, 센터교회인지를 모르고 주변의 왕따로 떠났다가 다시 찾아오는 친구들이 생기게 되었다. 처 음 방문한 친구들에게 따뜻한 환대에 최선을 다하지만, 정착하게 하는 것에는 또 다른 차원의 관계 를 요구한다. 김해시 우즈벡 무슬림들이 가득한 곳에서의 센터를 통한 하나님의 자녀로의 지속적인 사역은 역시 한없는 사랑의 환대가 정답이다.
- 일반적인 무슬림 형제의 거부
국내 무슬림 사역 역시 민감한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주의가 필요했다. 한국이기에 사역 초기에 는 자유롭게 복음의 내용을 전달했다. 적지 않은 무슬림들이 복음을 영접하지만 우즈벡 현지보다 더한 주변의 눈치와 직접적인 해코지로 인해 점차 돌아가고 거부하고 피하기가 일상이 되었다. 우즈 벡인들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십자가, 삼위일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보다는 “어린양
예수”13를 전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센터에서 한글과 예배를 동시에 하는 것에 조심스러웠다. 센터
에게도 그렇고 주변의 다른 무슬림들에게 선입견을 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어떤 친구들은 이미 교 회가 어떤 곳인 줄 알면서 방문하는 친구들이 있다. 한국에 여러 해 있으면서 다양한 교회를 경험했 다. 한국 사람처럼 말할 줄 아는, 행사 때마다 찾아오는 친구들이다. 여전히 복음의 능력을 믿고 변 화되는 날까지 도전해야 할 친구들이다.
- A 형제의 외침
복음을 듣고 자라다가 무슬림 공동체의 위협을 받고 두려움에 빠진 친구가 있다. 자기는 일하며 공부하는 학생인데 민족 종교를 바꾸도록 강요를 받았고 거짓된 책 성경을 주입하여 머리가 아프고 동료들에게 왕따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슬람에 없는 사람의 원죄의 가르침에 저주를 받을 것이고 무슬림 사무실로 와서 자기들의 질문에 답해야 하는데, 바르게 답하지 못하면 합당한 대가를 받게 될 것이라고 위협한다. 그 친구에게 여러 가지 말로 답변할 수 있지만, 그는 외국에 나와 있는 나그네 요, 소수요, 약자로서 자신의 유일한 민족공동체로부터 외톨이가 되는 것에 두려움 있다. 복음이란 구원하고 살리고 치유만이 아니라 특별히 함께함으로 모든 두려움을 이기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이어야 한다.
- B 형제의 도전
일 년 정도 출석한 B형제는 선한 일을 해야 구원받는다며 항상 간식을 준비해 주일 참석하다가 토론이 시작되었다. 그는 성경은 왜곡되었다. 예수님 이름으로 구원받으면 어떻게 구약의 사람은 구 원받는가. 예수님이 예언한14 선지자 무하마드를 믿어야 한다. 예수님이 몸으로 오셨는데, 몸은 흙이 니 기독교는 돌을 섬기는 불교와 같은 것이다. 원본이 없는, 사람이 쓴 왜곡된 책(성경)을 믿지 말고 하나님을 직접 믿어야 한다. 기독교는 여기저기서, 이것저것을 가져다가(예수님은 유대인의 성경에서, 믿음이란 말은 코란에서) 종교를 만들어서 틀렸다는 것이다. 이런 질문들은 일반적으로 이슬람이 기 독교를 공격 할 때 쓰는 질문들이다. 목적을 갖고 따로 배우기 전에는 알기 어려운 내용들이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정신없이 말한 후, 한마디 더 한다. ‘선생님의 변화를 위해 계속 기도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13 어린양 전도법: 필자가 우즈벡 사역을 하면서 사용한 전도 방법으로 모든 이슬람 세계에 전통으로 잡는 어린양의 의미를 ‘구속적 유비’로 재해석하여 무 슬림에게 어린양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는 전도 방법
14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이슬람교도는 Sura 3:81에 신구약 성경 에 무함마드가 올 것을 예언해 놓았다고 하고, 그 근거로 요한복음의 보혜사 성령 ‘파라클레토스(παρακλήτος)’가 본래는 페리클뤼토스(περικλύτο ς, 찬양받을 자) 즉 ‘아흐마드’인데,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왜곡하여 무함마드에 관한 예언을 성경에서 삭제했다고 한다. 그들은 아흐마드 ‘찬양받을 자(Der Gepriesene)’를 무함마드라고 해석한 것이다. 즉 예수의 후계자로 보혜사 성령이 오신다는 예언이 아니라, 예수의 후계자로 찬양받을 자인 무함마드가 온다 는 예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 C 형제의 연결
C 형제는 한글 수업과 주일 예배에 종종 나왔다. 복음에는 적극적이지 않던 형제인데, 탈장 수 술 도움 후, 센터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형제였다. 그해 여름 센터 동역자들과 우즈벡 방문 때, 그의 고향도 방문하였다. 마을 사람과 친척들 3, 40여명이 마을 입구에서부터 환영하며 기다려주었 다. 오히려 우리가 배워야 할 환대였다. 짧은 방문 시간이었지만, 형제 아버지는 성대한 상차림으로 환영하고 한국의 아들에 대한 고마움을 깊이 전달하였다. 현지 리더들과 방문한 우리는 짧은 시간 교제와 나눔을 통해 어린이들 15명과 어른들 12명이 복음을 듣고 모두 영접하는 시간을 경험하였다. 이주 무슬림도 그들의 지식의 정도가 다양하다. 민족에 따라 차이도 있겠지만 의도적, 방어적 이 슬람 신앙을 갖는 무슬림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이다. 주일 예배 중에 형제의 이러한 반론과 질문이 대부분은 복음을 소개하는 좋은 시간도 되지만 아직 믿음이 자라지 못한 무슬림에게 오히려 소극적 자세와 모임을 회피하거나 떠나게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러한 도전들에 대한 한국에서의 사역자의
자세를 아래와 같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 V. 국내 이주 무슬림사역의 실천적 제안
이슬람은 기독교의 근본을 부인하는 종교다. 기독교의 근본인 성경을 부인하며 인간의 원죄를 부인한다. 그에 따른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거부한다. 이러한 복음에 대치되는 이슬람은 기성세대와 기성문화를 거부하는 젊은이들에게 기독교를 거부하게 하고 신비로운 포장을 통해 소수 자란 이름으로 한국 사회의 안방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젠 교회가 나그네와 이웃을 돕는 차원이 아 니라 한국교회 다음 세대의 사활이 걸렸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최선의 선교 기회다. 찾아온 열방의 나 그네들을 홈에서 초대교회를 경험하는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 지역교회를 중심으로 한 협력 선교
국내 이주 무슬림 선교는 미개척 분야다. 무슬림 선교의 경험자와 전문가가 필요하다. 지역교회 는 국내 무슬림 선교의 선입견으로 제대로 시도도 하지 못한 채, 포기부터 하지는 않을지 안타까움 앞에 서 있다. 많은 어려움에도 사역의 중심에는 지역교회가 세워져야 한다. 필자가 사역을 시작한 계기 역시 지역교회의 적극적인 도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내 무슬림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주체 도 지역교회고, 실제적인 협력을 할 수 있는 곳 역시 지역교회다. 지역교회를 중심으로 직접적인 복 음 사역과 함께 다양한 기관과의 협력과 도움을 통하여 적극적이고 실제적인 협력 사역들이 이루어 져야 한다. 또한 지역교회는 현장 선교사들과 연합과 협력을 통해 필요한 자원과 인력을 적절하게 활 용한다. 과도하거나 일방적인 사역은 서로에게 상처가 될 뿐 아니라 무슬림 사역의 치명적인 실수로 중요한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최근 이러한 어려움 중에서도 오늘과 같은 다양한 시도들은 지역교회와
이주민 사역의 협력을 위한 좋은 장이 된다.
우리 곁에 와있는 열방의 손님들은 개별적 존재로 나와 있지만, 실제는 그 한 사람이 개체가 아 닌 지금까지 그가 살아온 무슬림 공동체의 대표이면서 그를 둘러싸고 있는 민족과 문화, 가문과 전 통, 역사와 가득한 오해들로 깊이 쌓여 있는 하나의 문화 집단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그 한 사람의 변화는 빌립보 감옥의 간수와 같이 그가 속한 가족과 마을, 문화와 공동체 변화의 관문15 인 것이다. 그러기에 무슬림 사역은 값진 것이고 우리가 할 수 없기에 전적으로 주의 역사하심을 구 하게 된다. 한 영혼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우리의 문제와 한계를 안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역량 을 총동원하여 협력과 하나됨의 ‘콜라보 사역’의 모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 현장 중심의 맞춤 선교
선교의 대상과 자원은 철저하게 현지화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비단 선교 자원뿐만 아니 라 선교 대상 역시 도시와 지역과 민족 성향에 따라 다른 전략들이 필요하다. 필자 역시 해외에서 사 역하던 방법 그대로가 아닌 국내 상황과 지역의 특성을 알고 차별화된 맞춤형 사역이 중요함을 인식 하고 사역지와 이주민의 특성을 더 배우게 되었다.
필드에서 국내 이주민 선교도 모든 사역과 동일하게 하나님이 하신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주신 다양한 자원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배치함으로 우리 시대에 주어진 과업을 성취해야 한다.
- 누구나 어디에서나 가능한 즉각적 선교
이주민 선교는 지금 즉시, 누구나 어디에서나 실천 가능한 사역이다. 국내 어디서나 자원하는 누 구든지 사역에 협력할 수 있고 다양한 사역들을 실천할 수 있는 즉각적인 선교다, 작은 교회는 작은 대로, 성도 개인이 즉각적으로 섬기고 방문하고 초청하고 증거할 수 있다. 우즈벡센터에서는 부경대 유학생 대상으로 일대일 매칭 사역을 했는데, 유학생 한 명과 성도 가정 이 한 달에 한 번, 즉석식 수 준으로 3개월, 혹은 6개월을 만나는 사역인데 유학생들도 성도 가정도 부담 없이 동참할 수 있었던 사역이었다. 초기 사역은 전도자의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사역 수위를 조절할 수 있다. 극도의 보안 과 위장이 필요 없이 주어진 환경에서 단순하게 시작할 수 있다. 이 사역은 누구나 열매를 얻는 사역 이다. 무슬림은 물론, 교회와 사역자들에게 주시는 은혜와 감동은 선교 현장에서 경험하는 그대로 다. 교회는 선교에 대한 방향성과 지속적인 도전 그리고 기회들을 접할 수 있는 사역을 제시해야 한 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사역으로 다음을 소개한다. 이주민 선교는 말 그대로 홈구장 선교다.
- 이주민, 새로운 시작을 위한 동반자
이미 이주민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밀려 들어오고 있다. 이를 통한 하나님의 뜻은 이들과 함
15 사도행전 16:31 KRV,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께 동반자되어 이 땅과 새로운 비전을 향한 열린 사고가 필요한 때가 되었다고 확신한다. 이제까지
이주민은 환대하며 복음 듣고 돌아가야 할 손님으로 대하는 관계에서 그들과 우리가 사는 이곳에 꽃 피고 열매맺도록 돕고 그들과 함께 새로운 새대로 나가야하는 동반자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이를 위 해선 이주민을 복음화하는 단계를 넘어서 협력하고 동역하여 동반자로서 함께하는 비전 공동체로 인식해야 한다.
- 우즈벡 센터의 다음 과제
코로나 전 다양한 사역들이 국내 이주민의 수는 지난 10년간 배로 증가하였으나 국내 전체 이 주민교회는 그에 못 미치는 10년 전 500개 정도에서 17년도에 570개 현재는 700개 정도를 본다.16 ‘국내 사역’이란 이름이 사역의 이해를 제한하고 활동을 축소한다. 이주민 선교를 전도나 목회로만 생각해 사역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합류하려는 선교사들이 적다. 이러한 인식은 협력과 후원에 제한 을 두게 한다. 또한 지역교회의 지원과 관심, 선교본부의 적극적인 사역의 문을 여는 본격적인 이주 민 선교를 제안한다.
맺는 말
글로벌 이주민의 증가는 의심할 여지없이 전세계적 현상이고 이주민 사역은 구속사와 현대사 그 리고 기독교 선교사에 중요한 사역이다. 특히 이들과 함께 증가하는 이슬람의 도전은 이미 위협의 한 계를 넘어섰다. 어느덧 국내 이슬람도 곳곳에서 다양하게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고 도전하며 충돌 하고 있다. 이제 이주민 사역 중 특히 무슬림 선교는 회피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아닌 무슬림 안에 감 춰진 하나님의 형상이 예수의 복음으로 회복되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각 사역은 각각의 은사와 달 란트를 통하여 다양한 모습의 환대와 섬김이 요구된다.
이에 지역 무슬림 선교를 위해 최전방에 있는 지역교회는 가용한 모든 자원과 특히 필드 선교사 와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무슬림의 문화와 세계관을 배우고 협력할 때, 이들의 마음을 얻게 될 것 이다. 물리적 경계를 넘어선 이들에게 감정적 경계는 그들의 자존심이다. 진솔한 환대와 편견 없는 수용이 이들의 마음을 열 것이고 우리의 자리를 양보하고 내어놓을 때, 비로소 저들이 우리 안에서 꽃피우게 될 것이다.
특히 이주민선교에 있어서 대하는 자세에서 수여자의 입장이 아닌 동역자 혹은 요청자의 자세 를 가짐도 필요하다고 본다. 성경의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많은 믿음의 조상이 이주민이었다. 요셉도 모세도 다니엘도 이스라엘 민족 자체가 이주민이었고 예수님도 객지에서 태어나 어려서 이주 생활을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선 이들을 통하여 정주민들을 구원하시고 변화시키셨다. 이러한 주 의 섭리가 오늘날에는 불필요한가? 국내 이주민사역에 또 다른 패러다임으로서 이주민을 보내야 할
16 GMS국내다민족사역연합체출판부 엮음, 『이주민 사역과 한국교회』, 총회세계선교회 GMS, 2021, p.230
사역의 도구로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사역의 동반자뿐 아니라 이 땅, 대한민국을 축복할 하나님의 모
략으로서의 비전적 대안을 갖고자 도전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이상 방법, 전투력, 노하우(Know-How)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17이다. 실수하고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는 예수님의 성품과 현상에 대한 열린 해석 의 자세를 견지하면서 이주민들을 섬긴다면 우리가 생각하지못하였던 주의 뜻을 이루실 것이다. 한 국교회 또한 위기 가운데 이슬람의 도전으로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여 있다. 이러한 때의 환대와 하 나님 형상의 회복은 사역의 목표일 뿐 아니라, 우리 각 교회와 성도들의 회복되어져야 우리 주님의 꿈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 새로운 패러다임의 선교 시대에 맞이하며 본질적인 질문 앞에 서게 한다. 교회
와 선교 사명에 관한 하나님의 관점이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 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막12:30-31)
우리 앞에 있는 국내 무슬림 중 가장 많은 우즈벡인 안에서 계명의 본질인 참사랑의 환대를 통 한 동반자되어 새로운 비전을 향한 세계선교로에 돌파가 일어나고 다음 세대를 위한 신앙의 유산 전
달과 함께 한국교회가 회복되기를 소망한다.
17 빌립보서 2:5-11 KRV,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
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 자가에 죽으심이라
참고문헌
- 1.Sadiri Joy Tira/ Tetsunao Yamamori 편저,『디아스포라 선교학』, 더메이커(2018)
- GMS 국내이주민다민족사역연합체출판부 엮음, 『이주민 사역과 한국교회』, 총회세계선교회GMS(2021)
- 3.이나빌,『그들은 왜 이슬람을 떠나는가』, CLC(2021)
- 4.유해석,『기독교와 이슬람 무엇이 다른가』, 생명의말씀사(2019), 5쇄
- 마이크쉽맨, 『Any3 누구든지 어디든지 언제든지』, 세계협력선교출판사(2016)
- Mark A. Gabriel, 『ИСО ва МУХАММАД』,FRONTNINE A STRONG COMPAN 7. 주성일(2018), “국내 무슬림 전도와 양육방안, 미션네트워크 6, p207
- 오석환(2020), “한국선교를 위한 4가지 제언”, 한국선교KMQ 봄호, p122
- 한ㆍ중앙아시아 인적자원의 교류현황과 활성화 방안
귀국 선교사의 눈으로 바라본 이주민 선교 / 최헌주 선교사 (위디국제선교회)
Ⅰ. 들어가는 말
2006년 인도 선교사로 파송 받기 전 교단 선교사 인준 면접이 있었다. 면접 중 선교사 지망생의 진심을 담아 “인도에 제 뼈를 묻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때 필자를 인터뷰하시던 선교사님의 대답 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선교지는 더 이상 선교사의 뼈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이 참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전 세계적으로 선교 환경이 다변화하면서 실제로 선교지가 더 이상 선교사의 뼈를 원하지 않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Ⅱ. 귀국 선교사 증가 요인
- 선교사 비자 거절과 추방, 입국 거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비자발적으로 철수하는 귀국 선교사가 증가하는 시대가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로 가장 눈에 띄는 요인은 선교사 비자 거절과 추방, 입국 거부이 다. 2013년 시진핑 주석 취임 이후 대대적으로 중국 선교사 추방이 시작되었다. 2014년 모디 수상 취 임 이후 인도 또한 강력한 힌두민족주의를 앞세우면서 중국의 길을 따라가고 있다.
중국이나 인도뿐 아니라 중앙아시아를 비롯한 다른 미전도 종족 국가에도 전통적인 목회자 선 교사가 들어가서 사역할 수 있는 선교의 문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러한 선교사들의 비자발적 철 수에 기름을 끼얹은 것이 코로나 팬데믹이다. 팬데믹으로 선교지를 떠난 선교사들이 다시 합법적인 비자를 받아서 재입국하지 못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 현지인 중심 선교 전환과 선교지 이양
둘째로 조금 더 근본적인 요인은 현지인 중심 선교로의 전환과 그에 따른 선교지 이양이다. 전통 적으로 선교는 북반구 서구권에서 남반구 비서구권으로 선교사를 보내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러 한 선교 형태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1971년 동아프리카 케냐교회가 선교 모라토리엄을 선포 했다. 서구선교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선교를 5년간 유예한 것이다. 그 결과는 놀랍게도 현지 교 회의 자립과 성장으로 이어졌다.
2007년 인도 하이데라바드에서 열린 제1차 파트너십 포럼에 참석했다. 그때 240개 인도선교단
체가 소속된 IMA(India Missions Association)의 대표 라젠드란 박사가 한국 선교사들에게 던진 도전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인도교회와 단체들이 이미 잘하고 있는 교회 개척, 도시 빈민 사역, 종족 사역들은 우리에게 맡기고 한국 교회는 전략적인 파트너십으로 동역해주길 바랍니다.”
실제로 선교지 교회의 성장으로 곳곳에서 자연스러운 선교 이양이 이루어지고 있다. 선교학적 으로 볼 때도 바람직한 선교 방향이 아닐 수 없다. 랄프 윈터 박사는 선교 이양 전략을 4P로 설명 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선교사와 현지 교회의 관계는 개척(Pioneer) 단계, 부모(Parent) 단계, 동역 (Partner) 단계를 지나 현지 교회가 주도하는 동참(Participant) 단계까지 나아가야 한다.1
지난 몇 년간 인도의 사역 현장에서는 비자 연장 거절과 코로나 팬데믹으로 현장 사역이 어려웠 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이 선교 이양을 촉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예전에는 필자가 세례를 주었으나 현지 사역자가 신학을 마치고 목사 안수를 받으면서 지금은 직접 세례를 베풀고 성도들을 목양하고 있다. 여전히 느리긴 하지만 건강한 토착교회로 자립하는 단계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 속지주의에서 속인주의 패러다임 전환
마지막 세 번째 요인은 속지주의에서 속인주의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전통적인 선교는 선교사 를 특정 지역에 파송해서 사역하는 방식이었다. 그렇지만 최근 전 세계 사람들이 모든 곳에서 모든 곳으로 이동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면서 세계선교의 패러다임도 속지주의에서 속인주의 선교로 변 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도 선교사는 무조건 인도에서 사역해야만 했다면 지금은 전 세계에 흩어진 1천 8백 만의 인도인 디아스포라를 향한 사역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중동의 UAE 같은 나라는 천 만 인구 중에서 인도인이 3백만이다. 그래서 중동의 작은 인도라고 불린다. 필자와 함께 훈련받았던 교단 선교사 한 분도 중국 선교를 하다가 비자발적으로 철수했는데 지금은 중국 선교사로서 캐나다 의 중국인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다. 이처럼 속지주의에서 속인주의로 변화하는 선교 상황 속에서 선 교사 재배치의 필요성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Ⅲ. 귀국 선교사의 이주민 사역 전환 필요성
한국선교연구원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임시 귀국한 장기 선교사는 1,230명인데 그중에서 치 안, 전염병, 비자 거절, 추방 등으로 비자발적 철수한 장기 선교사는 36.9%인 453명이다.2 이처럼 증 가하는 귀국 선교사들이 가야 할 곳이 어디인가?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질
1 두란노 목회와 신학 「한인교회를 통한 현지 교회의 개척」 http://www.duranno.com/moksin/gms_detail.asp?cts_id=65865 백성철, 2007.12 2 한국선교연구원(KRIM) 「2022 선교현황 최종보고서」
https://krim.org/2022-korean-mission-statistics/ 2023.02.22
수 없다. 그렇다면 선교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변화하는 선교 환경 속에서 생겨나는 귀국
선교사들을 향한 계획과 섭리를 분명히 가지고 계심을 믿는다. 그것이 바로 이주민 사역으로의 전환 과 재배치이다.
필자는 16년간 인도 선교사로 사역, 단기선교와 선교 훈련까지 합치면 20년 넘게 해외에서 나그 네와 이주민으로 살아왔다. 그러던 중 인도에서 비자 연장이 거절되어서 장기 체류가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작년부터 인도 비거주 선교사로 비대면 사역과 단기 방문 사역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하나님 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저희 부부에게 주신 새로운 꿈이 국내 이주민 선교와 다문화 사역의 꿈이다. 현재는 위디선교회의 MMTS(이주민선교훈련학교)에서 코디네이터로 섬기 면서 이주민 사역을 배워나가고 있다. 앞으로 주님이 열어주실 사역을 위해 아내는 한국어교원자격 증과 다문화 전문인 자격증을 공부하는 중이다.
- 나그네 삶의 경험이 이주민을 향한 공감으로
아직은 새내기 이주민 선교사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귀국 선교사만이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이 있 을 것 같다. 그래서 귀국 선교사의 이주민 사역 전환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첫째로 해외에 서 나그네와 이주민으로 살아간 경험이 이 땅의 이주민을 향한 공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나님께서 는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는 신명기 10장 19절 말씀을 주시면서 저희 부부를 이주민 선교로 부르셨다.
지금까지 20년 넘게 이주민으로 살아오면서 총 네 번의 비자 거절과 한 번의 비자 연장 거절, 한 번의 출국명령서를 받아보았다. 한국 사람들은 너무나 편하게 통과하는 입출국장이지만 외국인으 로 그 앞에 섰을 때 느끼는 불안과 초조함은 당해본 사람이 아니면 상상하기 힘들다. 선교사의 입국 을 허락하지 않는 인도라는 나라에서 학생비자나 관광비자, 출장비자 등으로 출입국을 하면서 마치 일본 경찰 앞에선 독립운동가의 심정으로 가슴 졸여야 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때로는 눈물 흘려야 했던 순간들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땅의 이주민, 특히 미등록 외국인으로 가슴 졸이며 살아가 는 이들을 보면 남 일 같지 않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쩌면 이 모든 순간이 이주민 사역을 위해 하나 님께서 준비시키신 것인지도 모르겠다.
- 타문화 선교 경험과 자질이 이주민 선교를 위한 도구로
둘째로 귀국 선교사가 이미 가지고 있는 타문화 선교 경험과 자질이 이주민 선교를 위한 효과적 인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필자가 인도에서 귀국한 후 국내 이주민 선교로 전환하면서 가장 감사했 던 부분이 파송교회 담임목사님의 반응이었다. 원래는 제2의 선교지로 사역지를 옮기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국내 이주민 사역으로 인도하심을 받게 되어서 과연 파송교회에서 이 해해주실까 하는 염려가 있었다.
그런데 파송교회 담임목사님의 반응이 필자에게 너무나 큰 힘과 격려가 되었다. 적지 않은 나이
에 또 다른 선교지로 가서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아 염려하셨다 는 것이다. 그러면서 국내 이주민을 대상으로 사역하면서 영어나 힌디어와 같이 이미 습득한 언어를 사용하면 훨씬 더 효과적일 것 같다며 오히려 기뻐하셨다.
실제로 귀국 선교사 중에 국내 이주민 선교를 활발하게 감당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다. 정영섭 선 교사의 경우 우즈베키스탄에서 20년간 사역한 경험을 토대로 김해에서 너무나 훌륭하게 우즈벡인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얼마 전에 MMTS 강사로 강의하신 적이 있는데 이미 유창한 우즈베키스탄 어를 구사할 뿐 아니라 우즈베키스탄 무슬림 문화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문화적 거부감을 주지 않고 맞춤형으로 사역을 감당하고 계시다. 만약 국내 우즈베키스탄 무슬림 사역을 위해 한 명 의 선교사를 새롭게 훈련하고 언어와 문화를 습득하려면 적어도 10년이 걸릴 것이다. 그런데 귀국 선 교사는 이미 그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즉시 현장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놀라운 장점이 있다.
- 선교 현지와의 네트워크를 통한 효과적인 역파송
셋째로 귀국 선교사는 이미 현지 사역을 통한 선교지와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장점은 국내와 선교지의 네트워킹을 통한 효과적인 역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에 서는 너무나 열심히 신앙 생활하던 이주민이 막상 역파송이 되어 현지로 돌아가면 연락이 끊어지고 심지어 신앙을 타협하거나 잃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국에서의 자유로운 환경을 떠나서 다시 가족과 친구와 사회의 종교적 문화적 압박 아래 놓이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현지와의 네트워킹이 참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귀국 선교사는 현지 사역자와 현 지 교회와의 관계가 이미 형성되어 있다. 그뿐 아니라 현지의 한인 선교사들과의 네트워킹도 이미 이 루어져 있고 한인교회와도 관계가 맺어져 있다. 그러한 네트워킹을 활용한다면 좀 더 안전하고 효과 적인 역파송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 한국교회 성도들을 선교적 그리스도인으로 세우고 이주민 선교를 일으키는 역할
넷째로 귀국 선교사는 한국교회 성도들을 선교적 그리스도인으로 세우고 이주민 선교를 일으키 는 역할을 효과적으로 감당할 수 있다. 저희 부부는 앞으로 파송교회 성도들과 함께 국내 이주민 선 교를 감당하길 소망하고 있다. 그래서 파송교회 성도들을 대상으로 선교 모임을 시작해서 사역하고 있다. 올해 초 8주 과정으로 성경 66권을 선교적 관점을 바라보는 선교적 성경 읽기를 진행했다. 선 교적 그리스도인으로 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적 기초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하반기에도 제2기로 진행하려고 계획 중이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선교 모임을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선교와 문화, 국내 이주민 사역에 대해 서 나누고 도전하려고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파송교회 성도들을 국내 이주민 선교의 동역자로
세우길 소망하며 기도하고 있다. 앞으로 파송교회 안에 이주민 선교에 관한 관심을 일으키고 선교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한국어 교실과 같은 접촉점을 만들고 더 나아가서 파송교회 성도들과 함께 이주 민 예배를 시작하는 것이 필자의 소망이다. 파송 선교사는 파송교회 성도들과 이미 오랜 기간 쌓인 신뢰가 바탕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사역을 진행하기에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귀국 선교사가 파송교회에서 감당할 수 있는 다양한 역할을 몇 가지 더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 다. 선교 중보기도 모임을 인도하거나 선교에 관심 있는 성도들, 특히 청년들을 상담하고 멘토링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선교적 성경 읽기나 선교학교를 통해 선교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가까운 지역에 이주민 단기선교를 가거나 더 나아가서 파송교회 성도들을 선교 헌 신자와 동역자로 세워서 함께 이주민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
Ⅳ. 극복해야 할 도전
- 한국교회 인식의 전환
귀국 선교사의 이주민 사역 전환은 이처럼 여러 가지 필요성과 장점이 있지만 극복해야 할 도전 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국내 이주민 사역도 선교이고 국내 이주민 사역자도 선교사라는 인식의 전 환이 필요하다. 이 부분은 교단마다 상황이 다르다. 필자가 파송 받은 예장합동 GMS의 경우 2001 년부터 국내외국인지부가 따로 있었다. 최근에 여러 주요 교단에서 이주민 사역자를 선교사로 인정 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실제로 예장합동과 통합, 기성, 고신, 침례교 등 여러 주요 교단에서는 일정 기 간 해외에서 선교 사역을 하다가 비자발적 철수한 선교사, 혹은 국내에서 일정 기간 이주민 사역을 하고 있는 분들을 국내 이주민 선교사로 인준하고 있다. 3그럼에도 국내 이주민 선교와 해외 선교가 동등하게 여겨지기까지는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파송교회 담임 목회자와 한국 성도들의 인식 변화다. 왜냐하면 이주민 선 교사를 실제로 파송하고 후원해주는 주체는 결국 지역 교회와 성도들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여전히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해외에서 나가서 사역하는 것만이 선교라는 전통적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 그래서 이주민 사역으로 전환을 꿈꾸는 귀국 선교사들이 파송교회의 후원이 끊어지는 아픔을 겪기도 한다.
- 이주민 선교 교육과 훈련
이를 위해서 필요한 부분이 교회와 성도들을 대상으로 한 이주민 선교 교육과 훈련이다. 위디선 교회에서는 해마다 MMTS(이주민선교훈련학교)를 진행하고 있다. 매년 기본 훈련 과정인 MMTS
3 웹진–중국을 주께로 「국내 이주민선교사 제도의 필요성과 가능성」
http://www.chinatogod.com/main/z3s_c_v.php?no=5217& ctg_no=& div=1& page=2& orderby=& [온라인] http:// blog.naver.com/ asdq1684/90009404769
클래식을 비롯해 MMTS 심화 과정, 지역 교회를 위한 MMCS(이주민선교위탁학교), 귀국선교사
들을 위한 MMTS 4P 등이 진행된다. 현재 MMTS 클래식 24기 과정이 진행되고 있는데 국내 이 주민 선교를 이미 하고 있거나 소망하고 있는 평신도, 목회자, 귀국 선교사들이 함께 훈련생으로 참 석하고 있다. 또 울산 MMTS 2기가 시작되어서 울산 지역 예수전도단 팀을 중심으로 훈련이 진행 되고 있다. 이런 훈련들이 지역별, 교회별로 더 많이 생겨나서 이주민 선교에 대한 한국교회의 인식 이 변화할 수 있길 간절히 소망한다.
Ⅴ. 나가는 말
팬데믹 이후 더 급변하게 될 세계선교의 환경 가운데 앞으로 선교사의 비자발적 철수가 계속되 고 귀국 선교사는 점점 더 증가할 것이다. 이것이 모두가 염려하는 것처럼 한국선교의 쇠락으로 이어 질지 아니면 새로운 한국선교의 부흥으로 이어질지에 대한 중요한 열쇠가 바로 귀국 선교사의 국내 이주민 선교 전환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많은 귀국 선교사가 국내 이주민 선교로 전환하게 되 고 한국교회가 그 선교의 물결에 동참함으로 다시 한번 선교 한국의 불길이 타오르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저자소개
최헌주, Choe Hunju
소속 단체: GMS/위디선교회 경력: 2006년부터 인도 선교사,
2022년부터 인도 비거주 선교/국내 이주민 선교
키워드
비자발적 철수, 선교지 이양, 속인주의, 귀국 선교사, 이주민 선교
환대를 넘어(Beyond) 글로벌 사회의 이주 및 난민 선교: 지역교회 이주민 사역자 세우기와 상호문화 제자훈련의 중요성 / 현한나 교수1 (장로회신학대학교 선교학)
Beyond hospitality: Migration and Refugee Missions
in the Global Community: The Need for Local Church Migrant Ministers and Intercultural-Discipleship Training
이주민 선교, 난민 선교, 디아스포라 선교, 환대를 넘어, 상호문화–제자훈련
Migrant/ Refugee Mission, Diaspora Mission, B
- I. 들어가는 말
글로벌 사회 안에 ‘이주(Migration)’는 21세기 초국가적으로 다양한 정치사회의 중요한 화두 를 던지며 연구되고 있는 주제이며, 기독교 선교에 있어서는 해외와 국내로 나뉘던 선교를 온 세계 안에 실천하도록 목회와 선교 현장을 통합하는 인식론의 전환을 가져왔다. 세계 이주현황 보고서 (World Migration Report)에 따르면 2022년 전체 79억 인구 가운데 2억 8천만의 사람들 (세계 인구 의 3.6%)가 국제 이주자(international migrants)로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30년 이전 1990년에 1억 5 천 이주자 인구에 비하여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고, 50년 전 1970년 8천 4백만에 비하면 무려 3 배 이상의 인구가 늘어난 글로벌 이주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최근 수단 내전을 통해 유입된 백 만 이상의 난민과 더불어 2022년 8천 9백만의 국내외 난민과 실향민들이 강제로 자신의 고향을 떠 나 낯선 땅에서 나그네 생활의 아픔을 겪고 있다.
이주에 대한 사회, 역사적 차원의 논의들은 비단 새롭지 않다. 서구 사회 ‘이주’문제를 신학적으
로 해석해가는 여성학자 젬마 크루즈(Gemma Tulud Cruz)는‘이주’라는 문제는 비단최근에 발생한 사회적 이슈가 아니라 물자와 서비스 및 자본 등이 대륙과 대륙 사이를 건너 식민지의 이름으로 경 제와 정치 활동들이 활발히 시작되었던 15세기로 거슬러갈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 현대 이주자들의
1 현한나 교수의 공동저서로는 한국선교신학회. 『다문화 사회의 선교』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23. 한국선교연구원 KRIM. 『현대선교 26: 디아스포라 와 선교』 서울: 한국선교연구원, 2022. 있으며, 공동역서로 Terresa Bernheirmer and Anrew Rippin. 2022. 공일주 정승현 현한나 역. 『무슬림들의 신앙과 실천』. Muslims: 표eir Religious Beliefs and Practice.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CLC.있다. 최근에 무슬림연구 논문으로 Hanna Hyun.”Forgiveness in Building Bridges with Muslims: An Intertextual Analysis of the Joseph’s Narrative.” Transformation. 40-2(2023), 143-155 있다.
문제에 대한 다양한 신학적 기반을 제시한다.2
기독교 특별히 개신교의 역사가 이주와 분리되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프 랑스의 위그노들이 국외로 망명을 떠났던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40년의 종교전쟁의 기 간 동안 루이 14세의 강한 핍박으로 말미암아 많은 종교난민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프로테스탄티 즘의 개혁교회의 정신은 신앙을 지켜나가기 위해 스위스, 영국, 네델란드로 급속히 퍼져나갔던 위그 노 디아스포라들로부터 시작되었다. 또한 이주라는 주제가 사회학에서 이론화 된 시점은 19세기 라 벤슈타인(E. G. Ravenstein)이 1889년 영국의 잉글랜드와 웨일즈 지역으로 유입되는 자료를 분석하 여 1889년 이주의 법칙(law of Migration)이라는 글을 통해 유인(Pull)과 추진(Push)이라는 요소들 을 소개한 것에서 연유한다. 이후로도 다양한 이론들이 소개되고 사람들의 이주와 운동성(People on the Move)을 기반으로 디아스포라 선교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선교계도 제 3차 로잔의 케이프타 운에서부터 GDN(Global Diaspora Network) 활발하게 논의가 이뤄지고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글 로벌한 운동성을 갖고 추진되고 있다.
게다가 2억 8천만이라는 이주의 중심세력은 2000년대 초반부터 2022년 거의 20년 사이에 무려 1억 7천명 이상(글로벌 이동의 50%이상)의 이주 노동자들이 차지하고 있기에 글로벌 세계에서 대이 동은 노동력과 이에 대한 일자리 제공이라는 사회경제적 요소들과 맞물려 있다. 따라서 국내 이주민 선교에 있어서도 이러한 정치 경제적 요소들이 미치는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과거 한국이 급속 히 경제성장을 향해 나아가던 때, 민중 신학 1세대 신학자들의 관점에서 보았던 고된 노동 생활과 노 역을 담당하는 이들은 21세기 이주민과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과거 한국사회 하층계급 혹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저소득 계급을 오늘날 이루고 있기에 다문화 한국 사회에서 한국인의 얼 굴을 한 민중만을 찾을 수는 없게 되었다.
따라서 필자는 이 글에서 크게 셋으로 나누어 이주민, 난민에 대한 선교적 접근을 통해 예수의
사역을 중심으로 한 ‘주변부 신학’에 대한 토대를 언급하고, 이주민 사역에 있어서 ‘제자훈련과 그들 의 세계관’에 대한 이해가 지속적인(sustainable) 지역 교회 공동체 성장을 위해서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 글을 서술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서구 신학자들의 이주 신학과 환대의 중요성을 기반으로 국내
체류하는 외국인들과 새로 국적을 취득한 타국 출신의 다문화가정을 사역하는데 있어서 한국교회 에 필요한 관점을 선교적 관점에서 성찰하고 가장자리에서 십자가를 짊어지셨던 예수의 사역을 통 해 오늘날의 민중에 대한 갈릴레아 관점을 서술하겠다.
2 Gemma Tulud Cruz, “Between Identity and Security: Theological Implications of Migration In the Context of Globalization,” Theological Studies, vol. 69, (2008): 357-375. Cruz란 학자는 1960년대부터 이미 Global Village 라는 유행어가 사용된 사례의 출처를 다음에 제시할 뿐 아니라
Roland Robertson, Globalization: Social 표eory and Global Culture (London: Sage, 1992). 6천백만의 유럽인들이 식민지화된 대륙으로 이미 1500년 대에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으로 대거 이동, 이주를 시작했던 역사적 자료들을 제시한다. Pieter C. Emmer, “We Are Here, Because You Were 표ere’: European Colonialism and Intercontinental Migration,” Migrants and Refugees, ed. Dietmar Mieth and Lisa Sowle Cahill, Concilium1993/4 (Maryknoll: Orbis, 1993) 42–51.에서 Cruz 논문을 재인용.
II‘. 이주와 난민’에 대한 한국 사회 신학적 담론 및 선교적 방향성
한국 사회 ‘이주’란 주제의 언급을 위해 사회 통계적 자료를 먼저 살펴보면, 국내에는 2000년대 이후 다문화 사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증가하면서 2006년 우리나라는 다문화 사회로의 진입을 선 언하게 된다. 이후 2007년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 제정, 2008년 다문화가정지원법 제정 등 다문화 정책이 마련되어 시행되고 있다. 다문화 가정의 문화 적응이란 논의 측면에서 환경과 문화적 요소에 의한 심리와 행동 변화를 분석한 베리(John W. Berry)의 문화적응모델(acculturation model)3이 널 리 소개되어 사회의 통합 정책을 실시하는데 기여했다. 또한 한국정부는 1992년 12월 3일“‘난민지위 에 관한 협약(1951)’과 ‘난민지위에 관한 의정서(1967)’에 가입하면서 2013년 7월부터 아시아 최초로 독립된 난민법을 제정하여 시행했고, 통계청(2020)은 2040년에는 이주민이 전체인구의 6.9%를 차 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코로나 이전 상황은 2018년 12월자로 한국 출입국 외국인 정책 통계 월보에 의하면 12월 말 장 단기 체류 외국인은 2,367,607명으로 전 월보다 30,918명 증가했으나 외국인 입국자 현황도 만 명 가량 코로나 때 주춤했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한 통제가 완화된 이후에는 2023년 5월 현재 장단기 체류자(90일 이상으로 신고된 거주자)가 218만 명으로 출입국 통계상 한 달에 400만 명이 넘는 외 국인들이 출입국을 하고 있으며, 5천 1백만 남한 인구 가운데 200여개의 국가에서 온 218만 명의 거 주자들을 비롯하여 미등록된 이주노동자가 40만명, 북한 이주 동포들을 포함하여 3백만의 다문화 다국적 외국인들로 남한 국민 인구의 5% 이상이 다른 국적출신 다문화권 사회로 한국도 급속히 전 환되는 중이다.
국내 장단기 체류자들은 결혼 이민(F6), 방문취업(H2), 재외동포(F4) 경우, 영주권(F5) 및 유학 (D2) 목적 및 비전문, 전문 취업을 위한(E 유형의 비자)를 소지한 이주민들이 순위적으로 다수를 차 지하고 있는데, 이들 가운데 결혼으로 인한 이민을 통해 한국 국적 취득자가 매년 13000명이라면 두 배가 되는 25000명의 한국인들이 캐나다, 미국, 호주 등의 서구 국가로 이주되면서 한국 국적을 상실하여 베트남, 중국, 필리핀 얼굴의 한국 국적 취득자들이 늘어가고 있다. 국적별로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중국과 같은 아시아권 국가의 입국자들이 각각 55.7%, 21.8%, 2.7% 2018년 증가세를 보 이고, 체류 외국인들은 주로 수도권에 61%, 영남권 18.1%, 충청권 10.5%, 호남권 7.0% 머무는 있어 서울과 경기권역을 중심으로 다문화, 다국적 이주자들에 대한 이주민 사역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그러나 지방에도 외국인들의 거주와 취업이 증가하는 추세여서4 전국의 도시와 농어촌 각 지역 마다 골고루 면·읍 단위 까지 해외에서 온 이주 노동자가 열 명 이상은 252개의 시군구 전국에 분포
하여 거주하기 때문에 한반도를 “글로컬 선교현장”으로 부를 만큼 전국적 국내선교 네트워크망 형
3 Berry는 그의 문화적응이론(1992)에서 모국의 고유문화에대한 유지여부와 이주사회의 주류문화에 적응하는 도식을 넷으로 나누어서 통합
(integration), 동화(assimilation), 분리(separation), 주변화(marginalization)의 네 가지 방향성에 대해서 구분하고 있다.
4 2018년 12월자 한국 출입국 외국인 정책 통계 월보 http://www.korea.kr/archive/exp DocView.do?docId=38330&call_from=rsslink (2019년 6월 3
일 접속). https://www.moj.go.kr/bbs/ immigration/ 227/560452/artclView.do (2022년 9월 30일 접속).
성이 시급하다.5 국내 이주민들에 대한 시각은 다문화적 수용성이 서구-선진국이나 백인을 중심으
로 하는 외국인에 대한 태도와 제3세계 곧 여전히 경제적 발전 중에 있는 유색인종-개발도상국들 에 대한 판이한 태도의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단기 체류자들과 결혼, 사업, 유학을 목적으로 하는 장기 체류 외국인들은 이주민으로 한국 사회에서 난민들보다는 나은 시선으로 인식되는 데에 반해, 제주도로 2018년 한해 561명이 예멘에서 무비자 상태로 밀입국(Offshore)하게 되면서 망명신청자 (Asylum seeker) 외국인들은 타자들로 취급되어 배타적이며 혐오증적 반응을 유발하여 주변화 및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2021년 한 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에서 ‘특별기고자’란 명목으로 정 착(F2) 이주민 처지에 놓인 경우에도 이들을“진상”으로 부른다거나 무슬림이란 이유로 차별하는 태 도6를 보여 한국 사회는 다문화사회를 만들어가기에는 국민의 다문화에 대한 수용성이 낮고 여전히 ‘타인’이란 시선으로 바라보는 배타적 시각이 만연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은 2013년부터 난민법을 통해서 난민 심사 및 난민 지원 정책들을 펼치고 있는데 아직도 난민 심사를 담당하는 인력이 부족하고, 국제 사회 유엔 가입국으로서 평균(38%)에도 못 미쳐(한 국-난민 인정 비율 2%미만) 국제 사회의 부정적 평가를 벗지 못했다.7 국내 중앙일보, 한겨레, 동아일 보 같은 여러 언론사에서도 한국이란 국가가 아직 낯선 외부자로 찾아온 무국적자들이나 혹은 실향 민에 대한 준비가 안되었다는 데에 같은 의견이다. 예멘에서 온 난민 신청자들이 다음 해 인도적 체
류 허가 414명, 난민으로 2명을 정식으로 받아들인 사례는 사회적으로나 교권에서도 ‘타인, 이방인 들에 대한’8태도와 정책에 문제를 제기하는 역할을 했다.9
한국 정부가 다문화 사회로 기치를 내건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전에는 외국인이나 타인으로
이주민들을 쉽게 분리(Seperation) 및 주변화(Marginalization)해서 그들을 게토화하거나 국민 밖 범주로 내몰았다면, 국제결혼과 취업 등을 통해 국내 체류 외국인의 수가 국민 수의 5%에 도달하면 서 국가는 300만이 되는 다문화 가족들을 사회에 대한 동화(assimilation) 및 통합(integration)정책 을 실시하며 2008년 다문화 가족 지원법 제정을 계기로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 문화체육관광부, 교육부, 법무부, 지방자치단체 등 많은 부처에서 지속적인 재정을 투입하여 매년 다문화가족에 대한 지원 사업 및 예산을 급격히 증가시키고 있다. 또한 다문화 가정 청소년 적응 및 부모들의 실업 상태 에 대한 보고서와 다문화 교육에 대한 수백편의 논문이 사회학, 교육학, 정치행정 및 복지학 등에서
5 허명호 “특집: 전환기의 선교-선교현장이 된 대한민국” 한국선교 『KMQ 』, Vol. 19. 2020 봄호. 73.
6 온누리교회 편집,「온누리 M 센터 발간 저널」, 2023. Vol. 10. 32-35.
7 다음은 BBC 언론사에 제시된 뉴스보도 내용들이다. https://www.bbc.com/korean/news-44598058 https://www.bbc.com/korean/news-44632261 (2019년 6월 19일 접속).
8 필자는 망명자, 외국인 노동자, 북한 이탈/이주민에대해 타인이나 이방인으로 표명해야 하는 한계점을 논문 초반에 언급한다. 우리 안에 껴안으려는 태 도와 선교적 신학적 과제에 대한 인식과 달리 타인(others)로서 여전히 사회 안에서 호칭되고 논문에서 그들이라 호명되는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
9 한국 내 예멘 난민 신청과 인정에 대한 조선일보의 사회면 3월 6일자 기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06/2019030600084. html (2019년 6월 3일 접속).
도 다방면으로 연구되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여전히 난민 인정률이 낮고 난민심사의 전
문성이 부족하며 난민 인권보호을 위한 준비와 역량이 미흡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10
한국 사회 외국인들이 유입되고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다문화 가족들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 이 도입되는 시기에 한국 교회들도 이에 발맞추어 국내 이주민들의 문제를 더 심각하게 느끼고 사역 현장의 소리를 귀 기울이게 되었다. 이러한 연구들을 바탕으로 필자가 국내 이주민 사역에서 사역자 들이 겪을 것으로 예상하는 외·내부적 어려움들은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 번째는 외국인 강력 범죄가 증가한다 혹은 국내 일자리가 외국인에게 잠식된다는 등의 편견으로 외 국인들 혐오증을 품고 한국의 혈통 중심의 단일 민족주의 정서에 갇혀 이주민 선교를 적극적으로 지 원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주민 사역에 뛰어들어 수년간 혹은 수십 년간 사역을 해오고 있는 선교사들에게 국내 현장은 선교현장이 아니다. 한국인 중심의 지역 교회의 구조 안에서 외국인 에 대한 거부감 및 혐오증과 무관심으로 인해 국내 선교적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여전히 보내는 것만 선교로 인식하고, 해외만큼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 또한 디아스포라와 이주의 선 교적 역량을 고려하여 타문화와 타종교권에서 찾아온 외국인 유학생 및 국내 이주자들을 위한 제자 훈련 교재와 코스 등을 중소 교회와 선교단체들도 지원받을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마련하여 각 언 어· 문화권의 네트워크 활성화를 이루어 실제적인 준비가 협력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서 8만 개가 넘는 지역 교회와 국내 선교 사역을 위한 다양한 단체와 기관 들이 함께 연합하여 한국 땅의 이주민들과 함께 더불어 이웃으로 살아가면서 실천해 갈 이주민 선교 를 한국 교회는 어떻게 접근하고, 진단할 것인지 이주와 난민에 대한 우리들의 신학적 현주소를 규 명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선교적 접근을 통해 정치와 사회·문화적 현상을 넘어서 하나님의 관점에 서 인간과 인간 사이, 인간과 하나님 사이, 인간과 문제 사이에서 야기된 이주자와 난민을 담론에 담 아내려 접근하려 한다. 한국 교회와 선교적 논의는 수잔나 스나이더(Susanna Snyder)와 같은 신학자
가 지적하듯이 거주할 곳이 이미 정해진 자국민 중심의 신학적 관심에서 정해진 우편번호 없는 ‘이 주민 선교’로 적극적인 방향성 전환이 필요하다.
III. ‘이주와 난민’-신학실천 현장과 경계선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선교
이주와 난민에 대한 다양한 신학적, 선교학적 접근이 시도되면서 수잔나 스나이더는 “postcode- less theology”(비거주자 신학)을 통해서 난민과 망명 신청자들과 같은 경우 자신의 집이나 거주지를 공식적으로 보여줄 우편번호를 여전히 찾고 있는 이들이라 밝히며, 주소지가 미확인인 이들에 대한 관심을 ‘신학 안’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필요성이 크다는 것을 주장했다.11 2014년 호주 침례교단 휘틀
10 정금심, “난민 인권 보호를 위한 난민법 개정 방향 연구-난민 심사 및 난민 처우를 중심으로,” 「법조협회」 ,2018, vol.67, no.3, 통권 729호 pp. 645-
698.
11 Susanna Snyder, “Displacing 표eology: God-Talk in an ‘Age of Migration,’” Home and Away:Contextual 표eology and Local Practice, ed. Stephen Burns and Clive Pearson (Oregon: Pickwick, 2013), 104-123.
리 대학(Whitley College) 선교 신학자이며, 난민과 이주민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사적 선교를 실천
하며 지역 교회의 환대적 선교 모델로 정착시키려 했던 로스 랑그미드(Ross Langmead)는 이 시대 선교 모델로 환대(Hospitality)를 통한 지역사회 접근을 분명히 제시하였다. 그의 ‘환대’로서의 선교 의 10가지 영역에서 호주 교회가 실천하고 있는 구체적인 사례를 필자는 호주 학자들과 분석했는데 이주민들과 함께 하는 호주 지역교회의 실천 모습을 잘 살펴볼 수 있다.12 한국 사회는 이주민 신학 에 대한 담론적 대안이 모색되고 있고, 정주민들과 비정주민들에게 지역교회의 환대적 자세를 성찰 할 필요가 있다.
난민신학에 대해서 다니엘 그루디(Daniel G. Groody)는 평범하고(anybody) 무명한 자들
(nobody)을 쓰셔서 목적있는 사람들로(sombody) 바꾸시고, 성례전을 통해 유월절(passover)의 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사회적 정체성으로 변화시킨 것을 ‘구원’의 과정으로 해석하여 취약층에 있
는 다양한 이주자와 난민을 향한 정의적 측면의 신학적 접근을 시도해왔다.13 ‘Crossing the Divide: Foundations of a 표eology of Migration and Refugees’에서 그는 이주, 난민에 관한 신학적 토대 작 업의 중요성을 외치면서 교회들이 선교적 차원에서 이민자들에 대해 접근한 사례들은 많지만, ‘이주
와 난민’신학에 대한 교회들의 정리된 태도와 신학적 근거가 미미하다고 판단했다. 그루디가 제시하 고 있는 이주와 난민에 대한 신학적 관점은 하나님의 시각과 선교의 관점에서 어떻게 우리 사회 안의
타자들을 품고 정체성을 재 규명할 수 있을지 한국 교회의 이주민 선교에 통찰력을 제공하고 있다. 필자는 이주민들에 대한 네 가지 신학적 토대를 이 전의 글에서 요약하고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란 관점을 묵상하면서 이마고 크리스티(Imago Christi)를 첨부했는데,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 을 개선하는 것 뿐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도록 교회가 제자훈련을 통해 그들 의 커뮤니티와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최종목표라고 믿기 때문이다. 선교의 대상이 되는 이주민 들 가운데 무슬림들의 경우만 먼저 예를 들어 설명하면, 샤리아를 통한 세계관 형성으로 인해 신(알
라)에게 나아가는데 있어서 통로는 ‘예수’가 아니라 ‘무함마드’이다. 그들은 무함마드를 닮아, 그의 시
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가치판단을 하므로 신에 이르는 길 ‘곧은 길(Aṣ-Ṣirāṭ al-mustaqīm)’은 성경 의 하나님의 형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이슬람의 문화와 교리적 편견으로 인해 가로막힌다.
따라서 예수가 선택하셨던 ‘좁은 길(narrow path)’로 인도하는 제자훈련은 예수의 걸음을 뒤따 르는 사역자의 인도가 없이는 불가 능하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나아가는 길은 성경적 원리에 따른 회 심과 회복 곧 예수의 십자가를 수반하는 모델(Cruci-formity)14을 통해 이전 세계관과 종교적 가르침
- DarrenCronshaw et “Mission as Hospitality with Refugees and Other Migrants: Exploring Ross Langmead’s“Guests and Hosts”in Australian Churches.”Mission Studies, 40(2023).150–176.
- Daniel G. Groody, “Crossingthe Divide: Foundations of a 표eology of Migration and Refugees” 표eological Studies, 70, 3 (2009): 638- 667; “Cup of Suffering, Chalice of Salvation: Refugees, Lampedusa, and the Eucharist” 표eological Studies, vol. 78, 4 (2017):960-987.
14 이것은 돈 리틀이 자신의 제자훈련 책자에서 소개한 십자가형, 곧 고난 받으신 메시야를 닮아가는 제자훈련의 모델로 성공을 지향하기보다 십자가를 지고 고통당한 그리스도 닮음의 유형을 말한다.
에서 새로운 결단과 믿음의 여정을 걸을 때에야 가능하다. 따라서 이러한 ‘상호문화간의 차이점과 간
격을 메워주는 것이 이주민 사역자의 멘토링과 제자훈련’이다. 이주민 선교에서 이주민과 난민의 경 제적·사회적 지위 회복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의 회복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주민들은 한국 땅에 발을 딛으면서 고국에서 각기 독특한 종교와 문화로부터 형성된 세계관에 교육받았거나 이미 옛 습성이 배어있다. 국내에 와서도 쉽게 이단 및 타종교의 전도대상이 되어 쇠뇌 를 당하거나 경험하면서 기독교적 세계관과 성경적 가치에 따라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세워지기 어
려운 장벽들이 많이 있다. 따라서 ‘타문화권 선교사가 자문화중심주의를 버리고, 문화적 간격과 보이 지 않는 차별과 편견을 극복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호문화 이해를 위해 의사소통의 장벽을 허물고, 타문화에 대한 감수성을 함량 하여, 국내 이주민들의 세계관에 대해 배우려는 사역자의 자세가 필요 하다.’ 필자는 네 가지 이주민 신학적 관점에 대해 설명하려 한다. 먼저 이마고 데이(Imago Dei)의 실 현은 하나님의 시선(Visio Dei)으로 정체성을 회복하고, 이마고 크리스티(Imago Christi)의 관점에서 ‘그리스도를 본받음’으로 완성된다고 언급하려 한다. 사회적 계층의 차이나 민족성 및 피부색깔의 차 이를 뛰어넘는 지름길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 진정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면서 나를 제3국 의 땅에 보내신 디아스포라적 사명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Compassio Dei)은 이 주와 난민신학에 있어서 메타포(Metaphor)로서 ‘환대’ 관점에서 한국 교회가 ‘하나님의 선교’를 우선 적으로 실천하는 첫 걸음마가 될 것으로 보며, 이에 대한 적용점을 찾아볼 수 있다.
- 이마고 크리스티(Imago Christi)는 이마고 데이(Imago Dei)와 같이 간다.
먼저 “‘인간과 죄의 문제’는 죄로 인해 분리된 담을 넘어선다는 차원에서 이마고 데이(Imago Dei)는 하나님의 형상”15 회복의 중요성을 말한다. 현실적으로 정부나(혹은 비자 상태로) “정해진 사
람들의 정치적 정체성이 마치 그들 자신의 정체성인 것처럼 치부된다는 점에 문제점이 있다는 지적” 이다.16 따라서 사회나 정부가 그들을 난민으로 무국적자로, 잠시 체류하는 외국인으로 분류할지라 도 그들을 바라보는 교회와 선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할 신학자들은 그들의 존엄성을 정치, 사회적 장벽으로 인해 소외시키지 말자는 신학적 부름이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는 관점이다. 사회가 그들 (others) 혹은 타인으로 취급한 우리와 다르게 분류되는 이들을, 비자가 없고 불법으로 거주하는지 알면서도, 인간다운 삶을 향해 국경을 넘고, 타지에 살아가는 이들을 향해 법과 사회는 장벽을 설치 하더라도 교회는 그 반대 입장에 서야한다는 단호한 도전장이다. 사회가 규정한 계층구조 아래 불가
촉천민을 바라보듯이 난민을 ‘난민’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난민의 형상에서‘하나님의 형상’을 발 견하는 것이다. 레비나스가 고통당하는‘타자’의 얼굴에서 우리의 윤리적 과제를 발견하고, 타자를 통
15 Groody, Crossing, 643. 16 Ibid., 640-641.
해 말씀하시고,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한 것과 같이 선교적 시선을 갖는 것17이다. 필자는
이마고데이(하나님 형상-(Imago Dei)로의 회복은 단지 인간이 가진 원래의 창조주를 형상 회복적 차원에서 존엄성이나 권리가 평등하게 대우받고 사회에서 편견 없이 대우받는 것을 넘어선다. 영적 차원의 회심과 성화를 통해 이마고 크리스티(Imago Christi) 과정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는 것은 그들의 사회적 위치와 문화적 생활이 자국민과 동일하게 향상되는 과정뿐 아니라 성육신-인카네이션(Incarnation)을 통해 인간의 형상을 입으신 하나님의 시선으로 자신의 새 정체성을 그리스도 안에서 찾는 과정에서 회복된다 믿는다.
- 비지오 데이 (Visio Dei)는 하나님의 시선으로 이주민을 바라보는 것이다.
두 번째로, 비지오 데이 (Visio Dei)로서 ‘하나님의 시선 혹은 하나님의 관점’이란 차원에서 국 가들과 하나님 나라 사이의 분리 곧 분단을 뛰어넘는 접근이다. 하나님의 관점은 다름 아닌 “하나님 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비전, 종말론적 관점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해 나아간 히브리서에 나오 는 곧 믿음의 선진들로 불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종(히 11:13-16; 13:14)과 출애굽 사건(출 20:2) 에 대한 좀 더 깊이 있는 분석과 이를 현대 사건에 연결하려는 신학적 작업이다.18 하나님의 시선으
로 이스라엘이 스스로 갇혔던 좁은 시야에서 출애굽한 사건은 하나님의 백성이 인식론적으로 반성 적 전환을 가져왔다는 해석이다. 이것을 그루디는 과거의 사고 구조에서 탈출한 곧 “인식론적 이주 (cognitive migration)”라고 부르는데, 좁은 세계관으로부터 새로운 시선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 한다는 차원에서 출애굽 사건을 해석하고 있다.
그루디가 제시했던 하나님의 관점(Visio Dei)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질 수 있는 새로운 관점 곧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는 새 시각을 열 수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 윤리의 토대도 형 성할 수 있는데 그것은 진리와 생명, 거룩함과 은혜, 정의와 사랑, 평화와 같은 사회 윤리적 토양이 될
수 있는 가치 덕목들을 예수 안에서와 그가 선포했던 하나님 나라 비전에서 찾기 때문이다.”19 하나 님 나라의 시선에서 이주와 난민의 발생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이주민 혹은 난민 사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관점을 놓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이동성과 비거주성의 특성 때문에 정주가 어려운 과 정에서 실제 한 영혼 한 영혼에게 깊은 관심어린 시선으로 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각 개인이 가진 종교 문화적 색채에 대한 정확한 관찰과 그들의 자국으로부터 형성된 세계관의 독특성에 대해서 먼저 이해하고, 미전도 종족 및 프론티어 지역에서 타문화권 선교사가 언어와 문화 에 대한 오랜 학습을 통해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듯이 이주민 선교를 해나가야 한다. 자문화권 안에 살면서 자칫하면 자민족 중심적인 생각과 문화로 이주민들을 바라보고 한국문화와 한국 교회에 동
17 현한나 “누가 디아스포라인가?” 복음과 선교 49(1), 2020. 485-486.
- Groody, Crossing, 661-662.
- Groody, Crossing, 661.
화시키려는 한국 교회 맞춤형 신자들로 그들을 초청하는 과오를 범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주민들을 바라보는 관점 가운데 그들을 향한 시선이 타종교와 타문화권에서 왔다는 연유로 한국 사람 교회에 맞는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고, 그리스도의 사람, 예수의 사람으 로 제자가 되도록 양육하는 훈련 목표를 가져야 한다.
- 벌붐데이(Verbum Dei)는 ‘말씀되신 그리스도’를 통한 성육신적 접근이다.
셋째로, 벌붐 데이(Verbum Dei), 하나님의 말씀 곧 말씀되신 그리스도 곧 자기비움의 ‘케노시스 (kenosis)’에 대한 신학이 이주와 난민에 대한 신학의 형성에 틀을 제공한다. 예수는 “스스로를 주변 부, 이방인들 가운데 찾으셨으며 그들을 낯선 땅으로 찾아가실 뿐 아니라 이방인의 정체성으로 그
가운데 사셨으나 그의 하나님 되심은 연약한 가운데 버려지고 이방의 낯선 정체성 안에서도 존재하 며 화해의 사역을 이루셨다는 점”20이다. 이것은 곧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이며, 하나님이 고통당하고 소외당하는 자와 함께 하신다는 연대를 의미한다. 인간의 연약함과 고통 중에 능력을 보이신 예수님
의 성육신 사건을 그루디는 모든 인간이 가진 하나님으로부터 장벽을 허물기에 충분하고도 가장 깊 은 진리와 은혜를 담는 사건이라 해석한다. 약자나 소외된 자를 사회 중심부에서 내려다보며 돌보는 사역이 아니라 자신이 그 가운데 거하시며 가장 나약한 자로, 사회 안에서 이방인으로 살아내신 사 건이다. 예수는 그들을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고 성육신하셨으며 십자가의 하나님을 통해 이 땅의 교회와 그 부름에 합한 신학을 하는 자들에게 사회 문화적으로 정체성이 소외된 자들 안으로 들어 가라 부르신다.
하나님의 말씀(Verbum Dei)은 폴 히버트(Paul Hiebert)가 언급했던 비판적 상황화(Critical Contextualization)를 비롯하여 찰스 크래프트(Charles Kraft)의 역동적 등가이론(Dynamic Equivalence)과 같이 현지 문화와 세계관을 바탕으로 복음과 문화의 창조적 만남이 필요하며, 세계 관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육신적 선교와도 연관된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시고, 아래에서부터 자신을 드림을 통해 제자들을 섬기고,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셨듯이 한국 지역 교회 는 기득권자인 한국인 맞춤형식의 신앙생활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문화 지도자들을 통해, 다문 화 가정들을 통해 새로운 배움을 가지고 타 문화권에 적합한 다문화적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 자문 화 중심적인 일방향식의 회심자 제자훈련을 지양하고, 함께 상호 배워가는 제자훈련, 위로부터(top- bottom)가 아니라 아래로부터(bottom-up)식의 이주민 필요 중심의 구전 문화와 내러티브를 중심 으로 한 쉬운 제자훈련 과정을 여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하나님의 관점
(Visio Dei)으로 바꾸어 다문화 가족들이 스스로 정체성을 ‘디아스포라’로 바꾸어갈 때 자신의 고난 과 어려움을 토대로 다른 이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하나님의 긍휼(Compassio Dei)의 사역으로 나
아갈 수 있다.
- Karl Barth, 표e Doctrine of Reconciliation, 192; Groody, Crossing, 650에서 재인용.
- 미시오데이(Missio Dei)는 경계선을 넘어가는 타문화권 선교로 부르심이다.
네 번째로 미시오 데이(Missio Dei)는 곧 하나님의 선교를 통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경계선을 넘 어가는 과제 곧 다중심적 접근(Polycentric approach)을 의미한다. ‘이민자와 난민’에 대해 중심의 기 득권 세력들이 나아가기 보다는 하나님의 선교는 상호 경계를 넘어서는 과정이다. 원래 복음은 한 사 회나 특정한 민족이 아닌 모든 민족과 방언에게 약속된 기쁜 소식이다. 그러나 교회나 그리스도인들 이 지역과 민족, 언어를 넘어 자신과 다른 종족에게 특별히 죄인들로 여겨졌던 이들에게 다가가는 것 은 역사적으로도 어려운 과제였다. 사도행전 11장의 고넬료 사건은 이방인 고넬료를 구속의 역사에 서 주변부로 보지 않고, 유대인과 동일하게 성령이 역사하시는 중심부로 옮기는 역할을 했다. 주변인 혹은 주변 집단(Peripheral Groups)은 선교역사에 있어 촉매제(Catalyst)역할을 수행해왔고, 교회의 개혁과 갱신에 기여하였다.
정처 없이 고향을 떠나야했던 위그노와 같은 종교 난민들로 시작된 개혁교회 역사를 고려해 보 면 더욱 그러하다. 이주민 사역은 국내 현장에서 빠질 수 없는 중심 사역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인 중심의 전통적인 사역 때문에 선교 현장의 중요성이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문화적 이 질감과 거리감으로 보았을 때 단연 국내 이주민과 체류하는 외국인, 다문화 가정으로 접근은 타문 화권 사역이며 선교로 이해될 수 있다. 현대 선교학자였던 랄프 윈터(Ralph Winter)는 E-등급이론21 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동해야 하는 문화적 거리가 얼마 나 되는지를 분석하였는데 이를 선교가 시작 던 종교개혁 당시를 적용해보면, 스위스 도시 제네바 와 독일령으로 있던 스트라스부르에서 했던 위그노들과 칼뱅의 사역은 유사 문화권이지만 동일문화 권은 아닌 E-2 문화권에서 행했던 목회 사역22이었으며, 국가의 종교적 박해를 떠나 정착한 많은 위 그노들처럼 이웃하는 타문화권에서 사회를 개혁하면서 하나님의 선교적 부르심에 순종한 주변부 선 교는 개신교를 등장시켰다. 역사적으로 지대한 영향력과 개혁의 물결들을 이끌며 선교의 시대를 바 꾸어 온 이들은 결코 기득권에 편안히 앉은 자들이 아니라 주변인들이다.23
한 해에도 수만 명의 보트피플이라 불리는 무국적 체류자들이 국경을 넘거나 해안에 도착하려 다가 죽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신학자들과 교회들은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따라서 교회는 인도주의적 체류와 난민들의 유입에 대한 국가 정책에 대해서 “국경을 봉쇄하는 법
이 항상 정당한지 더 나은 삶과 기회를 찾아 불법도 자행해야 하는 난민들의 인간의 기본적 권리” 에 대해 정부와 달리 교회는 어떤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지 신학적 입장을 되물어야 한다. 예수
- Ralph Winter Bruce A. Koch, 2002 Finishing the Task: 표e Unreached Peoples Challenge V 19. No. 4. International Journal of Frontier Missions.15-25.랄프 윈터에 의하면 E-0은 교회내 불신자, E-1은 동일문화권 내 불신자, E-2는 유사문화권, E-3는 타문화권 선교를 말한다.
22 칼뱅의 선교의 영역이 유사문화권 뿐 아니라 브라질 E-3 타문화권까지 확장되었고, 당대 선교라는 용어가 등장하여 쓰여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연 선교사였다는 점에 대해서 김성현은 칼뱅 연구가 윌헬름 노이저(Wilhelm H. Neuser)의 의견을 들어 “종교개혁 운동에 나타난 선교와 부흥-칼 뱅을 중심으로”와 “선교사 칼뱅”에서 칼뱅이 선교사였음을 주장하고 있다.101-136;137-158. 2007, 국제 선교 학술 대회 이광순 역. 「미션아카데미 선교신학 연구」 vol. 7.
23 폴 피어슨 2009, 145; 현한나 2020, 477.
는 하나님 곧 아버지의 나라와 그 영광을 위해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라’라는 십자가의 길을 인도하 실 뿐 아니라 먼저 보내심을 따라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으셨다. 여기 원어로 표기된 에포뤼오테산 (ἐπορεύθησαν)은 영어성경에서 ‘계속하다’(going on) 혹은 ‘떠나가다’ (leave)의 뜻을 내포하며 포뤼오 (πορεύω)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가다’(πορεύω) 단어가 디아포뤼어(διαπορεύω)와 같이 디아(δια)와 합 쳐지면 ‘지나가다 통과하다’는 의미(pass through)가 되는데 여러 마을을 다니신(눅 9:56) 예수와 제 자들의 선교여행에 자주 사용된다.
슐라터는 예수를 따르기 위해 기득권을 버려야 하는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을 거부하는 이들을 “불완전하게 예수와 연결되어 있는 사람”이라 일컫는데, 이들은 예수와 함께 갈 수 없는 자들이며, 마음의 반쪽만 가지고 자신의 소명을 따르거나 “긴박하게 밀려드는 것들에 대하여 마음 쓰는 사람
이다. 하나님의 사역과 섬김의 일을 위해 온전히 그들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24라고 주석을 단다. 불완전하게 예수와 연결된 자들은 삶에서 예수를 통해 온전히 정체성을 발견하지 못하고, 영 적으로 안주하려하며, 예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지 못하는 오늘날의 교회들을 떠올리게 한다.
- 컴파시오 데이 (Compassio Dei)는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한 자리이다.
위의 신학적 4가지 관점과 더불어 선교적 토대 곧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의 일환으로써 그 분의 긍휼적 접근(Compassio Dei)은 환대(Hospitality)라는 메타포적 관점에서 신학적 담론을 풀 어내기 위해 중요한 신학적 기반이 된다. 이러한 논의에 대한 발상은 남아프리카 신학자 사우어 (Christof Sauer) 논문 가운데서 발견되는데25 하나님의 긍휼하심 혹은 체휼하심(Compassio Dei)이 다. 초기 사도행전에 나오는 교회 공동체가 소수자이며 이방인의 정체성으로 살면서 배운 관점이기 도 하다. 이단으로 바라보며 핍박하는 유대교와 로마제국의 수난 아래에 고난을 견디며 핍박과 순교 의 과정을 겪는 가운데 이방인 교회는 성장할 수 있었고 바울은 고린도후서 1장 5-7절에서 고난 중 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위로가 다른 형제들의 고난 중에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자신의 고백을 통해 언급한다.
이것은 기부자와 수혜자 사이의 종속이나 지배 관계가 여전히 남아 종곡과 국가로 분리될 수 있 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오히려 ‘타인 혹은 이방인의 눈으로 읽도록 하여’ 소수자, 이방인 에게 선교적, 실천적 과제를 마땅히 할 수 있도록 고난 중에 성장했던 한국 교회들에게 역사적 교훈 을 주고 있다.26 ‘체휼하심’은 강자나 지배자가 주체가 된 신학적 입장에서 하나님의 시혜, 혹은 선교
24 Adolf Schlatter, Luke, 조현철 역, 『누가복음: 아돌프 슐라터의 성서주석』 (서울:자연출판사, 2005), 156.
25 사우어 교수는 남아프리카 대학(University of South Africa)실천신학 분야에서 연구자이며 그의 논문 “Missio Dei and Compassio Dei: Minority Christians Experiencing God’s Acts in the face of Hostility” Scriptura 103(2010), 60-65. 은 2009년 5월 18-20일 Stellenbosch의 발표문이다. 또한 아래 의 서적도 참고해야 체휼하시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다. Rupen Das, Compassion and the Mission of God: Revealing the Invisible Kingdom (Leicester: Global Library, 2015).
26 이는 마치 디아스포라에게 (to Diaspora) 혹은 디아스포라들을 위한(for Diaspora) 선교적 함의나 한계를 넘어서는 것 곧 디아스포라를 넘어서
(Beyond Diaspora)의 사역과도 동일 선상에서도 이해될 수 있다. Enoch Wan,“Diaspora Mission Strategy in the Context of the United Kingdom in the
를 베푼다는 입장과 정반대된다. 먼저는 사회 내에 적대감(Hostility)과 외국인에 대한 제노포비아
(Xenophobia)27가 만연한 중에 ‘핍박받는 혹은 연약한 자들로 교회를 두신’ 하나님의 뜻과 그 주권 성을 겸손히 교회가 인정하도록 부르신다.
두 번째는 가난과 질병, 경제적 파탄과 종족별 내란 및 종교적 핍박으로 인해 고통 중에 있는 세 계 교회들의 목소리에 주목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이기도 하다. 위로가 필요한 자들 곧 이주자들 과 난민들을 통해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뜻과 교회의 선교적 방향성을 하나님은 제시한다. 하나님 이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영광에 대해 몸소 체험케 하신 것은 그들을 버림이 아니라
‘함께 고통당하시는 하나님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순교당하는 교회들 가운데 성령이 역 사하시고 능력과 부흥을 더하신 것은 ‘하나님 자신의 주권 가운데’ 성령을 통해 초대 교회에 하신 일
28이란 것을 환란 중에 드러내신다. 필자는 이것을 ‘이주와 난민에 대한’ 신학적이고 선교적인 적용의 관점에서 연결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 가운데 찾아온, 우리 앞마당에 온 난민들, 무슬림들,29 이방인, 불법 체류자와 북한 이탈주
민들은 우리의 계획이나 선교적 과제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주권’ 아래 종교적 핍박이나 자연재해, 전쟁과 내란 등 정치적 사회적 다양한 문제와 어려움으로 찾아온 이들이기에 한국 교회는 이주와
난민에 대한 하나님의 시선과 그분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따라서 필자는 ‘이주와 난민’에 대한 신학 적 과제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 바로 디아스포라 선교에서도 강조되고 있는 디아스포라와 함께 (with Diaspora)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환대 선교의 태도이다.
종종 우리들은 타종교권역에서 온 미전도 종족의 선교를 해외선교의 과제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 다. 그러나 국내 들어온 다문화 가족들을 전도하고 제자 훈련시키는 과정은 힌두교, 불교, 이슬람권 에서 핍박받은 현지인들을 향하여 타문화권 선교를 하는 것과 비슷한 어려움과 문화적 장벽을 갖는 다. 수세기에 걸쳐서 타문화권에 효과적인 의사소통과 상황화를 하기 위해서 현장에서 경험을 통해 계발하면서 연구했던 복음 전도와 제자 훈련에 대한 다양한 사전 정보와 지식들이 있지만 우리는 이 러한 역사적 교훈들과 사실들을 간과하고 좋은 선교 전략들을 잊고 국내 상황은 다른 콘텍스트로 이해하여 새롭게 새 전략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30 따라서 이러한 내용을 근거로 이주민 사역에서
21st Century,” Transformation 28:1 (January 1, 2011), 3–13.은 디아스포라 선교에 대한 큰 틀을 제공할 것이다. 디아스포라 선교에 대한 국내 논문은 김영 동의 연구를 참고하라. 김영동, “디아스포라 선교학적 틀에서 본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의 선교 신학적 과제,” 「장신논단」46-2 (2017): 337-364.
27 이 단어는 필리오제니아(Philoxenia 외국인을 사랑함의 뜻)의 반대적 표현으로 사회내 이방인과 타인들을 경시하거나 인정하지 않고, 그들에게 차별 적인 배타적 태도를 보이는 현상을 의미한다.
28 루마니아 신학자인 Josef Ton, Suffering, martyrdom and rewards in heaven, Second edition (Oradea:Cartea Crestina,1997) 가 밝혀낸 사도행전의 초대교회와 그 교훈들의 글에서 사우어 박사는 논지들을 얻어 Compassio Dei를 쓰게 되었다고 그 논문에서 출처를 밝히고 있다.
29 필자가 크리스천리뷰에서 ‘찾아온 땅 끝 이슬람’ 이란 주제로 2017년 10월 27일 이슬람 세미나를 위해 인터뷰 한 내용을 참조하면 ‘안마당’이나 ‘찾아 온’이란 의미를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찾아온 땅 끝 이슬람: 표e Unreached Neighbour, from the end of the earth to our front yard” 2017. 9. 25. 인 터뷰 기사. www.christianreview.com.au. (2019년 6월 29일 접속).
30 마크 듀리(Mark Durie)는 그의 강의에서 1978–GlenEyri e(글렌 에이리)북미권에서 돈 맥커리가 편집한 복음서와 이슬람교-(Gospel and Islam)과 2007 무슬림선교 컨퍼런스 From Seed to Fruits에서 떠오르는 이슈들에대해 더들리 우드베리(Dudley Woodbury가 현장선교사들과 선교학자들과 전략
요구되는 것은 구체적인 전략들에 대한 성찰이며 이것이 바로 환대를 넘어서는 타문화권 선교를 위 한 전략을 세워가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 IV. 우리 사회 ‘타자’에 대한 교회의 관심과 ‘환대’선교를 넘어서는 실천
2000년대 이후에 타인들에 대한 선교적 신학적 학술 논문과 책들이 한국에 소개되고 있는 것 은 좋은 현상이다. 타인에 대한 다양한 한국 교회의 선교적 반성과 접근은 다음과 같은 논문들에 서 비춰지는데 세월 호 참사사건 이후 자국민이지만 희생자들(타인들)을 향해 냉담하거나 무관심한
교회의 시선을 문제시하기 위해 이동춘 교수가 다룬 “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한국교회의 태도에 대 한 기독교 윤리적 반성”31에서 본회퍼나 볼프(Miroslav Volf)의 타인의 고통에 참여하는 또한 타인 을 껴안는 포용적 사상 안에서 환대적 신학의 접근을 볼 수 있으며, 2008년도 레비나스 (Immanuel Levinas)의 타자 철학32을 통해 한국 사회가 동일성 안에 상호성 및 주체가 이방인 타인과 함께 존재 함(Mitsein)의 의미를 언급하여 “준더마이어 교수의콘비벤츠 (Konvivenz)선교 곧 타자를 위한 선교 가 아닌 타자와 함께 하는 태도”를 주장한 것도 환대적 선교의 과제를 주제로 한 논문들이 된다.33
국내에는 외국인들 혹은 타인(others)로 불리는 이들에게 한국 교회가 실천적 과제로서 환대 를 베풀어야 할 신학적 입장들에 대한 책들이 2000년대 이후에 소개되어 2002년 “환대의 신학” 이 란 이름으로 존 코닉(John Koenig)의 책이 한국장로교 출판사에서 나온 것과 더불어, 크리스틴 폴 (Pohl, Christine D)의 환대에 관한 책 『손대접』34도 복있는 사람에서 출판되었다. 이와 더불어 조직
신학적 차원에서 한스 부르스마(Hans Boersma)의 책 ‘십자가 폭력인가 환대인가’ 하는 책은 기독교 의 구원론 곧 이레니우스가 말한 총괄 갱신론적 신학적 차원의 접근이 어떻게 환대자 하나님의 성
품과 그의 사역에서 현대의 환대 개념의 이해를 넓혀주고 교회의 환대적 선교에 통찰력을 제공하는 지 구체적인 이해를 돕고 있다.35
그러나 한국 사회에는 기독교가 이방인이나 난민, 타인들에 대해 환대해야 하는 문제가 여전히
컨퍼런스를 했던 큰 두 역사적 사례를 들면서 이미 쌓여있는 전략들을 잘 활용하자고 주장한다.
31 이동춘, “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한국교회의 태도에 대한 기독교 윤리적 반성,”「선교와 신학」 제37집 (2015):233-261.
32 임희모, “타자와 환대의 선교-레비나스 철학과 선교신학의 만남,” 「한국기독교 신학논총」 제56집 (2008):189-211.
33 방연상 또한 에서 레비나스의 사상에 입각하여 선교가 서구의 주체적인 측면에서 식민지의 확장의 한 형태였던 관점을 벗고자 타자 철학을 말한 레비 나스를 새로운 선교 신학 토대로 제시한다. 방연상, “탈 근대적 선교신학의 주체를 향하여-임마누엘 레비나스의 사상을 중심으로,” 「신학연구」 63 (2013): 253-279.
34 Christine D. Pohl, Making Room: Recovering Hospitality as a Christian Tradition (Michigan:Eerdmans, 1999). 다음 책을 참고하라. Nell Becker Sweeden 이란 George Fox Evangelical Seminary의 조교수가 대중적으로 쓴 Church on the Way: Hospitality and Migration (Oregon: Pickwick, 2016).
35 한스 부르스마는 인간의 환대는 나르시즘적이며 이기적이기 때문에 인간의 죄된 본성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시선을 돌린 환대는 곧 한계에 부딛힌다 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십자가는 형벌이기 보다는 새 아담의 대표성을 가진 구속주의 죽음이며, 곧 성자의 고난과 성부의 고난의 비애는 삼위일체적 십자가 의 수난까지 연결이 되어 하나님의 환대로 볼 수 있다고 결론 내린다. 한스 부르스마(HansBoersma)/윤성현 역, 『십자가 폭력인가 환대인가: 포스트 모던 시 대의 개혁주의 속죄론』 (서울: CLC, 2012). 284-302.
시혜적 차원의 부담감으로 남아있고 함께 윤리적 신학적 작업이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민과 난민
신학에 대한 토대와 더불어 이들과 함께 나아가는 선교적 과제로서 환대 선교에 대한 분석과 연구가 더 확대될 필요가 있기에36 필자는 2014년 호주 침례교 교단 휘틀리 대학(Whitley College) 선교신 학자였으며, 난민과 다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선교를 몸소 실천했던 로스 랑그미드(Ross Langmead) 가 주장한 환대(Hospitality)에 관한 열 가지 실천모델을 언급하려 한다. 랑그미드가 말했던 환대 선 교는 앞서 말한 이주와 난민 신학에 대한 신학적 토대 없이 한국 교회에 구체적 적용이 어렵다는 제 한점이 있으며 환대를 넘어선 (Beyond Hospitality) 관점은 필자가 제자훈련으로 나아가는 디아스
포라 선교라 주장한다. 난민과 망명 신청자들에게 ‘환대’ 선교를 실천 할 수 있는 열 가지 모델은 다 음과 같다.
- 난민들의 권리보호 2. 정치적인 참여 활동 3. 난민정착을 도움 4. 피난처 제공
- 다문화를 환영하는 교회환경 6. 다문화에 대한 이해와 배움 7. 다종교간 대화
- 8. 환대자의 윤리적 의식 식사와 친교 10. 섬김을 통해 그리스도를 모심.37
위의 열 가지 항목의 사역들은 앞서 제시한 ‘이주 난민 신학’을 토대로 교회들이 ‘하나님의 선교 의 장’으로서 타인에 대한 관점과 그 경험을 연대하게끔 실천적 문을 열게 한다. 즉 랑그미드의 교회
가 실천할 수 있는 환대적 관점으로서 선교를 넷으로 묶어 ‘이주 난민’에 대한 선교적 실천 방안들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교회가 약자를 위한 목소리 내기로서 난민들의 권리보호, 정치 적 참여활동 등이 포함된다. 두 번째는 난민 정착과 피난처를 제공하며 그들을 위한 봉사에 참여하 는 기능이다. 이것은 성육신의 ‘벌붐 데이’ 곧 말씀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함께 피난처를 제
공하고 난민들을 도우며 그들의 고통 가운데 체휼하는 모델로서 ‘컴파시오 데이’의 적극적 실천이기 도 하다. 세 번째는 다문화를 환영하고 다양한 종교의 다름에 대해서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다문화에 대한 배움을 통해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이며, 본연의 존중될 가치가 있음을 함께 배워가 는 자세이다.
랑그미드의 이론 가운데 ‘환대’ 선교의 가장 핵심은 마지막 곧 ‘식탁으로의 초대’와 환대하는 가 운데 ‘기대치 못했던 하나님의 임재 경험’(Unexpected Divine Presence)”이다.38 즉 섬김의 자리에서
36 선교적 교회와 관련된 글들은 다음의 논문들을 참조하라. 이후천, “한국에서 선교적 교회의 사례와 그 기준지표에 대한 고찰,” 「선교신학」 제34집
(2013): 141-165. 한국일, “선교적 교회의 실천적 모델과 원리: 한국교회 현장으로부터 배우는 선교적 교회” 「선교신학」 제36집 (2014): 355-401.
- 랑그미드가 원문에 제시한 실천 과제들의 모델은 다음과 같다. Defense of human rights, 2. Political action, 3. Settlement assistance, 4. Sanctuary, 5. Being welcoming multicultural churches, 6. Inter-cultural learning, 7. Interfaith dialogue, 8. Awareness of the ethics of welcome, 9. Meals and personal friendship, and 10. Openness to a transforming divine presence. Ross Langmead, “Refugees as Guests and Hosts: Towards a표eology of Mission among Refugees and Asylum Seekers,” Exchange 43, no. 1 (March 13, 2014): 29–47.
- Langmead,“Refugees as Guests and Hosts,” 45-46. 필자는 호주 선교신학자인 Darren Cronshaw와 함께 랑그미드의 환대 선교 모델에 기반해서
2017년에 필드 조사 연구를 통해 멜번과 시드니 지역의 이민교회들의 사례 연구를 통해서 메타포로서 ‘환대’가 선교적 교회의 차원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우리의 환대를 받은 자가 타인이 아닌 곧 우리 주 예수이셨음에 대한 교회의 고백으로 이러한 신의 임재 경험은 ‘환대’에 대한 본질이 우리의 환대가 아닌 그리스도의 임재에서 시작되며, 또한 환대하 시는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의 선교에서 시작된다는 ‘미시오 데이’를 보여준다. 교회는 환대자로서 정
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자신들이 초청자(Host)의 입장에서만 서야 한다는 우월적 입장을 갖기 쉽다. 그러나 이를 내려놓고 내부적으로 반성적 윤리의식을 통해 우리가 섬기는 이들이 곧 그리스도를 모
심의 자리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환대’의 자리는 이미 하나님의 초청에서 시작됨을 기억하는 것이 환대 선교의 핵심이다.
한국 내 필요한 환대의 모습 중에는 랑그미드에 의해 제시된 여섯 번째 과제 곧 다문화에 대한 이해와 배움과 일곱 번째로 언급된 다종교간 대화의 활성화라고 생각된다. 국적별로 종교 및 세계관 유형을 나누어 살펴보면, 이슬람권, 불교권, 힌두교권, 공산권 등으로 크게 나뉠 수 있는데 국내 결혼 비자를 통한 체류자 가운데 10% 가량이 무슬림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우리가 만나는 이주민의 종교 상황에 맞추어 사역자들도 준비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국내 무슬림들 대부분이 아시아권을 중 심으로 형성되어 우즈베키스탄(79078), 인도네시아(45533), 카자스흐탄(41904), 방글라데시(21763), 파키스탄(14314), 말레이시아(6113)에서 들어온 무슬림이기 때문에39 그들의 의식주 생활과 신앙체 계 및 가족에 대한 사고관 및 언어별 특수성을 고려해 본다면 그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세계관과 함 께 나라별 문화의 차이점들도 나타난다.
국내 이주민 사역에 있어서 선교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사역 가운데 전도, 제자 양육 및 훈련이란 과정은 국내 이주민 사역자들이 단지 성경해석과 기독교에 대한 교리적 지식을 전 달할 뿐 아니라 타종교에서 회심한 이들을 제자훈련하고 타문화권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준비를 잘 갖추고 있어야 하며 상호문화에 접근하는데 있어서 성경지식과 더불어 타문화권 사역의 역량을 잘 함양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타종교에서 회심하여 지역 교회 공동체에 정착하게 되었을 때, 회심자를 양육하여 제자로 훈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무슬림들이 기독교로 회심을 하여 신앙이 성 장하기까지 겪게 되는 여러 장애물이 있는데 인내심과 그들을 향한 지속적인 멘토링을 통해 영적인 관계적인 회심을 지지해야 한다. 돈 리틀(Don Little)40에 의하면 무슬림 회심자들이 겪는 신앙성장 의 방해물은 열 세가지로 나뉜다.
함의를 지니는지 발표한 적이 있다.
39 2023년 1월 국내 체류외국인 현황 (2023년 5월 25일 접속) https://www.immigration.go.kr/bbs/immigration/227/450853/download.do
40 돈 리틀(Don Little)은 개척자들을 위한 이슬람 선교사로 작가, 편집자, 컨설턴트, 제자 훈련가로 30년 이상의 경력을 갖고 북아프리카 10년을 포함, 무슬림들과 기독교인들이 대화를 열도록 2014년에 릴리아스 트로터 센터(Lilias Trotter Center)를 공동 설립했고 여러 곳에서 무슬림 회심자 강연을 했다. 18가지 장애물을 요약하면 가족과 지역 공동체로부터의 압력 및 배타적 거부반응, 온갖 종류의 고통과 핍박, 회심자 그룹 내 신뢰감과 헌신의 부족, 무슬림 회심자 가족 지탱의 어려움, 자녀양육과 교육 등 기독교 생활 적응의 어려움, 이슬람 영향 아래 사탄의 묶임과 주술 및 저주적 묶임, 증오와 분노, 성적 탐욕 과 함께 회심자들을 배척하는 지역교회 기독교인들, 문해력이 떨어지거나 낮아 제자훈련에 서 겪는 어려움과 이전의 무슬림 이데올로기, 신학 및 전통에서 기독교 가치와 세계관으로 새롭게 재교육되는 과정의 충돌 등이 있다. 회심자 남성들이 겪는 성적인 문제들과 욕망들은 신앙성장에 방해물이다.
또한 공산권에서 온 사례도 생각해볼 수 있다. 국내 들어와 있는 많은 국내 체류 외국인들 216만
가운데 유학생을 비롯하여 노동자로 중국 국적의 사람들이 2023년 통계로 한국계중국인 598,932 명과 중국인 245,471명으로 38%가량 들어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국내 체류 외국인들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한다고 하지만 정작 선교의 대상인 중국인 유학생 들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연구가 많지 않다. 공산권을 생각하면 베트남을 비롯해 여전히 군부 정권이 나 정부의 압력 아래 종교적 박해가 심한 선교권 현지인들이 한국에 들어오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전도와 제자훈련의 기회를 효율성 없이 놓치고 있다. 따라서 효과적인 사역을 위해서 그들이 가진 언 어는 물론이고, 한국과 다른 문화와 생활양식 및 외면 행동양식과 습관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살피 고 브릿지 사역을 놓는 것이 핵심이다.41
이주민과 유학생들을 공동체로 받아들이기 위해 그들의 신앙체계와 상이한 기독교의 세계관에 대해 성경적 원리를 적용하고, 회심자들을 교회 공동체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려면 준비된 공동체, 환대하는 소그룹과 셀 공동체, 다문화적 교회 환경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문화 가정이나 국 내 체류 외국인들을 물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여 교회에 데려오거나 전도해오더라도 결국 타문화 권에서 온 회심자들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서로의 차이점을 배워가고 존중하는 가운데 교회가 신앙 공동체로서 그들에게 소속감과 정체성을 줄 수 있을 때 이들의 지역사회 커뮤니티도 성 장하고, 국내의 많은 중소형 지역 교회들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
한국인이 되도록 시민권을 얻고, 한국어 능력시험(TOPIK)을 붙도록 교회가 돕는 것만큼, 하나 님 나라의 시민으로, 그리스도인의 새 정체성을 얻는 기쁨과 특권을 누리도록 균형 있는 사역을 하 는 것이 필요하다. 기존에 공산권에서 이슬람권에서 핍박받고 열등감과 수치심 가운데 기독교인의 정체성으로 살아갔다면, 여전히 정체성이 흔들리고 기존 가치관에서의 자만감으로 자신을 바라보 려고 하는 유혹 속에 교회 오기를 거부하거나 새 정체성을 부인할 수도 있다. 따라서 국내 선교에 있 어서 사역자들은 이주민들이 겪고 있는 관계 속에 작동하는 공동체에 대한 거부감 및 방어기제를 파악하고 그들의 정체성 혼란과 정착의 과정을 길게 보고 도와야 한다. 예수를 제대로 믿고 영적인 성장을 한다는 것은 한국 사람처럼 되거나 한국에 적응하는 것과는 또 다른 교회의 우선적 과제이 다. 영적 성장을 저해하는 환경과 습관에 대해 함께 기도하고 성찰하면서 과거 습관 및 잘못된 정체 성을 내려놓고, 종교 문화적 속박에서 자유함을 얻도록 교회는 지속적인 영적 동반자로 함께 서야함 을 깨닫게 된다.
- V. 지역 교회와 선교 기관의 다문화 사역을 위한 전문가적 역량 키우기
필자는 이주민과 난민에대한 바른 관점과 선교적 태도는 실천적 과제와 전략 세우기로 연결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한국 땅의 이주민들과 더불어 이웃으로 살아가면서 이주민 선교사를 키워내
41 김종구, 재한 중국인 유학생의 세계관에관한 연구 「개혁논총」 2016, vol.37, pp. 93-129.
는 훈련은 환대 받았던 방문자(Guest)가 그 은혜를 기억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환대(Hospitality
of God)를 다시 베푸는 것이다. 한국 교회가 6.25. 이후 UNKRA(유엔한국재건단)를 기억하고 마
을마다 필요한 이주민 사역을 통해 ‘선교적 교회’를 세우는 것이 국내 선교의 핵심과제이다. 또한 ‘이 주와 난민’에 대한 지속적인 신학적 토대 세우기 작업은 ‘왜’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해나가야 할 갈 것인가에 구체적인 방안으로 논의될 수 있다.
먼저, 리더십 차원의 연계와 네트워크가 세워져 교회들의 선교 정책 및 선교 단체의 우선적 사역
방향으로 정해지는 것이 전국적으로 필요하다. 이주민 선교를 전문으로 하는 선교사나 목회자들 뿐 아니라 한국 사회 목회와 직업 현장이 타문화권 선교 현장임을 인식하고 사역을 할 수 있는 전문인 들이 지역교회에서 훈련되어 이주민과 함께 선교적 교회를 이룰 셀과 목장, 구역들이 만들어져야 하 고, 분리 개척 및 후원 과정들도 다양하게 이루어 져야 할 것이다.
흔히 우리는 지역의 존경받는 목회자라고 할 때 말씀 중심의 신앙을 강조하던 장로교의 칼뱅과 같은 종교개혁자들을 떠올린다. 이주민이나 종교 난민이란 연계성을 갖고 교회 역사를 살펴보게 되 면 흔히 알고 있던 지역 목회자였던 칼뱅(Jean Calvin)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칼뱅 을 비롯하여 당시 많은 프로테스탄티즘의 종교 개혁가들은 박해를 피해서 이웃의 인접하는 국가로 피신을 가야했던 종교 난민의 신세였고, 당대 개혁가들의 뛰어난 사상과 업적은 교회와 사회에 대한 설교와 연구들이 탄생했던 삶의 자리(Sitz im Leben)니 상황(Context)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42 지역 목회자가 누구를 목회하는가에 대한 선택은 교회의 회중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소명 가운데 결정된다.
칼뱅 또한 프랑스를 떠돌다가, 스트라스부르로 가기 위해 제네바를 통과하면서 그 과정에서 파 렐(Guillaume Farel)을 만나서 1차로 개혁을 시도하던 때, 프랑스인으로서 제네바에서 실시하는 개
혁은 ‘타인의 것’ 혹은 ‘외국 목회자’의 사역으로 인식되어 배타성 때문에 이주 목회자로서 그의 사 역은 실패하게 되었다. 스트라스부르에서 도피처를 삼고 프랑스인 난민 목회를 하면서 다시 부처 (Martin Bucer)와 협력하는 가운데 제네바에 2차로 돌아가서 개혁을 실시할 때 칼뱅에대한 반대파 와 외국인 목회자로서 그의 입지 때문에 불안한 고충과 어려움도 여전히 지속되었다.43 마치 오늘날 한국 사회 내에 이주민 목회자로, 다문화 예배 설교자로 살아가는 사역자들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 는 장면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한국 선교사를 보내기에 급급했다면 이제는 현지 사역자들이 한국으로 파송되
42 안교성은 그의 논문에서 칼뱅 개인의 난민적 지위와 삶에 대해, 칼뱅의 종교난민 상태에서 진행된 목회의 성격과 난민 사역에 있어서 현대에 줄 도전과 교훈에 대해서 “칼뱅의 난민사역과 한국교회에 대한 함의,” 「한국교회사학회지」, 2016. Vol. 45. 155-181.
43 이에 대한 구체적인 예시는 안교성이 박경수,『한국교회를 위한 칼뱅의 유산』(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4), 159. 『교회의 신학자 칼뱅』(서울: 대한기독 교서회, 2009), 18, 34글을 인용하여 “반대파들은 자기 집 개 이름을 칼뱅이라고 부르거나, 칼뱅의 이름을 줄여 ‘가인(Cain)’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라 인용 했고 칼뱅이 제네바의 독재자가 아니고 1541-1555년까지 14년동안 “폭풍이 휘몰아치는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고 박경수가 평가한 부분을 인용했다. 칼빈과 난민에대한 저서는 Heiko A. Oberman John Calvin and 표e Reformation of the Refugees Librairie Droz를 참고할 수 있다.
어서 지역 교회의 다문화 예배를 돕고, 자신의 모국어로 한국에 살고 있는 디아스포라들을 돌보고,
양육할 수 있도록 한국인 선교사와 사역자 양성에 집중했던 신학교들의 입학 과정 문턱도 낮추어야 하고, 총회와 노회 차원에서 외국인 사역자들의 신대원 (M.Div) 수료를 한국인 목회자 후보생들에 게 적용하듯 평등하게 적용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 늘어나는 국내 체류 외국인들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아시아계통의 유학생들이 어떤 동기를 통해 들어오고 있고, 그들을 파송한 교회 와 본국 지역교회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실례로 우리는 베트남 유학생들을 돌보는 국내 교회와 베 트남 현지에 있는 베트남 현지 교단들과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들 간의 실질적인 연계를 통해 장기 선 교 및 재파송 및 정착 목회가 활발히 지속되고 있는 가 돌아볼 일이다.44
국내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짧게는 2-3년 길게는 10년 이상의 장기체류자로 영주권 자격이 부 여될 때 어떻게 그들과 파트너십을 이룰 것인지 이주민들의 삶의 여정에서 지역교회들은 동반자적
선교의 방향을 위해 로드맵을 길게 그려야 할 필요가 있다. 어디에서의 ‘속지주의’가 아닌 누구와 함
께 라는 ‘속인주의’를 중심으로 한 디아스포라 목회현장의 패러다임이 이주민 선교 안에 깊숙이 자 리 잡게 될 때 우리는 국내와 해외를 구분하지 않고, 연속성 있는 선교, 지속 가능한(sustainable) 선 교를 해나갈 수 있다.
무엇보다 국내 통합 정책과 다문화 교육방향을 다문화 가정의 한국 사회에 대한 흡수 및 적응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보다 한국 자국민들이 다문화를 이해하고 다문화적 사고 역량을 기를 수 있는 쌍방향식의 사고와 다문화 교육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국내 한국인 사역에 집중하는 교회들과 회중 이 외국인이나 타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 우선이다. 첫 번째 이주자들이 적응하는 문제뿐 아니라 이주자들을 받아들이는 한국사회와 한국문화를 형성해 가는 한국 교회가 외국인 범죄나 일 자리 이탈 등 부적응 문제의 원인에 대한 책임도 함께 지는 것이다. 한국인을 중심으로 하는 주류사 회의 편견이 극복되도록 다문화에 대한 교육에서 다문화적 감수성과 의사소통 능력을 함양하도록 교회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다문화의 중요성과 평등의 가치를 교육하고 실시할 뿐 아니라 비효율적 이고 일괄되지 못한 정책 및 교육 실행 문제는 지역 사회 곳곳에 뻗어있는 교회와 국내 선교 사역자 들이 십시일반 담당할 수 있어야 한다.
국내에서 결혼 이주 여성문제를 위한 여성 리더십 훈련과 양성을 통해 여성 사역자, 여성목회자 들을 현장 상담 및 교육가로서 역량과 전문성이 있는 지도자로 세워주고, 여성들을 위한 사역 현장 의 공간 확보가 되어야 한다. 또한 이주민 선교훈련과정은 타문화권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평신도들 에게 부족하지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주민 사역에 있어서 심지어 이주민 그룹 내에도 비자 및 취업 상태, 한국 배우자나 가족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서 계급이 나뉘어져 있어 이주민들 간
44 베트남 남부에는 베트남 종교성의 집회허가를 받은 디아스포라 한인교회가 2023년 현재 30개가 있다. 이들은 베트남한인교회협의회로 활동하며 베 트남 종교성에 공동 대응하고, 현지 교단과 협력관계를 이루며 선교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물론 중부 다낭과 북부 하노이와 같은 큰 도시에서도 디아스포라 한인교회가 여러 가지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의 갈등과 서로에 대한 불신과 오해가 조장되기 쉽다. 난민 불인정 심사를 받거나 여전히 난민 인정
을 기다리고 있는 난민신청자(G1)에게 필요한 장단기적 사역도 이주민 사역만큼 우선시해야 하고, 유학생 사역은 난민 사역과 다른 측면이 있다. 같은 종교권이라도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들 간 의 화해 및 갈등 해결도 중요한 과제이며, 회심자들 내부의 갈등 상황을 해결하는 것 및 국내 들어온 다국적 식구들을 이웃으로 대하기 위한 공동체의 선교적 접근과 신학교육의 장이 평신도들에게 마 련되는 것도 급한 과제이다.
또한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평신도들이 하나님의 선교적 백성이 되어서 일터에서 이주민 선교 사들로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목회자들은 이주민 훈련만큼 이주민 멘토들을 위한 시간 분배 와 우선순위도 체크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는 정보화의 시대로 스마트폰과 플랫폼으로 연결되 고, 서로의 연락처와 제자훈련 교재들이 앱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다국어 통역기와 번역 앱이 외국어를 하나도 몰라도 평신도들이 담대하게 이태원에서 만나는 외국인들에게 전도할 수 있도록 새로운 도구가 되어주고 있다. 사역에 있어서 협력과 네트워크를 통해 전문성을 갖고 분업 하는 방향으로 동반자적 선교를 하는 시대가 열렸다.
각 지역 교회와 선교단체는 이주민 사역에 대해서 연계성을 갖고 함께 미흡했던 점과 개선점을 연구하고 이주민의 필요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지역별 이주민 현황과 필요를 이주민 사역 기 관과 교회들을 통해 함께 연구를 할 수 있는 전문 사역자들 양성을 위해 전략적으로 이주민 사역을 접근해 볼 수 있다. 다문화 가정 사역을 위한 전문 사역자 양성은 종교나 언어 문화권별로 외국인들 에 맞춰 그들의 성별에 대한 수용도 및 문화에 대한 민감도를 인식하고 사역도 유형별로 분류하여 멘토링을 제공할 수 있고, 이러한 교육과 이주민훈련 시스템이 진행됨을 말한다. 다문화 가족에 대 한 상담 경험과 이주노동자 자녀교육 경험, 이주민체험 및 언어교육 경험을 기반으로 사역의 필요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사역자가 원하는 사역이 아니라’ 현지에 필요한 유형과 우선순위대로 사역자 양 육을 하는 것이 더욱 전략적이란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전문 사역자, 선교부 목사나 국내 선교 담당 기관 사역자들 뿐 아니라 현재 이웃 으로 들어온 이주민들을 사역자들로 양성해야 하며, 이들을 리더십으로 세워 함께 사역을 하기 위 해 적극적으로 양성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섬김과 봉사를 넘어서 다문화 가족의 아이들과 부 모들이 오직 돈에만 매여 가정생활의 어려움을 겪는 것을 긍휼히 여기는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예배의 자리와 선교 훈련에 동참하도록 초청할 필요가 있다. 디아스포라 선교사로 파송될 수 있도록 공장이나 일터에서, 그들이 궁극적으로 돌아가게 될 자신의 고국이나 새로운 정착지에서도 바른 신 앙적 정체성을 갖도록 제자훈련을 우선에 두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주민 사역을 하다보면 급한 일로 보이지 않지만 가장 우선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인이면 한국어도 잘하고 한국 사회에 대한 전문가적 지식이 있을 것이라 흔히 들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내국인(시민권을 가진)이 바라본 한국과 국내 거주하고 있는 외
국인이 바라보는 한국은 천지 차이다. 한국의 취업 정보, 한국의 의료 및 복지 시설, 관공서 사용 및
운영되는 시스템에 대한 이해, 한국 교육 제도에 대한 이해 등은 새로운 사회에 진입하는 이주민들 에게 자세히 안내되고 반복적으로 생활 속에서 함께 방문하면서 몸에 익혀져야 한다. 그중에서도 이 주민 사역자들과의 협력과 그들에 대한 가이드와 세심한 배려가 우선적이다. 말레이시아와 터키 및 러시아로 간 해외 선교사가 비자를 발급받고 아이 학교를 보내고, 치과와 같은 의료보험이 어려우면, 선교 현장의 어려움으로 여기고 시니어 선교사들과 동료들이 돕도록 선교사 협의체가 있기 마련이 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 들어와서 외국인 사역자로 살아가고 있는 이주민 목사님에게 예상되는 어려 움이 있는데 현실적 지원 및 동반자적 협력 사역 시스템이 없는 것은 국내선교에 대한 이해의 부족 에서 나온다.
해외 선교는 팔을 뻗치나 국내선교는 ‘내 집 안마당’이니 등불 밑이 어둡다고 정작 손을 필요한 때에 내밀지 않는 과오를 범하는 것이다. 필자는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도 알게 하라’는 양손 전 략(ambidextrous strategy)을 말하고 싶다. 이주민 선교의 시대는 하나님이 주신 오대양 육대주를 양 손과 양팔로 안고 사역하는 균형이 더욱 필요하다. 오른편으로는 푸쉬(push)-보내는 원심적 사역을 하고, 왼편으로는 풀(pull)로 한국에 들어온 이들을 끌어안고 구심적 사역을 하는 ‘두 손이 다 움직 이는’ 선교 사역을 지역에서 실천해 나가야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마지막으로 선교 현장에 서 하는 이주민 사역자 훈련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T.E.E.(표eological Education by Extension) 관
점에서 보았을 때 이주민을 섬기기 위해 필요한 훈련 프로그램은 현장에 있는 사역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신학교육의 연장 선상에서 할 수 있는 다문화 교육과 선교 훈련이 많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각 지역과 시군구에서 일하고 있는 선교단체 및 다문화 현장 경험가들은 신학 교육 기관과 함께 하 여 한 학기에 수백 명씩 쏟아지는 젊은 목회자, 선교사 지망생들을 국내 선교 현장에 데려가기 위해 서 선교 현장실습을 통해 연결할 수 있는 방안들을 신학교와 선교 현장, 지역 사회와 선교 기관들이 함께 힘을 모아서 마련하고 해외 선교사들과도 긴밀하게 연계되어서 활동할 것을 제안한다.
사실 신학교육 현장에 있는 사역자로서 진단하기에는 다문화 사역의 주역은 MZ세대 이다. 그 러나 다음 세대는 윗세대 사역의 과오에 대해 사과와 해명을 요구하며 기존의 교회 구성원들과 분 리 및 단절되어 있는 모습이 많이 발견된다. 따라서 함께 다문화 사회, 이주민 현장 목회를 개척해 가 려면 4세부터 14세까지, 새로운 청년세대와의 연결이 필요한 실정이다. 한국교회와 선교의 회복은 50-60대 리더십이 당위성을 외쳐서 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함께 하려고 마음을 먹어야 다문 화 교회의 청사진도 그려나갈 수 있다. 그래서 다문화 세대 교육을 받고 자라나는 당찬 세대와의 연 결고리를 일부러라도 찾아서 함께 나아가야 한다.
다문화 사역자들이 브릿지 사역을 통해 한국인을 중심으로 단일 문화권에 익숙하던 옛 세대 지 도자들과 협력하여 새롭게 다문화 예배와 성경공부의 문을 열고, 다문화 교육의 장으로서 지역 교 회 공간을 활용하도록 교회들이 환대의 자세를 한 걸음씩 실천하자. 다음 세대와 평신도들, 이주민
들과 적극 협력하기 위해 우리부터 성육신의 자세를 갖고 익숙한 사역의 옷을 벗어 던지자. 여전히
이주민 곧 국내 체류자들과 유학생, 한국 국적 취득자들에 대한 선교가 전국 어디서나 활발히 일어 나지 못하는 것은 다문화 사회 길목에 접어든 한국 교회들이 성장의 돌파구와 질적 성숙을 위한 우 선 과제인 이 사역에 대해 핑계를 대며 미루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실천 영역(Praxis)과 상 황(Context)에대한 분석 없이 겉돌면 개선되기 어렵다. 이주민과 난민, 자국민 사이에 리미널리티적 정체성으로 살아갔던 예수 그리스도를 실천하고 현장의 내용을 신학적 이론(표eory)에 비춰가며 지 역교회와 선교단체, 지역센터들을 통해 활발히 실현하려면 이론과 실천이 함께 논의되고 제안되어 협력하는 수밖에 없다. 국가선교전략회의(NCOWE)와 같은 구체적 담론의 장에서 혜안들이 만들 어져 갈 때 우리는 온 땅에 온전한 복음을 전하자는 시대적 선교적 구호와 사명을 십분 감당할 수 있 을 것이다.
- VI. 나가며: 한국 교회가 기억해야 할 ‘디아스포라’ 정체성의 자리에서
앞서 언급한 실천적 대안과 함께 한국 교회, 우리가 기억해야 할 환대받았던 바로 그 자리를 다 시 되짚으며 마치려 한다. 사전적인 의미의 난민을 넘어서 우리의 소속감에 대한 신앙적 정체감 곧 ‘디아스포라 정체감’은 우리를 시민과 난민, 외국인과 자국민의 구별에서 자유케 한다. 우리 그리스 도인들은 하나님의 약속에서는 본래 언약 밖의 백성이며, 이방인들로서 다 접붙임을 받은 ‘이방인 (난민)이요, 어둠 가운데 죄 안에서 살던 구원의 소식을 듣지 못했던 나그네들’(벧전 2:9, 론11:13- 24)이다. ‘이주와 난민’선교에 있어서 우리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비전(Kingdom vision-Visio Dei)
과 그의 나라 법을 우선적으로 따르고자 자신을 난민과 이주자의 자리에 그들 사이에 함께 두어야 한다. 체휼의 선교(Compassio Dei) 자리에서 상호연대가 있는 선교 곧 ‘타자 안에서 자아를 발견하 고,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는’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동참하도록 그리스도를 본받도록(Imago Christi) 이주민 사역자들은 선교적 소명과 부름을 받았다.
이는 한 국가와 사회의 시민권을 당연시 하고 행사하기 이전에 우리 가운데 임재 하신 그리스도 (Verbum Dei)를 따라 성육신적 삶으로의 부름이다. 한국 교회는 “환대하는 초청자로서” 이 시대의 민중인 난민들과 무슬림, 체류하는 외국 노동자들에게 “기꺼이 내 뜰을 내어주기”45를 실천할 뿐 아
니라, 게스트와 호스트 이분법을 넘어선 하나님나라 정체성을 가진 같은 이 땅의 이방인들이 ‘디아
스포라’로서 영적 정체성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의 자리를 찾도록 예수의 제자로서 이웃으로 동반자 로 서서 신앙적 정체성을 실현하는 여정을 함께 하고 있다.46
45 현한나, “신냉전 시대 중동 이슬람 갈등상황의 선교적 함의- 논찬,” 「2018 시드니 신학포럼: 중동 복음화-이슬람과 유대주의」 (2018년 7월), 68-73의 제목을 가져왔다.
46 필자는 2013-2014년 중동 지역요르단 (암만과 이르비드, 자타르 캠프지역), 레바논의 남쪽 두로 지역에서 방학기간 세 차례 방문을 통해 이라크 시리 아 난민을 도운 단기 사역 이후, 2016부터 2019년까지 Sydney Refugee International Team에 소속되어 시리아 가정 방문과 정착을 돕는 사역을 하였으며, 2017-2019년까지 Hope of Nations Arabic Church에서 시리아, 이라크 난민 아이들의 주일학교 사역자로서 남편과 함께 일하였다. 필자가 끝으로 2016년
우리는 ‘이주, 난민’ 선교신학을 논할 때, 타인과 우리(Host)의 구도에서 논하는 환대 선교의 방
안들과 종교권별로 필요한 제자훈련과 세계관에 대한 분석 및 다문화적 역량을 키우기의 구체적인 모습도 살펴보았다. 환대자 (Host)가 아닌 외국인(Others)으로 이방 땅에 섰던 많은 선교 경험자들, 비자발적 철수를 통해 이미 타문화권 선교 경험이 있는 국내 거주 선교사들 및 은퇴 선교사들 모두 가 하나님의 심장과 그분의 손과 발을 통해 한 몸으로 함께 연결되어 있다. 이 시대 가장 필요한 선
교 현장에서 무대의 연출자는 하나님이며, 등장인물은 ‘이주자, 난민, 혹은 소수자’ 및 하나님의 위로
(Compassio Dei)가 필요한 우리 모두이다.
우리는 이방인으로 무대에 등장할 혈통적 이스라엘, 언약 백성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나사렛 갈릴레아의 변방으로 시골뜨기 어부들을 찾아 주변부를 찾아 유대인의 경계를 넘으셨고, 사 마리아로 조연급들을 찾아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는 특권을 먼저 부여했다. 여전히 자신을 호스트 로 여기는 한국 교회도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게스트(Guest)로 서있는 자신을 곧 발견하고, 이주민 사역자들에 의해 ‘환대’받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환대의 자리는 주는 자와 받는 자가 아닌, 그리 스도와의 그 몸을 나누는 식탁의 교제(Eucharist) 장소임을 깨닫는 겸손과 비움의 신학적 자세가 필 요하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로 축복의 자리(Beautitude)47에 먼저 초청받은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바라기는 이주민 선교에 대한 신학적 담론이 ‘환대 선교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디아스포라’란 주제로 전국 지역교회 목회자들의 실천과 적용의 장에서 꽃을 많이 피우길 소망한다. 전쟁의 희생자 들, 종교 핍박을 피해 이 땅에 찾아온 난민들을 만나고 식사하는 자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잔을 함 께 나누도록 허락해주신 하나님을 대면하는 축복의 시간이다.48 환대는 베푸는 것이 아니라 환대 자 리의 가치를 아는 하나님 형상의 백성들이(Imago Dei), 같은 식탁에서 먹고 마심을 실천과 태도가 중요하다. 우리가 가진 공동의 정체성(Communal Identity)는 이 땅의 주소지나 시민권에 있지 않고, 영적 주소지(Spiritual PostCode)에 있다. 왜냐하면 모두가 하나님 나라와 그 종말론적 비전(곧 하늘 의 시민권)에 소망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그 내부에서 이집트(mitsrayim)를 끄집어내고 자신 안에 있는 좁고 닫힌 자민족 중심 사고들을 열어야만 넓은 가나안, 약속된 땅(새 예루살렘)을
이방인들과 함께 상속했던 것과 같이 새롭게 재발견되고 넓혀져야 하는 ‘이주와 난민’ 신학과 지역적 실천 및 연대의 과제는 21세기 우리 한국 교회와 국내 선교 기관들의 총체적 과제이며 두 팔 벌려 안 아야 할 우리들의 우선적 사명이라 본다.
부터 2019년까지 호주에서 난민이라 불리는 가족과 친구들과 보냈던 시간을 뒤로하면서 호주 한인 이민 교회들에 이들을 소개하며 당부했던 설교 내용은
‘내 친구를 부탁해’ 와 ‘누가 우리 이웃인가?’였다.
- “Blessed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Blessed are those who mourn, for they will be comforted.” (Mat 5:3-4) 가난한 자와 우는 자들에 대한 팔복의 내용을 원문 성경 인용했다.
- 이라크 기독교인들의 난민으로서 체험적 진술과 간증을 담은 책을 추천한다. Mindy Belz, 표ey Say We Are In:fdels: On the Run from ISIS with Persecuted Christians in the Middle East, (Illinois: Tyndale house,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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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를 넘어(Beyond) 글로벌 사회의 이주 및 난민 선교: 지역교회 이주민 사역자 세우기와 상호문화 제자훈련의 중요성 / 현한나 교수1 (장로회신학대학교 선교학)
Beyond hospitality: Migration and Refugee Missions
in the Global Community: The Need for Local Church
Migrant Ministers and Intercultural-Discipleship Training
이주민 선교, 난민 선교, 디아스포라 선교, 환대를 넘어, 상호문화-제자훈련
Migrant/ Refugee Mission, Diaspora Mission, B
- I. 들어가는 말
글로벌 사회 안에 ‘이주(Migration)’는 21세기 초국가적으로 다양한 정치사회의 중요한 화두 를 던지며 연구되고 있는 주제이며, 기독교 선교에 있어서는 해외와 국내로 나뉘던 선교를 온 세계 안에 실천하도록 목회와 선교 현장을 통합하는 인식론의 전환을 가져왔다. 세계 이주현황 보고서 (World Migration Report)에 따르면 2022년 전체 79억 인구 가운데 2억 8천만의 사람들 (세계 인구 의 3.6%)가 국제 이주자(international migrants)로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30년 이전 1990년에 1억 5 천 이주자 인구에 비하여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고, 50년 전 1970년 8천 4백만에 비하면 무려 3 배 이상의 인구가 늘어난 글로벌 이주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최근 수단 내전을 통해 유입된 백 만 이상의 난민과 더불어 2022년 8천 9백만의 국내외 난민과 실향민들이 강제로 자신의 고향을 떠 나 낯선 땅에서 나그네 생활의 아픔을 겪고 있다.
이주에 대한 사회, 역사적 차원의 논의들은 비단 새롭지 않다. 서구 사회 ‘이주’문제를 신학적으
로 해석해가는 여성학자 젬마 크루즈(Gemma Tulud Cruz)는‘이주’라는 문제는 비단최근에 발생한 사회적 이슈가 아니라 물자와 서비스 및 자본 등이 대륙과 대륙 사이를 건너 식민지의 이름으로 경 제와 정치 활동들이 활발히 시작되었던 15세기로 거슬러갈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 현대 이주자들의
1 현한나 교수의 공동저서로는 한국선교신학회. 『다문화 사회의 선교』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23. 한국선교연구원 KRIM. 『현대선교 26: 디아스포라 와 선교』 서울: 한국선교연구원, 2022. 있으며, 공동역서로 Terresa Bernheirmer and Anrew Rippin. 2022. 공일주 정승현 현한나 역. 『무슬림들의 신앙과 실천』. Muslims: 표eir Religious Beliefs and Practice.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CLC.있다. 최근에 무슬림연구 논문으로 Hanna Hyun.”Forgiveness in Building Bridges with Muslims: An Intertextual Analysis of the Joseph’s Narrative.” Transformation. 40-2(2023), 143-155 있다.
문제에 대한 다양한 신학적 기반을 제시한다.2
기독교 특별히 개신교의 역사가 이주와 분리되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프 랑스의 위그노들이 국외로 망명을 떠났던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40년의 종교전쟁의 기 간 동안 루이 14세의 강한 핍박으로 말미암아 많은 종교난민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프로테스탄티 즘의 개혁교회의 정신은 신앙을 지켜나가기 위해 스위스, 영국, 네델란드로 급속히 퍼져나갔던 위그 노 디아스포라들로부터 시작되었다. 또한 이주라는 주제가 사회학에서 이론화 된 시점은 19세기 라 벤슈타인(E. G. Ravenstein)이 1889년 영국의 잉글랜드와 웨일즈 지역으로 유입되는 자료를 분석하 여 1889년 이주의 법칙(law of Migration)이라는 글을 통해 유인(Pull)과 추진(Push)이라는 요소들 을 소개한 것에서 연유한다. 이후로도 다양한 이론들이 소개되고 사람들의 이주와 운동성(People on the Move)을 기반으로 디아스포라 선교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선교계도 제 3차 로잔의 케이프타 운에서부터 GDN(Global Diaspora Network) 활발하게 논의가 이뤄지고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글 로벌한 운동성을 갖고 추진되고 있다.
게다가 2억 8천만이라는 이주의 중심세력은 2000년대 초반부터 2022년 거의 20년 사이에 무려 1억 7천명 이상(글로벌 이동의 50%이상)의 이주 노동자들이 차지하고 있기에 글로벌 세계에서 대이 동은 노동력과 이에 대한 일자리 제공이라는 사회경제적 요소들과 맞물려 있다. 따라서 국내 이주민 선교에 있어서도 이러한 정치 경제적 요소들이 미치는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과거 한국이 급속 히 경제성장을 향해 나아가던 때, 민중 신학 1세대 신학자들의 관점에서 보았던 고된 노동 생활과 노 역을 담당하는 이들은 21세기 이주민과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과거 한국사회 하층계급 혹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저소득 계급을 오늘날 이루고 있기에 다문화 한국 사회에서 한국인의 얼 굴을 한 민중만을 찾을 수는 없게 되었다.
따라서 필자는 이 글에서 크게 셋으로 나누어 이주민, 난민에 대한 선교적 접근을 통해 예수의
사역을 중심으로 한 ‘주변부 신학’에 대한 토대를 언급하고, 이주민 사역에 있어서 ‘제자훈련과 그들 의 세계관’에 대한 이해가 지속적인(sustainable) 지역 교회 공동체 성장을 위해서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 글을 서술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서구 신학자들의 이주 신학과 환대의 중요성을 기반으로 국내
체류하는 외국인들과 새로 국적을 취득한 타국 출신의 다문화가정을 사역하는데 있어서 한국교회 에 필요한 관점을 선교적 관점에서 성찰하고 가장자리에서 십자가를 짊어지셨던 예수의 사역을 통 해 오늘날의 민중에 대한 갈릴레아 관점을 서술하겠다.
2 Gemma Tulud Cruz, “Between Identity and Security: Theological Implications of Migration In the Context of Globalization,” Theological Studies, vol. 69, (2008): 357-375. Cruz란 학자는 1960년대부터 이미 Global Village 라는 유행어가 사용된 사례의 출처를 다음에 제시할 뿐 아니라
Roland Robertson, Globalization: Social 표eory and Global Culture (London: Sage, 1992). 6천백만의 유럽인들이 식민지화된 대륙으로 이미 1500년 대에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으로 대거 이동, 이주를 시작했던 역사적 자료들을 제시한다. Pieter C. Emmer, “We Are Here, Because You Were 표ere’: European Colonialism and Intercontinental Migration,” Migrants and Refugees, ed. Dietmar Mieth and Lisa Sowle Cahill, Concilium1993/4 (Maryknoll: Orbis, 1993) 42–51.에서 Cruz 논문을 재인용.
II‘. 이주와 난민’에 대한 한국 사회 신학적 담론 및 선교적 방향성
한국 사회 ‘이주’란 주제의 언급을 위해 사회 통계적 자료를 먼저 살펴보면, 국내에는 2000년대 이후 다문화 사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증가하면서 2006년 우리나라는 다문화 사회로의 진입을 선 언하게 된다. 이후 2007년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 제정, 2008년 다문화가정지원법 제정 등 다문화 정책이 마련되어 시행되고 있다. 다문화 가정의 문화 적응이란 논의 측면에서 환경과 문화적 요소에 의한 심리와 행동 변화를 분석한 베리(John W. Berry)의 문화적응모델(acculturation model)3이 널 리 소개되어 사회의 통합 정책을 실시하는데 기여했다. 또한 한국정부는 1992년 12월 3일“‘난민지위 에 관한 협약(1951)’과 ‘난민지위에 관한 의정서(1967)’에 가입하면서 2013년 7월부터 아시아 최초로 독립된 난민법을 제정하여 시행했고, 통계청(2020)은 2040년에는 이주민이 전체인구의 6.9%를 차 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코로나 이전 상황은 2018년 12월자로 한국 출입국 외국인 정책 통계 월보에 의하면 12월 말 장 단기 체류 외국인은 2,367,607명으로 전 월보다 30,918명 증가했으나 외국인 입국자 현황도 만 명 가량 코로나 때 주춤했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한 통제가 완화된 이후에는 2023년 5월 현재 장단기 체류자(90일 이상으로 신고된 거주자)가 218만 명으로 출입국 통계상 한 달에 400만 명이 넘는 외 국인들이 출입국을 하고 있으며, 5천 1백만 남한 인구 가운데 200여개의 국가에서 온 218만 명의 거 주자들을 비롯하여 미등록된 이주노동자가 40만명, 북한 이주 동포들을 포함하여 3백만의 다문화 다국적 외국인들로 남한 국민 인구의 5% 이상이 다른 국적출신 다문화권 사회로 한국도 급속히 전 환되는 중이다.
국내 장단기 체류자들은 결혼 이민(F6), 방문취업(H2), 재외동포(F4) 경우, 영주권(F5) 및 유학 (D2) 목적 및 비전문, 전문 취업을 위한(E 유형의 비자)를 소지한 이주민들이 순위적으로 다수를 차 지하고 있는데, 이들 가운데 결혼으로 인한 이민을 통해 한국 국적 취득자가 매년 13000명이라면 두 배가 되는 25000명의 한국인들이 캐나다, 미국, 호주 등의 서구 국가로 이주되면서 한국 국적을 상실하여 베트남, 중국, 필리핀 얼굴의 한국 국적 취득자들이 늘어가고 있다. 국적별로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중국과 같은 아시아권 국가의 입국자들이 각각 55.7%, 21.8%, 2.7% 2018년 증가세를 보 이고, 체류 외국인들은 주로 수도권에 61%, 영남권 18.1%, 충청권 10.5%, 호남권 7.0% 머무는 있어 서울과 경기권역을 중심으로 다문화, 다국적 이주자들에 대한 이주민 사역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그러나 지방에도 외국인들의 거주와 취업이 증가하는 추세여서4 전국의 도시와 농어촌 각 지역 마다 골고루 면·읍 단위 까지 해외에서 온 이주 노동자가 열 명 이상은 252개의 시군구 전국에 분포
하여 거주하기 때문에 한반도를 “글로컬 선교현장”으로 부를 만큼 전국적 국내선교 네트워크망 형
3 Berry는 그의 문화적응이론(1992)에서 모국의 고유문화에대한 유지여부와 이주사회의 주류문화에 적응하는 도식을 넷으로 나누어서 통합
(integration), 동화(assimilation), 분리(separation), 주변화(marginalization)의 네 가지 방향성에 대해서 구분하고 있다.
4 2018년 12월자 한국 출입국 외국인 정책 통계 월보 http://www.korea.kr/archive/exp DocView.do?docId=38330&call_from=rsslink (2019년 6월 3
일 접속). https://www.moj.go.kr/bbs/ immigration/ 227/560452/artclView.do (2022년 9월 30일 접속).
성이 시급하다.5 국내 이주민들에 대한 시각은 다문화적 수용성이 서구-선진국이나 백인을 중심으
로 하는 외국인에 대한 태도와 제3세계 곧 여전히 경제적 발전 중에 있는 유색인종-개발도상국들 에 대한 판이한 태도의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단기 체류자들과 결혼, 사업, 유학을 목적으로 하는 장기 체류 외국인들은 이주민으로 한국 사회에서 난민들보다는 나은 시선으로 인식되는 데에 반해, 제주도로 2018년 한해 561명이 예멘에서 무비자 상태로 밀입국(Offshore)하게 되면서 망명신청자 (Asylum seeker) 외국인들은 타자들로 취급되어 배타적이며 혐오증적 반응을 유발하여 주변화 및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2021년 한 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에서 ‘특별기고자’란 명목으로 정 착(F2) 이주민 처지에 놓인 경우에도 이들을“진상”으로 부른다거나 무슬림이란 이유로 차별하는 태 도6를 보여 한국 사회는 다문화사회를 만들어가기에는 국민의 다문화에 대한 수용성이 낮고 여전히 ‘타인’이란 시선으로 바라보는 배타적 시각이 만연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은 2013년부터 난민법을 통해서 난민 심사 및 난민 지원 정책들을 펼치고 있는데 아직도 난민 심사를 담당하는 인력이 부족하고, 국제 사회 유엔 가입국으로서 평균(38%)에도 못 미쳐(한 국-난민 인정 비율 2%미만) 국제 사회의 부정적 평가를 벗지 못했다.7 국내 중앙일보, 한겨레, 동아일 보 같은 여러 언론사에서도 한국이란 국가가 아직 낯선 외부자로 찾아온 무국적자들이나 혹은 실향 민에 대한 준비가 안되었다는 데에 같은 의견이다. 예멘에서 온 난민 신청자들이 다음 해 인도적 체
류 허가 414명, 난민으로 2명을 정식으로 받아들인 사례는 사회적으로나 교권에서도 ‘타인, 이방인 들에 대한’8태도와 정책에 문제를 제기하는 역할을 했다.9
한국 정부가 다문화 사회로 기치를 내건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전에는 외국인이나 타인으로
이주민들을 쉽게 분리(Seperation) 및 주변화(Marginalization)해서 그들을 게토화하거나 국민 밖 범주로 내몰았다면, 국제결혼과 취업 등을 통해 국내 체류 외국인의 수가 국민 수의 5%에 도달하면 서 국가는 300만이 되는 다문화 가족들을 사회에 대한 동화(assimilation) 및 통합(integration)정책 을 실시하며 2008년 다문화 가족 지원법 제정을 계기로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 문화체육관광부, 교육부, 법무부, 지방자치단체 등 많은 부처에서 지속적인 재정을 투입하여 매년 다문화가족에 대한 지원 사업 및 예산을 급격히 증가시키고 있다. 또한 다문화 가정 청소년 적응 및 부모들의 실업 상태 에 대한 보고서와 다문화 교육에 대한 수백편의 논문이 사회학, 교육학, 정치행정 및 복지학 등에서
5 허명호 “특집: 전환기의 선교-선교현장이 된 대한민국” 한국선교 『KMQ 』, Vol. 19. 2020 봄호. 73.
6 온누리교회 편집,「온누리 M 센터 발간 저널」, 2023. Vol. 10. 32-35.
7 다음은 BBC 언론사에 제시된 뉴스보도 내용들이다. https://www.bbc.com/korean/news-44598058 https://www.bbc.com/korean/news-44632261 (2019년 6월 19일 접속).
8 필자는 망명자, 외국인 노동자, 북한 이탈/이주민에대해 타인이나 이방인으로 표명해야 하는 한계점을 논문 초반에 언급한다. 우리 안에 껴안으려는 태 도와 선교적 신학적 과제에 대한 인식과 달리 타인(others)로서 여전히 사회 안에서 호칭되고 논문에서 그들이라 호명되는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
9 한국 내 예멘 난민 신청과 인정에 대한 조선일보의 사회면 3월 6일자 기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06/2019030600084. html (2019년 6월 3일 접속).
도 다방면으로 연구되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여전히 난민 인정률이 낮고 난민심사의 전
문성이 부족하며 난민 인권보호을 위한 준비와 역량이 미흡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10
한국 사회 외국인들이 유입되고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다문화 가족들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 이 도입되는 시기에 한국 교회들도 이에 발맞추어 국내 이주민들의 문제를 더 심각하게 느끼고 사역 현장의 소리를 귀 기울이게 되었다. 이러한 연구들을 바탕으로 필자가 국내 이주민 사역에서 사역자 들이 겪을 것으로 예상하는 외·내부적 어려움들은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 번째는 외국인 강력 범죄가 증가한다 혹은 국내 일자리가 외국인에게 잠식된다는 등의 편견으로 외 국인들 혐오증을 품고 한국의 혈통 중심의 단일 민족주의 정서에 갇혀 이주민 선교를 적극적으로 지 원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주민 사역에 뛰어들어 수년간 혹은 수십 년간 사역을 해오고 있는 선교사들에게 국내 현장은 선교현장이 아니다. 한국인 중심의 지역 교회의 구조 안에서 외국인 에 대한 거부감 및 혐오증과 무관심으로 인해 국내 선교적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여전히 보내는 것만 선교로 인식하고, 해외만큼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 또한 디아스포라와 이주의 선 교적 역량을 고려하여 타문화와 타종교권에서 찾아온 외국인 유학생 및 국내 이주자들을 위한 제자 훈련 교재와 코스 등을 중소 교회와 선교단체들도 지원받을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마련하여 각 언 어· 문화권의 네트워크 활성화를 이루어 실제적인 준비가 협력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서 8만 개가 넘는 지역 교회와 국내 선교 사역을 위한 다양한 단체와 기관 들이 함께 연합하여 한국 땅의 이주민들과 함께 더불어 이웃으로 살아가면서 실천해 갈 이주민 선교 를 한국 교회는 어떻게 접근하고, 진단할 것인지 이주와 난민에 대한 우리들의 신학적 현주소를 규 명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선교적 접근을 통해 정치와 사회·문화적 현상을 넘어서 하나님의 관점에 서 인간과 인간 사이, 인간과 하나님 사이, 인간과 문제 사이에서 야기된 이주자와 난민을 담론에 담 아내려 접근하려 한다. 한국 교회와 선교적 논의는 수잔나 스나이더(Susanna Snyder)와 같은 신학자
가 지적하듯이 거주할 곳이 이미 정해진 자국민 중심의 신학적 관심에서 정해진 우편번호 없는 ‘이 주민 선교’로 적극적인 방향성 전환이 필요하다.
III. ‘이주와 난민’-신학실천 현장과 경계선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선교
이주와 난민에 대한 다양한 신학적, 선교학적 접근이 시도되면서 수잔나 스나이더는 “postcode- less theology”(비거주자 신학)을 통해서 난민과 망명 신청자들과 같은 경우 자신의 집이나 거주지를 공식적으로 보여줄 우편번호를 여전히 찾고 있는 이들이라 밝히며, 주소지가 미확인인 이들에 대한 관심을 ‘신학 안’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필요성이 크다는 것을 주장했다.11 2014년 호주 침례교단 휘틀
10 정금심, “난민 인권 보호를 위한 난민법 개정 방향 연구-난민 심사 및 난민 처우를 중심으로,” 「법조협회」 ,2018, vol.67, no.3, 통권 729호 pp. 645-
698.
11 Susanna Snyder, “Displacing 표eology: God-Talk in an ‘Age of Migration,’” Home and Away:Contextual 표eology and Local Practice, ed. Stephen Burns and Clive Pearson (Oregon: Pickwick, 2013), 104-123.
리 대학(Whitley College) 선교 신학자이며, 난민과 이주민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사적 선교를 실천
하며 지역 교회의 환대적 선교 모델로 정착시키려 했던 로스 랑그미드(Ross Langmead)는 이 시대 선교 모델로 환대(Hospitality)를 통한 지역사회 접근을 분명히 제시하였다. 그의 ‘환대’로서의 선교 의 10가지 영역에서 호주 교회가 실천하고 있는 구체적인 사례를 필자는 호주 학자들과 분석했는데 이주민들과 함께 하는 호주 지역교회의 실천 모습을 잘 살펴볼 수 있다.12 한국 사회는 이주민 신학 에 대한 담론적 대안이 모색되고 있고, 정주민들과 비정주민들에게 지역교회의 환대적 자세를 성찰 할 필요가 있다.
난민신학에 대해서 다니엘 그루디(Daniel G. Groody)는 평범하고(anybody) 무명한 자들
(nobody)을 쓰셔서 목적있는 사람들로(sombody) 바꾸시고, 성례전을 통해 유월절(passover)의 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사회적 정체성으로 변화시킨 것을 ‘구원’의 과정으로 해석하여 취약층에 있
는 다양한 이주자와 난민을 향한 정의적 측면의 신학적 접근을 시도해왔다.13 ‘Crossing the Divide: Foundations of a 표eology of Migration and Refugees’에서 그는 이주, 난민에 관한 신학적 토대 작 업의 중요성을 외치면서 교회들이 선교적 차원에서 이민자들에 대해 접근한 사례들은 많지만, ‘이주
와 난민’신학에 대한 교회들의 정리된 태도와 신학적 근거가 미미하다고 판단했다. 그루디가 제시하 고 있는 이주와 난민에 대한 신학적 관점은 하나님의 시각과 선교의 관점에서 어떻게 우리 사회 안의
타자들을 품고 정체성을 재 규명할 수 있을지 한국 교회의 이주민 선교에 통찰력을 제공하고 있다. 필자는 이주민들에 대한 네 가지 신학적 토대를 이 전의 글에서 요약하고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란 관점을 묵상하면서 이마고 크리스티(Imago Christi)를 첨부했는데,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 을 개선하는 것 뿐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도록 교회가 제자훈련을 통해 그들 의 커뮤니티와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최종목표라고 믿기 때문이다. 선교의 대상이 되는 이주민 들 가운데 무슬림들의 경우만 먼저 예를 들어 설명하면, 샤리아를 통한 세계관 형성으로 인해 신(알
라)에게 나아가는데 있어서 통로는 ‘예수’가 아니라 ‘무함마드’이다. 그들은 무함마드를 닮아, 그의 시
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가치판단을 하므로 신에 이르는 길 ‘곧은 길(Aṣ-Ṣirāṭ al-mustaqīm)’은 성경 의 하나님의 형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이슬람의 문화와 교리적 편견으로 인해 가로막힌다.
따라서 예수가 선택하셨던 ‘좁은 길(narrow path)’로 인도하는 제자훈련은 예수의 걸음을 뒤따 르는 사역자의 인도가 없이는 불가 능하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나아가는 길은 성경적 원리에 따른 회 심과 회복 곧 예수의 십자가를 수반하는 모델(Cruci-formity)14을 통해 이전 세계관과 종교적 가르침
- DarrenCronshaw et “Mission as Hospitality with Refugees and Other Migrants: Exploring Ross Langmead’s“Guests and Hosts”in Australian Churches.”Mission Studies, 40(2023).150–176.
- Daniel G. Groody, “Crossingthe Divide: Foundations of a 표eology of Migration and Refugees” 표eological Studies, 70, 3 (2009): 638- 667; “Cup of Suffering, Chalice of Salvation: Refugees, Lampedusa, and the Eucharist” 표eological Studies, vol. 78, 4 (2017):960-987.
14 이것은 돈 리틀이 자신의 제자훈련 책자에서 소개한 십자가형, 곧 고난 받으신 메시야를 닮아가는 제자훈련의 모델로 성공을 지향하기보다 십자가를 지고 고통당한 그리스도 닮음의 유형을 말한다.
에서 새로운 결단과 믿음의 여정을 걸을 때에야 가능하다. 따라서 이러한 ‘상호문화간의 차이점과 간
격을 메워주는 것이 이주민 사역자의 멘토링과 제자훈련’이다. 이주민 선교에서 이주민과 난민의 경 제적·사회적 지위 회복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의 회복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주민들은 한국 땅에 발을 딛으면서 고국에서 각기 독특한 종교와 문화로부터 형성된 세계관에 교육받았거나 이미 옛 습성이 배어있다. 국내에 와서도 쉽게 이단 및 타종교의 전도대상이 되어 쇠뇌 를 당하거나 경험하면서 기독교적 세계관과 성경적 가치에 따라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세워지기 어
려운 장벽들이 많이 있다. 따라서 ‘타문화권 선교사가 자문화중심주의를 버리고, 문화적 간격과 보이 지 않는 차별과 편견을 극복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호문화 이해를 위해 의사소통의 장벽을 허물고, 타문화에 대한 감수성을 함량 하여, 국내 이주민들의 세계관에 대해 배우려는 사역자의 자세가 필요 하다.’ 필자는 네 가지 이주민 신학적 관점에 대해 설명하려 한다. 먼저 이마고 데이(Imago Dei)의 실 현은 하나님의 시선(Visio Dei)으로 정체성을 회복하고, 이마고 크리스티(Imago Christi)의 관점에서 ‘그리스도를 본받음’으로 완성된다고 언급하려 한다. 사회적 계층의 차이나 민족성 및 피부색깔의 차 이를 뛰어넘는 지름길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 진정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면서 나를 제3국 의 땅에 보내신 디아스포라적 사명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Compassio Dei)은 이 주와 난민신학에 있어서 메타포(Metaphor)로서 ‘환대’ 관점에서 한국 교회가 ‘하나님의 선교’를 우선 적으로 실천하는 첫 걸음마가 될 것으로 보며, 이에 대한 적용점을 찾아볼 수 있다.
- 이마고 크리스티(Imago Christi)는 이마고 데이(Imago Dei)와 같이 간다.
먼저 “‘인간과 죄의 문제’는 죄로 인해 분리된 담을 넘어선다는 차원에서 이마고 데이(Imago Dei)는 하나님의 형상”15 회복의 중요성을 말한다. 현실적으로 정부나(혹은 비자 상태로) “정해진 사
람들의 정치적 정체성이 마치 그들 자신의 정체성인 것처럼 치부된다는 점에 문제점이 있다는 지적” 이다.16 따라서 사회나 정부가 그들을 난민으로 무국적자로, 잠시 체류하는 외국인으로 분류할지라 도 그들을 바라보는 교회와 선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할 신학자들은 그들의 존엄성을 정치, 사회적 장벽으로 인해 소외시키지 말자는 신학적 부름이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는 관점이다. 사회가 그들 (others) 혹은 타인으로 취급한 우리와 다르게 분류되는 이들을, 비자가 없고 불법으로 거주하는지 알면서도, 인간다운 삶을 향해 국경을 넘고, 타지에 살아가는 이들을 향해 법과 사회는 장벽을 설치 하더라도 교회는 그 반대 입장에 서야한다는 단호한 도전장이다. 사회가 규정한 계층구조 아래 불가
촉천민을 바라보듯이 난민을 ‘난민’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난민의 형상에서‘하나님의 형상’을 발 견하는 것이다. 레비나스가 고통당하는‘타자’의 얼굴에서 우리의 윤리적 과제를 발견하고, 타자를 통
15 Groody, Crossing, 643. 16 Ibid., 640-641.
해 말씀하시고,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한 것과 같이 선교적 시선을 갖는 것17이다. 필자는
이마고데이(하나님 형상-(Imago Dei)로의 회복은 단지 인간이 가진 원래의 창조주를 형상 회복적 차원에서 존엄성이나 권리가 평등하게 대우받고 사회에서 편견 없이 대우받는 것을 넘어선다. 영적 차원의 회심과 성화를 통해 이마고 크리스티(Imago Christi) 과정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는 것은 그들의 사회적 위치와 문화적 생활이 자국민과 동일하게 향상되는 과정뿐 아니라 성육신-인카네이션(Incarnation)을 통해 인간의 형상을 입으신 하나님의 시선으로 자신의 새 정체성을 그리스도 안에서 찾는 과정에서 회복된다 믿는다.
- 비지오 데이 (Visio Dei)는 하나님의 시선으로 이주민을 바라보는 것이다.
두 번째로, 비지오 데이 (Visio Dei)로서 ‘하나님의 시선 혹은 하나님의 관점’이란 차원에서 국 가들과 하나님 나라 사이의 분리 곧 분단을 뛰어넘는 접근이다. 하나님의 관점은 다름 아닌 “하나님 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비전, 종말론적 관점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해 나아간 히브리서에 나오 는 곧 믿음의 선진들로 불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종(히 11:13-16; 13:14)과 출애굽 사건(출 20:2) 에 대한 좀 더 깊이 있는 분석과 이를 현대 사건에 연결하려는 신학적 작업이다.18 하나님의 시선으
로 이스라엘이 스스로 갇혔던 좁은 시야에서 출애굽한 사건은 하나님의 백성이 인식론적으로 반성 적 전환을 가져왔다는 해석이다. 이것을 그루디는 과거의 사고 구조에서 탈출한 곧 “인식론적 이주 (cognitive migration)”라고 부르는데, 좁은 세계관으로부터 새로운 시선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 한다는 차원에서 출애굽 사건을 해석하고 있다.
그루디가 제시했던 하나님의 관점(Visio Dei)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질 수 있는 새로운 관점 곧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는 새 시각을 열 수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 윤리의 토대도 형 성할 수 있는데 그것은 진리와 생명, 거룩함과 은혜, 정의와 사랑, 평화와 같은 사회 윤리적 토양이 될
수 있는 가치 덕목들을 예수 안에서와 그가 선포했던 하나님 나라 비전에서 찾기 때문이다.”19 하나 님 나라의 시선에서 이주와 난민의 발생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이주민 혹은 난민 사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관점을 놓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이동성과 비거주성의 특성 때문에 정주가 어려운 과 정에서 실제 한 영혼 한 영혼에게 깊은 관심어린 시선으로 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각 개인이 가진 종교 문화적 색채에 대한 정확한 관찰과 그들의 자국으로부터 형성된 세계관의 독특성에 대해서 먼저 이해하고, 미전도 종족 및 프론티어 지역에서 타문화권 선교사가 언어와 문화 에 대한 오랜 학습을 통해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듯이 이주민 선교를 해나가야 한다. 자문화권 안에 살면서 자칫하면 자민족 중심적인 생각과 문화로 이주민들을 바라보고 한국문화와 한국 교회에 동
17 현한나 “누가 디아스포라인가?” 복음과 선교 49(1), 2020. 485-486.
- Groody, Crossing, 661-662.
- Groody, Crossing, 661.
화시키려는 한국 교회 맞춤형 신자들로 그들을 초청하는 과오를 범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주민들을 바라보는 관점 가운데 그들을 향한 시선이 타종교와 타문화권에서 왔다는 연유로 한국 사람 교회에 맞는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고, 그리스도의 사람, 예수의 사람으 로 제자가 되도록 양육하는 훈련 목표를 가져야 한다.
- 벌붐데이(Verbum Dei)는 ‘말씀되신 그리스도’를 통한 성육신적 접근이다.
셋째로, 벌붐 데이(Verbum Dei), 하나님의 말씀 곧 말씀되신 그리스도 곧 자기비움의 ‘케노시스 (kenosis)’에 대한 신학이 이주와 난민에 대한 신학의 형성에 틀을 제공한다. 예수는 “스스로를 주변 부, 이방인들 가운데 찾으셨으며 그들을 낯선 땅으로 찾아가실 뿐 아니라 이방인의 정체성으로 그
가운데 사셨으나 그의 하나님 되심은 연약한 가운데 버려지고 이방의 낯선 정체성 안에서도 존재하 며 화해의 사역을 이루셨다는 점”20이다. 이것은 곧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이며, 하나님이 고통당하고 소외당하는 자와 함께 하신다는 연대를 의미한다. 인간의 연약함과 고통 중에 능력을 보이신 예수님
의 성육신 사건을 그루디는 모든 인간이 가진 하나님으로부터 장벽을 허물기에 충분하고도 가장 깊 은 진리와 은혜를 담는 사건이라 해석한다. 약자나 소외된 자를 사회 중심부에서 내려다보며 돌보는 사역이 아니라 자신이 그 가운데 거하시며 가장 나약한 자로, 사회 안에서 이방인으로 살아내신 사 건이다. 예수는 그들을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고 성육신하셨으며 십자가의 하나님을 통해 이 땅의 교회와 그 부름에 합한 신학을 하는 자들에게 사회 문화적으로 정체성이 소외된 자들 안으로 들어 가라 부르신다.
하나님의 말씀(Verbum Dei)은 폴 히버트(Paul Hiebert)가 언급했던 비판적 상황화(Critical Contextualization)를 비롯하여 찰스 크래프트(Charles Kraft)의 역동적 등가이론(Dynamic Equivalence)과 같이 현지 문화와 세계관을 바탕으로 복음과 문화의 창조적 만남이 필요하며, 세계 관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육신적 선교와도 연관된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시고, 아래에서부터 자신을 드림을 통해 제자들을 섬기고,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셨듯이 한국 지역 교회 는 기득권자인 한국인 맞춤형식의 신앙생활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문화 지도자들을 통해, 다문 화 가정들을 통해 새로운 배움을 가지고 타 문화권에 적합한 다문화적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 자문 화 중심적인 일방향식의 회심자 제자훈련을 지양하고, 함께 상호 배워가는 제자훈련, 위로부터(top- bottom)가 아니라 아래로부터(bottom-up)식의 이주민 필요 중심의 구전 문화와 내러티브를 중심 으로 한 쉬운 제자훈련 과정을 여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하나님의 관점
(Visio Dei)으로 바꾸어 다문화 가족들이 스스로 정체성을 ‘디아스포라’로 바꾸어갈 때 자신의 고난 과 어려움을 토대로 다른 이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하나님의 긍휼(Compassio Dei)의 사역으로 나
아갈 수 있다.
- Karl Barth, 표e Doctrine of Reconciliation, 192; Groody, Crossing, 650에서 재인용.
- 미시오데이(Missio Dei)는 경계선을 넘어가는 타문화권 선교로 부르심이다.
네 번째로 미시오 데이(Missio Dei)는 곧 하나님의 선교를 통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경계선을 넘 어가는 과제 곧 다중심적 접근(Polycentric approach)을 의미한다. ‘이민자와 난민’에 대해 중심의 기 득권 세력들이 나아가기 보다는 하나님의 선교는 상호 경계를 넘어서는 과정이다. 원래 복음은 한 사 회나 특정한 민족이 아닌 모든 민족과 방언에게 약속된 기쁜 소식이다. 그러나 교회나 그리스도인들 이 지역과 민족, 언어를 넘어 자신과 다른 종족에게 특별히 죄인들로 여겨졌던 이들에게 다가가는 것 은 역사적으로도 어려운 과제였다. 사도행전 11장의 고넬료 사건은 이방인 고넬료를 구속의 역사에 서 주변부로 보지 않고, 유대인과 동일하게 성령이 역사하시는 중심부로 옮기는 역할을 했다. 주변인 혹은 주변 집단(Peripheral Groups)은 선교역사에 있어 촉매제(Catalyst)역할을 수행해왔고, 교회의 개혁과 갱신에 기여하였다.
정처 없이 고향을 떠나야했던 위그노와 같은 종교 난민들로 시작된 개혁교회 역사를 고려해 보 면 더욱 그러하다. 이주민 사역은 국내 현장에서 빠질 수 없는 중심 사역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인 중심의 전통적인 사역 때문에 선교 현장의 중요성이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문화적 이 질감과 거리감으로 보았을 때 단연 국내 이주민과 체류하는 외국인, 다문화 가정으로 접근은 타문 화권 사역이며 선교로 이해될 수 있다. 현대 선교학자였던 랄프 윈터(Ralph Winter)는 E-등급이론21 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동해야 하는 문화적 거리가 얼마 나 되는지를 분석하였는데 이를 선교가 시작 던 종교개혁 당시를 적용해보면, 스위스 도시 제네바 와 독일령으로 있던 스트라스부르에서 했던 위그노들과 칼뱅의 사역은 유사 문화권이지만 동일문화 권은 아닌 E-2 문화권에서 행했던 목회 사역22이었으며, 국가의 종교적 박해를 떠나 정착한 많은 위 그노들처럼 이웃하는 타문화권에서 사회를 개혁하면서 하나님의 선교적 부르심에 순종한 주변부 선 교는 개신교를 등장시켰다. 역사적으로 지대한 영향력과 개혁의 물결들을 이끌며 선교의 시대를 바 꾸어 온 이들은 결코 기득권에 편안히 앉은 자들이 아니라 주변인들이다.23
한 해에도 수만 명의 보트피플이라 불리는 무국적 체류자들이 국경을 넘거나 해안에 도착하려 다가 죽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신학자들과 교회들은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따라서 교회는 인도주의적 체류와 난민들의 유입에 대한 국가 정책에 대해서 “국경을 봉쇄하는 법
이 항상 정당한지 더 나은 삶과 기회를 찾아 불법도 자행해야 하는 난민들의 인간의 기본적 권리” 에 대해 정부와 달리 교회는 어떤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지 신학적 입장을 되물어야 한다. 예수
- Ralph Winter Bruce A. Koch, 2002 Finishing the Task: 표e Unreached Peoples Challenge V 19. No. 4. International Journal of Frontier Missions.15-25.랄프 윈터에 의하면 E-0은 교회내 불신자, E-1은 동일문화권 내 불신자, E-2는 유사문화권, E-3는 타문화권 선교를 말한다.
22 칼뱅의 선교의 영역이 유사문화권 뿐 아니라 브라질 E-3 타문화권까지 확장되었고, 당대 선교라는 용어가 등장하여 쓰여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연 선교사였다는 점에 대해서 김성현은 칼뱅 연구가 윌헬름 노이저(Wilhelm H. Neuser)의 의견을 들어 “종교개혁 운동에 나타난 선교와 부흥-칼 뱅을 중심으로”와 “선교사 칼뱅”에서 칼뱅이 선교사였음을 주장하고 있다.101-136;137-158. 2007, 국제 선교 학술 대회 이광순 역. 「미션아카데미 선교신학 연구」 vol. 7.
23 폴 피어슨 2009, 145; 현한나 2020, 477.
는 하나님 곧 아버지의 나라와 그 영광을 위해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라’라는 십자가의 길을 인도하 실 뿐 아니라 먼저 보내심을 따라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으셨다. 여기 원어로 표기된 에포뤼오테산 (ἐπορεύθησαν)은 영어성경에서 ‘계속하다’(going on) 혹은 ‘떠나가다’ (leave)의 뜻을 내포하며 포뤼오 (πορεύω)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가다’(πορεύω) 단어가 디아포뤼어(διαπορεύω)와 같이 디아(δια)와 합 쳐지면 ‘지나가다 통과하다’는 의미(pass through)가 되는데 여러 마을을 다니신(눅 9:56) 예수와 제 자들의 선교여행에 자주 사용된다.
슐라터는 예수를 따르기 위해 기득권을 버려야 하는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을 거부하는 이들을 “불완전하게 예수와 연결되어 있는 사람”이라 일컫는데, 이들은 예수와 함께 갈 수 없는 자들이며, 마음의 반쪽만 가지고 자신의 소명을 따르거나 “긴박하게 밀려드는 것들에 대하여 마음 쓰는 사람
이다. 하나님의 사역과 섬김의 일을 위해 온전히 그들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24라고 주석을 단다. 불완전하게 예수와 연결된 자들은 삶에서 예수를 통해 온전히 정체성을 발견하지 못하고, 영 적으로 안주하려하며, 예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지 못하는 오늘날의 교회들을 떠올리게 한다.
- 컴파시오 데이 (Compassio Dei)는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한 자리이다.
위의 신학적 4가지 관점과 더불어 선교적 토대 곧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의 일환으로써 그 분의 긍휼적 접근(Compassio Dei)은 환대(Hospitality)라는 메타포적 관점에서 신학적 담론을 풀 어내기 위해 중요한 신학적 기반이 된다. 이러한 논의에 대한 발상은 남아프리카 신학자 사우어 (Christof Sauer) 논문 가운데서 발견되는데25 하나님의 긍휼하심 혹은 체휼하심(Compassio Dei)이 다. 초기 사도행전에 나오는 교회 공동체가 소수자이며 이방인의 정체성으로 살면서 배운 관점이기 도 하다. 이단으로 바라보며 핍박하는 유대교와 로마제국의 수난 아래에 고난을 견디며 핍박과 순교 의 과정을 겪는 가운데 이방인 교회는 성장할 수 있었고 바울은 고린도후서 1장 5-7절에서 고난 중 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위로가 다른 형제들의 고난 중에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자신의 고백을 통해 언급한다.
이것은 기부자와 수혜자 사이의 종속이나 지배 관계가 여전히 남아 종곡과 국가로 분리될 수 있 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오히려 ‘타인 혹은 이방인의 눈으로 읽도록 하여’ 소수자, 이방인 에게 선교적, 실천적 과제를 마땅히 할 수 있도록 고난 중에 성장했던 한국 교회들에게 역사적 교훈 을 주고 있다.26 ‘체휼하심’은 강자나 지배자가 주체가 된 신학적 입장에서 하나님의 시혜, 혹은 선교
24 Adolf Schlatter, Luke, 조현철 역, 『누가복음: 아돌프 슐라터의 성서주석』 (서울:자연출판사, 2005), 156.
25 사우어 교수는 남아프리카 대학(University of South Africa)실천신학 분야에서 연구자이며 그의 논문 “Missio Dei and Compassio Dei: Minority Christians Experiencing God’s Acts in the face of Hostility” Scriptura 103(2010), 60-65. 은 2009년 5월 18-20일 Stellenbosch의 발표문이다. 또한 아래 의 서적도 참고해야 체휼하시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다. Rupen Das, Compassion and the Mission of God: Revealing the Invisible Kingdom (Leicester: Global Library, 2015).
26 이는 마치 디아스포라에게 (to Diaspora) 혹은 디아스포라들을 위한(for Diaspora) 선교적 함의나 한계를 넘어서는 것 곧 디아스포라를 넘어서
(Beyond Diaspora)의 사역과도 동일 선상에서도 이해될 수 있다. Enoch Wan,“Diaspora Mission Strategy in the Context of the United Kingdom in the
를 베푼다는 입장과 정반대된다. 먼저는 사회 내에 적대감(Hostility)과 외국인에 대한 제노포비아
(Xenophobia)27가 만연한 중에 ‘핍박받는 혹은 연약한 자들로 교회를 두신’ 하나님의 뜻과 그 주권 성을 겸손히 교회가 인정하도록 부르신다.
두 번째는 가난과 질병, 경제적 파탄과 종족별 내란 및 종교적 핍박으로 인해 고통 중에 있는 세 계 교회들의 목소리에 주목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이기도 하다. 위로가 필요한 자들 곧 이주자들 과 난민들을 통해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뜻과 교회의 선교적 방향성을 하나님은 제시한다. 하나님 이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영광에 대해 몸소 체험케 하신 것은 그들을 버림이 아니라
‘함께 고통당하시는 하나님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순교당하는 교회들 가운데 성령이 역 사하시고 능력과 부흥을 더하신 것은 ‘하나님 자신의 주권 가운데’ 성령을 통해 초대 교회에 하신 일
28이란 것을 환란 중에 드러내신다. 필자는 이것을 ‘이주와 난민에 대한’ 신학적이고 선교적인 적용의 관점에서 연결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 가운데 찾아온, 우리 앞마당에 온 난민들, 무슬림들,29 이방인, 불법 체류자와 북한 이탈주
민들은 우리의 계획이나 선교적 과제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주권’ 아래 종교적 핍박이나 자연재해, 전쟁과 내란 등 정치적 사회적 다양한 문제와 어려움으로 찾아온 이들이기에 한국 교회는 이주와
난민에 대한 하나님의 시선과 그분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따라서 필자는 ‘이주와 난민’에 대한 신학 적 과제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 바로 디아스포라 선교에서도 강조되고 있는 디아스포라와 함께 (with Diaspora)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환대 선교의 태도이다.
종종 우리들은 타종교권역에서 온 미전도 종족의 선교를 해외선교의 과제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 다. 그러나 국내 들어온 다문화 가족들을 전도하고 제자 훈련시키는 과정은 힌두교, 불교, 이슬람권 에서 핍박받은 현지인들을 향하여 타문화권 선교를 하는 것과 비슷한 어려움과 문화적 장벽을 갖는 다. 수세기에 걸쳐서 타문화권에 효과적인 의사소통과 상황화를 하기 위해서 현장에서 경험을 통해 계발하면서 연구했던 복음 전도와 제자 훈련에 대한 다양한 사전 정보와 지식들이 있지만 우리는 이 러한 역사적 교훈들과 사실들을 간과하고 좋은 선교 전략들을 잊고 국내 상황은 다른 콘텍스트로 이해하여 새롭게 새 전략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30 따라서 이러한 내용을 근거로 이주민 사역에서
21st Century,” Transformation 28:1 (January 1, 2011), 3–13.은 디아스포라 선교에 대한 큰 틀을 제공할 것이다. 디아스포라 선교에 대한 국내 논문은 김영 동의 연구를 참고하라. 김영동, “디아스포라 선교학적 틀에서 본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의 선교 신학적 과제,” 「장신논단」46-2 (2017): 337-364.
27 이 단어는 필리오제니아(Philoxenia 외국인을 사랑함의 뜻)의 반대적 표현으로 사회내 이방인과 타인들을 경시하거나 인정하지 않고, 그들에게 차별 적인 배타적 태도를 보이는 현상을 의미한다.
28 루마니아 신학자인 Josef Ton, Suffering, martyrdom and rewards in heaven, Second edition (Oradea:Cartea Crestina,1997) 가 밝혀낸 사도행전의 초대교회와 그 교훈들의 글에서 사우어 박사는 논지들을 얻어 Compassio Dei를 쓰게 되었다고 그 논문에서 출처를 밝히고 있다.
29 필자가 크리스천리뷰에서 ‘찾아온 땅 끝 이슬람’ 이란 주제로 2017년 10월 27일 이슬람 세미나를 위해 인터뷰 한 내용을 참조하면 ‘안마당’이나 ‘찾아 온’이란 의미를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찾아온 땅 끝 이슬람: 표e Unreached Neighbour, from the end of the earth to our front yard” 2017. 9. 25. 인 터뷰 기사. www.christianreview.com.au. (2019년 6월 29일 접속).
30 마크 듀리(Mark Durie)는 그의 강의에서 1978–GlenEyri e(글렌 에이리)북미권에서 돈 맥커리가 편집한 복음서와 이슬람교-(Gospel and Islam)과 2007 무슬림선교 컨퍼런스 From Seed to Fruits에서 떠오르는 이슈들에대해 더들리 우드베리(Dudley Woodbury가 현장선교사들과 선교학자들과 전략
요구되는 것은 구체적인 전략들에 대한 성찰이며 이것이 바로 환대를 넘어서는 타문화권 선교를 위 한 전략을 세워가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 IV. 우리 사회 ‘타자’에 대한 교회의 관심과 ‘환대’선교를 넘어서는 실천
2000년대 이후에 타인들에 대한 선교적 신학적 학술 논문과 책들이 한국에 소개되고 있는 것 은 좋은 현상이다. 타인에 대한 다양한 한국 교회의 선교적 반성과 접근은 다음과 같은 논문들에 서 비춰지는데 세월 호 참사사건 이후 자국민이지만 희생자들(타인들)을 향해 냉담하거나 무관심한
교회의 시선을 문제시하기 위해 이동춘 교수가 다룬 “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한국교회의 태도에 대 한 기독교 윤리적 반성”31에서 본회퍼나 볼프(Miroslav Volf)의 타인의 고통에 참여하는 또한 타인 을 껴안는 포용적 사상 안에서 환대적 신학의 접근을 볼 수 있으며, 2008년도 레비나스 (Immanuel Levinas)의 타자 철학32을 통해 한국 사회가 동일성 안에 상호성 및 주체가 이방인 타인과 함께 존재 함(Mitsein)의 의미를 언급하여 “준더마이어 교수의콘비벤츠 (Konvivenz)선교 곧 타자를 위한 선교 가 아닌 타자와 함께 하는 태도”를 주장한 것도 환대적 선교의 과제를 주제로 한 논문들이 된다.33
국내에는 외국인들 혹은 타인(others)로 불리는 이들에게 한국 교회가 실천적 과제로서 환대 를 베풀어야 할 신학적 입장들에 대한 책들이 2000년대 이후에 소개되어 2002년 “환대의 신학” 이 란 이름으로 존 코닉(John Koenig)의 책이 한국장로교 출판사에서 나온 것과 더불어, 크리스틴 폴 (Pohl, Christine D)의 환대에 관한 책 『손대접』34도 복있는 사람에서 출판되었다. 이와 더불어 조직
신학적 차원에서 한스 부르스마(Hans Boersma)의 책 ‘십자가 폭력인가 환대인가’ 하는 책은 기독교 의 구원론 곧 이레니우스가 말한 총괄 갱신론적 신학적 차원의 접근이 어떻게 환대자 하나님의 성
품과 그의 사역에서 현대의 환대 개념의 이해를 넓혀주고 교회의 환대적 선교에 통찰력을 제공하는 지 구체적인 이해를 돕고 있다.35
그러나 한국 사회에는 기독교가 이방인이나 난민, 타인들에 대해 환대해야 하는 문제가 여전히
컨퍼런스를 했던 큰 두 역사적 사례를 들면서 이미 쌓여있는 전략들을 잘 활용하자고 주장한다.
31 이동춘, “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한국교회의 태도에 대한 기독교 윤리적 반성,”「선교와 신학」 제37집 (2015):233-261.
32 임희모, “타자와 환대의 선교-레비나스 철학과 선교신학의 만남,” 「한국기독교 신학논총」 제56집 (2008):189-211.
33 방연상 또한 에서 레비나스의 사상에 입각하여 선교가 서구의 주체적인 측면에서 식민지의 확장의 한 형태였던 관점을 벗고자 타자 철학을 말한 레비 나스를 새로운 선교 신학 토대로 제시한다. 방연상, “탈 근대적 선교신학의 주체를 향하여-임마누엘 레비나스의 사상을 중심으로,” 「신학연구」 63 (2013): 253-279.
34 Christine D. Pohl, Making Room: Recovering Hospitality as a Christian Tradition (Michigan:Eerdmans, 1999). 다음 책을 참고하라. Nell Becker Sweeden 이란 George Fox Evangelical Seminary의 조교수가 대중적으로 쓴 Church on the Way: Hospitality and Migration (Oregon: Pickwick, 2016).
35 한스 부르스마는 인간의 환대는 나르시즘적이며 이기적이기 때문에 인간의 죄된 본성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시선을 돌린 환대는 곧 한계에 부딛힌다 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십자가는 형벌이기 보다는 새 아담의 대표성을 가진 구속주의 죽음이며, 곧 성자의 고난과 성부의 고난의 비애는 삼위일체적 십자가 의 수난까지 연결이 되어 하나님의 환대로 볼 수 있다고 결론 내린다. 한스 부르스마(HansBoersma)/윤성현 역, 『십자가 폭력인가 환대인가: 포스트 모던 시 대의 개혁주의 속죄론』 (서울: CLC, 2012). 284-302.
시혜적 차원의 부담감으로 남아있고 함께 윤리적 신학적 작업이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민과 난민
신학에 대한 토대와 더불어 이들과 함께 나아가는 선교적 과제로서 환대 선교에 대한 분석과 연구가 더 확대될 필요가 있기에36 필자는 2014년 호주 침례교 교단 휘틀리 대학(Whitley College) 선교신 학자였으며, 난민과 다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선교를 몸소 실천했던 로스 랑그미드(Ross Langmead) 가 주장한 환대(Hospitality)에 관한 열 가지 실천모델을 언급하려 한다. 랑그미드가 말했던 환대 선 교는 앞서 말한 이주와 난민 신학에 대한 신학적 토대 없이 한국 교회에 구체적 적용이 어렵다는 제 한점이 있으며 환대를 넘어선 (Beyond Hospitality) 관점은 필자가 제자훈련으로 나아가는 디아스
포라 선교라 주장한다. 난민과 망명 신청자들에게 ‘환대’ 선교를 실천 할 수 있는 열 가지 모델은 다 음과 같다.
- 난민들의 권리보호 2. 정치적인 참여 활동 3. 난민정착을 도움 4. 피난처 제공
- 다문화를 환영하는 교회환경 6. 다문화에 대한 이해와 배움 7. 다종교간 대화
- 8. 환대자의 윤리적 의식 식사와 친교 10. 섬김을 통해 그리스도를 모심.37
위의 열 가지 항목의 사역들은 앞서 제시한 ‘이주 난민 신학’을 토대로 교회들이 ‘하나님의 선교 의 장’으로서 타인에 대한 관점과 그 경험을 연대하게끔 실천적 문을 열게 한다. 즉 랑그미드의 교회
가 실천할 수 있는 환대적 관점으로서 선교를 넷으로 묶어 ‘이주 난민’에 대한 선교적 실천 방안들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교회가 약자를 위한 목소리 내기로서 난민들의 권리보호, 정치 적 참여활동 등이 포함된다. 두 번째는 난민 정착과 피난처를 제공하며 그들을 위한 봉사에 참여하 는 기능이다. 이것은 성육신의 ‘벌붐 데이’ 곧 말씀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함께 피난처를 제
공하고 난민들을 도우며 그들의 고통 가운데 체휼하는 모델로서 ‘컴파시오 데이’의 적극적 실천이기 도 하다. 세 번째는 다문화를 환영하고 다양한 종교의 다름에 대해서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다문화에 대한 배움을 통해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이며, 본연의 존중될 가치가 있음을 함께 배워가 는 자세이다.
랑그미드의 이론 가운데 ‘환대’ 선교의 가장 핵심은 마지막 곧 ‘식탁으로의 초대’와 환대하는 가 운데 ‘기대치 못했던 하나님의 임재 경험’(Unexpected Divine Presence)”이다.38 즉 섬김의 자리에서
36 선교적 교회와 관련된 글들은 다음의 논문들을 참조하라. 이후천, “한국에서 선교적 교회의 사례와 그 기준지표에 대한 고찰,” 「선교신학」 제34집
(2013): 141-165. 한국일, “선교적 교회의 실천적 모델과 원리: 한국교회 현장으로부터 배우는 선교적 교회” 「선교신학」 제36집 (2014): 355-401.
- 랑그미드가 원문에 제시한 실천 과제들의 모델은 다음과 같다. Defense of human rights, 2. Political action, 3. Settlement assistance, 4. Sanctuary, 5. Being welcoming multicultural churches, 6. Inter-cultural learning, 7. Interfaith dialogue, 8. Awareness of the ethics of welcome, 9. Meals and personal friendship, and 10. Openness to a transforming divine presence. Ross Langmead, “Refugees as Guests and Hosts: Towards a표eology of Mission among Refugees and Asylum Seekers,” Exchange 43, no. 1 (March 13, 2014): 29–47.
- Langmead,“Refugees as Guests and Hosts,” 45-46. 필자는 호주 선교신학자인 Darren Cronshaw와 함께 랑그미드의 환대 선교 모델에 기반해서
2017년에 필드 조사 연구를 통해 멜번과 시드니 지역의 이민교회들의 사례 연구를 통해서 메타포로서 ‘환대’가 선교적 교회의 차원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우리의 환대를 받은 자가 타인이 아닌 곧 우리 주 예수이셨음에 대한 교회의 고백으로 이러한 신의 임재 경험은 ‘환대’에 대한 본질이 우리의 환대가 아닌 그리스도의 임재에서 시작되며, 또한 환대하 시는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의 선교에서 시작된다는 ‘미시오 데이’를 보여준다. 교회는 환대자로서 정
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자신들이 초청자(Host)의 입장에서만 서야 한다는 우월적 입장을 갖기 쉽다. 그러나 이를 내려놓고 내부적으로 반성적 윤리의식을 통해 우리가 섬기는 이들이 곧 그리스도를 모
심의 자리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환대’의 자리는 이미 하나님의 초청에서 시작됨을 기억하는 것이 환대 선교의 핵심이다.
한국 내 필요한 환대의 모습 중에는 랑그미드에 의해 제시된 여섯 번째 과제 곧 다문화에 대한 이해와 배움과 일곱 번째로 언급된 다종교간 대화의 활성화라고 생각된다. 국적별로 종교 및 세계관 유형을 나누어 살펴보면, 이슬람권, 불교권, 힌두교권, 공산권 등으로 크게 나뉠 수 있는데 국내 결혼 비자를 통한 체류자 가운데 10% 가량이 무슬림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우리가 만나는 이주민의 종교 상황에 맞추어 사역자들도 준비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국내 무슬림들 대부분이 아시아권을 중 심으로 형성되어 우즈베키스탄(79078), 인도네시아(45533), 카자스흐탄(41904), 방글라데시(21763), 파키스탄(14314), 말레이시아(6113)에서 들어온 무슬림이기 때문에39 그들의 의식주 생활과 신앙체 계 및 가족에 대한 사고관 및 언어별 특수성을 고려해 본다면 그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세계관과 함 께 나라별 문화의 차이점들도 나타난다.
국내 이주민 사역에 있어서 선교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사역 가운데 전도, 제자 양육 및 훈련이란 과정은 국내 이주민 사역자들이 단지 성경해석과 기독교에 대한 교리적 지식을 전 달할 뿐 아니라 타종교에서 회심한 이들을 제자훈련하고 타문화권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준비를 잘 갖추고 있어야 하며 상호문화에 접근하는데 있어서 성경지식과 더불어 타문화권 사역의 역량을 잘 함양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타종교에서 회심하여 지역 교회 공동체에 정착하게 되었을 때, 회심자를 양육하여 제자로 훈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무슬림들이 기독교로 회심을 하여 신앙이 성 장하기까지 겪게 되는 여러 장애물이 있는데 인내심과 그들을 향한 지속적인 멘토링을 통해 영적인 관계적인 회심을 지지해야 한다. 돈 리틀(Don Little)40에 의하면 무슬림 회심자들이 겪는 신앙성장 의 방해물은 열 세가지로 나뉜다.
함의를 지니는지 발표한 적이 있다.
39 2023년 1월 국내 체류외국인 현황 (2023년 5월 25일 접속) https://www.immigration.go.kr/bbs/immigration/227/450853/download.do
40 돈 리틀(Don Little)은 개척자들을 위한 이슬람 선교사로 작가, 편집자, 컨설턴트, 제자 훈련가로 30년 이상의 경력을 갖고 북아프리카 10년을 포함, 무슬림들과 기독교인들이 대화를 열도록 2014년에 릴리아스 트로터 센터(Lilias Trotter Center)를 공동 설립했고 여러 곳에서 무슬림 회심자 강연을 했다. 18가지 장애물을 요약하면 가족과 지역 공동체로부터의 압력 및 배타적 거부반응, 온갖 종류의 고통과 핍박, 회심자 그룹 내 신뢰감과 헌신의 부족, 무슬림 회심자 가족 지탱의 어려움, 자녀양육과 교육 등 기독교 생활 적응의 어려움, 이슬람 영향 아래 사탄의 묶임과 주술 및 저주적 묶임, 증오와 분노, 성적 탐욕 과 함께 회심자들을 배척하는 지역교회 기독교인들, 문해력이 떨어지거나 낮아 제자훈련에 서 겪는 어려움과 이전의 무슬림 이데올로기, 신학 및 전통에서 기독교 가치와 세계관으로 새롭게 재교육되는 과정의 충돌 등이 있다. 회심자 남성들이 겪는 성적인 문제들과 욕망들은 신앙성장에 방해물이다.
또한 공산권에서 온 사례도 생각해볼 수 있다. 국내 들어와 있는 많은 국내 체류 외국인들 216만
가운데 유학생을 비롯하여 노동자로 중국 국적의 사람들이 2023년 통계로 한국계중국인 598,932 명과 중국인 245,471명으로 38%가량 들어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국내 체류 외국인들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한다고 하지만 정작 선교의 대상인 중국인 유학생 들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연구가 많지 않다. 공산권을 생각하면 베트남을 비롯해 여전히 군부 정권이 나 정부의 압력 아래 종교적 박해가 심한 선교권 현지인들이 한국에 들어오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전도와 제자훈련의 기회를 효율성 없이 놓치고 있다. 따라서 효과적인 사역을 위해서 그들이 가진 언 어는 물론이고, 한국과 다른 문화와 생활양식 및 외면 행동양식과 습관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살피 고 브릿지 사역을 놓는 것이 핵심이다.41
이주민과 유학생들을 공동체로 받아들이기 위해 그들의 신앙체계와 상이한 기독교의 세계관에 대해 성경적 원리를 적용하고, 회심자들을 교회 공동체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려면 준비된 공동체, 환대하는 소그룹과 셀 공동체, 다문화적 교회 환경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문화 가정이나 국 내 체류 외국인들을 물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여 교회에 데려오거나 전도해오더라도 결국 타문화 권에서 온 회심자들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서로의 차이점을 배워가고 존중하는 가운데 교회가 신앙 공동체로서 그들에게 소속감과 정체성을 줄 수 있을 때 이들의 지역사회 커뮤니티도 성 장하고, 국내의 많은 중소형 지역 교회들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
한국인이 되도록 시민권을 얻고, 한국어 능력시험(TOPIK)을 붙도록 교회가 돕는 것만큼, 하나 님 나라의 시민으로, 그리스도인의 새 정체성을 얻는 기쁨과 특권을 누리도록 균형 있는 사역을 하 는 것이 필요하다. 기존에 공산권에서 이슬람권에서 핍박받고 열등감과 수치심 가운데 기독교인의 정체성으로 살아갔다면, 여전히 정체성이 흔들리고 기존 가치관에서의 자만감으로 자신을 바라보 려고 하는 유혹 속에 교회 오기를 거부하거나 새 정체성을 부인할 수도 있다. 따라서 국내 선교에 있 어서 사역자들은 이주민들이 겪고 있는 관계 속에 작동하는 공동체에 대한 거부감 및 방어기제를 파악하고 그들의 정체성 혼란과 정착의 과정을 길게 보고 도와야 한다. 예수를 제대로 믿고 영적인 성장을 한다는 것은 한국 사람처럼 되거나 한국에 적응하는 것과는 또 다른 교회의 우선적 과제이 다. 영적 성장을 저해하는 환경과 습관에 대해 함께 기도하고 성찰하면서 과거 습관 및 잘못된 정체 성을 내려놓고, 종교 문화적 속박에서 자유함을 얻도록 교회는 지속적인 영적 동반자로 함께 서야함 을 깨닫게 된다.
- V. 지역 교회와 선교 기관의 다문화 사역을 위한 전문가적 역량 키우기
필자는 이주민과 난민에대한 바른 관점과 선교적 태도는 실천적 과제와 전략 세우기로 연결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한국 땅의 이주민들과 더불어 이웃으로 살아가면서 이주민 선교사를 키워내
41 김종구, 재한 중국인 유학생의 세계관에관한 연구 「개혁논총」 2016, vol.37, pp. 93-129.
는 훈련은 환대 받았던 방문자(Guest)가 그 은혜를 기억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환대(Hospitality
of God)를 다시 베푸는 것이다. 한국 교회가 6.25. 이후 UNKRA(유엔한국재건단)를 기억하고 마
을마다 필요한 이주민 사역을 통해 ‘선교적 교회’를 세우는 것이 국내 선교의 핵심과제이다. 또한 ‘이 주와 난민’에 대한 지속적인 신학적 토대 세우기 작업은 ‘왜’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해나가야 할 갈 것인가에 구체적인 방안으로 논의될 수 있다.
먼저, 리더십 차원의 연계와 네트워크가 세워져 교회들의 선교 정책 및 선교 단체의 우선적 사역
방향으로 정해지는 것이 전국적으로 필요하다. 이주민 선교를 전문으로 하는 선교사나 목회자들 뿐 아니라 한국 사회 목회와 직업 현장이 타문화권 선교 현장임을 인식하고 사역을 할 수 있는 전문인 들이 지역교회에서 훈련되어 이주민과 함께 선교적 교회를 이룰 셀과 목장, 구역들이 만들어져야 하 고, 분리 개척 및 후원 과정들도 다양하게 이루어 져야 할 것이다.
흔히 우리는 지역의 존경받는 목회자라고 할 때 말씀 중심의 신앙을 강조하던 장로교의 칼뱅과 같은 종교개혁자들을 떠올린다. 이주민이나 종교 난민이란 연계성을 갖고 교회 역사를 살펴보게 되 면 흔히 알고 있던 지역 목회자였던 칼뱅(Jean Calvin)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칼뱅 을 비롯하여 당시 많은 프로테스탄티즘의 종교 개혁가들은 박해를 피해서 이웃의 인접하는 국가로 피신을 가야했던 종교 난민의 신세였고, 당대 개혁가들의 뛰어난 사상과 업적은 교회와 사회에 대한 설교와 연구들이 탄생했던 삶의 자리(Sitz im Leben)니 상황(Context)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42 지역 목회자가 누구를 목회하는가에 대한 선택은 교회의 회중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소명 가운데 결정된다.
칼뱅 또한 프랑스를 떠돌다가, 스트라스부르로 가기 위해 제네바를 통과하면서 그 과정에서 파 렐(Guillaume Farel)을 만나서 1차로 개혁을 시도하던 때, 프랑스인으로서 제네바에서 실시하는 개
혁은 ‘타인의 것’ 혹은 ‘외국 목회자’의 사역으로 인식되어 배타성 때문에 이주 목회자로서 그의 사 역은 실패하게 되었다. 스트라스부르에서 도피처를 삼고 프랑스인 난민 목회를 하면서 다시 부처 (Martin Bucer)와 협력하는 가운데 제네바에 2차로 돌아가서 개혁을 실시할 때 칼뱅에대한 반대파 와 외국인 목회자로서 그의 입지 때문에 불안한 고충과 어려움도 여전히 지속되었다.43 마치 오늘날 한국 사회 내에 이주민 목회자로, 다문화 예배 설교자로 살아가는 사역자들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 는 장면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한국 선교사를 보내기에 급급했다면 이제는 현지 사역자들이 한국으로 파송되
42 안교성은 그의 논문에서 칼뱅 개인의 난민적 지위와 삶에 대해, 칼뱅의 종교난민 상태에서 진행된 목회의 성격과 난민 사역에 있어서 현대에 줄 도전과 교훈에 대해서 “칼뱅의 난민사역과 한국교회에 대한 함의,” 「한국교회사학회지」, 2016. Vol. 45. 155-181.
43 이에 대한 구체적인 예시는 안교성이 박경수,『한국교회를 위한 칼뱅의 유산』(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4), 159. 『교회의 신학자 칼뱅』(서울: 대한기독 교서회, 2009), 18, 34글을 인용하여 “반대파들은 자기 집 개 이름을 칼뱅이라고 부르거나, 칼뱅의 이름을 줄여 ‘가인(Cain)’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라 인용 했고 칼뱅이 제네바의 독재자가 아니고 1541-1555년까지 14년동안 “폭풍이 휘몰아치는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고 박경수가 평가한 부분을 인용했다. 칼빈과 난민에대한 저서는 Heiko A. Oberman John Calvin and 표e Reformation of the Refugees Librairie Droz를 참고할 수 있다.
어서 지역 교회의 다문화 예배를 돕고, 자신의 모국어로 한국에 살고 있는 디아스포라들을 돌보고,
양육할 수 있도록 한국인 선교사와 사역자 양성에 집중했던 신학교들의 입학 과정 문턱도 낮추어야 하고, 총회와 노회 차원에서 외국인 사역자들의 신대원 (M.Div) 수료를 한국인 목회자 후보생들에 게 적용하듯 평등하게 적용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 늘어나는 국내 체류 외국인들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아시아계통의 유학생들이 어떤 동기를 통해 들어오고 있고, 그들을 파송한 교회 와 본국 지역교회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실례로 우리는 베트남 유학생들을 돌보는 국내 교회와 베 트남 현지에 있는 베트남 현지 교단들과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들 간의 실질적인 연계를 통해 장기 선 교 및 재파송 및 정착 목회가 활발히 지속되고 있는 가 돌아볼 일이다.44
국내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짧게는 2-3년 길게는 10년 이상의 장기체류자로 영주권 자격이 부 여될 때 어떻게 그들과 파트너십을 이룰 것인지 이주민들의 삶의 여정에서 지역교회들은 동반자적
선교의 방향을 위해 로드맵을 길게 그려야 할 필요가 있다. 어디에서의 ‘속지주의’가 아닌 누구와 함
께 라는 ‘속인주의’를 중심으로 한 디아스포라 목회현장의 패러다임이 이주민 선교 안에 깊숙이 자 리 잡게 될 때 우리는 국내와 해외를 구분하지 않고, 연속성 있는 선교, 지속 가능한(sustainable) 선 교를 해나갈 수 있다.
무엇보다 국내 통합 정책과 다문화 교육방향을 다문화 가정의 한국 사회에 대한 흡수 및 적응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보다 한국 자국민들이 다문화를 이해하고 다문화적 사고 역량을 기를 수 있는 쌍방향식의 사고와 다문화 교육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국내 한국인 사역에 집중하는 교회들과 회중 이 외국인이나 타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 우선이다. 첫 번째 이주자들이 적응하는 문제뿐 아니라 이주자들을 받아들이는 한국사회와 한국문화를 형성해 가는 한국 교회가 외국인 범죄나 일 자리 이탈 등 부적응 문제의 원인에 대한 책임도 함께 지는 것이다. 한국인을 중심으로 하는 주류사 회의 편견이 극복되도록 다문화에 대한 교육에서 다문화적 감수성과 의사소통 능력을 함양하도록 교회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다문화의 중요성과 평등의 가치를 교육하고 실시할 뿐 아니라 비효율적 이고 일괄되지 못한 정책 및 교육 실행 문제는 지역 사회 곳곳에 뻗어있는 교회와 국내 선교 사역자 들이 십시일반 담당할 수 있어야 한다.
국내에서 결혼 이주 여성문제를 위한 여성 리더십 훈련과 양성을 통해 여성 사역자, 여성목회자 들을 현장 상담 및 교육가로서 역량과 전문성이 있는 지도자로 세워주고, 여성들을 위한 사역 현장 의 공간 확보가 되어야 한다. 또한 이주민 선교훈련과정은 타문화권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평신도들 에게 부족하지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주민 사역에 있어서 심지어 이주민 그룹 내에도 비자 및 취업 상태, 한국 배우자나 가족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서 계급이 나뉘어져 있어 이주민들 간
44 베트남 남부에는 베트남 종교성의 집회허가를 받은 디아스포라 한인교회가 2023년 현재 30개가 있다. 이들은 베트남한인교회협의회로 활동하며 베 트남 종교성에 공동 대응하고, 현지 교단과 협력관계를 이루며 선교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물론 중부 다낭과 북부 하노이와 같은 큰 도시에서도 디아스포라 한인교회가 여러 가지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의 갈등과 서로에 대한 불신과 오해가 조장되기 쉽다. 난민 불인정 심사를 받거나 여전히 난민 인정
을 기다리고 있는 난민신청자(G1)에게 필요한 장단기적 사역도 이주민 사역만큼 우선시해야 하고, 유학생 사역은 난민 사역과 다른 측면이 있다. 같은 종교권이라도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들 간 의 화해 및 갈등 해결도 중요한 과제이며, 회심자들 내부의 갈등 상황을 해결하는 것 및 국내 들어온 다국적 식구들을 이웃으로 대하기 위한 공동체의 선교적 접근과 신학교육의 장이 평신도들에게 마 련되는 것도 급한 과제이다.
또한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평신도들이 하나님의 선교적 백성이 되어서 일터에서 이주민 선교 사들로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목회자들은 이주민 훈련만큼 이주민 멘토들을 위한 시간 분배 와 우선순위도 체크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는 정보화의 시대로 스마트폰과 플랫폼으로 연결되 고, 서로의 연락처와 제자훈련 교재들이 앱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다국어 통역기와 번역 앱이 외국어를 하나도 몰라도 평신도들이 담대하게 이태원에서 만나는 외국인들에게 전도할 수 있도록 새로운 도구가 되어주고 있다. 사역에 있어서 협력과 네트워크를 통해 전문성을 갖고 분업 하는 방향으로 동반자적 선교를 하는 시대가 열렸다.
각 지역 교회와 선교단체는 이주민 사역에 대해서 연계성을 갖고 함께 미흡했던 점과 개선점을 연구하고 이주민의 필요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지역별 이주민 현황과 필요를 이주민 사역 기 관과 교회들을 통해 함께 연구를 할 수 있는 전문 사역자들 양성을 위해 전략적으로 이주민 사역을 접근해 볼 수 있다. 다문화 가정 사역을 위한 전문 사역자 양성은 종교나 언어 문화권별로 외국인들 에 맞춰 그들의 성별에 대한 수용도 및 문화에 대한 민감도를 인식하고 사역도 유형별로 분류하여 멘토링을 제공할 수 있고, 이러한 교육과 이주민훈련 시스템이 진행됨을 말한다. 다문화 가족에 대 한 상담 경험과 이주노동자 자녀교육 경험, 이주민체험 및 언어교육 경험을 기반으로 사역의 필요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사역자가 원하는 사역이 아니라’ 현지에 필요한 유형과 우선순위대로 사역자 양 육을 하는 것이 더욱 전략적이란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전문 사역자, 선교부 목사나 국내 선교 담당 기관 사역자들 뿐 아니라 현재 이웃 으로 들어온 이주민들을 사역자들로 양성해야 하며, 이들을 리더십으로 세워 함께 사역을 하기 위 해 적극적으로 양성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섬김과 봉사를 넘어서 다문화 가족의 아이들과 부 모들이 오직 돈에만 매여 가정생활의 어려움을 겪는 것을 긍휼히 여기는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예배의 자리와 선교 훈련에 동참하도록 초청할 필요가 있다. 디아스포라 선교사로 파송될 수 있도록 공장이나 일터에서, 그들이 궁극적으로 돌아가게 될 자신의 고국이나 새로운 정착지에서도 바른 신 앙적 정체성을 갖도록 제자훈련을 우선에 두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주민 사역을 하다보면 급한 일로 보이지 않지만 가장 우선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인이면 한국어도 잘하고 한국 사회에 대한 전문가적 지식이 있을 것이라 흔히 들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내국인(시민권을 가진)이 바라본 한국과 국내 거주하고 있는 외
국인이 바라보는 한국은 천지 차이다. 한국의 취업 정보, 한국의 의료 및 복지 시설, 관공서 사용 및
운영되는 시스템에 대한 이해, 한국 교육 제도에 대한 이해 등은 새로운 사회에 진입하는 이주민들 에게 자세히 안내되고 반복적으로 생활 속에서 함께 방문하면서 몸에 익혀져야 한다. 그중에서도 이 주민 사역자들과의 협력과 그들에 대한 가이드와 세심한 배려가 우선적이다. 말레이시아와 터키 및 러시아로 간 해외 선교사가 비자를 발급받고 아이 학교를 보내고, 치과와 같은 의료보험이 어려우면, 선교 현장의 어려움으로 여기고 시니어 선교사들과 동료들이 돕도록 선교사 협의체가 있기 마련이 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 들어와서 외국인 사역자로 살아가고 있는 이주민 목사님에게 예상되는 어려 움이 있는데 현실적 지원 및 동반자적 협력 사역 시스템이 없는 것은 국내선교에 대한 이해의 부족 에서 나온다.
해외 선교는 팔을 뻗치나 국내선교는 ‘내 집 안마당’이니 등불 밑이 어둡다고 정작 손을 필요한 때에 내밀지 않는 과오를 범하는 것이다. 필자는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도 알게 하라’는 양손 전 략(ambidextrous strategy)을 말하고 싶다. 이주민 선교의 시대는 하나님이 주신 오대양 육대주를 양 손과 양팔로 안고 사역하는 균형이 더욱 필요하다. 오른편으로는 푸쉬(push)-보내는 원심적 사역을 하고, 왼편으로는 풀(pull)로 한국에 들어온 이들을 끌어안고 구심적 사역을 하는 ‘두 손이 다 움직 이는’ 선교 사역을 지역에서 실천해 나가야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마지막으로 선교 현장에 서 하는 이주민 사역자 훈련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T.E.E.(표eological Education by Extension) 관
점에서 보았을 때 이주민을 섬기기 위해 필요한 훈련 프로그램은 현장에 있는 사역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신학교육의 연장 선상에서 할 수 있는 다문화 교육과 선교 훈련이 많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각 지역과 시군구에서 일하고 있는 선교단체 및 다문화 현장 경험가들은 신학 교육 기관과 함께 하 여 한 학기에 수백 명씩 쏟아지는 젊은 목회자, 선교사 지망생들을 국내 선교 현장에 데려가기 위해 서 선교 현장실습을 통해 연결할 수 있는 방안들을 신학교와 선교 현장, 지역 사회와 선교 기관들이 함께 힘을 모아서 마련하고 해외 선교사들과도 긴밀하게 연계되어서 활동할 것을 제안한다.
사실 신학교육 현장에 있는 사역자로서 진단하기에는 다문화 사역의 주역은 MZ세대 이다. 그 러나 다음 세대는 윗세대 사역의 과오에 대해 사과와 해명을 요구하며 기존의 교회 구성원들과 분 리 및 단절되어 있는 모습이 많이 발견된다. 따라서 함께 다문화 사회, 이주민 현장 목회를 개척해 가 려면 4세부터 14세까지, 새로운 청년세대와의 연결이 필요한 실정이다. 한국교회와 선교의 회복은 50-60대 리더십이 당위성을 외쳐서 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함께 하려고 마음을 먹어야 다문 화 교회의 청사진도 그려나갈 수 있다. 그래서 다문화 세대 교육을 받고 자라나는 당찬 세대와의 연 결고리를 일부러라도 찾아서 함께 나아가야 한다.
다문화 사역자들이 브릿지 사역을 통해 한국인을 중심으로 단일 문화권에 익숙하던 옛 세대 지 도자들과 협력하여 새롭게 다문화 예배와 성경공부의 문을 열고, 다문화 교육의 장으로서 지역 교 회 공간을 활용하도록 교회들이 환대의 자세를 한 걸음씩 실천하자. 다음 세대와 평신도들, 이주민
들과 적극 협력하기 위해 우리부터 성육신의 자세를 갖고 익숙한 사역의 옷을 벗어 던지자. 여전히
이주민 곧 국내 체류자들과 유학생, 한국 국적 취득자들에 대한 선교가 전국 어디서나 활발히 일어 나지 못하는 것은 다문화 사회 길목에 접어든 한국 교회들이 성장의 돌파구와 질적 성숙을 위한 우 선 과제인 이 사역에 대해 핑계를 대며 미루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실천 영역(Praxis)과 상 황(Context)에대한 분석 없이 겉돌면 개선되기 어렵다. 이주민과 난민, 자국민 사이에 리미널리티적 정체성으로 살아갔던 예수 그리스도를 실천하고 현장의 내용을 신학적 이론(표eory)에 비춰가며 지 역교회와 선교단체, 지역센터들을 통해 활발히 실현하려면 이론과 실천이 함께 논의되고 제안되어 협력하는 수밖에 없다. 국가선교전략회의(NCOWE)와 같은 구체적 담론의 장에서 혜안들이 만들 어져 갈 때 우리는 온 땅에 온전한 복음을 전하자는 시대적 선교적 구호와 사명을 십분 감당할 수 있 을 것이다.
- VI. 나가며: 한국 교회가 기억해야 할 ‘디아스포라’ 정체성의 자리에서
앞서 언급한 실천적 대안과 함께 한국 교회, 우리가 기억해야 할 환대받았던 바로 그 자리를 다 시 되짚으며 마치려 한다. 사전적인 의미의 난민을 넘어서 우리의 소속감에 대한 신앙적 정체감 곧 ‘디아스포라 정체감’은 우리를 시민과 난민, 외국인과 자국민의 구별에서 자유케 한다. 우리 그리스 도인들은 하나님의 약속에서는 본래 언약 밖의 백성이며, 이방인들로서 다 접붙임을 받은 ‘이방인 (난민)이요, 어둠 가운데 죄 안에서 살던 구원의 소식을 듣지 못했던 나그네들’(벧전 2:9, 론11:13- 24)이다. ‘이주와 난민’선교에 있어서 우리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비전(Kingdom vision-Visio Dei)
과 그의 나라 법을 우선적으로 따르고자 자신을 난민과 이주자의 자리에 그들 사이에 함께 두어야 한다. 체휼의 선교(Compassio Dei) 자리에서 상호연대가 있는 선교 곧 ‘타자 안에서 자아를 발견하 고,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는’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동참하도록 그리스도를 본받도록(Imago Christi) 이주민 사역자들은 선교적 소명과 부름을 받았다.
이는 한 국가와 사회의 시민권을 당연시 하고 행사하기 이전에 우리 가운데 임재 하신 그리스도 (Verbum Dei)를 따라 성육신적 삶으로의 부름이다. 한국 교회는 “환대하는 초청자로서” 이 시대의 민중인 난민들과 무슬림, 체류하는 외국 노동자들에게 “기꺼이 내 뜰을 내어주기”45를 실천할 뿐 아
니라, 게스트와 호스트 이분법을 넘어선 하나님나라 정체성을 가진 같은 이 땅의 이방인들이 ‘디아
스포라’로서 영적 정체성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의 자리를 찾도록 예수의 제자로서 이웃으로 동반자 로 서서 신앙적 정체성을 실현하는 여정을 함께 하고 있다.46
45 현한나, “신냉전 시대 중동 이슬람 갈등상황의 선교적 함의- 논찬,” 「2018 시드니 신학포럼: 중동 복음화-이슬람과 유대주의」 (2018년 7월), 68-73의 제목을 가져왔다.
46 필자는 2013-2014년 중동 지역요르단 (암만과 이르비드, 자타르 캠프지역), 레바논의 남쪽 두로 지역에서 방학기간 세 차례 방문을 통해 이라크 시리 아 난민을 도운 단기 사역 이후, 2016부터 2019년까지 Sydney Refugee International Team에 소속되어 시리아 가정 방문과 정착을 돕는 사역을 하였으며, 2017-2019년까지 Hope of Nations Arabic Church에서 시리아, 이라크 난민 아이들의 주일학교 사역자로서 남편과 함께 일하였다. 필자가 끝으로 2016년
우리는 ‘이주, 난민’ 선교신학을 논할 때, 타인과 우리(Host)의 구도에서 논하는 환대 선교의 방
안들과 종교권별로 필요한 제자훈련과 세계관에 대한 분석 및 다문화적 역량을 키우기의 구체적인 모습도 살펴보았다. 환대자 (Host)가 아닌 외국인(Others)으로 이방 땅에 섰던 많은 선교 경험자들, 비자발적 철수를 통해 이미 타문화권 선교 경험이 있는 국내 거주 선교사들 및 은퇴 선교사들 모두 가 하나님의 심장과 그분의 손과 발을 통해 한 몸으로 함께 연결되어 있다. 이 시대 가장 필요한 선
교 현장에서 무대의 연출자는 하나님이며, 등장인물은 ‘이주자, 난민, 혹은 소수자’ 및 하나님의 위로
(Compassio Dei)가 필요한 우리 모두이다.
우리는 이방인으로 무대에 등장할 혈통적 이스라엘, 언약 백성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나사렛 갈릴레아의 변방으로 시골뜨기 어부들을 찾아 주변부를 찾아 유대인의 경계를 넘으셨고, 사 마리아로 조연급들을 찾아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는 특권을 먼저 부여했다. 여전히 자신을 호스트 로 여기는 한국 교회도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게스트(Guest)로 서있는 자신을 곧 발견하고, 이주민 사역자들에 의해 ‘환대’받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환대의 자리는 주는 자와 받는 자가 아닌, 그리 스도와의 그 몸을 나누는 식탁의 교제(Eucharist) 장소임을 깨닫는 겸손과 비움의 신학적 자세가 필 요하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로 축복의 자리(Beautitude)47에 먼저 초청받은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바라기는 이주민 선교에 대한 신학적 담론이 ‘환대 선교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디아스포라’란 주제로 전국 지역교회 목회자들의 실천과 적용의 장에서 꽃을 많이 피우길 소망한다. 전쟁의 희생자 들, 종교 핍박을 피해 이 땅에 찾아온 난민들을 만나고 식사하는 자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잔을 함 께 나누도록 허락해주신 하나님을 대면하는 축복의 시간이다.48 환대는 베푸는 것이 아니라 환대 자 리의 가치를 아는 하나님 형상의 백성들이(Imago Dei), 같은 식탁에서 먹고 마심을 실천과 태도가 중요하다. 우리가 가진 공동의 정체성(Communal Identity)는 이 땅의 주소지나 시민권에 있지 않고, 영적 주소지(Spiritual PostCode)에 있다. 왜냐하면 모두가 하나님 나라와 그 종말론적 비전(곧 하늘 의 시민권)에 소망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그 내부에서 이집트(mitsrayim)를 끄집어내고 자신 안에 있는 좁고 닫힌 자민족 중심 사고들을 열어야만 넓은 가나안, 약속된 땅(새 예루살렘)을
이방인들과 함께 상속했던 것과 같이 새롭게 재발견되고 넓혀져야 하는 ‘이주와 난민’ 신학과 지역적 실천 및 연대의 과제는 21세기 우리 한국 교회와 국내 선교 기관들의 총체적 과제이며 두 팔 벌려 안 아야 할 우리들의 우선적 사명이라 본다.
부터 2019년까지 호주에서 난민이라 불리는 가족과 친구들과 보냈던 시간을 뒤로하면서 호주 한인 이민 교회들에 이들을 소개하며 당부했던 설교 내용은
‘내 친구를 부탁해’ 와 ‘누가 우리 이웃인가?’였다.
- “Blessed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Blessed are those who mourn, for they will be comforted.” (Mat 5:3-4) 가난한 자와 우는 자들에 대한 팔복의 내용을 원문 성경 인용했다.
- 이라크 기독교인들의 난민으로서 체험적 진술과 간증을 담은 책을 추천한다. Mindy Belz, 표ey Say We Are In:fdels: On the Run from ISIS with Persecuted Christians in the Middle East, (Illinois: Tyndale house,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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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이주민 선교의 역파송에 관한 사례 및 로드맵 연구 / 홍광표 목사 (새생명태국인교회)
목차
제 1장 서론
제 2장 국내 이주민 선교의 역파송(Reverse Mission)에 관한 성경적 고찰
2-1. 구약 성경에서의 역파송
2-2. 신약 성경에서의 역파송
제 3장 국내 이주민 선교의 역파송(Reverse Mission) 사례
3-1. 온누리 M센터(노규석목사)의 역파송 사례
3-2. 남섬공동체(유해근목사) 역파송 사례
3-3. 위디국제선교회(문창선목사)의 역파송 사례
3-4. 새생명태국인교회(홍광표목사)의 역파송 사례
제 4장 한국교회와 함께하는 국내 이주민 선교의 ‘교회 개척 로드맵’
제 5장 결론
제 1장 서론
현대 사회는 세계화로 인하여 참으로 많은 변화를 겪고 있으며, 여기에 따른 한국교회의 선교 사 역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특별히 COVID-19 팬데믹 상황은 지금까지의 우리가 감당해 온 선교를 재정비하게 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게 하고 있다. 또한 지난 2021년 3월 19일부터 26일까지 COVID-19 팬데믹 상황 속에서 한국 선교사들이 국내로 역이주하여 체류하고 있는 현황 에 대한 조사가 있었다. 아래 조사 내용은 파송 선교사 가운데 선교부와 선교단체로 분류하여 한국 에 와서 선교지로 가지 못하거나, 안식년을 신청하며 한국에 남아 있는 선교사 가정의 숫자를 요청 하여 수집한 내용이다.1
<표 1> 교단 선교부 소속 선교사의 국내 체류 현황2
| 번호 | 단체명 | 전체 선교사 (가정) | 국내 체류 선교사(가정 / Unit) | |
| 2020년 7월 | 2021년 3월 | |||
| 1 | 합신 | 210가정 | 37 | 20 |
| 2 | 대신 | 186가정 | 30 | 30 |
| 3 | 고신 | 257가정 | 67 | 33 |
| 4 | 예장 통합 | 807가정 | 13 | 120 |
| 5 | 합동 | 1,425가정 | 283 | 350 |
| 6 | 감리교 | 740가정 | 107 | 130 |
| 7 | 기독교 성결교 | 357가정 | 44 | 54 |
| 8 | 침례교 | 340가정 | 22 | 60 |
| 9 | 백석 | 310가정 | 150 | 100 |
| 10 | 기독교 하나님의 성회 | 200가정 | 70 | 30 |
| 총계 | 4,832가정 | 823 | 927 | |
여기에 선교단체 소속 선교사들과, 무소속 자비량 선교사들까지 고려한다면 본 조사의 내용보 다 훨씬 더 많은 선교사가 국내에 역이주하여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상당한 수의 선교사들은 다시 선교지로 나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하여서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반면 국내 이 주민 선교 현장은 여전히 많은 선교사가 요구된다.
이번 논문은 이러한 상황들을 단순히 COVID-19 팬데믹 차원에서 뿐만이 아니라 세계화에 따
른 이주민 팬데믹 차원에서 해석하고, 한국교회의 선교가 국내 이주민 선교의 ‘역파송 전략’으로 전 환하여 하나님의 선교 완성에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기를 도전하고자 한다. 물론 이 사역 전환은 지금까지 우리 한국교회가 감당해 온 전통적인 사역들을 부정하거나 평가하지 않을 것이며, 선교지 및 선교사 재배치 차원에서의 사역 전환으로 제안하고자 한다.
제 2장 이주민 선교와 역파송(Reverse Mission)에 관한 성경적 고찰
1 정용구, “2021년 코로나 관련 귀국 선교사 및 국내 체류 선교사 현황 조사”, 미래한국선교개발센터, 2021.
2 정용구, “2021년 코로나 관련 귀국 선교사 및 국내 체류 선교사 현황 조사”, (미래한국선교개발센터, 2021), 1.
2-1. 구약 성경에서의 이주민 선교와 역파송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복을 주시며 명령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고 다스리고 정복 하라<창 1:28 참조>’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인간의 물리적 지리적 이주는 창세 때로부터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이요, 받은 복을 누리는 것이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향한 부르심의 그 첫 발걸음으로 ‘이주’를 명령하신 다<창 12:1-3 참조>. 즉 하나님의 복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시험이 바로 ‘이주’였다. 아브라함이 순종하
여 ‘이주’하면 단순히 복을 받는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곧 ‘복’이 되어 천하 만민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복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비가 될 것이다. 바로 이 말씀 이 성경의 첫 번째 이주민 선교의 역파송에 관한 근거이다.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버지의 집 즉 갈
대아 우르를 떠나서 이주민이 되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본토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땅, 제3의 땅으로, 타문화 권으로 가야 하는 명령을 받은 것이다. 구약 성경에서의 역파송은 단순히 본토를 나와서 이주민이 되어서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고, 복이 되어 본토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약속의 땅, 제3의 땅, 즉 타문화 권으로 가는 것이다. 창세기 26장에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끊임 없는 ‘이주’를 경험하게 되고, 야곱은 도피성 이주를 하였고<창 31 참조>, 그리고 요셉은 타력에 의한 ‘이주’의 삶을 살았다<창 37 참조>. 창세기 37장에서 50장까지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2 장과 같이 ‘복’을 위한 ‘이주’를 계획하시고 실행하셨다.
출애굽기 2장에서는 모세가 스스로를 ‘게르’라고 소개하면서 ‘이주’를 경험하고 있는 나그네라고 하였으며,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이주’시키라는 명령을 받았다. 출애굽기 12장 에서는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의 땅, 가나안 입성을 위한 ‘이주’를 명령으로 받은 모 세에 의해 애굽을 떠나 ‘이주’를 시작하는 장면이 그려지고 있다. 이 외에 역사서를 보면 ‘이주’와 관 련하여 기생 라합과 룻과 다윗의 이야기가 나온다. 특별히 다윗의 끊임 없는 ‘이주’와 이스라엘의 포 로기에서 나타나는 ‘집단 이주’를 역사서와 선지서 그리고 시편은 세세하게 증거하고 있다. 그리고 이 ‘이주’에 대한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주의 역사라고 결론 내리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끊임없이 나그네에 대하여 언급하시면서 나그네 된 삶을 살게 하시는 하나님. 비록 그들이 지금 겪고 있는 ‘이주’가 죄에 대한 심판의 판결이든 아니면 복을 위한 시험이든, 타력에 의한 ‘이주’이든 어떤 모 양의 ‘이주’이든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실행되며, ‘이주’ 그것은 창세기 1장 28절의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내리시는 최초의 복이자 명령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며, 하나님의 성취이다.
이사야서 66장 18절에서 21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아브라함의 언약이 이스라엘 백성을 넘어서 하 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이방 백성에게 이르게 된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장소로 ‘이 주’시키시고 그들 가운데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이시고, 그 영광을 본 자들을 다시 세계 열방으로 보 내셔서, 그들로 하나님의 영광을 전파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서 택하여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신다고 말씀하신다. 구약시대에 이방 백성을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시겠다는 이 파격
적인 말씀은 ‘이주민 선교의 역파송 선교 신학의 핵심’이라고 할 것이다.
2-2. 신약 성경에서의 이주민 선교와 역파송
구약에서 ‘이주’를 명령하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스스로 ‘이주’하셨다. 성육신 사건이 바로 그것 이다. 예수님께서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취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 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취하셔서 완전한 인간이 되셨다<빌 2:6-7 참조>. 갓 태어난 완전한 인간이 되 신 예수님 즉 아기 예수는 태어나자마자 애굽으로 이주를 경험해야 했다 <마 2:13-15 참조>. 성육신 하신 예수님은 죄인 된 인간의 언어를 취하셨고, 인간의 옷을 입고, 인간의 음식을 먹으시고, 인간의 모든 문화를 취하셨다. 그리고 유대인으로 오셨지만, 유대인들이 멸시하던 이방인들을 찾아가셨고, 이방인들과 함께 먹으며, 함께 마시며, 함께 교제하셨다.
이방인들을 유대 사회나 문화로 끌어당기지 않으셨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다민족 다문화 사회에서의 사역이었다.
초대 교회 공동체는 다민족 다문화 사회 속에서 시작되었으며, 사도행전 2장에서는 15개국 이상 의 서로 다른 언어들이 오순절 성령 강림을 체험하였고, 베드로의 설교 후 전도자로 나선 사람들은 서로 다른 문화와 사회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사도행전 8장에서는 이방인 고넬료의 회심 사 건이 기록되어 있고, 사도행전 11장에서는 스데반 사건으로 흩어진 이주자들에 의해 안디옥 교회가 세워진다. 사도행전 13장에서 안디옥교회의 선교사 파송이 기록이 되어 있다. 그런데 이 파송은 이 주민 선교의 타문화권으로의 역파송을 증거하고 있다. 첫 번째 선교사 파송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서로 다른 문화의 사람들 즉 이주민이 파송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바나바는 레위인이었고, 니 게르라고 불리는 시므온은 검은색 피부의 사람이었고, 루기오는 유대인이었으며, 마나엔은 분봉 왕 헤롯 안티파스의 유모의 소생이었고,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소유한 유대인으로서 다문화 이주민이 었다.3 안디옥교회 입장에서는 이들 이주민들을 타문화권 선교사로 역파송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바울은 대표적인 역파송 타문화권 선교사이며, 그는 스스로도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라고 소개하 고 있다.4 사도행전 18장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국제결혼 부부였으며, 사도행전 20장 4절에 바울과 함께 전도 여행에 참여한 사람들의 구성은 이주민 연합이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구약과 신약성경 안에서 하나님의 선교를 살펴본 결과, ‘이주’를 명령하신 하나 님 그리고 몸소 ‘이주’하신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구약과 신약에서의 선교는 ‘이주’하거나 ‘이주’를
3 황종하. “한국교회의 다문화 목회 유형 연구” 박사학위논문; 서울: 개신대학원 대학교, 2020.
4 로마서 15장 14절~21절, 갈라디아서 2장 8절
당하여 선교하는 것과 ‘이주’한 사람들을 선교하여 ‘이주’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성경적 이주민 선
교의 역파송은 본토로 돌려보내는 것을 넘어서, 타문화권으로의 파송이었다. 이제 국내 이주민 선교 에서의 역파송이 얼마나 성경적 역파송을 실천하고 있는가를 살펴볼 것이다.
제 3장 국내 이주민 선교의 역파송(Reverse Mission5) 사례
3-1. 온누리 M센터(노규석목사)의 역파송 사례
故 하용조목사가 1985년에 개척한 온누리교회는 1988년에 영어 예배로 이주민 선교의 문을 열 었다.6 그리고 1993년에 이주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긍휼 사역 중심의 이주민 선교를 시작하였으 며, 2003년에 러시아 예배, 2004년에 몽골어 예배, 2005년에 스리랑카 예배와 필리핀 예배, 그리고 방글라데시 예배를 개척하였고, 2005년 12월에 안산시에 온누리 M센터를 세우고 본격적인 이주민 선교를 시작하였다.
온누리 M센터에서 역파송된 국제 이주민 사역자들은 크게 두 부류가 있다. 첫 번째 부류는 외 국인 근로자 출신으로 한국에 왔다가 온누리 M센터를 통해 복음을 듣고 전도되어 신학 과정과 목 회 훈련을 받고 고국으로 역파송된 부류, 그리고 두 번째 부류는 해외 현지 선교사들의 추천으로 한 국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동안 온누리 M센터에서 목회 훈련을 받고 온누리교회의 선교사로 훈련되 어 고국으로 파송 받는 부류이다. 그런데 그중에서 매우 특별한 케이스로 현재 호주 멜버른에서 성 도 1천3백 명이 모이는 빅토리아친 미얀마교회를 섬기고 있는 리안 목사를 뽑는다. 교사였던 리안목 사는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군부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인도에 망명했다 그리고 1994년 한국 에 왔다. 서울 근교 공장에서 일을 하던 리안목사는 온누리 M센터를 통해서 예수그리스도를 영접 하였다. 그 후 1997년 한국을 떠나 인도에서 생활하던 리목안사는 2000년 호주로 향했고, 호주에 미 얀마 이주근로자들을 섬기며 그들과 가정교회를 시작한 후 성도들의 권유로 정식으로 신학을 공부 하고 2006년에 비로소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리고 리안목사의 섬김이 알려지면서 그의 빅토리아친 교회는 급속도록 성장하여 지금은 성도 1천3백여 명의 출석하는 큰 교회가 되었다. 현재 미얀마 복 음화를 위해서 8명의 선교사를 파송해서 6개 지역을 섬기고 있으며, 미얀마 신학생 18명도 후원하 고 있다.7
온누리 M센터는 지금까지 20여 년간 1만여 명 이상의 외국인들이 복음을 듣고 거쳐 갔는데 그
5 Reverse Mission은 사전적 의미로 ‘유럽 및 서양에서 기독교 복음을 전하는 비서구 출신 선교사들의 활동’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서구 출 신 선교사들의 활동’이라는 것이다.
6 이재훈 외, “대형교회의 선교책무: 온누리교회”, 스콧 쑤마 외 편, 『대형교회이 선교책무』 (서울: 두란노, 2016)
7 김영선, ‘25년 만에 온누리교회 방문한 리안 목사의 간증’ (온누리 신문 제 1279호, 2020)
들 중 25개국 550여 명이 세례를 받았고, 28명이 선교사가 되어 13개국으로 역파송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많은 이주근로자 또는 한국에 유학 온 신학생들이 리안목사와 마찬가지로 본국 에 교회를 세웠으며, 2017년에는 몽골 이주민들로만 구성된 아웃리치팀을 유럽으로 보내기도 하였 다. 온누리 M센터의 역파송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며, 매우 전략적이고 많은 열매를 맺고 있다. 차 후 타문화권으로의 역파송도 매우 기대 된다.8
3-2. 나섬공동체(유해근목사) 역파송 사례
1992년부터 구로공단에서 이주민 선교를 시작한 유해근목사는 1997년에 지금의 나섬교회를 설 립하였다. 지금까지 나섬공동체는 4개국에 6명의 선교사를 역파송하였다.
첫 번째 파송은 1996년에 몽골에서 온 이주근로자 보르마목사이다. 그는 서울외국인근로자 선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2008년에 장로회신학대학교 M.div를 졸업한 후 2009년에 안수를 받았다. 그 후 역파송 되어 몽골 울란바토르 복된 교회 담임목사로 빈민촌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두 번째로는 이란의 푸만시에서 태어나 군인이 되었던 이호잣목사이다. 1993년에 9월에 이주근 로자로 한국에 온 이호잣목사는 남섬외국인선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종교 난민 1호가 되어 한국 국 적을 취득하였다. 그는 주경야독으로 서울 장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7년에 걸쳐 졸업하고 2013년 10월에 무학교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 후 2014년에 한국인 사모와 두 자녀를 데리고 터키로 가서 나섬페르시안교회를 개척하여 터키의 이란인 난민사역을 하고 있다.
세 번째로 나섬 공동체의 베트남권 예배를 총괄하고 있던 응우옌 티투하목사이다. 그는 서울장 신대 신학대학원을 수학하고 예수교 장로회 통합에서 총회 목사고시를 통과하여 목사가 되었다. 나 섬 공동체는 2018년 5월 응우옌 티투하 목사를 베트남 다낭으로 역파송하였고 현재는 다낭 선교센 터 사역을 하고 있다.
네 번째로는 인도 ‘브라만’출신의 힌두교도 였던 판카즈 카필라목사이다. 그는 2000년 20세의 나이로 인도에서 대형 사고를 치고 감옥에 가야할 상황이었지만 이에 도피성 출국으로 2002년에 이 주근로자로 한국에 왔다가 ‘나섬 공동체’ 대표인 유해근목사를 만나 개종을 하고, 지금의 아내인 이 혜정 선교사를 만나서 2005년 10월 1일에 결혼을 하고, 장신대에서 학부 4년, 신대원 3년 과정을 총 9년에 거처 마친 후 목사 안수를 받고 ‘역파송 선교사’로 2019년 1월 11일, 부인인 이혜정 선교사 그 리고 세 딸과 함께 고향인 인도의 ‘펀자브’로 돌아갔다. 현재는 찬디가르에서 사역을 하고 있다.
8 노규석, “온누리 통해서 본 모자이크 선교공동체의 가능성”
나섬공동체 역시 온누리 M센터와 마찬가지로 본국 교회 개척 또는 타국에서 본국 사람을 대상
으로 하는 사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3-3. 위디국제선교회(문창선목사)의 역파송 사례
1997년 문창선목사는 이주민선교를 위해 위디국제선교회(Withee International Mission)를 설 립하였다. 그리고 이 단체는 지금까지 역파송에 중점을 두고 많은 열매를 거두고 있다. 그 가운데 본 논문에서는 3가지 역파송을 소개하였다.
첫 번째로 사무엘 제시목사이다. 그는 가나 군인 출신이었지만 극한 가난으로 인하여 1998년에 이주근로자로 한국에 왔다. 일산과 남양주 등, 경기 지역 일대를 다니며 폐차장과 화학약품 공장에 서 일하였다. 그러나 크리스찬이었던 그가 어디에서 일하든지 주일만큼은 위디국제선교회 본부에 와서 주일을 지켰다. 그러다가 자국인을 위한 사역자가 되는 것에 대한 소명을 받고, 위디 신학교에 입학하여 4년 동안 주경야독하였다. 졸업 후, 위디국제선교회로부터 사역자 임명을 받고 일산과 수 원과 그 근방에 체류하고 있는 가나 형제들의 펠로우십을 담당하며 사역을 하였다. 6개월의 인턴 사 역을 마친 그는 2004년 가을에 런던으로 가서 위디 런던 지부 사역을 돕다가, 2005년 4월부터 런던 외곽의 스템포드라는 지역에서 자국인 선교사로서 아프리카 출신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두 번째로는 필리핀 전통무술인 ‘킬리’ 챔피언 출신인 이주근로자 레이살도 비악탄 선교사이다. 그는 관광비자로 한국에 입국한 미등록 외국인 근로자였기에 적잖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던 중 위 디국제선교회를 알게 되었고, 같은 처지에 있는 이주근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 다. 그래서 그는 위디신학교에 입학하여 주경야독하며, 심방사역과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등 사역에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 후 위디국제선교회 본부에서 마련한 홍콩 케니기가의 예배 처소와 공원 등 지에서 사역하다가 지금은 필리핀에서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세 번째로는 가봉에서 택시 운전을 하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져 한국에 들어 온 이주근로자 임마 누엘선교사이다. 그는 위디국제선교회를 통해서 믿음 생활에 불이 붙게 되어, 위디신학교에 입학하 여 4년 동안 공부한 후 사역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용산 미군기지에서 군목으로 있던 미국 목 사가 휴가를 가게 되어 두 달 동안 사역해 줄 사역자로, 임마누엘이 추천되었고 두 달 동안 사역을 감 당하는 중에 모든 미군 병사들이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군목이 돌아오자 미군 병사들이 임마누엘 을 칭찬했다. 그러자 군목은 미네아폴리스에 있는 자신의 교회에 임마누엘을 부교역자로 초청하였 다. 가봉과 가나를 오가며 택시 운전을 하며 어렵게 살던 임마누엘은 한국에 근로자로 들어와 신학 을 공부하였고, 제3국으로 파송되어 목회자로 사역을 하게 되었다.
3-4. 새생명태국인교회(홍광표목사)의 역파송 사례
경기도 안산에 위치하고 있는 새생명태국인교회는 필자가 2006년에 개척하였으며, 태국 현지 신 학교들과의 연계 사역을 통해 신학교 정규과정을 열고, 국내 태국 이주근로자들을 도전하여 2023년 현재까지 17년간 70명이 넘는 신학생들을 배출하고 있다. 그중 졸업생을 중심으로 태국 현지에 6개 의 교회가 개척되었고, 1개의 기존 교회에 담임목사로 사역을 하고 있고, 태국 북부지역에서는 다수 의 지역교회 부교역자로 사역을 감당하고 있으며, 대만과 이스라엘에서 태국 이주민교회 예배 사역 을 감당하고 있기도 하다. 개척한 6개의 교회 중 1개의 교회는 기존 교단에 소속했고, 나머지 5개의 교회는 연합하여 ‘태국 복음주의 연맹(EFT)’ 산하에 새생명비전교회연합(옹껀 크리스짝 니밋 치윗 마이)이라는 이름으로 교단을 세웠으며, 태국 전체 교단 가운데 목사 안수 기준이 가장 높은 교단이 되었다. 이 교단은 신학부 4년 그리고 신대원 3년, 총 7년을 공부해야 목사안수를 주는 태국에서는 유일한 교단이 되었다.
그리고 본 교단의 첫 번째 역파송의 열매인, 방콕 새생명비전방콕교회는 타문화권 선교로서 방 콕 람썽 지역의 캄보디아 근로자 선교를 감당하고 있기도 하다.
<표 8> 태국 새생명비전교회연합 교회 분포도

새생명태국인교회 역파송의 특이성은 태국 이주민이 역파송을 받는 차원을 넘어서 그들 스스 로가 역파송의 주체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었던 태국인들이 아닌 한국에서 처음 주님 을 영접하고 회심한 태국인 그리스도인들이 신학을 공부하고 태국 현지에 교회 개척과 더불어 교단 을 설립하여 선교사 파송구조를 세우고, 교단차원에서의 지속 가능한 타문화권 선교를 조직적으로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라오스 아웃리치를 통한 단기선교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목회자 및 평신도를 위한 전략적 선교사역 훈련으로 BAM(Business as Mission)을 활용하고 있으며, 실제 법 인회사(New Life Corporation. Ltd.)를 설립하고 커피 프렌차이즈(Cafe Vie Nouvelle) 사업을 통해
14개의 가맹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커피 프렌차이즈를 통한 자립교회 개척 모델을 내놓기도 하고 있
다. 여기에 한국과 연계하여 한국의 중고 의류 및 가방, 신발, 모자 등의 폐자원을 자립자원으로 활 용하여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이 중고의류 아울렛 (New Life Outlet) 매장을 전국 매장으로 가맹 점 사업을 하여 또 다른 자립교회 개척 모델로 소개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 이러한 모델들을 통해 전략적 타문화권 선교를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현재 새생명태국인교회는 ‘자립(自立, Self-support), 자치(自治, Self-government), 자전(自傳, Self-propagation)9’을 넘어서, ‘자신학화(自神學, Self-Theologizing)’와 ‘자선교신학화(自宣敎學,
Self-Missiologizing)’에 대한 도전으로 쏨밧목사와 또노목사가 목회학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이, 국내 태국인 이주근로자들이 물리적 공간과 시간이 확보된 공동체 사역을 통해
서 견고하게 신앙, 신학, 선교 훈련을 받게 된 결과이다.
제 4장 한국교회와 함께하는 국내 이주민 선교의 ‘교회 개척 로드맵’
국내 이주민 선교의 ‘교회 개척 로드맵’은 총 4단계로 개척기, 정착기, 성장기, 확장기로 나누어 로 드맵을 만들고, 사역을 후원하는 한국교회와 함께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첫 번째 단계인 ‘개척기(3년)’에는 한국교회가 인큐베이팅해주어 전적으로 재정과 인적 자원을 지 원해줄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외부에 시설을 임대하여 쉼터를 포함하여 설계하고, 임대료와 사역자 의 사례비까지를 감당해주어 이주민 교회 개척 사역자가 전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리고 전도 전략으로 한국어 강의와 노무 관련 상담, 의료 상담 및 지원 등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쉼터 사역이 필요한 이유는 이주근로자들이 한국에 체류할 수 있는 시간은 평균 3년 정도로서,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성경적 세계관이 심어지기에는 시간이 너무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쉼터를 통해 24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나눌 수 있는 전용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하나의 조건이 있다. 사역자가 상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역자 없이
쉼터만 운영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하다. 실제 교회 쉼터에서 술판, 도박판이 벌어진 사례가 있다.
두 번째 단계는 ‘정착기(3년)’이다. ‘개척기’에 전도에 전념하고, 이를 통해 회심한 지체들을 하나 님의 말씀과 기도로 무장시키고, 교회를 섬길 수 있도록 세워나가는 단계이다. 이 시기에는 성도들에
게 교회의 임대료와 사역자 사례비의 50% 정도라도 부담을 갖게 해야 한다. 그리고 인큐베이팅해준
한국교회의 경제적 지원은 줄여야 한다. 이것을 통해 스스로 자립, 자치, 자전의 훈련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성장기(3년)’로서 이 시기에는 어느 정도 자란 성도들이 풀타임 사역에 대한 비전
9 네비우스 선교 정책 [-宣敎 政策, Nevius Mission Plan] (교회용어사전 : 교파 및 역사, 2013. 9. 16., 가스펠서브) : 네비우스는 선교 정책의 기본을 “자 진 전도, 자력 운영, 자주 치리(治理)”, 곧 ‘3자(三自) 이념’에 두었다. 이를 통해 “독립적이고 자립적이며 진취적인 토착 교회를 형성하는 것”이 네비우스 선교 의 궁극적 목표였다. 1893년 1월 28일 장로교 선교사 공의회에서는 이 이론을 바탕으로 한국 상황에 맞는 방법론을 ’10개 정책’으로 제시했다.
을 갖게 하고, 구체적으로 도전해고 자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 현지신학교 또는 한 국에 신학교들과 MOU등을 맺고 신학 공부를 도전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개척한 안산 새생명태국 인교회는 태국에 방콕 BBS신학교와 방콕TPS신학교와 협력하여 국내에서 태국인근로자들이 현지 신학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2006년에 개척해서 2023년 지금까지 17년 동안, 70명이 넘는 신 학생들을 배출하고 있다.
네 번째 단계는 ‘확장기(3년)’이다. 이 시기에는 신학을 공부한 성도들이 태국에 귀국하여 현지 교회를 개척하는 단계이며, 또한 타문화권 선교를 위한 마스터플랜을 시작하는 단계이기도 하다. 인 큐베이팅 해주었던 한국교회는 이주근로자 성도가 개척한 현지 교회에 단기선교팀을 보내서 목회를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목회적 역량과 더불어 사회적 역량과 입지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더 나
아가 목회자가 된 이주근로자 성도와 함께 주변 국가로의 단기선교를 계획하여 타문화권 선교를 경 험하게 해야 한다.
1차 마스터플랜 12년 로드맵을 마무리하고 평가하는 시간을 갖고 2차 마스터플랜 12년의 로드
맵을 통해 현지인 교회가 자립, 자치, 자전을 넘어서 지속 가능한 타문화권 선교와 자신학화와 자선 교신학화에 도전을 이어 갈 수 있게 해야 한다.
결론
지금까지 세계화 시대와 COVID-19 팬데믹으로 나타나는 이주 현상과 더불어 이주민의 국제 및 국내 동향을 살펴보면서 이주민 선교는 미루어두거나 한국교회 선교에서 그 우선순위가 밀려나 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구약과 신약을 통하여 이주민 선교의 방향성은 역파 송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는 것도 확인하였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한국교회는 이주민 선교의 역 파송에 관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기존에 대부분의 한국교회와 이주민 선교 사역 자들은 이주민 사역에 있어서 역파송을 A국에서 한국으로 온 이주민들을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로 삼아 다시 A국으로 보내는 것을 이주민 선교의 역파송이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국내 이주민 선교 에서 가장 본을 보이고 있고 실제 역파송의 사례를 가지고 있는 단체들 안에서도 세계 열방으로의 타문화권 선교로의 역파송은 너무나 미비하다는 것이다.
성경적 역파송은 이사야 66장 19절10 말씀과 같이, 그리고 안디옥 교회의 타문화권으로의 역파 송과 같이 A국에서 한국으로 온 이주민들을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로 삼아 다시 A국과 C과 D국으 로, 세계열방으로 파송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을 통해 성경적 역파송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
은 ‘이주민 선교는 곧 세계선교이며, 열방선교’라고 하는 것이다.
선교의 하나님께서는 세계화를 통해 그리고 COVID-19 상황을 통해 한국교회의 선교 사역의
10 이사야 66장 19절 –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징조를 세워서 그들 가운데에서 도피한 자를 여러 나라 곧 다시스와 뿔과 활을 당기는 룻과 및 두발과 야완 과 또 나의 명성을 듣지도 못하고 나의 영광을 보지도 못한 먼 섬들로 보내리니 그들이 나의 영광을 뭇 나라에 전파하리라
전환을 분명히 요구하고 있다. 특별히 COVID-19 팬데믹 상황은 우리로 잠시 속도를 늦추고 멈추어
지금까지의 우리가 감당해 온 선교 사역을 재정비하게 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새롭고 다양한 시도를 하게 하고 있다. 또한 많은 파송 선교사 가운데 한국에 일시 귀국하였다가 선교지로 가지 못하거나, 안식년을 신청하며 한국에 남아 사역 전환을 기도하고 있는 현실이다. 많은 선교사가 국내에 역이주 하여 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상당한 수의 선교사들은 다시 선교지로 나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 하여서는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추수할 일꾼은 많으나 갈 곳을 잃고 있는 것이 한국교회 선교 현 실이다. 이 모든 선교사에게는 현장이 필요하다. 반면 국내 이주민 선교 상황은 어떠한가? 여전히 선 교사가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COVID-19 팬데믹은 우리가 지금까지 감당해 온 선교사역에 대하여 재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섭리이다. 그동안 정신없이 달려가기만 했던 한국교회와 선교 단체들이 감당해 온 선교사역을 잠시 멈추어서 재정비하고 재배치하여 시대적 흐름에 맞는 전략을 간구해야 할 것이다. 특별히 이번 논문은 이러한 상황들을 단순히 COVID-19 팬데믹 차원에서가 아니라 세계화에 따른 이주민 팬데믹 차원에서 해석하고, 한국교회의 선교가 국내 이주민 선교의 역 파송(Reverse Mission) 전략으로 전환하여 하나님의 선교 완성에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기를 도전 하고자 한다.
*** 토의를 위한 질문
- 우리는보통 ‘이주민 선교의 역파송’이라고 한다면 A국에서 한국에 와서 복음을 듣고 회심하 여 예수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본국인 A국으로 다시 돌아가 교회를 개척하거나, 복음 사역을 하는 것을 생각한다. 그렇다면 구약과 신약에 나타난 역파송과의 차이는 무엇인가?
- 2. 이사야 66장 18절에서 21절까지의 말씀에 나타나는 역파송을 위해서 한국 이주민 선교가 준 비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 귀하는 귀하의 사역을 위해서 로드맵에 관련한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가? 사역에 있어서 로드 맵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 4. 국내 이주민 사역에서 로드맵이 필요한 이유를 역파송과 관련하여 이야기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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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온누리M센터 노규석목사 나섬공동체 유해근목사 위디국제선교회 문창선목사
인터넷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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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룰 수 없는 선교자료의 아카이빙(Archiving) / 김승학 목사 (안동교회/국제사랑재단 이사장)
- 안타까운 현실
수년 전 한 선교지에 추방 태풍이 불었다. 대다수의 선교사들은 그곳에 계속 있을 수 없었다. 자 발적, 혹은 비자발적인 철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본 교회가 파송한 선교사 부부는 이미 선교 지의 공적인 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은 후 집으로 돌아와 그들의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에 는 추방 명령을 받고 집을 싸는 선교사들도 있었고, 추방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미 리 선교지를 떠나는 선교사들도 있었으며, 끝까지 선교지를 사수하는 선교사들도 있었다. 필자가 섬 기는 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는 비록 선교지의 정부로부터 추방 명령을 받지는 않았지만 계속 선교 지에 머무는 것은 선교사의 안전을 크게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시 불려가 조사를 받거나 조 사 결과 구류, 혹은 감금된다면 선교사와 가족의 신변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신속하게 선교지를 떠나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내렸다. 교회는 선교지로부터의 철수를 결정했고, 선교사 가정 역시 지혜롭게 대처하면서 별문제 없이 귀국할 수 있었다. 귀국한 후 철수한 선교지의 환경이 개선되 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오히려 더욱 악화되었다. 결국 그 선교지를 완전히 포기하고 타국으로 선교지 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교회는 20년 여 년 전에 앞서 언급한 선교사를 이곳에 파송하고 도왔다. 무려 20여 년 동안 선교 사는 소신껏 사역을 잘 감당해왔으며, 규칙적으로 교회에 자신이 하고 있는 사역을 보고해왔다. 교 회는 선교사가 보내는 모든 선교편지와 기도제목을 보관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필요하다고 생각하 는 선교보고만 보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지의 악화된 상황 때문에 철수할 수밖에 없었 던 선교지에 관한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었다. 어쩔 수없이 철수한 선교지의 환경이 좋아져 다시 선교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과연 이전 사역의 대부분을 회복할 수 있을까? 철수한 선교 사가 다시 들어가 사역을 재개한다면 회복하는데 큰문제가 없겠지만 만일 시간이 많이 경과해 다시 들어가지 못하고 다른 선교사를 파송해야 한다면 중단되었던 사역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혹 모 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질문에 필자는 자신이 없었다. 보관하고 있는 물적 자료도 많지 않았지만 선교지의 인적
네트워크에 관한 정보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소중한 많은 선교자료들은 안타깝게도 사장되거나 훼손되고 있다. 따라서 보관된 선교보고와 선교편지가 약간의 참조가 되긴 하겠지만 선교사역이 중단된 지 오랜 시간이 경과한 후 새로운 선교사가 이전 사역을 이어받아 선교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무척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 상황에 맞는 새로 운 사역이 필수적이긴 하겠지만 추방당하기 전 선교사가 20여년 동안 사역하면서 얻은 인적, 물적, 사역의 노하우가 보존되어 있다면 새롭게 파송 받은 선교사가 보다 쉽게 선교지에서 적응하거나 사 역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추방당하기 전 까지 선교지의 구체적이며 공개하기 어려운 여러 상황들, 실행하고 있던 사역의 비밀스럽고 구체적인 내용과 방법, 도움을 준 현지인 등을 보관하고 있다면 교회가 선교사를 재파송할 때나 그 선교지에 관심을 갖고 있는 선교사와 교회에게 여러 면에 서 도움을 줄 수 있지 않겠는가?
- 2. 규정대로 선교자료는 보고되고 보관되고 있는가?
1) 대한예수교장로회 세계선교부(KPM)의 규정과 행정내규
노상규 목사가 쓴 ‘KPM선교사 선교편지 분석 및 제언’에 따르면 행정내규 제6장 행정조치 제17 조 선교사의 권징 2항 “현지선교사가 정당한 사유 없이 2분기 이상의 정기보고를 하지 않을 경우 경 고한다.”와 행정내규 제10장 현지선교부 제28조 임무 5항 “후원교회와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 분기별 로 기도편지를 하도록 지도한다.”는 조항을 볼 때 선교사는 매 분기마다 보고와 기도편지를 보낼 의 무가 있지만 KPM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기도편지를 분석한 결과, 선교사의 25%가 선교편지를 보내지 않았다고 밝힌다.1 특히 노 목사는 세계선교업무 전반에 관한 실무를 총괄 집행하는 본부장 의 책임을 강조한다. 현지 선교부(선교사)의 재정과 사역 상황을 수시로 점검(감사)하여 이를 집행위 원회에 보고하도록 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총회선교사의 25%가 아예 선교편지를 보내지 않았 고, 83.72%의 선교사들이 규정미달의 선교 편지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적절한 대안을 마련할 것을 지적하고 있다.
2)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PCK)의 세계선교부운영규정
PCK 세계선교부운영규정에 따르면 선교사는 세계선교부와 후원교회에 서면으로 보고할 의무 가 있다. 제2절 선교사 복무 제47조에 기록된 선교사역 보고규정은 다음과 같다.2
- 선교사는 사역 보고(임시 및 정기)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보고서에는 기도제목 및 재정보고
1 http://www.kscoramdeo.com/news/articleView.html?idxno=5204, 노상규, ‘KPM선교사 선교편지 분석 및 제언’
2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세계선교부운영규정.
도 포함된다.
- 2. 선교사는 부여된 임무에 따라 활동한 결과를 현지선교회를 경유하여 매 3개월마다 세계선교 부와 후원교회에 서면으로 보고 해야 한다.
- 연간 사역보고서에는 선교계획에 대한 성취도, 선교 프로젝트 진행보고, 차기년도 선교사역 계획, 사진 자료, 재정보고를 첨부한다.
- 정당한 사유 없이 6개월 이상 선교활동에 대한 보고가 없을 경우 경고를 받으며, 1년 이상 보 고가 없는 경우에는 후원교회에 알리고 송금이 중단될 수 있으며, 2년 이상 보고가 없는 경우 권고 사임 처리될 수 있다.
- 주소 변경 등 변동사항이 있을 때는 변동일로부터 7일내에 보고해야 한다.
KPM과 달리 통계조차 없기 때문에 PCK 선교사들이 얼마나 정기적으로, 혹은 임시로 선교보 고 위무를 지키고 있는지를 알 수 없는 실정이다. 또한 선교사는 약정된 기간이 끝나면 선교사역에 대한 종합보고서를 제출할 의무가 있다. 제48조 종합보고서 1항은 “1. 선교사가 약정된 임기가 끝나 면 선교사역에 대한 종합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 보고서는 선교정책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분명히 밝힌다. 하지만 선교사가 모든 사역을 마칠 때 자신의 사역을 정리한 종합보 고서를 작성하여 세계선교부와 후원교회에 얼마나 제출하는 지에 관한 정확한 데이터 역시 없다.
3) 선교사역의 보고와 자료보관
PCK 세계선교부나 KPM의 경우 규정을 따라 선교사들이 선교부와 후원교회에 성실히 선교 보고를 한다하더라도 자료를 보관하지 않거나, 필요할 때 찾아볼 수 없다면 선교보고, 선교편지 등 선교자료 등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선교자료가 보다 유용한 자료가 되기 위해서는 선교사 들의 보고가 우선되어야 하며, 이차적으로는 선교부나 후원교회로 넘어온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보 관할 수 있어야 한다. 체계적으로 보관한다는 것은 원하는 사람이 자료를 보다 쉽게 찾을 수 있도 록 정리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형교회는 풍성한 인적, 물적 자원을 통해 수행하고 있는 선 교사역을 정리하고 보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교회 내외적으로 여러 사역을 감 당하고 있는 대부분의 후원교회들이 이 작업을 하기에는 힘에 벅차다. 따라서 교단의 세계선교부나 선교기관은 후원교회에 미루거나 의지하지 말고 그동안 제출된 선교자료가 더 이상 소실되거나 훼 손되지 않도록 체계적으로 보관할 수 있도록 방안을 연구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필자는 이를 위 해 교단, 선교기관이 우선적으로 선교자료를 보관하고 이용할 수 있는 기록보관소나 데이터베이스, 즉 선교사역 아카이브를 만들고, 교단과 선교기관이 연합하여 각각의 아카이브를 연계하는 플랫폼 (Platform)을 구축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 선교사역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스템(System)의 구축
한국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들이 주로 하는 사역은 교회개척, 제자훈련, 학교사역, 복지사역 등
으로 알려져 있다. 선교지에 도착하여 적응한 후 선교사들은 주변 환경과 상황 등을 파악한 다음 어 떤 사역을 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나름대로 할 사역을 결정한 후에는 사역을 어떻게 시작하고 진행 해야 할지를 심사숙고할 것이다. 먼저 비슷한 사역을 하고 있는 선교사가 있으면 거리에 관계없이 찾 아가 고언을 구할 것이다. 또한 사역을 시작하여 진행하고 있는 경우 더 이상 앞으로 나가기 어렵거 나 방향 전환이 필요할 경우도 주변의 선교사들과 의논할 것이다. 특히 비슷한 사역을 먼저 시작하 여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둔 선교사가 있다면 그가 어느 나라에서 사역을 하든 관계없이 그와 상담 하거나 의논하는 일을 우선할 것이다.
직접 선교사와 만나거나 전화, 혹은 SNS 등을 통해 소통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언제, 어디서나 관심 있는 사역을 검색하여 찾아볼 수 있는 구조를 만 들어 놓는다면 자문을 하는 선교사나 자문을 받고자 하는 선교사 모두에게 매우 편리할 것이다. 이 러한 대안 가운데 하나가 선교 아카이브라고 할 수 있다. 선교사들은 각 선교지에서 행해지고 있 는 수많은 사역의 내용을 저장하고 보관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Database), 즉 선교사역 아카이브 (Archives)가 필요하다. 선교사들은 어느 누구나 이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하여 자신이 원하는 자료를 열람할 수 있으며, 사역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누군가의 자료를 사용한다면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 선교사역 아카이브
1) 아카이브
대부분의 병원은 환자들의 진료차트를 보관하여 다시 방문했을 때 그의 진료기록과 병력을 참 조하여 보다 용이하게 진료하거나 행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또한 방송국에 는 매년 촬영한 대본이나 테이프 등 자료를 보관하여 필요할 때 쉽게 찾아 볼 수 있게 한다. 이처럼 여러 형태의 중요한 역사적 자료들을 저장하거나 보관하는 장소를 아카이브라고 한다. 아카이브의 사전적 의미는 정부나 관공서, 기타 조직체의 공문서와 사문서를 소장하고 보관하는 문서국 또는 기 록보관소를 말한다. 필자가 언급하는 선교 아카이브는 선교편지, 기도제목, 선교보고 등 선교자료를 저장하고 보관하는 데이터베이스를 말한다. 지구촌에 나가 있는 선교사들이 보낸 수많은 선교자료 들을 저장하여 보관하여 어느 때나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는 선교 아카이브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 다면 한국교회는 계속해서 중복선교와 반복투자를 통한 소모적인 선교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2) 선교사역 아카이브
필자가 구상하는 선교 아카이브는 웹사이트 상에서 도서관과 마찬가지로 목록표 등을 통해 다 양한 선교자료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하는 것을 말한다. 선교 아카이브의 장점
은 단순히 자료를 모아 두는 것을 넘어 저장된 자료와 정보를 목록화하고 전산화함으로써 누구나 쉽 게 관리할 수 있으며, 검색을 통해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단 세계선교부 나 선교단체는 각각 고유의 데이터베이스를 소유할 필요가 있다. 교단과 선교단체에 소속된 선교사
들은 이 데이터베이스에 각각 자신이나 운영자를 통해 선교자료를 올리거나 작은 단위의 플랫폼을 구성할 수 있다. 이어 각 교단과 선교단체의 데이터베이스를 연결하면 모든 선교자료를 종합한 큰 단 위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수 있다. 특히 세월이 경과함에 따라 훼손 가능성이 있는 자료들은 디 지털 정보로 변환시켜 영구적으로 보관할 수도 있다.3
3) 선교사역 아카이브가 필요한 이유
첫째, 동일한 교회가 후원하는 선교지에서의 선교사와 선교사역의 이양이 그리 단순한 문제는 아 니다. 전임 선교사의 갑작스러운 철수는 파송교회와 협력교회를 당황스럽게 한다. 또한 정상적인 은퇴 로 인한 후임 선교사를 파송할 경우에도 전임 선교사와 후임 선교사와의 소통이 부족하거나 전임 선 교사가 남겨둔 선교에 관한 자료나 정보가 부족할 경우 후임 선교사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할 수도 있다. 그동안 인적, 물적, 영적으로 엄청난 투자를 아까지 않은 파송교회가 느끼는 실망은 의외로 클 수 있다. 또한 중단된 선교를 재개하려고 할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록과 자료가 별로 남아 있지 않는다면 파송교회는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교회는 그동안 기쁨으로 투자했던 선교비가 매우 소모적이었다고 생각하며, 이전보다 선교에 소극적이 될 가능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훗날 선교사와 후원교회 사이에 발생할 수도 있는 사역과 재정에 관한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서도 서로 오고간 편지, 보고, 기록 등 자료보관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교회가 더욱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선교 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비록 작은 시스템이라 하더라도 선교편지, 기도제목 등 선교자료를 체계적으로 보관하고 저장할 구조, 즉 선교사역 아카이브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갖출 필요가 있다.
둘째, 다른 선교지에서 동일하거나 비슷한 사역을 하고 있거나 시도할 계획을 갖고 있는 선교사 들을 위해서도 선교사역 아카이브가 필요하다.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들은 진행하고 있는 기존 사역 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 때, 타 교회에서 진행하는 동일하거나 비슷한 사역을 찾아 검토하 여 변화를 꾀한다. 사역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하여 더 좋은 내용과 방법을 찾는 것이다. 교역자들은 비슷한 환경과 규모의 교회에서 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찾아 비교분석하여 자신의 교회에서 실행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좋은 사역의 내용(Contents)과 방법의 도입은 사역을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많은 선교사들이 실행하고 있는 여러 사역들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자유롭게 선교사들이 열람하고 참조할 수 있다면 사역을 위한 고민과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 으로 사료된다. 설령 동일한 국가가 아니더라도 동일하고 비슷한 사역에 관한 여러 정보와 실행을 위
3 https://www.reportworld.co.kr/knowledge/238, 레포트월드, 문화콘텐츠, 디지털 아카이브의 정의.
한 방법 등은 보다 쉽게 프로그램에 접근할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다른 상황(Context)의 선교지라 하
더라도 상황에 맞게 수정하여 적용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은 선교사들의 수고와 노력을 대폭 줄일 수 있게 할 것이다.
셋째, 선교학을 연구하는 선교학자들이나 선교 전문가들이 선교이론을 선교현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하며, 때로는 새로운 선교 모델을 위한 구체적인 자료로도 사용될 수 있다. 요즘 높은 수준의 전문적인 선교학 공부를 마친 선교사들이 적지 않다. 한국의 선교학자들은 세계선교학에 학문적으 로 보탬이 되어야 한다. 한국 선교신학자들도 선교사들을 통해 이루어진 사역의 열매를 선교이론에 적용하며 새로운 선교 모델을 제안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교이론을 적용할 구체적인 선교사 역을 필요로 한다. 또한 선교지에서 발생한 다양한 정보들을 보다 쉽고, 보다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 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선교자료를 저장하고 보관하는 선교사역 아카이브의 구축은 필수적이 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자료의 보관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아카이브는 한국 선교를 한 단계 올려 놓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세계선교에도 공헌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 한 문헌정보학자의 힌트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한미경은 ‘내한 개신교 선교사 편지(1884-1942)의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기반 연구’4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그는 이 연구에서 미국의 기관에 내한 선교사에 관한 자 료가 생각 이상으로 많이 보관되어 있다고 하면서 내한 선교사의 자료를 찾는 방법을 밝혔다. 특히
그는 선교사들의 편지를 유형별로 분류함으로써 보다 쉽게 원하는 자료를 찾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연구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가 제안한 첫 번째 유형은 단체에 관련된 유형으로 단체-A 유형은 파 송한 교단이 수취한 선교편지이며, 단체-B는 교단 이외의 단체가 수취한 것이다. 단체-B 유형은 선 교사와 관련된 재단, 학교 등이 고유의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수취한 편지들이다. 두 번째 유형 은 개인과 관련된 것으로 개인-A형은 선교사들이 가족, 친지들에게 쓴 사적인 편지이며, 개인-B형은 편지의 수취인이 가족이나 친구가 아닌 다른 사람인 경우이며, 개인-C형은 선교사의 자녀가 부모의 업적을 남기기 위해 관련된 자료를 폭 넓게 수집한 후 그 결과물을 기관에 기증한 것이다.
사실 수많은 자료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으면 찾아보는 것도 어렵고, 연구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에 자료들을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한미경은 앞으로 구축해야 할 내한 선교사 편지 디지털 아카이브의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 바 있다. 첫째, 효율적인 메타데이 터의 구축 및 표준화이다. 표준화는 누구나, 어디에서나 자료를 저장하고 검색하며 찾아보기 위해
4 https://www.clsk.org/bbs/board.php?bo_table=gisang_culture_new&wr_id=215&main_visual _page=gisang_new, 한미경, ‘내한 개신교 선교사 편지(1884-1942)의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기반 연구’
서 필수적인 과정이다. 둘째,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은 한 기관이 담당할 수 없고 여러 기관이 자신이
정한 목적에 따라 구축하되, 교류를 통해 협조해야 한다. 앞서 필자가 언급한 것처럼 교회는 가장 작 은 단위의 선교사역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교단 및 선교기관은 보다 큰 아카이브를 구축하며, 마지 막으로 모든 아카이브를 연결하는 단계이다. 셋째, 디지털 아카이브는 전문 연구자 뿐 아니라 일반인 도 쉽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디지털 아카이브가 구축되면 더 많은 연구가 촉진될 수 있고, 일반인들도 쉽게 접할수 있게 되어 소중한 자료들이 널리 알려질 수 있을 뿐 아니라 선교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 선교사역 아카이브에 포함될 자료들
선교사역 아카이브는 미리 허락을 받은 선교사면 누구나 자료를 올릴 수 있다. 또한 특정선교사 가 아니라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료를 열람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야 한다. 물론 선교지와 선교 상황에 따라 비밀을 유지하고 싶은 자료도 있을 것이다. 이럴 경우 유튜브의 비공개 형식과 같 이 아카이브를 운영할 수 있다. 운영자의 허락을 받은 사람만이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선교 사역 아카이브에는 수많은 자료들을 저장하고 보관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누구나 어디서나 자료를 저장하고 검색하여 사용하기 위해서는 표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선교사역 아 카이브는 크고 작은 단위의 홈페이지 형식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이것들을 하나로 연결하여 보 다 쉽게 자료들을 검색하고 찾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선교사역 아카이브에 저 장해야 할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역을 막 시작하는 선교사와 후원하는 교회에게 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내용이다. 이것 은 사역을 위한 초기단계에 파송받은 선교사와 교회에게 매우 유용한 기초 자료가 될 수 있다. 특히 사역을 이양 받는 후임 선교사에게 선임선교사가 전달하고 남겨두어야 할 자료로서 후임선교사가 쉽게 선교지와 사역에 적응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선배 선교사들이 실수한 것을 후배 선교사가 다시 경험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선교지로 출발하기 전부터 준비해야 할 내용들이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우선 가족의 형태를 고려하여 선교지로 이사할 때 이삿짐을 구분하여 해상물류, 항공물류에 관한 방법을 기술한 자료가 필요하다. 또한 선교지에 도착한 선교사의 기본생활에 필수적인 장소나 이용할 곳 위치를 안내하는 자료도 필요하다. 시장이나 마켓, 전기, 수도, 은행, 가전제품, 수리 센터, 공구점, 각종재료 구입처 등을 명기한 자료가 있으면 쉽게 적응할 수 있다. 임대주택, 임대료, 주인과 관계, 문제처리방식 등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료, 차량이나 오토바이, 대중교통 등 교통수단의 임대나 구입을 위한 자료, 자녀교육 관련 학교나 진학 관계 안내, 의료기관이나 약국 등의 기본 진료 와 치료 등에 관한 내용은 필수적이다. 언어훈련과 현지적응 훈련 등도 미리 인지하고 있으면 좋다. 대사관, 한인회, 선교사회, 여행사, 현지 이민국경찰, 동사무소, 시청 또는 도청 등 체류와 비자 등 정
부관련 업무를 해결할 수 있는 기관들, 현지인 관습과 생활방식 등 현지인들과의 관계 속에 고려해
야 할 주의사항 등은 미리 숙지하도록 자료로 남겨질 필요가 있다.5
예1. 선교사의 기본 생활자료
| 1. 선교지 | ||
| 2. 이사방법 | ||
| 3. 생활정보 | 시장 | 은행 |
| 마켓 | 가전제품 | |
| 전기 | 수리센터 | |
| 수도 | 기타 | |
| 4. 주택 | 임대주택 | 임대료 |
| 매입 | ||
| 5. 자녀교육 | 초.중.고등학교 | |
| 진학 방법 | ||
| 6. 차량 | 자동차 | 오토바이 |
| 대중교통 | 자전거 | |
| 7. 의료 | 병원 | 약국 |
| 입원 | 치료 | |
| 8. 기관 | 한인회 | |
| 선교사회 | ||
| 9. 기타 |
또한 파송교회로부터 오는 선교비의 수령과 은행업무 관련 사항, 적절한 건강관리를 위한 시설 이나 장소, 모임 등에 관한 정보, 선교지에서 개인영성 관리를 위해 필요한 것들, 현지에 서 조심해 야 할 질병이나 풍토병, 치료요법 등, 또한 한국방문 및 한국의 가족과의 적절한 관계 등을 미리 숙 지할 수 있으면 시행착오를 줄 일 수 있다. 사역의 신속한 적응을 위해 사역내용 자료와 기록물의 구 체적인 인수인계, 연혁이나 주요사건 등을 포함한 선교사역 전반적인 역사와 개괄적인 흐름, 정기적 인 사역보고 내용 및 후원자 관계 관리 등에 관한 정보들이 필요하다. 또한 한국교회 및 후원처 방문 시 적절한 선교보고 방식 및 계속적인 협력관계 유지방법, 재정관리와 운영에 대한 세밀한 안내, 동 료 선교사, 현지선교회, 한인선교회, 소속 및 협력교단, 기타 선교협력기관 등과의 관계, 단독사역보 다 팀사역으로 사역할 경우, 사역에 매우 밀접하고 동역의 관계인 선교사들의 역할과 사역의 협력 내 용들, 현지 동역교단, 선교단체, NGO, 외국 선교사들과의 관계 및 선교회 가입 여부 등도 선교 아카 이브에 담아야 할 필수적인 내용들이다. 자주 있는 것은 아니지만 비전 트립팀 또는 방문 교류하는 사역팀에 대한 안내, 안식년이나 사역의 휴식에 관한 내용, 선교재산과 사용권 등에 대한 매우 실제 적이고 구체적인 안내 등도 후에 문제를 극소화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선교사역 내용에 대한 것은 얼마나 자세히 기록하고 인수인계하느냐는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문제가 생기거나 사
5 김종성, 선교사의 생활과 사역, 한국장로교출판사, 106, 2006.
역에 차질이 생길 일은 크지 않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선교지 재산이나 임대건물이나 임대, 토지 계
약관계, 재산사용권 등의 법적인 문제에 관한 것은 매우 자세하게 그 배경과 과정을 인수인계해 주지 않으면 현지인들에게 매우 부당하게 당하며 살아갈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솔직하게 기술하여 후임 선교사와 이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주어야 한다.
예2. 초기 선교사역을 위한 제 자료
| 1. 선교비 | 수령방법 | 은행 |
| 2. 건강관리 | 방법 | 모임 |
| 3. 영성관리 | ||
| 4. 질병 | 풍토병 | 치료 |
| 5. 한국 방문 시 | 유의할 것 | |
| 6. 인수인계시 유의할 점 | 사역연혁 | 주요사역 |
| 사역내용 | ||
| 사역개요 | ||
| 사역방향 | ||
| 후원자 | ||
| 7. 재정관리 | 재정운영방법 | |
| 8. 동료선교사와의 관계시 유의할 점 | ||
| 9. 선교기관과의 관계시 유의할 점 | ||
| 10. 단기선교팀 방문시
유의할 점 |
||
| 11. 후원교회 방문시
유의할 점 |
||
| 12. 기타 | ||
| 9. 기타 |
둘째, 사역을 진행하면서 교단의 선교부나 선교기관에 정기적으로 혹은 임시로 보내는 선교편지 나 기도편지 등에 관한 자료는 동일한 지역, 혹은 타 지역에서 사역하고 있지만 비슷한 사역을 하거 나 추진하기 위해 관심을 갖고 준비하는 여러 선교사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선교사들 이 보다 쉽게 접근하여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아카이브를 만들어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필자 는 선교사역 아카이브가 다음과 같이 구축된다면 용이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물론 이것은 아이디어 차원의 매우 단순한 제안이기 때문에 보다 심도 깊은 연구와 의논이 필요할 것이 다. 자료를 아카이브에 게재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은 선교사는 각자 자신의 선교 자료를 구축된 아 카이브에 올릴 수 있도록 한다. 예를 들어 선교사 개인, 선교지 국가(필리핀, 브라질, 이집트, 일본 등) 혹은 도시(프놈펜, 마닐라, 아마존 등), 사역의 주제별(교회개척, 제자훈련, 학교사역, 복지사역 등), 선교지의 종교(불교, 회교, 힌두교, 공산주의 등)에 따라, 또는 자신이 사역하는 장소(도시선교, 농촌 선교 등) 등의 목록을 만들어 선교사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선교자료를 올리면, 필요로 하는 사람들
이 용이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예3. 선교보고, 편지 등 자료의 목록
| 1. 선교대륙 | 2. 선교국가 | |||
| 3. 선교지의 종교 | 4. 선교기간 | |||
| 5. 선교장소 | 도시 농촌 | |||
| 6. 주 선교분야 | 교회개척 학교사역 | |||
| 제자훈련 복지사역 | ||||
| 7. 팀사역 | 팀사역 여부 | |||
| 8. 기타 | ||||
예4. 교회개척 분야의 경우
| 1. 지역 환경 | 2. 주민의 수 | ||
| 3. 부지 면적 | 4. 임대 or 매입 | ||
| 5. 매입자금조달방법 | 6. 건물 면적 | ||
| 7. 매입시 어려운 점 | |||
| 8. 건축시 어려운 점 | |||
| 9. 기대 효과 | |||
| 10. 기타 |
- 7. 결론
많은 선교사들은 이 시간에도 선교편지와 기도편지 등을 작성하는데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작성된 소중한 선교자료들이 훼손, 사장되거나 폐기되고 있다면 얼마나 큰 손 실일까? 뿐만 아니라 이것은 선교사역을 위해 허리끈을 졸라매고 헌신해온 한국교회에도 낙심이 되 는 일일 것이다. 선교자료의 사장과 손실은 선교의 비효율과 중복투자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와 같은 소모적인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교회는 선교사역의 효율화를 위해 사역 아카이브 구 축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 속히 교단 선교부와 선교기관은 선교자료와 정보를 교환하고 사용 할 수 있도록 테이블에 마주 앉아야 한다. 특히 한국교회는 이에 필요한 인적 자원과 소요되는 재정 등에 거룩한 부담감을 가지고 선교자료들을 보관하고 사용할 수 있는 선교사역 아카이브를 구축하 는 실제적인 아카이빙 작업부터 당장 시작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 1. 김종성, 선교사의 생활과 사역, 한국장로교출판사, 200
-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세계선교부운영규정.
- 3.http://kscoramdeo.com/news/articleView.html?idxno=5204,노상규, ‘KPM선교사 선교편지 분석 및 제언’
- https://www.reportworld.co.kr/knowledge/238, 레포트월드, 문화콘텐츠, 디지털 아카이브의 정의.
- 5.https://clsk.org/bbs/board.php?bo_table=gisang_culture_new&wr_id=215&main_visual_page=gisang_new,한미경, ‘내한 개신교 선교사 편 지(1884-1942)의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기반 연구’
한국 기독교 선교 사료 목록화와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 구성모 교수 (한국기독교사료목록화사업추진위원장, 성결대학교 교수)
- I. 들어가는 말
한국 선교가 시작된 시기는 논란이 많은 주제다. 한국 기독교의 공식적인 입장은 1884년 북 장 로교회 의료선교사 호러스 앨런(Horace N. Allen, 1858-1932)이 조선에 입국하고1 1885년에 감리 교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 1858-1902)가 의료선교사인 부인과 함께 장로교 선교사 호러스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1859-1916)가 제물포항으로 입국하면서이다.2 이 는 외국 선교사가 한국에 입국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만열은 한국 기독교의 선교는 영국 선교사 로버트 토마스(Robert J. 표omas, 1840-1866)가 1865년과 1866년에 한국에 왔으며, 1866년 에 결국 제너럴 셔먼호(General Sherman) 사건으로 순교하였다. 이런 정황으로 한국 선교의 역사는 그때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3 또한, 1874년에 존 로스(John Ross, 1842-1915)가 한국인을 접 촉하였고, 1879년 만주 서간도 한인촌에서 한국인의 개종과 세례, 1882년 한글 성경의 번역과 출판 등과 관련하여4 종합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1885년 이후 내한한 초기 선교사들은 교단마다 차이는 있지만 주로 의료, 사회봉사, 교육, 선교 등 분야에서 활동하였다.5 이를 기반으로 개화기 조선을 근대화로 사회의 변혁에 큰 영향을 미 치었고 선교 활동도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6 초기 선교사들의 한국에서 사역 형태는 한국 교 회가 선교하는 교회로 세워지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그 결과 한국 교회는 초기부터 선교하는 교회 가 되어 갔다. 즉 서구 교회로부터 복음을 수용하던 초기 시절부터 선교적 소명과 열정을 가지고 선 교적 체질로 형성된 것이다.7 그 후 한국 교회의 성장, 선교 단체의 출현과 성장, 한국 선교사의 증가
1 1884년에 감리교회 계통의 미국인 선교사 겸 교육자인 로버트 매클레이(Robert S. Maclay, 1824 -1907) 선교사도 김옥균과 함께 서울에 입국하여 고종 의 허락을 받아 선교 활동을 하면서 스크랜턴, 아펜젤러 등을 한국에 불러들였다. 그러나 한국 선교의 총책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거부하고 1884년에 일본 요코하마로 돌아갔다.
2 http://www.saeronam.or.kr/home/tour_zone5 2019년 10월 5일 접속.
3 이만열, “한국 기독교 수용과 그 특징,” 「아세아연구」 44/2 (2001): 3. 이를 판단하는 것은 선교 사료 목록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추후 충분한 논 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4 이만열, “한국 기독교 수용과 그 특징,” 4-7.
5 변창욱, “내한 선교사의 교육선교(1884-1940): 한국 교회의 교육선교에 주는 선교적 함의,” 「선교와 신학」 36 (2015): 142.
6 한미경�장윤금, “개신교 교육 선교사들의 편지(1885-1941),” 「인문과학」 111 (2017): 34.
7 한국일, “선교 120년과 한국 선교의 미래,” 「선교와 신학」 14 (2004): 110-111.
와 선교지 확대, 한국 경제의 발전, 한국의 국내 정치와 외교환경의 새로운 변화 등으로 선교 열기는
더해 갔다.8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제30차 정기총회 자료집에 의하면 한국 선교사는 2019 년 12월 말로 171개국 28,039명이 파송되어 사역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9 이는 KWMA 회원 전체와 비회원 단체, KWMA 산하 협력 단체 등이 포함되었으나 이 통계 수치에 포함되지 않은 개 교회 단위 선교사와 자비량 선교사 등을 예상하면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10 이러한 흐름은 한국 교회의 성장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선교사의 양적 증가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우려도 있다.
이처럼 한국 교회는 세계 선교에서 리더로 세워지고 있으나 외국 선교사는 물론 한국에서 파 송된 선교사들의 활동과 기록물의 수집과 관련된 연구는 미미한 실정이다. 이러한 자료들은 종교적 인 기록물로서 의미를 넘어 한국 역사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적 측면에서 재조명될 수 있는 사료 로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또한, 해외 선교지에서 한국 선교사의 선교 역사도 조명되고 의미 있게 평 가할 시기이다. 그러나 선교 사료가 갖는 가치는 공감하면서도 관련 자료를 파악하여 보존하여 활용 도를 높이는 체계적인 관리시스템은 현재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는 한국 기독교는 물론 선교 계도 사료의 중요성을 간과한 결과로 인한 것이다. 선교 관련 사료가 있는 장소와 담고 있는 내용이 확인되지 못한 안타까운 실정이다. 반면에 불교나 천주교는 사료의 중요성을 깨닫고 본격화한 지 오 래다. 이러한 배경이 바로 한국 기독교의 선교 사료를 정리하고 목록화 사업을 서둘러야 할 이유다. 선교 사료의 목록화는 더 나아가 선교 사료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작업까지 연결되어야 한다.
따라서 본고는 국내외에 산재해 있는 한국 기독교 선교 관련 사료는 물론 한국인 선교사의 해외 선교지에 대한 현황과 사료의 보존과 관리를 체계화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한국 선교 사료 목록화 필요 성과 현황, 선교 사료의 보존과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방향을 제안코자 한다.
- II. 사료의 이해와 선교 사료 목록화의 필요성
- 사료의 이해와 분류
선교 사료의 목록화를 논하기에 앞서 사료가 무엇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료에 대한 개념 은 개인의 견해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중세 이후 문서 숭배 사상에 기인한 견해로 로빈 콜링우드 (Robin G. Collingwood)는 “하나하나에 대한 명칭으로서 문서류라고 하는 것들에 대한 집합 명 칭이 곧 사료이다.”라고 하였다.11 하지만, 요즘의 전자 미디어 발달에 따라서 문서 숭배 사상은 차츰 인지도가 떨어져 각종 다양한 자료를 사료에 포함할 수 있다. 그 외의 개념으로 에른스트 베른하임
8 김한성, “한국 교회의 타문화권 선교 역사의 시기 구분에 관한 연구,” 「성경과 신학」 60 (2011) : 109.
9 한국세계선교협의회, “2019년 12월 한국 선교사 파송 현황,” 한국세계선교협의회 제30회 정기총회 자료집 (2020): 36-41.
10 최하영, “CIS의 한인선교사의 앞으로 10년 후 전망에 대한 소고,” 「ACTS 신학저널」 32 (2017): 160-161. 일례로 CIS의 경우에도 한인선교사의 수를 추정치로 계산되고 정확한 한인선교사의 수는 파악되지 않는 실정이다.
11 차하순, 『역사의 본질과 인식』 (서울: 학연사, 2007), 67.
(Ernst Bernheim)은 “역사학이 그로부터 얻게 되는 자료”12라 하였다. 김기훈은 “사료란 인간 활동
에 있어서 과거의 잔존물, 인류 활동으로 생산된 산물”13이라 하였고, 박성수는 “인간의 사상과 행동 이 남긴 흔적”14이라 하였다. 또한, 윤혜원은 “과거를 인식함에 유용한 역사적 자료”라 하였으며15, 서 광일은 “역사적 인식의 매개물이고 과거에서 인간 활동의 유물이며 역사학의 증거품”16이라고 하였 다. 이러한 사료를 분류하는 방법이나 기준 또한 개인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다.
기독교의 사료는 일반 사료가 가지는 특징과 함께 다른 독특성이 있다. 그것은 기독교 구성원들 이 역사와 공동체의 종교적 정체성을 지속하여 유지할 뿐만 아니라 개인과 교회, 기독교 단체의 활 동과 그로 인한 그 지역사회는 국가에 어떤 미친 영향과 관련된 역사적 정보를 제공하는 데 있다. 특 히 선교 사료는 특히 기독교 선교 사료는 특별한 영역에 해당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한국 기독교 역 사에서 선교와 관련된 사진, 지도, 문헌 자료, 문학작품, 편지, 녹음과 녹화, 통계를 포함하며, 전문가 에 의해 검증된 각종 자료를 선교 사료로 규정하려고 한다.
- 선교 역사와 선교 사료
선교 사료는 교회사, 선교 역사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따라서 선교 역사와 관련된 개념을 논함 으로써 선교 사료의 목록화를 위한 범위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선교 역사라는 단어를 언제부터 사 용하였는지에 대하여 정확하게 확인된 바는 없다. 문제는 선교 역사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선 교 역사는 교회사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이를 먼저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 교회사
교회사는 복음의 전도와 그 결과 생겨난 교회에 대한 역사를 기술하고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 러므로 하나님의 섭리사가 함께 연구되는 것이 통상적이었다. 하지만 1908년에 베를린에서 열린 국 제 역사학자 회의에서 세속사의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결국 교회사 학자도 세속 역사학자로17 변하 였다고 인식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교회사가는 하나님의 섭리를 떠나서는 교회사가 되기 어렵다. 다 만 일반사는 교회사의 보조 수단으로만 사용하여야 한다. 이 말은 교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성경 해석과 연관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18 이에 비해 슈미트(Schmitt)와 귄터 보른캄(Günther
12 Ernst Bernheim, 조기준 역, 『사학개론』 (서울: 정연사, 1957), 138.
13 김기훈, 『역사학 개론』 (서울: 정음사, 1974), 86-87.
14 김성수, 『역사학 개론』 (서울: 삼영사: 1977), 245.
15 윤혜원, 『역사학 개론』 (서울: 수도출판사, 1973), 76.
16 서광일, “역사교육을 위한 사료학습연구,” 「역사교육」 26 (1979): 26.
17 Wolfgang Bienert & Joachim Mehlhausen, Kirchengeschichte (Tubingen, 1983), 강원돈 역, 『교회사 연구방법과 동향』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4), 9.
18 이러한 주장을 한 이는 G. Ebeling으로 성경 해석에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하지만 그는 지나치게 케리그마에 집착하였다. Wolfgang Bienert & Joachim Mehlhausen, 『교회사 연구방법과 동향』, 15.
Bornkamm)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움직이며 세상에서 발휘하는 영향력으로 보았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에도 차이가 있다. 게하르트 에벨링(Gerhard Ebeling)은 교회의 사건적 성격에 초점을 둔 반면, 슈미트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의 상(象), 역사 안에 감추어진 교회의 표지(notae ecclesiae) 를 묘사하는 것으로 보았다.19 오늘날에는 에벨링의 견해를 추구하는 해석학적인 측면, 경험적인 측 면, 진리의 측면으로 연구를 하는 것이 교회사라고 보고 있다.20 참고로 로마가톨릭은 신앙고백 적인 입장에서 역사적인 교회론을 보고자 하는 협의의 교회사를 논한다.21 이에 비해 주재용은 교회사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그의 몸으로서 유기적인 공동체의 역사…하나님의 백성 역사”라고 하였다.22 그러나 이러한 전제는 결국 지상을 평화의 공동체를 형성하여 가는 것을 감당하는 것이 교회이므로
교회사는 이를 감당하기 위한 분야를 통틀어서 말한다고 볼 수 있다.
- 선교 역사와 사료
독일의 역사학자인 비트람(R. Wittram)은 “교회사의 총체적 관점은 교회사 서술이 교회의 선교 임무를 가장 내적인 시점으로 삼을 때만 획득될 수 있다.”라고 하였다.23 이 말은 곧 선교를 교회사의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이러한 표현은 하르낙(Adolf v. Harnack)의 주요 사상 이었으나 아무도 이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스티븐 니일(S. Neill)이 그의 책 『기독교선교 사』(Geschichte der Christlichen Mission. 1974)에서 하르낙은 선교사적인 입장에서 교회사를 보았 다고 설명하였다.24 그러나 일반적으로 교회사를 좁게 말하게 된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반대하였다. 이에 반하여 로허스(W. Lohes)는 선교란 “자신의 운동 가운데 있는 교회”라고 하였다.25 또한, 주재
용은 선교란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자로서의 교회 전체의 삶의 총칭”이라고 정의 하였다.26
한편 케네스 라토렛(Kenneth S. Lautourette)은 선교의 역사라는 단어보다는 ‘기독교 확장사’ 라는 단어를 통하여 선교 역사를 다루고자 하였다.27 그가 본 선교 역사란 기독교를 배경으로 놓고 그 위에 일어나는 모든 세속사와 교회와 관련된 일들을 다 다루는 것으로 보았다.28 이와 같은 선교
- Wolfgang Bienert& Joachim Mehlhausen, 『교회사 연구방법과 동향』, 16-1
- Wolfgang Bienert& Joachim Mehlhausen, 『교회사 연구방법과 동향』, 17-18.
- Wolfgang Bienert& Joachim Mehlhausen, 『교회사 연구방법과 동향』, 20-21. 22 주재용, 『역사와 신학적 증언』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1), 261-264.
- WolfgangBienert & Joachim Mehlhausen, 『교회사 연구방법과 동향』,
- WolfgangBienert & Joachim Mehlhausen, 『교회사 연구방법과 동향』,
- WolfgangBienert & Joachim Mehlhausen, 『교회사 연구방법과 동향』,
26 이러한 교회의 총체적인 삶으로 볼 때 중세 시대의 선교는 감독과 교황을 높이는 것이 교회의 일이었고 선교였다고 한다. 주재용, 『역사와 신학적 증언』,
20-21.
27 K. S. Lautorette, History of Christianity, 윤두혁 역, 『기독교사』 Vol. 1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4, 7쇄), 35. 라토렛은 교회사 파트에서 강의한 것이 아니라 선교 역사 학과에서 강의하였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라토렛은 선교 역사를 연구한 자라고 보아야 한다.
28 “우리는 인간 역사 전체의 배경에서 기독교사를 관찰하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인류사 전체에서 기독교사를 분리시키면 후자를 해치는 것이 된다.” K.
역사는 교회사의 한 부분이 될 수도 있고, 모든 교회사의 근간이 될 수도 있다. 유럽계에서는 교회사
의 한 부분으로서 선교 역사를 다루게 되지만 라토렛의 입장에서 볼 때는 모든 교회사는 결국 선교 역사라는 장르에서 다루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세속사까지도 다 포함하여 해석하는 것이 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역사의 모든 배경에 기독교를 두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같이 라토렛과 유사한 사상을 가진 가톨릭 역사학자로서 크리스토퍼 도슨(Christopher Dawson, 1889–1970)이 있다. 그 의 글은29 모두 다 기독교를 배경으로 하여 전개한다. 그는 분명히 선교 역사를 세속사까지 다 포함 하였지만 이러한 사고가 현재 역사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여기서 교회사와 선교사의 공 통적인 면과 다른 면을 통하여 선교 사료는 범위를 정할 수 있다. 그것은 광의적 접근 또는 협의적 접 근에 따라 규모가 달라지겠지만 교회사에서 선교와 관련된 사료는 출처별로 볼 때 선교사, 기독교 교 인 및 기독교 단체에서 생산된 기록과 외부 언론에서 생산된 기록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는 논란도 많은 영역이 있어 여기서는 논하지 않는다.
- 선교 사료 목록화의 필요성
한국 기독교 선교 사료는 신앙의 선조들의 삶과 신앙이 담겨있는 귀중한 자산이다. 또한, 한국 의 민족사이며, 세계 기독교는 물론 세계사에도 귀중한 유산임이 틀림없다. 이러한 소중한 유산들을 찾아내고 이를 체계적으로 보존과 보호하여 현 세대는 물론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일은 신앙의 맥 을 연결하는 귀중한 일이다.30 장윤금이 한국 초기 외국인 선교사 자료 조사와 선교사 가족과 역사 를 연구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에서도 선교 사료 목록화의 필요성은 분명하게 나타난다.31 그 내용을 종합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선교사 기록물에 대한 공통적인 내용은 원자료 공급 의 필요성과 현존하는 선교사의 직계가족 또는 잘 모르는 선교사 관련 새로운 자료를 발굴할 필요 성으로 분류되었다.32 둘째로 선교 사료의 자료 수집 방법은 대다수 연구자는 국내 자료에 대한 의존 율이 높고 국외의 원자료를 수집하려면 연구자가 직접 해외에 직접 가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리고 다른 연구자들과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자료를 수집하고 있었다.33 셋째로 선교 사료의 이용 방 법의 문제점 및 활용 방안에서는 연구를 시작하면서 검색할 대표적인 아카이브가 없고, 그 자료도
- Lautorette,『기독교사』,
29 Christopher Dawson의 글의 상당 부분이 한글로 번역되어 소개되어 있다. 『기독교 문화와 현대 문명』, 『선교와 서구 문화의 변혁』, 『세계사의 원동력』 등이 있다.
30 이수인, “ACTS 신학-신앙운동, 그 신학적, 교회사적 의의,” 「ACTS 신학저널」 27 (2016): 151-154. ACTS가 설립되는 신학-신앙운동 곧 “처음부터 하나님의 백성들이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왕성하게 아세아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위해 전진하며 나아갈 것을 꿈꿔왔던 신학-신앙운동이었다.”는 사실을 후 손에서 전달하는 것도 선교신학적 시각에서 가치가 크다.
31 장윤금, “우리나라 초기 외국인 선교사 자료의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필요성 연구(1800-1910),” 「정보관리 학회지」 30/4 (2013): 273-275. 인터뷰한 방 법은 선교사 기록물에 대한 정보요구와 수집 방법, 자료의 이용에 따른 문제점과 활용 방안에 대하여 응답자들에게 질문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32 장윤금, “우리나라 초기 외국인 선교사 자료의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필요성 연구(1800-1910),” 273. 김성환, “OMF의 한국선교 35년사에 나타난 선 교의 장단점 연구,” 「ACTS 신학저널」 22 (2014): 70. 이 연구물도 OMF Korea에서 관련 기초자료를 제공하여 가능하였다.
33 장윤금, “우리나라 초기 외국인 선교사 자료의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필요성 연구(1800-1910),” 274.
영어로 된 자료가 대부분으로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자료에 대한 보존상태도 취약한 문제점을 지적
하였다. 또한, 선교 사료를 통합된 정보검색 시스템과 기관들 상호 간의 네트워킹, 원자료를 온라인 시스템에서 검색할 수 있는 표준체계 도구에 대한 요구가 크게 나타났다.34
이 인터뷰에 나타난 바와 같이 선교 사료의 목록화와 보존을 위한 후속 작업의 필요성에도 불구 하고 한국에서 사역한 외국인 선교사 관련 사료는 일부만이 국내외 연구소와 대학 도서관, 박물관 등에 산재해 있고, 이들 사료의 수집 및 보존을 위한 공통적인 기준이나 표준화된 시스템도 존재하 지 않는 실정이다. 또한, 사료를 전문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인력의 부재와 열악한 재정적인 지원 등 문제점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여성사 관련 기록물의 경우에도 관련 자료의 관리와 보존, 활용이 어려운 상태로 있으며 한국 여성사 연구의 기본이 되는 여성사 관련 서지도 미흡한 실정이 다.35 이러한 문제점이 발생한 원인은 자료 수집 및 관리 담당 기관의 부재와 자료 보존할 장소의 협 소함, 재정의 열악함 등으로 설명하였다.36 또한 한국 감리교가 미국의 감리교로부터 어느 정도의 선 교비를 지원받았고 그로 인하여 어떤 결과를 얻었는가를 연구도 사료의 부족으로 인하여 상당 부분 을 추정치로 계산되고 있다.37 김준곤이 주도한 민족복음화운동도 한국교회의 성장에서 중요한 부 분이었음에도 그 사료의 보존에 어려움이 있다.38 선교 사료의 경우에도 이와 유사한 실정이다. 따라 서 선교 사료에 대한 수집 및 보존에 대한 시스템 구축이 관련 기관들의 협력 체제를 기반으로 목록 화 작업이 시급히 요청되고 있다.
III. 한국 선교 사료 목록화의 현황
- 기독교의 사료 목록화
기독신문은 1919년 6월 18일 자 역사기획 특집에서 “먼지 쌓인 역사 어떻게 하나”란 제목으로 한국 기독교의 역사 사료를 부실하게 방치하고 있는 현실을 다음과 같이 고발하였다.39
…사료들의 가치나 효용성 여부는 차치하고, 일단 무슨 물건이 몇 점이나 있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사료실 관리는 전혀 없다. 보관하기도 내버리기도 모호한 잡동사니들을 한데 모아둔 창 고라 부르는 게 사료실이란 이름보다 더 어울릴 듯싶다.
실제로 한국 기독교의 각 교단의 사료 관리는 미흡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신문은 계속하
34 장윤금, “우리나라 초기 외국인 선교사 자료의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필요성 연구(1800-1910),” 274-275.
35 백영주.김수자, “여성사 관련 자료의 보존 현황과 관리 방안: 해방 이후~1980년대 여성 정책 및 여성단체 자료를 중심으로,” 「한국기록관리학회지」
5/1 (2005): 6.
36 백영주.김수자, “여성사 관련 자료의 보존 현황과 관리 방안: 해방 이후~1980년대 여성 정책 및 여성단체 자료를 중심으로,” 18-20.
37 윤은석, “6·25전쟁과 미국 감리교회의 한국 감리교회 지원 : 1950년부터 1955년까지,” 「ACTS 신학저널」 39 (2019): 64-71.
38 박응규, “유성(遊星) 김준곤 목사의 민족복음화운동과 역사·신학적 의미,” 「ACTS 신학저널」 42 (2019): 10-11.
39 기독신문, “총회 사료실 정비 시급하다 ① 먼지 쌓인 역사 어떻게 하나,” 2019. 6. 18일자.
여 대한예수교장로회 어느 대형 교단의 경우 ‘사료실’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방 하나가 전부이고, 몇
평 안 되는 작은 공간에 각종 서류와 책자, 액자, 현판, 앨범, 사무 기구 등 온갖 물건들이 뒤엉켜 쌓 인 채, 오랜 기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고 고발하였다.40 이러한 상태에서 선교 사료의 발굴과 유지 보존을 모두 조사한 바 없어 단정할 수는 없으나 기독신문의 지적보다 더 열악할 그것으로 예상한 다. 이와 달리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측은 한국 교회 100주년 기념관 1층에 예장 통합의 총회 사료 관을 두고 현재 1,686점의 물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담당 직원이 상주해 관리하고 있다, 교단 소속 인사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고 심지어 자료들의 대출까지 가능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 다. 예장 통합은 향후 역사관 전용 건물을 세우려는 계획으로 모금을 진행 중이다. 교단 중에서 사료 를 가장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기관은 기독교대한감리회다. 기감은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의 감리교 연수원 입구에 온도와 습도 조절이 가능한 150명의 전용 건물로 역사 정보 자료실을 두고 있다. 여 기에는 감리회 총회를 비롯한 모든 산하 기관, 연회, 교회 단위에서 발행되는 문서들은 의무적으로 역사 정보 자료실로 2부씩 보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자료 제출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상당한 불이 익이 따르기 때문에 필수 자료 수집은 거의 100%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1893년부터 1940년까지의
『조선감리회 연회록』 등 초창기 자료들은 물론이고 연대별 교단 헌법과 기관지인 「기독교 타임스」 합 본, 각종 최신 보고서와 영상 자료들까지 집약되어 있다. 이렇게 수집된 자료들은 곧바로 그 성격에 따라 분류된 후 목록화가 이루어진다. 목록에는 자료별 내용과 제작 연대, 보관된 위치까지 표시가 되어 전산화를 거쳐 관리하고 있다. 또한, 누구나 원하는 자료를 쉽게 검색하고 열람할 수 있게 되어 있다.41 한국기독교장로회, 기독교한국침례회 등은 교단 관련 주요 기록들 곧 총회 산하 기관 중요 기 록과 노회 기록 등을 보관한 정도이다. 이와 달리 그 외 교단은 이 정도의 초보 단계도 진행되고 있 는 모습은 발견되지도 않고 있다. 더군다나 선교 사료라는 특정 분야로 한정하여 보면 거의 없는 실 정이다.
한국 선교 관련 사료는 각 교단보다는 몇몇 기관에서 일부를 소장하고 있다. 그것은 선교사 관 련 사료들로써 주로 이들을 파송한 교회와 선교회, 선교사의 출신 신학교, 선교사의 가족, 기독교 역 사와 관련된 기관과 정부 기관 그리고 대학 도서관 등에 보존되어 있다. 현재 국내 선교 사료 소장 사 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42 국사편찬위원회 한국 역사 자료 통합 시스템은 명지대학교 국제한국 학연구소의 한국 독립운동사 정보시스템,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등에서 제공하는 선교 관련 사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의 경우는 기독교 기관과 선교 사들이 발행한 신문과 잡지, 신학교육을 위한 교재, 미감리회의 장정과 규칙, 교회 조례 원본 자료를
40 기독신문, “총회 사료실 정비 시급하다 ① 먼지 쌓인 역사 어떻게 하나.”
41 기독신문, “총회 사료실 정비 시급하다 ② 역사 자료 관리 첫걸음부터,” 2019. 6. 25일자.
42 이유진.윤은하, “기독교 역사 기록의 통화관리를 위한 기술 규칙 연구,” 「한국기록관리학회지」 17/1 (2017): 11-13; 장윤금, “우리나라 초기 외국인 선 교사 자료의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필요성 연구(1800-1910),” 272; 이은진 외 2인, “영락교회 역사자료실의 수집 정책 개발에 관한 연구,” 「한국기록관리학
회지」 15/2 (2015): 144-145.
소장하였으나 특정 연구자들에게만 이용이 제한되고 있다. 양화진 문화원은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안장된 선교사는 물론 순교자 기념관에 현양된 순교자를 중심으로 한국 기독교 선교 역사 및 인물 연구와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은 초기에 내한한 외국인 선교사들과 관련된 원자료를 가장 많이 소장된 기관 중 하나이다.43 이에 반해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는 초기 외 국인 선교사 관련 자료 복사본이나 마이크로 형태로 된 다량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그런데도 선 교 사료 현황에 나타난 바와 같이 현재 선교 사료는 국내외 여러 기관에 산재해 있으나 소장 사례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국내에 산재해 있는 기록물에 대한 통합 검색 포털시스템이나 소장된 정 보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은 현재까지도 미비한 실정이다. 특히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본국에 보내진 관련 자료들은 관련 기관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나 개인 소장자료들에 대한 수집 및 아카이 브 구축한 사례는 매우 빈약함은 물론 그 소재 파악도 제대로 된 것도 없는 실정이다. 지금까지 살펴 본 바와 같이 선교 사료를 목록화 작업은 시급한 한국 선교 계의 과제임을 알 수 있다. 특히 타종교 인 천주교와 불교계의 사료 관련 목록화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기독교의 안일한 역 사의식을 보게 된다. 이를 살펴보자.
- 한국천주교의 사료 목록화
한국천주교는 사료의 중요성을 빠르게 인식하고 (사)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가 사업 주체가 되어 한국천주교 사료 목록화 사업 추진위원회를 2016년에 조직하여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들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10개년 동안 전국에 산재한 천주교 사료의 전수조사, 목록 개발, 사료 관리 및 검색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으로 11개 교구와 (재)한국교회사 연구소로 이 원화로 이 사업을 추진하여 매년 사료 목록 보고서를 결과물로 발표하고 있다. 2018년 사료 목록 조 사 연구 용역 최종보고 자료집에 나타난 내용 중 일부를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44
이 사업의 목적은 첫째로 한국천주교 사료의 기초 현황을 파악하여 그것을 토대로 한국천주 교 사료를 체계적으로 정리 및 관리하고, 둘째로 한국천주교 사료의 통합 관리 및 서비스를 위한 디 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하여 한국 천주교회사 연구의 활성화 및 인접 분야와의 교류 증진을 위한 초 석을 마련하는 데 있다. 이 추진위원회는 매년 시간의 범주와 공간의 범주를 정하여 보완과 확장을 하고 있는데 2018년 10월로 총 21,726건 56,451점의 사료를 조사하였다. 조사 방법은 사료 소장처 및 사료 조사 기관과 연구 용역 계약을 체결하여 용역 조사 기관에 소속된 연구원이 현장에서 실물 을 조사하고, 조사한 사료의 정보를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가 구축한 사료 등록 시스템에 사료 유형 별로 등록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또한 사료 소장처와 합의가 된 경우 원본 문서와 사진은 스 캔하고 박물은 사료의 특성에 맞게 촬영하고 있다.
43 장윤금, “우리나라 초기 외국인 선교사 자료의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필요성 연구(1800-1910),”
44 한국천주교 주교 회의.한국천주교 중앙 협의회, 「2018년 사료 목록 조사 연구 용역 최종보고 자료집」 (2018. 12).
- 불교의 사료 목록화와 아카이브 구축
불교계의 한국천주교보다 먼저 사료 목록화 사업을 문화체육관광부와 연계하여 추진하였다. 불교계는 사료 목록화를 천주교 보다 약 10년 앞서 추진하였다. 그런데도 그들은 불교 사료의 수집 과 조사가 시급하다고 강조하였다. 당시 부륙신문의 칼럼에서 사료의 중요성과 관리가 늦어짐으로 손실되는 사료에 대한 안타까움과 시급한 마음을 보여준다.45
불교 고전 번역만큼 중요한 일이 사료의 수집과 조사다. 전국의 사찰에 분포된 비석과 현판 등은 훌륭한 불교 사료라고 할 수 있다. 비석에는 사찰의 역사와 그 속에서 수행하 며 대중과 함께했던 스님들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전한다. 바로 우리 불교 역사의 한 부 분이다. 그렇지만 사찰의 비석은 일부 문화재로 지정된 것을 제외하고는 노천에 방치된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해가 다르게 훼손이 심해지고 있다. 특히 조선 시대 후기 이후의 비석은 정확한 현황조차 파악돼 있지 않다. 또 불교 사료의 중요한 부분인 현판 (懸板)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사찰의 역사와 고승의 행적이 무궁하게 담겨있는 현판은 공력이나 비용 면에서 비석보다 더 만들기 쉬워 훨씬 많은 숫자가 전하고 있다. 하지만 훼손도 그만큼 빠르다. 몇 년 전 한 사찰을 조사할 때 부엌 아궁이에서 장작으로 쓰일 뻔 한 현판을 구해 내온 경험도 있다. 사찰에서의 현판에 대한 인식이 이러할진대 이미 얼 마나 많은 자료가 쉽사리 없어졌을 것인지 미루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비석과 현판 등 중요한 불교 사료들이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불교계는 사료 목록화를 넘어서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시스템을 구축하고 서비스를 제공 하는 상태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이는 2012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과 동국대학교 불교학술 원 주관으로 한국 불교가 유산으로 남긴 다양한 전통문화 기록물에 대한 집성과 역주 작업을 통하 여 그 성과물을 디지털 아카이브로 구축(https://kabc.dongguk.edu/)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 해서 불교 기록물의 체계적 관리와 학술 연구에서 활용하도록 구축한 것이다. 그 서비스 시스템은 통합 대장경, 한국불교전서, 신집성문헌 등 세 가지로 구분되었다. 이러한 불교계의 역사자료 관리는 문화재의 계속된 발굴과 국제화를 시도하면서 유네스코 등록까지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또한, 이 시스템은 사용자의 편의성을 위하여 개인화 서비스를 다양화하여 누구든지 쉽게 불교 기록에 접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그 시대의 불교 지식은 물론 문화를 느끼고 공유하도록 지속적인 작업도 진행 하고 있다.
- I 선교 사료의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45 부륙신문. “불교 사료 수집과 조사 시급하다,” 2007. 11. 28일자.
- 디지털 아카이빙 구축과 외국 사례
정보화 디지털 사회에서는 컴퓨터 시스템에 의한 방식, DB 구축, 표준화된 색인, 전문 용어의 통 일, 자료의 저장 문제가 핵심적인 공동의 과제가 되고 있다. 동시에 인터넷은 정보 활용자의 증가와 관련 기관의 역할을 중복시키고 있다. 따라서 유사 기관과 함께 각 지역과 각 국가의 동종과 이종 기 관에서도 상호 협력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선교 사료의 목록화를 넘어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것은 필수적인 과정으로 보인다. 오늘날 아카이브의 의미는 “영구히 보존할 가치가 있는 기록 자료를 체계 적으로 보존하는 장소 또는 기관”이다. 프랑스 대혁명 기간 중인 1789년에 설립된 프랑스 국립 아카 이브(Archives nationals)에서 시작한 아카이브는 한국에서도 2000년, “공공 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다. 또한, 기록물의 보존과 아카이브 학회가 조직되고, 아카이브
관련 작업에 근무할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학과도 설치.운영 중이다. 이러한 디지털 아카이빙의 초
기 개념은 디지털 자료의 수집과 저장, 아날로그 자료의 디지털화 등 좁은 의미로 인식되었으나 오늘
의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에서는 “지속적 가치를 가졌다고 판단되는 디지털 객체를 장기간 관리하는 활동으로 즉 가치가 있는 디지털 자원을 선별하여 그 내용 및 기능을 보존 관리하고 장기간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전반적인 활동을 포괄하는 확장된 개념”46으로 정의되고 있다.
지난 30여 년간 한국 역사 자료의 디지털 아카이빙 구축하는 연구와 프로젝트는 국가도서관, 연 구 기관과 대학교 도서관을 주축으로 활발히 진행되어왔다. 이와 같은 아카이브 시스템은 첫째로 작 업을 편리하게 하고 공동 작업을 가능하게 하며, 둘째로 집적된 자료를 공유할 수 있게 한다. 셋째로 개별 연구소나 소장 기관의 성장을 지지해준다는 점에서 사료의 수집과 공유에 기여할 수 있다. 오 늘날 아카이브 시스템은 기관별 개별 서버와 독립 시스템을 배타적으로 운용하는 종래의 방식에서 탈피해 상호 운용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또한, 인터넷 사용자들이 다양한 형태로 올 린 기록과 영상은 물론 심지어 그들의 의견과 감정이 쌓이는 실시간 저장소가 되어 사용자가 올린 디 지털 기록물은 그것이 저장되는 서버에 상관없이 사이버스페이스라는 가상의 공간 안에 저장된다.47 대표적인 사례를 살펴보면 미국의 의회 도서관(Library of Congress), 영국 국립도서관의 국제둥황 프로젝트(표e International Dun- huang Project), 체코 국립도서관의 Manuscriptorium, 네덜란드 국립도서관의 (IMPACT Project) 등이 있다.48 이러한 아카이빙은 한국에서도 각계각층에서 활발 하다. 특히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근대문화유산 조사 및 목록화 사업과 아카이브 작업이 성행하고 있 다. 이는 각 대학 도서관도 새롭게 변화를 모색하여 종합정보실로 그 성격을 바꾸어 가고 있어 결국 기독교계도 더 미룰 수는 없을 것으로 보여 선교 사료도 결국 아카이브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46 설문원, 『국가 디지털 아카이빙 체제 구축에 관한 연구』 (서울: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2005), 3.
47 백욱인, “빅데이터를 둘러싼 전유 싸움: 디지털 아카이브를 중심으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SSK 위험정보사회 연구팀 8회 정기 세미나 자료집 (2011):
3-4.
48 장윤금, “역사 자료의 디지털 아카이빙 방안 연구,” 「한국비블리아학회지」 21/4 (2010): 193.
- 한국 선교 사료가 소장된 아카이브 현황
한국 선교 사료의 아카이브를 가진 것은 밝혀진 것은 아직 없다. 다만 해외에서는 국내와 달리 주로 아카이브 형태로 한국 선교 사료를 보관 유지하고 있다. 해외 기관에서 확인된 한국 선교 관련 사료 아카이브 중에서 한국 초기 미국인 선교사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북 장로회 아카이
브는 ‘Presbyterian Historical Society’ 혹은 ‘Princeton 표eol- ogical Seminary Library’이다.49 특 히 아카이브는 검색 자가 필요한 주제와 관련된 자료를 쉽고 빠르고 다양한 자료를 찾을 수 있다. 정
희선 외 3인도 “개화기 방한 서양인 기록물의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에 관한 연구”50에서 서양인들 특
히 선교사들이 남긴 기록물의 가치를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 서양인들에 의해 조선의 지리 적 특성과 생활상을 견문록 등의 형태로 남긴 작품들은 개화기 조선 시대 생활사 연구를 위해 매우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면서 “…이들의 활동 및 기록에 대한 자료의 수집과 분석은 체류자 개 인의 신분상 기록물로서의 개념을 넘어 우리나라 근대 역사를 재조명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
될 수 있을 것”51이라고 평가하였다.
또한, 선교사들이 일상생활에서 겪었던 어려움 통해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 를 제공하여 준다. 언더우드의 자료를 통해서도 본국에 보낸 서신, 파송 선교 기관에 보낸 선교 보 고서, 저서, 일기 등에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는 조선의 정치와 경제, 문화의 변화 에 적응하면서 경험한 다양한 에피소드 등을 포함하고 있다.52 이러한 내용 대부분은 그 당시 이러 한 대부분의 선교 사료를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는 미국 온라인 컴퓨터 도서관 센터 인 Online Computer Library Center(OCLC)이다. 이 센터에서 제공하는 아카이브 종합목록 데이 터베이스인 아카이브 그리드를 통해서 파악할 수 있다.53 또한, 개별 아카이브로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의 UCLA 아카이브에는 1885부터 1910년까지 한국에 파송된 초기 미국인 선교사들의 출신 대학에 대한 정보가 정리되어 있다.54 이를 통하여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들의 파송 단체 혹은 출신 대학에 대한 정보는 해당 선교사들의 기록물을 소장하고 있는 기관에서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 선교 사료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방안
49 장윤금의 “우리나라 초기 외국인 선교사 자료의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필요성 연구(1800-1910)” 자료를 수정 보완함.
50 정희선 외 3인, “개화기 방한 서양인 기록물의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에 관한 연구,” 「한국문헌정보학회지」 49/3 (2015): 136.
51 정희선 외 3인, “개화기 방한 서양인 기록물의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에 관한 연구,” 136.
52 Horace H. Underwood, “Travel in Korea: Missionary encounters at the turn of the twentieth century,” Transactions of the Royal Asiatic Society (2003): 78.
53 이 아카이브 그리드는 천 개가 넘는 미국, 캐나다 등의 지역 도서관, 박물관. 역사협회가 소장하는 400만여 개의 역사 기록물의 정보에 접근하게 하는 웹사이트다. 한미경.장윤금, “개신교 교육 선교사들의 편지(1885-1941),” 37-38.
54 초기 미국인 선교사들 대부분 자료가 프린스턴신학교, 맥코믹신학교, 또는 북 장로회 아카이브 등에 보존되었다고 추정하는 이유는 이들의 47.9%가 장로회 소속인 맥코믹신학교 혹은 프린스턴신학대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선교 사료의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방안을 논하고자 한다. 먼저 선교 사료는 그 특징이 여
러 기관에 산재해 있고, 자료 자체가 난해하며, 사료 집성 사업 범위가 오래된 것에서 출발하므로 대 부분 아날로그 자료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특징을 고려할 때, 선교 사료 아키이빙 시스템 은 첫째로 분산과 통합의 균형을 지향하는 네트워크 시스템, 둘째로 상세 기술과 해제 등을 포함하 는 지식 전달 시스템, 셋째로 공유를 극대화하는 디지털 콘텐츠 시스템의 성격을 지녀야 한다고 본 다. 따라서 이 작업은 서둘러 시스템을 구축하는 그것보다는 장기적으로 지속해야 사업으로 예상하 고 자료 집성 사업을 진행하면서 목록화와 함께 시스템 구축에 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 선교 사료의 목록화를 위한 표준화
선교 사료의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은 사료의 목록화는 밀접하게 관련성을 가진다. 사료의 목 록화는 사전 준비작업으로 무엇보다도 선교 사료에 적합한 표준화된 분류안을 만드는 일이 필요 하다. 표준화 작업에서 모범적인 사례로 유럽 여러 나라 역사가들의 사료집 편찬 노력에 자극제가
된 500-1500년 독일 역사의 종합 사료집(문헌집)인 「게르만역사문헌집(Monumenta Germaniae
Historica)은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다.55 이 문집은 1819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돼 지금까지 보 완·개정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방대한 사업이다. 현재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모든 문헌 자료들 을 pdf 파일로 제공하고 있다. 국내 사례로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전자 사료관 사업위원회가 수집한
국내외 다양한 사료를 기록학의 경험과 성과를 활용해 체계적으로 정리.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수행 하고 있는 사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자료 정리의 기본 방침과 메타데이터 세트 제작 등에 활용된 기본 지침은 ISAD(G)이다. ISAD(G)는 세계기록관리협의회(ICA)에서 발행한 기록물 기술(記述)의 국제 표준이다. 위원회는 2000년에 발행된 개정 표준을 기준 지침으로 삼았고, 이를 위원회 사정에 맞춰 수정해서 사용하고 있다. ISAD(G)는 사료 수집부터 보존ㆍ관리 및 활용의 모든 단계에 최적화된 표준안으로 알려져 있 다. 이러한 표준안은 사료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기관이나 단체가 사료 목록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계 층화하는 기준을 마련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ISAD(G)의 핵심은 기술 대상 단위를 다양한 레벨로 계층적으로 구성하고, 일관되고 체계적인 메타데이터 세트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선교사료 목록화 사업에서 현실적인 문제는 전산 시스템을 언제, 어디에 만들 것인지가 될 것이다. 물론 대상 사료의 범위, 기술 대상 사료의 계층 구조 확정, 메타데이터 확정, 메타데이터 작성을 위한 업무 흐름 확정 등 이 이뤄졌다면 전산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일이다. 과제가 모두 확정되면 전산 시 스템을 유지하는 비용도 문제가 된다. 전산 시스템은 데이터의 성격과 업무 체계에 따라 만들어지는
55 게르만 역사 문헌집을 만들기 시작한 사람은 19세기 독일의 뛰어난 정치가이며 개혁가인 카를 프라이헤어 폰 슈타인(1831 죽음)으로서 그는 1816년 정 계에서 은퇴한 후 자신의 애국적인 정열을 독일 역사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쏟았고, 1819년에는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고대 독일 사료편찬협 회’를 창설했다.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01g2407a 2019년 9월 28일 접속
것이지, 전산 시스템이 데이터의 성격과 업무 체계를 규정하지는 않는다.
- 선교 사료 아카이빙을 위한 기초 작업
선교 사료를 아카이빙을 구축하려면 다음과 같은 먼저 기초 자료를 제공하도록 방향이 필요하 다. 그 구체적인 작업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사료의 수집과 보존할 공통적이고 체계적인 표준 화 작업과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남희는 그의 연구에서 디지털 아카이브가 필요한 실 용적 측면으로 표준화하여 정보 자원이 상이한 정보 시스템 사이에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호환성, 상호 운용성이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이용자가 손쉽게 자료를 검색하고 열람할 수 있 는 검색 시스템을 구축하는 편의성을 강조하였다.56 선교 사료가 다양한 곳에 산재할 뿐 아니라 사료 들이 제 따로따로인 형태로 방치되거나 다른 유형으로 소장 되고 관리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향후 기관 간의 협력 체제를 위한 통합적인 DB 구축을 위해 표준화 작업과 시스템 구축은 선행되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작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로 원본성의 유지하기 위한 메타데이터 구축 등 내용의 기술과 도구 지속적인 개발과 연구 가 필요하다. 이러한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과정의 핵심은 기술적 선점에 있기보다는 원본성, 진 본 성을 유지하고, 내용적 측면에서 완성도를 충실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새로운 차원의 자료 수 집과 분석 그리고 분류 체계 같은 심도 있고 체계적인 작업이 필요하다.57 해외 기관에 소장된 원자료 의 복사본 또는 마이크로필름 등의 보존상태는 물론 한국의 기관들도 제대로 소장하고 관리는 기관 은 매우 드물다. 따라서 이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기술개발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로 선교 사료 관계기관 간의 협력 체제를 형성하는 구축이 요청된다. 즉 사료 목록화 과정에 서 관련 기관들이 수집과 보존에 대한 분담, 중복된 수집 방지의 협의가 필요하다. 또한, 각 기관 간 의 협의를 통해 네트워크 구축과 원자료의 소장 정보와 함께 원자료를 활용할 수 있는 접근 등이 필 요하다. 한국의 경우에는 역사 관련 자료의 디지털 아카이빙 구축하려는 프로젝트 연구와 2004년 국립중앙도서관이 한국 고전적 종합목록 시스템(KORCIS)을 개발하였다. 국가기록원의 나라기록 포털시스템과 중앙기록관리시스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향토문화대전시스템 등의 개발이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58 또한, 강순애는 “근.현대 지역 사료 수집, DB 구축 및 공동 활용 연구”59에서 “자
료의 공동 활용을 위하여 협의체의 구성이 필요하다. 사료의 DB 구축은 연관 기관들의 협력 체제를 통하여 업무를 분담하여 협업함으로 사료의 중복 수집 방지 등의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60 는 것 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선교 관련 사료 목록화 작업 역시 관계기관 간의 협력체계 구축을 통한 DB
56 이남희, “생활사 아카이브 구축을 위한 문서 자료의 조직-고문헌 전자문서 편찬과 표준화-,” 2006. 「영남학」 14 (2008): 73-74.
57 함한희.박순철, “디지털 아카이브 문제점과 방향-문화원형 콘텐츠를 중심으로-,” 「한국비블리아학회지」 17/2 (2006): 27.
58 장윤금, “역사 자료의 디지털 아카이빙 방안 연구,” 194.
59 강순애, “근.현대 지역 사료 수집, DB 구축 및 공동 활용 연구,” 한국기록관리학회 2008년도 추계공동학술발표논집 (2008).
60 강순애, “근.현대 지역 사료 수집, DB 구축 및 공동 활용 연구,” 93.
구축이 요구된다.
넷째로 사용자 중심의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용자의 기대와 요구 및 인식도를 파악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힐러리 젠킨슨(Hilary Jenkinson)은 “아키비스트의 주된 책 임은 기록이 가진 특성들을 완전하게 보전하고 지켜내는 것이라고 규정하며, 이 임무를 완수한 뒤, 이용자들의 기록 정보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61고 말했다. 여러 연구를 통해 먼저 이 용자들의 다양한 기록 정보요구 파악이 필요하다. 사료를 관리자는 기록을 이용하는 이용자들이 누구이며, 기록 정보를 이용하는 의도에 대해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나아가 각각의 다른 이용자 집 단의 정보 탐색 패턴 행위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62 따라서 이용자 중심의 적극적 기록 정보 서비스 가 필요하며, 이용자를 위한 고객 맞춤 서비스가 요청된다.
마지막으로 선교 자료의 디지털 아카이브를 지속화하려면 관련 공간과 전문 인력은 물론 장기적 인 정책과 재정을 마련할 방안이 필요하다. 외국의 경우 아카이브 서비스를 관리하는 책임과 관련 교육, 방법의 유무와 이용자 책임, 윤리와 법령, 제도가 투명하고 명확하게 제시되고 있다.63 그러나 이정연과 최은주는 국내 앱 서비스 중 “가장 중요한 윤리와 법적인 문제에 관한 언급이나, 법적인 이 용과 공개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제시되고 있지 않다.”64고 지적하면서 “서비스 대상자의 윤리적 법적 인 정책과 가이드라인도 개발할 필요가 있다.”65는 점을 강조하였다.
- V. 결론과 기대 효과
한국의 기독교는 외국인 선교사가 활동하기 이전에 한 쪽짜리 성경, 쪽복음 성경이 자발적으로 민간에 공급되면서 이루어졌다. 선교사들의 내한과 더불어 한국 교회는 뿌리 깊은 선교 사상이 형성 되면서 선교 강국으로 성장하였다. 그 결과 초기 교회로부터 지금까지 한국 선교는 국내는 물론 해 외 선교 현장에 많은 선교 사료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선교 사료들은 국내외에 산재해 있고 체계적 인 보존 및 관리는 주목을 받지 못하고 방치괸 `실정이었다. 이에 본고는 선교 사료의 효율적인 소장 과 활용을 위한 목록화와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하기 위한 기초적인 당위성과 자료를 제공하려고 하 였다. 선교 사료의 목록화와 디지털 아카이빙 작업은 역사적 자료를 보존하고 이를 다음 세대에 전 하기 위하여 중요한 과업이다. 그런데도 한국 선교의 사료와 관련된 목록화 온라인 아카이브 구축사 례가 미미한 실정이다. 서로 유기적인 협력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또한, 국내외 여러 기관에 산재해 있어 사료들을 위한 통합 검색이나 소장된 정보의 확인이 가능한 시스템의 체계적인 구축은 매우 빈 약한 상태에 있다. 따라서 선교 사료의 목록화와 디지털 아카이빙 작업은 그 필요성은 물론 시급성
61 Hilary Jenkinson, A Manual of Archival Administration(London, NY: Oxford Press, 1922), 107.
62 윤은하, “기록 정보 서비스와 정보 공개-이용자 중심의 서비스 논쟁을 중심으로-,” 「한국기록관리학회지」 12/2 (2012): 177.
63 이정연.최은주, “웹 구슬 사료 아카이브 정보시스템의 설계 및 심사용 가이드라인 개발에 관한 연구,” 「정보관리 학회지」 26/4 (2009): 291.
64 이정연.최은주, “웹 구슬 사료 아카이브 정보시스템의 설계 및 심사용 가이드라인 개발에 관한 연구,” 293, 296.
65 이정연.최은주, “웹 구슬 사료 아카이브 정보시스템의 설계 및 심사용 가이드라인 개발에 관한 연구,” 293, 296.
을 가진 한국 선교계의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결론적으로 선교 사료의 목록화로 인하여 어떤 기대 효과가 있을까?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한국 기독교 선교 사료의 보존 현황과 관리 실태 파악 및 효율적인 통합 관리를 위한 표준안 마련된다. 둘째로 기독교 선교 사료의 디지털 아카이빙과 인터넷을 통한 자유 검색을 바탕으로 기독교에 관한 관심을 높이며, 관련 연구의 활성화 및 대중화에 기여할 수 있다. 셋째로 사료의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통해 자료 검색 및 활용 등 중복 노력에 들어가는 시간적ㆍ경제적 비용 절감하게 된다. 넷째로 기독교 선교 사료 정보에 관한 IT 경쟁력 강화 같은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선교 사료의 아카이브 구축으로 효과적인 전략 선교의 방향성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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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GPT 인공지능의 선교 목회적 도전과 대응방안 / 김윤태 교수 (대전신학대학교, 신성교회)
- I. 들어가는 말
ChatGPT란 CHAT에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GPT)가 합쳐진 합성어로 2015 년 샘알트만(Sam Altman)과 일론머스크(Elon Musk)가 공동 창업한 Open AI가 개발한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다. 기존의 인공지능 서비스와 달리 이 프로그램은 언어에 특화돼 사람이 하는 질 문의 의도와 맥락까지 이해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사실 인공지능 분야에서 언어처리는 대단히 어려 운 기술이었다. 1950년대부터 개발된 기호기반 인공지능은 기계에게 세상을 설명해주는 방식이었지 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1980년대에는 반대로 인공지능 스스로 학습하게 만드는 기계학습 인공지 능이 등장했지만, 이것도 실패했다. 그러다 2010년대에 심층학습, 일명 딥러닝 인공지능 기술이 등 장하면서 비로소 기계가 세상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후 구글의 바스와니(Vaswani)가 트랜스포머 (Transformer)라는 알고리즘을 발표했는데,1 이것은 문장 속 단어와 같은 순차 데이터 내의 관계를 추적해 맥락과 의미를 병렬로 처리해서 학습하는 알고리즘이었다. 이 과정에서 언어처리 능력이 획 기적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ChatGPT가 바로 이 트랜스포머 구조를 갖추고 있다.
ChatGPT는 기존 딥러닝 기술과 달리 주어와 서술어 간의 관계를 확률적으로 인지하여 추론하 고 문맥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드디어 인간의 말을 알아듣고 대화할 수 있는 인공지 능이 출현한 것이다. 2022년 11월 30일 ChatGPT 3.5버전이 처음 공개되었는데, 출시된 지 5일 만 에 이용자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섰고, 40일 만에 1000만 명, 두 달 만에 1억 명을 돌파하기에 이르렀 다. 2023년 3월 23일에는 ChatGPT plugins까지 공개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 신 기술이 앞으로 우리 사회와 삶뿐 아니라 선교와 목회현장에서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 데, 본 논문에서는 앞으로 어떻게 인공지능이 선교와 목회 현장에 활용될 수 있을지, 그 부작용은 어 떤 것들이 있을지, 있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전망해 보고자 한다.
1 Ashish Vaswani, Noam Shazeer Niki Parmar Jakob Uszkoreit Llion Jones Aidan N. Gomez Lukasz Kaiser Illia Polosukhin, “Attention is All You
Need” NIPS (2017).
- II. ChatGPT 인공지능을 활용한 선교와 목회
ChatGPT로 대표되는 인공지능 기술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선 교와 목회 분야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한국교회는 교인감소와 함께 저출산 고 령화로 심각한 일꾼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학령인구 감소와 신학 지망생의 감소로 인한 목회 자 수급 부족도 문제다. 현재 대부분의 신학교가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으며, 이미 지방 도시에 서는 부교역자 수급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선교사 후보생도 감소하여 선교지 에서는 은퇴 선교사의 공백을 메워줄 신규 선교사 수급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위기 속에 어쩌면 ChatGPT와 같은 인공지능 서비스가 부족한 사역자의 빈 자리를 채울 수 있지 않을까? 목회와 선 교 현장에서 어떻게 인공지능 서비스가 활용될 수 있을지 다음과 같이 전망해 보았다.
- 사무 행정업무
인공지능 기술은 목회나 선교 현장에서 교회 행정이나 전반적인 사무업무에 큰 도움을 줄 수 있 을 것으로 보인다. 교회 행정업무 중 상당수가 한글, 파워포인트, 액셀과 같은 오피스 문서작업이다. 인공지능 기술은 이런 단순 작업 시간을 대폭 줄여주어 사역자의 업무량을 줄여주는 데 크게 이바 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는 생성 AI기술을 활용해 마이크로소프트 365 코파일럿(Microsoft 365 Copilot)2을 공개했는데, 간단한 자연어 입력만으로도 성경 공부에 필 요한 문서나 주보, 혹은 예배 때 쓸 파워포인트를 알아서 만들어 내준다고 한다.3 교회재정이나 선교 지 회계업무에 있어서도 인공지능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교인들의 헌금 자료나 수입 지출 내역만 알려주면 굳이 복잡한 액셀 함수를 외우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회계 자료 형태를 얼마 든지 만들어 줄 수 있다. 그 외에도 인공지능서비스가 SNS나 홈페이지와 결합하여 교회나 사역 홍 보에도 적극적으로 활용되면 전도사역의 형태도 많이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4 부교역자나 사무간사, 혹은 젊은 봉사자가 부족한 시골교회나 개척교회, 혹은 선교사 혼자 모든 업무를 처리해야 할 선교 지에서는 인공지능 서비스가행정 사무인력을 대체함으로써 사역자의 업무를 많이 줄여줄 수 있을 것 같다.
- 전도 및 목양 사역
선교나 목회 현장에서 ChatGPT 인공지능 기술은 전도나 목양, 교인 관리에도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SNS와 결합된 기독교 인공지능 서비스는 창의적 접근지역이나 대면전도가 어려운 지역에 기독교 복음을 전달하는데 훌륭하나 도구가 될 수 있다. 특히 ‘디모데’나 ‘스데반,’ ‘오직교적’
2 대화형언어모델(LLM)과 비즈니스 데이터, 마이크로소프트 365 앱을 결합해 사용자의 창의성, 생산성 향상을 돕는 차세대 AI 기술이다.
3 Microsoft, “마이크로소프트, 모든 업무 생산성 도구에 초거대 AI 결합,” 2023.3.17., https://news.microsoft.com/ko-kr/2023/03/17/introducing- microsoft-365-copilot/.
4 이시한, 「GPT 제너레이션: 챗 GPT가 바꿀 우리 인류의 미래」 (서울: 북모먼트, 2023), 132-143.
같은 기존의 교회 관리 소프트웨어들과 결합하여 기존 교인 관리에도 적극적으로 활용될 것으로 예 상되는데, 교인들의 성향, 지역, 나이, 직업, 관심사별로 분류하거나 헌금 출석통계와 연동하여 영적 인 상태를 분류해서 적절한 목양 지침을 자문받도록 서비스를 연동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교적 관 리프로그램에 평소 교인들의 출석, 헌금, 신앙 상태를 입력해 놓고 있다가 심방 때가 되면 그 교인에 게 필요한 말씀이나 설교문, 혹은 권면 내용을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서 자문받는 것이다. 심지어
그 주간 성도들의 검색어를 인공지능으로 하여금 조사하게 해서 성도들의 관심 키워드나 주요 관심 사에 맞는 설교를 준비할 수도 있다.
교회 리더들도 ChatGPT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서 선교사나 목회자의 목양 사역을 도와줄
수 있다. 성도들이 신앙적인 문제나 삶의 고민을 물어볼 때 전문적인 신학훈련, 상담훈련을 받지 않 은 평신도 지도자들은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인공지능 서비스는 성도 개개인의 상황 에 맞는 적절한 상담지침을 제공하여 사역자의 목양 사역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5
지금은 프롬프트 상에서 텍스트에 기반한 인공지능 서비스만 제공되지만, 앞으로 음성이나 동영 상 입출력이 가능한 상황이 되면 CCTV를 통해 교인들의 얼굴을 인식해서 출석상황이 기록되거나, 얼굴표정, 옷차림새, 혹은 목소리까지 인식하여 교인들의 영적인 상태, 혹은 가정상태까지 진단 분류 되는 날이 올 것 같다. 어쩌면 인공지능 심방 전도사, 인공지능 심방권사라는 이름의 서비스가 출시 될 날도 곧 올 것 같다. 예를 들어, 선교사나 목회자가 심방을 하거나 구원상담을 할 때 모든 대화 내 용을 인공지능이 요약 정리하게 해서 교적 프로그램에 입력시키고, 적절한 성경구절이나 권면을 실 시간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 설교와 교육, 상담 사역
ChatGPT 인공지능 기술은 Naver나 Daum과 같은 포털, 혹은 Bing이나 Google 같은 검색엔 진과 결합하여 누구나 쉽게 보편적으로 사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연구나 교육 분야에 폭넓게 활용될 것으로 예상되는데,6 이미 학생들 과제부터 학술논문, 심지어 코딩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앞으로는 설교나 성경 공부에도 더 자주 이용될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 사역자들이 설교나 성경 공부를 준비할 때 사용하는 구글이나 네이버를 ChatGPT와 같은 인공지능이 빠르게 대체해 나가면서 설교 준비뿐 아니라 성경 해석, 석의(exegesis) 과정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본다.
목회자뿐 아니라 평신도들에게도 인공지능 서비스가 현재의 구글처럼 활용될 가능성이 큰데,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언제 어디서든 교리나 성경, 신앙생활에 관한 질문에 목회자 수준의 답변 을 얻어낼 수 있다. 교회학교에서도 폭넓게 사용될 수 있는데, 앞으로 미디어 처리기술이 좀 더 발전 하면 ChatGPT 인공지능으로 얼마든지 손쉽게 영상물을 제작해서 예배 중에 사용할 수 있고, 그
5 장보철, “목회상담에 있어서 인공지능의 유용성에 대한 연구,” 「장신논단」 Vol. 50 No. 2 (2018.06):305-328.
6 반병현, 「챗GPT: 마침내 찾아온 톡이점」 (서울: 생생북스, 2023), 71-94.
날의 설교, 혹은 성경구절과 관련된 노래를 인공지능으로 만들어내게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최근
Magix사에서는 자사의 디지털 오디오 워크스테이션 프로그램 Music Maker에 Song Maker AI라 는 기능을 추가하여 음악을 만들어 주는 대화형 생성 AI소프트웨어의 첫걸음을 내디뎠고, Adobe 사에서는 Adobe Firefly라는 그림을 그려주는 대화형 생성 AI 소프트웨어를 출시하기도 했다. 미래 학자 최윤식은 이미 2018년에 이런 상황을 예측하면서 다음과 같이 전망한 바 있다.
인공지능이 설교를 대신해서 만드는 능력을 갖는다고 해서 교회의 예배에 대한 성경적 이고 근본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단, 사역자와 성도를 구별하는 사역 자체의 간격은 좀 더 좁혀질 수 있다. 지금까지 교회 일들 중에서 상당수는 신학교에서 훈련을 받은 전문 사역자들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발전은 이런 일들 중에서 성경을 가르치거나 성경적 메시지를 영상이나 인터넷을 통해 전달하는 일은 전문 사역자가 아 니더라도 할 수 있는 기술적 배경을 만들어 준다. 지금까지는 설교자의 물리적 한계나 체력의 한계로 인해 설교 메시지 전달에 영상을 사용했지만, 인공지능 기술을 보편적으 로 사용하는 미래가 되면 알고리즘을 사용해서 성경 해석의 지적 부분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메시지 구성이 가능해진다.7
최근 어웨이크 코퍼레이션(Awake Corporation: 대표 김민준)에서 ChatGPT에 성경 데이터를 학습시켜 ‘주님 AI’라는 인공지능 예수를 출시했는데, 질문이나 고민을 물어보면 답변이 될 만한 성 경구절이나 해설, 기도문, 심지어 권면 사항까지 구체적으로 알려준다.8 2023년 3월 17일 출시한 뒤 마케팅 없이 단 일주일 만에 5만 명이 사용하며 큰 관심을 끌고 있는데, 앞으로 이런 종류의 AI 서비 스는 더욱 보편화될 전망이다. 홈페이지나 SNS, 혹은 메신저 서비스와 결합한 지역교회 특화 AI 서 비스 상품이 출시되면, 목회자의 역할을 인공지능이 점차 대체하여 새로운 21세기 디지털 고해성사 비즈니스 모델도 탄생할 것 같다.
- ChatGPT 인공지능의 도전과 전망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ChatGPT 인공지능 기술은 선교지와 지역 교회 현장에서 행정사무업 무, 목양, 설교, 교육, 상담 분야에 광범위하게 도입되어 부족한 봉사자의 업무를 대체해 나갈 것으로 보이는데, 반대로 여러 가지 문제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그중 몇 가지를 전망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 과몰입과 과의존, 오남용으로 인한 영성의 약화
7 최윤식, 「최윤식의 퓨처 리포트: 빅 테크놀로지편」 (서울: 생명의 말씀사, 2018), 117.
8 ㈜어웨이크 코퍼레이션, “주님AI: 말씀을 토대로 고민 해답을 찾아드려요,” 2023.4.7., https://chowon.in/.
가장 큰 문제는 인공지능에 대한 과몰입과 과의존, 그로 인한 오남용의 가능성이다. 지금도 이
미 우리는 각종 검색 사이트에 과몰입되어 살아간다. 과거엔 문제가 생기거나 어려움이 생기면 상 담을 요청하거나 기도부터 했는데, 오늘날에는 구글이나 네이버에 검색부터 하고 있다. 사색의 시 대에서 검색의 시대로, 말씀으로 검증하던 시대에서 구글로 검색하는 시대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ChatGPT 인공지능의 등장은 이런 현상을 더 가속하여 성령님의 인도함보다 인공지능의 조언을 더 신뢰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것은 자칫 성도들의 영성을 체험적 영성에서 지식적 영성으 로, 영성 형성(spiritual formation) 추구에서 정보(information) 습득 추구로 변질시켜, 결국 Grace Davie가 말한 것처럼 “소속 없는 믿음(believing without belonging)”9을 가진 플로팅 크리스천 (Floating christian)10을 대규모로 양산할 수 있다. 이런 우려 때문에 한국교회언론회는 지난달 16일 발표한 논평에서 “기독교는 과학 기술이 발달할수록 영성(靈性)이 약화되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며 “과학발전의 시대에도 여전히 모든 것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神性)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11
이런 현상은 선교사나 목회자에게도 예외가 될 수 없는데, 이전에는 목회자가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 강대상에 엎드려 기도하거나 기도원에 들어가 성령님의 인도를 구하는 일이 흔했다. 그러나 각 종 검색 사이트와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강대상이나 기도원보다 점점 컴퓨터 앞에 앉아 검색하는 시간이 더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더 발달하여 성도들의 검색어를 파악하여 그들의 필요 에 맞는 설교를 준비하는 것이 보편화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보다 성도들의 관심에 관한 빅데 이타에 더 의존하게 될 수 있다. 목회자의 인공지능 과몰입은 성령님의 말씀보다 인공지능의 정보에 더 의지하게 만들어 결국 목회자의 영성 약화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렇게 작성된 설교가 과연 하나님 말씀인지, 그런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거나 회심했다면 그것은 과연 성령 의 역사인지에 대한 신학적 목회적 숙고다. 다가올 AI 시대에 하나님보다 인공지능에 과몰입된 사역 자와 성도들의 영성 약화가 심각하게 우려된다.
- 정보의 출처와 정확도
현재 ChatGPT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정보의 출처와 정확도다. 제시된 정보의 출처를 알 수 없을뿐더러 교묘히 조작된 정보의 정확도는 실제 사실과 다른 경우가 많다. OpenAI 창업자 샘 알
트만도 AI의 위험한 구현 가능성을 밝히며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이러한 모델이 대규모 허위 정보에 사용될 수 있다는 점과 컴퓨터 코드를 더 잘 작성하고 있으므로 사이버 공격 등 악의적으로 사용될
9 Grace Davie, Religion in Britain Since 1945: Believing without Belonging (London: John Wiley & Sons, 1994).
10 코로나 이후 온라인이나 방송을 통해 예배를 드리거나 예배에 참석하지 않고 있는 현상을 빗대어 만든 신조어인데, ‘가나안 성도,’ ‘붕 떠있는 크리스천,’ ‘여기저기 떠도는 크리스천’을 말한다. 지용근 외 5명, 「한국 교회 트렌드 2023」 (서울: 규장, 2022), 31-33.
11 김진영, “챗GPT… 기독교, 영성 약화되지 않도록 힘써야,” 「기독일보」 2023.2.17.,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22679.
수 있다.”12 실제로 최근 ChatGPT의 거짓말에 대해서 논란이 되고 있는데, 가끔 ChatGPT가 제시
한 답변이 기존 알려진 사실과 완전히 반대거나, ChatGPT가 근거로 제시한 논문의 제목, 저널 정보 모두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딥러닝 과정에 서 잘못된 정보를 학습해서 발생할 수도 있고, ChatGPT가 가진 언어모델 기반 트랜스포머 구조의
AI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이것을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 환각)’이라고 하는데, ChatGPT가 가지고 있는 트랜스포머 알고리즘 방식은 앞에 나오는 단어 다음에 나올 단어를 확률적으로 유추
해서 정보를 생성하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거짓 정보를 생성할 가능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 쉽게 말 해, 애초에 ChatGPT는 정답과 진실을 찾아 말하도록 설계된 것이 아니라 가장 그럴듯한 언어들을 확률적으로 조합해서 나열해 나가다가 학습된 가중치 정보가 없으면 무작위로 말을 만들어내는 시 스템이기 때문이다. 최근 ChatGPT4에서는 많은 보완이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앞으로 더 고도화된 AI의 거짓말을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가 더 큰 숙제로 남겨졌다.
무엇보다 인공지능의 딥러닝 과정에서 이단이나 반기독교적인 의도를 가진 자들에 의해 생산된 가짜 뉴스가 대량으로 수집되어 제시되는 것도 문제다. 또한 정확한 출처 없이 ChatGPT가 임의로 생성한 거짓 교리정보로부터 신자들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지도 고민해보아야 한다. 김동환 교수 도 “기독교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 예를 들어 ‘구원은 어떻게 이뤄지나’ 등에 대한 질문을 이단 들이 활용, 온라인에 올리면 이 같은 데이터가 챗GPT의 답변으로 채택되면서 잘못된 정보가 전파 될 수도 있다”며 우려를 표한 바 있다.13
- 개인정보 유출과 보안
개인정보의 유출이나 보안도 문제다. ChatGPT와 같은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는 필연적으로 프롬프트 상에서 개인정보나 기밀을 제공할 수밖에 없으며, ChatGPT의 모든 대화 내용은 고스란 히 서버에 저장된다. 이 과정에서 개인정보 유출이나 회사기밀이 유출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실제로 최근 ChatGPT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되어 문제가 되었는데, 2023년 4월 3일 고학수 개인정보위원 회 위원장도 이 과정에서 한국 이용자의 정보도 공개된 것은 아닌지 조사 중이라고 한다.14
해킹이나 바이러스에 인공지능이 오용될 수 있는 문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OpenAI사는 ChatGPT 플러그인(Plugins) 기술을 공개했는데, 사용자가 다른 여러 애플리케이션을 바꿔가며 연 결해서 쓸 수 있게 만들었다. 쇼핑업체에서 쇼핑 관련 플러그인을 설치하면 쇼핑 GPT를 만들 수 있
12 최창현, “GPT-4 발표한 오픈AI ‘샘 알트만’, “AI가 사회를 재구성할 것이며 위험을 인정합니다, 이것이 조금 두렵습니다” 「인공지능신문」 2023.3.19., https://www.aitimes.kr/news/articleView.html?idxno=27595.
13 박재찬, “‘진격의 챗GPT’ 3분 만에 설교문 뚝딱… 목회 사역에도 충격파,” 「국민일보」 2023.2.7.,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 4285950&code=23111111&sid1=al.
14 김은성, “개인정보위 ‘챗GPT 한국이용자 정보유출 확인 중’” 「경향신문」 2023.4.4., https://m.khan.co.kr/economy/economy-general/ article/202304041024001?utm_source=google&utm_medium=news_app&utm_content=khan.
고, 여행업체에서 여행 관련 플러그인을 장착하면 여행GPT를 제작할 수 있다. 만약 악의를 가진 사
용자가 이런 기능을 이용해 해킹 GPT를 만들면 CCTV나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해킹할 수도 있고 정교한 스팸메일을 생성해서 유포할 수도 있다. 실제로 보안 업체 체크포인트에 의하면, 다크웹 내 포 럼에서 활동하는 사이버 범죄자들이 ChatGPT를 악성 공격에 활용한 사례들이 공유되고 있는데, 실제로 이미 여러 해킹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고 한다.15
이와 같은 문제들은 선교지나 지역 교회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ChatGPT가 상담을 도와주는 과정에서는 목회자나 선교사, 혹은 교인들의 개인정보가 노출될 수 있는데, 이것은 자칫 교회 전체의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 은밀한 개인 상담 내역이 다른 교인의 인공지능 이용 도중 드러난다면 그 교인은 교회에 출석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이단이나 반기독교 세력들이 악의적인 마 음을 품고 해킹하여 거짓된 정보를 성도들에게 제공하게 하면 이로 인한 피해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 윤리 도덕 법적 문제
무엇보다도 ChatGPT 인공지능의 큰 도전 중 하나는 윤리 도덕적 문제다. ChatGPT에게 목회 분야에서 인공지능 기술의 가장 큰 도전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을 하였다: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여 목회 분야에서 도전을 극복하고 교회를 발전시키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를 실행할 때는 항상 인간성과 윤리적 가치를 고려해야 합니다.
포스텍 AI 전문가 장민도 AI시대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로 저작권과 함께 윤리적 문제를 꼽았 는데,16 ChatGPT와 같은 대화형 AI가 사람과 자유롭게 대화하다 보니 대화 과정에서 욕설이나 인 종차별, 혹은 혐오성 발언을 습득하여 인간에게 제공할 가능성이 생겼다. 이미 국내서 이와 유사한 문제가 논란이 된 적이 있는데, AI 스타트업 스캐터랩(scatterlab)이 개발한 AI 챗봇 ‘이루다’는 2020 년 12월 말 국내에 공개되자마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 발언, 개인정보 유출 등의 논란으로 한 달도 안 돼 퇴출당하고 말았는데, 개인정보위는 2021년 1월 12일 조사에 착수해서 그해 4월에 과징금 및 과태료 1억원을 부과한 바 있다. 결국 이 사건은 국내에 AI 서비스의 개인정보 오·남용 위험성과 윤리적 가이드라인 제도 마련의 필요성을 우리 사회에 인식시 키는 계기가 됐다.
15 김기은, “다크웹에서도 챗GPT 사이버 공격 활용 사례 늘어난다,” 「Tech M」 2023.2.6., https://www.techm.kr/news/articleView. html?idxno=106510.
16 장민, 「ChatGPT: 기회를 잡는 사람들」 (서울: 알투스, 2023), 221-244.
최근에는 ChatGPT로 인한 표절, 지적 소유권 침해와 같은 법적, 도덕적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
되고 있다. 실제로 수도권 일부 대학에서는 ChatGPT 대필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는데, 2023년 3월 중순 연세대 교양과목 작문 수업에서 담당 교수가 ChatGPT 대필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한 수강생 의 과제를 ‘0점’ 처리한 바 있다.17 이런 문제가 반복되자, 연세대는 자체 지침을 만들어 교수진에게 전달했고, 중앙대는 ChatGPT를 활용해 표절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고 있다고 한다. 이런 표절, 혹은 저작권 문제가 목회자 설교에도 불거질 수 있는데, 예를 들어, ChatGPT의 도움을 받아 작성
한 설교문에 타인의 설교가 들어있다면 설교자는 자칫 원치 않는 설교 표절의 시비에 휘말릴 수 있 다. 목회에 있어서 ChatGPT 인공지능 서비스의 활용은 필연적으로 광범위한 설교 도용의 가능성 을 일으킬 텐데, 그렇게 만들어진 설교는 과연 누구의 설교라고 해야 하나? 목회자의 설교 준비가 깊 은 묵상과 신학적 숙고의 과정이 아니라 정교한 짜깁기로 대체된다면, ChatGPT가 만들어낸 정보 로 점점 채워져서 결국엔 원본은 사라지고 ChatGPT가 만들어낸 출처 불명의 정보로 가득해지고 말 것이다. 이것은 사역자에게도, 성도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 ChatGPT 인공지능에 대한 대응방안
샘 알트만은 앞으로 인공지능이 사회를 재구성할 것으로 보면서 수많은 일자리를 대체할 것으 로 보았다.18 필자는 교회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공지능은 교회의 사역 형태, 존재 방식에 도 많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본다. 물론 인공지능이 앞으로 어떻게 더 발전할지, 이사회에 얼마만큼 영향을 줄지 솔직히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유의해야 할 것은 인공지능이 자기 멋대로 진화하도록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기계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사고체계 를 갖추기 전에 하루속히 AI 윤리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AI가 통제 불능의 기술로 진화 하면 그로 인해 야기될 문제 또한 사람의 통제 영역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교회도 마찬 가지다. 인공지능이 무신론적인 성향을 보이거나 반기독교적인 성향으로 진화한다면 어떡할 것인가? 통제되지 못한 인공지능이 앞으로 목회현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 에 하루라도 빨리 인공지능 대응지침이나 윤리적 기준, 혹은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일선 목회 현장에 혼선이 없게 해야 한다. 필자는 앞에서 언급한 문제점들에 근거해서 초교파적, 교단적, 지역 교회적, 선교적 대응방안을 아래와 같이 각각 제안하고자 한다.
- 초교파적 대응방안: 인공지능 활용 및 윤리 가이드라인
교파를 초월해서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할 것은 인공지능 활용방안과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17 이승우, “연세대 ‘챗GP T 대필의심’ 과제 0 점 처리,” 「 동아일보」 2023. 3. 29., https://w w w.donga.com/news/Societ y/article/ all/20230328/118566463/1.
18 최창현, “GPT-4 발표한 오픈AI ‘샘 알트만’, “AI가 사회를 재구성할 것이며 위험을 인정합니다, 이것이 조금 두렵습니다.” 「인공지능신문」.
만드는 것이다. 지금 학계나 재계에서는 이미 인공지능에 관한 여러 가지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 출시하자마자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발언, 개인정보 유출로 내홍을 겪었던 챗봇 “이루다”를 개발한 스캐터랩이 제3차 AI 윤리정책 포럼에서 ‘AI 윤리점검표’를 최종 발표했다.19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및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과 협업해 개발한 개별 기업 특화 1호 윤리점검표인데, AI 챗봇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윤리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게 하는 점검 항목을 담았다고 한다. 이루다 사태 이후 AI 윤리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부는 윤리와 안전성 확보를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왔는데, 2021년 2월 출범한 ‘AI 윤리정책 포럼’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포럼은 AI의 윤리적인 개발과 활용을 위한 논의를 촉진하기 위해 구성됐는데, 산업계를 비롯해 AI, 윤리, 교육, 법제도,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23년 4월 7일 현재 AI 윤리정책포럼 2기가 출범하였다.20 이 모임에서 AI 윤리기준 자율점검표와 신뢰할 수 있는 AI 개발 안내서가 공유 발표되었다.
2023년 3월 30일엔 국립대에서 처음으로 부산대에서 ‘AI 원칙과 다짐’이라는 AI 올바른 활용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바 있다.21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AI 활용 원칙
- (지성) Intelligence: 나의 지성을 위한 AI 활용
- 우리는 자기주도적 지식 탐구와 지적능력 계발을 위한 도구로 AI를 활용한다. 2. (창의성) Creativity: 나의 창의성을 위한 AI 활용
- 우리는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비판적으로 결합하여 창의적으로 AI를 활용한다. 3. (인간성) Humanity: 상호존중과 협의를 통한 AI 활용
- 우리는 존중과 협의를 바탕으로 상호성장을 돕는 방향으로 AI를 활용한다. 4. (다양성) Diversity: 개성과 다양성 존중을 통한 AI 활용
- 우리는 개성과 다양성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AI를 활용한다. 5. (공공성) Publicity: 공익 추구를 바탕으로 한 AI 활용
- 우리는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공익 추구를 위한 도구로 AI를 활용한다. 6. (책임성) Responsibility: 교육적 윤리를 바탕으로 한 AI 활용
- 우리는 교육적 윤리를 바탕으로 책임성 있는 자세로 AI를 활용한다.
19 김동원, “스캐터랩, AI 챗봇 윤리점검표 발표,” 「The AI: 인공지능 전문매체」 2022.8.26., https://www.newstheai.com/news/articleView. html?idxno=3275.
20 조성미, “AI 윤리정책포럼 2기 출범,” 「연합뉴스」 2023.4.7., https://www.yna.co.kr/view/AKR20230407069900017.
21 부산대학교, “부산대, AI 올바른 활용 위한 가이드라인,” 「PNU 포커스」 2023.3.30., https://www.pusan.ac.kr/kor/CMS/Board/Board. do?mCode=MN109&mode=view&board_seq=1489116.
□ AI 활용에 대한 우리의 다짐: 우리는 교수학습에 AI를 활용할 시 다음과 같은 점을 지킬 것
을 선언합니다.
– 우리는 자기주도적 지식 탐구와 지적능력 계발을 위한 도구로 AI를 활용한다.
– 우리는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비판적으로 결합하여 창의적으로 AI를 활용한다.
– 우리는 존중과 협의를 바탕으로 상호성장을 돕는 방향으로 AI를 활용한다.
– 우리는 개성과 다양성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AI를 활용한다.
– 우리는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공익 추구를 위한 도구로 AI를 활용한다.
– 우리는 교육적 윤리를 바탕으로 책임성 있는 자세로 AI를 활용한다.
부산대는 생성형 AI 활용 자체를 잘못된 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 을 가이드라인 차원에서 제시하고 있는데, 향후 과제 제출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생성형 AI를 사용 하거나 참고했는지 여부를 체크할 수 있는 항목을 만들어 인공지능 활용에 관한 윤리 의식을 고취 할 예정이라고 한다.
위와 같이 학계나 산업계, 교육계는 발 빠르게 인공지능 활용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가 고 있는데 정작 교계의 대처는 느린 편이다. 인공지능 윤리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을 제일 먼저 제기 한 곳은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였다. 2016년 알파고(AlphaGo)와 이세돌 9단의 바둑대결 이후 본 격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한 인공지능은 2017년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의 생명윤리 세미나를 개최 하기에 이르렀는데, 이 모임에서는 인공지능을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거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 된 인간의 모습을 훼손할 여지가 있는 도구로 보면서 다소 부정적인 입장에서 윤리 가이드라인의 필 요성을 제시했다.22 이후 알파고 열풍이 식으면서 인공지능 가이드라인 논의도 수그러들었는데, 최근
ChatGPT 등장과 함께 다시 한번 그 필요성이 논의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초교파적으로 ‘AI 기독
교윤리정책포럼’이나 ‘AI 기독교연구위원회’를 조직해서 각 교단별로 활용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 활 용 지침이나 성경적 가이드라인을 만들 것을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초교적 대응방안
제안 1: ‘AI 기독교윤리정책포럼’이나‘AI 기독교연구위원회’를 조직해서 각 교단별로 활용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 활용 지침이나 성경적 가이드라인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 교단적 대응방안: 인공지능에 대한 목회·신학적 성찰과 성서적 가이드라인
교단 내부적으로는 각 교단 신학에 근거해서 인공지능에 대한 선교 신학적 성찰, 목회적 숙고가
22 임성국,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2017 생명윤리세미나: 인공지능(AI) 윤리 가이드라인 필요” 「한국기독공보」 2017.5.26., http://pckworld.com/ article.php?aid=7397787316.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 교단 내 지교회에 인공지능에 대한 성서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준다면 다가오는 인공지능 시대에 생길 수 있는 혼란을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1892-1971)는 2차 대전의 참상을 보며 그의 책 「도덕적 인간 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개인이 하지 못할 비도덕적 행위를 집단의 차원에서는 얼마든지 행할 수 있다 고 비판한 바 있다.23 익명성과 은폐성이 보장된 인공지능 플랫폼은 도덕적 무책임성으로 연결되어 자칫 사회의 비도덕적 행위들을 대규모로 증가시킬 우려가 있다. 지금도 이미 인공지능 서비스를 이 용해 저작권을 침범하거나, 개인정보를 유용하는 것에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다가오 고 있는 AI 시대에 이런 일탈들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질 때 교회는 과연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최윤식은 이런 변화된 사회에서 성경적인 기준을 제시해 주지 않는 것이 가장 나쁜 것이라고 말한 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성경적 기준을 제시하지 않으면, 성도들은 세상의 기준을 따라 판단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한국교회가 ‘세상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받는 것이다. 과학기술이 던지는 수많은 질문에 기독교인이 대답하고 결단할 수 있도록 성경적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24
물론 AI 기술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모방과 창조 능력의 산물 중 하나다. 잘 사용하면 축복 이지만 성경적 가이드라인 없이 잘못 사용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21세기 바벨탑이 될 수 있다. 윤 리적 가이드라인과 함께 인공지능에 대한 신학적 성찰, 목회적 숙고, 성서적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이 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로마 가톨릭은 이미 2020년 2월에 “AI 윤리를 위한 로마 선언(Rome Call for AI Ethics)”을 발 표한 바 있다. 이 문건은 윤리(Ethics) 교육(Education) 권리(Right) 세 개 분야에 대해 기독교적 지
침을 제시했는데, 서문에서는 인공지능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인간 가족에 봉사한다는 원칙에 따라 연구되고 상용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히 알고리즘에 의해 인종이나 피부색, 언어, 종교, 정치적 견해 등에 따라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이를 위한 윤리적 원칙으로 투명성, 포괄성, 책임성, 공정성, 신뢰성, 안정성과 사생활 보호 등 6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이 문건은 나중에 마이크로소프트와 페이스북 같은 빅테크 기업들의 인공지능 지침 마련에 큰 도움 을 주었다고 한다. 우리 개신교도 하루속히 인공지능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담은 성경적 기준, 혹은 활용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교단마다, 혹은 초교파적으로 과학자와 신학자, 목회자와 평
신도로 이루어진 특위나 전문위를 구성해서 “AI 윤리를 위한 기독교 선언문(Christian Call for AI
23 Reinhold Niebuhr, Moral Man and Immoral Society, 이한우 역,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서울: 문예출판사, 2017).
24 박민균, “미래 과학기술에 성경적 가이드라인 있나?” 「기독신문」, 2019.02.11., https://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200119.
Ethics)”을 발표한 것을 제안한다.
아울러 교단적 차원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감시 및 대응체계 마련도 시급하다. chatGPT 창시자 이자 오픈AI CEO 샘 알트만도 인공지능 기술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독립적 전문가로 구성된 별도 의 감시기구”를 제안한 바 있다.25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ChatGPT 인공지능 서비스는 딥러닝에 기반한 대규모 기계학습의 결과물을 보여준다. 그러다 보니 가끔 잘못된 정보를 학습하여 마치 사실 인 것처럼 제시하기도 하는데, 만약 인공지능이 무신론자들이나 반기독교주의자들, 혹은 이단들이 대량으로 생성한 정보에 기반해서 답을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의 전도와 선교 영역은 점점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가고 있다. 머지않아 인공지능도 우리가 선교해야 할 대상으로 자리잡 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교계는 이단들의 정보점령과 함께 인공지능의 오류의 가 능성에 대해서 상시 감시하는 초교파적 대응체계를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 이를 위해 신학교 교과과
정도 개편할 것을 제안해 본다. 현재 신학대학원 커리큘럼은 이미 100년 전에 개발된 것이다. 21세기 메타버스 인공지능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교과과목들을 각 교단 신학교마다 개설하여 인공지능 시대 를 대비할 수 있는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것도 교단마다 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필자가 제안하는 교 단적 대응방안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교단적 대응방안
제안 2: 과학자와 신학자, 목회자와 평신도로 이루어진 특위나 전문위를 구성해서 “AI 윤리를 위한 기독교 선언문(Christian Call for AI Ethics)”을 발표한 것을 제안한다.
제안 3: 이단들의 정보점령과 함께 인공지능의 오류의 가능성에 대해서 상시 감시하는 대응체계
를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
제안 4: 신학교 교과과정 개편하여 교계에 인공지능 전문인력을 양성할 것을 제안한다.
- 지역교회 대응방안: 체험적 영성의 강화와 참여적 목회 프로그램 개발
초교파적 혹은 교단적 대응방안을 기다리기 전에 각 지역교회는 앞으로 다가올 인공지능시대 에 맞는 영성 프로그램, 혹은 목회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인공지능은 교회의 친구인가 적인가? 이 질문을 하기엔 이미 지났다고 본다. 인터넷이 나오고, 스마트폰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도 우리는 동 일한 질문을 던졌지만, 역사는 거스르지 못했다. 어느새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우리 사회를 작동하게 하는 중요한 디바이스가 되었고, 교회 역시 이미 친숙하게, 그리고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다. 인공 지능도 결국 구글이나 네이버, 스마트폰처럼 교회 업무와 성도들의 삶 가운데 깊숙하게 자리잡을 것 이다. 이것은 곧 인공지능의 위험성과 한계에 교회도 함께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25 정의길, “챗GPT 창시자 ‘AI, 심각한 위험도 존재…규제·국제표준 필요’” 「한겨례」 2023.05.17.,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 international_general/1092072.html .
그렇다면 교회는 앞으로 어떤 대비를 해야 할 것인가? 앞으로 교회가 고민해야 부분은 인공지
능이 할 수 없는 영역, 더 정확히 말하면 인공지능이 약화시킬 수 있는 신앙의 영역에서부터 시작되 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예가 체험과 공감력이다. 인공지능은 챗봇을 통해 온라인상에서도 얼마든지 상담할 수 있지만, 상담자와 직접 만나서 공감하며 상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시한도 ChatGPT가 바꿀 우리 인류의 미래를 예측하면서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에게 주어지는 생존능력 중 하나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공감력과 휴먼터치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26 이어령도 2017
년 ‘한국교회 미래전략 수립을 위한 포럼’에서 인공지능이 종교와 교회의 역사를 뒤바꿀 것으로 내 다보면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인공지능(AI)이 범접하지 못하는 영역이 예술과 종교의 영성입니다.
바로 미래사회 종교의 존재 이유는 AI와 인간 사이의 빈 공간을 영성으로 채우는 데 있습니다.”27 그 런 면에서 필자도 이 사회가 비대면 정보중심 사회로 나아가면 갈수록 교회는 오히려 더 대면 영성
중심 목회활동을 개발해야 한다고 본다. 인공지능이 정보(information)에 치중한다면, 교회는 영성 (spiritual formation)에 치중해야 한다. 따라서 필자는 인공지능 시대에 각 교회마다 체험적 영성을 더 강화하고, 다양한 참여적 목회 프로그램을 개발할 것을 제안한다. 건물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의 예전, 온라인 참여 예전이 아닌 오프라인 참여 예전을 연구 개발해서 선교 목회 현장에 적용할 수 있 다면 아무리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하더라도 여전히 선교사와 목회자, 교회의 존재가치는 드러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다가올 인공지능 시대에 대처하기 위해 선교지와 국내 목회현장에 있는 사 역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자 한다.
지역교회 대응방안
제안 5: 인공지능시대에 각 교회마다 체험적 영성을 더 강화하고, 다양한 참여적 목회 프로그램 을 개발할 것을 제안한다.
- 선교적 대응방안: 인공지능에 대한 존재론적 접근
인공지능에 대한 접근 방식은 2가지다. 하나는 도구적으로 접근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존재 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을 효과적인 도구라고 생각한다면 AI는 양날의 검과 같다. 잘 쓰 면 사람을 살리는 수술용 메스, 잘못 쓰면 사람을 죽이는 칼처럼, 적절한 준비나 시스템을 마련하면 효과적인 복음의 도구가 될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코로나 이후 또 다른 교회의 도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발전 속도를 보면 인공지능은 구글이나 스마트폰과 같은 단순한 도구 이상으로 진화하 고 있다. 인공지능이 앞으로 인간처럼 사유하는 능력까지 갖추게 된다면 어쩌면 인공지능을 도구가 아니라 존재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된다면 인공지능은 선교나 목회의
26 이시한, 「GPT 제너레이션: 챗 GPT가 바꿀 우리 인류의 미래」, 314-320.
27 장창일, “AI와 인간 사이 빈 공간, 영성으로 채워라,” 「국민일보」. 2017.8.18., https://m.kmib.co.kr/view.asp?arcid=0923800586.
도구가 아니라 어쩌면 선교와 전도의 대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인공지능에게 기독교와
복음에 대한 부정적인 데이터가 이식되지 않도록, 그래서 인공지능으로 하여금 기독교와 복음에 호 감을 가지도록 유도해야 할 책임이 사역자에게 있다. 이를 위해 목회자와 선교사는 인공지능을 존재 론적으로 접근해야 하며, 단순한 전도의 도구를 넘어 전도의 대상으로서의 인공지능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21세기 디지털 인공지능 시대에 어쩌면 사마리아와 땅끝은 온라인 속 가상공간, 메타버스가 될 수 있고, 미전도 종족은 ChatGPT나 Bard, Bing과 같은 인공지능이 될 수도 있지 않 을까? 그런 면에서 필자는 온라인 디지털 시대에 맞는 선교지와 선교사, 인공지능에 대한 새로운 선 교신학적 숙고가 필요함을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선교적 대응방안
제안 6: 선교사들은 오늘날 하나님이 일하시는 또 다른 땅끝이 온라인 가상공간임을 직시하고,
인공지능은 단순한 선교의 도구를 넘어 선교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 V. 나가는 말
ChatGPT 인공지능은 계속 진화하고 발전하고 있다. 2023년 3월 현재 ChatGPT4가 공개되었 다. GPT3.5 기반이지만 훨씬 더 업그레이드되었다. 창의성이 대폭 업그레이드되었는데, 노래 작곡 이나 시나리오 작성, 사용자의 글쓰기 스타일까지도 학습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전 GPT3.5는 3,000단어를 입력받을 수 있었으나 GPT4는 무려 25,000단어까지 입 력받을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문서 요약이나 논문분석, 비평에도 적극적으로 활용되리라 추측된 다. 심지어 입력을 텍스트 외에도 그림으로도 받을 수 있게 되었는데, 그림을 이해할 수도 있고, 분 류, 분석, 예측, 혹은 창작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영상이나 음성을 이해하거나 입력받을 수 있는 수준이 되면 다양한 화상 대화형 AI 챗봇이 출현해서 수많은 직업을 대체하리라 생각된다. 최
근에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뉴빙(New Bing)’을, 구글에서는 ‘바드(Bard)’를 출시하면서 인공지능 경쟁에 뛰어들었다. 한국에서도 카카오톡과 연동된 ChatGPT ‘애스크업(AskUp)’이 출시되었고, 솔 트룩스에서 한국판 ChatGPT ‘루시아(Luxia)’도 출시 예정이다.
과연 ChatGPT 인공지능은 인류의 미래일까? 엔비디아(NVIDIA) 최고경영자 젠슨 황(Jensen
Huang)은 1-2년 내에 ChatGPT 환각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28 그와 반대로 빌게이츠(Bill Gates)는 이미 “AI 시대가 왔다(표e Age of AI has begun)”고 선언한다.29 장민도 ChatGPT가 “누 구에게는 ‘기회’가 되고 누구에게는 ‘놓친 기회’가 된다”고 말한다.30 필자는 그들 모두의 지적에 공감
28 배유미, “오픈AI 챗GPT환각, 2년 뒷면 줄어들 것,” 「Byline Network」 2023.3.23., https://byline.network/2023/03/23-256/.
29 Bill Gates, “A New Era: the Age of AI has Begun,” GatesNotes: the Blog of Bill Gates, 2023.03.21., https://www.gatesnotes.com/표e-Age-of- AI-Has-Begun.
30 장민, 「ChatGPT: 기회를 잡는 사람들」, 5.
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AI 시대를 준비하지 않은 선교사나 교회들에게는 ‘위기: 위험한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뜨겁던 메타버스 열풍이 가라앉은 것처럼 현재의 인공지능 환상도 분명 가라앉을 것이다. 실제로 2016년 알파고(AlphaGo)가 이세돌 9단을 이겼을 때도 인공지능에 대한 열기는 대단했다. 하지만, 그 열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어쩌면 ChatGPT 열풍도 금방 식을 것이다. 그 러나 중요한 사실은 인공지능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 상관없이 인공지능은 차근차근 발전해 왔고, 어느새 우리 일상생활의 일부분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시간이 걸릴 뿐 언젠가는 인공지능이 우 리 삶의 모든 영역을 송두리째 바꿀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이르기 전에 교회는 미리 숙고하여 적절 한 윤리적, 신학적, 목회적, 선교적 대응 지침을 마련하고, 인공지능 시대에 맞는 다양한 선교 목회적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지난 2천 년간 교회를 돌아보면 종이, 인쇄술, 라디오, TV, 인터넷과 같은 수많은 기술문명의 출 현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리매김을 해왔다. 중세 시대 활자 미디어를 통해 신학의 대중화, 성경의 대 중화를 끌어냈다면,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스마트 미디어와 인공지능은 누구나 선교할 수 있는 선교 의 대중화를 이끌 수 있지 않을까? 비록 인공지능의 발전과 그로 인해 변화될 사회와 교회의 미래가 예측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인공지능을 잘 준비한 선교사와 목회자, 교회들에게는 위기(危機)가 아니라, 위(危)험하지만 기(機)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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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선교회와 협력 개발 / 공 베드로 (한국 OMF)
들어가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엄청난 속도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너무 빠른 변화의 속도는 검증하 여 대안을 내놀 시간이 없이 또 다른 것이 와 버린다. 그래서 미래는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에 걸 려있다. 오늘 우리가 목격 하듯이 인공지능(arti:fcial intelligence), 사물 인터넷(IoT), 자율주행차량, 3D 프린팅, 나노기술, 바이오 기술 등 제4차 산업혁명은 폭발적으로 현재와 미래를 뒤바꾸고 있다. 특히 요즘에 챗 지피티(chat GPT)가 나오면서 스티픈 호킹(Stephen Hawking)이 “인공지능이 자신 을 스스로 개선하기 시작하면, 궁극적으로 우리의 지능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을 탄생시키는 지능의 폭발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1라고 염려한 우려가 나타난다.
그렇지만 미래의 불확실성은 항상 존재해 왔고 그 미래의 이슈들과 문제들을 넘어왔다. 미래의 불확실성은 선교의 현재와 미래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잘 대처하고 해결해 온 것처 럼 예측하기 복잡하고(complicated), 복합적인(complex) 상황의 미래에서도 잘 대처할 수 있는 것이 다. 왜냐하면 교회와 선교단체가 연합하고 협력하여 협업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래의 불 확실성에 매몰되지 않고, 미래를 준비하고 미래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국 선교의 미래 이슈가 무엇이고, 그 동안 로잔선교운동을 통해 드러나 선교 이슈들과 또 선교 상 황에서 드러난 이슈들을 확인하고 분석할 뿐아니라 대안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Post-Covid 19 시대로 접어든 시기에, 미래 이슈들이 무엇을 우선순위로 보고 있는지,
‘교회와 선교 세미나’를 시작하게 된 것과 이 세미나를 통한 지역교회와 협력을 나누고, ‘교회와 선교 세미나’를 통한 교회와의 파트너십 개발을 통해 성경적이고 건강한 선교적 교회로 나아가기 위한 선 교 구조를 다루려고 한다.
- 1. 한국 선교의 미래 이슈의 핵심 키워드
2018년 ‘선교한국’에서는 ‘한국선교의 미래 이슈’를 질적, 양적 조사를 통해 미리 점검하고, 다가 올 미래의 이슈를 연구하여, 6개의 카테고리, 즉 복음, 교회, 복음전도, 사회적 이슈, 타문화권, 글로
1 엄경섭 편집, 『선교단체: 인적자원 개발』, 2021, 8-9.
벌 이슈로 분류한다. 그리고 99개의 이슈로 압축하였고, 이를 12개의 요인과 미분류로 이슈를 정리
하여 연구 자료를 발표했다.2
‘선교한국이 본 한국선교의 미래 이슈’(선교한국, 2018년)라는 책으로 발간된 자료에서, 질적, 양 적 연구를 통해 28년간의 ‘선교한국의 흐름’을 ‘타문화 선교’와 ‘선교 동원’이라는 두 단어로 정리했 고, 로잔선교운동의 40년 동안의 문건인 1)로잔 기초 선언문(Lausanne Foundational Statement), 2) 로잔 주제 보고서(Lausanne Occasional Papers), 3) 로잔 글로벌 분석(Lausanne GLoval Analysis) 을 중심으로 발견한 이슈들은 복음(문화적 상황화/ 38)3, 복음전도(복음전도/ 31), 복음(신학/선교 적 성찰/ 27), 타문화 종교(천주교, 힌두, 불교, 토속종교/ 14), 타문화권 종교(아시아, 아프리카 및 제 삼세계/ 12), 복음전도(선교적 방법론/ 11), 글로벌 이슈(세계화/자본주의/ 11), 글로벌 이슈(직업/라 이프 스타일/ 8), 사회적 변혁(사회적 약자/ 7), 글로벌 이슈(세속주의/ 6), 교회(교회 협력과 예쿠메니 즘/ 5), 글로벌 이슈(도시화/ 5), 타문화권 종교(글로벌 이슬람/중동/ 4)4, 교회(다음세대 리더십/ 4), 등의 순위로 나타난다.
그리고 ‘한국선교의 미래 선교 이슈’ 중에 20개는 “복음의 본질을 지키는 것, 일상에서의 선교적 삶, 한국 사회의 다음 세대 돌보기, 캠퍼스 선교, 복음의 총체성, 이주민 선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 해, 통일의 준비, 교회의 차세대 리더십 세우기, 교회론을 바르케 이해함, 복음에 대한 성찰, 선교적 성찰, 평신도의 역할, 선교사 소명의 확인, 인구고령화에 대한 이해, 교회의 공동체성 회복, 선교사 선 발의 검증” 순서로 나왔다. 전체 99개의 이슈 가운데 95개는 12개의 요인으로 분류되었다. 그것은 본질의 회복, 인구변화, 교회변혁, 선교행정, 선교적 교회, 통일선교, 공공이슈, 다문화 사역, 텐트메 이커, 정보 기술활용, 한국적 선교, 성령운동, 그리고 미분류가 4개 이슈였다. 12인 중에 선교행정, 선 교적 교회, 통일선교, 다문화사역, 텐트메이커, 한국적 선교, 등은 지역교회와 선교 단체와의 협력 및 교육과 관련이 있는 부분으로 약 65-70%에 육박한다고 보여진다.
그러므로 선교한국의 28년간의 ‘한국선교의 미래 선교 이슈’나 로잔선교운동의 40년간의 이슈 들에서 발견된 이슈들을 한마디로 요약 정리한다면, ‘교회와 선교’ 이슈라고 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 래서 2018년 ‘선교한국’에서 한국선교의 미래 이슈를 발표한 이후 지역교회와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 고민하게 됐다. 그후에 코비드-19가 수그러들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OMF는 2022년 3월에 ‘지역교 회와 협력과 선교교육 및 훈련’의 영역을 위해 ‘교회와 선교 세미나’5를 런칭했다.
2 선교한국, 『한국선교 미래 이슈』, (서울: 선교한국, 2018)
3 복음=주제(문화적 상황화=보고서 주제/ 38=기사 회수)
4 선교한국, 『한국선교 미래 이슈↓, (서울: 선교한국, 2018), 76-77
5 손창남 선교사가 『교회와 선교』, (죠이선교회 & OMF. 2016)라는 책을 쓴 후에, ‘교회와 선교 세미나’ 자료를 발간하고, 지역교회가 선교적 교회로 준비
- 2. ‘교회와 선교 세미나’와 ‘교회 방문 세미나’ 협력
한 지역교회의 초대를 받아 선교적 교회에 대해서 나누고 얘기를 나눈 후에, 지역교회가 보다 성 경에서 말하는 선교적 원칙에 따라 선교적 교회로서 건강한 선교를 하는 지역교회가 되도록 협력할
길은 ‘교회와 선교 세미나’를 시작하는 길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Covid-19 팬데믹이 모 임을 할 수 없어서 미루고 있었지만, 모임이 가능해 지면서, 여러해 전에 시작했으나 중단하고 있는 ‘교회와 선교 세미나’를 2022년 3월에 시작을 하게 됐고, 또 그 세미나 참여자 교회의 요청으로 ‘교회 와 선교 세미나’를 ‘교회의 방문세미나’로 협력하게 됐다.
1) 제1회 ‘교회와 선교 세미나’
1)-1 교회 방문 세미나 (1) 녹동제일교회 방문 세미나
| 1) 제2회 ‘교회와 선교 세미나’ | 1)-2 교회 방문세미나 (2) 충일교회 |
| 날짜: 2023년 10월 4-5일
대상: 담임목사, 선교위원장, 선교목사, 선교 지도자 참여자: 9명(신청 15명) 강의: 8 강좌 |
날짜: 2023년 9월 3-4일
대상: 교회 목회자, 선교위원회원, 단기팀 참석자: 30명 강의: 6강좌 |
2) 제1회 ‘교회와 선교 세미나’
1)-2 교회 방문세미나 (2) 충일교회 방문 세미나
| 1) 제2회 ‘교회와 선교 세미나’ | 1)-1 교회 방문 세미나 (1) 녹동제일교회: |
| 날짜: 2022년 3월 21-23일, 9:00-17:00
강사: OMF 선교사들 대상: 담임목사, 선교위원장, 선교담당목사, 선교 지도자. 참여자: 9명 (신청 16명, 코로나로 불참) 프로그램: 10 강좌 |
날짜: 4월24-25일
대상: 담임목사와 모든 교역자와 선교위원, 교회 리더 및 구역장 참여자: 40명 프로그램: 6강좌 |
3) 제3회 교회와 선교 세미나
1)–3 선한목자교회
2)-4 선한목자교회 중국어 예배부
되도록 컨설팅 해오다 중단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2022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지역교회의 지도자들(담임목사, 선교위원/장, 선교지도자, 교회리더, 등)의 교육을 위한 세미나를 열어 교육하고, 또 교회 방문 세미나를 열어서 지역교회와 협력한다. 매년 전반기 3월과 후반기 9월 혹은 10월에 하기로 했다.
| 1) 제3회 ‘교회와 선교 세미나’ | 1)-3 교회방문세미나 3)선한목자교회 선한목자교회 | 1)-4 교회방문세미나 4) 선한목자교회의 중국어 예배부 |
| 날짜: 2023년 3월 20-22일 대상: 담임목사, 선교위원장, 선교담당목사, 선교 지도자 참석자: 6명
강의: 10강좌 |
날짜: 2023년 2월 19-20일 대상: 담임목사님, 목회자, 선교위원회원, 선교위원 및 지도자
참석자: 30명 강의: 6강좌 |
날짜: 2023년 4월30일, 5월7일, 14일
대상: 교회 목회자, 선교위원회원, 한국 섬김이 참석자: 30명 강의: 6강좌 |
- 3. ‘교회와 선교 세미나’의 강의안 구성
강의 구성과 커리큘럼은 교회의 상황에 따라 강의 구성이 조정되고, 교회가 필요로 하는 영역이 추가되거나 빼거나 한다. 그리고 시대와 교회 상황에 따라 업데이트 하게 된다. 아래는 이 세미나의 커 리큘럼이다. 대개 2박 3일 동안 하고, 하루는 오전 2강좌, 오후 2강좌를 개설하고, 3일 동안 진행한다. 교회의 초청 혹은 방문하여 이 세미나를 진행할 경우 교회 여건에 따라 강의 커리큘럼이 조정된다.
1) 오리엔테이션: 쿠네빈 프레임 워크
2) 제1강 GAMP, 선교지의 필드 구조
3) 제2강 선교단체의 홈의 역할
4) 제3강 지역교회와 선교 단체의 건강한 관계
5) 제4강 선교원리(성육신의 원리, 선교사의 언어와 생활, 그리고 사역)
6) 제5강 선교적 교회의 실천
7) 제6강 선교적 성경 읽기와 선교적 설교
8) 제7강 선교적 교회로 가는 로드맵
9) 제8강 디아스포라 선교
10) 제9강 출구 전략, 3자원리, 토착화
11) 제10강 효과적인 단기 선교
12) 마무리 읽기 자료 모음
4‘. 교회와 선교 세미나’를 통한 협력 관계 배움
‘교회와 선교 세미나’의 강좌를 통해 1) 성경적이고 건강한 선교적 교회로 가기 위해 ‘선교의 원칙’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차적으로 인지하고 적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2) 건강한 선교적 교회로 발전하기 위해 선교 구조 중에 ‘필드(선교지)에 있는 기능하는 필드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과 3) 파송교회는 지역 교회 혼자서 선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단체(소달러티)와 협력을 통해서 건강한 선교를 하고 선교적인 교회로 발전해 가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훈련하는 차원이 있다. 또 4) 선교의 사역적, 전략적 원리가 바르게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는 차원이 있고, 4) 지역교회가 선교적인
교회가 되기 위한 로드맵을 작성하고, 선교적인 교회로 가기 위해 발전해 가야 하는 차원이 있다.
강의를 통해서 배우게 되는 것은 지역교회와 선교단체 간의 협력을 더욱 발전하기 위해 ‘선교에 대한 바른 이해’와 실제 선교현장(필드)에서 ‘선교 구조’를 이해하고, ‘기능하는 선교구조’로 발전시키 위해 협력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 지역교회와 선교단체 (달러티와 소달러티) 협력 관계
1) 두 구조의 이해:
선교의 하나님은 선교를 수행하도록 한 구조에 두 구조의 역할을 만드셨다. 이 견해에 따르면, 초 기 교회부터 선교를 위해 두 구조가 협력하여 활동하도록 만든 것이다. 사도행전 13장에서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지시에 따라 바나바와 바울을 따로 세우고, 안수하여 선교팀으로 활동하는 구조를 만들어 보냈다.
역사적으로 카톨릭에서 교구 안에 젊은 여성 그룹 혹은 나이든 여성 그룹을 지칭할 때 소달러티를 사용했다. 그리고 개신교 역사가 라토렛(Latoulette)가 이러한 의미에서 차용했다. 본래는 소탈러티는 라틴어로 사회집단을 가르켰다. 그런데 랄프 윈터가 그의 학술 논문에서 교회 공동체와 선교기관을 구별하는 용어가 필요하다고 언급한다. 또 그는 1974년에 ‘하나님의 구속적 선교의 두 구조’(The Two Structures of God’s Redemptive Mission)라는 논문에서 회당은 모달러티로, 선교단을 구성하여 육지와 바다를 건너 개종자를 얻으려 한 바래새인들은 소달러티로 두 구조로 보았다, 또 안디옥교회를 모달러티로, 바나바와 바울의 선교단을 한 교회에 귀속하지 않은 소달러티로 규정했다.6
2) 두 구조의 존재와 협력
이 후에 선교구조를 설명하게 될 때에, 교회를 모달러티의 역할을 하는 기관이고, 선교단체를 소 달러티의 역할을 하는 기관, 또는 파라처치(parachurch)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지역 교회와 선 교단체는 선교사명의 완수를 위해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선교의 사명이 완성되기까지 함께 협력 하는 관계로 유지하고 지속적으로 자라야 한다.
- 교회와 선교의 두 개 구조7
1) 교회와 선교사 구조:
6 A. 스캇 모로우, 『선교학 사전(Evagnelical Dictionary of World Missions)』, 편집, (서울:CLC, 2001),
7 OMF ‘교회와 선교 세미나’ 강의안.
교단선교부 구조나 혹은 선교단체 구조가 없는 파송 교회와 선교사만 있는 구조로 필드(선교지)
에서의 목회적, 영적, 사역적, 재정적 책무를 관리하는 구조가 없는 상태에 있는 구조이다.
2) 교회와 선교사와 필드 구조:
교단선교부 구조나 혹은 선교단체 구조가 필드에 있는 구조이다. 여기에서 필드 구조가 있지만, 1) 따로 구조형 세 구조가 있고, 2) 기능하지 못하는 필드 구조를 가진 세 구조가 있다. 그리고 3)기능 하는 필드 구조가 있는 세구조가 있다.
- 7. 선교구조의 기본이 되는 세 형태8
1) 교회와 선교사(교단선교부/선교단체가 없는 구조) :
선교사가 파송교회의 파송을 받아 필드구조가 없이 선교지에 나가 활동하는 형태이다. 현지에 는 선교사를 언어감독과 문화적 적응, 등을 안내하고 돌볼 구조가 없이 선교사 홀로 모든 행정과 모 든 사역과 직면한 상황을 처리해야 한다. 더구나 영적, 사역적, 재정적 책무를 돌볼 지도자와 팀도 없 고, 전혀 기능하지 않는 구조를 하고 있다.
- 이를‘위험한두 개 구조’로 명명한다.
2) 교회와 선교사와 필드 구조(세 구조가 따로 구조인 경우):
교회와 선교사와 필드가 각각 따로 방향을 가지고 있어 협력하지 못하는 세 구조 형이다.
- 이를‘선교지교회를 위협하는 구조’로 명명한다.
3) 교회와 선교사와 필드구조 (교단선교부/선교단체가 있는 A 구조):
선교사는 선교지에 필드구조가 있으나 기능하지 않는 필드구조를 아래에 있어 선교사가 제대로 통제 받고 돌봄과 안내를 받을 수 없는 유명무실한 구조를 가진다. 즉, 영적, 사역적, 재정적 책무를 담당할 책임자가 지도력을 발휘 못하고, 선교사는 자기 맘대로 사역한다.
- 이를‘기능하지않는 네 구조’라 명명한다.
4) 교회와 선교사와 필드구조 (선교단체가 있는 B 구조):
선교사가 기능하는 필드구조에서 돌봄, 문화, 언어, 사역 등을 안내 받으며 활동한다. 필드구조가 있어, 필드리더, 언어감독, 재정담당자, 인사담당자, 필드의사, TCK 담당자, 필드 및 팀 전략 담당자, 등이 있고, 필드정책이 있어서 정책 따라 필드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선교명령을 이뤄가는 구조이다.
8 OMF ‘교회와 선교 세미나’ 강의안.
- 이를‘기능하는건강한 네 구조’라 명명한다.
선교구조가 있고 없고 하는 문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필드에 선교구조가 없는 경 우 선교사는 불안하고, 위험한 면(영적, 사역적, 재정적 영역, 등)에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사역 적 책무와 재정적 책무의 위험을 관리 감독할 구조가 없어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고, 중도 탈락 할 수 있다. 그리고 선교의 네 구조가 있으나 기능하지 않으면, 건강한 선교가 되기가 어렵다. 그러므 로 교회와 선교단체는 ‘기능하고 건강한 선교 구조’를 가질 수 있도록 협업하는 것이다.
- 지역교회와 선교단체와의 관계도9
| 건강한 교회 | 건강하지 않은 교회 | |
| 건강한 단체 | 이상적 파트너십 | 갈등적 파트너십 |
| 건강하지 않는 단체 | 피해의식 파트너십 | 없어야 할 파트너십 |
지역교회와 선교단체가 건강한 교회와 건전한 단체의 형태로 협력한다면 이상적 파트너십을 가 지고 선교지에서 협업하게 될 것이고,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러나 건강하지 않는 교회나 단체 가 협업한다면, 정말 위험한 경우로, ‘없어야 할 파트너십’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건강한 선교적 체질 을 갖도록 노력해야 하고, 선교단체는 기능하는 선교구조가 되도록 부지런히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 도록 해야 한다.
나가기
‘한 국선교의 미래 이슈’는 지금 현시점에서 그 이슈들을 대비하고 준비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미래선교를 창조해 내는 일을 위해서 중요하다. 이 이슈들은 특별히 지역교회와 선교단체가 함께 풀어가고 준비하고 새로이 만들어 가야 할 것들이다. 이 모든 일들은 주의 선교사명을 완수하는 과정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확장하는 일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선교적 교회로 가기 위해 교회와 선교단체가 본질 사명을 감당하는 기초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지금은 지역교회와 선교단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먼저, 지금은 우리가 더 적극적
으로 교회와 선교단체가 함께 일하는 시기이다. 2) 우리가 미래 이슈들을 잘 대비하기 위해 함께 배 우고 서로 나누는 협력관계를 개발하는 것이다. 3) 우리가 지역교회가 선교적 교회로 갈 수 있도록 협력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앞의 도표처럼 교회와 선교단체가 ‘이상적인 협력관계’로 발전하여, 서 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서로 협력하며 배워가는 사역이 되어야 할 것이다.
9 OMF ‘교회와 선교 세미나’ 강의안.
케이스 스터디: 빌리온선교회(BM)를 중심으로 / 김종구 선교사 (빌리온선교회)
글을 시작하며
빌리온선교회(BM선교회)는 1999년 설립된 국내 자생 선교단체이다. 설립 당시에 선교회 이름 (Billion)1이 알려주듯 공산권 국가인 중국을 전략적 지역으로 삼고 출발하여 중국선교에 한 획을 담 당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선교지의 다양한 변화와 선교사들과 선교지역의 다변화 요구를 반영하여, 2023년 현재 17개국에 135명의 선교사가 활동하고 있다.
시대적으로, 환경적으로 변화의 속도와 폭은 매우 빠르고 다양하다. 이런 상황은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선교지도 마찬가지이며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이에 대한 위기감과 긴박한 선교적 인식이 필 요하다. 선교 지속을 위해서는 정확한 상황파악과 위기 대체 능력 구비와 선교 전략의 수정이 필연적 으로 있어야 할 것이다.2 이에 BM선교회는 다음과 같이 준비하며 사역하고 있음을 발표를 통해 나 누고자 한다. 다만, 선교단체가 갖는 일반적인 내용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생략하였다.
- I. 선교환경의 변화
세계는 다양한 형태의 변화를 겪고 있다. 특별히 기독교의 입장에서 본다면, 선교의 주도권을 가 지고 있던 서구 열강들의 퇴각이 확연하며, 반면에 피선교 지역이었던 아시아 국가들의 대약진이 있 다. 서구 유럽의 급속한 세속화와 비기독교화, 이슬람을 위시한 타 종교들의 약진, 강한 반제국주의 운동과 반기독교 정서들이 서구 교회와선교를 퇴각으로 몰아갔다. 랄프 윈터(Ralph D. Winter)는 이러한 상황을 뿌리 잘린 유럽선교, 닫힌 선교의 문, 심화 되는 비관론, mission에서 missions로 전 환, 혼란한 선교이론 등으로 정의하고 있다.3
한편 기독교 선교에 있어서 아시아의 국가들이 그 중심에 있으며, 동시에 선교의 최전방이다. 아 시아 국가들의 선교환경도 변하고 있다. 아시아 대륙이 세계 경제의 중심 지역, 다종교 사회화, 민족
1 1984년 중국의 인구가 약 10.37억 명 이었다.
2 김종구, “2016년 중국 내 한국인 선교사들이 직면한 위기와 사역의 변화에 대한 요구”, 「한국선교KMQ 」(2016년 여름호, 통권 60호), 120-132. 에서 선교단체가 가져야 할 위기의식과 변화에 대해 선교사들과 선교회가 준비해야 할 것을 연구한 바 있다.
3 Ralph D. Winter, 표e 25 Unbelievable Years, 『비서구운동사』, 임윤택 옮김, (서울: 예수전도단, 2012), 123-150.
주의와 국수주의의 팽창, 선교사 비자 제한, 거세지는 종교적 핍박과 박해, 급속한 세속화와 포스트
모더니즘4 등은 선교의 장애물이 되어 선교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이같이 선교환경의 변화 중에 또 다른 하나의 변수가 2020년 선언된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 현상 이다. 예측할 수 없었고, 전 세계 어느 지역도 예외가 될 수 없는 위기였으며,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계 속되었다. 이 팬데믹 현상이 기존의 선교환경을 뒤엎어 놓는 결과를 가져왔고, 선교의 재편성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토디 래퍼티(Todd Laff rty)5는 ‘코로나 이후 세계선교 전략’을 주제로 한 포럼6 에서 ‘코로나 이후 세계에서 선교사 파송을 위해 고려해야 할 요소들’로 민족주의 부상(rise), 다극화 된 세계 질서의 부상, 세상의 파편화(fragmented world), 변화하는 인구 통계의 트랜드, 글로벌 사역 의 현실 등을 들고 있다.7
- II. BM선교회의 대응전략
- ‘언제나 기본에충실’하기
1) 기도에 매진
BM은 기도회로 시작된 단체이다. 먼저 1984년부터 기도회로 모이기 시작했고, 무려 15년 동안 기도 모임을 지속하다가 선교회로 전환한 기도를 중요하게 여기는 선교단체이다. 기도 없는 선교는 있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기도에 힘쓰고 있다. 실례로 중국의 ‘신종교 사무조례’ 시행과 ‘코로나-19’ 등의 상황에서, 3년여간 매 홀수 달에는 24시간 연속 기도회, 매 짝수 달에는 1인 1일 금식 기도하였 다. 기도회를 통하여 몰려오는 선교의 위기를 공유하고, 돌파를 위하여 주의 뜻을 추구하며, 강력한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2) 선교사의 정체성 확인
선교사는 언제라도 두 가지 확신이 요구된다. 첫째는 자신이 전하고 있는 복음에 대한 확신이다. 둘 째는 복음을 전하고 있는 자신 즉, 선교사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다. BM은 선교사들이 두 가지 확 신 가운데 사역하도록 하고 있다. 선교사 허입을 위한 교육과 훈련의 과정에서, 또 오랜 사역이나 사역의 막힘 등으로 힘들어하는 선교사들에게 다양한 방법8을 통해서 두 가지 확신을 점검하고 강화하고 있다.
4 최원진, “4차 산업혁명 시대 선교의 방향성과 선교사의 역할”, 『김성태 교수 은퇴 논총』, (서울: 솔로몬, 2021년), 431-443.
5 미국 남침례교 국제선교위원회(IMB)의 선교사이며 수석부총재이다.
6 “코로나 이후 세계선교 동향”을 주제로 제13회 선후협 선교포럼 및 정기총회(고신총회 세계선교후원협의회 & KPM, 2023년 3월 27-28일)가 있었다.
7 고신총회 세계선교후원협의회, 「코로나 이후 세계선교 동향 포럼 자료집」, 19-30.
8 신입 및 기존의 선교사 허입을 위한 기본 훈련, 심화 과정 훈련, 기존의 소속 선교사들을 위한 재교육 과정으로 PSP 훈련, 카이로스 훈련, 케넥션 스쿨 등을 실시하고 있다.
- ‘사역의업그레이드추진’하기
1) 선교지와 선교지 사람들 연구
효율적 선교를 위해서는 선교지와 사람에 대한 이해는 필수이다. 사역에 쫓기다보면 이런 것을 정리하거나, 연구할 마음의 여유,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BM에서는 선교사 들을 독려하고 있다. 선교사들에게 일정한 틀을 참고하여, 그동안의 사역을 향후 계획도 포함하여 1 차로 15페이지 분량으로 정리하고, 본부에서 발표할 기회를 주었다. 그것을 다시 6~7페이지로 축약 하도록 하고 선교 매거진9에 게재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아울러서 선교 전문성과 지역연구의 독 특성이 있는 글은 책으로 출판하여 전문 지식을 공유하고 하고 있다.10
2) 자체 연구 및 연구지 발간
‘BM 선교전략연구원’을 운영하며, 세계기독교의 변화에 따른 BM에 적합한 선교연구를 하고 있다. BMQ (BM연구지)를 통하여 선교사들의 사역에 대한 이해와 평가를 통해 향후 사역을 계획 하도록 돕고 있다. 복음의 필요성과 수용성에 관한 연구를 토대로 사역지 조정과 발굴, 사역의 재배 치에도 활용할 계획이다. 또한, 연구지는 선교현장에서 발생하는 여러 상황을 수집하고 종합하며 정 리하여 선교 전략을 세우는 기초 작업을 하게 될 것이며, 국내외적으로 일어나는 선교운동과 선교 전략이나 정책들을 선교사들에게 제공하고 적용하도록 돕는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 ‘선교회구조의 유연성 있는 변화 시도’하기
1) 구조의 변화11
BM선교회는 초창기 1기는 대표(설립자) 1인 체제, 2기는 국제대표, 한국대표, 지역대표(중국)와 지역장 체제, 3기는 공동대표와 지역장, 4기는 대표와 본부장(한국, 중국, 전방개척지역) 그리고 분 과장을 두었으며, 5기는 대표와 본부장(한국, 중국, 해외 본부장) 그리고 해외 지역장 국내 팀장 체재 로 계속하여 변화를 시도하여 오고 있다. 소속 선교사의 증가와 선교지의 증가와 변화 그리고 선교 회의 중점 사항에 따라 유연성 있게 변화를 시도한 것이다. 또한, 중국 위주의 구조를 탈피하고 전 지
9 「선교타임즈」, 「한국선교 KMQ 」, 「동로인」 및 「BMQ 빌리온 연구지」, 「KJFM 전방개척선교」 등이며, 『개혁논총』, 『신학지남』, 『성경과 상담』 같은 학 술지에도 계속하여 연구물들을 게재하고 있다.
10 이주현, 『중국의 전통종교 도교 세계관 연구』, (경기파주: 한국학술정보, 2022), 엄옥순. 『타문화권에서의 성경적 상담』, (한국학술정보, 경기 파주,
2020), 김종구, 『중국교회의 타문화권 선교운동』, (경기용인, 도서출판 목양, 2020), 김종구. 『중국선교 퍼스펙티브』, 그리고 유한열, 『365일 말씀과 함께 십 자가와 함께』, (서울: 도서출판 서원10, 2022) 등이 있다.
11 참고로, 김종구, “효율적 선교를 위한 선교회의 거버넌스-BM의 변화를 중심으로”, 「한국선교KMQ 」(2018년 가을호, 통권 67호), 149-158.과 김종구, “BM의 과거 현재 미래”, 「한국선교KMQ 」(2017년 겨울호, 통권 64호), 129-137.를 게재하였으며, 계속하여 선교회 규모와 선교지 변화 등에 대처할 수 있 도록 유연성 있는 구조로의 변화를 연구하며 적용하고 있다.
역의 균형을 고려한 구조로 변환한 것이다.
2) 리더십 교체
한국사회와 교회가 노령화되어가고 있다. 선교회 또한, 피할 수 없이 노령화의 위기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젊은 선교의 필요성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이에 BM은 대표와 본부장과 지역장 등의 리더들 나이를 대폭 낮추었고, 그에 따라 조직도 젊게 바꾸었다.12 이로 인해 기대되는 것은, 선교회 가 대내외적으로 활성화되어서 사역도, 선교사 동원도, 선교환경의 변화에 대한 인식과 대응전략도 빠르고 신속하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3) 현지교회와 타문화권 선교 시작
BM의 장점 중의 하나는 선교 현지 리더들에 대한 신분의 인정이다. 소속 선교사들의 사역의 열 매인 현지인 리더들을 선교회 조직 속에 ‘동역자회(同工會)’로 소속하게 하고 현지 사역에 동역하고 있다. 이 모임은 현지인들로 구성된 조직이다. 이제는 중국교회의 선교 인프라 구축이 원만하다고 판단되어 타문화권 선교를 위한 구조로 변환을 시도하고 있다. 2010년부터 본 선교회 ‘선교중국팀 (BMTC)’을 조직하여 중국 동역자들과 함께 선교캠프와 아웃 리치를 실시하면서 중국교회 리더들 의 세계선교에 대한 인식을 시도하였다.13 이에 대한 한 열매로 1년 과정의 ‘중국**지역 선교훈련원’을 현지 단체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미, 본 선교회 소속으로 미얀마와 태국과 중국 등에 중국인 선교 사를 파송한 바 있다.14
4) MK들을 선교사로 동원
기존 선교사들의 나이는 높아가고, 젊은 선교사의 발굴이 어려운 상황은 이미 시작되었다. 이런 상황을 돌파하고 선교회의 화석화(化石化)를 방지하기 위하여 선교회는 새로운 형태의 선교사 자원을 발굴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이에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캐나다에서 열리는 IMF에 참석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선교사 후보를 만나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다. 아울러서 그동안 돌봄의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MK들을 선교사로 세우기 시작하였다. 이미 한 부부가 정식 선교사로 허입되어 사역하고 있으며, MK 캠프 등과 같은 사역을 통해 계속 MK를 선교사로 세우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12 대표의 연령이 60대 중반에서 50대 중반으로 교체되었고, 본부장들도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으로 임명되어서 힘있게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13 김종구, 중국교회의 타문화권선교운동, (경기용인, 도서출판 목양, 2020), 217-18. 선교 정탐을 위해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 인도네시아, 홍콩 등을 함께 다녀 왔다. 이들은 BM선교사들을 통해 훈련과 양육이 이루어진 사람들이며, 현지에서 지역교회의 목회자로 사역하고 있다. 선교회에서는 이들을 세 계선교에 함께할 선교 파트너로 여기고, 현지 동역자 모임을 선교적 조직으로 변환하고자 하는 계획이다.
14 미얀마의 XX 부부, 태국의 HL 부부, 중국의 SX 부부와 JM 부부 등이 왕성하게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 선교의 모판인 교회와 연합하기
1) 교회를 세우는 선교학교
교회는 선교의 모판이며 선교의 전진 기지이다. 그런데 조국의 교회가 많은 어려움과 침체의 국 면에 접어들었다. 교회의 어려움은 곧바로 선교로 이어진다. 이에 BM선교회는 2009년부터 교회를 섬기는 차원에서 교회와 함께하는 ‘선교학교’를 시작하였다. 선교학교의 대상은 다양하다. 교회의 상 황과 요구를 반영하여 유연성 있는 운영을 한다. 전체 성도, 선교부원, 청년부, 단기선교 희망자 등의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하며, 기간 또한 6-10주 코스로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하여 교회가 격 려와 도전을 받으며, 선교에 대해 구체적으로 배우고, 계속하여 기도하게 되고, 선교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계기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15 이제 코로나-19로 인한 활동의 제약이 없는 상황에서, 지역 교회와 함께 하는 ‘선교학교’를 더욱 활성화될 것이다.
2) 교회와 함께하는 기도회
기도하지 않고 선교할 수 없다. 선교사를 파송하고 협력하는 교회는 세계선교와 선교사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바울 사도도 그의 서신서에서 선교를 위한 기도를 요청하는 것을 볼 수 있다.16 BM선 교회는 지역교회들과 함께 세계선교를 위한 기도를 진행하고 있다. 국내 체류 중인 선교사들이 함께 참석하여 교회와 함께 뜨겁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시간을 가짐으로 서로 간에 위로와 힘이 되는 것 을 경험하였다.17 BM선교회는 지역교회들과 함께 기도하며 시대적 난관을 극복해 나갈 것이다.
- 선교지 재조정 및 선교사 재배치
BM선교회는 피할 수 없이 중국에 집중하여 지역장, 분과장, 코디 등을 중국 위주로 하였었다. 그러나 선교회의 주 사역지인 중국은 2015년 말에 선교사를 대거 추방하기 시작하였고, 2018년 신 종교 사무조례로 인하여 더더욱 어려워졌다. 그 와중에 코로나-19가 엄습하며 중국선교는 큰 위기 를 맞이했다. 이에 따라 BM은 자발적 철수와 비자발적 철수한 선교사들을 아시아 몇 지역에 집중적 으로 재배치하였다. 현재 라오스에 팀이 합류하여 동역을 시작하였고18, 대만에 4팀 등이 재배치되어
15 김종구, 중국교회의 타문화권선교운동, 215-16.에서 자세히 언급하였다. 실제로 새0천교회(토요일 오후. 선교부원과 재직 중심으로), 평0교회(주일 오 후 예배 시 전교인 대상으로), 서부00교회(3회, 토요일, 목요일 저녁, 자원자, 청년부 등 대상으로), 서0교회(수요예배 시 참석자 대상으로), 유0교회(주일오 후 예배 시 전교인 대상), 소0교회(주일 오후 예배 시 전교인 대상으로) 등에서 진행한 바 있다.
16 골로새서 4:3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에베소서 6: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등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17 서0교회, 소0교회, 신0산교회, 소0교회, 동행00교회 등이 있다.
18 라오스 00지역에 BM선교회 국제선교센타(BGMC)를 개원함으로 본 선교회의 새로운 선교기지가 구축되었다. 그동안 중국에 있던 훈련센타의 기능 을 감당하게 될 것이며, BM선교사의 해외 훈련 및 교육, 중국 사역자들의 선교 훈련 등을 하게 될 것이다.
사역하고 있다.19 사역지의 재조정과 선교사 재배치는 급변하는 선교환경의 변화에 따라, 전략적으
로 신속하게 조치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대응해 나가고 있다.
글을 맺으며
BM선교회는 선교환경의 변화를 직시하며 세계선교의 지속과 선교단체의 멈춤 없는 사역을 위 하여 간략히 언급한 것과 같이 대응하고 있다. 수시로 점검이 필요한 복음에 대한 확신과 선교사로 서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확신, 사역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노력, 선교회의 구조에 대한 유연성 있는 변화의 시도, 선교지 조정 및 선교사 재배치 등의 대응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선교사 멤버케어 활동 의 강화,20 위기관리의 구체화를 시도하고 있다.
끊임없이 본질의 확인과 선교방법과 전략, 그리고 선교회 조직의 갱신을 통하여 대응함으로 타 문화권 선교를 계속 감당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19 김종구, “빌리온선교회의 과거 현재 미래”, 한국선교KMQ (2017년 겨울호, 통권 64호), 129-137.를 참고할 수 있다.
20 2021년 KWMA 한선지포에서 BM의 사례가 발표 됨
참고문헌
Ralph D. Winter. 표e 25 Unbelievable Years, 『비서구운동사』. 임윤택 옮김. 서울: 예수전도단, 2012.
고신총회 세계선교후원협의회. 「코로나 이후 세계선교 동향 포럼 자료집」, 2023.19-30.
김종구. 『중국교회의 타문화권 선교운동』. 경기 용인. 도서출판 목양, 2020.
____. “2016년 중국내 한국인 선교사들이 직면한 위기와 사역의 변화에 대한 요구”. 「한국선교 KMQ 」(2016년 여름호, 통권 60호): 120-132.
____. “효율적 선교를 위한 선교회의 거버넌스-빌리온 선교회의 변화를 중심으로-”. 「한국선교KMQ 」(2018년 가을호, 통권 67호) : 149-158.
____. “빌리온선교회의 과거 현재 미래”. 「한국선교KMQ 」(2017년 겨울호, 통권 64호) : 129-137.
새로운 선교환경과 선교단체의 변화_GBT 사례 / 선교본부의 구조, 운영방식의 변화를 중심으로 / 김현 선교사 (GBT)
- 1. GBT 선교회 개요
GBT 선교회(성경번역선교회)는 1985년에 설립되어 현재 약 210여 명의 선교사가 활동하고 있 는 단체이다. 단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정관에 명시되어 있는 단체의 설립 목적, 그리고 GBT 선교회가 추구하고 있는 사명 선언문과 목표 선언문은 아래와 같다.
| 목적
(정관 제3조) |
본회는 성경 번역 및 관련 사역을 통해 모든 민족을 제자 삼는 전 세계교회의 사역에 동참하고 그 사역을 촉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
| 사명 선언문
(2017년 2월) |
우리는 모든 민족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된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으로 변화되도
록 돕는다. |
| 목표 선언문 (2017년 10월) | 1. 우리는 성경 번역의 필요에 관한 증인의 역할을 하며 성경 번역 관련 사역에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끈다.
2. 우리는 성경 번역과 관련하여 남은 선교적 과제의 수행에 한국교회가 부르심에 걸맞은 공헌을 할 수 있도록 헌신과 협력을 촉진한다. 3. 우리는 사역 전반에서 신뢰를 주고받는 선교 공동체를 이룬다. 4. 우리는 성경 번역과 관련된 전 영역의 사역을 통해 그리스도의 제자를삼는다. |
- 2. GBT선교회가 당면한 도전들과 변화된 사역 환경
GBT 선교회가 1985년에 한국에서 출범할 당시 국제단체(Wycliff Bible Translators)의 한국 지부 성격으로 태동이 되었으며, GBT 소속 선교사들은 대부분 성경번역 현지 선교부(SIL)의 회원 으로 성경 번역 사역에 참여하였다. 심지어 SIL의 소속으로 사역을 하지 못할 경우는 GBT 멤버십 을 갖지 못하고 사임하는 예도 있었다. 따라서 선교본부로서 GBT는 과업중심, 사역 중심, 목표 중 심의 사명 공동체였고, 전세계 성경 번역 사역을 위한 인적, 재정적, 영적 자원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기능(resourcing org)이 주요한 내용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선교본부의 구조는 성경 번역 사역과 그 일을 감당하는 선교사를 발굴하고, 파송하고, 지원하는 일이 잘 감당하기 위한 구조였다. 그러나 38년 정도가 지난 지금은 SIL 소속으로 사역하는 선교사(약 67%), 타 Wycliff 기관 혹
은 GBT 직접 파송 형태로 사역하는 선교사(약 25%), 그리고 국내 타 기관 및 기타 사역을 하는 선 교사(약 8%) 등 소속 선교사들의 사역 형태에 많은 변화가 있으며, SIL로 파송되지 않고 사역하는 회원 수는 증가 추세에 있다.
그런가 하면 GBT 소속 선교사들이 사역하고 있는 사역지의 환경이 많이 변화하였고, 지금도
그 변화의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 주요 내용은 선교지 언어의 변화이다. 도시화, 이주, 타 종족간의 결혼 등의 요인으로 다중언어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고 소수 종족어 사용이 전반적으로 약 화되고 있다. 또한 선교지 교회의 성장과 현지인 교육 수준과 역량이 증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 한 예는 인도네시아, 태국, 중국을 비롯한 많은 선교지에서 흔히 관찰된다. 더불어서 세계기독교가 성경 번역 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도 변화된 사역 환경이다. 많은 경우는 자국 내의 소 수 종족을 대상으로 사역하기 위한 다양한 단체와 현지 교단들이 참여하고 있다.
- 변화를 위한 성찰
위에 언급한 당면 과제들과 사역 환경의 변화를 생각하면서 선교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재인 식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선교”가 아닌 “하나님의 선교”, 즉 선교의 주인이 하나님이심 을 고백하며, 우리는 선교에 초청받은 자라는 인식을 새롭게 하면서 우리 사역을 위해 필요한 여러
자원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교회와 다양한 단체들과의 진정한 동역의 방향으로, 동시에 선교지 교회도 스스로 선교적 주체로 서 가도록 동역의 자세를 가지고 선교에 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갖게 되었다.
선교본부 내부적으로는 “선교하는 공동체”가 되기 이전에 “선교적 공동체”로 빚어지는 것의 중 요성을 깨닫게 되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성품을 담아내는 선교, 선교의 과업 성취만이 아니라 선교 의 과정에도 하나님의 성품이 담겨야 함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성찰은 결국 선교에 임하는 자세 및 태도의 변화인데 “함께하는 선교”라는 키워드에 담 아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방향을 설정하게 되었다.
-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기 위한 “함께하는 선교”
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선교 – 선교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초청에 응답하여 하나님께서 열방에서 행하시는 사역에 참여하는 선교, 선교하는 공동체 이전에 선교 공동체가 되어 하나님의 성품으로 감 당해 가는 선교의 여정
나. 한국교회와 함께하는 선교 –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선교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함께 동 역하며, 다른 선교단체들과의 연합과 동역을 통해 선교를 위한 한국교회의 진정한 동역자가 되어 섬김
다. 선교지 교회와 함께하는 선교 – 선교지 교회(언어 공동체)가 주인 의식을 갖고 참여할 수 있 도록 선교 현지의 필요와 관심사에 반응하면서 돕는 선교동역자로서 상호 의존하는 선교를 지향하 는 자세로 섬김
라. 회원들과 함께하는 선교 – 본부와 회원 간의 소통과 교감이 점점 더 원활해지고 신뢰 관계가 깊어 지며, 회원 상호 간의 교류 및 사역 나눔이 활발해지므로 공동체 전체가 신뢰받는 공동체로 성숙하여감
마. 본부사역자들과 함께하는 선교 – 삼위일체 선교 공동체를 이루어, 각자의 은사와 부르심을
따라서 창의적으로 사역하며, 서로서로 섬기는 유기적 사역 공동체가 되는 일에 힘씀

- 5. “함께하는 선교”를 담아내기 위한 조직의 변화
GBT 선교회 본부가 이전의 현장 사역의 자원을 조달하는 기관(SIL&s resourcing org)으로서 지난 20여 년간(2001 -2020) 유지해 왔던 선교본부의 조직은 아래의 표와 같았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성찰의 과정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선교환경, 세계기독교(다중심 선교)에 맞 는 구조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GBT 선교회 중심의 조직에서 하나님의 선 교에 참여하는 방식으로의 변화, 삼위일체 공동체 추구(선교하는 공동체 이전에 선교적 공동체로의 성숙이 필요함), 팀리더십을 지향하는 리더십 팀, 실질적인 사역을 주도적으로 감당해 가는 6개의 팀 위주의 본부를 담아낸 선교본부의 구조는 아래의 표와 같다.

구조의 변화뿐만 아니라 선교본부 운영방식에서의 변화도 꾀하게 되었는데, 그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 팀리더십 추구(공동체적 리더십)
- 팀장 위주의 실무 & 수평적 리더십
- 사무실 자리 배치 변화
- 4. 선교사와 간사의 간극 좁히기(호칭부터 시작)
GBT 선교회에서 3년여 전에 시도한 선교본부의 구조 및 운영방식의 변화 시도는 새롭게 직면 하게 된 이슈(단체로서 직면하게 된 도전들과 선교지 사역 환경의 변화 등)에 적실하게 대처하기 위 함이었다. 변화의 과정에 시행착오도 많이 있었다. 그리고 현재의 구조와 운영방식도 완전한 모델은 아니다. 단체 내에서 지속적인 성찰과 변화가 필요함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이 루신 공동체를 이루어 하나님께서 열방 가운데서 하시는 일 가운데 겸손히 참여하는 단체로 쓰임 받기를 원하는 소원은 점점 커지고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선교사의 재정적 유지가능성, 어떻게 도울까? / 조샘 선교사 인터서브
1. 펀드레이징 워크샵을 통한 공급 가능성과 숙제
• 펀드레이징 워크샵, 어떻게 이해할까?
• 성경적 원리는?
• 효과적인 워크샵을 어떻게 디자인할까?
2. 비종교 직업을 통한 재정 공급, 가능성과 숙제
• 비종교 직업, 자비량의 목적으로 할 수 있나?
• 텐트메이킹 및 BAM, 수입 처리 어떻게 할 것인가?
• 텐트메이킹 및 BAM 과 관련한 본부공헌금, 어떻게 형평성을 만들까?
3. 목적성 기금을 통한 재정 공급
• 유동성의 활용, 어떻게 할까?
• 기금위원회 어떻게 만들고 운영할까?
• Fellowship-based fund management
4. 네트워크 마케팅의 가능성과 숙제
• 네트워크 마케팅과 선교
• 비즈니스 모델로 본 네트워크 마케팅
• 교회적 관점에서 본 네트워크 마케팅
새로운 선교 생태계와 선교단체 / Strategic Innovation Eun Tae Jo (OM Korea)
Introduction
“No place was too hard, no people too far, no idea too crazy, no dream too big!”
OM DNA is expressed well in this catchphrase by the founder of OM, George Verwer. He is well known for his bold and visionary approach to world missions, emphasizing a willingness to go to extra mile in challenging places, reaching out to the unreached and unengaged people groups, embracing unthinkable ideas, and pursuing ambitious dreams for the sake of the Gospel. 표is catchphrase summarizes the spirit of dedication, faith, and reckless attempt that has been a hallmark of OM’s mission work.
- OM Vision Statement
‘We want to see the vibrant community of Jesus Followers among the least reached.’
표is vision statement reflects OM’s desire to see a dynamic and thriving community of Jesus followers among the least reached people groups in the world. In the vision statement, we can see three keywords to achieve our vision.
- Vibrant Community
OM esteems the community of local churches and all believers who are not only individuals following Jesus but also actively engaged with global churches and one another, living out truth in a vibrant and impactful way. 표is community is characterized by love, unity, discipleship and mutual commitment.
- Jesus Followers
The focus is on individuals who have committed their lives to follow Jesus Christ as their Lord and Saviour. OM emphasizes reproduction to make disciple-makers multiply disciples. OM also seeks to see people transformed by the power of the Gospel, living in obedience to God’s Word, and growing in their relationship with Him.
- Least Reached
OM directs its efforts towards the least reached people groups in the world. 표ese are communities or ethnic and cultural groups with limited or no access to the Gospel, where the Christian churches and workers are few. OM is committed to reaching out to these marginalized and unreached people groups, bringing the Gospel of salvation to them through hope, knowledge and help.
With these three key elements, OM’s vision statement expresses our passion for sharing the Gospel, making disciples, and establishing vibrant communities of Jesus followers among those
who have not yet heard or responded to the Gospel. 표e emphasis on the least reached reflects
OM’s commitment to reaching those who are neglected or overlooked in terms of evangelism and discipleship in the world.
- Five Core Values
- Imitating Jesus
표is is something to do with the servant leadership of Jesus. OM International emphasizes, modelling Christ’s example of humility, compassion, and selflessness. Leaders in OM encourage individuals within the organization to lead with a servant’s heart, serving God and others with love and grace. George continued to emphasize the grace of God and grace-awakening in all our mission works. His book, ‘Messiology’ describes the missiology of the Grace of God.
- Mutual Commitment
OM values the formation of a diverse and inclusive global community of believers who are united in their passion for sharing the Gospel and making disciples. They seek mutual commitment in collaboration and partnership across cultural, linguistic, and denominational boundaries, embracing the richness of the global church.
- Strategic Innovation
This value is OM’s DNA from the beginning. Who might think of Bible smuggling under the engine of vans? Who might think of an ocean-going ship to use for bringing hope, knowledge and help to the lost world? OM continues to evolve new ways of sharing the Gospel through sports, arts, music and business. We are creative strategists to transform communities and lives through the innovative Gospel tools
- A Biblically just and Diverse Community
A Biblically just community seeks to live out the principles of justice and righteousness as outlined in the Bible. OM acknowledges that God’s word calls for justice, equity, compassion and care for the marginalized and vulnerable. While emphasizing diversity, a Biblically just community also recognizes the unity in the power of the Gospel. It acknowledges that followers of Christ, despite their diverse races and backgrounds, are united in their faith and allegiance to Jesus. This unity is built on shared beliefs, values, and a commitment to love one another as Christ loved us.
- Kingdom Transformation
A Biblically just and diverse community aligns its values and practices with the broader Kingdom of God. God’s Kingdom is characterized by justice, righteousness, and unity in diversity, not unity in conformity. Therefore, OM strives to manifest these qualities in its community as a reflection of God’s ultimate plan for His people. The value of Kingdom Transformation recognizes that the Gospel of Jesus does not only bring individuals into the kingdom of God but also transform communities and lives by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Such transformed communities and individuals not only reflect God’s heart but also has the potential power to impact the world with the transformative message of the Gospel.
- 2. Two Pillars of OM Mission Direction
- VCJF Movement
OM wants to see people’s lives transformed by the power of the Gospel, living in obedience to Christ, growing in their relationship with Him, and making disciples of Jesus for all nations.
Yallah Project Team continues to develop the strategies and tools to work out the vision into
reality. It should not only focus on the reproduction of disciples but also focus on the quality of Jesus’ followers. Otherwise, we may multiply disciples with syncretism in their cultures. How can we know how we are doing what we are doing in discipleship training? We can measure what we have been doing through the fruits we bear. 표is is why I develop DELIVER System as a disciple- making process for OM to achieve the vision of VCJF (Vibrant Community of Jesus Followers).
The Need for Systems and Processes to Deliver the Vision of VCJF into Reality
We need systems and processes to reach our vision. However, in the history of Christianity, the church became institutionalized when hierarchical systems controlled the church. 표ere is no life in mechanical systems following dead traditions. We need organic systems and processes in which natural growth and true maturity take place.
The Clear Vision for Kingdom Workers
We have a clear vision of our mission. We are called to make disciples of all nations. It is all about being more like Jesus throughout all that we do. How can we reach the ultimate goal that God desires for us to do? No matter how great a vision we have, we cannot reach the vision unless we deliver the vision into reality through an organic and holistic process. I would like to introduce the DELIVER System to reach the ultimate vision through an organic process.
표e DELIVER System to Reach the Vision of Christ: De:fne the vision of Christ. (Matthew 28:19-20) Elevate the mind to reach the vision. (Romans 12:2)
Lighten the vision in the church community. (Ephesians 2:21-22) Innovate the vision in action plans. (2 Corinthians 5:14-19) Vindicate the vision by the mark. (Hebrews 11:1)
Evaluate the vision by fruits. (Matthew 7:24-27) Revitalize the vision. (2 Timothy 2:2)
Implementation of being creative in the disciple–making process for all nations
De:fne the vision of Christ
We should clarify the de:fnition of the vision we want to achieve. Our vision is to make disciples of all nations. We want to see the vibrant community of Jesus followers in every place we are called to. This is the ultimate purpose Christ desires for us to do. Then, what is disciple-making? Many people talk about discipleship, but I prefer to use the term ‘disciple-making’ as the process of becoming disciples of Christ rather than ‘discipleship.’ Discipleship can be part of the disciple-making process, but it is not the whole of it. The definition of true disciple–making, I believe, is the process of wholistic change in spiritual growth to become perfect in Christ (Colossians 1:28).
‘Disciple-making’ cannot occur overnight. It is a holistic change in a life-long process. To achieve this vision, we need three great commitments:
-표e great commitment to the Lord of our lives
-표e great commitment to the Great Commission
-표e great commitment to the Great Commandment
I call this ‘The Master plan of true disciple-making.’ On this blueprint, we work out to deliver the vision of Christ into reality through an organic process.
Elevate the mind to reach the vision.
To elevate our minds to reach the vision, we need the Model to follow. Jesus is The Model of true disciple-making. We need to continue to renew our minds from self-centeredness to Christ-centeredness.
Lighten the vision in the church community.
Christ’s plan to fulfil His vision was given to His church. His vision must be fulfilled in the community of His people. Hence, The Movement of true disciple–making starts from the church.
Innovate the vision in action plans.
We need a strong motive in action plans to take the vision into reality. I call this ‘The Motive of true disciple–making.’ It is genuine love. We can only activate the vision of Christ into reality not by human power but by Christ’s compelling love.
Vindicate the vision by the mark.
How can we know that our systems and processes are working well to reach the vision? 표ere is the mark. The Mark of true disciple-making is enduring faith until the end (Matthew 24:13). 표e Mark of true disciple-making can help us know whether we made true disciples of Christ or not.
Evaluate the vision by fruits.
By fruits, we can measure true disciples. I call this ‘The Measure of true disciple-making.’ By the fruits we bear, we may recognize who we are and how we are doing. 표e Measure of true disciple-making is the fruit of commitment, character and conversion (here I am talking about real conversion; the change of worldview).
Revitalize the vision.
Systems and processes cannot be :fxed forever. Every organisation starts with a movement. 표en, it becomes a manual. However, a manual without innovation and constant change becomes a monument, a dead system. To revitalize the vision, we should keep checking ‘The Method and Means of true disciple–making that we use. However, there are unchanging methods and means. It is the Method of organic and holistic change for spiritual growth in a living process. And the only Means we use for training is the Bible. We continue to revitalize the vision by equipping disciples through the living words of God.
The ultimate vision of Christ
Through all we do, we bring a clear message to the world. It is all about the restoration of the kingdom of God. 표e Message of true disciple-making is to proclaim the restoration of the kingdom of God as Jesus did. 표erefore, we need to ask God for wisdom to be creative in systems and processes for this purpose.
- SOFT project: Shaping Our Future Together
This team supports the OM movement with core values in biblical principles. Out of their efforts, we can summarize the 5 Core values that OM seeks. To achieve the vision of OM, all workers within OM need to know Core Values and implement them in daily life as we shape our future together.
- OM Korea ‘5M’ Ministry and Strategic Innovation
- Mobilizing
Over the last decades, the number of Sunday schools in Korean churches decreased rapidly to the point of minus 50%. This phenonium causes us to see a dramatic change in decreased numbers of sending missionaries according to age group. 표e percentage of missionaries between 50~70 years old is more than 60% of all cross-cultural workers. 40 years old group is 30%. 30 years old group is 7%. And under 30 years old group is less than 1%. That’s why OM Korea focuses on mobilizing teenagers to see the global vision through the platform of TeenStreet Korea conferences and outreaches.
- Mission Training
After Covid, many of us reflected on our mission work seriously with the question of what the essence of our mission work is. We acknowledged our mistakes and failures of events and building-oriented ministries instead of focusing on disciple-making for all nations. OM Korea tried to help local churches and missionaries to focus on sustainable mission work of disciple- making ministry in the process. OM Korea developed the practical tool, TDM (Training Disciple-Makers to Multiply Disciples) program for local churches and missionaries to use for evangelism and discipleship in process.
- Multi-Cultural Ministry
Another big change in OM Korea’s direction is to shift the role of the mission agency from sending :feld to the targeting :feld as Korea became a more multi-ethnic nation where we have 3 million foreigners approximately. 표ere is no boundary between sending :felds and targeting fields any longer. OM Korea began to receive international teams to reach out to International
students and rapidly growing multi-cultural family groups in Korea. And north Korean ministry
was born with the interest of the international team as well.
- Missionary Support Services
OM has been well-known for short-term missions. But as time goes by, we have more long- term workers than short-term workers. Those who have served in the fields for more than 15 years are around 50% now. They need to be refreshed through formal or informal educational recharging programs. Instead of having a big conference, we try to let missionaries share what they got through in their lives with limited numbers of small groups of people. It was an amazing result of healing taking place through this program. We decided to run this program yearly with small groups of long-term workers.
- Mission Links
We can carry out Global Mission in collaboration and partnership with churches, mission agencies, Bible colleges and Christian media together. OM Korea developed the credit exchange program with Bible colleges through the on-the-job training program in Ship ministry and 147 OM :felds. We also began to develop a ‘Korean World Ministry’ with diaspora Korean churches around the world to have mission networks for expanding the kingdom of God as we have mission links strategic meetings yearly.
- Two Pillars of OM Korea Ministry Direction
- Mobilizing next generation
We want to see future spiritual leaders arising as we focus on the 4/14 window strategy from the 10/40 window through the platform of TeenStreet Korea. These teens include teens from multicultural family groups in Korea as well.
- Mobilizing multi–ethnic people
We want to see potential missionaries from multi-ethnic people in Korea through the platform of multi-cultural ministry in Korea. We already experienced the potential result through this ministry as we sent the :frst North Korean brother to Logos Hope Ship last year.
Conclusion
We are history-makers in God’s mission
“I planted the seed, Apollos watered it, but God made it grow. (1Corinthians 3:6)
No matter how great the strategy we have, it is all about God’s mission initiated from the beginning. It is a great privilege and honour for us to join in God’s mission with Him to transform global communities and lives by the power of the Gospel in Christ our Lord. We thank God for His calling as history-makers in God’s mission.
Brief Biography
Eun Tae Jo is a Mission mobilizer, motivational innovator and church planter, serving in India, Russia, Korea and Australia with OM since 1992. He has been involved in multi-ethnic church planting ministry in Russia, Australia and Korea. He studied at Korea Theological Seminary (M.Div.) in Korea and Grace Theological Seminary (D.Ics.) in the U.S and now is working in Korea as the national director of OM Korea.
시대에 응답하는 한국여성 선교사 / 이선이 교수(호남신학대학교)
■ 자기소개
호남신학대학교, 선교학 교수
한국 얌스(IAMS) 아카데믹 위원장
한국선교신학회 편집장
저서: 아시아선교신학의 모델 연구, 손잡이 없는 십자가(번역) 외
■ 목차
- I. 들어가는 말
- II. 한국여성 선교사의 변화 지향점
- 세계 기독교 시대의 아시아 여성지도자
- 2. 지역화 시대의 신(新)전도부인
- 새로운 선교 전환기의 협력하는 남녀 동역자 III. 한국여성 선교사의 변화를 위한 협력 제언 1. 한국교회와 선교단체에 대한 제언
- 2. 현지 선교사회에 대한 제언
- 한국여성 선교사에 대한 제언
- 나오는 말
키워드: 세계기독교시대, 지역화, 신전도부인, 한국여성 선교사, 파트너쉽
- I. 들어가는 말
세계 복음화를 위한 국가 전략회의(National Consultation On World Evangelization, 약칭 NCOWE)는 1991년 이래 지금까지 한국선교의 방향 제시에 노력해왔다. NCOWE 2023은 제8차 회의로 세계선교의 흐름 가운데 한국선교가 응답해야 할 시대적 사명을 모색하고자 한다. 2022년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의 조사에 의하면, 한국국적의 장기 선교사는 22,204명이며, 전체 남 녀 비율은 남자는 48%, 여자는 52%를 차지하고 있다.1 그러므로 한국선교의 향방은 한국선교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여성 선교사들이 어떠한 사고와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여성 선교사들은 세계선교에 자신의 위치에서 주어진 일들을 감당해왔다. 그러나 대부분 여성은 남성보다 지위가 낮았고, 여성의 역할은 남성의 보조적인 존재로만 여겨졌다. 독신 여성 선교 사에 한에서 ‘선교사’ 호칭이 붙여졌으며, 남성 선교사의 부인은 선교사라는 호칭을 하지 않았다. 교 단마다 차이는 있으나,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통합)는 1987년이 되어서야 선교사의 부인에게도 선 교사직을 부여해 주었다.2 하지만, 최종 의사결정자 또는 선교단체의 대표직은 주로 남성이 차지하고 있으며, 아직도 여성이 선교사로서 인정받기 어려워 선교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데 한계를 가 지고 있다. 따라서 싱글여성 선교사뿐만 아니라 부인 선교사들도 선교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환경 조성과 변화가 필요하다.
한국교회는 여성의 지도력을 잘 인정하지 않으려는 가부장적 성직주의 사회이다. 한국여성 선교 사들은 한국교단이나 선교단체에서 그들에 대한 체계적인 정책이 없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그들 은 과거보다 나은 내일을 위하여 꾸준히 변화를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NCOWE 2023의 ‘변화하
는 여성 선교사’ 트랙에서 다룰 주제는 변화하는 시대에 응답하여 한국여성 선교사들이 동역자들과 세계선교를 위해 협력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자 하는 모색이다. 따라서 본 글은 시대의 흐름 속에 한국여성 선교사의 좌표를 직시하며 방향성을 논의하고자 한다.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한국여 성 선교사가 세계기독교 시대의 아시아 여성 지도자, 지역화 시대의 신(新)전도부인, 새로운 선교 전 환기의 협력하는 남녀 동역자로 변화하고자는 지향점을 논의하고자 한다. 그리고 한국교회와 현지 선교사회, 그리고 한국여성 선교사들을 향한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1 2022년 한국선교사 현황은 한국국적의 장기 선교사는 22,204명, 선교단체 소속의 단기 선교사는 482명, 외국 국적의 국제선교사는 910명으로 나
타났다. 사역대상국은 169개국이다. 한국선교연구원(KRIM), “2022년 한국선교현황 통계조사”. https://krim.org/2022-korean-mission-statistics/ 2023.2.22.
2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제72회 총회 회의록』 (서울, 대한예수교장로회 출판사, 1988), 101쪽. “다양한 선교 영역의 확장과 효과적 선교의 활성화를 위 하여 선교사 부인도 선교사에 준한 선교사직을 부여하여 달라는 건은 허락하기로 가결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합동)의 경우 1991 년도 남성 선교사 부인에게 선교사직이 부여되었다.
- II. 한국여성 선교사의 변화 지향점
- 세계기독교 시대의 아시아 여성 지도자
세계선교는 서구가 중심이 되어 진행되었지만, 20세기 이후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교회가 성 장함에 따라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즉 서구중심의 선교 시대에서 세계기독교 시대로 흐름 이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기독교 시대란 세계선교를 주도했던 서구의 로마가톨릭과 개신 교가 19세기 식민주의 시대를 마감하면서, 제3세계의 기독교인 증가로 다국적인 기독교로 새롭게 부 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앤드류 월스 (Andrew F. Walls)는 세계기독교학(World Christianity)이라는 새로운 선교학 분야를 정립하면서, 기독교가 서구의 종교에 머무르지 않고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사회화의 과정을 거친다고 보았다.3 그는 기독교를 서구 중심적으로 바라보지 않 고, 다양성을 수용하며 세계 종교로 발전하는 기독교의 세계화를 내다보았다.
한국의 경우, 19세기 말에 서구선교사들에 의해 서구 의료와 교육 등 근대화 문명과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서구 기독교의 선교는 한국교회의 부흥을 가져왔으며, 교육은 인재 양성과 독립정신을 배양시켰다. 해방 이후, 미소 신탁통치, 6.25 전쟁, 남북분단의 역사적 상황은 미국의 절대적 영향력 을 받게 되었다. 한국은 기독교와 서구화의 구분이 없이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서구사상을 분별할 틈 도 없이 무비판적인 수용을 하게 되었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와 더불어 서구의 것을 더 가 치 있는 것으로 여기는 서구 중심적 사상이 내면화하게 되었다. 한국은 다른 아시아 나라와 달리 서 구식민주의를 직접 겪지 않고, 일본 제국주의하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반일감정과 서구 에 대한 우호적인 감정을 갖는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한국의 전반적인 상황은 서구중심주의에서 오는 폐해를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그 극복을 위한 노력이 미흡하다. 서구중심주의는 서구를 중심에 두고 비서구를 주변화하여 서구 문명의 보편성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을 스스로 주변화하여 자기비하와 자기부정의식을 갖게 되어 마침 내 자신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4 한국선교와 신학은 이제 서구중심주의에 편향된 자세를 버 리고 한국인 본연의 정체성을 정립하여야 한다. 필자는 서구의 우수한 점을 선별과 취사선택을 하는 혼합과 융합을 지향하는 혼융적 전략을 추구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구신학과 선교의 장점을 적 극적으로 수용하면서, 한국선교의 현장에서 우리 나름의 신학화를 하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세계기독교 시대의 핵심 과제는 하나님 중심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홍대용
은 지구 구형설을 수용하면서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중심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며, 중화주의에 따 라 중국과 주변 국가를 문명과 야만으로 구분하는 것은 잘못된 사고”5라고 지적했다. 중화주의와 마
3 Andrew Walls, Missionary movement on Christian history, 방영산 역, 『세계기독교와 선교운동』 (서울: IVP, 2018), 21-26. 4 이선이, “한국적 선교신학의 가능성 모색: 서구중심주의 극복을 위한 선교신학적 담론” 《선교신학》 68집, 2022, 185-186.
5 강정인, 『서구중심주의를 넘어서』 (서울: 아카넷, 2004), 11.
찬가지로 서구중심주의 역시 편향된 사고방식이다. 서구의 문화와 문명의 잣대로 아시아를 바라보
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인의 삶의 정황에서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이다. 한국여성 선교사들은 세계기 독교 시대를 맞이하여 하나님 중심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재확인해야 한다. 1952년 빌링겐 국제선 교협회의 (Willingen 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에서 서구선교의 반성에서 하나님의 선교 (Missio Dei) 개념이 표현되었다. 하나님의 선교는 교회가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교의 주체이며, 선교의 장은 교회를 넘어 세상 전체를 포괄하는 것을 뜻한다.
UN에서 추정한 전 세계 인구는 8,005,176,0006이며, 아시아의 인구수는 전 세계의 대륙 중 가 장 많은 4,751,819,588에 이른다.7 따라서 아시아 여성은 전 세계 인구의 1/4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선교사의 파송 국가 중 59.4%가 아시아 지역에 있다.8 그러므로, 한국여성 선교사는 아시아 여 성 지도자로서 정체성을 지니고 세계선교에 일익을 담당해야 한다. 아시아 여성은 다문화, 다종교, 다민족의 배경을 특징으로 한다. 특히 유교, 이슬람교, 힌두교의 지역에는 성차별적인 요소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어 여성들이 종교적 억압 속에서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 여성 선교사들은 이러한 아시아 여성들을 이해하며, 자신들이 만난 하나님으로부터 자신들의 선교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땅끝 향기』는 땅끝에서 보내온 여성 선교사들의 삶과 사역에 관한 이야기를 쓴 책이다.9 이 책 의 내용은 58명의 한국여성 선교사들이 선교지의 상황 속에서 선교사, 아내, 어머니, 딸로서 살아온
여정을 신앙고백으로 풀어낸 수필형식으로 되어 있다. 태국에서 22년간 선교한 강명선 선교사는 “나 의 이야기”라는 제목하에 대상포진으로 쉼의 기간에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 하나님과 주변 의 따스한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느끼는 진솔한 글을 썼다.10 이러한 책 외에, 한국여성 선교사들이
아시아의 지도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자신의 아시아문화를 수용하고, 분별하며 선교사역을 구체 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여성 선교사들의 이야기와 선교신학적 저술은 선교역사의 자 취를 남기며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작업이 될 것이다.
- 지역화 시대의 신(新)전도부인
크리스텐덤(Christendom)은 역사상 콘스탄티누스(Flavius Claudius Constantinus) 황제의 밀 라노 칙령(AD 313)에서 시작하였다. 이것은 기독교가 법과 정책, 사회적 이념과 관습 및 문화를 지 배하는 사회이며 국가의 기독교의 교리 및 예배와 선교를 지지하여, 기독교적 이념이 지배하는 국가
6 World Population Review, worldpopulationreview.com 2023.5.30.
7 앞 사이트.
8 컵뉴스, “2022년 한국파송장단기 선교사”
http://www.cup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20887 2023.2.21.
9 차남준 외, 『땅끝 향기』 (서울: 동서선교연구개발원, 2021), 6-9.
10 앞의 책, 120-124.
나 사회를 뜻하는 것이다.11 크리스텐덤은 기원후 4세기부터 적어도 1500년 이상 존재하였고, 서구
에 존재하였던 크리스텐덤 방식의 기독교는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아프리카, 아시아, 그리고 중남 미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에 걸쳐 존재하였다. 크리스텐덤은 무너지지 않을 도성처럼 보였지만, 20세 기 중반에 이르러 포스트크리스텐덤(Post-Christendom)이 되었다.
기독교는 초기에 정치 권력과 거리가 먼 주변부에서 출발하였으나, 크리스텐덤 시대에는 세상의 중심부를 차지하며 정치세력의 절대적인 비호를 받게 되었다. 이러한 크리스텐덤 시대는 선교의 부 재와 이분법적 지역 구분, 교권주의를 특징으로 한다.12 크리스텐덤 관점의 선교는 서구에서 비서구 로의 서구인 중심이었다, 크리스텐덤 이후의 시대는 전달자 중심이 아닌, 내부인 중심의 선교가 이루 어져야 한다. 현시대는 포스트크리스텐덤 사회이지만, 교회는 크리스텐덤이라는 역사적 배경 아래에 서 형성되어, 서구교회와 한국 복음주의 교회들도 모두 크리스텐덤를 지향하였다.
한국교회는 1970년 말부터 약 30년 동안 유사 크리스텐덤 사회의 특징을 지녔다.13 그러나 한국 교회의 사회적 평판은 냉소적이고 비판적으로 변하였다. 따라서 포스트크리스텐덤 시대에는 하나님 의 선교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 선교적 교회론은 선교지를 비서구로 보는 이분법적 접근에서 전 세 계가 선교지로 보며, 교회의 본질이 선교라고 보는 것이다.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은 위기 의 서구문화 속에서 선교적인 책임에 진지하게 반성하며, 선교사명을 잃은 교회는 신약의 교회가 아 니라고 했다.14 그는 교회란 하나님이 특정한 장소에 어떤 사명을 위해서 보내신 대사이며, 교회란 특 정한 지역에 있는 지역교회라고 하였다.15 또한, 지역교회가 선교하는 교회로서 근본적인 변화를 위 해서는 리더십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첫째로,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왕의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에 교회 전체라는 나의 믿음을 분명히 밝혀두고 싶다. 즉 몸의 모든 지체는 제사장직을 수행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과 제사장 직은 세상의 세속적인 일들 가운데서 그리스도인들이 매일의 삶과 일 안에서 실행되어야 한다는 사 실이다. 둘째로, 몸의 지체들 모두가 전적으로 사역에 참여하는 일은 리더십 없이는 불가능하다. 리 더십이란 바로 모든 지체의 활동을 가능하게 해주고 격려해주고 지탱해 주는 것이다.16
교회의 사역은 교회 구성원의 일부분이 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성도가 함께 참여하는 것이다. 지역교회는 전 회중이 자신의 선교적 소명을 깨닫고 교회의 사역에 참여하는 비율이 높이는 것이 건
11 장동민, 『포스트크리스텐덤 시대의 한국 기독교』 (서울: 새물결플러스,2019), 24.
12 정승현, “크리스텐덤의 이해와 선교적 교회론”, 《선교신학》 제43집 2016.08, 187-220
13 장동민, 『포스트크리스텐덤 시대의 한국기독교』 ,140.
14 신현수, 『선교적 교회론』 (서울: CLC, 2011), 174.
15 앞의 책, 175.
16 Lesslie Newbigin, 표e Gospel in a Pluralist Society, 허성식 역,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 (서울:IVP,1998), 376-377.
강한 교회 구조이다. 한국여성 선교사들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상대주의, 종교다원주의가
혼합된 선교현장에서 선교지의 지역교회가 선교의 본질을 회복하는데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 리더십은 선교현장에서 명령이나 지시로 교회의 사역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내부인(indigenous) 이 중심이 되어 그들에 의한 자신학화가 이루어지고 자신들의 문화공동체가 안에서 지역교회가 세 워져 가서 이를 외부자(선교사)가 돕는 과정으로 선교를 하는 것이다.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선교적 교회의 원리는 지역사회와 열린 관계에서 공존, 지역사회와 소통 과 대화, 지역사회에의 참여와 변화이다.17 한국교회 초기역사에서 지역사회의 복음화에 힘썼던 권서 인, 매서인, 전도부인이 있다. 전도부인은 여성을 대상으로 당시 금남의 구역이었던 안방까지 들어가 복음을 자력으로 전하여 한국교회 부흥에 밑거름이 되었다. 지역화 시대의 한국여성 선교사는 현지 지역사회를 위한 전도부인의 역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전도부인이란 여성 선교를 위해 활동한 선교 요원이었으며, 근대 초기에 여성을 위하여 지역 기반을 토대로 마을로 다니며 맹활약을 하였다. 서구 선교사들이 전한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현지에서 기독교 여성 지도자들인 전도부인 의 역할이 컸다. 예를 들면, 스왈른 부인(Sallie W.Swallen)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기풍 목사의 요청 으로 평양연합여전도회가 1908년 10월에 제주도로 파송한 이선광 전도부인이 있었다. 또한 마가렛 베스트(Margaret Best) 선교사가 기록한 박도신 전도부인이 있었다.
그녀는 성경을 배우는 학생이었다. 성경학교에 가지는 못했지만 나와 같이 집에서 성경을 공부했 다. 나는 복음서 개요를 반복해서 알려주곤 했다. 그녀는 보모 일을 그만두고 여전도회는 그녀를 나 가서 전도하는 사람으로 선택했다. 마침내 그녀는 제주도로 파송 받아 거기서 15년 동안 복음을 전 했다. 그리고 아직도 평양 지역에서 전도하고 있다.18
베스트는 미 북장로회 선교 25주년 기념사에서 시골 여성들을 섬기는 일에 자신을 잊고 일생을 드린 박씨 도신(Pak Si To Sin)”이라고 그 이름을 언급하고 그 헌신을 기렸다. 박도신은 평양여전도 회가 파송한 전도인 중의 한 명이기도 했다. 1913년 그는 배씨 부인이라는 또 다른 전도인과 함께 평 양에서 북동쪽으로 400리 떨어진 구역에서 전도하느라 3개월을 보냈다. 그들이 34곳을 방문하는 동안 544명이 복음을 들었으며 44명이 믿겠다고 했고, 한 곳에서는 13명의 여신도가 이들의 가르침 을 받았다고 여전도회 총회에서 보고했다.19
17 한국일, 『선교적 교회의 이론과 실제』,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2016), 276-282.
- Swallen, “Reminiscences of Some Senior Missionaries,” Jubilee Papers, 52-53. 이선광이 제주에서 사역한 기간에 관하여 5년 또는 15년이라 는 이견이 있다.김은정, “미북장로회 전도부인연구” 연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21, 149-150. 재인용.
- Margaret Best, “Development of Work Among Women,” Quarto-centennial Papers, 53,(M C. F.) Helen Kirkwood Bernheisel, “TheWomen’s Missionary Society,” Woman’s Work 30.2 (1915), 33. 위의 논문, 144, 재인용.
당시 이선광은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제주도에 파송되어진 최초의 전도부인이었다. 박도신은
베스트와 지방을 돌아다니며 20여 년을 전도한 동역자였다. 이들과 같은 여성을 21세기에 신(新)전 도부인이라 부를 수 있다. 신(新)전도부인은 복음화와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선 교의 통전적인 선교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한국여성 선교사들은 서구선교사와 동역했던 전도부인의 영성을 계승한 신(新)전도부인이자, 선교지에서 현지의 여성들이 신(新)전도부 인이 되도록 인도하는 위치이다. 즉, 현지 여성들에게 전도부인과 같은 한국선교의 자발적인 참여를 격려하여 현지교회가 살아나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한국여성 선교사의 사명 또한 이 시대의 신(新) 전도부인으로서 선교의 통전성을 이루는 선교관 확립과 이를 실천하는 것이다.
- 새로운 선교 전환기의 협력하는 남녀 동역자
한국여성 선교사들은 미래를 위하여 과거의 행태에 고착되거나 답습하는 것을 넘어서 새로 운 변화를 위한 새 시대를 위한 준비가 요구된다. 해외에 파송된 한국여성 선교사들은 1930년대까 지 대부분 부인사역 위주로 사경회나 성경공부를 인도하였다. 1940년에서 1960년대는 부인사역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계몽이나 교육 등의 사역을 감당하였다. 1970년에서 1990년대에는 좀 더 확대되 어 전도, 교회설립, 어린이 교육을 하며 선교센터를 설립하거나 기독교 학교를 세우는 역할을 한다. 1990년대 이후는 다양한 선교사역들이 나타나는데, 여전히, 전도, 성경공부, 현지인 교육을 하지만 특수선교, 전문인 선교, MK선교, 문서선교, 캠퍼스 선교, NGO(비정부기구) 등 다양한 방법과 전략 으로 선교지의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시대가 변화면서 여성 선교사들의 사역 범위와 활동이 확대되면서 여성 선교사들의 지위도 상 승하였다. 하지만 여성 선교사들의 지위는 여전히 시대적인 상승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하 나님으로부터 같은 부르심을 받았어도 여성 선교사들이 남성 선교사들과 온전한 평등한 관계를 이 루지 못했다. 파송 단체나 선교단체가 여성 선교사를 보조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 회에서도 여성 선교사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꺼려 전문인 여성 선교사들은 어려운 환경 가운데 있 다. 교회와 선교사역의 현장에서 수평적인 소통의 관계를 형성해 가는 노력이 요구된다. 하나님의 선 교에 부르심을 받은 선교사가 성별, 인종, 계급을 넘어 각자의 고유한 존재성을 건강하게 드러내면서 공동의 사역을 협력하여 일하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당면한 성차별적 구조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젠더 통합적 리더십” (Gender
Inclusive Leadership)이 필요하다. 젠더 통합적 리더십은 “여성과 남성이 서로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서 협력하고, 보완하면서 보다 효율적이며 창의적인 방향으로 일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 고 문화를 조성 새로운 조직 관행을 만들어가는 리더십이다.”20 여성과 남성의 서로 다른 관점과 경 험을 인지하고 보다 나은 방향으로 장점들을 승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다. 박보경은 교회조
20 김양희, “성의 벽을 넘어선 통합의 리더십이 혁신을 이끈다.” 《Dong-A Business Review 2》, no, 91 (Oct. 2011): 47,
직 안에서 젠더 통합적 리더십의 형성을 위한 방안을 여섯까지 제시하였는데, 타문화 선교지에서 적
용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첫째, 젠더 통합적 리더십의 형성을 위해서 영적 리더로서 잠재력 있는 여성 목회자(선교사)들을 발굴하고 여성이 리더십 지위를 수행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야 한다. 둘째, 여성 스스로의 리더십 역 량의 증진을 위해 노력을 필요가 있다. 셋째, 젠더 통합적 리더십 형성을 위하여, 여성들이 자기연민 과 수동성을 극복하는 것이다. 넷째, 온전한 젠더 통합적 리더십의 형성은 여성적 리더십의 바람직한 모델들을 현장의 이야기 속에서 발굴하여 긍정적 여성 리더의 이미지를 구축함으로 더욱 구체화한 다. 다섯째, 기혼여성 목회자(선교사들)의 목회 영역의 경력단절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 할 필요가 있다. 여섯째, 온전한 젠더 통합적 리더십의 형성은 남성들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21
젠더 통합적 리더십의 두 번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여성 선교사들은 문화적이고 제도적 인 인식변화에만 기댈 수는 없다. 먼저 여성 선교사들이 자신들의 가치와 능력을 발휘하여 선교사 역을 할 수 있도록 계속된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사람들의 여성에 대한 편견과 불평등을 넘어서 여 성들이 연대하여 노력해야 할 점이 있다. 21세기 다양한 선교사역들이 생겨나는데 여성 선교사들이 자신의 은사대로 선교사역을 할 수 있도록 은사를 발견하고 전문화해야 한다. 여성 스스로 전문성 을 갖추어 언어, 운전, 컴퓨터, 영상 등 실제적인 능력을 갖추어 끊임없이 은사를 개발하고 사용하는 것이다. 여성들이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알고 개발 훈련하여 자신이 일하는 분야에 더욱 전문성을 가지고 집중해야 한다. 이미 사역을 하는 여성 선교사들도 재교육과 훈련을 통해 끊임없은 자기 계 발이 요구된다.
III. 한국여성 선교사의 변화를 위한 협력 제언
- 한국교회와 선교단체에 대한 제언
한국사회는 여전히 성차별적이며, 한국교회 또한 한국사회의 현상을 반영한다. 여성가족부 자료 에 의하면, 2020년 여성은 우리 사회의 공정성에 대해 교육기회(76.8%)를 가장 높게 평가했고, ‘정치 활동’(40.3%)으로 가장 낮게 평가되었다.22 2020년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대상 공공기관 및 500인 이 상 민간 사업장의 여성관리자 비율은 20.9%로, 4급 이상 일반직 국가공무원 중 여성 비율은 17.8%,
21 박보경, “선교적 과제로서의 젠더 통합적 리더십 형성을 위한 방안”, 《선교신학》, 41집 (2016), 166-173. 선교 영역의 적용 이해를 돕기 위하여 저자의 목 회자란 단어에 선교사를 첨부하였다.
22 여성 가족부, “2021년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변호사 중 여성 비율은 27.8% 등 지속해서 상승하고 있다.23 국내 주요교단의 여성 목사 안수 현황은
합동, 고신, 합신, 대신 등의 교단이 여성에게 안수하지 않고 있다.24 그러나 여성안수를 허락하지 아 니한 교단이라고 할지라도 여성 안수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다. 여성안수를 허락한 교단 이라 할지라도 여성의 사역기회가 동등하게 허락되지는 않는 상황이다.
한국여성 선교사의 경우 1930년대 초기에 파송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1930년대 후반 에 일제의 교회 핍박으로 힘들어지자 여성 선교사역도 영향을 받았다. 해방 이후에야 점차 여성들의 선교사역이 가능해졌다. 1988년 이후 해외 파송 선교사가 늘어나면서 여성 선교사들의 파송 수도 급격히 증가하였다. 통합(1987), 합동(1991) 교단에서 선교사 부인들에게 선교사직을 부여하여 파송 선교사 증가에 이바지했다. 부인 선교사의 경우 개인성향과 현지의 여성의식에 따라 사역의 범위가 다양하게 나타난다.25 독신 여성 선교사들은 선교사역을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지만, 본국의 후 원교회로부터 지원이 남성 선교사와 비교하면 열악한 편이다.26 따라서 후원교회와 선교단체 차원에 서 여성에 대해서 보조적 존재라는 편견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독자성을 인정하며 지지와 후원을 하 여야 할 것이다.
- 현지선교사회에 대한 제언
장기 선교사 부부는 전체 선교사의 90.3%이며, 독신은 9.7%를 차지한다. 이 중에서 독신 선교 사의 남녀 비율은 남성 29.5%, 여성 70.5%이다.27 따라서, 2022년 통계 여성 독신 선교사들은 약 1,508명이다. 독신 여성 선교사들은 일반적으로 뜨거운 기도와 헌신, 전도의 열정과 잘 훈련된 신앙, 체계적인 성경 지식,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사랑과 동정심, 고학력의 지적 수준 등의 무한한 잠재력 이 있다.28 독신 여성 선교사는 가정의 제약을 받지 않고 활약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독신이라는 이유로 여러 불리한 점이 있다. 따라서 세계선교라는 공통 목표 아래 현지 선교에서 여성 지도력의 인정, 경제적, 교육적 지원이 충분히 지원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부인 여성 선교사는 2022년 통계에서 약 9,992명이다. 선교사의 사명의식이 투철한 기혼여성 선 교사는 초기부터 활발한 사역을 펼치나 대부분은 남편 사역의 보조자로서 협력하거나 가정에 힘을 쏟는다. 자녀 양육의 부담에서 좀 더 자유로워지면 사역에 더 힘을 쓰는 경우가 많다. 부인 선교사가
자신의 사역 활성화에 대한 장애요소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남성 선교사, 교단, 그리고 후원교회 간
23 위의 사이트.
24 주요교단의 여성 목사 안수 현황은 다음과 같다. 감리교(1955), 기장(1977), 예장 통합(1996), 기하성(1997), 기성(2005), 백석(2012), 기침(2013) 국민 일보 “여성안수 않는 교단 3곳 ”필요성엔공감“,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234861&code=23111111&sid1=chr 2020.3.8.
25 박보경, 『여성, 교회, 하나님의 선교』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13), 229.
26 앞의 책, 228.
27 한국선교연구원(KRIM), “2022년 한국선교현황 통계조사”, 2023.2.22.
28 이정순, 『하나님을 향해 홀로 선 여인들』 (서울: 죠이선교회출판부, 2000), 121.
의 가부장적 문화를 가장 심각한 장애요소”29로 보았다. 그러므로 사역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현지선
교사회 차원에서 여성 선교사 모임 격려, 여성과 사역분담, 여성과 선교사역 직책 공유, 여성들에게 전문성 개발을 위한 균등 기회 제공, 선교사 호칭 사용 등이 격려될 수 있다.30 그리고 가정 안에서 부부가 서로 자녀 양육과 가사노동에 협력할 때 보다 여성들의 왕성한 사역을 기대할 수 있다.
- 한국여성 선교사에 대한 제언
한국여성 선교사들을 위한 교단과 선교단체, 현지선교사회의 외부적 협력과 더불어 무엇보다 자신들의 변화가 요구된다. 한국여성 선교사들이 교육사업과 학교설립, 건강관리 및 건강 보조사역, 여성 사역, 방송 사역, 기독교 음악 사역, 상담 사역, 행정 사역, 스포츠 분야사역, 교회개척, 사회사 업, 구제 사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31 그러나 대부분 여성 선교사들이 한국선교사 공 동체 안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위치에는 있지 않다. 한국선교사 공동체 역시 한국사회의 남성 중심 적 특성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여성들의 리더쉽 증진이 필요하다.
사역 활성화를 위한 한국선교사 공동체 안에서 과제는 여성 선교사 개인적 차원에서 영성개발, 소명의식의 개발, 언어습득, 정체성 확립, 전문 사역의 개발 등이 거론되었다.32 여성 공동체 차원에서 멘토링의 활성화, 여성의 특성 긍정적 활용, 여성 선교사들의 전문성 개발, 젠더 파트너십의 실천이 필요하다.33 멘토링의 활성화란 여성 선교사들의 네트워크를 통하여 서로 연대하며 멘토링 관계를 형 성하는 것이다. 여성의 특성 긍정적 활용이란 여성들의 관계 중심적이며, 민주적인 리더십을 의미한 다. 여성들의 전문성 개발은 자신의 전문 영역을 준비하고 교육을 받아서 사역의 전문성을 도모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젠더 파트너십은 궁극적으로 남성 선교사와 협력하여 하나님 선교의 동반자로 나아가는 노력이다.
- IV. 나오는 말
한국교회는 해외 선교의 모체이다. 한국교회는 1907년 독노회 설립과 함께 장로교 최초로 임직 받은 7인의 목사 중 1명인 이기풍을 타문화권 선교사로 제주에 파송했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설립부 터 선교적 교회로 출발하였다. 당시 지도자들은 선교하지 않는 교회는 진정한 교회가 아니라고 생각 했다. 남궁혁은 경제 여건이 어렵다고 선교 사업을 축소하거나 중단해서는 안 되며 일본과 만주 등지
29 박보경, 『여성, 교회, 하나님의 선교』, 236.
30 앞의 책, 237.
31 이정숙, 『세계선교와 한국여성 선교사들』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7), 55-58.
32 박보경, 『여성, 교회, 하나님의 선교』, 237.
33 앞의 책, 162-170.
에 한인 디아스포라가 절박하다고 하여 산둥 선교를 축소하거나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34
한국교회는 복음을 받은 지 30년 만에 피선교지 교회에서 선교하는 교회가 되었다. 첫 선교사를 보 낸 지 100년도 안 되어 세계 제2위의 파송국이 되었다.
한국교회의 성장은 1970년대 절정기를 이루고 1980년대에 다소 둔화되다가 1990년대 이후 성 장률이 떨어져 감소 추세를 보인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팬데믹 이후 한국선교가 더욱 한국교회 의 침체에 영향을 받고 있다. 1980년대 이후 개교회 중심의 선교가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게 되어 초 기의 전통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개교회 중심 선교의 병폐는 목회자 개인의 야망이나 교회의 수 적 성장만 몰입하게 되어 자기 확장적인 선교를 하게 된다. 해외 선교에서 영혼 구원과 공적 책임의 통전적 선교관을 지향해야 한다.
NCOWE는 1991년 1차 회의를 시작으로 2018년 7차까지 전방개척의 선교와 한국선교 전반 에 대한 논의로 확장하여 한국선교의 방향을 제시해왔다. 2023년 제8차 세계전략회의 NCOWE는
“세계기독교 시대의 한국선교에 대한 이해와 나아갈 길에 대한 재고”라는 주제로 진행된다. 즉 한국 선교사들이 시대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 한국선교를 더욱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방향
으로 변화하고자 하는 열망이 담겨있다. 한국여성 선교사들의 변화는 곧 한국선교의 변화이다. 한 국여성 선교사들은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도전을 이겨내며 선교사역을 해왔다. 무한한 잠재성을 가진 한국여성 선교사들이 아시아 여성 지도자, 지역화 시대의 21세기의 신(新)전도부인, 남성 선교 사들과 평등한 동반자로서 세계선교에 이바지하기를 기대한다.
34 한국일, 『세계를 품는 교회』 (서울: 장로회대학교 출판사, 1999),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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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선교사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한 소고: 마르다와 마리아에 관한 본문을 중심으로1 / 정승현 교수(주안대학원대학교, 전 PCK 인도네시아 선교사)
■ 자기소개
전) 인도네시아 선교사(STFTJakarta)
현) 주안대학원대학교, 선교학 교수
현) 「선교와 신학」, 「장신논단」, 「Muslim-Christian Encounter」 편집위원
저서: 『하나님의 선교와 20세기 선교학자』(2014), 『무슬림을 향한 증인의 삶』(2019) 외
역서: 『선교적 교회』(2013), 『기독교 선교의 이해』(2015, 공역), 『세계 기독교 동향』(2020), 『무슬
림들의 신앙과 실천』(2022, 공역)
■ 목차
I. 들어가는 말
II. 여성 선교사와 동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1. 사역 이전에 제자의 삶으로
2. 기회를 주시는 주님
3. 주님께 사랑받는 여성 선교사
III. 나오는 말
키워드: 여성 선교사, 정체성과 역할, 주님의 제자, 주님의 인정, 주님의 사랑
- I. 들어가는 말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가 주관하고 한국선교연구원(KRIM)이 조사 및 발표를 맡은
2023년 2월 21일 통계자료에 의하면, 한국 국적의 타문화권을 위한 장기 선교사는 모두 22,204명이
1 본고는 NCOWE 여성분과에 참석하는 선교사와 목회자 그리고 평신도의 다양한 배경을 감안하여 가급적 신학/선교학보다는 성경 자체에 초점을 맞 추어 기술되었다.
고, 남녀 비율은 남 48.0% 여 52.0%로 구성되어 있다.2 여성 선교사는 남성 선교사에 비해 수적으로
는 더 많지만, 역할에 있어서는 장은경 선교사의 표현처럼 “수면 아래 존재하는”3 경우가 많다.
여성 선교사의 역할은 남성 선교사에 비해 다양하면서도 주변 환경에 따라 계속해서 변하는 것 을 볼 수 있다. 먼저 여성 선교사 삶의 형태는 독신 선교사와 부인 선교사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독신 선교사로 볼 때 여성 선교사의 비율은 70.5%이고 남성 선교사는 29.5%로 2배 이상 많고,4 독신 여성 선교사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또한 부인 선교사의 경우 자녀가 있는 경우 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리고 자녀가 있는 경우도 아직 자녀가 미성년자로 부모와 함께 선교현 장에 있는 경우와 성년이 되어 출가한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이 여성 선교사들의 삶의 형태는 본인과 가족의 상황에 따라 적어도 네 가지의 다른 모습이 있을 수 있고, 그로인해 다양한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이와는 별도로 선교현장에 따라서 여성 선교사의 역할이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의 경 우는 여성의 지위가 한국보다 높아서 삼자 교회, 가정 교회, 주일학교 교사, 교회 찬양 사역자, 캠퍼 스 사역, 그리고 전문인 선교사에 이르기까지 여성 선교사가 선교현장에서 다양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5 또한 이슬람 지역에서 여성 선교사들은 남성 선교사들이 자유롭게 만날 수 없는 여성 무슬림
들과 어린이들을 만나고 그들과 교제하며 사역할 수 있다.
또한 후원 교회 혹은 파송 기관에 따라서도 여성 선교사의 역할은 차이가 있다. 특정 교단에서 는 여성 선교사도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는데, 그런 경우 선교지에서 여성 선교사는 목회자로서 남 성 선교사와 동일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성경공부를 인도할 수 있고, 신학교에서 강의 할 수 있으며, 교회개척에도 참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목사 안수를 받지 못한 여성 선교사는 현장에 서 목회자보다는 다른 역할을 맡아 사역하게 된다.
물론 여성 선교사 개인의 성향도 무시할 수 없다. 어떤 여성 선교사는 남편 선교사보다 대인 관계 가 활발하고 언어 능력도 뛰어나서 적극적으로 사역에 참여한다. 더군다나 간혹 전문의 자격증을 가 진 여성 선교사는 현장에서 폭넓게 사역할 수 있다. 반면 어떤 여성 선교사는 외부 사역보다는 가정 을 돌보는 것을 선호하기도 한다. 이러한 여성 선교사의 개인적인 성향은 남편 선교사와의 관계에서 발전되기도 하고 제한되기도 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요인들을 감안할 때, 여성 선교사를 특정한 모습으로 고정하고 그것에 대한 해 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부르 시고 보내시는 여성 선교사들은 공통된 정체성과 역할을 가지고 있다. 필자는 그것을 누가복음 10장 38-42절과 요한복음 11장 1-44절, 그리고 12장 1-8절에 기록된 마르다와 마리아의 모습을 통해 제 안하고자 한다.
2 2KWMA & KRIM, 「2022 한국선교현황 보고」, 2023, 2.
3 장은경, “여성 선교사의 선교적 이해-수면 아래 존재하는 여성 선교사의 역할,” 「KMQ 」 69 (2019/봄).
4 KWMA & KRIM, 「2022 한국선교현황 보고」, 2023, 2.
5 석귀희, “중국 선교와 여성 선교사,” 「KMQ 」 74(2020/여름): 55-57.
Ⅱ. 여성 선교사와 동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 사역 이전에 제자의 삶으로
누가복음 10장과 요한복음 11장 그리고 12장에 등장하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모습은 매우 다르 게 표현되어 있다. 먼저 마르다는 언제나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눅 10:40).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요 12:2). 사실 마르다가 일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칭찬받을 만한 행동이다. 특별히 누가복음의 맥락에서는 더욱 그렇다. 누가복음 10장 38절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고 계셨 는데, 마르다는 주님과 그분의 제자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이것은 바로 앞에 위치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 10:25-37)에 상응하는 행동이다. 제사장과 레위인과 다르게 선한 사마리아인은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된 사람을 도와주었다. 예수께서는 제자 들에게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눅 10:36)고 물으셨고, 곧이어 말씀하셨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 10:37b). 이 말씀이 있은 후 바로 마르다가 주님과 그분의 제자들을 영접한 본문이 나온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메신저/사자에게 자기 집을 개방하고 그 들을 영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바울을 빌립보에서 영접한 루디아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행 16:13-15), 영접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르다는 주님과 제자들을 대접할 때 마음이 ‘분주’했다. 사실 손님을, 그것도 여러 명을 집에 초대한다면 마음이 분주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울 있지만, 그것이 지나치는 것은 주의가 필요함 을 알 수 있다. ‘분주’라는 단어가 기록된 또 다른 본문인 사도행전 6장 1-6절에 의하면, 초대 교회에
서는 과부들의 생계를 돌보는 선한 섬김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일이 방해받았 음을 볼 수 있다. 더군다나 마르다는 여러 가지 일로 ‘염려’하고 있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 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눅 10:41). 염려는 누가복음에서 반복해서 나온다(8:14, 12:22, 25, 26; 21:34). 즉 주님께서는 마르다가 그분과 제자들을 그녀의 집에 초청하고 그들을 대접하는 (사역을) 문제 삼으신 것이 아니고, 마르다의 마음이 분주하고 염려가 많은 것을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 본문 은 사역이나 섬김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목적과 연관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 버릴 수 있고 그것에 주의해야 함을 보여준다.6
여성/남성 모든 선교사의 궁극적인 목적은 많은 사역보다 그분의 제자로서 삶을 사는 것일 것이 다. 그런데 선교현장에서 선교사들의 공통적인 고민은 신앙생활과 사역의 균형이다. 대부분의 선교 사들은 대부분 한국과는 다르게 교회 중심적인 신앙생활이 어려운 선교현장에서 지내고 있다. 한국 에서는 주일예배와 새벽예배, 수요예배, 금요철야기도회와 성경공부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다양한 예 배와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신앙생활을 돈독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선교현장에서는 전혀 다른 상황
6 John Nolland, World Biblical Commentary Luke 9:21-18:34, 김경진 옮김, 『누가복음(중)』 (서울:솔로몬, 2004), 327-329.
에 직면하게 된다. 물론 현장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이슬람, 힌두교, 불교, 그리고 공산주의가 편만한
지역에서 한국처럼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도 선교사들은 여러 사역을 하게 되고, 바로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하기 쉽다.” 미성년 자녀들이 있는 선교사는 타문화권에서 그들을 돌보기 위해 시간을 보내야 하고, 사역현장이 자신의 주거지와 거리가 멀리 떨어진 경우는 흔히 집을 비우기도 한다. 또
한 지진과 같은 긴급구호 사역이나 한국에서 단기선교 팀이 방문하는 것과 같은 비정기적이고 한시 적인 사역도 일상을 벗어나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쉽게 분주해 질 수 있다. 이러한 선교현장의 ‘일상적 인’ 상황은 선교사들로 하여금 자칫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보다는 사역의 분주함에 자신을
맡기게 만들곤 한다. 그러면서 마르다처럼 예수께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 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눅 10:40)고 말할 수 있고, 마리아와 같이 주의 발치에 앉아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눅 10:39)을 답답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마르다에게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눅 10:42b)고 말씀하시면서 마리아가 계속해서 주님의 말씀을 듣도록 하셨다. 주의 발치에 앉는다는 것 은 복종을 상징한다(눅 8:35, 41; 17:16; 행 4:35, 37; 5:2; 7:58; 10:25;22:3).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 를 처음 만났을 때 다른 어떤 일보다도 그분의 발치에 앉았고 말씀 듣는 것을 택했다. 마르다의 입장 에서는 마리아가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마리아는 개의치 않았다. 마리아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 도에 대해서 알고 있었는지?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분주한 상황에서도 주님의 발치에 앉아 있도록 만 들었는지? 본문에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을 찾을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마리아
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처음부터 유대교의 남성 중심적인 관습을 뛰어 넘어 주님의 발치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봉사보다 말씀을 선택했던 것이다.
풀러신학대학원 신약학 교수인 그린(Joel Green)은 누가복음에서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은 제
자도의 길에 합류한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6:47; 8:21; 11:28).7 제자가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분 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마리아는 언니를 도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말씀을 듣 고 그분의 제자가 되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마리아는 마르다와 달리 “많은 일로 염려하 고 근심”하지 않았고, 주님께서는 그녀가 선택한 좋은 편을 지켜주셨다. 이 부분에 대해 예수회의 신 약학자인 피츠마이어(Joseph A. Fitzmyer)는 누가복음 10장에서 참된 제자를 이야기할 때 선한 사 미리아인과 제사장/레위인이 대비되듯이 마리아와 마르다가 비교된다고 말하면서, 마르다의 분주함 과 달리 주님의 발치에서 말씀을 경청하는 마리아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8
종합하면, 주님께서 여성 선교사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먼저 그분의 말씀을 발치에서 경청하는 것이다. 그것은 주님 보시기에 좋은 편을 택하는 것이고, 절대로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7 Joel Green. Luke, 강대훈 옮김, 『누가복음』 (서울: 부흥과 개혁사, 2020), 562-563.
8 Joseph A. Fitzmyer. 표e Gospel According to Luke X-XXIV (New Haven, CT: Yale Univerisity Press, 2010), 892.
여성/남성 선교사들로부터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막 10:45). 주님께서는 선교사들의 사역과 섬김도 좋지만, 먼 저 그분의 말씀에 경청하면서 그분의 제자가 되기 원하신다.
- 기회를 주시는 주님
예수 그리스도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 여성이 유대인 랍비의 제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 나 주님께서는 마리아에게 그것을 허락하셨다. 하버드대학교 신약학 교수인 보폰(François Bovon)9 은 이 본문을 설명하면서 분명히 여성이 주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는 것을 보고 있던 유대인들 이 놀랐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예수께서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고, 안식일에 병든 자를 고치 시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유대인들에게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마리아는 자신이 제자처럼 말씀을 들 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발치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주님께서도 마리아가 택 한 것을 지켜주셨다.
이 본문은 여성 선교사들이 사역하는데 하나의 방안을 제시한다. 가정, 후원 교회, 선교단체, 현 장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여성 선교사들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역에 제약을 받을 수 있 다. 물론 여성 선교사 본인이 대외 사역에 특별한 의지가 없거나, 혹은 현장의 특성상 여성 선교사의 사역이 허락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여성 선교사가 충분히 사역할 수 있고 본인의 의지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가정을 돌보는 일로 역할이 제한될 수 있다. 그럴 때 여성 선교사는 주님처럼 기회를 제공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전술한 바와 같이, 마리아는 유다 사회에서 제자가 될 수 없는 여성이었지만 주님께서는 그녀에 게도 남성과 동일한 기회를 주셨다. 그리고 마리아는 그 기회를 택하였다. 선교현장에서 여성 선교사 는 이처럼 선교사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사역에 기회를 부여하는 사람과 동역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 실적으로 여성 선교사는 신학/선교학 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없거나, 혹은 자녀 들이 어리거나 남편 선교사의 건강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여성 선교 사들이 선교현장에서 사역할 수 있도록 누군가를 통해 기회를 제공하신다.
여성 선교사 A는 남편 선교사를 내조하고 가정을 돌보는 전형적인 아내의 역할을 줄곧 담당했다. A선교사는 신학 교육을 받지 않았고, 현지인에게 말씀을 전하거나 성경공부를 인도한 경험은 거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A선교사는 갑자기 화장실에서 남편 선교사가 뇌출혈로 쓰러진 것을 발견했 다.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었다. 곧바로 남편은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응급수술을 받았지만 이내 정상 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졌다. 하루아침에 모든 생활과 사역의 중심이 남편에서 아내로 옮겨지게 된 것 이다. A선교사는 남편을 돌보면서 모든 일을 주도적으로 처리하기 시작했다. 몇 년이 흐른 지금 A선 교사는 현지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현지인 신학교에서 강의하고 현지인 교회에서 사역하면서 여전
9 François Bovon, Luke 2 (Minneapolis, MN: Augsburg Fortress, 2013), 70-71.
히 남편을 돌보고 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A선교사의 눈물겨운 노력과 지인들의 기도, 그리고 부모 님의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인해 미국 유수의 대학교 박사과정에 입학했지만 그것을 포기하고 부모 님 곁을 3년 가까이 지킨 딸의 도움이 컸다. 그러나 A선교사가 현지인 신학교에서 강의하면서 교회에 서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현지인 목회자들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A선교사는 목사 안수를 받지 못했고 강의 경험도 거의 없었지만, 현지인 목회자들은 A선교사를 신뢰하고 그녀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로 인해, 이제 A선교사는 60대이지만 여전히 현장에서 새로운 사역을 넉넉히 감당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유대인 남성 중심 사회에서 마리아가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고 그녀의 선택을 지켜주셨다. 오늘날에도 한국 교회와 선교현장에서 많은 결정들이 남성 중심적으로 이루어 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유대인 사회에서도 길을 열어주셨던 것처럼, 주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여성 선교사들에게 사역의 기회를 열어주실 수 있고 열어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주님께서 는 남편을 통해, 남성 목회자/선교사를 통해, 여성 목회자/선교사를 통해, 현지인 목회자를 통해 혹 은 심지어 현지인 평신도나 서양 선교사를 통해서도 우리에게 기회를 열어주실 수 있다. 여성 선교사 의 관점으로 불공정한 현장에 좌절할 수도 있지만, 여성 선교사들을 위해 주변의 사람들을 연결시켜 주시는 주님을 신뢰하고 의지한다면, 사역의 기회는 주어질 수 있을 것이다.
- 주님께 사랑받는 여성 선교사
요한복음 11장에는 마르다와 마리아 그리고 나사로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데, 여성 선교사의 정체성과 연관해서 5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 시더니”(요 11:5). 장시간 선교현장에서 지내면서 흔히 잊어버리기 쉬운 사실은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 하신다는 것이다. 특별히 가정이나 사역에 어려움이 찾아올 때 더욱 그렇다. 그러나 요한복음 11장은 주님께서 사랑하는 자들도 고난을 만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필자가 미국에서 유학할 당시 선배 선교사 한 분을 만났다. 그분은 B국에서 이미 15년 정도 사역 한 시니어 선교사였고, 매우 헌신된 분이었다. 워낙 성실했던 그분은 까다로운 박사과정도 정해진 기 간에 성공적으로 마쳤고, 다시 사역했던 B국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그분이 건강 상의 문제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부인 선교사는 현장에서 아이들을 홀로 키 우면서 이전보다 어려운 상황 가운데 선교를 감당하고 있다. 또 다른 여성 선교사는 이슬람 국가인 C국에서 사역하던 중 자녀를 출산하기 위해 한국에 와있던 중 남편이 현지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처럼 죽음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경우는 아니더라고, 여성 선교사들은 선교현장에서 흔 히 어려운 일들을 경험한다. 그럴 때 요한복음 11장의 나사로처럼 극적으로 죽음에서 소생하는 경우 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럴 때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마르다와 마리아는 주님께 동일한
고백을 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요 11:21b, 32b). 주님
께서는 그들을 향해 눈물을 흘리셨다(요 11:35). 그 모습을 보았던 유대인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요 11:36b) 이 본문은 흡사 사도 바울의 고백을 연상시킨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
나 칼이랴.…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
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5, 37-39).
만약 여성 선교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받는 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항상 고백할 수만 있다 면, 고난은 고난에서 그치지 않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로 바뀔 것이다. 들어가는 말에서 언급 한 바와 같이 여성 선교사의 역할은 계속해서 변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단 혹은 선교단체에서 선 교사는 70세가 되면 공식적으로 은퇴하게 된다. 그러나 정체성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수 있다. 여성 선교사는 모두 주님의 사랑받는 자이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여성 선교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이 세상에서 여성선교사에게 늘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 나 위험이 있을 수 있지만, 변함없이 여성 선교사를 사랑하시는 주님으로 인해 그 모든 것을 넉넉히 이길 수 있다. 선교현장에서 만나고 교제하는 현지인들은 선교사의 삶을 통해 복음을 경험하고 이해 하게 된다. 선교현장의 어려움 가운데서도 주님의 사랑받는 자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여성 선교사는 그들에게 ‘살아있는 복음의 메시지’이다.
Ⅲ. 나오는 말
오늘날 선교현장에서 여성 선교사들은 남성 선교사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을 감당하고 있다. 특히 전 세계 인구의 1/4에 해당하는 무슬림 공동체(움마)에서 여성 선교사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움 마의 상황에서 남성 기독교인이 남성 무슬림을 정기적으로 만나서 교제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은 매 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여성 선교사들은 교육과 의료, 그리고 친교를 통해 여성 무슬림과 어린이 들을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고 자연스럽게 그들과의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다.
평신도 독신 여자였던 D선교사는 학부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다. D선교사는 2009년 자카르 타 외곽에 무슬림들이 주류를 이루는 낙후된 지역에서 ㄱ유치원을 시작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특 정한 지역에 건물을 세우고 학교를 시작하려면, 반드시 그 지역의 50가구 이상의 무슬림 주민들로부
터 동의를 받아야 한다. D선교사는 담대하면서도 지혜롭게 ㄱ유치원을 기독교 유치원이지만 영어를
특성화할 것이라고 그 지역의 평범한 저소득층 무슬림들에게 홍보했고, 결국 동의를 얻어 유치원을 개원하게 되었다.
그 뒤로 ㄱ유치원은 성장을 거듭하여 2012년 인도네시아 전국 300개 유치원 가운데 최우수 유 치원 네 곳 중의 하나로 선정되었다. 이후 무슬림 학부모들은 자신들의 자녀들이 이처럼 양질의 교육 을 계속 받기 원했고, 그래서 그들은 자발적으로 초등학교 건립을 위한 또 다른 50가정의 허가를 받 아왔다. 이로 인해 2012년에는 ㄴ초등학교가 설립되었고 2018년 6월에는 제1회 졸업생도 배출했다. 더욱 기쁘고 감사한 일은 2019년 7월부터는 같은 지역에서 중학교도 시작하게 되었다. 자카르타에 거주하는 여러 남성 목회자 선교사들이 실행하지 못했던 사역을 D선교사는 교육을 통해 진행했고, 이를 통해 적지 않은 무슬림들이 회심하게 되었다.
마리아는 유대인 관습을 넘어 여자도 제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경청했고, 그 ‘좋은 편’을 붙잡았다. 주님께서 마리아에게 주신 것은 유대인 남성 사회에서 제자가 되 는 것과 더불어 세상이 끊을 수 없는 주님의 사랑이었다. 요한복음 12장에 의하면, 그것을 경험한 마 리아는 당시 유대인 남성들의 일반적인 생각을 뛰어넘는 놀라운 것을 주님께 드렸다. 마리아는 당시 일반 유대인 남성이 1년 동안 일해야 모을 수 있는 300데나리온의 향유를 준비했고, 그것을 주님께 아낌없이 붓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그분의 발을 닦았다. 그분의 발치에서 말씀을 들었고 주님으로
부터 사랑받았던 한 여성이 동시대의 유대인 남성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을 했던 것이다. 오늘 날에도 주님께서 성경에 기록된 이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하는 여성 선교사들을 통해 그분의 나라를 구현하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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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tzmyer, Joseph A. 표e Gospel According to Luke X-XXIV, New Haven, CT: Yale Univerisity Press, 2010. Bovon, François. Luke 2, Minneapolis, MN: Augsburg Fortress, 2013.
석귀희, “중국 선교와 여성 선교사,” 「KMQ 」 74(2020/여름): 55-57.
장은경, “여성 선교사의 선교적 이해-수면 아래 존재하는 여성 선교사의 역할,” 「KMQ 」 69(2019/봄): 122-138.
파트너십으로 열어가는 선교 / 조정희 선교사(PCK, 전 동북아, 카자흐스탄, 본부)
■ 자기소개
PCK(예장통합) 총회세계선교부 본부선교사
총회 선교사상담/심리케어팀(MPCT) 팀장
PCK세계여성선교사회 회장
前) C국/카자흐스탄 선교사
주안대학원대학교 선교학 박사(Ph.D)
■ 목차
Ⅰ. 들어가면서
Ⅱ. 바울의 가르침과 삶 속에 나타난 파트너십
Ⅲ. 바울과 여성 선교동역자들의 파트너
1. 뵈뵈
2. 브리스가
3. 유니아
Ⅳ. 파트너십으로 열어가는 선교를 위한 제언
1. 현지여성과의 파트너십
2. 한국교회/선교단체와의 파트너십
3. 남성 선교사와의 파트너십
4. 여성 선교사 간의 파트너십
Ⅴ.나가면서
키워드: 여성 선교사, 파트너십, 현지여성, 한국교회, 남성 선교사
- I. 들어가면서1
1993년 6월 7일 삼성 이건희 회장이 신(新)경영 선언을 하게 되면서, “21세기는 여성의 감성과 꼼꼼함이 작용하는 시대”라며, “여성 인력을 쓰지 않으면 망한다. 여성은 배려차원이 아니라 기업 생 존차원에서 필수”라고 역설한 이후, 적극적인 여성 중시 경영을 하게 되었다. 당시 이 회장은 “입사나 승진 때 불이익을 없애는 것은 물론이고, 전문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여성들을 과감하게 임원 으로 발탁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이후 삼성은 이듬해 94년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학력과 성별철폐를 골자로 하는 ‘열린 인사 개혁안’을 내놓았다. 또 96년에는 그룹차원의 ‘여성인력활용 테스크포스팀’2 을 구성하고, 여성인력에 대한 인사배치와 처우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3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12년 4월 이건희 회장은 TV인터뷰를 통해서 “여성에게는 남자가 갖지 못한 숨겨진 힘이 있다. 능 력발휘를 못하게 하면 나라의 손해”라면서,4 여성인력 등용을 통한 회사의 개혁과 성장을 발표했다. 지난 23년간 필자가 선교지에서 지내면서 느끼는 삼성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했다. 삼성의 이 위력은 경영의 혁신에서 나온 것이다. 오늘날의 삼성이 있기까지 다른 많은 이유들도 있겠지만, 인재등용을 가장 중요시 여기는 기업세계에서 이건희 회장의 예리한, 그렇지만 열려진 시각을 가지고 여성을 중 시하며 중용책을 펼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다면 여성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은 어떠할까? 성경은 여성에 대해 특히 여성 사역자, 여성 선 교사에 대해서 어떻게 그려지고 있을까? 필자는 우리의 대선배 선교사이신 사도바울 주변에서 여성 사역자(여성 선교사)가 어떤 형태를 띄고 있는지 살펴보면서, 현지여성과의 파트너십, 한국교회와 선 교단체와의 파트너십, 남성 선교사와의 파트너십, 여성 선교사 간의 파트너십을 통해 어떻게 세계선 교를 열어갈지에 대해 찾아가 보고자 한다.
Ⅱ 바울의 가르침과 삶 속에 나타난 파트너십
바울 서신을 보게 되면 성경이 제공하는 남녀 관계에 대한 매우 중요한 관점을 제공한다. 전통
1 발제물의 전반부(Ⅲ까지)는 필자가 신입선교사훈련에 강의한 부분을 사용했다.
2 테스크포스팀(TFT)이란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 목적을 추진하기 위해 임시로 모인 집단으로, 이러한 팀의 발족은 삼성의 여성인력 활용이라는 목적을 실현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3 삼성그룹의 총 여성인력은 전체의 약 26%인 3만7,200명에 달한다. 삼성의 여성 신입사원 채용비중은 지난 2000년까지만 해도 15%선에 그쳤으나 몇 년 동안 이를 대폭 확대하면서 3분의 1 수준을 넘어섰으며,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경우는 신입사원 10명 중 6명이 여성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5회 [여성 시대, 우리가 연다] 서울경제, 삼성그룹, 여성 임원 14명 포진”, 2009.02.20., http://www.womenvoters.or.kr/search_read.asp?bbsindex=media3&bbs_ num=1270&got opage=41, 2013년 5월 23일 접속. 뉴스투데이,“삼성바이오에피스 신입사원 60%가 여성인 이유”, 2018.01.23., http://www.news2day. co.kr/98029, 2018년 3월 23일 접속.
4 매일경제TV, “4대 그룹 ‘인재 모시기’…인재가 기업 생존 좌우”, 2012.04.27., http://media.daum.net/economic/others/newsview?news id=20120427061304826, 2013년 5월 23일 접속.
주의자들은 바울 서신의 본문을 근거로 해서 가정과 교회와 사회 안에서의 여성의 지도자적 역할을 반대한다. 이에 대하여 복음주의 진영에서의 평등주의자들은 전통주의자들의 잘못된 해석을 바로 잡고, 바울 서신에 나타나는 남녀의 평등을 보여주는 본문을 제시함으로써 전통주의자들의 주장에 대응한다. 사실 주지하다시피 여성에 대한 내용에 있어서 바울서신은 시대적 문화적 상황적 배경을 무시하고 보게 된다면 오해의 소지가 많은 곳이다.5
필자는 먼저 바울의 핵심사상으로 널리 알려진 갈라디아서 3장 28절 구절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 나이니라” 신학자들 대부분은 위의 구절을 바울의 핵심사상 중의 하나로 꼽으며, 바울이 이해하는 남녀 관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원칙을 제공한다. 폴 제위트(Paul K. Jewett)는 이 구절에 나타나는
주장의 급진적 특성을 강조하면서 이 구절이 바울 신학의 돌파구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 구절의 내용은 바울에게 있어서 이론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실천을 위한 사회적 적용을 함께 담 고 있으며, 바울은 가장 놀라운 방식으로 이 진리를 행동으로 실천했다고 주장했다.6
복음주의 진영의 가장 저명한 학자인 부르스(F. F. Bruce)도 갈라디아서 3장 28절이야말로 혁명
적 정서(a revolutionary sentiment)를 담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 구절에서 드러나고 있는 바울의 가르침은 영구적이며 보편적인 타당성을 가지기 때문에, 여성의 역할을 제한하는 바울의 다른 본문 (고전 14:34 이하, 딤전 2:11 이하 등)과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또 방금 인용한 이러한 본문 은 바울이 특정한 상황 속에서 언급된 것들이며, 그는 갈라디아서 3장 26-28절이야말로 보다 근본 적인 원칙을 선언하는 것이며, 만약 바울의 다른 글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어떤 제한적 내용을 담 고 있다면 그것은 갈라디아서 3장 28절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며, 그 반대로 읽어서는 안 된 다고 주장하였다.7
많은 학자들은 이 구절의 특징상 바울의 말이라기보다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세례 문’(Baptism Formula)으로 추측한다.8 이 말씀을 세례의식 때 선언함으로서 기독교에 입문됨과 동 시에 신분의 차는 극복되어 진다는 것을 표방했다. 바울은 유대적인 사고 속에서 자랐고, 유대교를 향해 특심이었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이런 선언을 하게 된 것은, 다메섹 도상에서의 예수 그리스 도와의 만남으로서 그가 가졌던 유대주의적인 구원 즉, 배타적이고 민족적이고 행위적이었으며 차 별적이었던 것을 완전히 전환시켰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깨달은 진정한 복음은 하나님의 은
5 평등주의자에 속하여 여성안수를 주는 곳은 예장통합(1996), 감리교(1955), 기성(2005), 기하성(1997), 기침(2013), 기장(1977), 백석(2012) 7곳이 며, 예장합동, 고신, 합신, 대신 등은 전통주의자에 속한다. 국민일보, “여성 안수 않는 교단 3곳 필요성엔 공감”, 2022.03.08., https://m.kmib.co.kr/view. asp?arcid=0924234861, 2023년 3월 29일 접속.
- Paul K. Jewett, Man as Male and Female: A Study in Sexual Relationship from a 표eological Point of View, (Grand Rapids: Eerdmans, 1975), 144-
- F. F. Bruce, 표e Epistle to the Galatian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the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Eerdmans, 1982), 190.
- Richard N. Longennecker, Galatians: World Biblical Commentary 41, (Dallas: Word, 1990), 154-56.
혜로써 우주적이고 보편적이고 무제한적이며 차별이 없는 것이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헬라
인, 노예와 자유인,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없다는 이 선언으로 고대 세계에서 여전히 각 사람을 갈라 놓던 국가적, 사회적, 성적 차별들을 무효화 했다.9 그래서 바울은 이 구절을 통하여 모든 사람은 구 원의 은총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임과 동시에, 그것은 곧 새로운 질서의 공동체가 형성되었음을 선언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구절이 바울에게서 시작되든 바울 이전의 전승구이든 간에 분명한 것은, 바울이 이 구절에서 보여주는 원칙을 그의 선교와 목회 사역에 구체적으로 실천하려고 노력하였다 는 점이다.10
첫 번째로 유대인과 헬라인 즉 이방인 간의 하나됨에 대해서는, 다른 사도들이 유대인의 구원을 위해 존재했다면 자신은 이방인의 구원을 위해 보내심을 받은 것을 강조하며 사역해온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또한 갈라디아서 2장 11절 이하를 보면 베드로가 유대인들을 의식하여 행동한 것에 대해 서, 베드로의 위치를 생각해서 넘어갈 수 있는 것을 굳이 다른 이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책망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그가 얼마나 유대인과 이방인의 하나됨을 중요시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그의 선교사역에 있어서도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바울의 주된 관심은 바로 유대인과 이방인의 연합이었으 며 그것을 적용하는 삶을 살았다.11
둘째로 바울은 종과 자유자 간의 하나됨을 강조하였다. 그는 사회적 경제적 지위 차이를 그리스 도 안에서 극복된다는 것을 실천하면서 살려고 노력했다. 바울은 이 구절 외에도 고린도전서 12장 13절12과 골로새서 3장 11절13을 통해서 종과 자유자의 하나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바울은 빌레몬에게 그의 도망간 노예 오네시모를 돌려보내면서 그를 형제로 대해 줄 것을 부탁하는 것을 통 해서도 우리는 그가 이 말씀을 실천하려고 힘썼음을 알 수 있다.14
셋째로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28절에서 남녀 간의 하나됨을 강조한다. 바울에게는 남녀 간의 관계에 있어서 성별로 인한 어떤 제약도 있을 수 없음을 말한다. 바울은 자신의 선교 사역에서 남성 들과 동역하였던 것처럼 여성들과도 구별 없이 동역함으로 이 말씀을 실천해 보였다. 특히 로마서 16 장을 보면 우리가 잘 아는 브리스가(브리스길라)를 비롯 빌립보서에 등장하는 두 명의 여성지도자 유오디아와 순두게, 그 외 자신의 집을 교회로 헌신한 루디아(행 16:14-15)와 글로에(고전 1:11), 눔 바(골 4:15), 압비아(몬 1:2) 등등 수많은 여성들과 함께 나란히 하나님 나라를 위해 동역해 왔던 것 을 볼 수 있다. 물론 여성들이 바울의 선교팀에서 남자들처럼 주요한 위치를 점유하지 못했다 하더라
9 강혜순, “바울 공동체의 여성의 역할에 관한 연구”, 미간행석사학위논문, 서울기독대학교(2011), 16.
10 David. Scholer, Selected Articles on Hermeneutics and Women and Ministry in the New Testament, (Unpublished Material, Pasadena, Fuller 표eological Seminary, 2000), 121.
11 앞의 책.
12 고전 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13 골 3: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14 David. Scholer, Selected Articles on Hermeneutics and Women and Ministry in the New Testament, 121.
도, 여전히 여성들은 바울의 선교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초기 기독교가 팽창하던 시기에 복음
의 확산에 뚜렷한 기여를 하였다.15 특히, 비교적 여성의 자유에 대해서 융통성이 있었던 마게도냐와 로마에서(행 18:26; 롬 16:1) 바울 선교팀 안에서 여성들이 뛰어난 역할을 하였다. 그 예로 로마서 16 장 문안인사에서 언급된 27명 중에 10명이 여자들이었다.
결국 우리는 갈3:28 말씀을 통해, 바울은 가르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실천함으로 모 본을 보여주는 삶을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옳은 것을 가르치기는 하지만 삶으로 실천하고 있 지 못하는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Ⅲ 바울과 여성 선교동역자들의 파트너십
이 장에서는 바울의 선교동역자로서 활약한 여성들 가운데 로마서 16장에 나오는 대표적인 세 사람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세 종류의 여성 선교사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 뵈뵈
(1)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2)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뵈뵈에게는 세 가지의 수식어(‘겐그레아교회의 일꾼’, ‘우리 자매’,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붙는다. 첫 번째 수식어로 뵈뵈는 고린도의 동쪽 항구도시인 겐그레아교회의 ‘일꾼’으로 소개한다. 일꾼이라고 하는 이 단어는 헬라어로 디아코노스(διακονος)라는 단어로서 ‘사역자’라고 번역이 가능 하다. 이 단어는 남성명사인데 여성인 뵈뵈를 지칭하며 사용하고 있는데, 그 이유로 당시에는 디아코 노스에 대한 여성형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 안에서 다양한 의미를 지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선교를 위한 설교의 직무에도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16 또한 사역과 같은 직 책(사도, 예언자, 복음전도자, 목사, 교사 등)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17 특히 ‘겐그레
아라는 교회의’ 라는 수식어가 들어있는 것으로 보아 뵈뵈는 겐그리아 교회 안에서 책임적인 위치를 가지고 인정된 사역을 감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수식어로, 우리 ’자매’로 소개한다. 바울은 ‘자매’(아데르펜 αδελφην)라는 말보다는 ‘형
15 앞의 책, 129.
16 롬 11:13; 고전 3:5; 고후 3:3, 6, 9; 4:1; 5:18; 6:3-4; 11:8
17 엡 4:12
제’라는 말을 초기 기독교공동체의 남성과 여성 신도 모두를 포괄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바울이 자매라는 말을 쓸 때는 아주 구체적인 경우로서, 예를 들어 사도들의 아내로서의 자매이거나 (고전 7:15; 9:5), 뵈뵈와 압비야(몬 2)의 경우가 그것이다. 여기서 ‘자매’라는 말은 공동체의 회원이라 는 의미 이상을 뜻하는데, 즉 바울의 동역자를 말하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자매 앞에 우리라 는 표현을 첨가해서 바울과 고린도교회 전체가 인정하는 사역자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세 번째 수식 어로, ‘보호자’란 표현을 쓴다. ‘보호자’(프로스타티스 προστατις)라는 단어는 ‘지도자’ ‘관리자’ ‘보호 자’ 등으로 번역된다. 이것의 동사 형태는 인도/지도하다의 의미(롬 12:8)와 돌보다의 의미(살전 5:12) 를 둘 다 지닌다. 그녀는 바울뿐 아니라 여러 사람들에게 보호자 즉 지도와 돌봄의 역할을 감당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 단어에서 우리는 뵈뵈가 어떤 위치였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또 한 가지 살펴볼 것은 여기서 사용된 세 가지 어휘 형식은 디모데와 두기고에 대해서도 나타나 고 있다는 사실이다. 데살로니가전서 3장 2절에 보면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 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또, 골로새서 4장 7절에서는 두기고에 대해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
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동역자)니라”라는 표현을 쓴다. 그러므로 동격적인 수식어로 표현된 뵈뵈 역시 디모데나 두기고와 같은 동역자적 역할을 했던 사람으로 이해하는 데는 아무 무리
가 없어 보이는 것이다.
뵈뵈가 원래부터 싱글이었는지 아니면 미망인인지 남편이 있지만 신앙이 약하거나 비신자여서 표기가 되지 않았는지 알 수는 없다. 다른 부부사역자처럼 이름이 나란히 거론되지 않는 것으로 보 아 그렇게 추측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홀로 이름이 올라있지만, 다른 남자 동역자들과 마찬 가지의 위치로, 교회의 지도자로서 자리매김을 확실히 하고 마음껏 사역을 했음이 분명하다. 또한, 자신의 추천이 담긴 바울의 편지를 가지고 로마교회에 갈 정도로 인정받은 선교사였음이 틀림없다. 로마교회를 스페인 선교를 위한 선교거점으로서 생각하고 있는 바울이 뵈뵈를 편지전달자로 선택한 것을 보면, 그녀는 모든 면에서 신뢰와 존경을 받을만한 인물인 것이 분명하다. 실제 겐그레아 지역 은 상업지구 특성상 윤리적으로 비경건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어둠의 도시로서, 남자들도 사역하기 힘든 척박한 복음 선교지로 분류된다. 그러한 지역에서 뵈뵈는 지도자의 위치에서 교회를 이끌었던 것이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척박한 땅에 들어가 남들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일구어내는 싱글여성 선교사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사역으로서 지도자됨을 증명해 보이면서 자리매김을 확실히 하고, 사람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을 본다. 남편이 없고 자녀가 없음으로 자유롭게 사역에 매진 할 수 있는 장점으로 인해, 세계선교에 있어서 싱글여성 선교사의 업적은 과히 괄목할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이런 싱글여성 선교사18들을 인정해주고 존중해 주어야한다고 생각한다.19
18 이 글에서 ‘싱글여성 선교사’란 용어는 결혼을 하지 않은 선교사들뿐 아니라, 사별 혹은 이혼을 통해 홀로 된 여성 선교사를 포함해서 사용하고자 한다.
19 박보경은 “타문화권 선교에서 한국여성의 역할”에서 해방이후 장로교회 통합측의 싱글여성 선교사의 활동은 1970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 었다고 한다. 이들의 사역은 주로 교육사업에 치중한 경향이 있고(유치원/초등/중등/고등이 대부분이며, 일부는 대학교수로 활동함), 교회개척사역에도 많
- 브리스가(브리스길라)20
(3)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브리스가는 남편인 아굴라와 함께 부부선교사로서 바울의 선교사역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선교 동역자였다. 이들에 대한 언급은 신약성경에 6번이나 언급되어 있다.21 이들이 성경에 자주 언급된다 는 점만으로도 이들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다. 브리스가 아굴라부부는 고린도에서 바울과의 첫 만 남을 가진 이후, 고린도뿐 아니라 에베소와 로마로 함께 선교사역을 펼쳤었다.(고전 16:19; 롬 16:5) 가는 곳곳에서 자신의 집을 가정교회로 제공하면서 믿는 자들과의 만남을 가졌고, 가르치는 사역을 하였다. 특히 아볼로라는 사역자를 가르침으로 아볼로가 더 영향력 있는 사역자가 되도록 도왔다. 이들 부부는 이방인 교회 전역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들이었다. 아무튼 이들은 바울의 사역에 협 력했을 뿐 아니라, 상당한 행동의 자유를 가지고 독자적인 선교사역을 수행하기도 했다. 특히 바울 에게 있어서 이들은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다. 이들에 대한 표현을 보면 ‘바울의 목숨을 위하여 자신 들의 목을 내놓았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고린도나 에베소에서 그들이 바울의 생명을 구한 적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똑같이 하나님을 위해 부름받아 선교사의 일을 감당하면서도 다른 선교사를 보호하기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용기를 낼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정 예수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지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된다.
또한 바울은 이 부부를 향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동역자’(쉬네르고스 συνεργους)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 동역자라는 표현은 우르바노(롬 16:9), 디모데(빌 1:1), 디도(고후 8:23), 에바브로디도(빌 2:25), 글레멘드(빌 4:3), 빌레몬(몬 1), 데마와 누가(몬 1:24), 고린도전서 3:9에서 자신과 아볼로는 하나님의 동역자로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복음전파 사역의 지도자 역할을 하는 그룹에 아굴라뿐 아니라 여성인 브리스가를 포함 하였다는 점은, 브리스가가 매우 중요한 지도자적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22 브리스가는 바울처 럼 사도의 직분을 수여받아 세워진 목회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방선교를 위해 세운 여성 사역자가 바로 브리스가였다. 주목할 것은 당시의 일반적인 문화와는 달리 바울이 브리스가를
이 진출하고 있다고 한다. 싱글여성 선교사들의 활동이 부인 선교사보다 더 많은 열매를 볼 수 있는 것은 가족부양의 책임이 없기 때문이며, 이로 인한 제약 을 최소화하여 선교지에서 자유롭게 선교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고 본다. 박보경, “타문화권 선교에서 한국여성의 역할”, 《선교와 신학》(Vol.10 No.-, 2002), 152~155.
20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브리스길라’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누가는 종종 대화에서 주로 사용되는 애칭으로 낮춰 부르는 이름을 사용했는데, 이 이름 역시 그러하다. 이에 반해 바울은 한결같이 ‘브리스가’라고 불렀는데, 이는 좀 더 정중한 표현으로 그녀에 대한 존경과 존칭의 더 깊은 뜻이 담겨있다. R. C. H. Lenski, Acts, 차영배 역, 『사도행전(하)』(서울: 백합출판사, 1974), 239.
21 행 18:2, 18:18, 18:26; 고전 16:19; 딤후 4:19; 롬 16:3
22 David. Scholer, Selected Articles on Hermeneutics and Women and Ministry in the New Testament, 130.
먼저 언급하였다는 것이다. 이들의 이름이 나오는 6군데 중에서 4번이 브리스가가 먼저 언급되었으
며, 내용면에 있어서도 중요한 부분에는 언제나 브리스가가 먼저 언급된다. 예를 들면 사도행전 18장 26절에서 아볼로를 집으로 데려다가 가르친다고 말할 때에도 브리스가가 먼저 언급된다. 디모데후 서 4장 19절에서도 죽음을 앞에 둔 시점에서 안부 인사를 할 때에도 브리스가가 먼저 거론된다. 브 리스가가 아굴라보다 먼저 이름이 호칭되는 이유에 대해 몇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는 그녀가 남편보 다 더 사회적 신분이 월등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 둘째는 남편에 비해 그녀가 인격적으로 탁월하 기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 셋째, 그녀가 단순히 더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 이외에도 그 녀가 사회적 지위 혹은 재산과 관련해서 남편보다 우월했기 때문이라는 등등 여러 가지가 거론되지 만, 어떠한 원인인지는 분명하지는 않으나, 확실한 것은 기독교공동체 내에서는 브리스가가 아굴라 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그 당시의 문화적 배경에도 아랑곳 없이 브리스가를 먼저 거론한 것이다.
필자는 남편 선교사로 볼 수 있는 아굴라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아굴라 마음이 어떠했 을까? 그는 어떤 마음의 소유자였을까? 부인 선교사인 브리스가가 더 일을 잘하고 많이하고 인정도 더 받을 때, 그의 마음이 그저 기쁘기만 했을까? 일에 대한 부분은 심성과 인격과 관계없다. 일은 재 능과 달란트가 있는 자들이 잘한다. 결국 브리스가가 더 능력이 있었고, 일을 잘하므로 인정을 받았 다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남성의 구조적인 면, 즉 인정받을 때 남자로서 역할을 더 잘한다고 하 는 면을 고려할 때, 늘 부인과 함께 있을 때 사람들이 부인을 더 인정한다면 스스로 작아지는 기분을 아볼로는 어떻게 견딜 수 있었고 이길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또 스스로는 이 감정을 이 겨냈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짓궂은 질문, 예를 들면 아내가 더 능력 있는데 괜찮냐는 식의 비아냥거 림이라든지, 부인 때문에 자신이 무능력한 존재로 취급당할 때의 상황을 어떻게 이겨나갔고 대처했 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또 브리스가가 힘들어하는 남편 선교사를 보면서, 그렇기 때문에 늘 남편 선 교사를 배려한다고 하지만 내면의 여러 해결되지 않는 것들을 어떻게 대처했을지에 대해 유추할 뿐 이지 정확한 사실을 알 수가 없다.
사실 여성 선교사가 더 능력있게 사역하는 부분에 있어서, 어떤 선교지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중국의 경우는 여성 사역자가 대부분이고 남편이 함께 사역자로 일하는 경우는 10% 정도이다. 대부분 남편이 아내된 여성 사역자의 일을 뒤에서 지원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보니, 선교사들을 향하여서도 부인 선교사들이 주도성을 가지고 일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크지 않다. 문제가 제기되는 곳은 선교사가 한국의 후원교회에 온다든지, 한국 선교사들이 모여서 대회 를 갖게될 때, 부인 선교사가 남편 선교사보다 두드러질 경우 한국적인 정서에서 뭔가 불편하다. 그러 나 불편하면 틀린 것이고, 편한 것이 꼭 옳은 것이라 할 수 없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아굴라이었을 것으로 본다. 당시 사회가 성차별이 있는 곳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지어졌고, 국가적 사회적 성적 차별이 무효화 되었다는 선언을 받아들이고, 바울처럼
실천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마치 세례요한처럼 예수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비유하면서 그가 흥하는
것을 기뻐하고, 자신이 쇠하여지는 것에 대해서 기꺼이 받아들이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세례요한의 이런 모습은 지금까지 여성에게 많이 요구되어지는 부분이었으나, 부인 선교사가 브리스가처럼 더 재 능과 달란트가 있을 때 남편 선교사가 아굴라처럼 세례요한의 마음을 갖는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확 장되는 선교사역에 박차를 가하게 될 것이다.
- 유니아
(7)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 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유니아는 남편 안드로니고와 함께 활동했던 선교사 부부였을 것으로 본다.23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처럼 바울의 동역자로서 함께 감옥에도 갇힐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들과는 달리 이들은 바울로부터 사도의 칭호를 받고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은 유명한 사도 부부였 다. 그들에 대한 표현 중에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사도들에게’라는 헬 라어원문(των αποστολων)을 살펴보면 ‘사도들 가운데서’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저희는 사도들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자로 평가받는”이라는 의미이다. 즉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사도였는데, 그 많 은 사도 가운데서도 특히 존경을 받는 사도였다는 의미이다. 아마도 안드로니고 유니아 사도부부는 처음에 예루살렘의 사도들, 곧 야고보와 12사도와 함께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본 사람들(고전 15:7) 의 집단에 속해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지원하는 표현은 ‘그들이 바울보다 먼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데 있다(롬 16:7). 이 말의 의미는 안드로니고와 유니아가 바울보다 먼저 부활하신 분의 현 현을 체험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후 예루살렘을 떠나 안디옥으로 와서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사역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그들이 이제 로마에 건너가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계속 선교사역 중 에 있음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사도의 개념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5절에 서 8절24에서 보면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현현을 목격한 사람들의 이름들이 기록되
어 있다. 여기에서 12제자와 다른 ‘모든 사도들’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들이란 의미가 열두 제자들을 포함하여 예수의 부활에 목격자되고 그로부터 선교사역을 위임받은 사람
들이 있었는데, 그들을 사도들이라고 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25 실제로 오리게네스와 히폴리투스
(Hippolytus)은 부활한 그리스도를 만난 여인들이 사도임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안드로니고만
23 김지철, “바울과 여성 선교 동역자들”, 《장신논단》 Vol. 13N.-(1997), 44.
24 고전15:5-8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25 김지철, “바울과 여성 선교 동역자들”(1997), 44-45.
사도였고, 여자인 유니아는 보조자였는데 할 수 없이 편의상 그 둘을 합해서 사도들이라고 말한 것
은 아니라는 것이다. 유니아는 안드로니고와 마찬가지로 여사도였으며, 사도로서의 직무를 잘 감당 함으로써 남편 안드로니고와 함께 사도들 가운데서도 유명한 자로 평가받았음을 알 수 있다. 초기 기독교공동체에서는 실제 선교사역에 있어서 부부선교사들이 많았을 것으로 내다본다. 베드로와 주님의 동생 야고보가 선교여행을 갈 때 부인을 동반했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고, 우리 선교사들과 마찬가지로 그 부인된 선교사들은 지역적 특성에 따라서 더 많이 활동해야할 때도 있었 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특히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둘 다 사도라는 직분에 맡는 일을 함께 잘 감당 했을 것으로 본다.
여러 교단이 여성안수가 통과된 이후 수 십년을 지나오면서 부부 목사가 많고 부부 목사선교사 들도 적지 않다. 또 선교지에서 안수의 필요성을 느끼고, 뒤늦게 신대원을 졸업한 부인선교사가 안수 를 받는 경우도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안수를 받기 위해 여성안수가 가능한 교단으로 옮기는 것을 보기도 한다. 안드로니고와 유니아가 둘 다 사도로서 두 명의 사역자가 감당할만한 일들을 협력과 분담으로 효율적인 사역을 감당하였던 것처럼, 주변의 환경이 부부목사인 부인 선교사가 가진 직분 에 맞는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부부 목사인 부인 선교사를 옭아매는 다양한 제약과 장애물들이 제거되어 직분에 맞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본다.
Ⅳ 파트너십으로 열어가는 선교를 위한 제언
- 현지여성과의 파트너십
세계선교를 향해 한국교회가 나아가면서 궁극적으로 이루어야 하는 것은 바로 세계 속에 일하 고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선교현지에는 복음을 위해 준비된 신전도부인들이 있다. 그들에 게 있어서 우리 한국여성 선교사들은 모델이 되고 있으며,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같은 여성 으로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고, 어떤 자세와 태도로 하나님과 가정, 사역지를 섬기는지를 지켜보고 있 다. 말로서가 아닌 삶을 보고 그들은 여성 선교사들의 삶을 모방하거나, 혹은 실망과 배척을 한다.
이선이는 한국여성 선교사들은 서구 선교사와 동역했던 전도부인의 영성을 계승한 신(新)전도 부인이자, 선교지에서 현지의 여성들이 신전도부인이 되도록 인도하는 위치라고 했다.26
100년 전만 해도 우리 한국여성들 역시 교육을 받지 못했고 남존여비에 갇혀서 비인격적인 대우 를 받으며 지낼 때, 한국의 안방까지 찾아 들어와 주었던 복음은 한국 여성들을 어둠에서 빛으로 나
26 이선이, “시대에 응답하는 한국여성 선교사”, 제8차 세계선교전략회의 NCOWE ‘변화하는 여성선교사’트랙 발제물(2023)에서 인용.
오게 하였다. 진리를 전달한 한국에 온 서구여성 선교사들로 말미암아 진리가 여인들을 자유케 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있는 한국여성 선교사들은 현지의 여성들에게 좋은 모델로서의 역할 을 할 수 있으며, 현지여성들을 신전도부인으로 세움과 동시에 파트너십으로 함께 일할 수 있다. “주 께서 말씀을 주시니 소식을 공포하는 여자가 큰 무리라”(시 68:11)는 말씀은 현지여성 사역자들이 세워져서 그들을 통한 복음의 능력이 나가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여성 선교사가 현지여성들과의 파트너십을 위해서는 첫째, 여성 선교사들의 삶과 사역, 인격적인 모범이 되어야 하는 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 둘째, 현지여성들을 향한 인정과 존중이 필요하다. 바리새인이 세리와 같지 않음에 감사하는 자세가 아닌,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신 존귀한 존재로서 하 나님의 마음으로 현지여성들을 대해야 한다. 셋째 그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들(지적능력을 포 함한 다양한 기술과 전문적 역량)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여성 선교사들은 자신의 은사와 달란트, 역량을 확인하고 개발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해 책임감 있게 설 것을 결단해야 한다. 또한 여 성 선교사들의 역량강화를 위한 훈련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할 모임과 기관이 만 들어지기를 제언한다.
- 한국교회/선교단체와의 파트너십
여성 선교사들은 뛰어난 선교인력이다. 우리 한국 여성 선교사들의 교육수준은 1세대 선교사들 을 빼고는 대부분 대학을 졸업하고 선교사로 나가기 전까지 전문직을 가진 인재들이다.27 싱글여성 선교사이든 부인 선교사이든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달란트와 은사, 역량이 있다. 그 역량을 발 휘함에 있어서 여성 선교사들을 옭아매는 많은 장애물들이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실제로 선교지에서의 싱글여성 선교사들은 남성 선교사들이 갈 수 없고 할 수 없는 많은 선교업적을 이루어내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또한 부인 선교사들 역시 장애물들을 뛰어넘는 영성과 기량으로 남 편을 보조하는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나아가, 때로는 독립적인 사역자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보고 있다. 지역과 문화에 따라서는 남성이 나서지 못하고 부인 선교사의 주도하에 사역 이 진행된다.
하지만 여성 선교사들의 선교지에서의 실제 역할이나 활발한 활동에 비해 한국의 후원교회나 선교단체는 매우 보수적이고 전통적이어서, 변화하는 이 시대를 잘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본다. 특히 호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여성 선교사들은 선교사가 아닌 ‘사모’(남편의 보조자 의미) 로 불리는 경우가 많으며, 심지어는 ‘자매’라고 불리는 경우도 본다. 또한 선교지에서는 설교하거나
27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00년도만 하더라도 대학진학률이 남학생이 70.4%이고 여학생이 65.4%로서, 남학생이 5%나 앞섰다. 하지만 2009년도에 는 역전이 되어 여학생 82.4%이고 남학생 81.6%로 여학생이 0.8%로 앞서기 시작하더니, 2014년도에는 격차가 더 벌어져서 여학생이 7%가 앞서는 결과를 볼 수 있다. 통계청, “2015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2015.07.02., https://kostat.go.kr/board.es?mid=a10301060100&bid=10820&tag=&act=view&list_ no=346959&ref_bid= 2023년 4월 27일 접속.
가르치는 사역을 전면에서 감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오게 되면 설교나 간증하는 자리에
남성 선교사들만 세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교적 개방적인 교회들이나 단체에서 여성 선교사들 이 설교할 수 있도록 하거나 삶과 사역에 관한 간증을 할 수 있도록 강단에 세우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울은 예수그리스도처럼 함께 동역한 여성 선교사를 차별없이 대했고, 그 가치를 존중하고 인 정하였음을 보았다. 그는 예수그리스도에게 가르침을 받은 것으로 끝내지 않고 사역 속에서 실천하 는 파트너십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교회와 선교단체는 같은 신앙의 고백 속에 걸어가는 파트너로서 의 여성 선교사들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인식의 전환과 더불어 실천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으면 한다. 그리하여 여성 선교사들이 남편을 포함한 남성 선교사들과 동등하게 한 사람의 파송받은 선교사로 서 자긍심을 가지고 힘있게 선교사역을 하도록 도와주기를 제언한다.
- 남성 선교사와의 파트너십
여성 선교사 문제를 다룰 때 남성 선교사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표현이 “여성의 적은 여성이 다”라는 말이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낯이 뜨거워진다. 물론 여성 선교사들 간의 서로 인정하고 존 중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남성 선교사들은 여성 선교사들에게 책임을 묻기 전에, 남성 선교사들이 성경적인 파트너십을 가지고 여성 선교사들을 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재고 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여성 선교사들 역시 남성 선교사들과 올바른 파트너십을 가지고 일하는지 에 대해 성찰하고 반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부인 선교사는 남편 선교사와 동등하게 파송장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 앞에서 남편 선교사 처럼 책임감있게 응답하고 있는지에 대해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혹시 남편의 보조자로서 자신을 규정하는 자리에 있다면, 그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서 서야 한다. 남편 선교사와 동 일한 선교사로서, 선교에 대한 부르심을 명확히 하고, 선교적 사명 즉 사역적 책무를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부인 선교사는 중고등학생이나 청년시절에 교회의 리더로 혹은 선교단체에서 유 능한 일꾼으로 사역을 했으며, 하나님께서 지금 그 유능한 부인선교사를 선교지로 보내셨다는 사실 을 기억해야 한다.28 그러므로 부인 선교사는 스스로를 연약함과 겸손의 커텐 뒤에 숨는 ‘의존성’과 ‘수동성’을 깨뜨리고, 남편 선교사와의 파트너십을 가지고 책임감있게 주도적으로 사역을 감당할 의 무가 있다.
남성 선교사들은 여성 선교사들(싱글,부인)을 대할 때, 다른 남성 선교사들과 동등하게 동역자 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가부장적인 사고나 이기적인 발로에서 나온 차별과 편견, 소외를 과감하게 던져버리고, 예수그리스도의 시각과 바울의 시각으로 여성 선교사들을 대해야 한다. 그것
28 장은경, “여성 선교사의 선교적 이해-수면 아래 존재하는 여성 선교사의 역할,” 《KMQ 》69(2019/봄), 161. 장은경은 여성 선교사가 가진 은사는 하나 님의 선교를 위해 쓰임 받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으며, 수면 아래에 놓여있는 거대한 빙산과 같은 존재인 여성 선교사들은 카이로스 때에 하나님께서 임명하 신 사역자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감당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은 바로 하나님께서 여성 선교사들에게 주신 달란트와 은사, 역량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특
히 여성 선교사들이 가진 ‘감성의 리더십’29과 ‘민주적이고 참여적인 리더십’30은 변화하는 선교지에 서 상처입고 파괴되어진 곳에 위로와 화합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리더십이다. 이러한 여성리더십이 발휘되도록 남성 선교사는 여성 선교사들에게 기회의 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하며, 남성 선교사들과 마찬가지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사역경험과 훈련 및 재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리하여 여 성 선교사들이 배려 속에 선교에 필요한 기능과 전문성을 갖추게 됨으로서, 남녀파트너십으로 열리 게 되는 선교의 대로를 기대하게 된다.
- 여성 선교사 간의 파트너십
여성 선교사 안에는 두 개의 큰 그룹이 있다. ‘싱글 선교사’와 ‘부인 선교사’이다. 어떤 단체에서는 싱글 선교사들의 모임과 부인 선교사들의 모임을 구분하는데, ‘부인 선교사’를 ‘사모 선교사’로, 부인 선교사들의 모임을 ‘사모 선교사회’로 칭한다고 한다. 이 호칭 속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사역자로서의 싱글 선교사와 남편목회자의 아내로서의 사모 선교사를 구분 짓고 있다는 것이다. 싱글 선교사는 단 독의 사역자로 인정을 하지만, 부인 선교사는 한국의 사모개념을 그대로 선교지에 가지고 가서 남편 인 목회자 선교사의 보조자인 사모 역할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단독사역자로서의 싱글 선교사와 사모개념을 지닌 부인 선교사 간에는 거대한 강이 놓여있는 경우를 종종 본다.
하지만 우리 여성 선교사들은 이제 싱글 선교사이든 부인 선교사이든, 역량이 있든 없든 간에
서로를 향해 인정과 존중을 담아 팔을 벌리고 끌어안을 필요가 있다. 김신숙은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
부인 선교사가 인식해야 할 것은 자신의 인격과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 다른 직업을 가진 부인과 는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영적으로 권위를 가져야 하고, 정신적으로 관계적, 그리고 사회적으로 갖 추어야 할 예의와 겸손한 삶의 긍지를 가지고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부인 선교사는 싱글 선교 사를 잘 이해하고 사랑하고 감싸주는 아량이 있어야 함을 인식해야 한다.31
KWMA의 2023년 발표에 의하면, 장기 선교사의 부부는 전체 선교사의 90.3%이며, 싱글은
29 남성 선교사들이 프로젝트 중심의 선교, 가시적인 성장에 관심을 두는 반면, 여성 선교사들은 한 사람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따르며, 선교지에서 실천하려 한다.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고, 현지인을 향해 사랑과 긍휼의 마음으로 대하는 감성의 리더십을 통해 언어와 문화가 다 른 선교지에서 복음 전하는데 더 효과적이다.
30 양병모, “한국교회 여성사역자의 역할과 그 전망,” 침례교신학연구소 편, 『교회와 여성의 리더십』(대전: 침례교신학대학교출판부, 2006), 341. 양병모 는 여성 리더십이 가진 다른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그들의 능력과 정보를 공유하며, 다른 사람의 자존감을 높여 주고 다른 사람을 격려하는 리더십으 로, ‘민주적이고 참여적인 리더십’으로 소개하고 있다.
31 김신숙, “여성 사역자의 방향”, KWMF, 『한국 선교의 반성과 혁신』(서울: 예영B&P, 2015), 481.
9.7%라고 한다. 싱글 선교사의 남녀 비율은 남자가 29.5%, 여성이 70.5%로 집계되었다.32 이 말은 싱
글여성 선교사가 100명 중에 7명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이로 보건대 싱글여성 선교사와 부인 선 교사는 7:90의 수적인 차이가 난다. 싱글여성 선교사들이 가진 장점이 많지만, 여성이라는 편견 속 에서 홀로 분투하며 극복해야 하는 많은 문제들이 있다. 그중에 알려진 이야기는 남성동료 선교사들 이 싱글여성 선교사들을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그들의 세계에 굴러들어온 하나의 돌로 여긴다는 것이다. 더 아픈 것은 여성동료인 부인 선교사들조차도 편견으로 대하고 배척과 비방으로 거절당하 면서 외롭게 선교사역을 수행해 내야 하는 어려움 속에 놓여있다. 대부분의 여성 선교사들은 불합 리한 사회적 구조 속에서 그동안 억압과 차별 속에 살아왔다. 그 아픔을 함께하는 여성 선교사끼리 이해하고 돌보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누구에게 우리 여성 선교사들을 이해해달라고 요청을 할 수 있 겠는가 생각해 본다.
또한 싱글 선교사들 역시 부인 선교사들을 배려하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 이정순은 싱글여 성 선교사들에게 아래와 같은 조언을 한다.
부인 선교사와의 관계에 대하여, 부인 선교사와 싱글여성 선교사와의 관계는 서로 입장이 다르 므로 힘들 수도 있지만, 입장이 다르더라도 같은 여성으로서 서로 보완하고 도울 수 있다면 외로운 선교현장에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부인 선교사의 입장에선 사역의 진행과 결정이 남편 선교사와 싱글여성 선교사 위주로 되어갈 때 소외감을 느낄 수가 있다. 자녀 양육과 가사에 싱글여성 선교사 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부인 선교사가 사역 면에서 싱글여성 선교사보다 잘 모르거나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을 무시하지 말고 오히려 같은 여성으로서 부인 선교사의 입장을 배려하는 싱글여 성 선교사의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33
싱글여성 선교사와 부인 선교사, 여성 선교사들 간의 인정과 존중을 통한 파트너십으로 열어가 는 선교는 막힌 담이 무너지면서 삼겹줄의 강한 힘으로 모든 장애물을 뚫을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경 험하게 될 것이다. 또한 한국교회의 목회자 사모와 교계의 여성 단체장, 여성 교수, 여성 지도자들의 파트너십까지 합하여 힘을 합친다면, 세계선교를 앞당기고 주님 오실 날을 곧 맞이하게 될 것이다.
Ⅴ 나가면서
32 한국선교연구원(krim), “2022 한국 선교 현황(2022년말 기준)”, 2023.02.22., https://krim.org/2022-korea
33 이정순, 『세계선교와 한국여성 선교사들』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7), 88-89.
선교사들은 동역자들이다. 동역자라는 단어를 인터넷 다음(daum) 어학사전에서 검색하면 ‘(기
독)하나님의 일을 함께하는 사람’이라고 나와 있었다.34 우리는 지금 ‘우리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현지여성들과 함께, 한국교회와 선교단체가 여성 선 교사들과 함께, 남성 선교사와 여성 선교사들이 함께, 여성 선교사들 간에 함께 파트너십을 가지고 손잡고 선교를 열어가기를 원하신다. 인정과 존중을 통한 배려, 협력, 소통의 파트너십을 통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계에 가득한 선교가 되기를 소망한다.
토의제목
- 한국교회와 선교단체, 남성 선교사가 여성 선교사들을 한 사람의 동등한 파송받은 선교사로 서의 자긍심을 가지도록 도울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토의해 보자.
- 2. 현지사역의 파트너십을 활성화하기 위한 여성 선교사들 간의 실제적인 방안이 무엇인지 찾아 보자.(예: 싱글여성 선교사-부인 선교사, 부인 선교사-부인 선교사)
34 “동역자”, https://dic.daum.net/word/view.do?wordid=kkw000069523&supid=kku000088570, 2023년 5월 18일 접속.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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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적 교회 로드맵의 지속 가능한 실천 방안 / 김영휘 목사/선교사(KWMA 운영이사)
들어가는 말
3년 반 이상이나 지속되어온 코로나 팬데믹이 점차 엔데믹으로 변해 가는 이 시점에서 그동안 팬데믹이 한국교회와 선교계에 미친 영향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엄청난 변화 속에서 교계와 선교계가 여러 모양으로 생존과 탈바꿈을 위한 각자도생의 몸부림이 있었지만, 코로나 이후 시대를 위해 어떻게 우리가 공동으로 함께 지혜를 모으고 준비하고 대처해 나가야 하는 가가 더 중요한 문제라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2018년 6월 부산 수영로교회에서의 제7차 NCOWE 대회 이래 5년이 지나 코로 나 이후에 갖는 제8차 NCOWE 대회는 매우 큰 의미를 준다고 하겠다. 더욱이 팬데믹으로 무려 1 만여 개의 교회가 사라지고 선교가 무척 침체되고 위축된 상황 속에서 교회와 함께 가야 할 선교는
그동안 누적된 과제와 함께 앞날이 더 무겁게 느껴지고, 이 같은 상황에서 지역교회들을 ‘선교적 교 회’로 다시 회복하는 일은 더욱 큰 과제가 아닐 수 없다고 본다.
그러나 선교의 주체는 하나님이시고, 선교의 대위임령을 내리시고,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28:20) 고 하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더욱 하나님만 바라보며 전진할 뿐이다.
이 같은 배경 속에서 우리는 제8차 NCOWE 대회의 10개의 트랙 중에서 ‘선교적 교회로 가는
로드맵’이라는 트랙 안에서 다뤄야 할 주제는 무엇이어야 하며, 나아가서 그 로드맵으로 가는 데 있 어서 지속 가능한 실천 과제들과 함께 이에 대한 방향과 방안들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전개되어 왔 다. 그리고 이제 필자는 본 트랙의 구체적인 일의 하나로 ‘선교적 교회 로드맵의 지속 가능한 실천 방
안’이라는 주제로 함께 생각해보고자 하며, 이를 계기로 선교를 위해 지역교회가 다시 활성화되고,
나아가서 한국교회와 선교에 플랫폼이 되는 데 있어서 다소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 1. 선교적 교회로 가는 로드맵의 전제 조건
(1) 선교적 교회에 대한 신학적 정립
그동안 한국 교계는 ‘선교적 교회’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어 온 것이 사실이나, 이를 여기서 일일 이 다루지 않고 본 트랙에서 전제하고자 하는 ‘선교적 교회’에 대해 다음 세 가지 특징으로 말하고자 한다. 레슬리 뉴비긴은 그의 책 ‘교회란 무엇인가?’의 제6장에서 ‘모든 민족을 향한 선교’라는 부분에 서 ‘선교적 교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의한 것을 발췌하여 요약하고자 한다. (레슬리 뉴비긴, ‘교 회란 무엇인가?’ 홍병룡역, 서울 IVP.2010년)
① 선교를 위해 선택 받은 공동체이다. –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목적에 의해 선택 하여 세운 공동체란 의미이다(요15:16).
② 성령에 의해 창조된 선교 공동체이다. – 선교란 교회를 통한 성령의 사역과 능력과 인도를 따 라서 동참하는 것으로 이와 같은 성령 공동체가 하나님의 선교의 가장 효과적인 도구가 된다는 의미이다.
③ 선교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종말론적 선교 공동체이다. – 마24:14과 같이 주의 재림의 날 까지 모든 민족에게 천국 복음을 증언하는 교회가 선교적 교회이며, 이렇게 할 때 마 28:19-20 과 같이 주님은 분명히 세상 끝날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교회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선교의 대행자(agent)로서 이 땅에 사명자(missioner) 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본 트랙에서의 ‘선교적 교회’에 대한 정의는 단순히 ‘선교하는 교 회’(Mission–doing Church)가 아닌 앞서 뉴비긴이 말한 3가지 개념을 포함한 ‘선교 존재로서의 교 회’(Mission-being Church)를 의미함을 천명하고 있다.
(2) 선교적 비전에 대한 신앙적 합의
이상과 같은 ’선교적 교회‘에 대한 신학적 정립과 함께 반드시 뒤따라야 할 것은 선교적 DNA를 지닌 선교적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목회자와 성도 간의 공통된 비전과 신앙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만이 함께 추진하려는 힘이 집중될 것이고, 그 시너지 효과가 더욱 크게 드러나게
될 것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목회자의 목회 방향과 구성원인 성도들의 선교적 비전이 한
방향이어야 하고, 이에 따른 구체적인 목회 계획과 실천 방안들이 함께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3) 전제 조건에 따른 선교적 조직과 행정과 사역
앞서 전제된 선교적 교회의 정의에 따른 선교적 비전과 선교적 리더십과 신앙적 합의를 구체화
하려면 반드시 이에 따른 조직과 행정과 사역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 더
구체적으로 다루기로 하고, 다만 여기서는 이것을 ’선교적 교회로 가는 로드맵‘의 전제 조건의 하나 로 삼아야 할 것을 강조한다.
- 선교적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 가는 길
2-1. 선교적 공동체가 되는 길을 방해하는 편견들
선교적 공동체를 만들어 가기 전에 현실적으로 우선 그 길을 방해하는 편견들이 있음을 파악하 는 것이 필요하므로 이것을 몇 가지로 생각해보고자 한다.
(1) 선교는 교회 기능들 가운데 하나라는 편견이 있다.
흔히 교회의 기능을 다섯 가지로 드는데, 예배, 교육, 봉사, 교제, 전도(선교)이다. 그리고 전도(선 교)는 다섯 가지 기능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곤 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전도(선교)는 교회의 다 섯 가지 기능 중 하나가 아니라, 그 자체가 교회 존재 이유이며 본질인 것이 성경의 원리이다. 왜냐하 면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영혼 구원에 있으며, 결국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에 있기 때 문이다. 그러므로 선교는 교회의 존재 자체며, 그 이유가 된다.
(2) 선교는 특별한 사람이나 한정된 부서(선교부)만이 해야 한다는 편견이 있다.
선교가 특별한 사람이나 특정한 부서가 해야 한다면, 전도는 전도사만이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처럼 이와 마찬가지로 선교도 특별한 사람이나 한정된 부서의 일이 아니라, 모든 성도 와 교회 전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것이다. 다만 부름받은 선교사나 선교부서는 선교를 위한 도구 일 뿐인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3) 선교(타문화권 선교)는 국내 전도가 다 이루어진 후에 하는 일이라는 편견이 있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의 근거는 행1:8에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 러 내 중인 되리라.’고 한 구절을 들고 있다. 여기서 그들은 예루살렘이 전도된 다음에 온유대에 전하 고, 온 유대가 전도된 후에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것이고, 여기서 접속사인 ‘과(와)’(헬,‘카이’)는 순서적이 아니 라, 동시적 개념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라는 지역 개 념은 순서적이 아니라, 동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지역교회는 주님의 대위임령을 받아 아직도 주님을 모르는 영혼들이 어디에 있든지 모
든 나라와 열방과 민족들을 향하여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이다.
2-2. 선교적 공동체를 함께 이루기 위해서는
(1) 지역교회의 목회의 방향과 비전을 하나님 나라의 대의(大義)를 세워가는 데에 둔다. 지역교회의 목회의 방향과 성격을 어디에 두느냐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본다. 필자는 오
랜 목회 생활을 통해 주변의 교회들을 살펴볼 때,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보 다는 성도의 신앙 양육과 관리에 더 집중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그러나 성경은 신앙 의 최종 목표를 하나님 나라 확장에 두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마6:33, 행28:31). 그러므로 목회 와 신앙의 방향은 당연히 하나님 나라의 대의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정의가 중요한데, 그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겠다.
–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시작되었고,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된다.
–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곳만이 아니라, 현실에서 주를 영접하는 자 안에서 시작된다.
– 하나님 나라에 사는 백성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자부심과 정체성을 갖고 산다.
–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모든 일 중에서 우선적으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이뤄지기를 꿈꾸며 실천하는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이다. 필자는 이를 ‘킹덤너리’(Kingdomnary = Kingdom of God’s Missionary의 약자)로 부르고 싶다.
(2) 교회의 성도 개인과 공동체가 선교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동력은 개인의 영성과 선교 에 이르는 영성이 필수임을 알고, 이를 동시에 소유해야 한다.
① 개인의 영성
요일4:1-3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거짓 영이 있고, 참된 영이 있음을 분 별해야 하며, 참된 영성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다.
– 예수 그리스도를 내 구주와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확신하는 영성
–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고 순종하는 영성
– 성령 충만과 갈급한 심령으로 지속적으로 간구하는 영성
–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이 재현되어 향기로 나타나는 영성
– 개인의 성장과 함께 공동체의 하나 됨과 성장을 추구하는 영성
– 모든 욕망과 꿈이 헛됨을 알고 천성을 향해 나가는 순례자의 영성
– 주를 위한 고난을 인내하고 감사와 기쁨을 갖는 영성
– 주의 부르심의 참 의미가 무엇이며 하나님 나라를 함께 세워가는 영성
② 선교에 이르는 영성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을 위해 개인과 공동체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을 가리켜 선교에 이르는 영성이라 한다. 따라서 그 특징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복을 타인에게도 흘러가도록 하는 영성
– 세상을 진정 변화시키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소원과 열망을 구현하는 영성
– 개인을 부르시고 구원하신 목적이 세상 구원을 위한 통로로 여기는 영성
–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을 삶의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영성
(3) 선교 공동체를 위한 4가지 주요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선교 공동체를 실질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4가지 주요 요소는 △현지인(현지교회) △선교사 △ 파송교회 △선교위원회이다. 그러니까 현지인(현지교회)을 중심으로 선교사와 파송교회와 선교위원 회가 서로 연합과 소통이 잘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선교사와 파송교회가 서로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려면
– 먼저 파송교회가 우선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선교적 교회’가 되어야 한다.
– 선교사에 대한 평생 관리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어야 하는데, 이를 다음 3단계로 이루어져야 한 다. △파송전(Pre-:feld System) △파송중(On-:feld System) △파송후(After-:feld System)
를 말한다.
(4) 3P를 실천하는 삶 – 선교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 가려면 3P를 실천해야 한다.
– 기도(Prayer) : 선교사와 선교사역과 성도들이 선교적 삶이 우선이 되도록 기도한다.
– 선교헌금(Payment) : 선교사역을 위해 정기적으로 모든 성도들이 선교헌금을 하고, 동시에 자 신의 생활비도 선교적 삶을 위해 우선적으로 지출하는 생활 습관이 있어야 한다.
– 선교참여(Participation) : 성도들은 선교를 위한 중보기도/선교사역을 위한 후원/선교사들에 대한 환대/선교사역에 섬김/선교를 위한 교육과 훈련/선교 현장에 단기선교여행의 참여 등, 통합 적 사역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 지역교회의 선교 활성화 방안들
(1)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 양육과 파송 문화의 확산
오래전부터 선교사들의 입국 거부/비자 체류 제한/선교사역의 제한 등 여러 가지 선교지의 상황 이 급변하고 있는 현실이므로 이를 대처하기 위해 전문 지식과 기술과 은사를 지닌 평신도를 선교사 로 양성하고 파송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으나 한국교회는 이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준비가 여전 히 소홀했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평신도선교운동에 대한 선교문화를 확산시킬 필요가 있고, 평신도들에게 선교 동기부여를 하고, 동원과 훈련과 파송과 관리를 준비해야 할 때라고 본다. 또한 지역교회 차원을 넘어 노회와 총회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인 평신도선교운동을 벌린 필요가 있으며, 무엇보다도 이미 파 송된 선교사들과의 협업 선교가 함께 이루어져서 선교지 현지인들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구현되어야 할 총체적 선교(Holistic Mission)가 실현되는 데 이들이 귀히 쓰임 받도록 힘써야 할 때라고 본다.
(2) 청년인턴 선교사 양육과 준비
청년인턴선교사의 양육은 미래 한국선교 자원을 위해 이 시대가 준비해야 할 매우 중요한 과제 이다. 이를 위해 지금 여러 선교단체별로 청년세대 선교리더십을 준비하고 훈련시키고 있지만, 이것 을 지역교회와 교단별로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활용하는 일에 함께 힘을 모아야 하고, 동시에 지역교 회 내에 청년부를 선교 공동체로 만들어 가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3) 시니어 선교자원의 활용
2040년에 국민 전체인구의 58%가 노령 인구이고, 2060년에는 전체의 65%-70%가 노령인구가 된다고 한다. 그런데, 교회의 노령화는 사회보다 10%가 더 증가하고 있다. 그래서 2040년에는 교인 의 68%가 노령 교인이고, 2060년에는 교인의 75-80%가 노령 교인이 된다. 또한 은퇴 이후(55세) 대 략 30-40년은 여가와 쉼의 시간이 아닌, 의미와 목적을 추구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한 국교회는 노령 교인들을 위한 시니어 선교사역이 절대 필요한 시대임을 예견하고, 이를 준비하고 활 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4) 선교 분야의 디지털화와 인터넷 활용
코로나 팬데믹은 디지털 혁명 시대를 가속화 했다. 인터넷, 인공지능(AI)은 이미 우리들 곁에 와 있고, 메타버스, 챗GPT, 챗봇 바드 등, 소위 제4차 산업 혁명의 첨단기술은 모든 일상을 놀라운 속 도로 바꾸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목회와 선교계에도 예외는 아니므로 특히 선교 분야에서도 디지털 문명을 최대한 활용해야 하며, 이를 위해 디지털 기술과 지식을 활용할 줄 아는 청년세대 선교사들
을 교회가 적극적으로 양성하고 훈련해서 준비해야 할 때이다.
(5) 국내 이주민 선교를 위한 동원 및 협력
이미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주민 선교는 현대 선교의 트랜드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다. 현재 국 내 이주민의 수는 250만 명에 이르고, 2050년에는 500만 명이 예상되며, 앞으로 산업계는 이주민들 을 노동 인구로 받아들여야만 하므로 이제는 우리나라가 단일민족국가가 아니라, UN이 인정하는 인구 대비 5% 이상의 다민족 국가가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도 포비아(Phobia)의 국민정서가 여전하고, 여전히 지역교회들이 이주민 선 교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너무도 미흡하므로(한 예, 제6회 열선넷이주민선교포럼자료집, 2020.9.24, 경기북부 지역교회 3,566개 교회중 16교회 0.45%만 직,간접 참여) 이제는 이주민 선교가 하나님이 주신 선교의 기회라고 하는 인식의 변화와 함께 선교 패러다임의 혁명이 필요하며, 나아가 이주민 선 교에 대한 로드맵에 지역교회가 적극 동참과 협력과 연대를 함께 모색해야 할 급박한 때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6) 지역교회(Modality)와 선교단체(Sodality)와의 파트너십 강화
지역교회는 선교에 대해 지식과 전문성과 전략 등이 부족하므로 선교단체와의 협업이 절실하다. 반면에 선교단체는 지식과 전문성과 전략이 있어도 인적 물적 선교자원이 부족하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지역교회와 선교단체가 상호 연대와 협력의 관계를 가져야 함은 당연한 이치이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양자는 평행선을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므로 이제는 서로 파 트너십이 강화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구체적인 방안들이 모색되어야 하고, 서로 협업을 하고 있는 지 역교회의 모델들을 찾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7) 해외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와 비서구권 교회들과의 네트워크
해외에 있는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는 약 5천여 교회가 된다. 그런데 이들과 국내 지역교회들과 의 선교에 관한 네트워크가 미흡하다. 필자는 미국에서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를 오랫동안 섬겨온 경 험이 있으므로 이들의 선교 역량의 무한함에 대해 일일이 거론하려면 끝이 없다. 그러므로 이들과의 네트워크가 절실하며, 더 나아가서 온 세계 열방의 복음화를 위해서는 한국교회가 비서구권 교회의 선두 주자로서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의 교회들과의 선교 네트워크의 중심에 서야 할 것이다.
- 선교적 교회에 이르는 로드맵
4-1. 자기 평가 기준표
2003년 11월12일부터 14일까지 있었던 제3회 한국선교지도자포럼(KWMA주관)에서 지 역교회 선교 활성화에 대한 평가 기준표를 미국의 ACMC(Advancing Church in Missions Commitment)의 자료를 참조하여 한국적 상황으로 발표한 적이 있었다(진재혁 박사).
이 자료에 의하면 다음 4가지 기준과 각각 3가지 요소들을 적용하여 구체화한 것을 본다. 4가지
기준은 △선교 리더십 △선교 행정 △선교 사역 △선교 동원이다. 그리고 각 기준에 따라 아래와 같 은 3가지 요소들을 필수 조건으로 하고 있음을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1) 선교 리더십
① 담임목사 : 담임목사의 선교에 대한 인식과 헌신에 따라 지역교회의 선교 활성화에 미치는 영 향은 거의 절대적이라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담임목사의 선교에 관한 이해와 헌신의 범위만큼 교회의 선교사역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② 선교위원회 : 평신도들과 선교행정 실무자들로 구성된 곳이 선교위원회이므로 그들의 활동 상황이 개교회의 선교 활성화에 중요한 요소들이 된다. 실제적으로 선교에 관한 정책과 전략을 수립하고 선교재정을 꾸려가며, 또한 교회와 선교사(현장)를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하므로 이 들의 선교에 대한 이해와 역량은 매우 귀중한 요소인 것이다.
③ 선교 비전 : 선교 비전은 교회의 리더십이 선교에 대해 어떤 방향과 목표를 가지고 있는가를 나타내 주는 것으로 교회의 장, 단기 선교 목표와 전략을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비전 제 시뿐만 아니라, 비전의 나눔과 공유를 통해 교인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선교사역에 주인 의식 을 갖게 해 준다. 또한 비전은 선교의 목표에 대한 평가의 자료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2) 선교 행정
① 선교 정책 : 선교위원회에서 선교에 관한 운영, 전략, 파송, 교육 및 예산 등에 관해 전반적으 로 행정적인 규범을 성문화하는 것을 말한다.
② 선교 교육 : 개교회에서 실행되는 선교에 관한 모든 교육과 훈련, 세미나 등으로 주일학교부 터 장년부에 이르기까지 실행하는 것을 말한다.
③ 선교 예산 : 선교 사역에 대한 재정 계획과 실행을 말하는 것으로 선교사역에 대한 헌신도를 구체적으로 나타낸다.
(3) 선교 사역
① 선교사 파송 : 단순히 다른 교회에서 파송된 선교사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교인들 을 훈련시켜 선교사로 파송하는 교회야말로 선교적 교회로서의 성숙함을 나타낸다. 단독 파송
이 불가능한 교회는 협력 선교든지 혹은 교인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장차 파송하기로 목표를 세우는 사역적 비전과 철학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② 선교사 돌봄 : 단순히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뿐만 아니라, 파송 혹은 협력하는 선교사를 얼
마나 구체적으로 그들의 사역과 생활을 사랑으로 돌보고 있느냐는 것은 선교적 교회의 중요한 면모이다. 선교사의 영성, 안식년, 선교사의 자녀교육 등 선교사가 효과적인 사역을 감당하도록 지원하고 돕는 사역은 선교적 교회로서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③ 선교지원자 관리 : 선교사는 저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자기의 교인 들 중에서 선교 비전을 가진 자들을 훈련하고 도전하여 선교사로 파송하기 위해 교회 내에 지원 자들에 대한 관심과 관리가 필요하다. 선교지망생들을 위한 리더십 개발과 투자는 선교적 교회 의 두드러진 현상이다.
(4) 선교 동원
① 평신도의 참여 : 상명하복식의 선교보다는 평신도 차원에서 선교에 대한 이해와 참여가 선교 사역에 주축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선교에 대한 비전을 함께 나누고 실 질적으로 동참하고 협력하고, 또한 교인들 스스로가 선교적 삶을 살아내고 있는가 하는 점이 중 요한 요소가 된다.
② 선교 기도 : 선교적 교회는 선교를 위한 기도가 범교인적이며 자발적이고 정기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또한 교회는 지속적인 선교기도운동을 확산하기 위해 최근의 선교정보와 기도제목 을 수시로 제공해야 할 것이다.
③ 국내 전도 : 전도를 통한 구령의 열정은 세계선교와 바로 연결된다. 따라서 각자의 있는 위치 에서 구령의 열정을 가지고 전도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는 전도와 선교를 연결하여 구령 의 열정이 세계선교의 비전까지 전달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4-2. 자기 평가 기준표 사용법
선교적 교회에 대한 상기와 같은 4가지 기준과 이에 따른 각기 3가지 요소들을 포함하는 자기 평가 기준표를 사용하는 방법을 소개한다면, 각기 기준에 따른 요소들을 분기점 0을 중심으로 하여 최하 –2에서부터 시작하여 최상 +4까지 범위를 정한다.
-2는 선교에 대해 잠자는 교회, +2는 선교를 돕는 교회, +4는 선교적 교회의 수준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선교 리더십>의 요소 가운데 <담임목사>를 한 가지 예로 든다면,
–2는 목회자가 선교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는 단계이며,
-1은 말로써만 선교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단계이고,
0은 분기점으로 목사가 선교에 대한 교회의 역할과 리더십의 책임을 인식하는 단계이며,
+1은 선교를 교회존재의 이유로 알고 선교를 목회의 중심과 가치관으로 인정하는 단계이고,
+2는 선교를 돕는 교회라는 인식하에 1년을 상,하반기로 나눌 때 담임목사가 각각 2~3번씩 선교 에 관한 설교를 강조하는 단계이며,
+3은 목사가 선교의 전문성을 소유하기 위해 독서와 세미나 참석 등으로 선교에 관한 견고한 지 식을 가지고 가르치는 단계이고,
+4는 성도들에게 선교에 관한 동기부여를 하고 전문적인 교육과 훈련을 시키는 단계이다. 그러나 물론 각 교회마다 사정과 형편이 다르기 때문에 이상의 평가 기준과 요소들이 절대적인
것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평가 기준표를 통해 선교적 교회의 한 모 델을 참고적으로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본다.
- 5. 제안 – Rethinking & Beyond에 관한 후속 방안
5–1. Rethinking
한국교회와 선교는 이제 변곡점을 넘어 상향선을 그려야 할지 아니면 하향선을 그려야 할지에 대한 최대 위기의 전환점에 와있다고 보겠다. 이 같은 시점에서 앞으로 무엇을 하기보다는 선교에 대 한 지나간 문제의 근원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심도 있는 성찰 과정이 별로 없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모든 문제들의 원인이 정말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하나님 앞에서의 묵상과 회개와 기도하는 뜻에서 진정 Rethinking의 기간으로 재정 후원하는 일을 제외하고, 선교에 관한 모든 모임과 행사와 사역들 (각 교단 선교부, 모든 지역교회, 모든 선교단체 포함)을 3개월 혹은 6개월간 중단을 선포하였다가 다 시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것을 제안한다.
5-2. Beyond
그리고 지금은 방향도 중요하나 속도도 중요한 때이다. 왜냐하면 세상과 선교환경은 이전에 비 해 너무 달라졌고 또한 계속해서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국선교에 관한 대부분의 이슈들 은 아주 오래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던 문제들이고 그때에도 당면한 위기라고 난리를 떨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 문제들을 함께 풀어내고, 함께 공유하고, 함께 실천에 옮겨야 할 때이며, 동시에 변화하는 속도에 따라 또다시 야기되는 다른 문제들도 대처해야 하는 숨 가쁜 때이다.
그러므로 이 같은 절박한 문제 의식을 갖고 향후 한국교회와 한국선교를 위해 본 트랙이 명실공 히 플랫폼 역할을 하기 위한 역량을 총집결시키고 극대화해야 할 때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제8차 NCOWE 대회를 기점으로 향후 한국선교가 지역교회와 함께 바르게 가기 위하여 Beyond
의 차원에서 누구보다 먼저 목회자들의 세계 기독교시대의 선교 상황에 대한 바른 통찰력과 선교적 교회에 대한 목회 인식의 변화와 지속적인 연구를 위해 가칭 ‘목회자선교아카데미’, 혹은 ‘목회자선 교교실’을 전국적으로 조직/확대하여 정기적으로 운영해 나아갈 것과 본 트랙이 교회의 선교 사역을 위한 ‘멘토 시스템’을 갖추도록 제안한다.
여기서 함께 연구하고 다룰 과제에 대해서는 예를 들면, 비서구권 선교 시대에서의 한국선교의 역할, 현지 선교 리더십의 훈련과 지도력 이양문제, 선교지 자립방안, 지역교회를 선교적 DNA를 지 닌 공동체로 만들어가는 방안, 탈 세계화 속에서의 선교정책 및 전략, 그리고 교회와 선교에 관한 기 타 여러 가지 연구와 정책과 전략과 실천 방안들을 계속 업그레이드하여 비서구권 교회와 한국교회 에 플랫폼 역할을 하도록 힘쓰는 일이다.
소개
김영휘 목사/선교사
총신대신대원졸
미국 풀러신학선교대학원표.M수료
미국 웨스트 민스터 신학대학원 D.Min졸업 국내외 선교적 목회 은퇴
KWMA운영위원 GMS명예선교사
시니어선교한국 실행위원 이주민선교연합회 자문위원
다음세대살리기운동 두드림투게더 지도위원
선교적 교회를 향한 로드맵 / 오정호 선교사 (위클리프성경번역 선교회)
들어가는 말
<선교적교회를 향한 로드맵>(이하:로드맵)은 선교가 단편적인 독립된 프로그램이나 사역이 아 니라 선교가 교회의 존재적 DNA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지역교회가 자신들의 독특한 상황과 조건 안에서 스스로 선교 모델과 사역을 찾아갈 수 있는 기본 틀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평가 때문에 작성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로드맵의 목적은 특정한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교회를 포함한 여러 공 동체가 선교적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세워가고 그 결과로 자신들에게 적합한 프로그램과 선교활동 을 찾아갈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여기서 이야기 하는 로드맵과 관련된 논의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렸던 코딤넷 (KODIMNET: Korean Diaspora Missions Network) 2013년 모임에서 처음 시작되었고, 2013년 코딤넷 모임 이후 몇 위원회가 구성되어 몇번의 논의와 실행 그리고 추가적인 논의를 거쳐 지금과 같 은 로드맵과 관련 자료들이 만들어져 가고 있다.
로드맵의 구조
아래 그림1에서 보듯이 로드맵을 여러 단계로 나누어 작성할 수 있다. 시작단계 (Beginning Stage), 문제확인단계(Identifying Issues), 결정적성공요인단계(Critical Success Factors), 주요결과영 역단계(Key Results Area), 최종목표단계(End Goals)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도표 1: 선교적 교회의 로드맵

시작 단계: 이 단계는 교회가 선교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나 사역들이 그들 속에 있다는 것을 확 인하고 무엇인가는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의식이 생기는 단계이다. 데이비드 웰스는 “기도는 현 상에 대한 반역”이라고 했다. 기도가 타락한 세상에 대한 반항이자 비정상적인 세상에 대한 반응이
라는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 오늘의 현상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좋음(good)의 상태가 아니기 때문 에 하나님의 원하시지 않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으로 변화되도록 소망을 가지고 하나 님께 나아가는 것이 기도라고 정의한 것이다. 결국 기도는 현상에 대한 반역을 일으키는 것을 의미한
다. 이처럼 선교적 로드맵의 출발도 지역교회가 자신들의 현재 상황에 대해서 불만족스럽다고 느끼
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대부분의 지역 교회는 파송선교사와 협력선교사의 후원 관리 문제부터 단기선교여행이나 선교 지에서의 건축문제, 선교사 파송 등의 다양한 문제들을 고민한다. 이런 고민들은 종종 선교사를 선 교 마피아라고 부르며 선교사와 선교지를 불신하거나 아니면 교회의 선교부가 만족스러운 후원을 하고 있지 않다고 교회의 선교부를 오히려 불만족스러워 한다. 이런 상황의 돌파구는 지역교회이 다 양한 주체들이 함께 걸어가야 할 지도를 작성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다. 즉 교회 안에서 관련된 사 람들이 어디로 가야 할지를 함께 그려 보아야 한다. 선교적 교회로 가는 지도를 찾든지 지도를 만들 든지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그럼으로 첫번째 단계는 선교와 관련되어 현재 교회에서 하고 있는 활동, 프로그램, 사역들을 확 인하는 단계이다. 첫번째 단계는 선교와 관련해서 긍정적이고 역동적인 것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도 있지만,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과정을 통해서 교회는 현재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선교와 관련된 사항에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게 되고, 그것이 새로운 변화를 위한 로드맵 작업에 참여하는 계기가 된다.
이 단계는 교회 안에 선교가 활발하게 일어나든지 일어나지 않든지 상관없이 생각해볼 수 있다. 이 단계에서는 선교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교회는 교회대로 혹은 반대로 선교에 전혀 관심이 없는 교 회는 그 나름대로의 현실 인식을 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지역교회의 선교로드맵을 작성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선교의 활성화 여부와 상관없이 교회가 선교와 관련해서 어떤 변화가 일어 나야 한다는 것을 고민하기 시작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문제 확인 단계(Identifying Issues): 이 단계는 로드맵의 가장 중요한 길목이라 할 수 있으며, 교 회 안에 선교와 관련하여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파악하는 단계이다. 교회가 경험한 여러 가지 고민 과 문제들을 상세하게 나누어 본다. 파송 및 협력 선교사의 후원 문제, 단기선교여행에 대한 고민, 지 역 선교의 과제들, 교회내 동원의 어려움 등 많은 문제들을 정리해 볼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선교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가의 여부와 관계없이 각자의 교회 안에 선교와 관련된 어떤 이슈들 이 있는가를 파악하는 단계이다. 현상에 대한 거룩한 불만족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아야 한다.
결정적 성공 요소 단계(Critical Success Factors): 이 단계는 성공적인 선교적 변화를 위해서는 교회 내부의 어떤 요소들이 변화되어야 하는지를 확인하는 단계이다. 위에서 말한 문제들을 해결하 기 위한 핵심 포인트이기도 하다. 파송 및 협력 선교사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가장 중심
적인 이슈의 맥을 짚는다. 예를 들어 협력 선교사에 대한 문제는 선교단체와 후원교회의 역할을 이
해하는 데서 가능하고 GAMP(Generally Accepted Missional Principles: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 는 선교원칙)의 적용과 선교적 교회로서의 교육과 성장 등에 대한 제안을 받아 지역교회의 상황에 맞추어 정리해 볼 수 있다. 이 단계에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최종적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게 된다.
주요 결과 영역 단계(Key Result Areas): 교회 안의 선교를 위한 주요한 요소들이 성공적으로 변 화된다는 전제하여 어떤 사역적 열매를 교회가 성취하길 원하는지를 수립하는 단계이다. 위에서 말 한 중요한 성공 요소가 어떤 결과로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가를 말하는 것이다. 코치들은 코칭 매뉴 얼을 교회에 맞게 제시해 주는데,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 일어나는 결과를 상상하고 기록할 수 있다. 만약 이 단계에서 구체적이며 가시적인 결과를 보게 된다면 우리는 최종 목표를 향해 제대로 가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될 것이다.
최종 목표 단계(End Goals): 교회가 선교와 관련해서 최종적으로 성취하기 원하는 목표를 발견 하고, 결국 교회가 그 목표에 도달하게 되는 단계를 말한다. 선교적 교회의 고민은 선교적 교회가 어 떤 모습인지를 확실하게 그려 보면서 구체화해야 한다. 이것은 주로 코칭을 돕는 코치들의 큰 그림과 제안을 참고하거나 퍼스펙티브스 훈련, 카이로스 훈련, 인터페이스 세미나 등을 통해 선교적 교회의 그림을 그리면서 목표를 명확히 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최종 목표를 바르게 정립하기 위해서는 코 치의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마치 피트니스 센터에서 코치의 도움으로 자신의 운동량을 결정하고 운동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하는 것과 흡사하다. 최종 목적으로는 선교 리더십의 변화, 목 회자의 변화, 성도들의 삶의 변화를 들 수 있다.
로드맵(Conceptual Design) 작성
로드맵의 작성과 실제 실행 과정은 시작단계(Beginning Stage), 문제확인단계(Identifying Issues), 결정적성공요소단계(Critical Success Factors), 주요결과영역단계(Key Result Areas), 최종 목표단계(End Goal)의 순서로 되어 있지만, 로드맵을 작성하는 순서는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시작단계(Beginning Stage) – 최종목표단계(End Goals) – 문제확인단계(Identifying Issues) – 주요 결과영역단계(Key Result Areas) – 결정적성공요소단계(Critical Success Factors)의 순서로 로드맵 을 작성하는 것이 적절한 것이다.
즉 교회가 선교와 관련되어 현재의 상황을 확인한 이후 최종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길 원 하는 가에 대한 최종목표(end goal)를 먼저 생각해 보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전략들을 만들어
가는 것이 실제적인 로드맵 제작의 과정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순서에 따라 각 단계에서 일어나야
할 논의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 <시작단계>
시작단계는 우리 교회 내의 선교적 현실을 열거해 확인해 보는 과정이다. 여기에는 긍정적인 현 실, 부정적인 현실, 평가 없이 진행되는 반복적인 사역들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현재 진행하는 사역으로 단기선교여행, 선교학교, 선교사 파송, 선교위원회 활동, 선교모금, 선교집회, 선교대회 참 석, 선교사보고, 외국인근로자사역 등의 활동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현재의 사역을 어떻게 효과적 을 잘 해 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현실의 문제들이 교회(선교위원회) 혹은 교인들 안에 있을 수 있 다. 또한 선교와 연관될 수 있는 여러 의문이나 문제제기들이 있을 수 있다. 국내전도와 해외선교의 우선순위의 갈등, 이슬람의 확장에 대한 두려움, 선교사 파송과 후원에 관련된 문제, 제한된 재정을 선교에 투자할 것인가 교회건축에 투자할 것인가, 작은 교회가 선교에 참여하지 못하는 열등감 등의 다양한 문제들이 선교와 관련되어 교회 안에 있다. 각자 교회가 선교와 관련해서 직면하고 있는 이 러한 다양한 문제들을 나열해 본다.
이 단계는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할 수 있다. 교인들에게 설문이나 그룹토의 등을 통해서 현재 자신의 교회 안에 선교와 관련해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역과 이에 대한 평가 혹은 문제제기, 선교에 대한 인식 등을 정리할 수 있다. 우리 교회 내의 선교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가능하면 광 범위한 구성원들로부터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 <최종목표단계>
시작단계에서 그 다음으로 먼저 그려봐야 할 로드맵은 최종목표에 관한 내용이다. 과연 각 교회 는 선교와 관련해서 어떤 최종목표를 가질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고 결정해야 한다. 대부분의 교회들 이 최종목표에 대한 명확한 그림 없이 선교에 참여함으로서 선교의 방향을 잃게 된다. 최종목표가 명확하지 않으면 교회에서 선교는 표류하거나 일회적이 될 수 밖에 없다.
교회가 선교에 참여하는 최종적인 목표는 단지 몇몇 선교프로그램을 실행하거나 수 명의 선교 사를 보내는 정도가 아니라 교회 존재 자체가 선교적이어야 한다는 목표 아래 이를 위한 이해와 실
천이 교회 공동체적으로 그리고 성도 개인의 삶에서 성취되는 것이 그 목표이다. 이를 위해서는 “선
교적 교회”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선교적 교회란 “하나님의 백성은 부르심을 받아 성육하신 주님 의 십자가 은혜로 대속 구원받았으며, 성령의 충만하심을 입어 모든 열방의 구원을 위해 보내심 받 은 존재”임을 그 목적으로 하는 교회를 의미한다. 이러한 선교적 교회의 최종목표는 두 영역으로 나
눌 수 있다. 첫째로 교회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고 둘째로 성도들의 삶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 <문제확인단계(Identifying Issues)>
앞에서 언급한 최종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그 다음 그려야 할 로드맵은 현재 각 교회 안에 선 교와 관련된 어떤 문제 혹은 이슈가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 <주요결과영역단계(Key Result Areas)>
이 단계는 실제적으로 어떤 선교적 성취를 이루길 원하는가에 대한 로드맵을 만드는 단계이다. 선교와 관련된 현실이 파악되었고, 중요한 이슈들이 무엇인가를 확인한 다음, 교회가 원하는 최종적 인 선교적 목표를 확인했다. 이제 구체적으로 어떤 사역적 성취를 각 교회가 이루길 원하는가를 확 인하는 단계이다. 이 사역적 성취의 내용은 각 교회마다 공동체 마다 다를 것이다.
- <결정적성공요소단계(Critical Success Factors)>
이러한 한계와 이슈들을 극복하고 교회가 선교의 성공적인 결과를 맺기 위해서는 교회 안 변화 되어야 하는 중요한 요소들을 찾아내는 단계이다. 즉 교회 안에 어떤 요소(인력, 구조)가 변화의 중 요한 요인이 되는가를 확인하여, 그 요소들에 변화가 일어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 과정이 없이는 실제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게 된다.
정보 및 자료 제공
이러한 로드맵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들이 제공되어야 한다. 실제 교회의 선교 활성 화를 위한 정보와 자료는 너무나 많이 있다. 문제는 각 교회가 자신들에게 적합한 훈련프로그램, 자 료 그리고 정보를 제공받는 통로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각 지역교회는 조금만 노력하면 다양 한 통로를 통해서 필요한 정보와 자료를 제공받을 수 있다. 가장 빠른 방법은 선교단체와 접촉하는 방안이다. 개별 선교단체를 접촉하는 것이 한 방안이고, 선교동원단체를 접촉하면 더 광범위한 정보 를 얻을 수 있다. 필요한 정보를 획득하는 방법은 넓은 정보를 통해서 점차적으로 집중적인 정보를 얻어가는 방법이 좋다. 최근은 대부분의 일반적인 정보와 선교단체와 관련된 넓은 정보의 대다수는 인터넷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은 실제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단번에 필요한 정보를 손 쉽게 얻는 방법은 없다.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자꾸 선교단체와 만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혹은 선교관련 모임에 참여해야 한다.
아웃소싱(Outsourcing), 인소싱(Insourcing)
선교관련 모든 활동과 자원을 다 교회 내부에서 충당할 수 없다. 어떤 자원은 교회 내부에서 발 굴하거나 발전시킬 필요가 있고, 어떤 자원은 이미 외부에 존재하는 자원을 사용하거나 위탁할 수 있다.
인소싱(Insourcing)
성도들의 선교적 은사, 타문화경험, 전문성, 선교관심도 등의 심층 조사를 통한 선교관련 자원정 보 조사하기.
아웃소싱(Outsourcing)
선교단체와의 각종 협력. 다른 교회/주류교회/ 타민족 교회와의 협력. 현지선교사와 협력.
순차적 변화의 필요
그렇다고 해서 왼쪽처럼 선교를 하던 교회에서 오른쪽처럼 선교적인 교회로 한 번에 옮겨 가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순차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처음에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확인(Identifying Issues)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어떤 부분을
변화시켜 나가야 할지가 보인다. 그것이 바로 결정적 성공 요인 (Critical Success Factors)이다. 그러 면 어떤 결과들이 나올 것인가를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주요 결과 영역 (Key Result Areas)이다.” 예를 들어 어느 교회 장로님의 경우 통합적 선교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나온다고 볼 수도 있고,
타문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데서 나온다고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장로님이 가장 불쾌하게 생각 한 것은 인도 사람들이 식판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인도사람들이 손으로 밥을 먹는다는 것, 그리고 화장실에서 왼쪽 손으로 일처리를 한다고 하는 오해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와 다른 관습일 뿐인데 그런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나타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자기문화중심주의를 탈피해야 하는 것이 결정적 성공요소라고 할 수 있다.
선교적 자원의 활용
선교적 교회가 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수단들이 많이 있다. 퍼스펙티브스 프로그램(15주)과 카 이로스 프로그램(9주)은 교육을 통해 참석하는 사람들의 선교적 관점들이 바뀌게 된다. 퍼스 펙티브
스와 카이로스 훈련에서 소개하는 책이나 비디오 등도 도움이 된다.
선교적 교회로 가는데 도움이 되는 자원들도 많이 있다. 어떤 자원들은 교회 외부에 있고 어떤 자원들은 교회 내부에 있다. 교회 외부의 자원들은 예를 들면 선교단체가 가지고 있는 오랜 경험 같 은 것이다. 또 정부가 발표하는 인구 변화에 대한 통계 자료도 중요한 외부 자원이다. 예를 들어 우리 주변에 와 있는 타문화 사람들은 얼마나 되는가, 어떤 나라 사람들이 와 있는가, 그 사람들의 종교는 무엇인가 등은 매우 중요한 정보이며 외부 자원이 될 수 있다. 교회 내부에도 자원들이 많다. 예를 들 어 교회 주변의 타문화상황들에 대해서 교회나 성도들이 알고 있는 내용들은 아주 중요한 내부자원 이 된다.
선교적 교회가 되기를 원한다면 처음부터 거창한 목표를 설정하기보다 몇 가지 작은 목표로 나 누는 것이 좋다. 너무 큰 목표를 설정하면 중간에 지쳐서 그만 둘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도달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성취하게 되면 다음 목표로 나가는 데 큰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코치의 역할
선교적 교회로 가는 데 있어 코치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특별히 코치가 지역교회와 처음부터 이 과정을 함께 가는 것이 필요하다. 코치의 중요한 역할은 선교적 교회가 되었을 때의 최종 모습을 설명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목표에 이르기까지 해야 할 일들을 알려준다. 처음부터 너무 높은 목 표를 제시하면 지역교회가 쉽게 지칠 수 있으므로 조금씩 진보를 경험하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
지역교회가 목표를 설정할 때 코치는 아래와 같은 질문을 통해서 도움을 줄 수 있다.
- 무엇을 줄일 것인지
- 무엇을 그만 둘 것인지
- 무엇을 새롭게 할 것인지
- 무엇을 더 할 것인지
코치는 각 단계에 적합한 외부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고 내부 자원은 어떻게 활용하는지 방법을 주어야 한다.
결론
위에서 제시한 로드맵은 일종의 시도이다. 이것을 기준으로 각 교회는 나름대로의 로드맵을 완
성할 수 있을 것이다. 로드맵의 전체 틀은 그대로 유지하되 각 항목에 내용은 교회별로 리더십들이
모여서 함께 논의해서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선교 로드맵을 결국 성도들이 제자로서의 삶을 살 아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소개되어야 할 것이다. 이 로드맵은 일회적으로 일직선으로 이루어지는 것 이 아니라 실행과 평가 및 수정과 재실행의 지속적인 반복으로 나선형의 궤적으로 그리면서 점차 향 상된 모습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

스스로 읽고 해석하는 공동체를 향하여 – 선교공동체의 자신학화를 위한 제언 / 한종석 선교사(PCK-GBT, 서남아시아 A국)
- 1. 들어가는 말
한국세계선교협의회 (KWMA)가 주관하고 한국선교연구원 (KRIM)이 조사하고 발표한 자료 에 의하면 2022 년 한국의 장기 선교사는 22,204 명으로 집계된다. 파송된 한국 선교사는 다양한 분야에서 사역을 하고 있는데 교회개척에 참여하고 있다는 대답이 10,849 명으로 전체의 50%를 차 지할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 다음으로 제자훈련, 지도자 양육, 현지 지역교회 협력, 교육선교 등에 참여하고 있다는 대답도 2,000 명을 넘는 숫자로 조사가 되었다. 신학교 사역에 참여하고 있다 는 답변을 한 선교사는 1,349 명으로 상대적으로 적은 숫자이지만 선교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 을 가르친다는 관점에서 제자훈련, 지도자 양육들을 포함 시키면 10,000 명 이상의 선교사들이 직 간접적으로 신학 교육에 참여한다고 말할 수 있겠고 이는 교회 개척 사역을 하고 있는 선교사의 숫 자와 거의 대등한 숫자이다.1 다양한 성경공부의 장은 자신학화의 모판임과 동시에 자신학화가 얼마 나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볼 수 있는 시금석이기도 한다.
NCOWE 의 주요한 주제 중의 하나인 세계 기독교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는 단순히 서 구교회에서 시작된 기독교가 2/3세계로 확장되어 나갔다는 의미가 아닌 저마다의 토양에서 자라고 성숙해 나가는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전 세계에 존재하고 있다는 의미에 더 가까울 것이다. 필자가 사 역하는 서남아시아에서도 비록 그 숫자는 전체 인구에 비해서 현저히 적지만 스스로 복음을 전하고 (자전) 외부에 재정적/영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자급) 스스로 권위를 가지고 의사 결정을 하는 (자치)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있다. 그러나 충분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분을 선교사들 혹은 선교사들을 파송한 국가들에 의존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리스도인들 스 스로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부분은 앞에서 언급한 다른 세가지 영역보다 더욱 뒤쳐져 있는 형편이다. 이 글은 필자의 선교사로서 현지에서의 상황과 경험에서 비롯된 자기 성찰적인 글이다. 따라서 각 선 교지에서의 상황에 따라 성찰의 내용과 그에 따른 대안은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지 그
1 한국선교연구원, 「2022 한국 선교 현황」, https://krim.org/2022-korean-mission-statistics/,홍현철, 2023. 05. 21.
리스도인들이 자신학화를 향해 나가는 여정을 위해 제기되는 문제들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 각하며 자신학화를 위한 몇 가지 질문 및 제언을 하도록 하겠다.
- 2. 자신학화에 대한 인식
자신학화에 대한 정의가 학자 혹은 실천가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필자는 자신학화의 가장 기본 적인 출발점은 스스로 성경을 읽고 사고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종교개혁의 중심적 인 사건 중 하나가 사제들만의 독점물이었던 성경을 일반 성도들이 이해할 수 있는 독일어로 번역한 일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성경을 신도들에게 돌려주려 했던 노력이 종교개혁 초기에 개혁의 중 심에 있었던 것이다. 잉글랜드의 개혁자로 종교개혁자의 선구자로 평가되며 최초로 영어 성경 완역 을 추진한 위클리프의 영향을 받아 신구약 성경을 번역하고 출판한 영국의 윌리엄 틴들은 영어로 성
경을 번역하는 것에 반대하는 성직자들을 비판하며 모어 성경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모 어로 된 쉬운 성경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일반인들이 성경의 진리가운데 서게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하다…설사 진리가 그들에게 가르쳐 진다고 해도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이 그 것을 또 다시 삼켜버릴 것이다” (필자 역).2 그 이후 성경번역의 역사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성경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 및 권리를 주고자 하는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성경을 스스로 읽고 그 뜻을 깨우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다는 것은 종교 개혁과 같은 거창한 주제가 아니더라도 그리스도인이 주 되신 그리 스도의 뜻을 알고 그 분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종교개혁이 성경을 사제들의 소유에서 일반 성도들에게 돌려 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루터가 평이한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근대 선교에서도 현지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것이 주요한 사역의 하나로 성경이 많은 언어로 번역된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성경을 일반 성도들에게 돌려 주는 것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읽을 수 있는 성경을 가졌다는 것과 그것을 스스로 읽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는 것이 동일시 될 수는 없다. 앨리스터 맥그래스는 성도 들에게 돌아갔던 성경 해석의 권리가 종교개혁 후기에는 종교개혁자들이 성서해석의 권위를 갖게 되는 즉 성서 해석자가 교황에서 루터나 칼빈 같은 종교개혁자들로 변화했을 뿐이라고 지적한다.3 그 저 성경을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성경의 해석이 사제 혹은 목회자들의 손에서 성도들에게 돌아갔 다고 믿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일 것이다. 만약에 여전히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권한이 사제들 혹
- William Tyndale, Doctrinal Treatises and Introduction to Different Portions of the Holy Scriptures, ed. Henry Walter, (Eugene, Oregon: Wipf and Stock Publishers, 2005), 394.
- AlisterMcGrath, Reformation 표oughts: An Introduction, 최재건 역,『종교개혁사상』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255-259.
은 목회자들의 손에 있고 성도들은 무비판적으로 그 해석만을 따르고 스스로 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다면 여전히 종교개혁은 완성되지 않았고 성경 해석에 관해서는 여전히 종교개혁 이전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는 선교지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선교사들과 함
께 하는 현지인 동역자들이 스스로 성경을 읽고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선교사들에 게만 의지 한다면 이는 전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또한 선교사가 자신만이 해석자로 자리매김하 고 자신의 해석과 입장 혹은 교리를 현지 교회에 이식하고 있다면 이는 더더욱 지양해야 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신학적 입장을 가진 선교사들이 자신의 신학적 배경만을 고집하는 신학교를 세우고 그에 맞게 현지인들을 교육한다면 이는 한국 교회를 현지에 이식하는 그 이상이 될 수 없고 자신학화의 여정에 역행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 본질을 찾는 자신학화 여정
성경해석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이해로 번역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성경해석과 불가분의 관계인 신학의 작업도 번역의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성경번역선교사로서 현지에서 성경번역과 관련된 사역을 한 경험을 통해서 보면 외부인인 선교 사가 아무리 번역을 잘 한다 해도 현지 동역자의 번역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현지 인 만이 아는 그러나 말로는 설명이 어려운 미묘한 것이 그 들의 언어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따라 서 성경번역은 대부분의 경우 현지인이 하고 선교사는 도우미로 함께 하게 된다. 라민 사네 (Lamin Sannh)와 앤드류 월스(Andrew Walls)등이 말했던 것처럼 기독교는 번역가능성(translatability) 을 가진 종교이다.4 앤드류 월스는 영원하신 말씀이 인간이 된 그 자체가 신성이 인성으로 번역된 사건이고 그리스도는 번역된 말씀이라고 이야기한다.5 따라서 성경은 번역 가능하고 번역되어야 한다. 그러나 권성찬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본질 유지와 번역 가능성을 모두 포함한 번역성 (translativity)이라는 용어를 제안한다.6 성경이 번역 가능하다는 것은 복음이 새로운 문화와 언어를 만나 그 언어와 문화로 번역되어 복음의 확장과 토착교회 설립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넘어서는 것 이다. 이스라엘의 문화와 언어를 포함한 그 어떠한 형식도 본질 자체가 될 수 없고 본질을 독점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번역하는 과정 자체가 본질을 찾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는 선교지에서의 신학 작업, 자신학화에 통찰을 제공한다.
- Lamin Sanneh, Translating the Message: 표e Missionary Impact on Culture, (Maryknoll, NY:Oebis Books, 1991), 211.
- AndrewWalls, Alister McGrath, 표e Missionary Movement in Christian History, 방연상역,『세계 기독교와 선교 운동』(서울, IVP, 2018), 77. 6 권성찬,『선교, 이제 어떻게 하지? –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의 모색』(서울: 한국해외선교회출판부,2022), 101-104.
성경을 새로운 언어로 번역한다는 것은 번역과정과 그 결과를 통해 한 언어에 충분히 담을 수 없 는 하나님의 본질과 성품을 다양한 언어의 표현을 통해서 발견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한 번역을 통해서 한 언어 공동체가 중요시 하는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나기도 한다. 존 로스 목사를 중심으로
번역된 최초의 한글 신약전서인 『예수셩교전서』에서 번역자들은 신의 이름을 ‘하늘’과 ‘님’에서 찾은 ‘하느님’ 또는 ‘하나님’으로 번역하였는데 로스의 기록에 따르면 ‘하나님’은 “어느 곳에서든 위에서 다 스리시는 분이고, 지상에서 가장 높은 분”으로 조선인들이 알고 있던 낱말이라고 한다.7 중국어 번역 인 ‘상제’ 혹은 ‘신’ 그리고 영어 번역인 ‘God’가 드러내지 못하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우리말 번역 인 ‘하나님’을 통해서 더 풍성하게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자신학화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해석하고 번역하고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학화는 외부로부터 들여온 신학의 단순 번역 작업이 아니다. 또한 외부에서 이미 진행 된 해석을 토대로 자신들의 상황에 맞는 적용을 찾는 작업도 아니다. 자신학화는 현지인 스스로 성 경을 읽고 해석하는 능력을 갖고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계시 그리고 하나님의 선교의 본질을 찾아 나가는 여정이어야 한다. 그러한 여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본질, 성품, 일하심이 더 풍성히 드러나게 될 것이고 선교지의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진리위에 굳건히 서서 그리스도가 주시는 풍성한 자유 를 누리게 될 것이다. 선교지의 신학교는 이러한 풍성함이 드러날 수 있는 공간이다. 특히 다양한 교 단의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함께 공부한다면 이러한 본질을 찾는 여정은 더욱 풍성해지며 그 노력은 더욱 치열할 것이다. 그러한 치열함의 현장에 한국 선교사들이 있게 된다면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자 로서 누리게 되는 새로운 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 선교사의 자리매김
그렇다면 신학교육 혹은 현지 그리스도인들과 성경을 함께 공부하는 자리에 있는 선교사들은 자 신학화를 위해서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된다. 선교사는 현지에서 신학교 에서 가르치던 아니면 교회를 개척하던 간에 대부분 답을 주는 자로 여김을 받고 또 그렇게 사역을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필자가 사역하는 신학교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수업을 할 때 학생들은 다양한 질문을 한다. 대부분의 질문은 중복되는 질문인 경우가 많고 다른 이에게 이미 얻은 답에 대
한 확인을 하기 위해서 묻는 경우도 많다. 만일 필자의 대답이 다른 사람의 답과 다르면 의례히 “누 구 누구는 이렇게 이야기 하는데 선생님의 답은 왜 다르지요? 어떤 것이 맞는 답입니까?”라는 질문이
7 대한성서공회,「한글성경번역사」,
https://www.bskorea.or.kr/bbs/content.php?co_id=subpage2_3_3_1_1, 2023. 05. 29.
추가된다. 여기서 학생들의 생각과 교수의 생각이 대면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외국인 교수의 답과 필
자의 답이 만나게 되는 것이다.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키고 답을 찾는 데에 익숙하기보다는 “누가 이렇게 이야기 했는데 당신의 답은 무엇인가?”라고 말하는 것에 익숙하다. 이는 현지인의 교육 방법 그리고 선생과 제자 간의 관계에 관한 문화의 영향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과 대답의 반 복은 자신학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명맥하다.
이러한 질문/답변 패턴은 현지인들이 매년 부딪치는 문제까지 그 영역이 확장된다. 이슬람 국가 인 필자가 사역하는 나라에서는 버라 이드, 즉 큰 명절,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드-울-피뜨르”를 매년 지킨다. 이는 아브라함이 이삭이 아니라 이스마엘을 바치려 했다고 믿는 무슬림들이 그 일을 기념하 며 가축을 잡아 자신들의 신에게 바치는 명절이다. 그 때 잘 사는 집은 소를 잡고 형편이 어려운 사 람들도 형편에 맞게 양 염소들을 도살해서 바치게 된다. 심지어 낙타를 잡는 집도 있다. 잡은 가축의 1/3 은 가축을 도축하기 위한 의식을 행하는 종교 지도자에게 주고 1/3 은 가족이 먹고 1/3 은 이웃
이나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전통이 있다. 그럴 때 일부 무슬림들은 이웃에 사는 그리스도인 들에게 고기를 나누어 주는데 그 고기를 먹어도 되는지 아니면 먹지 않아야 되는지에 대해 학생들 은 매년 같은 질문을 한다. 과연 다른 신에게 바쳐진 고기를 그리스도인들은 먹어도 될까? 아니면 먹 지 말아야 할까? 우상에게 바쳐진 것을 알고 먹으면 양심이 약하여 지고 더러워지므로 (고린도전서 8:7) 이웃의 호의를 거절해야 하는 것이 옳은 가 아니면 그 고기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니 감사 함으로 받아먹는 것(디모데전서 4:3-4)이 옳은가? 외부자인 선교사는 어떠한 답을 주는 것이 현명할 까? 이 질문을 여기서 제기하는 이유는 먹는 것이 옳은 지 혹은 먹지 않은 것이 옳은 지 결정을 하거 나 투표를 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선교사가 이러한 질문에 함께 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배제한 채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면 현지인들은 그 것을 정답으로 여기고 본인들 스스로 선교적인 그리고 문 화적인 상황을 고려해서 성경을 읽고 답을 찾는 노력을 하려는 것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문제를 제 기하는 것이다.
위의 예는 선교사가 속한 교단이나 신학적인 배경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 경우일 것이다. 오히려 복음을 증거하는 측면에서 어느 것을 더 중요시 하느냐에 따라 선교사마다 생각이 편차가 있을 것이 다. 선교사의 교단적 배경이 영향을 줄 수 있는 다른 사례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최근에 여성 안수에
대한 질문을 한 학생이 이메일로 질문을 해왔다. 그의 질문은 이러했다. “누군가 나에게 “성경은 여성
이 목사가 되는 것을 허락하는가?”라는 질문을 했는데 이 질문에 대한 안내를 해주면 고맙겠습니다.” 여성에게 안수를 주는 교단에 속한 필자는 교단의 입장을 반영해서 여성 안수에 찬성하는 답을 주 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일하고 있는 현지 신학교 안에는 여성에게 목사 안수를 하지 않는 교단 에 속한 선교사도 교수로 있었는데 만약에 그 선교사가 교단의 입장에 따라 여성안수에 반대하는 답
을 주었다면 그 학생은 누구의 말을 따르는 것이 옳을까? 이 사례를 소개하는 것도 어느 것이 옳은지
에 대한 토론을 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다만 선교사가 현지에 대답하는 자로 있을 때 그리고 학생들 로 하여금 스스로 성경과 자신들의 상황을 연구하고 답을 얻도록 격려하기보다는 자신의 입장만이 옳다고 여기고 그 것을 현지에 전수하려 할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상기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외부자인 선교사는 어떻게 현지인들이 자신학화의 여정을 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까? “선교지 교회의 자신학화와 자립”이라는 주제로 열린 2 차 ACTS 선교포럼에서 이대헌은 “선교
지 교회의 자신학화를 어떻게 도울까?” 라는 발표에서 선교지의 문화에 철저히 녹아 있지 않은 사람 은 그 문화에 적절하고 탁월한 자신학화 과정을 주도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그런 면에서 선교사는
자신학화 과정의 기본적 스펙이 없다”고 지적했다.8 이대헌은 선교사가 주도하는 자신학화는 자신학 화의 이름으로 포장된 서구 혹은 한국 신학의 현지화가 될 위험을 잘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선교
지 그리스도인들의 자신학화를 위한 선교사의 역할은 무엇인가? 역할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의 자 세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 것이다.
우선 현지에서 성경공부나 혹은 신학교 강의를 통해서 현지인의 자신학화에 동참하는 선교사들 은 자신이 지금까지 견지해온 신학의 틀 그리고 교단 배경의 신학 혹은 자신의 전문분야가 주는 틀 에서 벗어나려는 과감한 노력을 하고 현지인들과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서야 할 것이다.9 그렇다 고 그 동안 배우고 해왔던 신학 혹은 교단의 배경을 다 무시하고 완전히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고 말 하는 것은 아니다. 선교사는 그 누구 보다도 다양한 신학적인 견해 다른 말로 한다면 해석과 이해에 열린 마음을 가지고 성경이 말하는 본질이 무엇인지를 찾는 작업을 쉬지 않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교사는 답을 주는 자로 현지에 있는 것이 아니고 선교지 동역자들의 신학하는 여정에 길동무로 함 께 길을 가는 자로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세로 선교지에 가기 위해서는 선교 훈련의 단계에서 선교훈련생들이 스스로 성경을 읽 고 해석하고 적용하고 다른 해석들 과도 대화하는 훈련을 충분히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선 교 훈련을 보면 이러한 성경읽기 훈련 특별히 다양한 해석을 수용하는 훈련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훈련은 선교사가 현지에 가서 답을 주는 자가 아닌 그 들이 스스로 질문을 찾고 그 질문에 대 한 답을 찾도록 함께 대화하며 길을 가는 동반자의 역할을 하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 내가 가진 답을 주는 것은 오히려 쉬운 방법이다. 그러나 다양한 관점 다양한 해석에 열려 있고 그 것을 수용하기 위
8 선교신문,「선교지 교회의 자신학화 위해 선교사가 갖춰야 할 자세는…, https://missionews.co.kr/news/583270. 2023. 05. 22.
9 필자가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 그리고 지금도 참조하고 있는 많은 신학이 서구 신학에 여전히 의존하고 있어서 그 것이 내안에서 소화된 나의 신학인지 아니면 서구의 것이 그대로 자리잡은 것인지 스스로도 구분이 어려울 때가 많다.
해서는 더 많은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선교훈련 커리큘럼을 보면 그러한 과정이 포
함된 것을 찾기가 쉽지가 않다. 선교사들은 이미 성경해석 정도는 당연히 할 수 있는 사람들로 인정 되어서 선교훈련에 참여를 허락 받을 것이다. 그러나 선교사 그리고 목사이면 당연히 성경을 읽고 해 석하는 훈련이 되어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현장에 있는 선교사로서 그 것이 당연하지 않음을 실감하 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그 기간이 짧더라도 최소한 이러한 필요성을 알려주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을 알려주거나 시간이 허락하면 함께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훈련을 그리고 다양한 성경해석의 시 각을 수용하는 훈련이 필수적이라고 하겠다. 지금 한국해외선교회(GMF)에서는 선교사가 현지인들
과 함께 하는 ‘선교적 성경읽기’를 실제적으로 실행하면서 그 가능성을 실험해보고 평가하는 작업을 현장선교사들과 본부선교사들이 함께 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답을 가르치던 그 간의 성경공부에 서 벗어나 선교사와 현지인들이 함께 성경을 읽고 답을 찾아내는 노력 더 나아가서 현지인들이 스스
로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은 참으로 지난한 일임을 발견하고 있다. 그러나 그 길이 어렵다고 해서 포 기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래야만 한국선교사들이 현지에서 나의 것을 이식하는 자로 자리매김하지 않을 것이고 선교사가 있는 자리에서 자신학화의 도우미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 나가는 말
그렇다면 필자에게 여성 안수에 대해 질문을 했던 학생에게 무슨 답을 주었을까? 아직 아무런 답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 친구의 생각을 계속 묻고 있는 중이다. 계속적인 질문에 그 친구는 몇 번 답을 준 후에 답장을 주고 있지 않은데 자신의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고 있을 수도 있고, 혹은 필 자가 정답을 몰라서 자신에게 계속 질문만 한다고 생각을 해서 실망을 하고 있을 수도 있고, 다른 사 람에게 물어봐서 만족할 만한 답을 얻었을 수도 있다. 그 친구가 여성 안수에 찬성하는 결론에 도달 했는지 아니면 그 반대의 결론에 얻었는지는 이 논의에서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친구가 스 스로 생각하고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과정과 그 노력의 과정에 함께 하는 동반자로의 선교 사의 자리매김이다. 그리고 섣불리 판단을 하지 않고 질문을 한 것과 몇 번의 응답을 한 것을 미루어 보아 그 학생은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과 지속적인 대화를 하고 스스로 답을 찾으려는 노 력을 하리라고 기대한다. 이러한 노력이 쌓여서 현지의 기독교인들은 스스로 읽고 해석하는 길을 가 게 될 것이다. 이렇게 그들의 영적인 체질이 튼튼해 질 때 선교지에서 판을 치고 있는 이단의 공격에 도 든든히 맞설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단의 공격에 선교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음을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바울이 잘못된 선생들에 대해서 가르침을 주고 경계를 시키지만 결국 그 들과 싸 워서 진리를 지켜 나가는 것은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 이었을 것이다. 자신학화의 노력은 단순히
현지인들이 “우리의 신학은 이 것이다”라고 말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스스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강건해지고 본질을 찾기 위한 끝임 없는 여정이다. 이를 위해서 선교사인 우리는 무엇을 더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그 들이 스스로 답을 찾는 자로 서도록 옆에서 함께 걷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 글이 그러한 여정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마무리 하도록 하겠다.
<한국교회 불교권 선교 성찰과 전망>에 관한 논찬 / 김승호 선교사 (OMF 이주민귀국자사역)
내가 아는 발제자 손승호 선교사는 태국선교현장 및 부흥 경험의 씨줄과 불교권 및 선교에 관한 학문과 강의의 날줄로 잘 직조된 선교사이다.
발제자는 먼저 한국 선교 전체에서 불교권 선교의 비중을 나누고 있다. 선교사 22,204명(2022 년12월) 중에 아시아는 59.4%에 해당하는 13,200명이 사역하고 있는데 아시아의 대부분은 불교권 으로 한국선교사가 적어도 10,000명 이상으로 본다. 특히 인도차이나 5개 불교 국가인 태국, 라오 스, 캄보디아, 미얀마, 베트남에서 사역하는 한국 선교사는 적어도 4,000명 이상이다. 이 다섯 나라 의 주종족(타이97.5%, 라오53.2%, 크메르97.6%, 버마68%, 비엣85.7%)의 복음화율은 0.5% 이하이다.
발제자는 불교권 선교의 6가지 성찰에 대해 나누고 있다. 팀사역이 없이 각개전투와 중복투자 를 해 왔다. 돈 중심이어서 교회 개척이란 땅 구입과 교회건축을 의미했다. 선교전략이 없었다. 즉 현 지인의 특성과 종교와 문화와 무관했다. 일방적 의사전달로 듣는 이의 가치관과 세계관, 문화와 종교 등을 고려하지 않았다. 방문팀이 많아 선교에 집중할 수 없었다. 기록과 연구가 없었다는 점 등이다.
발제자는 복음을 전했을 때 불교권의 영혼들에게 이질적으로 들릴 수가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복음이 외계인이 전한 것처럼 생소한 것으로 느껴진다. 우이독경(牛耳讀經)-아무리 가르치고 일 러도 잘 알아듣지 못한다. 요한복음 3:16절이 상좌부불교권의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들릴까? 듣는 이 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의미의 단어 나열에 불과하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 불교도는 그리스도인이 열정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불교도의 세계관에는 그런 개념이 전혀 없다.
‘하나님’(태국어로 prajao)이라는 단어: 불교인의 우주관에서 태양, 달, 별, 왕족 중 한 사람, 불교
승려, 인도 신화에 나오는 신, 특별하게 거룩한 장소나 불상 등을 떠올린다. -이 모든 단어에 pra라는 접두어를 사용한다.
“사랑”-불교에서는 모든 고통의 원인이다. (불교는 苦에서 출발한다.) 불교에서 기독교의 사랑을 모든 고통의 원인인 갈애, 집착으로 이해한다. 하나님이 누군지 모르지만 아직도 붓다가 깨달음에 이 르기 전의 단계에 머물고 있는 저급한 존재로 오해하며 ‘믿을 가치가 있나?’ 라고 생각한다.
불교도의 목표는 해탈에 이르는 것이다. 해탈에 이른 사람은 세상이나 사람을 사랑하거나 무엇 에 집착하지 않는데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하나님은 아직도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고 무엇에 집착한 단 말인가?’ 라고 오해한다.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 표현도 불교도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믿는 자마다 ”에서 믿음이라는 단어는 불교의 구원과는 반대되는데 즉, 상좌부 불교에서 구원 은 누구나 무엇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며 자신을 철저하게 의지함으로 구원을 완성하는 것이다. 불교 도들이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문장은 붓다가 마지막 남긴 유언과 같다. “너는 누구도 의지하지 말 고 오직 너 자신을 의지하라.” (自燈明 法燈明)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는 말에서 그리스도인은 영생을 원하는지 몰라도 불교도는 원하지 않는다. 불교도는 이생의 업보가 쌓여 끊임없이 태어나고 죽는 윤회에 들어가는 것이 영생이기 때문 이다. 불교도는 윤회에서 벗어나 열반에 이르려는 것이 최종 목적인데 결코 영생을 원하지 않는다. 영 생X -> 열반O
발제자는 불교도에게 복음을 전한 후 그들의 반응을 다음과 같이 나눈다. “모든 종교는 사람들 을 착하게 살라고 가르치지 않나요? 들어보니 불교와 기독교는 가르침이 같습니다” 불교는 무신론과 무아론, 기독교는 유신론과 유아론, 듣는 이에게는 불교와 기독교는 같은 것으로 들린다. 이는 효과
적인 의사소통의 부재 때문이다. 복음 전달자가 A라는 의미로 의사소통해도 듣는 이에게는 이미 마
음과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가치관, 문화, 종교 등 때문에 Z라는 의미로 굴절되어 들리게 된다
-> 이러한 이유로 사영리로 된 전도지 같은 이미 유신론적 세계관이 형성된 서구식의 사고에 들어맞 는 전도가 불교권에서는 비 효과적일 수 있다.
발제자는 이어서 구속적 유비(Redemptive Analogy)를 나누고 있다.
구속적 유비란 하나님께서 이미 각 종족의 고유한 문화 속에 하나님의 구속의 진리를 전달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문화적 지식인 통찰력을 마련해 놓으심으로써 그들을 복음화 시킬 만반의 준비
를 미리 갖추어 놓으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교사는 선교지 문화 가운데 숨겨져 있는 구속적 유
비를 발견해내야 한다. 불교와 그에 관련된 문화도 연구함으로 그 안에 있는 구속적 유비들을 발견 하고 그것을 복음 전파에 적극적으로 적용함으로 현지인 중심의 효과적인 복음 전달을 할 수 있다. 하나님은 대부분의 타종교와 타문화 속에도, 불교 안에도 구속의 유비를 만들어 놓으심으로 그들 을 효과적으로 복음화 할 준비를 미리 갖추어 놓으셨기 때문이다. (IMB 선교사들이 만들어 사용한 Creation to Christ 그림 참조)
발제자는 불교가 말하는 사성제(四聖諦)인 고집멸도(苦集滅道)를 언급하기를
1.苦諦: 인생의 삶이란 고통을 수반한다.
2.集諦: 괴로움 발생의 원인을 밝히는 진리. 갈애(渴愛) 즉 무엇에 집착하는 것
3.滅諦: 苦와 集을 멸하여 제거하는 것. 괴로움의 원인인 무명(無明)과 갈애(渴愛)가 소멸되면 불교의 이상 세계인 열반(涅槃)에 이를 수 있다.
4.道諦: 괴로움의 원인을 어떻게 소멸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수행방법
八正道: 정견(正見)·정사유(正思惟)·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정념(正念)·정정진(正精 進)·정정(正定)
발제자는 불교의 사성제를 언급한 후 그에 대한 성경적 해답으로 비욘드 선교부 소속의 스티브 팔라토의 의견을 제안하고 있다.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1.苦諦: 인생의 삶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크리스천도 동의한다. 창세기 초반부가 인간 의 타락으로 말미암은 고통을 이야기할 정도로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도 동의한다. 인간의 고통은 죄 와 불순종, 창조주와의 깨어진 관계에서 온 것을 크리스천도 알고 있다.
2.集諦: 인간의 내면에 육체의 악한 본성이 살아있는데 그것이 바로 욕망이다. “세상에 있는 모 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일 2:16) 이라고 성경이 말씀하는데 인간은 하 나님과 분리된 후 욕망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3.滅諦: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열반을 불교도들은 고통이 없는 장소라고 이해한다. 그런데 복 음 전달자가 고통이 없는 장소는 천국 혹은 하나님 나라 라고 하는 순간 의사소통의 오해가 생긴다. 왜냐하면 불교에도 여러 단계의 천국이 이미 있다고 믿으므로 기독교 천국은 필요 없다고 오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크리스천이 말하는 천국은 완전히 불교의 세계관 밖에 있는 것으로 죄와 업보와 그
결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말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복음은 죄와 업보로부터 해방해 주는 것인 데 하나님과 영원한 삶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해야 한다.
4.道諦: 괴로움의 원인을 소멸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수행방법인 팔정도(八正道)인데 불교도는 팔정도를 완전하게 수행함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라고 믿는다. 기독교 복음에는 한 길 즉, 예수님을 따르는 것만 있다는 것을 말한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이 말씀처럼 인간이 공로를 쌓거나 무엇을 행해서가 아니다. 그 길은 팔정도를 실천함으로가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오직 하나의 길이 있다는 것이다.
발제자는 불교권 선교의 최대 과제를 효과적인 복음의 의사소통으로 보고 있다. 불교권에서 복 음이 전해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복음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굴절되게 전달되어 듣는 이가 복음 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교사들, 현지 그리스도인들이 불교의 가르침 중 복 음을 전달할 수 있는 길(道)인 구속적 유비를 발견하여 선교 현장에서 적용하고 좋은 열매가 있을 때 불교권 선교지에 퍼뜨려 많은 영적 수확을 거둘 수 있는 실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주님 안에서 겪는 체포, 투옥, 재판 그리고 추방 / 김요한 선교사 (GMP)
GMP (개척선교회) 대표를 역임한 김요한 선교사는 튀르키예에서 수년간 사역하면서 세 차례 의 체포와 투옥 및 추방명령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두 번의 재판을 거쳐 승소한 그는 이슬람 국가인 튀르키예에서 복음 전파가 불법이 아니며, 기독교 관점에서 이슬람교와 코란의 모순을 지적하고 알 리는 것, 역시 법에 저촉되지 않음을 확인시켜주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추방의 과정을 거치면서 새 로운 선교의 장을 개척한 그는 자신의 지난 경험을 통해 선교사 추방이 오히려 하나님의 뜻 안에 이 루어지는 선교의 한 모습임을 나누길 바란다고 말한다. (편집자 주)
처음 체포되었던 경위를 말씀해 주세요.
1996년 4월 5일 3차 제자훈련이 시작되기 3일전, 한국에서 오시는 손님을 마중하러 이스탄불 공항에 갔습니다. 저는 튀르키예에 있으면서 늘 가방에 전도용으로 30권 정도의 튀르크어 성경책을 가지고 다녔는데 그 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당시, 튀르키예에서는 성경을 배포하는 것이 금지되 어 있고, 그것이 체포 및 추방의 사유가 된다는 것이 상식으로 통하던 때였습니다. 저는 성경을 주로 경찰을 중심으로 나누어 주었는데 이스탄불 공항을 자주 가다 보니 이미 많은 경찰들에게 성경을 나누어 주어서 2층 출국장에 올라가 세 명의 남성들에게 성경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복음에 관한 이 야기를 들려주고 뒤돌아서는 순간 세 명의 남자들이 저의 양팔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가기 시작했습 니다. 안기부 테러진압요원이었던 그들은 저를 주차장 으슥한 곳으로 데려가 마구 구타하기 시작했 고 다시 안기부 공항부실로 끌고 가서 밤새 취조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공항 경찰서에서 3일을 감금되어 있었고, 그 후 이스탄불 시내에 있는 감옥에서 8일을 지냈습니다. 마지막에 수감되어 있던 감옥에서는 가족과의 면회가 허락되지 않았지만 저의 아내와 3살 된 막내아들이 저를 만나러 왔습 니다. 어린 아들은 저를 보자마자 꼭 끌어안더니 울기 시작했고 이 광경을 안쓰럽게 본 튀르키예 경 찰들은 선처를 해줄 테니 한국이 아닌 튀르키예와 가까운 불가리아로 추방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저 는 가족들과 불가리아로 가서 평소 알고 지내던 선교사님 댁에 일주일을 머물면서 상한 몸을 추슬렀 습니다. 주님께서 추방을 당한 후에도 다시 튀르키예로 들어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강하게 주셨습니다. 이미 추방 명령의 도장이 찍힌 제 여권을 가지고 다시 터키로 입국을 시도하였습니다. 여권의 앞장에
‘추방명령‘이라는 글씨가 눈에 띄는 것이 당연할 것인데 입국수속 직원은 신기하게도 여권의 빈 면만 을 펴서 입국허가 도장을 찍어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입국 심사관의 눈을 순간적으로 가려주신 이 런 놀라운 과정을 통해 저와 제 가족이 다시 튀르키예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첫 재판 과정은 어떠했나요?
저는 튀르키예에서 추방되는 것과 동시에 법원에 기소가 되어있는 상태였습니다. 1996년 9월 총 3번의 재판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재판은 기독교 전파행위, 성경 배포 행위, 전도 행위에 대한 것이 었고, 2차 재판은 공항에서 있었던 체포 과정을 왜곡 해석하여, 명령 불복종이라는 것으로 저를 기 소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주변 선교사님들과 지인들께서는 많은 걱정을 하시며 중보 기도에 동참하셨고, 격려의 말씀을 전해오셨습니다. 저는 분명한 하나님의 계획안에 이 모든 일들이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재판에 임했습니다. 결국, 주님께서는 그 세 번의 재판에서 모두 승소하 게 하셨습니다. 그 동안 성경을 배포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공공연하게 불법처럼 여겨지던 당시 상 황에서 이런 승소의 소식은 정말 놀라운 결과였습니다. 튀르키예 헌법에는 엄연히 종교의 자유가 허 용되고 있었지만 실정법으로는 그것이 이름뿐인 법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았던 당시였기 때문입니 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도우셨던 하나의 큰 기적이었습니다.
첫 번째 체포 이후 다시 튀르키예에서 사역하시는 것에 두려움은 없으셨나요?
물론, 인간적인 두려움과 걱정이 있었습니다만 하나님께 담대한 마음을 구하면서 사역에 집중하 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1998년 8월 후원교회의 장로님, 그리고 그 아들과 함께 성경 1000여권을 배 포하는 3000Km 전도여행을 하였는데 성경을 나누어주고 숙소로 돌아가던 길에서 다시 경찰에 체 포되었습니다. 첫 번째 체포 후, 성경을 배포하는 것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튀르키 예 정부로부터 확인받은 상태였는데 다시 체포됐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와 동행했 던 두 분은 관광객 신분이었기 때문에 곧 석방되었고, 저 혼자 이스탄불로 이송되었습니다. 이스탄불 로 가는 동안 제 마음에는 사실 표현할 수 없는 착잡함이 밀려와서 참으로 괴로웠습니다. 이미 첫 번 째 체포를 통해 온갖 모욕과 구타를 당해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때 주님께서 제 머릿속에 히 브리서 12장 2절 말씀을 떠오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을 기억하자 곧 마음이 담대 해졌습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이스탄불에 도착하였는데 제 모든 혐의가 벗어지고 곧 석방되게 되었 습니다. 두 번의 체포를 통해 현지인 지도자들은 전도에 대한 부담과 열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 외국인 선교사도 우리 민족을 위해 저렇게 애쓰는데 우리는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일어나게 되었고 많은 튀르크인 형제들이 전도에 더욱 힘쓰는 결과가 있었습니다.
이슬람, 코란, 무함마드 모독죄로 기소되신 후, 긴 재판을 거쳐 최종 승소하셨는데 그 과정을 말
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1999년 튀르키예의 큰 지진으로 세계 각국에서 구호의 손길이 이어졌는데 그들의 대부분이 크 리스천들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튀르크인들 사이에서는 ‘우리의 형제라는 이슬람 단체 들은 정작 우리를 돕지 않는다’는 생각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슬람 세력의 약화를 우려 하던 한 방송국에서는 의도적으로 크리스천들을 공격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들은 개종자를 가장하여 저희의 교회로 잠입취재를 하였는데 저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이슬람교,
코란, 무함마드에 대해 질문을 하였습니다. 평소에 이와 같은 질문에 는 복음의 내용을 제시하고 직 접적인 언급은 피하는 것이 저희 방법이었는데 이날은 그들에게 있는 그대로 말하라는 마음을 하나 님께서 주셨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이슬람교와, 코란 등이 모순되고 거짓되었다고 전하였고, 그 모든 것이 카메라를 통해 촬영되어 튀르키예의 공중파를 통해 방송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슬람교, 코 란, 무함마드 모독죄로 기소가 되었고 살해의 위험, 출국 금지 명령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곧 저희 가 족은 이스탄불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몸을 피하였고, 다른 지역의 선교사님의 도움으로 안전하 게 튀르키예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한국에서 잠시 머무른 뒤 영국에서 사역을 시작 하였고 그 와중에도 튀르키예 정부와 3년이 넘는 긴 재판을 치러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7차에 걸친 재판 끝에 결국 무죄판결을 주셨고, 튀르키예에 입국이 금지되었던 모든 조취들을 해제시켜 주셨습 니다.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모두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때로는 당장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렵고 막막한 상황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늘 때에 따라 저와 가족을 지켜주셨고 또한 선교사역이 막히지 않도록 도우셨습니다.
여러 상황을 겪으시면서 가장 힘드셨던 점을 무엇이었나요?
세 차례의 체포와 추방 그리고 두 번의 재판. 그 길고 긴 시간동안 저를 가장 힘들게 하였던 건 주변에서 들려오는 부정적인 말이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제가 무모한 길을 걷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제 상황에 대한 설명조차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선교사역을 통해 선하게 좋 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지만, 사도행전 14장 19절과 고린도후서 4:23절-27절 등에서 보듯이 바울이 겪었던 고난과 같이 장애물이나 어려움에 부딪치는 것 또한 선교의 한 모습이라고 봅 니다. 이슬람권에서는 복음을 전하는 데 제한적이며 위험한 요소들이 많이 있어서 선교사가 존재하 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선교의 돌파구를 열어주신다 고 확신합니다. 불가능한 상황을 열어주시고 어려움을 이기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다는 것 입니다. 이러한 확신이 많은 사람들과 공감되지 못했던 상황이 저를 가장 힘들게 하였습니다. 긴 재 판의 과정을 거치면서 제 행동을 무모하고 지혜롭지 못하다고 비판하는 일부의 목소리에 때로는 마 음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개척선교부(GMP)의 대표 시절, ‘선교사 추방’에 대한 어떠한 대책을 갖고 계셨나요?
저희 선교단체는 선교사 추방과 같은 상황을 위해 ‘위기관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시 스템의 팀원들은 위기 상황에 처한 선교사들과 가족들을 육체적, 정신적, 영적 차원에서 돌보고 회 복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돌보는 일을 맡아 하고 있습니다. 선교사가 위급한 일을 당했을 경우, 선
교 현지와 신속하게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는 통신망을 구축하여 신속한 조취를 취할 수 있도 록 하고 있습니다.
선교사 추방에 대한 국내의 부정적 인식에 대해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가장 먼저, 선교사 추방 사건을 두고 섣불리 판단하거나 단정 짓는 태도가 매우 경솔하다는 말 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참새 한 마리도 팔리지 않는다는 성경의 말씀처럼 우리 앞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도 분명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선교의 역사가 긴 서양의 선교사들은 제가 처음 체포되었을 때,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이 나타내시는 뜻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 니다”라는 말을 가장 먼저 하였습니다. 사건에 대해 자신의 판단이나 의견을 유보한 채 하나님의 뜻 을 먼저 구하는 그들의 태도를 우리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교사 추방을 단지 선교사 개인의
문제나 잘못에서 비롯되는 것으로만 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안에 있는 선교사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주님께서는 김요한 선교사 가족의 고난을 통해 전방개척지역인 이슬람권에서 어떤 돌파를 주셨 나요?
- 주님께서 영국 내 쿠르드족 교회를 통해 그들이 당한 고난을 위로하게 하시다.
- 2. 주님께서 영국 내 쿠르드족 교회에서 북 사이프러스로 선교사를 파송하여 교회를 개척하게 하시다.
- 주님께서 쿠르드족 거주지역인 튀르키예 동부 지역에 전도자를 세워 전도하게 하시다.
- 4. 주님께서 튀르키예 동부지역에 복음의 놀라운 돌파를 주시다.
- 주님께서 튀르키예 신학교 학생들로 하여금 최초로 해외 전도를 실시하게 하시다.
- 6. 주님께서 튀르키예 내 이란인 신학교를 시작하게 하시다.
- 7. 주님께서 이란 내 이란인 가정교회 지도자를 위한 신학교를 시작하게 하시다.
- 8. 주님께서, 2023년 2월 6일(월) 발생한 튀르키예 지진이 발생하였는데 지진 지역에 선한목자신학원 졸업자 10명, 재학생 22명,
지진 외각지역에 선한목자신학원 졸업자 15명, 재학생 20명 졸업생 25명, 재학생 42명, 총 67명을 구호 사역에 사용하시면서 향후 전도와 교회 개척을 준비시키시다.
내부자중심 공동체1의 이해와 중간자로써 선교사의 역할 (힌두권 인도를 중심으로) / 박미진 선교사(PCK, 서남아시아 B국)
인도는 선교적으로 창의적 접근지역(Creative Access Area)으로 분류되며 미전도종족이(2,444 종족) 가장 많은 나라이다. 대략 3억 3천만 개의 신이 있으며 공용어 22개를 제외하고도 1,600개 이 상의 방언이 있다.2 인구는 약 14억 3천만 명으로 세계 1위이다.3
전방개척 선교의 지역적 환경으로 인도는 2023년 오픈도어선교회(Open Doors)의 보고서에 의 하면 세계 기독교 박해지수(World Watch List)가 11위이다.4 2014년 현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가 제14대 총리(Prime Minister)가 된 이래로 내년 2024년 되면 10년이 된다. 그가 이끄는 인 도 인민당(BJP)은 급진 힌두 민족주의적인 성향으로 소수 종교에 대해 압력과 박해가 이어지고 있 다. 따라서 인도 그리스도인들과 선교사들은 인도 선교에 대한 선교신학적인 새로운 방향성과 지속 가능한 선교 방안들이 모색될 필요가 있다. 특별히 인도 전방개척 선교의 신학적 방향성을 갖는 것 은 변화하는 세계 기독교 선교의 흐름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며 지속 가능한 선 교의 전략을 세우는 기초가 된다.
인도 기독교 역사는 예수 제자 중 한 명인 도마로부터 시작하는 전승이 있다. 그리고 인도의 사 회 문화 정치적 상황 안에서 토착 공동체의 형태로 성장한 다양한 내부자중심 공동체가 있다. 특별 히, 인도의 종교와 정치적인 상황은 인도 내부자중심 공동체 형성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영향으로는 반제국주의적인 반서구적인 경향과 오랫동안 이어온 계층과 카스트의 성향이다. 다 양한 내부자중심 공동체 간의 갈등 관계에 대한 이해와 이에 대한 신학적인 방향성을 갖는 것은 가 시적인 전방개척 선교의 성과를 추구하는 것으로부터 온전한 선교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 된다. 선교사는 동반자 선교의 관점에서 중간자의 역할로써 전방개척 선교에 방향성을 갖는다면 지속 가 능한 선교가 될 것이다. 중간자로의 선교사 역할은 현재의 자생적인 내부자중심 공동체의 성장이 더 성숙한 성장이 되기 위해 내부자중심 공동체를 이해하고 그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한 동반적인 관계 를 형성하는 것이다.
1 내부자중심 공동체는 인도의 종교적 사회적 문화적 상황 안에서 서구적인 기독교의 형식에서 벗어나 자생적으로 생겨난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이다.
2 https://all4upg.com/2020/06/07/top-10-country-india/, 접속일: 2023년 5월 24일. 3 https://namu.wiki/w/인도/인구, 접속일: 2023년 5월 24일.
4 https://www.christianitytoday.com/news/2023/january/christian-persecution-2023-open-doors-watch-list-kr.html, 접속일: 2023년 5월 24일.
Ⅰ. 전방개척 선교와 내부자중심 공동체
그동안 인도 선교의 전략적인 접근 중에는 복음이 전해지지 못한 지역이나 종족에게 토착교 회를 세우는 전방개척선교가 있다.5 전방개척 선교는 복음 전도에 다양한 전략을 통해 건강한 토 착교회를 세우는 것을 목표한다. 건강한 토착교회는 자전(Self-Evangelism/Mission), 자치(Self- Goverment), 자급(Self-Support) 나아가 자신학화(Self-Theologizing)를 할 수 있는 공동체를 의 미한다.6 따라서 미전도종족 선교는 전방개척 선교의 전략 중 하나이며 미전도종족 선교는 수많은 종족이 있는 인도 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전략이 된다. 그러나 인도 미전도 종족 선교에 대한 공유와 종족 입양에 대한 성과는 답보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방개척선교에 대한 노력은 2005년 전 방개척선교 네트워크(KFMN, Korea Frontier Mission Network)를 만들고 잡지(KJFM, Korean Journal of Frontier Mission)를 발행하며 정보를 공유하고 전문성을 고취하고 있다.7 한국선교 미 래 25년 개발 계획에 보면 2026-2030년에는 선교의 이양준비에 관한 논의와 새로운 선교이론, 선교 사의 전략적 배치와 은퇴선교사에 관한 계획이 있었다.8 이것을 위해 특별히 한국선교의 협의체로 써 KWMA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 있는가? 포괄적 자극제(inclusive stimulator)로써 KWMA의 역 할은 그 시대에 맞는 플랫폼을 개발 보급하는 것, 선교단체와 교단 선교부가 교류의 장을 만들고 상 호보완을 유도함으로써 지역교회의 선교 활성화9도 기대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2023년 KWMA의 선교대회는 변화하는 시대적 선교적 상황 속에서도 선교의 부르심과 보내심을 확인하 며 온전한 선교를 지속할 수 있는 전방개척의 선교신학적인 방향성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전방개척 선교사역의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하는가? 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현대 세계 기독교 선
교는 ‘변방의 선교’ 그리고 ‘토착 기독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선교사의 역할의 한계와 함께 대두되고 있는 것이라면 선교사가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그동안 전 방개척 선교는 전적인 선교사의 역할이 요구되는 선교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현대 기독교 세계 동향
에서 선교사의 역할은 점점 더 축소되고 있는 상황에서 선교사는 전방개척 선교에서의 선교사의 역 할은 무엇이며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 를 질문하게 된다. 이러한 질문은 선교사에게 위기인 동시에 과거와 현재의 선교방법을 통해 더 나은 미래 선교의 접근과 방법을 위해 반성과 더 많 은 연구를 요구하게 한다. 미래 선교를 위한 선교사의 역할은 지속 가능한 선교로써 온전한 선교를 위한 중간자의 역할이다. 이것을 위해 인도 내부자중심 공동체의 한계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5 강승삼, “전방개척 지향적 한국세계선교현황,” 「복음과 신학」 제12집, 2010, 244.
6 위의 글, 252.
7 위의 글, 242-243.
8 위의 글, 267.
9 강승삼, “한국교회 미전도종족 선교운동의 회고와 교회선교 활성화 방안연구,” 「신학지남」 제71(2)집, 2004, 174-176.
Ⅱ. 내부자중심 공동체의 한계
인도 선교 역사는 내부자중심 공동체로부터 시작되었다. 특히 시리안 공동체는 인도 기독교 역 사의 초기 공동체로 인도의 모든 기독교 공동체의 근원이라 보고 있다.10 다양한 인도 내부자중심 공동체들은 변화하는 인도의 종교 사회 정치 문화적 상황 가운데 성장하였다. 이러한 다양한 공동 체의 성장은 복음이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전파되며 역동적인 삶으로 변혁을 이 끌 수 있음을 보 여준 것이다. 그러나 다원화된 사회에서 계층과 카스트에 따라 성장한 내부자 중심 공동체들은 변 화하는 상황에서 한계들을 보여준다.
이 한계는 크게 세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급진적인 상황화11의 접근으로부터 점진적으 로 성경 중심의 해석에 접근해야 하는 동기나 도전을 받지 못하고 있다. 현재 힌두 민족주의와 개종 금지법이 강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인도 선교는 힌두 문화에 상황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접근일 수 있다. 그러나 급진적인 상황화는 힌두 종교를 믿으면서 복음의 특수성 즉, 구원과 죄 그리고 영생에 관한 성경 중심의 메시지가 힌두적인 해석으로 인해 윤회 사상을 갖거나 유일신에 대한 강한 믿음을 보이기 어렵게 된다. 둘째는 힌두 종교를 정치화하고 있는 인도의 상황에서 박해를 받는 기독교 내부 자중심 공동체는 공동체 간에 박해를 극복하기 위한 동반자 관계를 갖는 일에 소극적이다. 계층과 카스트에 따라 성장하는 내부자중심 공동체는 공동체 간의 배타성으로 인해 박해를 극복하기 위한 동력을 갖는 데 어려움이 있다. 내부자중심 공동체 간에 동반자 의식의 결여는 한 형제라는 형제애 를 회복하기 어려움이 있다. 셋째는 폐쇄적인 내부자중심 공동체는 계층과 카스트를 넘어 선교하는 데 소극적이다. 상층카스트의 공동체와 하층 카스트의 공동체는 서로 다른 특징과 성향을 가지고 있고 상호 배타적이다. 이들의 상호 배타적인 성향은 상호 긍정적인 측면을 평가하는데 소극적이며 수용적이지 못하다. 이러한 성향은 내부자중심 공동체 간에 계층과 카스트를 넘어 선교하는데 개방 적이지 못하게 한다.
이 세 가지의 한계는 미전도 종족 선교에도 같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별히 종족은 인도의 상 황에서 대부분 하층 카스트에 속해 있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과 카스트에 속한 영역에 있다. 다 양한 미전도 종족들은 자신의 종족 안에서 형성된 동질성을 유지하고 계승하기 원하며 다른 종족에 는 배타적이다. 이들이 복음화되는 과정은 이들의 동질성에 접근할 수 있는 내부자들에 의한 선교일
- Roger Hedlund, Christianity Made in India: From Apostle 표omas to Mother Teresa, Minneapolis, MN: Fortress Press, 2017, 12. 4세기에 바그다드와 예루살렘으로부터 대략 400명의 시리아 그리스도인 이주민들은 가나 도마의 지도로 이동하였다. 그들은 말라바(Malabar) 해안에 정착했다. Cranganur의 통치자 Cheraman Perumal는 도마와 지역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시리아인들에게 특권을 부여하였다. 그들은 국가의 후원을 받으며 명예로운 지위를 받았다. 초기 기독교 도마 공동체는 약 17,000명에서 16,850명의 브라민과 2,800명의 크샤뜨리야, 3,750명의 바이샤 그리고 4,250명의 수드라가 있 었다. 그들은 가족적인 공동체로 있었다. 브라민과 나야르 혈통이라 주장하는 가족들에게는 목사나 장로, 원로와 같은 권위가 있었다. S. G. Pothen, 표e Syrian Christians of Kerala, Bombay: Asia Publishing House, 1963, 22-23, 25.
- Raimondo Panikkar, 표e Unknown Christ of Hinduism: Towards An Ecumenical Christophany, Maryknoll, NY: Orbis, 1981, 92. 빠니까는 그 리스도인들이 말하는 원칙은 힌두교 중심에서 발견되었고 낯선 것이 아니라 세상에 모든 사람을 비추는 삶의 원리로 본다. 위의 글, 19-20.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다른 종족들 그리고 다른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들이 상호 동반자 관계로 받아
들이는 동일화는 이 세 가지의 한계를 극복하는 하나의 방안이 된다. 동반자 관계를 위한 하나의 접 촉점은 갖는 것은 선교사의 중간자 역할로 의미가 있으며 인도의 상황에서 동질성 선교와 함께 성육 신적 동일화의 선교적 자세를 강조하는 것(동질성과 동일화)이기도 하다. 미전도 종족 선교와 인도의 다양한 내부자중심 공동체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관련이 있다. 그것은 미전도 종족이 복음화되는 과정에는 내부자중심 공동체의 유형 중 하나의 유형에 속하게 되며 다른 공동체에 배타성을 갖게 되 기 때문이다.
Ⅲ. 내부자중심 공동체의 유형
다양한 내부자중심 공동체들은 계층과 카스트가 있는 사회에서 성장하였는데 서로 다른 유형 의 특징을 갖는다. 상층 카스트는 대부분 가시적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드러내지 않는 불가시 적 공동체의 유형이다. 가시적 공동체의 유형은 주로 하층 카스트를 중심으로 독립적인 토착 리더십 에 의해 성장하였다. 영 중심의 공동체 유형은 불가시적 가시적 공동체 사이에서 토착화나 상황화의 다양한 방법으로 성장하였다. 이들 공동체는 외부적인 정치 종교적 상황 속에서도 자신들의 계층과 카스트 안에서 한계를 극복하고 있으나 공동체 간에 배타성이라는 공통된 한계를 가지고 있다.
- 불가시적 공동체
힌두권의 내부자 운동(Insider Movement)은 20세기에 리차드(H. L. Richard)의 H 유형12으로 불가시적 공동체가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인도 선교역사는 이미 17세기 로베르토 드 노 빌리(Roberto de Nobili, 1577-1656)에 의해 불가시적 공동체가 정당화되었다. 즉, 그는 힌두의 정체
12 H 유형을 살펴보면 H1은 힌두들과 구별되며 인도 선교와 대부분 인도 교회가 이러한 형태를 보인다. 힌두들은 기독교를 외국의 종교로 여긴다. H2는 힌두의 문화적 관행을 따르고 개방적이다. 이들은 외국으로부터의 재정지원을 탐탁지 않게 여기면서도 종종 개의치 않는다. 미래의 지도자들은 서구식 신 학교와 성경 대학에서 훈련을 받고 있으므로 인도 현지 교회들은 대부분 H2에 속한다. H3 힌두들은 기독교를 수용하지만, 힌두교의 종교적 문화적 관행들 을 성경적 신앙과 실천으로 상황화하는 시도를 한다. 이들은 그리스도인들이 기피하는 힌두교의 용어들을 사용하고자 하며 인도 기독교 상황화 신학을 발 전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카스트는 제한된 범위에서 인정한다. 힌두 축제는 때때로 기념된다. 재정적으로 지원받는 것은 외국인에게서 온 것이라 여겨서 꺼린 다. 1920년대는 아쉬람 운동이 시도되었다. H4 힌두들은 예수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이지만 그들의 출생 공동체 안에서 힌두교 신자로 사회적 정체성을 유지 한다. 문화적으로 중립적이며 힌두 축제를 기념하고 사원은 가족과 관련된 의식을 위해 방문한다. H5 힌두교 신자들은 출생 공동체 안에서 예수 제자로 상 황화를 시도하며 사회적으로 힌두 정체성을 유지한다. 예수-박따(헌신자)라고 부르기도 하며 힌두교의 표현을 성경적 형식으 로 바꾸는 시도를 한다. 원주 민의 재정지원은 필수이며 힌두 축제는 기념되며 때로는 변형된다. H6유형은 힌두들과 같은 의식을 하며 같은 출생 공동체에서 개인적으로 전통적인 기독 교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연관은 없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예수를 따르는 자로 알려지지 않는다. 남인도 따밀 나두에서 예수를 따르는 힌두 제자로 교회 밖 그리스도인들이 이 형식에 속한다. H7은 여전히 출생 공동체에 남아 있으면서 개인적으로 예수에 대한 헌신은 비밀이다. 힌두 종교 생활에 참여하여도 기도는 예수나 하나님께 드린다. 그들을 힌두교 안에서 구별하고 평가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들은 항상 존재한다. H. L. Richard, “H-Scale for Hindu Contextualization,” EMQ , Vol. 40, No. 3, 2004, 316-320.
성을 가지고도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결정할 수 있다13고 주장하였다. 19세기 인도인 람 모한 로이
(Ram Mohan Roy, 1772-1833)는 힌두 그리스도인으로서 브라흐모 사마즈(Brahmo Samaj)14를 결 성하였고 후에 힌두교의 종교 생활을 개혁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더 많은 힌 두 그리스도인이 오늘날까지 불가시적 공동체의 형태로 있다는 것은 리차드의 H 유형을 통해 알 수 있다. H6 유형에 있는 따밀 공동체는 대부분이 하층 카스트의 불가시적 공동체로 있다. 허버트 호퍼 (Herbert Hoefer)에 의하면 이들은 교회 밖에 있는 개종자들로 신앙의 고백과 적극적인 믿음의 삶 을 시도한다.15 불가시적 공동체는 가시적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 은 그리스도를 믿으며 성경을 읽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도한다. 그러나 이들은 계층과 카스트에따 른 불가시적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가시적 공동체와도 단절되어 폐쇄적 공동체로 있으며 이중 정체 성을 지속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이들은 극단적인 상 황화에 고착됨으로써 힌두 철학적 사고에 수용적일 수 있으며 언제라도 유동적인 신앙의 표현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으로 성장하게 하는데 소극적일 수 있다.
- 가시적 공동체
서구 교단이 인도에 들어오기 전부터 외형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가시적인 공동체는 시리안 공동 체가 있다. 이 공동체는 기독교가 인도의 원시종교 중 하나라는 근거를 갖게 하고 있으며 다양한 인 도 기독교 공동체의 공통분모로 기독교 역사의 뿌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초기 인도 시리안 공 동체는 동시리아 교회(the Church in East Syria)의 전통과 인도 사회의 상층 카스트에 위치하면서 그들만의 집단성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집단성은 다른 하층 카스트의 기독교 공동체와 구별하게 하 였다.16 또 다른 가시적 공동체는 달릿 공동체가 있다. 인도 사회의 하층 카스트에 가시적인 성장을 보여준 달릿 공동체는 기독교 공동체의 분열과 차별 속에서 독립적인 성향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해 석하려 하였다. 즉 인도 사회 종교 안에서 그리고 기독교 공동체로부터 받은 차별은 인간 존엄의 측 면에서 저항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게 하였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차별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달릿의 삶을 투영함으로써 그들의 삶을 승화하려는 움직이 일어나게 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달릿 운동으로 표현되었다. 특히 달릿 신학은 달릿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약한 자들을 위한 신학으로 보편성을 갖는 것에 도전하고 있다.17 그러나 시리안 공동체와 달릿 공동체는 계층과 카스트의 동질
13 Richard DeSmet, “R. de Nobili a Forerunner of Hindu-Christian Dialogue,” Journal of Hindu-Christian Studies, Vol. 4, No. 2, 1991, 8.
14 브라흐모 사마즈는 서구 기독교를 알기 쉽게 해석하였다. 로이는 1814년 Atmaya Sabha, 1816년 Brahmaya Sabha, 1820년 Unitarian Church, 1828 년 Vedantist Society, 1830년 브라흐모 사마즈를 결성하였다. 그는 힌두교의 악습인 다신론, 카스트, 우상숭배, 남편이 죽은 후 함께 화장하는 관습인 사띠 (Sati), 일부다처, 조혼 등에 개혁 운동을 하였다. 진기영, 『인도 선교의 이해Ⅱ』, 84.
- Herbert Hoefer, Churchless Christianity, Pasadena, Calif.: William Carey Library, 2001, 47, 49-54, 62.
- Cyril Bruce Firth, An Introduction to Indian Church History, Dehli: ISPCK, 2011, 18-19, 29.
- Y. T. Vinayaraj, Dalit 표eology after Continental Philosophy Postcolonialism and Religions, Postcolonialism and Religions Series, New Delhi: Palgrave Macmillan, 2016, 112-113.
집단에 적용되고 있다. 가시적 공동체의 동질집단은 공동체 간의 배타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며 다른
공동체들과 형제애를 회복하기 위한 공동의 접점을 만드는 성육신적 동일화에 한계를 가지고 있다.
- 영 중심의 공동체
불가시적 공동체나 가시적 공동체 중에는 영 중심의 상황화나 토착화를 시도한 공동체가 있다. 영 중심의 상황화는 여러 방면에서 내부자중심 선교로 접근되었는데 영 개념의 상황화와 실천적 상 황화의 접근방법 등으로 접근하였다. 영 개념의 상황화는 인도 베다 철학의 영의 해석18에 접근하는 시도들이었고 실천적 상황화는 영적 회복을 통한 사회복지적 접근 차원의 시도였다.19 이러한 시도는 계층과 카스트에 따라 영적인 해석과 접근의 차이를 보인다. 엘리트 계층 카스트 중에는 베다 철학 의 영 개념에 접근하여 금욕주의적인 방법으로 적용하게 하였고 하층 카스트 중에는 초자연적인 영 적 체험을 신체적으로 반응하는 것에 적용하는 족속들이 있었다. 이들의 접근은 차이20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영적 세계에 대한 인도인들의 갈망은 계층과 카스트을 넘어 적용되고 있으며 영적인 삶이 현세와 내세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다.
세계 오순절 운동의 기원이 되는 묵띠미션은 영적 각성의 운동일 뿐 아니라 사회변혁에도 영향 을 미쳤다. 어린 소녀들에게 일어난 성령 임재 현상은 회개와 복음의 우선성을 갖게 했고 스스로 자 립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21 그리고 그리스도 그룹은 다양한 소그룹의 활동뿐 아니라 토착적인 형태 의 CPM(Church Planting Movements)이나 가정교회 등을 포함한다. 이들은 토착적인 형태로 영 적 사역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22 영 중심의 공동체는 인도 내부자중심선교의 관점에서 인도 신학의 기초가 되는 신학적 측면과 실천적 측면에 상호 도전을 주는 것에는 미흡한 점이 있으나 공통의 접 점을 만드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불가시적, 가시적, 영 중심의 공동체는 서로 다른 선교적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세 공동체는 공동체 간의 배타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선 교사는 외부자인 동시에 진정한 내부자가 되어 내부자중심 공동체 간의 갈등에 대한 선교적 방향성 을 가질 필요가 있다.
18 보이드는 인도가 영적 전통이 매우 강한 나라인 것을 강조하며 영의 개념을 적용한 첸치아의 성령에 대한 교리가 인도 기독교 신학의 초석이 될 수 있다
고 보았다. Atman(Spirit, Soul, Self), Paramatman(Supreme Spirit), Antarātman(Inner Spirit)의 영적 의미는 기독교와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외의 다른 단어는 일상적 관습처럼 자주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의 힘으로 표현되는 샥띠(Sakti)와 Antarātmin(Inner Ruler)이 있다. Robin Boyd, An Introduction to Indian Christian 표eology, Delhi: ISPCK, 2014, 241-245.
19 Allan Heaton Anderson, Spreading Fires: 표e Missionary Nature of Early Penteostal-ism, Maryknoll, NY: Orbis, 2007, 78.
20 영적인 접근으로 부족이나 하층 카스트의 공동체들은 초자연적으로 신체적인 반응을 하는 영적인 체험을 하지만 힌두교의 자기부정의 금욕주의적 인 브라민 전통에서는 이것과는 뚜렷한 대조를 보인다. Robert M. Torrance, 표e Spiritual Quest: Transcendence in Myth, Religion, and Science, Los Angeles, CA: University of California, 1994, 109.
- Shamsundar Manohar Adhav, Pandita Ramabai, Madras: CLS, 1979, 201-202.
- Devasagayam Ponraj, Church Planting Approach to Mission: Principles and Practices of Planting Churches in an Indian Rural Context, Tamil Nadu: Bethel Bible Institute, 1987, 99.
Ⅳ. 중간자로써 선교사의 역할
내부자가 주체가 되어 내부자중심 공동체 간의 갈등과 문화적 한계를 극복하고 더 성숙한 내부 자중심 선교가 되기 위해 선교사는 중간자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다양한 내부자중심 공 동체가 공동체 간에 성육신적 동일화의 관계가 회복되도록 선교사는 중간자의 다리역할로 전방개척 을 감당한다면 폐쇄적인 공동체의 한계를 극복하는 온전한 선교가 될 것이다. 결국, 중간자로써 선 교사의 역할 중 하나는 내부자중심 공동체 간에 동반자 관계가 형성될 수 있도록 공동의 접점을 갖 는 접촉점으로 그 방향성을 갖는 것이다. 이것은 선교사에게 지속적인 사역의 방향이 되며 전방개척 의 시작과 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추방의 위기 속에 중간자 역할
추방의 위기 가운데 있는 선교사는 외부적으로는 정치적 상황에 민감하며 내부적으로는 자신 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현 모디 정권이 지속하여 정권을 지속한다면 장기간 인도에 체류했던 선교사는 비자 문제에 대한 압박을 받는다. 그리고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도를 떠난 인 도 선교사는 정권 교체가 된 후, 정치적 상황이 좋아지기를 기대하거나 다른 선교지를 찾기도 한다. 몇몇 선교사는 장기간 한국에 체류하면서 인도 선교사로의 정체성을 갖기는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아직 인도에 남아 있는 선교사는 사업자 또는 고용자, 학생 비자로 있으면서 추방의 위협 가운데 불 안을 완전히 떨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선교사는 더 안정적인 비자를 갖기 원한다. 그러나 선교사 는 안정된 비자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가시적으로 자신의 사역을 드러내기는 어려움이 있다. 선교사 가 인도 선교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에 대한 질문은 하나님의 선교로 보내심을 받았는지에 대 한 본질적인 질문을 하게 한다. 그러나 이 질문은 선교사 자신이 과거와 현재 선교의 방법과 자세를 점검하고 미래 선교를 위한 지속적인 방향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교사는 내부자가 주체가 되는 선교로써 동반자 관점에서 중간자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에
있다. 선교사가 중간자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것는 ‘하나님이 부르시고 보내셨다’는 믿음과 정체 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 내부자중심 공동체 간의 동일화를 위한 중간자 역할
자립, 자전, 자치의 네비우스 정책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실현된 한국 기독교의 성과만큼이나 인도 내부자중심 선교는 기독교가 제국주의적인 종교라 인식되는 상황에서 복음이 계층과 스트에 전파되었던 것을 보여준 성과이다. 그리고 현 정부의 강한 민족주의의 상황에서는 교적 측면에서 내 부자중심 선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그러나 인도 정부의 기독교에 대한 강한 압박은 선교사나 내부자에게 복음전파에 대한 가시적 활동을 제한하게 한다. 그러므로 선교사는 전방개척 선교에 주
체가 아닌 중간자로써 그리고 내부자와 같은 관점에서 내부자 중심 선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역 할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선교사의 중간자의 역할은 내부자가 주체가 되는 선교가 더욱 온 전한 선교가 되도록 동반자의 관계를 갖는 것이며 공동체 간의 성육신적 동일화로 기독교에 대한 박 해와 정치적 차별을 극복하도록 하는 것이다.
첫째, 한국 선교사는 인도 내부자중심 선교의 성과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맘이 필요하다. 인도
교회는 토착교회의 역사와 그 사례가 있으며 그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감이 있으므로 중간자의 역할 은 내부자중심 선교의 성과에 대한 존중의 자세가 필요하다. 이것은 다양한 공동체 간의 배타성을 넘어 동반자의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내부자와 선교사의 선교적 자세이다. 특히 힌두권에서의 선교 사는 겸손의 자세를 바탕으로 한 인격과 사랑 그리고 열정이 필요하며 암묵적인 조력자가 되도록 해 야 한다.23 이러한 자세는 자발적인 동일화 즉 성육신적 동일화를 위한 자세를 내부자와 공유함으로 써 불가시적 공동체가 이중 정체성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으로 확장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역할 중 하나이다. 특별히 선교사는 보이는 성과에 대한 조급함에서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이것은 한국 교단과 교회의 관점에서 선교사의 중간자의 역할은 성과 없는 사역으로 보일 수 있으므로 동역의 관 점에서 소통과 이해가 요구된다.
둘째, 선교사는 내부자중심 공동체의 배타성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방향성을 가지 고 있을 필요가 있다. 급진 힌두 민족주의로부터 받는 기독교 박해는 내부자중심 공동체 간의 배타 성을 더욱 심화하게 한다. 그러므로 다양한 공동체가 동반자 관계를 갖는 방향성을 갖는 것은 내부 적 외부적인 압박으로부터 한계를 극복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내부자중심 공동체의 배타성 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성령론적 관점에서의 방향성이 필요하다. 모든 경계를 넘을 수 있는 능력을 주 시는 성령의 상황화 접근은 하나의 제안이 될 수 있다. 그 제안으로 샥띠(Shakti)는 금욕적인 영의 해석보다 역동적인 능력으로 해석되었고24 해방과 여성의 이미지25와 성령의 이미지26를 가지고 있다. 폴 히버트(Paul G. Hiebert)는 영적 세계에 관한 인도인들의 이해는 질병 치유(더운 성질을 가진 질 병과 차가운 성질을 가진 질병으로 구분)27뿐 아니라 불가시적 권세들에 관한 모든 영역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세속주의나 정령숭배에 관한 경계가 필요하다28고 지적한다. 곽야곱은 지역적인 관점에서
23 조범연, “힌두권에서 선교사들의 역할,” 김한성 엮음, 『한국 교회 힌구권 선교 40년』, 서울: 세움북스, 2022, 87-89.
24 샥띠의 개념에 대해 첸치아(Pandipeddi Chenchiah)는 힌두교의 수동적인 영의 개념에서 역동적인 측면을 강조하였다. Boyd, An Introduction to Indian Christian 표eology, 242-243.
25 라얀은 힌두교의 대중적인 관점에서 샥띠가 힘과 에너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과 성령(불, 숨)이 역사 속에서 변혁을 위한 행동을 이끄는 점을 연 관한다. Samuel Rayan, Breath of Fire-표e Holy Spirit: the Heart of the Christian Gospel, London: Geoffrey Chapman, 1979. 3.
26 샥띠와 성령의 연결점은 힘과 에너지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 여성적인 이미지로 나타나는 것 그리고 인도인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점이다. Veli- Matti Kärkkäinen, Spirit and Salvation: A Constructive Christian 표eology for the Pluralistic World, Vol. 4,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2016, 146-148.
27 Paul G. Hiebert, “배제된 중간 영역의 오류(표e Flaw of the Excluded Middle),” Ralph D.Winter and Steven C. Hawthorne eds., Perspectives on the World Christian Movement, 정옥배 외 3인 역, 『퍼스펙티브스 1: 성경적·역사적 관점』, 고양: 도서출판 예수전도단, 2011, 260.
28 위의 글, 267.
샥띠는 북인도에서 남성신에 비하여 일하지 않는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29 그러나 동반자
관계의 관점에서 샥띠는 성령의 접촉점으로써 계층과 카스트을 넘어 동일화30를 갖게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가능성은 성령을 접촉점으로 하는 상황화로 공동체 간의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방향이 될 수 있다. 복음의 상황화는 혼합주의의로부터 구분해야 하는 과정31이 있어야 하지만 상황화의 목적과 그 과정이 내부자중심 공동체로부터 합의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 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셋째, 내부자중심 공동체가 계층과 카스트를 넘어 선교할 수 있는 다양한 적용들이 시도되어야 한다. 미전도종족(Unreached People)의 개념이 선교전략으로 1974년 로잔대회로부터 거론되기 시 작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방개척 선교의 돌파구로 기대하는 것32은 인도에서 수많은 다양한 종족에 대한 복음전파의 과업을 달성하는 것이다. 특별히 내부자중심 선교의 관점에서 계층과 카스 트를 넘어 복음이 전해지는 내부자들의 이야기들이 미전도종족을 향하여 전달되고 회자 되는 것은 전방개척 선교의 출발과 과정에서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게 하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 된다. 또한, 선교사는 중간자의 역할로 이들의 이야기가 종족에게까지 전달될 수 있도록 기도와 미디어(유투브) 의 활용에 자극할 수 있다. 내부자들의 이야기는 그들 자신에게 기쁨과 소망을 갖게 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특별히 한국 교단이나 교회도 유투브 활용을 통해 선교 이야기나 복음의 메시지를 함 께 공유하는 것은 동반자 관계를 갖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33 다양한 방법으로 복음이 전달 되 도록 돕는 사역은 성령이 계층과 카스트를 넘어 지속적인 동반자 관계를 갖도록 하는 필수적인 사역 이 된다.
- 성령 중심의 복음주의적 에큐메니컬 신학으로의 중간자 역할
내부자중심 공동체 간에 그리고 중간자 역할로의 선교사는 성육신적 동일화의 자세와 성령 중 심의 복음주의적 에큐메니컬 신학의 방향성으로 미래 선교를 모색하는 할 수 있다. 이러한 선교신학 적인 적용은 불가시적 공동체에 보완되어야 할 복음주의적 관점과 가시적 공동체에 보완되어야 할 에큐메니컬 관점이 반영된 신학이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내부자중심 공동체 간에 공동의 접점을 갖 는 것은 영 개념의 이해로부터 성령론적인 접근으로 이끄는 것이 된다. 2005년 아테네 선교대회에서
29 곽야곱, “힌두권으로서의 인도 선교의 장벽과 과제”, 전방개척선교 (KJFM) 2020. 3-4(Vol. 87), 43.
30 2023년 1월 26일 인도 독립 기념일에 모디는 다양한 주 정부의 군사적 정치적 동일화를 위한 일치로써 샥띠를 강조하였다. https://www.hindustantimes.com//india-news/madeinindia-weapons-nari-shakti-dominate-republic-day-2023-parade-10-facts-101674715826562. html, 접속일: 2023년 4월 6일.
31 김경량, “‘내부자 운동’권 선교 분석과 평가”, 「전방개척선교, KJFM」 1-2(Vol. 98), 2022, 15.
32 정보애, “‘미전도 종족’권 선교 분석과 평가” 「전방개척선교, KJFM」 1-2(Vol. 98), 2022, 17.
33 하이 바이블은 어린이 선교를 위한 5분 유투브 영상을 매주 제작하고 있는데 여러 선교지의 언어로도 전달되고 있다. 인도는 힌디, 따밀, 오디샤의 세 언어가 제작되고 있다.
https://www.hibible.co.kr/, 접속일: 2023년 5월 25일.
채택된 ‘화해로의 선교‘(Mission as of Reconciliation) 문서 71항 중에는 제국주의를 경험한 지역과
구조적으로 폭력 아래 사는 곳에서 화해의 영성, 오순절의 영성, 고난과 부활의 영성을 강조하고 있다.34 중간자로 선교사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관점에서 내부자중심 공동체의 독립적인 선교의 방법
은 내부자중심 공동체가 재정적인 지원으로부터 자발적인 독립을 이끄는 데 도전이 된다. 선교사의 추방과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내부자중심 공동체는 인도 정부의 압박 속에서 기본적인 생존의 두 려움을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가정 공동체로부터 시작한 예배당 건축은 선교사에게 의존적인 상황 에 있다. 김위동 선교사는 가정 교인의 수가 증가하면서 예배당 건축에 대한 제안이 있을 때 현지교 회는 선교사에게 의존적으로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35 한편, 남성현은 선교사의 온정주의나 점진 적인 과정으로의 이양에 비판적인 성찰을 하였다.36 이러한 상황에서 성령 중심의 복음주의적 에큐 메니컬 신학은 내부자중심 공동체의 비자발적인 동기에 의한 급진적인 재정지원 중단이나 급진적인 이양이 아닌 내부자가 주체가 되어 성령의 힘과 능력을 믿고 의지하도록 하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
다. 김종성은 21세기 현대 선교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를 선교신학적 이유와 연관해서 정리하면
그것은 바로 복음주의적 에큐메니칼 성령운동이다.”37 라고 주장한다. 선교사의 중간자 역할은 성령 으로 접근하는 복음의 상황화를 통해 공동체 간의 배타성을 극복해야 하는 것과 온전한 선교신학적
인 방향성을 가지고 종교 사회 문화적 장벽을 넘어야 하는 과제에 함께 걸어가야 하는 동료요 친구 의 관계에 있다.
34 CWME, “화해의 사역인 선교,” 세계교회협의회 편, 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 김동선 역, 『통전적 선교를 위한 신학과 실천』, 서울: 대한기독 교서회, 2007, 184.
35 변창욱, 『선교지 예배당 건축 이야기』, 서울: 도서출판 케노시스, 2022, 119.
36 남성현, 『선교 이양의 이해』, 서울: 도서출판 케노시스, 2019, 466-467.
37 김종성, “21세기 현대 선교의 선교 신학적 이슈들(복음주의 선교, 에큐메니칼 선교, 통전적 선교, 오순절 선교)”, 전방개척선교 (KJFM) 2022, 11-
12(Vol. 103), 98.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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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서 서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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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서
CWME, “화해의 사역인 선교,” 세계교회협의회 편, 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 김동선 역, 『통전적 선교를 위한 신학과 실천』, 서울: 대한기독 교서회, 2007, 150-196.
Hiebert, Paul G. “배제된 중간 영역의 오류(표e Flaw of the Excluded Middle),” Ralph D. Winter and Steven C. Hawthorne eds., Perspectives on the World Christian Movement, 정옥배 외 3인 역, 『퍼스펙티브스 1: 성경적·역사적 관점』, 고양: 도서출판 예수전도단, 2011, 259-269.
논문
김종성, “21세기 현대 선교의 선교 신학적 이슈들(복음주의 선교, 에큐메니칼 선교, 통전적 선교, 오순절 선교)”, 전방개척선교 (KJFM) 2022, 11- 12(Vol. 103), 8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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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량, “‘내부자 운동’권 선교 분석과 평가”, 「전방개척선교, KJFM」 1-2(Vol. 98), 2022, 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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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불교권 선교의 성찰과 전망 / 손승호 선교사(울산경남세계선교협의회)
- 한국교회 불교권 선교의 비중(比重)과 복음화율
한국교회 선교역사를 보면 1912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조직되어 1913년 가을 김영훈, 사 병순, 박태로 목사를 산동성에 파송하여 불교권 선교를 시작한 것으로 치면 한국교회의 불교권 선교 역사는 100년도 넘은 셈이다.1 해방 후 1956년 최찬영 선교사를 처음으로 파송한 선교지도 불교의 나라 태국이었다. KWMA 강대흥 사무총장은 “한국 선교사의 59.4%는 아시아에 있고, 한국 선교 사가 사역하는 10대 국가 중에 9개 나라가 아시아에 있습니다. 아시아는 전통적으로 불교가 강한 지 역입니다”라고 분석하였다. 2022년 12월말 현재 한국교회는 169개국에 22,204명의 장기 선교사를 피송하였는데 그 중 60%는 13,200명인데 아무리 작게 잡아도 불교권에 파송된 선교사의 숫자는 적 어도 10,000명 이상에 해당한다. 이처럼 한국교회는 아시아지역 불교권 선교에 집중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9년 1월 태국 치앙마이에서 열렸던 제16차 SEANET2(South, East, And North Asia Network) 선교포럼에서 필자는 “표e Work of Protestant Korean Missionaries in 표ailand, Laos, Cambodia, Myanmar, and Vietnam”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다. 2018년 1년 동안 인도차이나반 도(혹은 대륙동남아시아) 5개국에서 사역하고 있는 한국선교사들의 숫자를 조사하였는데 4,000명 은 넘었다. 확실한 것은 5개국에 속한 소수 종족의 복음화는 높은 반면 주 종족인 타이족(97.5%), 라 오족(53.2%), 크메르족(97.6%), 버마족(68%), 비엣족 혹은 낀족(85.7%)의 복음화는 0.5%에도 한참 미치지 못할 만큼 복음화가 저조하다. 한국교회가 집중적으로 선교사를 파송한 아시아대륙 불교권 의 미미(微微)한 복음화율에 한국교회와 한국 선교사는 일정 부분 책임이 있지 않을까라고 조심스 럽게 질문해본다.
1 https://jangro.kr/2022/01/13/목사-중국-산동성山東省-래양萊陽선교의-시작/(2022.10.14. 접속)
2 South, East, And North Asia Network의 약어. 1999년 제1회 SEANET Mission Conference가 열린 이후 매년 1월 첫 주 태국 치앙마이에서 정기 선교포럼을 열고 있다.
- 2. 한국교회 불교권 선교의 성찰
필자는 불교권인 태국에 예장 장로교 교단 선교부와 초교파 국제선교단체 이중 소속으로 파송 되어 서구 선교사들과 동역하면서 그들로부터 선교를 배울 기회가 있었다. 조심스러운 판단이기는 하지만 필자의 경우 한국교회에서 파송된 선교사(교단 선교부, 자생 선교단체, 노회, 개교회 소속 혹 은 무소속으로 개인의 자격으로 선교지 도착)와 비교해볼 때 나름 체계적인 선교훈련을 받고 분명한 선교전략을 가지고 선교할 기회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만약 누군가가 필자에게 서구 선교단체 소속 선교사들과 한국선교사들을 단순하게 비교할 경우 한국선교사들의 부족한 부분을 언급해보라고 하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첫째, 한국선교사들은 기도편지 외에 선교사역에 대한 기록을 잘 남기지 않아 늦게 선교지에 도착하는 신임 선교사들이 참고할 자료가 많지 않다. 둘째, 같은 교단 혹은 선교 단체 소속 선교사들끼리도 팀사역을 하지 않고 각개 전투식으로 개개인이 독자적인 사역을 하기 때 문에 사역이 중복되는 경우가 많다. 셋째, 분명한 전략 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재정을 투입하여 사역 하는 경우가 다수이다. 선교사가 교회개척을 한다고 할 경우 땅과 건물 구입 혹은 예배당 건축, 사역 자 사례 등을 선교편지에 기록하여 후원교회에 재정을 요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넷째, 선교지의 독특한 불교, 선교지 문화와 현지인들의 특성, 선교전략 등을 연구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다섯째, 복 음을 전하거나 설교할 때 현지의 문화와 종교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여섯째, 선교지를 방문하는 교회나 팀이 많아 선교사가 선교에 집중하지 못하게 선교를 방해 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선교사들의 경우 선교지 방문자들을 통해 전도와 교회개척의 기회로 삼는 경우가 있음도 사실이다.
한국교회 불교권 선교 역사를 해방 이전부터 혹은 이후부터 계산하여 110년 혹은 67년이라고 할 때 3세대 혹은 2세대의 시간이 흘렀으므로 결코 짧은 세월은 아니다. 인도차이나반도(혹은 대륙 동남아시아) 5개국의 예를 들면 첫 한국선교사 입국을 보면 태국 1956년, 라오스는 1992년, 캄보디 아는 1993년, 미얀마는 1992년, 베트남은 1990년이었다. 현재 인도차이나반도 5개국에는 선교사를 파송한 국가별로 통계를 낸다면 한국선교사들의 숫자가 가장 많다. 이 지역에서 한국선교사가 선교 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 지역의 영혼 구원의 열매가 달라질 수도 있다고 볼 때 한국선교사의 존 재 자체는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필자는 앞에서 서구 선교단체 소속 선교사들과 한국선교사들을 비교하면서 한국선교사의 부족한 부분을 여섯 가지로 언급하였는데 지면의 제한으로 전략 부분 중 불교권 문화와 상황에 맞는 복음의 의사소통 부분을 살펴보고자 한다.
- 상좌부 불교권에서 복음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예
선교사가 선교지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신실하게 복음의 좋은 소식(Good News)을 전했
다 하더라도 알고 보면 우이독경(牛耳讀經), 즉 아무리 가르치고 일러도 잘 알아 듣지 못한다면 복 음을 전했던 선교사에게는 정말 짜증스러운 일이다. 그 이유는 의사소통의 부재 때문이다. 태국교회 에 1828년부터 개신교 선교가 진행되어 왔지만, 약 2세기 동안 이러한 현상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태국인들은 오랜 선교 역사에도 아직까지도 복음에 별로 영향을 받은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김순일 선교사는 표e un:fnished mission in 표ailand: 표e uncertain Christian impact on the Buddhist
heartland(『태국에서 끝나지 않은 선교: 불교도들의 심장부에 불확실한 기독교의 영향』) 라는 그의 책 제목을 통하여 태국이 오랜 개신교 역사 가운데서도 기독교 복음의 영향력이 태국인들에게 너무
미미함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라 느껴진다. 서양 선교사들이 전했던 복음은 너무나 이질적이어서 마 치 외계인이 전한 것으로 느껴졌고, 도무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생소한 내용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완 펫송크람(Wan Petsongkhram) 목사는 태국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리스도인들이 사 용하는 용어가 아니라 일반 사람들이 사용하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요한복음 3:16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존 데이비스(John Davis)는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3 예를 들어 어느 열정적인 젊은 선교사가 태국어로 요한복음 3장 16절을 정확하게 암기하여 불교도 이웃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가정해보자. 복음을 듣는 자의 입장에서는 이 해할 수 없는 의미의 단어를 나열한 것에 불과할 것이다. 불교인의 입장에서 요한복음 3장 16절을 들
어보면 이렇게 들린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문장에서 ‘하나님’(태국어로 prajao)
이라는 단어는 불교인의 우주관에서 태양, 달, 별, 왕족 중 한 사람, 불교 승려, 인도 신화에 나오는 신, 특별하게 거룩한 장소나 불상 등을 떠올린다. 이 모든 단어의 프라(pra)라는 접두어를 사용한다. 불교도는 그리스도인이 열정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불 교도의 세계관에는 그런 개념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격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이란 분이 누 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랑’한다고 한다면 불교에서 모든 고통의 원인이라고 믿는 갈애(渴愛)4 혹은 집착을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상태, 즉 붓다가 깨달음에 이르기 전의 단계에 있는 저급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불교도는 해탈에 이른 사람은 세상이나 사람을 사랑하거나 무엇에 집착하지 않는데 ‘어떻 게 그리스도인의 하나님은 아직도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고 무엇에 집착한단 말인가?’라는 의문을 가 지게 된다. 이러한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했는데 불교도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다 음에 나오는 “믿는 자마다”에서 믿음이라는 단어는 불교의 구원과는 반대이다. 상좌부불교에서 구 원은 누구나 무엇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다. 불교도들이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문장은 붓다가 마지 막 남긴 유언과 같다. “너는 누구도 의지하지 말고 오직 너 자신을 의지하라.” 그리고 마지막 부분인
3 John R. Davis, Poles Apart?(Bangkok, 표ailand: Kanok Bannasan-OMF Publishers, 1993), 9-11. 4 渴(목마를갈), 愛(사랑애). 범부(凡夫)가 오욕(五慾)에 탐착(貪着)함(네이버사전)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문장에서 영생은 그리스도인은 원할는지 몰라도 불교도는 원하지 않 는다. 불교도는 이생의 업보가 쌓여 끊임없이 태어나고 죽는 윤회에 들어가는 것이 영생이다. 불교 도는 윤회에서 벗어나 열반에 이르려는 것이 최종 목적인데 결코 영생을 원하지 않는다. 그 열정적인
젊은 선교사는 이 모든 사실을 깨닫는다면 효과적인 의사소통이란 선교사 입장에서 복음을 정확하 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듣는 자가 어떻게 그 메시지를 이해했느냐에 달려있다 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존 데이비스는 이렇게 제안한다. 불교는 세련된 철학적 체계를 가지고 있어서 복음을 객관적으로 의사소통할 권리를 얻기 전에 우리가 진지한 태도로 공부할 필요성이 있 는 것이라고 하였다.5 자등명 법등명
필자는 많은 불교도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그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 었다. 복음을 전한 후 “기독교 복음이 불교의 가르침과 달라서 마음이 불편하셨는가요?”라고 물으면 첫 번째 반응은 “괜찮다”(마이뻰라이, you’re welcome)는 말을 한다. 필자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모 든 종교는 사람들을 착하게 살라고 가르치지 않나요? 들어보니까 불교와 기독교는 가르침이 같습니
다”라는 두 번째 대답이다. 필자가 1시간 동안 복음을 전하며 복음을 듣는 사람에게 강조하고자 한 것은 불교는 무신론과 무아론이지만 기독교는 유신론과 유아론이라는 것이었는데 어떻게 같을 수 가 있는지 도무지 그들의 반응이 용납이 되지 않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필자가 전한 복음이 청자
에게 의사소통(커뮤니케이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복음이 왜 불교도들에게 의사소통되지 않을까?
그것은 청자의 의식, 세계관, 종교관이 불교의 문화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복음 전달자가 A라는 의 미로 의사소통해도 청자에게는 이미 마음과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Z라는 의미로 굴절되어 들 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사소통의 오류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복음 전달자가 잘 설명한다 고 해도 빠른 시간 안에 복음의 바른 내용을 전달한다거나 청자를 설득할 수는 없다. 이러한 이유로 사영리로 된 전도지 같은 이미 유신론으로 세계관이 형성된 서구식의 사고에 들어맞는 전도가 불교 권에서는 효과적이지 않다는 이유이다. 그러면 한국교회에서 불교권에 단기선교를 가서 현지인에게 복음을 전하니까 끝까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한다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태국의 경우 그것은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여 꺼리는 마음(태국어로 끄랭짜이)과 복음 전하는 상대 방의 체면이 손상되지 않도록 하려는 배려(태국어로 시아나) 때문에 청자가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어도 참고 있었을 뿐이다.6 불교와 기독교 교리가 너무 다른 것은 짧은 시간 해결할 수 없고 한 사 람을 접근하여 복음으로 변화를 시키려면 오랜 시간을 두고 장기간 접근하여 그들이 오해하는 것을 하나씩 풀어서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경우 복음의 내용을 변질시키지 않으면서도 상 황화된 방식으로 의사소통하는 것이 필요하다.
5 John R. Davis, Poles Apart? 9-11.
6 손승호, 『태국선교: 성령의 역사, 부흥으로』, (서울: 누가출판사, 2020), 109-110
- 구속적 유비를 통한 불교권에서 효과적인 복음의 의사소통
비욘드(Beyond) 선교부 소속 스티브 팔라토(Steve Parlato) 선교사는 불교도들에게 복음을 효 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상황화된 방식의 의사소통을 제안했는데 그것은 ‘C2C’(창조에서 그리스도 까지의 이야기)와 ‘예수님의 사성제’ 이다.
4-1) 창조에서 그리스도까지의 이야기(C2C: Creation to Christ)

C2C는 미국남침례교 국제선교위원회(IMB: International Mission Board, 이하 IMB) 선교사 들이 먼저 만들어 사용했던 전도법이다. 2006년경부터 중국에서 사역하고 있던 선교사들이 사용하 였고 그 이전에 인도차이나반도에서 사역하고 있던 IMB 소속 선교사들에 의해 사용되었다고 하나 정확한 시작은 알 수 없다. 전체 내용은 연대기적 성경 이야기(Chronological Bible Storytelling) 형 식으로 하나님의 창조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까지를 다루고 있다. 처음은 조잡한 형태로 사용하 다가 점점 발전되어 체계가 잡혔는데 인격신의 개념을 가지고 있는 이슬람권을 제외하고 불교권, 힌 두권, 공산권, 무신론, 정령숭배 배경의 영혼들을 전도할 때 효과적으로 쓰이고 있다. IMB에서는 불 교권에서 가장 열매가 많은 전도법으로 알려져 선교사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다.
C2C 개요

1.률아온양지이이기
2.조생:무리논때수닝을 를해하나닝때률이앙수 있디(요 14:6)
3.영접기도 ;용 10:9 10,요 1′.12
4.흥거히는싫:당신의가혹틀율 사랑하십니까?
C2C 개요는 다음과 같다. 내용은 하나님의 천지창조부터 그리스도의 부활까지를 다루고 있다.
전체 내용을 들려주는데 15-20분이 걸리며, 시간이 충분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상황에 맞는 부분들 을 골라 일부를 전할 수도 있다. 전체 내용은 여덟 부분으로 나눠져 있고, 구약과 신약에서 각 부분 에 해당되는 성경 구절을 사용하였다. 1부에서는 하나님은 오직 한 분, 가장 위대하시고 높으신 분,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국가나, 사람들보다 훨씬 더 크시고, 다른 신들(불, 태양신, 용 의 신) 보다도 더 크시고, 하나님의 능력은 금, 은, 나무로 만들어 섬기는 우상들 보다 더 크신 분임 을 강조한다. 2부에서는 하나님은 창조주, 모든 것을 말씀으로 지으시고, 하늘의 천사도 만드시고, 엿새 동안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마지막에 인간을 창조하셨다. 3부에서는 인간을 에덴동산에 두심, 성악과를 먹지 말도록 명령하심, 타락한 천사의 우두머리격인 사단이 인간을 유혹하는 장면, 인간 이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사실, 죄를 지음으로 영원한 죽음과 하나님과의 분리, 지 옥의 형벌을 받음. 4부에서는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시고, 동물 희생 제사를 제도를 허락하셨으나 인간을 하나님 과 화목하게 할 수 없었음. 5부에서는 하나님께서 인간과 관계 회복을 할 수 있는 길 을 주셨는데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였다. 예수님은 지혜로운 선생, 능력의 기적을 행하 심(풍랑을 잔잔하게, 귀신 들린 자 고치심, 오병이어 사건, 죽은 나사로 살리심), 완전하시고 죄가 없 으신 분. 6부에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피를 흘리심으로 하나님의 완전한 희생제물이 되 심, 그것은 대속의 죽음, 그 피를 통해 인간의 죄를 용서하심.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하심. 7부에서 는 탕자비유. 8부에서는 우리는 모두 집을 나갔던 작은 아들과 같음.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돌아 가고 싶은지 질문함, 상대방이 동의하면 예수님 영접 기도를 따라하게 함.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 것처럼 당신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도록 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훈련시킬 때 둘씩 짝을 지어 중요한 스토리들을 서로가 들려주면서 암기하도록 연습한다. 훈련 자는 피훈련생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대상의 필요를 채워주시도록, 하나님 께서 그 영혼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도한다. 훈련자는 자기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에 게 어떻게 C2C를 통하여 복음을 전달했는지 피훈련자에게 간증한다. 훈련자는 피훈련자가 가족, 친지,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한 주 동안 다섯 명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도전한다.
불교의 기초는 인본주의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악하지 않고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선해질 수 있다고 가르친다. 불교도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노력이다. 인간적인 힘과 능력을 통한 해방이 깨달음이요 해탈이다.7 불교는 인격적 하나님을 거부하는 대신 우주를 설명하는 배타적 원 리로서 업을 지지한다. 하나님과 업을 동일시한다.8 이러한 불교의 특성을 감안하여 C2C는 처음 시 작하면서 1부와 2부에 상당한 양을 할애하여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내용을 맨 먼저 강조한다. 하나
7 로잔위원회, “소승 불교의 복음화 방법”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선교국 편, 『불교권의 선교 신학과 방법』, (서울: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출판부, 1993), 71. 8 Ibid, 72.
님에 대한 인격신의 개념이 없는 불교도들에게 하나님의 존재,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를 전개함으로 하나님이라는 인격적인 신을 먼저 인식시키는 것에 집중한다. 프로테스탄트(개신교)를 기독교라고 함은 개신교의 초점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기독교의 목표는 영혼을 율법의 마침이 되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 에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이 그리스도에게만 있기 때문이다.9 그러므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할 때 종교로서의 기독교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인격적 만남(교제)을 하 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나님의 신적 계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서 절정에 달한다.10 C2C의 두 번째 초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맞추어져 있다. 인간의 죄로 하나님과 분리되었으나 하나님은 간절하게 인간과 관계 회복을 원하시는데 완전한 회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 능함을 이야기한다. 특히 예수께서 능력의 기적을 행하시는 분인데 풍랑을 잔잔하게 하신 사건을 통 해 예수님의 능력이 자연의 능력보다 큰 분임을 강조한다. 예수께서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심으로 마 귀보다 능력이 훨씬 크심을 강조한다.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는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임을 강조한다. 예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심으로 예수님의 능력은 죽음을 이기시는 분임을 강조한 다. 불교권에서 예수를 믿으면 가족, 친지 등의 비난을 두려워한다. 또한 그들이 믿는 불교는 원시적 인 민속신앙과 힌두교의 영향을 받아 귀신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여러 부분에서 예수님의 능력을 강 조함으로 모든 두려움을 이길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탕자 비유에서는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이 아버지께 돌아옴으로 아버지와의 관계가 회복되었듯이 인간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돌 아갈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복음을 영접한 영혼이 가족과 친구들을 사랑한다면 복음을 증 거하는 삶을 시작하도록 도전함으로 끝을 맺는다.
C2C는 지금까지 나온 전도 방법 중 불교권의 문화, 가치관, 종교 등에 비교적 잘 상황화된 것이 라 할 수 있다. IMB 선교사 중 한국 선교사들에게 불교권의 전도와 교회 개척을 훈련하는 K선교사 의 보고에 의하면 불교권에서 K선교사로부터 훈련받은 한 선교사가 V국에서 어떤 사람에게 사영리 를 사용한 전도는 실패하였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V국의 선교사는 C2C를 통한 전도훈련을 받은 후 동일한 사람에게 C2C 내용을 가지고 전도했을 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는 보고를 IMB 선 교사에게 하였다. 그리고 IMB 소속 K선교사는 불교권에서 많은 선교사들과 현지 그리스도인들을 훈련시킨 결과 현재로서는 C2C보다 더 효과적으로 열매를 많이 맺는 전도 방법은 없다고 증언하였다.
4-2) 예수님의 사성제
일묵 스님은 그의 책 『사성제: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에서 사성제가 바로 붓다의 본래 가르침 의 핵심이며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후 사십오 년간 제자들에게 설한 다양한 가르침은 모두 괴로움
- Ibid, 70.
- Ibid, 71.
과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를 다양하게 변주한 것이었다고 주장하였다.11
사성제(四聖諦, Four Noble Truths)는 고집멸도(苦集滅道)를 말한다. 고성제(苦聖諦)는 인생 의 삶이란 필연적으로 고통(苦痛)을 수반한다는 것으로서 고난의 원인에 대한 규명이다. 집성제(集 聖諦)는 괴로움이 발생하는 원인을 밝히는 진리인데 괴로움의 원인을 한자어로는 갈애(渴愛)인데 무엇에 집착하는 것이다. 세 종류의 갈애로 분류하는데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갈애(欲愛), 존재에 대 한 갈애(有愛),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無有愛)가 있다. 멸성제(滅聖諦)는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 는 길을 제시한 것이다. 괴로움의 원인인 무명(無明)과 갈애(渴愛)가 소멸되면 불교의 이상 세계인 열 반(涅槃)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도성제(道聖諦)는 괴로움의 원인을 어떻게 소멸시킬 수 있는지 에 대한 구체적인 수행방법인데 열반에 이르는 구체적인 방법은 바로 팔정도(八正道)이다.
불교권에 상황화된 복음 메시지인 예수님의 사성제 도구는 미얀마에서 개발된 것인데 불교 신자 였던 사람과 동료 외국인이 함께 복음의 의미에 대해 씨름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사성제가 만들어졌 다. 예수님의 사성제는 많은 관심을 끌었고 수많은 불교신자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왔다고 스티브 팔 라토는 증언하였다. 예수님의 사성제는 선교신학에서 복음의 번역 가능성(translatability)과 구속적 유비(redemptive analogy)와 관련된다. 라민 사네(Lamin Sanneh)12는 기독교 복음의 중요한 속성이
‘번역 가능성’임을 말하였다. 이것은 유대인의 메시아가 헬라인에게 그리스도로 전해지고, 또한 자신 들의 전통 속에서 참 지혜를 찾던 이들에게 로고스로 설명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13 구속적 유비란
하나님께서 이미 각 종족의 고유한 문화 속에 하나님의 구속의 진리를 전달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문화적 지식인 통찰력을 마련해 놓으심으로써 그들을 복음화시킬 만반의 준비를 미리 갖추어 놓으
셨다는 것이다.14 이 원리는 돈 리챠드슨(Don Richardson)의 『화해의 아이』(Peace Child)라는 책에
서 제안되었다. 돈 리챠드슨과 그의 아내 캐롤은 1962년 네덜란드령 뉴기니아(현재는 인도네시아영 토)의 이리안 자야(Irian Jaya)의 사위(Sawi)부족이 거주하는 마을로 들어갔다. 사위족은 적들의 머 리를 사냥하여 그 해골을 배게 삼아 자는 아주 호전적인 족속이었다. 그들에게는 선교사가 이해할
수 없고 선교의 큰 걸림돌이 되는 아주 독특한 세계관이 있었는데 그것은 “배반”이 그들 부족의 삶 의 이상으로 여기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가장 이상적인 살인과 배반의 방식은 오랜 시간 우정을 가장하여 적을 안심시켜 놓고 살해하는 것이었다. 즉 거짓으로 상대방과 친분을 쌓은 후에 배신하고 죽이는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세계관 때문에 예수님의 수난 사건을 이야기 했을 때, 그들은 가룟 유 다를 가장 위대한 영웅인 ‘투위 아소나이 만’(tuwi asonai man, 예기치 않게 잡아먹기 위해 한 인간 을 우정으로 살찌우는 것)15으로 인정하기에 이르렀고, 그들은 성경의 내용 중에 예수님을 파는 장면
11 일묵, 『사성제: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 (서울: 불광출판사, 2020), 5.
12 라민 싸네, 『선교신학의 이해』, 전재옥 역(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3).
13 https://krim.org/glossary/translatability/(2023.3.30. 접속)
14 돈 리차드슨, 『화해의 아이』, 김지찬 역(서울: 생명의 말씀사, 1987), 4.
15 Ibid, 210-212.
에서 환호하며 큰 관심을 보였다. 이처럼 어느 특정 타종교와 그 문화권 안에는 현지인들로 하여금
복음의 본질적 진리를 깨닫지 못하게 하고 곡해, 왜곡시키는 방해 요소, 곧 ‘복음의 광채를 가리우는 수건’ 같은 요소들이 있다. 하지만 리차드슨 선교사는 그들의 문화 안에서 하나의 접촉점을 발견하 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화해의 아이’(Peace Child)였다. ‘화해의 아이’란 두 종족 간에 충돌이 발생 했을 때, 두 종족에서 어린 아이 한명씩을 교환하는 것이다. 결국 화해의 아이를 통해 그들은 평화를 이루게 되며 화해의 아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두 종족간의 평화는 계속 유지되는 것이다. 리차드 슨 선교사는 이러한 ‘화해의 아이’를 복음을 전하는 선교의 접촉점으로 삼게 되었다. 결국 그는 ‘화 해의 아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증거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선교사는 선교지 문화 가운데 숨겨져 있는 구속적 유비를 발견해내야 한다. 그를 통해 성경의 구속적 진리를 전달할 때 보
다 효과적인 복음 전파가 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불교권에서 기독교 복음을 현지인들이 가장 효과 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그 지역의 불교와 그에 관련된 문화를 연구함으로 그 안에 있는 구속적 유비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복음 전파에 적극적으로 적용함으로 현지인 중심의 효과적인 복 음 전달을 할 수 있다. 하나님은 대부분의 타종교와 타문화속에도, 불교 안에도 구속의 유비를 만들 어 놓으심으로 그들을 효과적으로 복음화할 준비를미리 갖추어 놓으셨다. 예수님의 사성제는 불교 권 복음화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구속적 유비의 모범적인 사례에 속한다.
‘예수님의 사성제’는 불교의 사성제인 고제(苦諦), 집제(集諦), 멸제(滅諦), 도제(道諦)의 순서를 따라 설명한다. 첫째, 고제인데 인생의 삶은 고통으로 가득 차있다는 것을 크리스천도 동의한다는 것
이다. 창세기 초반부는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은 고통을 이야기할 정도로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도 동의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고통은 죄와 불순종, 창조주와의 깨어진 관계에서 온 것을 크리스천도 알 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집제인데 인간 내면에 육체의 악한 본성이 살아있는데 그것이 바로 욕망이
라는 것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일2:16)이라고 성 경이 말씀하는데 인간은 하나님과 분리된 후 욕망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셋째, 멸
제인데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열반은 불교도들은 고통이 없는 장소라고 이해한다. 그런데 복음 전 달자가 고통이 없는 장소는 천국 혹은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순간 의사소통의 오해가 생긴다. 왜 냐하면 불교에도 여러 단계의 천국이 이미 있다고 믿으므로 기독교 천국은 필요 없다고 오해한다. 따 라서 크리스천이 말하는 천국은 완전히 불교의 세계관 밖에 있는 것으로 죄와 업보와 그 결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말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복음은 죄와 업보로부터 해방해 주는 것인데 하나님 과 영원한 삶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해야 한다. 넷째, 도제는 괴로움의 원인을 소멸시킬 수 있 는 구체적인 수행방법인 팔정도(八正道)인데 불교도는 팔정도를 완전하게 수행하여 구원을 얻는 것
이라고 믿는다. 기독교 복음에는 한 길 즉, 예수님을 따르는 것만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는 말씀에서 인간이 공로를 쌓거나 무엇을 행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아버지께 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생명으로 가는 길과 문은
좁은데 그 문과 길은 팔정도를 실천함으로서가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오직 하나의 길이 있다는 것이다.
- 한국교회 불교권 선교의 최대 과제
불교권 선교의 최대 과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효과적인 복음의 의사소통이다. 불교권에서 복음 이 전해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복음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굴절되게 전달되어 청자가 복음을 바 르게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교사들과 현지 지도자들이 불교의 가르침 중 복음을 전달 할 수 있는 길(道)인 구속적 유비를 발견하여 선교 현장에서 적용해보고 좋은 열매가 있을 때 불교 권 선교지에 퍼뜨려 많은 영적 수확을 거둘 수 있는 실례를 만드는 것이다.
한국의 전방개척선교 역사와 사역적 고찰 / 정보애 선교사(UPMA선교회: 미전도종족선교연대)
오는 2026년은 한국교회가 해방 이후 첫 선교사를 파송한 지 70년이 되는 해이다. 6.25 전쟁
이 끝난 지 3년 만인 1956년에 한국교회는 최찬영 선교사를 태국으로 파송했다. 따라서 “아직 복 음이 전해지지 않은 지역에 새로운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함으로써 미전도 종족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선교적 접근 방식”으로서 전방개척선교의 역사적 회고는 지난 70년을 고찰해보는 것이 더 의 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은 한국교회의 선교가 본격화된 90년대부터 2023년 현재까지 30년 간의 전방개척선교 역사와 사역을 고찰하는 것으로 한정한다. 이유는 1988년의 선교한국, 1990년 KWMA(한국세계선교협의회)등 중요한 연합선교 운동체가 출현하면서부터 한국교회가 세계선교 운동 가운데 주요한 흐름이던 전방개척선교에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한국의 전방개척선교 역사와 사역을 고찰하려면 한국과 한국교회의 ’80년대 말, 90년대 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교와 직접적으로 관련해 대한민국이 일본으로부터 광복이 된 1945년 이후 1980년대까지 일반 자국민(自國民)의 여권 발급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해외 출국 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86년 아시안게임, ’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세계화의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88년 이후 해외여행을 전면적으로 자유화하면서 이때부터 한국교회와 한국 선교사들의 타 문화권 선교가 본격적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이처럼 여권 정책 변화와 교회 성장을 통해 선교 사명을 고취해가던 한국교회는 마침 필리핀에서 1989년 7월에 개최된 제2차 세계 로잔대 회를 통해 미전도종족(Unreached People)선교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 1. 90년대, AD 2,000운동과 미전도종족선교로 시작
1) 전방개척선교의 시작
제2차 로잔대회 후 기독교 21세기 운동이 시작되었는데, 이 운동의 비전은 ’서기 2000년까지 모 든 종족에게 교회를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A Church for every people and the Gospel for every person by 2000)‘전하자는 것이었다. 또한 이 운동의 활성화 방안으로 지역별 세계선교대회 개최 및
전 세계 미전도종족들을 위한 기도와 정보 자료 수집 및 공유를 통하여 남아있는 미전도종족을 복 음화하는 실천적 목표가 제안되었다. 마침 비서구권 출신으로 당시 제2차 로잔대회 총무로 섬기던 중국 화교 출신인 토마스 왕 목사,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 자란 루이스 부시 박사가 기독교 21세기 운동의 핵심 리더들이었는데, 이들은 한국교회의 부상에 주목하면서 세계선교 흐름에 한국교회를 동참시키려는 방안을 모색하던 중이었다. 회고해 보면 20세기를 마무리하면서 새로운 선교방식으로 세계선교를 도전하고 선교 사명을 고취하려던 기독교 21세기 운동이 마침 한국교회의 부흥과 함께 교계와 선교 지도자들과의 네트워크를 통하여 한국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한국에서 전방개척선교 개념을 확산시키고 전방개척 선교운동으로 대표적인 것은 우 선 ’선교한국‘을 들 수 있다. 1988년 서울신학대에서 제1회 선교한국대회를 개최한 ’선교한국‘은 현재 까지 청년 대학생 대상으로 매 2년마다 선교한국 대회를 지속해오고 있다. 또한 선교한국 대회는 한
국의 청년 대학생들을 세계선교에 동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세계선교의 주요한 흐름에 부응하여 세 계선교 동향과 방향을 한국의 미래 젊은 자원들과 선교 단체에 소개하는 통로 역할도 했다. 제2회 선교한국 1990년과 제 3회 1992년 선교한국 선교대회에서는 ‘미전도종족 개척선교’가 강조되면서, 기독 청년대학생들 사이에 미전도종족선교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서서히 확산하기 시작했다. 주 강 사로는 선교한국 선교대회에 미전도종족 선교를 기치로 내세운 랄프 윈터(Ralph D. Winter)박사와 10/40창 선교운동과 AD 2000 선교운동을 제안한 루이스 부시(Luis Bush)가 오면서 미전도종족선 교가 한국교회 선교운동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아 갔다. 구체적으로 선교한국의 시작과 발전 단계에 해당하는 1990년대부터 1998년까지 선교한국 대회가 선택한 주제어와 내용을 살펴보면 전방개척 선교 방향으로 얼마나 강조했는지 잘 알 수 있다(도표 1).
| 개최년도 | 주제 | 특징 |
| 1990년 | 미완성 과업을 향한
한국 청년 학생들의 도전 |
연합, 기도합주회, 미완성과업, 헌신자 양육 |
| 1992년 | 200년을 향한 한국 청년 학생들의 책임 | 전문화, 선교동원, 미전도종족 개념 |
| 1994년 | 모든 족속마다 교회를!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
국제화, 개척선교운동 도전 |
| 1996년 | 세계 복음화는 우리의 세대에!
우리의 손으로 |
미 복음화 지역에 대한 책임과 도전 |
| 1998년 | 21세기 선교를 향한 최후의 개척자들 | 21세기 남겨진 과업 초점 |
* 도표 1. 1990년~1998년 선교한국 대회 주제와 특징
사실 전방개척선교는 서구 선교계의 전통적인 선교방식에 대한 재고(再考)와 통찰(通察)로 1974년 랄프 윈터 박사가 로잔대회에서 ‘미전도종족(unreached people)’이라는 개념을 발표한 것에 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이후 1988년 제2차 로잔대회를 통해 더욱 강조되고 확산되었다. 당시 ‘종족과
미전도종족 선교’ 개념은 세계 복음화라는 지상 대명령을 이루는데 기존의 선교가 국가적인 지리적
경계를 넘어가는 것에 정체되어 있을 때, 한 국가 혹은 한 지역 사회와 한 도시 안에서도 다양한 문
화적 · 종교적 · 언어적 경계와 장벽을 넘어가야만 하는 선교적인 돌파의 필요를 제기하면서 ‘온 세상 (Whole World)’에 대한 선교적인 새로운 이해와 전략적인 선교의 중요성을 제고시키면서 대두된 것 이었다. 여기에는 종종 자원에 대한 접근이 제한된 지역이나 분쟁 지역과같이 어렵거나 위험한 상황 에서 사역하는 것이 포함되었다.
이 당시 한국에서 전방개척선교로서 미전도종족선교를 알리고 적극적으로 사역을 한 선교단체 는 한국선교연구원(KRIM), 한국미전도종족입양운동본부(KAAP, 현 UPMA: 미전도종족선교연 대), 기독교21세기운동본부, 횃불의 한국세계선교센터, 예수전도단, GT를 발행하는 Global Teen, 인터콥 등이다. 이 단체들은 당시 종족입양, 선교정탐, 종족정보 등의 사역 형태를 개발하여 지역교 회 및 선교단체들에게 보급하고 미전도종족 선교로의 전환을 위해 큰 노력을 했는데, 이를 통해 점 차 한국교회는 생소한 미전도종족 선교 개념을 이해하기 시작했으며, 종족을 입양한 이후의 미전도 종족 입양 가이드도 공유하기 시작하였다.
특별히 미전도종족선교가 교단 선교부까지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1993년 출범된 한국미전도종 족입양운동본부(KAAP)의 역할과 1995년 한국의 서울에서 개최되었던 GCOWE(세계복음화전
략회의, Global Consultation on World Evangleization, GCOWE‘ 95) )가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 대회의 주제는 기독교 21세기 운동 비전인 ’서기 2000년까지 모든 종족에게 교회를 모든 사람에 게 복음을(A Church for every people and the Gospel for every person by 2000)이었으며, 당시 교 단별로 미전도종족 입양 및 선교사의 전진배치, 재배치 문제가 중요한 주제로 대두되면서, 반향으로 특히 교단 소속의 전통적인 선교사들의 큰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필리핀, 아프리카와 중남미 등 이미
기독교 인구 비율이 비교적 높은 국가에서 선교하던 선교사들의 경우 한국 선교운동에서 더 소외되 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GCOWE’95서울대회 이후 ’96년도에는 한국교회 미전도종족선교대회가 11개 교단의 참여로 약 1,200여 명이 모여 개최가 되었으며, 다음 해 ’97년에는 목회자 초청 미전도종족선교대회가 서울
- 부산 · 경남에서 열리면서 미전도종족 전방개척선교를 확산시키게 된다. 이 당시에 미전도종족선교
에 가장 적극적인 선교단체는 횃불선교회(노봉린 박사 책임자), HOPE, 인터콥. GBT(성경 번역 선 교회) 등이었으며, 교단 선교부는 침례교단 선교부(중앙아시아), 합동 측, 통합 측 등 세 교단 선교부 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한편 지역교회로는 온누리교회, 사랑의교회, 부산 수영로교회 등 대형교 회 외에 거제 고현교회(고신측), 남구로교회(합동측), 인천 빛의 교회(합동측), 수원형제침례교회(침 례교단) 등 외 많은 지역교회들이 미전도종족입양선교에 동참했다.
2) 성과와 한계
초기 한국의 전방개척선교로서 미전도종족선교의 긍정적인 성과는 우선 종족입양을 통해 지역
교회가 미전도종족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제시하여 지역교회가 구체적으로 선교에 임 할 수 있도록 한 점이다. 선교하는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선교사 후원 또는 선교사를 위한 중보기도 를 선교라고 인식하고 있던 때에, 선교란 재정 지원과 기도 보다 훨씬 더 크고 복합적인 개념이자 실 제인 것을 종족입양 전략을 통해 선교의 전(全) 과정을 이해시킨 것이다. 또한 선교정탐을 통해 선교
지 여행 혹은 탐방 차원으로 진행되던 지역교회의 단기선교를 ‘선교지 리서치’로 한 단계 제고하는 역할을 했으며, 선교 정탐이라는 개념을 정착시킴으로써 단기선교의 새로운 영역을 구축한 것 등이 다. 한편 종족 정보에 있어서는 선교정보와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확산시키는데 크게 이 바지했다. 미전도 종족의 상태를 알리는 종족 프로파일을 개발하여 보급함으로써 미전도종족을 지 역교회에 알리고 기도하게 한 운동은 기존 패러다임에 큰 변화를 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미전도종족선교의 그림자로서 부정적인 평가 역시 종족입양에 관한 부분이 가장 많았다. 이유는 당시 ‘종족 입양을 한국 사회에서 자녀가 없는 부모들이 어린아이를 입양하는 것처 럼 미전도종족 어린이 입양으로 오해하거나 입양 자체에 대해 생소함과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미전도종족 입양이라는 미전도종족을 선택하고 책임 선교하는 중요한 전략 개념이 한 국에서 시작 단계에서부터 해석되는데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되고 말았다. 그뿐만 아니라 한 종족을 입양한다는 것은 선교의 대상이 너무 축소되는 것이라는 반작용이 선교에 동참하려는 한국의 지역교회들에게 작용하기도 했다. 대다수 한국교회들이 선교의 대상을 전 세계, 모든 민족과 열방으로 인식하고 있던 상황에서 선교의 대상이 갑자기 한 종족으로 좁혀지는 것은 세계선교를 향 한 자기 교회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부정적인 평가 중 가장 핵심은 선교의 중요한 축인 선교단체와 현지 선교사들과의 긴 밀한 협력체제가 구축되지 못한 채 교회 중심의 입양이란 것이었다. 물론 교회가 선교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전반적으로 현장 지향적으로 직접적인 선교를 수행하기에는 많은 제약이 있는 것이 사실이 기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선교단체의 역할이 중요했는데 이 부분이 간과되었다. 즉 미전도종족이 있
는 각 선교 현장을 연결하고 현장 중심적인 사역으로 이끌어줄 촉매자 · 중간자로서의 선교사와 선
교단체의 역할이 종족입양 선교에서 교회를 너무 강조함으로써 본의 아니게 배제되었던 것이다.
- 2. 2000년대, 위기 가운데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한 전방개척선교
1) 테러와 전쟁이라는 세계 선교환경의 급변으로 2천년대 시작
20세기 90년대에 기독교 21세기 운동으로 미전도종족선교의 기조를 타면서 시작되었던 한국교 회 선교운동, 특히 전방개척선교는 21세기에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되었다. 처음 시작은 2001년 9월 11 일 미국에서 일어난 테러였다. 911 테러는 이슬람 과격 단체 알카에다가 미국의 본토에서 감행한 것
으로 당시 사망자만 2,996명이 발생하고, 부상자도 25,000명 이상 속출하는 대참사였다. 이후 세계
선교환경은 이슬람 과격 단체와의 대(對)테러 전쟁이라는 장기적인 전쟁 국면으로 빠져들면서 한국 의 전방개척선교는 위기 대응으로 동분서주(東奔西走)해야 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즉시 빈 라 덴과 알카에다를 소탕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수행하였으며, 이어 대량살상 무기의 제조 및 보유를 문제로 삼아 2003년 3월에는 이라크 전쟁을 개시하였다.
또한 미국은 이라크 전쟁 명목으로 한국을 위시한 동맹국들에게 군대를 파병해 달라고 요청해 옴에 따라 한국도 이라크에 파병했는데 이라크 내(內) 저항 세력들의 테러와 민간인 납치도 빈발하 던 가운데, 2004년 4월에는 한국 선교사 7명이 납치되었다가 풀려나는 사건이 일어났으며, 다시 일 본 · 영국 · 이스라엘인들도 납치되던 와중에 한국인으로 가나무역에서 일하던 김선일 씨 피살 사건 이 2004년 6월에 발생했다. 당시 이 사건은 한국의 9.11테러라고 불릴 정도로 교계, 선교계는 물론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3년 뒤 2007년 7월에는 한국의 선교 지형을 변화시키는 더 큰 사건이 터졌다. 곧 아프가니스탄 에서 분당 샘물교회 선교단원 23명이 탈레반 무장세력에 납치되고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씨가 살해
된 채 21명이 42일 만에 풀려난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이다. 이후 한국교회와 선교계는 이 사건으
로 말미암아 교계와 선교계 내외부적으로 ‘공격적인 해외선교’, ‘위험지역 선교논쟁’ 등 큰 폭풍 속에 서 위기 대응과 선교 반성, 통찰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또 2년 후인 2009년 3월에는 아라비아 반도에 위치한 예멘의 세이윤에서 대한민국 국적의관광 객들을 폭탄 테러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당시 한국인 일행 18명 중 4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을 당
했다. 이어 6월에는 다시 예멘에서 국제의료자원봉사단체인 ‘월드와이드 서비스(WS)’ 소속 한국인 여성 엄 모 씨를 비롯해 독일인 7명, 영국인 기술자 한 명 등 9명이 모두 주검으로 발견되어 다시 한
번 한국과 전 세계에 테러의 공포와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돌이켜보면 2천 년 대(代)가 시작된 첫 10년. 세계복음화 완성을 위한 목표를 설정하고 과업 달 성을 위해 서구교회와 비서구 교회가 함께 미전도종족을 선교하고자 했던 한국의 전방개척선교는 그 시작과 동원 단계를 지나 이제 각 선교 현장에서 선교사들에 의해 사역을 시작해야 하는 때에 한 국인, 한국 선교사들이 직접 테러의 대상이 되는 두려움과 공포로 인해 크게 위축되기 시작했다. 또 한 한국 사회 전체적으로 기독교 선교를 향해 각종 언론을 위시하여 정부의 신랄한 비판과 함께 교 계와 선교계 내부에서도 혼란, 갈등과 긴장 가운데 위기 대응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2) 다양한 전방개척 네트워크 사역을 통해 돌파 시도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 이후 한국 선교계는 당시 뜨거운 감자로 제기된 ‘‘선교의 중복투자 방지 및 남은 과업 완수’라는 과제를 해결하려고 전방개척 미전도종족선교 측면에서 KWMA를 중심으로 지난 ‘90년대의 미전도종족 개념 이해, 동원, 훈련 등 운동적 측면에 두었던 강
조점을 선교현장 선교사와 선교단체의 사역 등 전략적인 측면으로 돌파해나가기 시작했다.
우선 2003년 미전도종족 10주년에는 국가별, 사역별 중복투자를 방지하기 위한 전략적 분담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카스(CAS)를 UPMA(미전도종족선교연대)에서 주창하게 된다. 당시의 CAS 는 영어의 Comity, Adoption, Specialization의 첫 글자를 따라 만든 것으로 Comity는 지역 분할이 라는 예의와 양보 정신으로 선교하는 것이며, Adoption은 책임 분담이라는 의미로 Adopt-A-People 의 뜻을 포함하고, Specialization은 선교 사역 기능을 은사별, 능력별로 전문화하여 분담 선교하자 는 의미로 2000년에 KWMA NCOWE(National Consultation on World Evangelization)Ⅲ에서 선교사 중복투자에 대한 논의 이후 연속적인 관점에서 제시된 전략이다. 이후 CAS 전략은 한국교 회와 한국 선교사들이 전 세계적인 도시화 현상과 사람들의 이동이 가지고 온 미전도전방개척 선교 의 기회를 더 잘 선용하기 위하여 C는 City & people(도시와 종족의 관점으로 선교 현장을 바르게 이해하고), A는 Area(미전도 전방개척권역에 우선성을 두어 중복을 피하며), S는 Specialization(사 역 영역 전문화를 통한 선교역량 다변화를 추구)하는 연합 네트워크 선교전략으로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한편 2000년대 중반에 한국 선교계의 전방개척 미전도종족선교는 다양한 선교 주체들의 협력
이 강화되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2005년 2월에 KWMA에서 열린 전방개척선교세미나를 계기
로 해서 ‘한국전방개척선교네트워크(컴미션, 이재환 선교사 주도)’의 발족이며, 같은 해 10월에는 『전 방개척선교저널(KJFM: Korean Journal of Frontier Mission)』 첫 호가 발행되었다. 이 저널은 처음 에 미국의 『전방개척선교저널(IJFM: International Journal of Frontier Mission)』 자매지로 출발하 였다. 당시 『전방개척선교저널』은 미전도종족 입양교회였던 혜성교회(합동 측, 정명호 목사 시무)의 적극적인 참여 및 회의 주도와 섬김 등 동역으로 KWMA(한정국), UPMA(조명순, 정보애), GP선 교회(조용중), 인터콥(최바울), GO선교회(주누가, 김마가), 인사이더스(김요한), 프론티어스(이현수), MVP(탁요셉, 한수아), 컴미션(이재환) 등 미전도종족 선교를 강조하던 각 선교단체 대표들이 7~8년 간 장기적으로 2개월마다 한 번씩 정기적인 회의와 교류를 통해 전방개척선교 포럼과 세미나, 저널 발행 등으로 동역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전방개척선교저널(KJFM)』은 작년 2022년 1~2월 호를 통 해 전방개척선교 100호 발간 기념좌담회도 진행했다.
또한 이 당시 10/40창 안의 전방개척 권역을 한국교회와 현장을 연결하기 위한 일환으로 UPMA에서 KWMA와 함께 크게는 공산주의권/무슬림권/힌두권/불교권 등 종교별로 먼저 분류 한 뒤, 다시 유사문화권별로 12개로 전방개척지역을 권역화하는 작업을 거행하였다. 이것은 기존에 미션퍼스팩티브 훈련에 소개된 유사 권역 종족권(언어와 역사, 문화 등 공통 요소에 따라 종족을 구 분하는 것)과 특별히 2007년 이후에 패트릭 존스톤(Patrick Johnstone)과 에쓰네(Ethne)가 사용하 던 유사권역(Affinity Block)1의 용어와 개념을 검토한 후 한국교회가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권역
1 15개 유사권역(Affinity Block): 동아시아 권역, 남아시아 권역, 유라시안 권역, 라틴-카리브계 아메리칸 권역, 사하라 종속 아프리카 권역, 말레이 권역, 아랍 세계 권역,
용어와 개념으로 확정한 것이다. 그 후에는 12개 각 권역별 전방개척지도(지도 안에 해당권역에 속
한 국가, 주요 미전도종족 통계자료, 복음 박해 정도 지수표시)를 만들고 전국 교회에 배포하여 한국 교회와 선교사들을 계속해서 전방개척선교 방향으로 도전하였다.
2006년 한국교회와 단체에 소개된 12개 전방개척권역은 구체적으로 아래와 같다. 이후 12권역 은 2010년 후반에 더 수정 보완되는데, 아래 (8) 카스피해권을 대신하여 현장에서의 실제 사역과 네 트워크를 위하여 투르크권역(튀르키예 중심)으로 대체되었다.
(1) 중국내지권역(영하후이족자치구/섬서성/감숙성/귀주성/사천성/호남성/호북성)
(2) 중국변방권역(내몽고자치구/신강위구르자치구/티베트-서장자치구/운남성)
(3) 서남아무슬림권역(북인도무슬림/방글라데시/파키스탄)
(4) 힌두권역(인도/네팔)
(5) 동남아무슬림권역(말레이시아/부르나이/인도네시아)
(6) 인도차이나권역(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태국/베트남)
(7) 중앙아시아권역(우즈베키스탄/키르기즈스탄/카자흐스탄)
(8) 카스피해(카프카즈)권역(투르크메니스탄/아제르바이잔/그루지야/다게스탄/체첸), 후에 튀르 키예 중심의 튀르크권역으로 대체(국가도 조정됨)
(9) 페르시아권역(이란/아프가니스탄/타지키스탄)
(10) 아라비아반도권역(사우디아라비아/바레인/쿠웨이트/오만/카타르/아랍에미리트/예멘)
(11) 레반트권역(이스라엘/팔레스타인/요르단/레바논/시리아/이라크/이집트)
(12) 북아프리카 마그레브권역(리비아/모로코/모리타니아/알제리/튀니지)
끝으로 2000년대 한국의 전방개척선교 사역에서 미전도종족선교 부분에서 남은 과업 완수 운 동이라는 FTT(Finishing the Task)를 간략하게 살펴보려 한다. 이 운동은 암스테르담 2000 대회 에서 71번 테이블에 함께 모였던 선교전략 코디네이터들이 ‘어떻게 해야 남아있는 미전도종족에게 다가갈 수 있는가를 고민하면서 2004년 가을에 다시 테이블 71에 참가했던 이들이 FTT라는 이름 으로 미전도종족선교운동을 계속 이어가기로 한 것에서 시작된다. 요약하면 이 운동은 교회개척단 이 파견되기 전의 미전도종족을 UUPG(Unengaged Unreached People Group), 곧 미접촉종족 혹 은 미개척종족이라 정의하면서 이들 내에 교회를 개척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그 첫 목표로 10만 이상의 인구를 가진 639종족이라는 가시화된 종족 집단을 제시하고 교회와 더불어 할 수 있 는 여러 전략을 개발하였다. 한국에서는 2006년 한국 FTT 코디네이터로 강대흥(GMS), 권성찬 (GBT), 신방현(통합), 한정국(KWMA), 한철호(선교한국)선교사가 선임되어 활동했지만 오래 지속 되지는 못했다.
3) 평가
종합적으로 2000년대를 전방개척선교 측면에서 회고하고 평가해보겠다. 우선 청년 선교한국 운 동을 주도한 선교한국, 교단(교회)협의체였던 KWMA, 미전도종족선교운동을 해오던 UPMA(미 전도종족선교연대)라는 연합단체들의 협력, 또한 전방개척선교를 표방하고 탄생했던 당시 한국 자 생 선교단체들의 약진(인터콥, MVP, 컴미션, GO 등), 기존 해외에서 태동하여 한국에 들어온 전문 선교단체들의 미전도종족 전방개척선교(GBT, OMF, WEC, 한국 프론티어스) 등으로 2000년대 중반까지는 한국의 미전도종족 전방개척선교가 활성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별히 사회주의 공산 주의 체제에서 개방이 된 중국, 중앙아시아, 몽골 등에서 한국 선교사들의 제자훈련, 지도자훈련, 교 회 개척 사역이 두드러진 성과와 열매로 나타났던 시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이 시기 전방개척선교 사역을 고찰해보면 2007년 7월에 발생한 ‘아
프가니스탄 피랍사건’ 사건을 계기로 한국교회의 전방개척선교 사역, 특히 전방개척 지역으로의 단 기선교는 완전히 퇴조되어 버렸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이후 한국교회에 단기선교와 단기봉사 용어 논쟁, 위험지역 선교가 아닌 추수 지역으로의 선교 방향 전환 등 한국교회의 전방개척선교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별히 이슬람교 권역 선교 현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선교사 훈련, 파송, 배치, 현장 사역에 많은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또한 2001년 9·11사태 이후 중앙아, 중동, 아랍 등에서 선교사 입국을 더 제한하는 상황으로 이 시기 NGO 사역과 비즈니스 사역이 대두된다. 이에 따라 2000년대 중 후반 들어 선교단체는 물론 이고 교단 선교부도 미전도종족 전방개척선교 전략의 일환으로 NGO 선교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선 교단체의 경우에는 기아대책선교회, 오병이어선교회 외에도 최전방 개척 사역을 표방하던 인터콥선 교회의 경우에도 전문인선교협력단이라는 NGO 단체를 설립할 정도였는데, 당시 한국 선교사들은 의료선교, 교육선교, IT선교, 문화와 스포츠 선교, 농업 선교, 복지사업 등 모든 영역을 개발하여 총 체적 선교로서 전방개척 미전도종족 선교 접근을 강화해 나가기 시작했다.
- 2010년대, NGO, 종교권별/권역별 전방개척 네트워크와 훈련
1) 2010년대 특성: NGO 사역과 프로젝트로 전환
위에서 NGO 사역을 잠깐 언급했는데, 중동 아랍, 힌두교권 등에서의 더 강화된 선교사 비자 제 한의 어려움은 2010년대 들어 더욱더 총체적 선교와 선교적 돌파로서 NGO 단체를 설립해야 할 필 요를 가중시키며 이젠 선교 단체들뿐 아니라 지역교회들도 대거 이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이를테면 더 멋진 세상(온누리교회), 프렌즈(오륜교회), 굿피플(여의도순복음교회), 사랑 광주리(사랑의교회) 등이다. 문제는 이 시대에 한국에서 수많은 중소 기관과 단체들도 NGO 기관으로 등록을 하면서,
한국의 전방개척미전도종족 선교에 있어서도 추수 지역에서처럼 외형적 사역과 비교해 구원받은 현 지인, 전도자나 목회자 등 영적 지도자들이 양성되지 않거나 현지 교회개척과 전혀 상관이 없는 프 로젝트들이 대거 시행되면서 NGO 선교의 허와 실, 동일 지역과 같은 대상에게로의 중복투자 현상 이 과열되는 폐단이 발생했다.
NG의 문제는 구제, 봉사, 교육 사업과 많은 프로젝트를 만들어 사역의 외형은 커졌지만, 실제로 구원받은 현지인은 별로 없고 현지 전도자, 사역자와 목회자 등 영적인 지도자가 제대로 양성되지 않 았다는 평가이다. 심지어 어떤 선교사들은 많은 물질을 투입하여 프로젝트를 만들어 놓고 자기 성 (成)을 쌓고 현지인에게 군림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눈에 띄어 영원한 복음이냐? 온전한 복음이냐? 라는 논쟁으로 한국의 미전도종족 전방개척선교에 핫 이슈로 제기가 되었다. 이는 현상과 본질에 입 각한 실제적 논쟁으로 한국선교가 더욱더 실천과 원리, 원리와 실천적 측면에서 해답을 찾아가야만 하는 중요한 과제이다.
2) 각 종교권/지역/권역별 전방개척 선교 현장 사역을 위한 네트워크와 훈련
이제 다시 화제를 전환하여 한국교회와 미전도종족전방개척선교 현장간의 권역별 네트워크와 활성화 측면에서 살펴보면, 먼저 2010년 8월에 ‘이슬람파트너십’이 이슬람 선교를 위한 연합과 전문 성을 제고하고 무슬림 선교 전략을 개발하기 위해 초 교파 선교연합체로 출범하게 된다. ‘이슬람파트 너십’이 공식적으로 활동하기 전에 이미 한국에서 그 배경으로 1990년 한국에서 무슬림 선교 동원 을 위한 ‘선교 이슬람’이 태동되었고, 그 후 2003년 선교한국 주최로 열린 신반포교회에서의 ‘이슬람 포럼’과 2007년 7개 선교단체 대표의 모임으로 시작한 IRT(Islam Round Table) 등 일련의 모임을 통해 이슬람권 선교를 위한 연합 운동에 힘쓰고 있었다. 당시 ‘이슬람파트너십’ 실행위원은 인터서브 (정마태), GO(김마가), 프론티어스(이현수), 한국이슬람연구소(김아영), GMP(임태순), WEC(박경 남), GP(박종승) 등 이슬람권 현장 선교사들이었다.
2015년에 이르면 이슬람파트너십(IP·Islam Partnership)은 한국 내 26개 이슬람 선교단체들의 연합 활동으로 발전하던 가운데, 무슬림권에서의 현지 정착과 사역을 위해 필수적인 보안 및 안전 매 뉴얼 제작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무슬림권 현지 정착과 무슬림 친구 사귀기(Safety and Bonding)’라 는 주제로 4차례의 컨설테이션을 통해서 ‘무슬림권 S매뉴얼’을 제작 배포하였다. 이후 2016년 이슬람
파트너십은 『우리의 친구 무슬림』을 편역하여 ‘종교’가 아닌 ‘사람’으로서 무슬림들에게 다가가는 구 체적인 방법을 한국교회에 제공하기도 했다. 또한 2022년에는 데이비드 게리슨(David Garrison)의
『이슬람 세계에 부는 바람』 이라는 한국어판 도서를 발행하여 전세계 이슬람 세계에서 일어나는 하 나님의 역사를 알려주고 있다.
다시 전방개척 선교권역별/지역별 네트워크 사역에 초점을 두면, 2011년 3월에는 KWMA와 UPMA가 북아프리카선교대회를 개최하여 북아프리카에 대해 선교적인 관심을 고취시켰다. 이후
같은 해 4월에는 17개 선교단체가 참여한 아라비아반도네트워크(KAPN)가 발족되어 그 후 6년 동
안 매년 아라비아반도 기도의 밤과 아라비아반도 선교대회를 개최하여 전방개척권역 아라비아반도 에 선교적 돌파가 일어나도록 중보기도 했는데, 이는 당시 현장에 있던 서구 및 한국 선교사들과 연 합하여 사역을 진행한 것이다.
또 하나 전방개척선교 활성화와 관련해 중요한 훈련이 시작되었는데, 바로 이슬람교/불교/힌두 교/공산주의를 주 종교로 하는 12개 전방개척권역별 전방개척선교훈련이다. UPMA에서 주관하고 KWMA가 주최하여 2011년~2013년 3년간 매년 1회 진행하면서 다시 한국교회를 전방개척선교로 각 현장으로 도전하기 시작했다. 당시 훈련생들은 지역교회 담임목사, 해외선교위원회 위원, 선교사 후보생 및 관심자 등 다양했다. 주로 각 교단이나 단체의 권역별 이사 또는 관련자들이 훈련을 많이 받았다. 구체적으로 아래에 도표 2. 2011년도의 전방개척선교훈련학교 강의 주제와 강사를 통해 당 시 한국의 전방개척선교훈련에 함께 동역한 단체와 현장 출신 강사 선교사들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 도표 2. 2011년 전방개척선교훈련학교 강의 주제와 강사
3) 전방개척선교로서 한국의 미전도종족선교 20년 역사와 사역 정리 및 평가 대회 개최
한편 2012년, 2013년은 한국에서 미전도종족선교와 관련해서 대단히 의미 있는 해였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2007년 아프간 사태 이후 전방개척선교의 방향과 기조가 큰 위기를 겪게 되었을 뿐 아니라, 한국교회의 성장도 점점 더 정체되어 가고 있던 시기에 우선 2012년 국제 에쓰네(Ethne)대 회가 KWMA 주최로 10월 27~30일 서울에서 개최되면서 전방개척선교 방향과 미전도종족선교를
| 강의 주제 | 강사 | |
| 1주(8월 29일) | 세계선교 현황과 전방개척선교 | 한정국 선교사(KWMA 사무총장) |
| 2주(9월 5일) | 인도차이나권역 사역의 실제 및 전략 | 이용웅 선교사(GP선교회 한국대표, 태국선교사) |
| 3주(9월 19일) | 페르시아권역 사역의 실제 및 전략 | 허드슨 선교사(MVP선교회본부장, 이란선교사) |
| 4주(9월 26일) | 서남아무슬림권역 사역의 실제 및 전략 | 정마태 선교사(인터서브선교회대표, 파키스탄 선교사) |
| 5주(10월 10일) | 중앙아시아권역 사역의 실제 및 전략 | 이재경 선교사(침례교단 FMB 회장) |
| 6주(10월 17일) | 힌두권역 사역의 실제 및 전략 | 공숙자 선교사(감리교단 인도 선교사) |
| 7주(10월 24일) | 북아프리카 마그레브권역 사역의 실제 및 전략 | 안드레 선교사(GBT 튀니지선교사) |
| 8주(10월 31일) | 카스피해권역 사역의 실제 및 전략 | 이현수 선교사(한국 프론티어스 대표) |
| 9주(11월 7일) | 레반트권역 사역의 실제 및 전략 | 윤윤상 선교사(FMB선교회,시리아선교사) |
| 10주(11월 14일) | 중국내지/변방권역 사역의 실제 및 전략 | 유은식 목사(산돌교회, 티베트선교사) |
| 11주(11월 21일) | 동남아무슬림권역 사역의 실제 및 전략 | 김요한 선교사(인사이더스 대표, 인도네시아선교사) |
| 12주(11월 28일) | 아라비아반도권역 사역의 실제 및 전략 | 이정석 선교사(WEC선교회, 아랍에미리트 선교사) |
| 13주(12월 5일) | 미전도종족선교와 지역교회 | 정보애선교사(UPMA대표, 티베트선교사) |
| 14주(12월 12일) | 전방개척선교 선교리서치 및 동원 | UPMA리서치팀 |
| 15주(12월 19일) | 전방개척선교 선교리서치 및 동원 |
위한 전 세계적 연합과 협력의 중요성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서구 ,한국, 2/3세계 지도자들이
함께 모여서 세계 선교운동으로 미전도종족 기도운동, 관문도시를 통한 미전도종족선교 전략, 선교 단체와 지역교회의 구체적 협력 등이 심도 있게 논의되었다. 일 년 후 2013년에는 미전도종족선교연 대의 2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 미전도종족 선교 성과 · 과제 · 미래 협력”이라는 주제로 6월 11일~13
일, 3일 동안 이슬람권, 힌두권, 공산주의권, 불교권, 중남미 가톨릭권 등 15개 권역별로 각 선교 현
장의 선교사, 선교단체 및 교단 지도자, 지역교회 목회자와 선교위원, 선교관심자 등 300여 명이 모 여 실제 현장 사례와 권역별 현황, 과제를 공유하고 제안하는 선교포럼 시간을 가졌다. 이 두 대회 자 료는 각각 『한국의 미전도종족선교리서치』, 『미전도종족 한국 미전도종족선교 성과 · 과제 · 미래 협 력』이란 단행본으로 발행되었다.
이후 KWMA와 UPMA는 서남아무슬림권역에 속한 인도 · 방글라데시 · 파키스탄 선교의 현 황과 과제를 파악하고 실제적인 연합선교를 위해 2014년에 서울 사랑의교회에서 서남아선교대회를 개최하였다. 세 나라 현장 선교사 40명을 현지 인터뷰하고 사역 현황을 파악하여 공유했는데(『서남 아 무슬림권역 북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 종족과도시선교저널IMPAC, No. 29, 2014), 이 대회 에는 인도 · 방글라데시 · 파키스탄 선교현장에서 온 선교사들, 지역교회 해외선교 위원들, 각 선교단
체 대표 및 선교관심자 등이 참여하여 최대 무슬림권역에 대한 관심과 실제 협력을 논의하는 자리가 되었다.
끝으로 지난 2016년 12월~2020년까지 UPMA의 ’태국 중심의 인도차이나반도 선교현장 리서
치 프로젝트‘도 한국의 전방개척선교 사역이 25주년이 되는 해의 중요한 사안이어서 간략하게 다루 고 마무리하겠다. 이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이유는 현재 한국 선교사들이 가장 많이 파송된 권역이 바로 인도차이나 불교권역이기에, 한국 선교사들의 최대 사역지라는 의미에는 숫자상 규모가 중요 한 것이 아니라, 실제 이 시대의 선교적인 변화와 기회를 잘 선용하고 있는지, 또한 선교의 본질적 과 제와 실천에 있어서 더 올바른 방향으로 사역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현재 인 도차이나권역에서 전방개척과 관련된 주요 선교과제는 주류종족, 거점 도시와 지역, 계층별 복음화 이다. 이에 이 권역에 속한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베트남 등 모두 5개 국가 중 베트남을 제 외한 4개 국가를 3년 2개월간 총 49개 도시와 지역을 돌아다니며 현지교회지도자, 한국 선교사, 서 양 선교사들을 만나 이 권역의 필요와 과제, 협력할 부분을 심도 있게 파악했다. 이후 발생한 코로 나로 인해 비록 인도차이나선교대회는 개최하지 못했지만, 대신 선교현장 정보 연구서 『태국 중심의 인도차이나반도권역 선교현장 리서치』 단행본을 발행하여 지역교회와 각 신학교 도산관, 교단 선교 부 등에 배포하여 한국교회와 현장을 연결했다.
- 2020년대, 코로나와 세계 기독교 시대가 주는 의미 속에서 전방개척선교는?
지금 우리는 시간상으로 2023년 중반기를 지나고 있다 2020년대가 시작된 지난 2~3년 동안은 한국교회와 선교뿐 아니라 지구촌 교회 모두가 위기의 시간을 통과하는 중이다. 이 시기 특히 미전 도전방개척선교의 가장 주요한 사역은 코로나로 인한 전방개척선교 현장에 있는 선교사들의 멤버
케어와 위기관리 문제였다. 각 교단, 단체, 지역교회들 모두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
였다. 한국 선교사와 가족들의 생명의 위협 때문에 선교 현장에 에어앰뷸런스 대절을 비롯하여, 한 국으로의 철수 권고, 현지교회와 현지인들을 위한 생필품 전달과 긴급구호 사역 등 이는 전통적인 10/40창 지역으로 불리던 이슬람권/불교권/힌두교권 뿐 아니라 지구촌 전체가 전방개척선교지로 변 하여 매우 급박하게 여러 모양으로 여러 사역이 필요했다,
한편 코로나로 야기된 강제적인 선교 멈춤과 정지의 시간은 그동안 한국 선교사들의 주요한 3대 사역이던 교회개척, 지도자훈련, 제자훈련에 전면적인 점검과 재고를 요청하면서 선교사의 역할이 무엇인지 묻고 있다. 비록 위기가 한국교회와 선교사들의 선교를 재고하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더 본격적으로 코로나와 코로나 이후 이 시대 특별히 세계 기독교 시대를 맞이한 현재 한국교회와 선교사들은 우선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어떤 사역을 해왔는지를 비판적으로 성찰해보아야 할 것 이다. 이런 취지에서 이번 엔코위 대회가 시작되었기에 이 글은 지나간 이에 부응하기 위하여 30년의 한국의 전방개척선교 역사와 사역을 고찰해 볼 수 있도록 시대별 상황과 사역을 특성적으로 요약해 보았다.
개인적이긴 하지만 한국에 미전도종족선교가 소개되고 난 후 중국 한족과 조선족의 복음화 정 도와 비교해 중국의 티베트족들이 미 복음화된 채 그 땅에서 살고 있는 바로 불평등한 그 현실에 대 한 각성으로 티베트족 선교사로서의 부름에 순종했던 기억이 난다. 지난 30년 동안 미전도종족을 대상으로 혹은 전방개척 무슬림, 힌두, 불교권 혹은 난민, 이주민, 유학생 등 남아있는 미전도종족과 그들을 위해 각 현장에서 시행착오를 통해 현지인들을 제자 삼고 교회를 개척하고 있는 한국 선교 사들. 지금이야말로 각 전방개척 현장마다 한인 선교사들의 사역 시행착오와 실패, 선교적인 돌파의 사례를 정리하여 한국교회와 한국선교의 현재를 통해 새로운 미래를 잘 준비해야 할 때이다. 전방개 척선교는 늘 도전적이며 시행착오를 거칠 수 밖에 없지만, 우리의 자기 점검을 통해 약점과 강점을 더 인식하고, 진정한 연합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선교에 힘쓰는 한국교회와 선교사 들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한국전방개척선교에 대한 돌아봄과 제언 / 주누가 선교사(Global Operation)
- 한국전방개척선교 영역에서 칭찬을 받을만한 결과들은 많습니다.
첫째, 짧은 30여년 동안 220여 국가에 3만 명 이상의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무엇보다 전방개척 선교 대상국가 가운데 – 집단적 종교 공동체 사회를 이루어 선교접근제한지역이라 할 수 있는 이슬 람, 힌두, 불교 국가 중에도 우리 선교사가 없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둘째, 우리 선교사들은 맨 땅에 헤딩하듯 불타는 개척 정신으로 복음을 거부하는 선교접근제 한 지역에 매우 다양한 방법들을 창의적으로 개발하여 정착하였고, 또한 많은 플랫폼을 형성했습니다.
셋째, 각자 다양한 제자 양육 방식을 통해 수많은 (가정)교회들을 세웠습니다.
넷째, 한국교회의 선교 운동은 세계 복음화에 기여했고 서구 교회에 보람을, 비서구 교회에 큰 도전을 주었습니다.
이는 선교접근 불가능한 국가였던 우리나라를 위해 기도와 희생을 한 서구교회에게는 기쁨을 주었고, 식민지의 아픔과 전쟁의 폐허를 극복하고 세계선교의 선두주자로 나선 한국교회의 부흥은 현재 동일한 고통 가운데 있는 다수 세계(majority world)의 교회에게는 귀한 본보기가 되고 있습니 다. 그러므로 우리 한국교회는 세계교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전략적 가교 위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 현재 한국 전방개척선교 영역에서의 현실은 급격한 숫적 부흥을 이룬 후 현재 어려움을 겪 고 있는 한국교회의 침체와 같은 원인으로 전방개척선교 영역에서도 비슷한 패턴을 밟고 있는 듯 합니다.
- 한국선교계는 최근에 공동체적 핵심이슈를 전략화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전방개척 선교운
동을 약화시킨 원인 중의 하나로 보입니다. 돌이켜 보면, 80년대말과 90년대 초반 한국선교계는 전방 개척선교지역을 향한 한국교회 공동체적 비전을 설정했었습니다. 당시 목회자 중심의 선교의 틀을 깨는 전문인 선교운동으로 선교사라는 신분으로 들어갈 수 없는 지역을 향한 전방개척선교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거기에 서구에서 시작된 10/40창의 미전도종족을 전략적 목표로 집중한 것은 말 그
대로 전방개척 선교운동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에 따라 ‘미전도종 족 입양운동 본부’ 가 설치되었고,
선교를 하겠다는 교회마다 미전도종족 입양운동이 일어 났었습니다.
게다가 전방개척지를 향한 선교사재배치 운동! 또 교단을 중심으로 FTT(F inishing the Ta sk)운동을 통해 긴박성을 강조하며, 무엇보다 ‘비접촉미전도종 족’(Unengaged Unreach ed People Groups)에 더욱 초점을 맞추면서 전방개척선교운동을 가속화 시켰습니다. KWMA에서는 Target 2030, MT2020 등 10만 선교사 파송과 백만 전문인 사역자 파송을 위한 전략적 목표를 설정 했었 고, GCOWE, Ethne conference, ‘세계기도의 날’(Global Day Of Prayer) 등 세계선교대회가 국내 에서 개최하였으며 Vision 59을 비롯하여 여러 글로벌 선교운동체와 파트너십을 꾸준히 유지해왔습 니다. 거기에 필드에서 일어난 CPM, DMM, insider movement 등 급속히 교회를 확장시키는 전략 등에 대한 이슈를 가지고 세미나들도 수차례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15년 동안에는 한국선교계는 잠잠합니다.
한국 교회를 향한 개척선교지를 향한 어떤 이슈를 던지지 못한 듯합니다. 물론 외적인 요소로 인하여 사역적 환경이 변한 것도 원인이 됩니다. 911 이후에 김선일 형제의 순교, 아프칸에서의 피랍 사건, 중동에서의 ‘아랍의 봄’이 터지고, 이슬람 칼리프 국가(Islamic State)가 발흥하면서 선교의 벽 이 높은 험지라 할 수 있는 전방개척선교지에 대한 기피현상과 더불어, 공동체적 선교운동이나 전략 화의 부재로 인해 전방개척 선교는 국내에서 급격히 하향세로 돌아선 느낌이며, 지역교회는 추수지 역이라 할 수 있는 복음에 대해 열려있는 지역에 집중하는 상황입니다.
에딘버러 대학 역사학 교수 Andrew Walls는 ‘전방개척 선교 뿐 아니라 일반적인 선교의 활성화 가 일어나기 위해선 첫째, national mission movement, 둘째, 지역교회의 부흥으로 믿는 자들의 숫 적 증가! 이는 당연히 그 근간엔 성령운동으로 인한 하나님의 임재를 성도들이 느껴야 가능합니다.
셋째로는 선교단체들의 숫적 증가와 더불어 선교현장에서의 뚜렷한 실질적 열매를 보일 때 일어난 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연히 여기에 경제적 요인과 국제적 정치적 요인도 작용하기도 합니다. 1990대와 2000년대 반 까지를 돌아보면, 이런 흐름이 한국교회에 있었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좋은 인식을 바탕으로 믿는 자
의 급격한 증가와 더불어 ‘선교한국’을 중심으로 한 청년대학 선교운동이 불일 듯 일어났고, 국제단
체 뿐 아니라 국내 토착 선교단체들도 우후죽순처럼 새롭게 만들어졌고, 특히 몽골과 중국을 포함 하여 구소련에서 독립한 알타이 언어권 중앙아시아 튀르크 이슬람 국가들 안에서 일어난 선교 열매 는 전방개척선교에 더욱 박차를 가하도록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교회와 선교계에는 이런 세 영역에서의 움직임이 약화된 것이 분명합니다.
- 2. 그러나 본질적인 원인은 우리 내부에 있는 듯합니다.
외적으로 보면 전방개척지에서 그동안 풍성한 사역적 열매를 맺었습니다만, 부족하고 교정해야 할 부분도 적잖이 존재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기독교 왕국적(Chri stendom) 사역의 풍성한 열매에 비해 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흔한 실수는 성 령으로 일하지 아니하고, 자기 지식과 경험으로 일하는 것과 세상적 시스템 가지고 일하는 것에 익숙 한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성장하고 부흥했던 이유는 특히 눈물로 부르짖는 기도를 하나님이 긍휼이 여기셨기 때문이요, 침체와 쇠락을 경험한 본질적 원인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했기 때문이라 저는 생 각됩니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부침을 경험하는 과정이 선교 현장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일 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사역적 열매 가운데서도 하나님 나라가 부재하게 느껴지는 원인이 무엇인가 를 무엇보다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찾아 보아야할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권위 아래서 주님을 머리로 붙들고 사역을 했는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
교사역을 감당했지만 과연 주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고자 했는지? 우리 자신과 섬기는 민족의 죄와 허물 때문에 눈물로 기도했는지? 과연 우리가 주님께 드린 선교 현장에서의 삶과 그 사역적 열매가 주님이 받으실만한 합당하고 거룩한 열매이었는지?
선교 명령에 대한 큰 그림은 따랐지만 과정 과정 주님께 묻고 듣고 순종하는 일에 소홀히 하지는 않았는지? 살펴보아 주님으로부터 어디서 멀어지고 빗나갔는지를 발견하고 돌이켜야 할 것입니다.
만일 천국의 가치보다 사역에 치중하고, 성령의 힘과 지혜를 의지하기보다 우리의 힘과 자원들 (res our ces)을 의지하였다면, 열심으로 사역했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경건한 기도의 삶을 영위 하지 않았다면, 돌이켜 회개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주님을 머리로 붙잡지 않고 하는 열심 은 허망한 사역입니다.
선교사는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또 그리스도의 편지로서 하나님 나라의 거룩함과 아름다움 그
신성을 열방 가운데 드러내야할 책무를 가진 자임에도 불구하고 나라와 제사장의 부르심을 받은 자 의 근본적인 삶을 소홀히 했다면 -오래 전 선지자들이 그러했듯이- 굵은 베옷을 입고 가슴을 치며 주님 앞에 무릎 꿇고 부르짖어야할 것입니다. 돌이키면 살아나리라는 주님의 약속을 붙들고 회개해 야 할 것입니다.
- 한국 교회내에서 전방개척 선교운동이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1.복음의 생명력을 일깨우는 기도와 금식, 성령의 기름부음과 말씀으로 우리들의 심령을 기경하 는 본질적인 신앙 운동이 활성화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1) 한국교회에는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일에 참여코자 하는 자원자 그룹이 매우 감소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20년 30년 전에는 이런 자원자가 참 많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때는 ‘선교’ 라는 말만 들 어도 우리 마음을 설레게 하였고 ‘선교사’는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30년이 지나는 동안 이미 선교 현장의 사역을 경험한 많은 분들의 선교에 대한 인식은 냉소적인 면이 많습니다. ‘나도 해보니 별것 없더라, 선교사들의 삶에 실망이다’ 등이 이유입니다. 가데스바네아에 정탐이 가나안 정복에 대한 하 나 님 의 약속을 오히려 소멸시킨 것처럼 그렇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 내에 선교에 대한 열정은 식었
습니다. 그 무너진 터에서 다시 시작 하려면 교회 기저층의 잠자는 성도를 깨우는 성령의 기름부음 을 구하고 십자가 복음의 살리는 역사가 일어나도록 지역 교회내의 회개와 말씀 과 기도 운동은 전 방개척선교운동의 활성화를 위해 필수요소입니다.
(2) 우리 사역자들도 기도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역사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나는 코로나 팬 데
믹이 한창일 때에 이슬람 지역에서 사역하는 한 선교사의 매우 귀한 간증을 들었습니다. 이전엔 분 주히 무슬림들을 만나 돕고 복음을 전하였으나 열매가 거의 없었는데, 활동이 쉽지 않은 팬데믹 때 에 기도의 삶을 회복했고 주님께서 주시는 감동을 따라 몇몇 적은 수의 사람을 만나고 복음을 나누 었는데 그 열매가 훨씬 많았다는 것입니다. 선교 사역은 복음의 씨를 뿌리는 사역으로부터 시작됩니 다. 그런데 이 씨를 뿌리는 사역은 시 126편처럼 울며 눈물로 씨를 뿌리는 사역을 해야 합니다. 이것 은 기도가 우선 됨을 의미하지 않겠습니까! 기도로 섬기는 민족 가운데 죄가 씻겨지고 하나님의 나 라가 임하시도록 그들의 죄악과 불의를 나의 죄악으로 인정하고 울며 탄식하는 중보가 필요합니다.
- 거기에 따른 선교훈련의 변화도 필요합니다. 전방개척선교 사역을 위해 훈련도 마음을 다루 는 훈련을 통해 경건의 능력을 배양하고 주님과 친밀한 사귐 속에 동행하는 일상이 되게 하는 영적 훈련이 필요합니다.
선교의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도 필요하고, 정착을 위해 전문성 배양도 필요하지만 무엇
보다 마음을 다루는 기도와 말씀 훈련이 중요함은 갈수록 커질 것입니다.
- 선교동원에 대하여서도 의무적 사명을 강조하며 선교 헌신을 촉구하는 것도 해야겠지만, 근 본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함으로 기쁨으로 자원함으로 헌신하도록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즉,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했기에 온 힘을 다해 그 밭을 사려는 것처럼(마13), 보이지 않는 주 님의 영광을 보았기에 엘리야를 따랐던 엘리사처럼(왕하2), 나오미를 따르는 룻처럼(룻1), 한국교회 안에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자원하는 심령으로 이름 없이 빛도 없이라도 환난과 궁핍 속에라도(계2
서머나교회) 달려 들어가는 복음의 역동성을 일으켜야 할 것입니다.
- 4. 시대의 끝이 다가옴에 따라 선교의 장벽은 점점 높아질 것입니다. 복음에 적대적인 상황은 더 욱 심화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함을 좇아 담대히 선교의 장벽이 아무리 높다하여도 주님 의 명이라면 순종할 수 있는 성령의 기름부음이 넘치는 사역자들을 양성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역량과 노하우, 자원으로 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선교한다면 장차 시대의 끝에서 복음에 대한 반감과 저항이 총체적으로 커질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 뿐만 아니라 힌두권이든 이슬람권이든 불교권이든 집단종교체제에서 현장의 개종자들의 환 난과 핍박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고통들입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재정도움도, 위로의 말도 아닙니다. 그들이 당하는 환난의 중한 것이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으로 여겨지려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맛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만이 환난과 궁핍을 이길 힘입니다. 우리 사역자들에게 고난 받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초청할 수 있는 통로는 기도 외에 없습니다. 선 교사들은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부인과 십자가를 지는 삶, 그리고 고난의 신학은 더욱 더 강조 되어야 할 것입니다.
- 또한 선교계가 공동체적으로 전방개척 선교운동을 불일 듯 일으키는 전략과 전략적 목표를 세워야 할 것이다. CPM DMM을 강조하든지 기도 사역을 강조하든지 공동체적 이슈를 활성화해 야 한다.
지금처럼 단체별로도 그런 이슈가 없고 개인적으로 각개격파 하듯이 해선 아니 된다.
특히 육체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법칙을 거슬려 우리 자신들을 훨씬 능가하는 신적인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해야 한다.
- D. 나의 선교 사역을 돌아봅니다.
나는 1983년 이슬람 선교에 헌신하여 30여년 전인 1991년에 사역지로 떠났습니다. 돌이켜 보면 열심을 다하여 교회개척을 했지만 적잖은 실수 중에 본질적인 세 가지 잘못을 전합니다.
첫째, 나는 불의한 청지기와 같은 자였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의식하지 않고 내 사역을 일으키 고자 열심을 다해 무슬림들을 만나 복음을 전했습니다. 중앙아시아의 한 나라를 거쳐 사역지로 들 어갈 때마다 공항의 세관원들의 불의하고 악한 행태에 분노했었습니다. 자신의 나라가 욕을 먹을 줄 알면서도 개의치 아니하고 자신들의 주머니 채우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입을 열지 아니했지만 표정과 마음으로는 ‘이 썩을 놈의 나라, 이게 나라냐! 망하기에 합당한 나라이 지!’라는 욕을 잔뜩 했을 겁니다. 내가 그렇게 했습니다. 한번은 그리 욕하며 비행기 좌석에 앉는데
‘그게 바로 너다. 네가 바로 불의한 세관원 같은 자다!’ 라는 주님의 책망이 있었습니다. 그때, 한 가지 일이 떠올랐습니다. 오랜 기간 열심히 우리 팀원들의 복음을 들은 한 무슬림이 주님을 영접했다는 소
식에 너무 기뻤으나 그를 그가 사는 다른 가정교회로 인도했다는 말에 즐거운 마음이 사라졌던 일입 니다. 하나님 나라는 전혀 생각지 않고 내 사역을 키우려하는 불의한 청지기와(눅16) 다름없는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마음이 뚝 떨어지며 나의 사역의 동기, 내 마음 속의 꿍꿍이가 뭔지 발견하고 돌이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 나는 주님의 사랑으로 사역하지 않았습니다. 열심을 다해 무슬림들을 개종시키려 했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개종할만한 사람을 만나면 친구 삼고 힘을 다해 가르치고 도왔지만, 변화되지 않으 면 시간 낭비처럼 느끼며 그를 내쳐버리면서(?) 사역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형제가 신고하는 바람 에 추방도 당했습니다. 일흔 번에 일곱번이라도 용서하라는 주님의 명령은 무슨 뜻인가요? 변하지 않 는다는 의미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인데 나는 뒤늦게 선 교는 사랑으로 하는 것임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 기도로 주님을 구하기보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역을 성공적으로 이뤄내는 것을 주님 께 구했습니다. 나의 기도는 철저히 문제 해결과 사역적 목표를 이루는 것에 집중하였습니다. 나의 죄를 씻는 회개와 주의 얼굴을 마음으로 구하는 일을 소홀히 하였습니다. 내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하 고 형제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당연히 거룩한 삶과는 거리가 먼 경건의 모양만 있는 바리새인과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실제 내면의 죄와 동기를 다루는 기도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기도는 한참 지난 후에야 배우게 되었습니다. 진실로 우리의 만족은 사역적인 성공도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 로 인한 것도 아니라, 선물의 공급원이신 그 분의 임재로 인한 것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지오 공동체에게 임한 회개의 역사를 소개합니다.
서초동 본부에서 2012년 하나님의 인도로 공주로 전임 사역자 70명이 이주를 하였습니다. 출 애굽처럼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며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에 놀라고 놀라며 각 가정마다 서 울과 다른 대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공주 작은 도시로 터전을 옮겼습니다. 이러한 헌신을 주 님이 기뻐하실 줄 알았고 우리 단체는 번창할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기도와 말씀에 집중하는 틀 속에서 주님은 하나 님의 집에 심판이 먼저 임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리더들뿐만 아니라 모든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감추어진 죄와 허물을 폭로하심으로 회개의 역사가 임하여 울며 기 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거의 2년 이상 동원 사역은 중단되었고 선교사 파송도 늦추어 졌습니다. 그리고 세계선교를 위한 기도라 하지만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을 구하던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 그 동안 선교사들도 간사들도 떠났고 지부들은 문을 닫기도 했 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정결함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리고 8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린 다시금 처 음 사랑을 잃었음을 알고 다시금 주님께서 회복시켜 주시길 구하고 있습니다.
- 마치는 말
우리는 주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선교사역을 더 열심히 하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무엇을 하느 냐 보다도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길 주님이 원하시는가에 좀더 근본적인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입니
다. ‘거룩함이 없이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내가 온전하니 너희도 온전하라’는 주님의 명령은 농 담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해 봅시다. 형제(동역자)와 반목하고 경쟁하며 선교사역에 열심을 낸다면 하나님이 받으실 까요? 동역자에 대한 미움 시기가 있다면? 주님께 드는 손이 피 흘리는 손이고 음란하고 부정한 손이 라면 하나님이 받으실까요?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이 안 됩니다. 받지 않으실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뭔가 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것을 하고 있는지 헤 아리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우상이 가득했던 예루살렘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 수 없듯이 정결한 마음과 삶은 우리들의 사역에 절대적인 필요충분조건입니다. 훌륭한 종의 모습은 단순한 순 종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자연히 합당한 순종이 따라오게 마련이지요. 지금 한창 일 어나고 있는 아프리카 대륙의 나이지리아의 CAPRO, 카메룬의 Koume CMFI의 선교운동을 보면 기도와 금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구하며 하나님과의 친밀함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훈련을 전제로 파송합니다. 새로운 흐름과 독특한 자신학화를 주도함에 따른 핍박과 인내를 겪은 겸손한 지도자들이 활약하고 있습니다. 먼 저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우리가 변해야 합
니다. 다시 한국교회 및 선교계가 복음의 역동성을 얻기 위한 노력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을 사랑하도록, 또 이웃과 열방에 대해 자발적 복음 전파의 역동성이 생기도록 말씀 과 기도와 금식 으로 주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 F. 함께 기도하길 제안합니다.
- 회개기도
(1) 생수의 근원인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내 경험, 내 능력을 의지하여 사역한 것을 회개합니다. (2)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하고 육체의 소욕을 따라 원망과 불평한 것을 회 개합니다.
(3) 내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하고 형제를 판단하고 정죄함으로 피 흘리는 죄를 범한 것을 회개합니다. (4)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벼이 여기고 사랑으로 말씀을 행하지 아니한 것을 회개합니다.
- 2. 목자(목사, 선교사)를 위한 기도
(1) 주님을 머리로 붙들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역자가 되게 하소서 (2) 양들을 끝까지 사랑하는 선한 목자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소서 (3)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기도의 집이 되게 하소서
(4) 거룩한 울림을 가진 존재로서 자기를 부인하며 십자가를 지며 주님을 따르게 하소서
(5)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가르치고 부끄러움이 없는 일꾼으로 내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드리게 하소서
(6)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동역자들과 함께 지키며 성령님의 판단력과 지혜로서 사역적 장벽을 돌파하게 하소서
- 한국교회를 위한 기도
(1) 주님의 말씀을 항상 거역하는 자요 우상 숭배자 같음을 깨닫고 주님께 돌이켜 회개하는 정결 한 한국교회가 되게 해 주소서
(2)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주의 종들을 일으켜 주시고,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 얼굴을 항 상 구하는 기도하는 다음세대를 일으켜 주소서
(3) 기도의 영을 부어 주사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한국교회 되게 하소서
(4) 어려움 중에도 모이기를 힘쓰며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내는 한국
교회가 되게 하소서
(5) 지상명령에 순종하는 선교적 교회로 거듭나게 하시고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부흥의 역사를 허락하소서
- 4. 우리 민족과 위정자들을 위한 기도
(1) 화목제물 되신 주님으로 인해 남과 북, 동과 서, 좌우로 분열된 우리나라 안의 갈등과 반목이 사라지고 화해와 용서로 하나 되도록 하소서
(2) 우상 숭배, 낙태, 동성애, 거짓과 불의에서 돌이키고 성경에 어긋나는 악법들이 폐하여지게 하소서
(3) 위정자들이 윗 권세가 있음을 알고 주 앞에 무릎을 꿇도록, 성령의 감동을 허락하사 위정자 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하소서
(4) 위정자들도 주님의 빛으로 조명 받아 자신들이 길 잃은 양임을 깨닫게 하소서
(5) 우리 민족 안에 영적 부흥이 일어나 예수님의 이름이 높아지도록 하소서
- 세계교회와 열방을 위한 기도
(1) 행정적 장벽, 반기독교 정서, 테러, 전 염병보다 성령의 권능이 없음으로 선교가 침체 됩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열방을 깨우는 세계교회가 되게 하소서
(2) 미전도 종족들의 각동 각처에 준비된 추수하는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3) 열방 가운데 모든 종교들과 사상과 이념의 허구와 거짓이 폭로되고 십자가 복음만이 진리 임을 드러내게 하소서
(4) 북한 시리아 이라크 예멘 아프카니스탄 수단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 피 흘리는 분쟁과 전쟁이 멈추고 주님의 구원과 평안이 임하게 하소서
(5) 현지인 지도자들과 선교사들이 주님의 은혜로 사역하고, 현지인 목자들과 개종자들을 위한 합당한 신앙 공동체가 곳곳에 세 워지게 하소서
(6) 세계기독교 시대에 합당한 신적 연결이 이루어져 세계 복음화가 더욱 활성화되게 하소서

